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14(월)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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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2월 13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 난징(南京)을 점령했다. 이후 약 6주 동안 자행된 무차별 학살과 성폭력, 방화와 약탈은 인류 문명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비극이었다. 짓밟힌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과 참혹한 범죄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위로하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차분히 돌아볼 때도 피해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장제스(蔣介石) 휘하 국민당 군대와 중국 민중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치열한 항전의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러한 희생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사료 검증을 거친 정밀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과 비판의 정당성을 더 한층 굳건히 세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희생자 수치를 둘러싼 논쟁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식 입장의 '30만 명' 수치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20만 명 이상' 판정, 그리고 여러 사료에 기반한 학계의 다양한 추정치는 저마다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간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자의적인 수치 축소나 학살 부인 시도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두 번 짓밟는 행위로서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피해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숫자 줄다리기'에 매몰되어 정작 개개인이 겪은 삶의 파괴를 잊는 일이다. 숫자의 다과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내야 했던 참혹한 고통과 인권의 짓밟힘 그 자체를 아프게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추모의 출발점이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중국어: 侵华日军南京大屠))의 건립과 발전 과정은 이처럼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피해국 중국의 절박한 기억 투쟁이었다. 과거 일본 교과서 검정 파동 이후 침략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가 높아지자, 난징시는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보존하여 집단학살 유적지인 장둥먼(江東門) 위에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후 자료실 확장과 '평화의 배' 형상의 신관 건립, 그리고 국가 추모일 지정에 이르기까지 기념관은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성찰의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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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희생자기념관. 역사의 참상을 기억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추모하며 평화를 다짐하는 공간이다.(난징대학살기념관 전경-'평화의 배' 형상의과 평화광장의 평화 여신상)

 

다만 국가적 차원의 의례와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가 겪은 숭고한 슬픔과 애도의 본질이 정형화되거나 정치적 대립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하다. 진정한 추모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적 선전이나 외교적 대립의 틀을 넘어, 방문객 개개인이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자발적인 슬픔과 평화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따뜻하고 유연한 감성적 여백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가해의 역사를 모호하게 흐리거나 봉인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역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비극을 다루는 가장 성숙한 태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피해자의 관점'을 확고히 중심에 두고,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사실에 기반하여 참상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강조해 온 것처럼, 참상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분노를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배움터'로 승화될 때 더욱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얻는다. 하나의 정해진 국경의 서사에 갇히기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다양한 역사적 증언이 생생하게 소통하게 하고,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편적 평화의 연대로 나아가는 포용적 태도가 기대된다. 

 

독일과 폴란드가 오랜 대화 끝에 출간한 공동 역사교과서 『유럽-우리의 역사』(Europa – Unsere Geschichte)는 좋은 이정표가 된다. 이 교과서는 단일한 정답을 강요하는 대신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국의 시각과 근거 사료를 나란히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비평적으로 검증하게 한다. 동아시아 역시 소모적 갈등을 넘어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역사적 진실에 기반한 공통의 평화 지혜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교실 현장에서도 숫자를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 다양한 사료와 기록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 스스로 추적하며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가"를 다투기보다 "무엇이 입증된 사실이며, 참혹한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아프게 묻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30만이라는 수치 뒤에 숨겨진 수많은 개인의 참혹한 희생과 중국 민중이 겪어낸 슬픔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엄정한 사료와 진실에 뿌리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윤리적으로 직시할 때, 비로소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온 인류가 함께 고개 숙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배우는 거룩한 성지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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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교육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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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한 추모: 난징대학살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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