[기고] 감사함과 웃음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것이 또한 因果法則입니다.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일상의 안정과 문명의 편리함을 마치 날 때부터 주어진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든 인간 사회의 질서든, 이 세상에 저절로 주어진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수많은 타인의 헌신, 역사의 축적, 그리고 우주의 미묘한 균형이 빚어낸 은혜일 뿐입니다. 안이한 당연함의 착각을 깨고, 삶의 겸손한 감사와 주체적인 사유의 힘으로 시대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본질적 성찰을 시작합니다.
‘왜 배워야 하는가?’ 배움은 스펙 쌓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닙니다. 배움의 본질은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익숙한 과거와 관념의 울타리를 뚫고 더 높은 차원의 나로 건너가기 위함 ‘(爲己之學)’입니다. 배우지 않는 인간은 환경과 타인이 만든 프레임의 노예로 머물지만, 배우는 인간만이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됩니다.
이제는 남이 만들어 놓은 이론, 도덕, 이념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대답하는 사유’를 멈추어야 합니다. 내가 디딘 현실의 결핍과 모순을 내 두 눈으로 정면 응시하며, “과연 그러한가?”, “지금 이곳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사유’를 시작해야 합니다.
시민은 국가에 등록된 ‘거민(주민)’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권력자나 진영의 선동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과 미래의 어젠다를 주체적으로 고민하며 법과 염치를 지키는 ‘생각하는 개인’이 다수를 이룰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고 국가의 품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산수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세고 계산하는 평면적 기술이라면, 기하학은 점, 선, 면을 허공에 새로 정의하며 공간과 구조를 창조하는 ‘원천적 개념 설계의 학문’입니다. 계산(전술)에만 매몰된 민족은 남의 질서 안에서 일하지만, 기하학적 추상력(전략)을 지닌 민족만이 문명의 새로운 판을 짭니다.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내 호흡, 건강, 재산, 심지어 가족조차 내가 온전히 소유한 것이 아니라 우주로부터 잠시 빌려 쓴 것임을 직시하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조건부의 선물임’을 깨달을 때 오만과 불평이 사라지고, 매 순간을 향한 절실한 감사가 피어납니다. ‘당연한 것은 없다. 항상 감사하자.’는 지혜를 깨닫습니다.
식물유전학자 이일하 교수가 밝힌 꽃눈 형성의 네 가지 경로(광주기, 자율성, 춘화처리, 지베렐린 경로)는 식물이 철저히 때를 기다리고 주변 환경과 유전자를 정밀하게 조율함을 보여줍니다. 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것조차 당연한 우연이 아니라, ‘혹독한 겨울과 빛의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낸 인내와 자연의 법칙이 빚어낸 기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서구의 정답을 모방해 빠르게 따라잡는 ‘추격형 전술국가’의 꼭대기에서 멈춰 섰습니다. 과거사 청산과 내부 분열에만 매몰되면 추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질문을 던지고 세계 문명의 표준을 새로 세우는 ‘창의적 전략국가, 선도국가’로 사유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은 상식과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은 현상 유지의 안락함을 깨뜨리고, 숨겨진 모순을 들추어내며, 새로운 진리와 제도를 태동시키는 ‘문명 진화의 가장 강력한 방아쇠’입니다.
가족이나 절친한 지인일수록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경계를 침범하고 정서적으로 지배하기 쉽습니다. 기대치가 높기에 배신감과 상처도 가장 깊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건강한 거리감과 경계를 지키는 존중이 없으면 관계는 폭력으로 변질됩니다.
정약용 조선 후기 실학자의 사상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두 가지 핵심 처세술은 말을 줄이는 것(말조심)과 선을 긋는 것(인간관계의 거리두기)입니다. 정약용은 유배 생활을 비롯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말의 무게와 인간관계의 본질을 깊이 깨달았고, 이를 자식들과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첫째, ‘말을 줄여라(말조심과 침묵).’입니다. 정약용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고, 때로는 화를 부르는 근원이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말을 아껴 화를 면하라. “내가 한 말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했습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와 해를 끼치므로, 말하기 전에 항상 세 번 생각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귀는 열고 입은 닫아라. 들음으로써 지혜를 얻고, 말함으로써 후회를 남기기 쉽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최고의 방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가벼운 말을 삼가라. 품격 있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며, 말의 양보다 그 안에 담긴 깊이와 진실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둘째, 선을 그어라(인간관계의 거리두기). 그가 말한 ‘선을 긋는 것’은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배척하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 상처받지 않을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악인과의 거리를 두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과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마라. 아무리 가까운 사이(가족, 친구 등)라도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간섭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스스로를 지키는 경계선, 타인이 내 삶을 흔들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을 긋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지혜입니다. 정약용의 가르침은 결국 “입을 다물어 구설을 피하고, 선을 그어 인간관계의 피로함을 줄이라.”는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삶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비교는 결핍과 탐욕, 분노의 온상입니다. 타인의 조건과 나를 견주는 마음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조건과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마음 챙김)’ 훈련을 해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인과(因果)에 따라 흐를 뿐 우열이 없음을 깨닫는 데서 참된 자유가 시작됩니다.
창의성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無)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에디톨로지(Editology: 편집학)’입니다. 지식, 감각, 경험의 조각들을 해체하고 전혀 다른 맥락으로 낯설게 재배열(연결)할 때 창의성이 탄생합니다. 나만의 독립된 생각 공간(슈필라움)을 확보하고 유희하듯 지식을 섞어야 합니다.
찰리 멍거는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단기적 만족에 집착하고, 확증편향(자증)에 갇히며, 배움을 멈추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짚었습니다. 실수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객관적 인과관계를 냉정히 복기하지 않는 지적 나태함이 빈곤을 되풀이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기분이나 동기부여, 외부 보상에 의존하는 사람은 슬럼프가 오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감정의 기복과 상관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진 시간에 묵묵히 자리에 앉아 ‘그냥 해치우는 일상의 시스템(루틴)’을 가진 사람은 장기적 승부에서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성공하는 법을 찾기 전에, 실패하는 법(어리석음, 편향, 탐욕)을 먼저 목록화하여 철저히 피하는 방식입니다. 남들과 똑같은 사고 모델을 쓰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한 보건 위기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오만한 질주와 맹목적 지구 착취에 자연이 가한 ‘거대한 문명사적 멈춤 명령’이었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타자와의 연결성을 성찰하는 생태적·철학적 각성의 계기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혁신은 낡은 기계를 새 기계로 바꾸는 차원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관점의 프레임과 사유의 높이를 완전히 바꾸는 존재론적 탈바꿈’입니다. 질문을 바꾸지 않는 사회에서의 혁신 구호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합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에 갇혀 환상을 좇은 미치광이로 보이지만, 세속의 안락함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온몸을 던진 ‘순수한 실존적 결단의 상징’입니다. 책 속에 안주하지 말고 책을 딛고 거친 현실의 지평으로 건너가야 함을 웅변합니다.
사람의 인격적 크기(함량)는 골방의 관념적 명상에서 커지지 않습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부딪히고 책임을 지며 ‘구체적인 일을 온몸으로 감당해 내는 치열한 과정’ 속에서 비로소 인격의 뼈대가 단단해지고 그릇이 넓어집니다. 일과 수양은 둘이 아닙니다.
당연함을 내려놓을 때 겸손한 감사가 시작되고, 남의 정답을 버릴 때 주체적인 사유가 시작됩니다. 매 순간 주어지는 삶의 인연에 깊이 감사하며 스스로 시대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주인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자신과 이 땅의 미래는 비로소 환하게 열릴 것입니다. 이 길을 함께 열어가지 않겠습니까?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 우리말로 배우는 한자 교육 전문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