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제의 목요칼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듯, 강물이 강의 이름을 버리고 바다가 되듯, 인간도 욕망의 이름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본래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은행나무 아래를 천천히 걷는다. 늙은 은행나무는 떨어지는 잎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닿는다.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놓으면서 더 큰 자신으로 나아간다. 꽃이 지는 것은 나무의 실패가 아니다. 완성을 향한 버림이다. 인간은 무엇을 버려야 자신의 진정한 삶에 닿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얻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여긴다. 돈, 명예, 높은 직위를 얻거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욕망에게 만족이란 없다. 정상에 오르면 산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더 놓은 산이 보인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더 높은 산이 보인다.
노자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비움’을 말했다. 그릇은 비어 있기 때문에 쓰임이 있고, 방은 비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머물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기만 하는 삶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성장은 자기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불교의 연기(緣起)도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홀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조건 속에서 잠시 이루어진 모습이다. 우리는 그 ‘나’를 붙잡는다. 내 명예, 내 재산, 내 생각, 내 성공, 내 자존심을 ‘나’라고 여기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현대인의 고통은 거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붙잡으려는 집착 때문이다. 젊음, 재산, 명예,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떠난다. 우리는 우정과 사랑에게 변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삶이 주는 변화와 부질없이 싸운다.
강물은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자신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은 결국 바다에 닿는다. 바다는 강물이 자기 모습을 끝까지 지킨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모습을 내려놓을 줄 알았기 때문에 도달하는 궁극적인 평화이다.
인생의 전반부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면, 후반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어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공을 내려놓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놀랍게도 역설적인 일이 일어난다. 비워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선명해진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잔의 차가 따뜻하고, 저녁의 바람이 고맙고, 오래된 친구의 얼굴이 새롭게 보인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듯, 강물이 강의 이름을 버리고 바다가 되듯, 인간도 욕망의 이름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본래의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삶의 마지막에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얼마나 깊이 살아냈는가, 얼마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는가일 것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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