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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피니언리더스] 이상호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부산진구의 다음 10년을 설계"
    [교육연합신문=정윤영 기자] 부산진구청장 출마를 결심한 이상호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은 부산진구의 미래 해법으로 ‘교육 중심 도시 전략’을 제시했다. 그의 구정 비전은 교육을 행정의 한 분야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과 문화, 지역경제를 함께 움직이는 도시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구정 담론과 결을 달리한다. 부산진구는 국제중학교와 국제고등학교, 과학영재학교, 글로벌빌리지, 수학문화관 등 부산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가 밀집된 지역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이를 “부산진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시 자산”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 교육 시설들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글로벌 인재와 과학 인재를 동시에 키울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라며, “이제는 교육 인프라를 도시 전략의 핵심 축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교육 중심 도시는 학교와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다. 국제고 학생들의 관광 통역 활동, 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의 지역 환경 프로젝트 참여, 전통시장과 연계된 외국인 체험 프로그램 등 교육 활동이 교실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이 곧 지역 참여와 도시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교육과 연계한 관광 전략도 주목된다. 서면 메디컬스트리트, 서면·부전시장, 부산시민공원, 삼광사, 전포 카페거리 등 부산진구는 이미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집중되는 도심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관광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원을 하나의 이야기와 동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의료관광과 전통시장 체험, 시민공원 힐링 코스, 사찰 문화, 전포 카페거리 야간 관광을 하나로 묶은 ‘부산진구형 관광 루트’를 통해 교육·체험·관광이 결합된 도시 모델을 제시했다. 문화 정책 역시 교육과의 연계를 중심에 둔다. 부산국악원과 콘서트홀, 시민공원 등 기존 문화시설을 학생 체험형 문화교육, 외국인 대상 상설 전통문화 프로그램, 시민 참여형 거리 공연과 축제로 확장해 문화가 일상 속 배움과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문화가 일부 계층의 소비 대상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상호 前행정관의 비전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실행 가능한 행정’에 대한 강조다. 그는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관광·문화 정책을 부서별로 나누는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 기획과 연계 예산, 성과 공유 체계로 운영하는 ‘구정 통합 설계 방식’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정책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그는 부산진구를 “배움이 곧 기회가 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학생과 청년들이 지역 활동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그 경험이 진로와 취업, 창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교육 정책이 인구 정책이자 지역 지속성 전략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상호 前행정관은 자신을 ‘행정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는 “부산진구는 이미 충분한 교육 자산을 갖춘 도시”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관리가 아니라 설계다. 교육을 중심으로 관광과 문화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부산진구의 다음 10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부산진구청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선택을 넘어, 교육을 도시 성장의 중심에 둘 것인지, 그리고 그 교육이 지역의 미래로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를 묻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 이상호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前대통령비서실 행정관(경제수석실·일자리수석실) ◇ 前부산광역시 정무보좌관 ◇ 제22대 부산진구(을)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 ◇ 前더불어민주당부산시당 시정평가대안특위 부위원장 ◇ 국립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정치언론 석사 ◇ 부산 양정초·동의중·양정고 졸업 ◇ 경남 사천 출생·부산진구 43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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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6
  • [오피니언리더스] 부산연제구의회 차성민 의원, 생명 나눔으로 증명한 아름다운 열정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우리 사회는 늘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묻는다. 성과와 숫자는 판단의 기준이 되고, 말과 약속은 종종 행동보다 앞선다. 그러나 어떤 숫자는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삶의 방향을 말해준다. 136. 이 숫자는 단순한 횟수가 아니다. 설명보다 깊고, 말보다 분명한 메시지다. 차성민 의원이 또 한 번 헌혈의자에 앉았다. 지난 1월 21일 오전 9시 30분, 전혈 400cc. 혈액 비중 13.6, 소요 시간 4분 10초. 짧은 시간 안에 끝난 헌혈이었지만, 그 몇 분의 시간 안에는 수십 년 동안 반복해 온 선택과 결심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헌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몸 상태가 따라주지 않는 날도 있고, 일정이 겹치는 날도 있으며, 마음이 느슨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능한 날이면 헌혈을 선택해 왔다. 특별한 각오를 다지기보다, 해야 할 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그의 헌혈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이다. 그는 헌혈을 마친 뒤 담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빵도 주고, 음료도 주니 좋네요. 쪼매 건강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소박한 말 속에는 헌혈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다. 누군가의 박수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헌혈은 더 깊은 울림을 갖는다. 차 의원의 헌혈에는 구의원다운 열정과 따뜻한 온정이 함께 스며 있다. 그 시간만큼은 직함도, 정치적 역할도 내려놓는다. 오직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떠올린다. 혈액이 전달될 누군가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팔을 내미는 이 행위는, 제도보다 앞서는 인간적인 연대이며 공동체를 향한 가장 직접적인 배려다. 정치는 종종 말의 영역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지역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신뢰는 결국 삶의 태도와 반복된 선택에서 쌓인다. 주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손이,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수십 년간 이어왔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정책 이전의 이야기이며, 정치 이전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 열정은 요란하지 않다. 앞세우지 않고, 설명을 강요하지 않으며, 묵묵히 이어진다. 차성민 의원의 136번째 헌혈은 하나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조용한 메시지다. 이 사회는 아직 서로를 살피는 마음으로 버텨가고 있으며, 그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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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3
  • [김홍제의 목요칼럼] 성심당 빵집이 던지는 질문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내 고향은 대전이다. 초,중,고 학교를 대전에서 다녔다. 대전은 유명한 ‘노잼 도시’였다. 그런데 새롭게 관광명소가 된 곳이 있다. 역사적인 사찰도 아니고 단풍이 고운 명산도 아니다. 빵집이다. 성심당 빵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주변 칼국수 가게까지 사람이 늘더니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주말과 평일 가리지 않고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 본점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쟁반 가득 빵을 골라 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궁금했다.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하는 성심당의 힘은 무엇인가. 빵에 대한 진심, 합리적 가격, 약자를 위한 기부 등 성심당이 실천하는 '착한 기업'의 가치가 인기의 비결이라고 한다. 과연 성심당은 어떻게 70년 동안을 이어오고 있을까.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가. 학교도 이렇게 학생이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성심당은 빵집의 본질이 ‘빵의 맛’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본질에 대한 집요함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교육의 본질은 입시 성과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교실이다. 보여주기식 정책, 단기 성과, 수치화된 결과에 몰두하면 정작 수업의 질과 교사의 전문성이라는 핵심은 뒤로 미뤄진다. 성심당이 반죽과 오븐 앞을 떠나지 않듯 교육 역시 교실과 아이들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성심당은 빵을 통해 말한다. 교육도 그래야 한다. 성심당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빵집이 되지 않았다. 대신 ‘대전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남았다. 모든 학교가 똑같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똑같은 성취 기준만을 좇는 현실에서 학교는 특색이 없다. 학교는 지역의 역사와 삶, 아이들의 현실을 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과거에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심당은 등록상표 43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의 입맛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부단한 연구와 상품개발을 통해 입맛을 선도하는 빵집이라는 말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원칙이 있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과거의 틀을 고집하는 분야에서 성장은 없다. 성심당은 1956년 문을 연 이래 복지단체에 빵 기부, 수억 원 넘는 장학금, 미혼모와 신생아를 위한 병원 진료비 기탁 등을 해왔다고 한다. 법인 설립 뒤 20여 년 동안 펼쳐온 기부활동은 모두 12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성심당의 인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상승장만 가는 주식이 없듯이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빵을 만들어서 한 지역을 관광명소로 만드는 일은 드문 일이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배울 점이 있다. 성심당 임선 이사가 강연에서 밝힌 성심당 성공 공식은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집중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오늘 학교는 과연 본질에 충실하면서 따뜻한 가치를 존중하는가. 대전의 작은 빵집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다. 성심당은 묻는다. “우리는 빵을 통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치가 있다. 오늘날 학교는 과연 무슨 가치로 교육을 하고 있는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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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가 들려주는 오래된 윤리학 - ‘인(仁)’과 ‘의(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흔히 공자를 떠올리면 “인(仁)”이라는 글자를 함께 떠올린다. 공자가 평생토록 강조한 핵심 덕목이자, 동아시아 유교 전통의 근본 기둥이다. 맹자 역시 공자의 계보 위에서 ‘인의예지’ 네 가지를 세우며, 그 가운데 특히 ‘의(義)’를 인(仁)과 나란히 놓았다. 그래서 “어진 마음과 의로운 행동”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윤리의 상징처럼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 과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인”과 “의”라는 글자의 의미는 본래부터 그랬을까? 대부분의 교과서 해설은 한자의 모양을 단순히 분석해 이렇게 설명한다. “인(仁)은 사람(人)과 둘(二)의 결합이다. 두 사람이 마주해 있는 모양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짊’이 생겼다.” 얼핏 그럴듯하다. “의(義)” 역시 ‘양(羊, 희생 제물)’과 ‘나(我)’가 합쳐져,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 뜻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지금의 한자 모양을 근거로 한 후대적 추측에 가깝다. 실제로 은자(殷字)를 들여다보면, 인(仁)과 의(義)의 뿌리는 훨씬 더 생생하고 구체적인 그림에서 시작한다. 글자가 태어나던 순간, 고대 동이족의 삶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 ‘인(仁)’ -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 은자에 나타난 ‘인’의 초기 형태를 보자. 얼핏 보면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다. 사람의 정강이 부분에 난 다리털, 그리고 심장 모양이 결합된 형상이다. 다리털은 많음을 상징했다. 그래서 여기서는 ‘천(千)’, 곧 무수히 많다는 뜻으로 쓰였다. 심장은 말 그대로 마음, 정서, 동정심을 나타낸다. 이 두 요소를 합쳐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단순히 ‘사람 두 명’이 아니라, 무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품는 너그러움과 연민, 곧 ‘어짐’이 글자의 기원인 셈이다.([그림 13] ‘仁’ 참조) 이후 갑골문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의미가 더 확장된다. ‘천 개의 마음’ 대신에 ‘윗 상(上)’ 기호가 들어가, 윗사람이 백성을 향해 어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발전한다. 다시 말해, 임금이 여러 백성을 향해 자애로운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정치적 함의가 덧붙여진 것이다. 즉, 인(仁)은 공자보다 수천 년 앞서 이미 동이족 사회에서 윤리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공자가 새롭게 창안한 덕목이 아니라, 문자 속에서 오랫동안 숙성된 사유의 계승이었다. □ ‘의(義)’ - 정의를 세우는 무기 맹자가 강조한 또 다른 핵심은 ‘의’였다. 흔히 우리는 ‘의’를 추상적 개념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은자 속 ‘의’는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다. 은자를 보면, ‘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윗부분은 ‘수양’이라 불리는, 집단 내 권위와 리더십을 상징하는 도상이다. 아래는 ‘戈(과)’라는 창 모양, 당시 특수한 무기였다. 이 둘을 합쳐 ‘의’는 “집단 내 질서를 지키고 옳은 일을 위해 무력이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뜻했다. 다시 말해, 의(義)는 단순히 마음속의 정의감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무기를 들고라도 정의를 실천하는 행위였다. 사회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적극적 윤리의 실천이 바로 ‘의’의 뿌리였던 것이다.([그림 13] ‘義’ 참조) □ 동이족이 남긴 철학적 사유 이처럼 은자 속 ‘인(仁)’과 ‘의(義)’는 사람과 사회, 마음과 행동의 결합을 보여준다.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어진 사람’, ‘질서를 세우기 위해 무기까지 드는 정의’는 추상적 덕목을 단순한 도덕 규범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장면 속에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흥미롭게도 후대 서양 철학자들이 논한 사회계약론이나 정의론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 권력과 정의의 균형, 개인의 도덕성과 집단 질서의 유지라는 질문은 이미 수천 년 전 문자 속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셈이다. 공자와 맹자의 사유는 이러한 오랜 축적 위에서 다시 체계화된 것이다. □ 오늘의 의미 - 인의의 정신은 살아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인’과 ‘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민과 배려를 가리킨다. 자연재해 때 서로 돕는 손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 나와 다른 존재를 향한 공감은 모두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인간의 실천이다. ‘의’는 억압과 불의에 맞서는 용기로 드러난다. 역사 속 의병 활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현대 사회에서 불의한 제도에 맞서는 집단적 저항도 그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정신, 그것이 바로 의(義)다. 은자 연구는 단순히 글자의 원형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동이족이 남긴 윤리학의 맥락을 오늘에 불러오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인의예지”라고 말하는 개념은 수천 년 전 문자 속에서 이미 실천적 윤리 개념으로 형상화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 맺으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인(仁)과 의(義)의 해설은 대체로 지금의 글자 모양을 근거로 한 후대적 추측이다. 그러나 은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仁)은 ‘천 개의 마음을 가진 어진 사람’, 의(義)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무기와 권위를 동원하는 실천’이었다. 이 발견은 단순히 학문적 흥밋거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동아시아 사상의 뿌리가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장면에서 출발했음을 일깨운다. 다시 말해, ‘인의예지’는 교과서의 추상적 표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 규범이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불평등, 불공정, 분열의 문제 앞에서 “어진 마음”과 “의로운 실천”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낡은 구호가 아니다. 은자가 전해주는 오래된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은 천 개의 마음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가?, 당신은 옳음을 위해 무기를 들 용기를 지니고 있는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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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1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명 부산시의원이 보여주는 지방자치의 기준…"지역을 먼저 돌보는 정치"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지방자치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주민의 일상에서 불편을 발견하고, 그 불편을 제도와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책임감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부산광역시의회 김광명 의원의 의정 활동은 지방정치가 지향해야 할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지역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정치’다. 김광명 의원은 의정 현장에서 줄곧 같은 원칙을 강조해 왔다. “정치는 멀리 보기 전에, 내가 맡은 지역의 삶부터 살펴야 합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신념의 표명이 아니라, 그의 의정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실천의 기준이다. 지역 민원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짚고 행정과 예산, 조례로 연결하려는 접근 방식은 지방의원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다. 특히 재난·안전 분야에서의 문제 제기는 김 의원 의정 활동의 중요한 축이다. 그는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화재 대응 역량 강화, 방연 물품 확충, 현장 대응 시스템 점검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사고는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선택의 문제”라는 그의 발언은 재난을 운에 맡기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는 통계와 보고서가 아닌,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현장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다. 교육과 미래 산업에 대한 시선 또한 종합적이다. 김광명 의원은 “아이들이 살아갈 도시를 준비하지 않는 정치는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교육의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과 함께, 인공지능과 신산업 기반 조성을 통한 지역 경쟁력 강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의 오늘을 돌보는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광역의원의 책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정치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속도’보다 ‘순서’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눈에 띄는 성과보다, 주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변화를 먼저 생각한다. 화려한 수사보다 현장 점검을 택하고, 일회성 이벤트보다 제도 개선을 선택한다. 그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기록에 남기기보다, 주민의 기억에 남아야 합니다.”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그림자가 아니다.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곳이다. 김광명 시의원의 의정 활동은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지역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정치, 생활 가까이에서 답을 찾는 정치가 결국 지방자치의 신뢰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의미가 크다. 정치는 결국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 평가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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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0
  • [전재학의 교육칼럼]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 멀리 미국의 미래 도시 라스베가스에서는 지난 1월 6일~9일까지 미국 소비자 가전협회에서 주관하는 ‘CES 2026’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영역까지 넘보는 AI 시대, 올해는 피지컬 AI인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 로봇의 진화된 모습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우리의 자랑스런 스타트업 기업들의 AI 시대를 선도하는 모습에 진한 감동과 함께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학생들은 이미 생성형 AI와 함께 글을 쓰고, 문제를 풀며, 진로를 탐색한다. 그러나 정작 학교 교육은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고, “AI와 함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드시 학생들에게 읽혀야 할 책이 있다. 바로 MIT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의 『라이프 3.0: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의 미래』이다. 이 책이 AI 시대의 필독서로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라이프 3.0』은 기술 사용법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인공지능 이후의 인간 정체성, 윤리, 교육, 민주주의를 다룬 사유의 대표성을 가진 책이기 때문이다. 테그마크는 생명의 진화를 라이프 1.0(본능에 의해 결정되는 생명), 라이프 2.0(학습은 가능하지만 신체와 지능은 스스로 설계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라이프 3.0(스스로 지능과 목적을 재설계하는 존재)으로 구분한다. 인공지능은 인류를 라이프 3.0의 문턱에 세운 존재이며, 문제는 “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이다. 교육적으로 이 책을 강력히 권장하는 이유는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묻는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설정해야 하는가?”, “효율이 최선의 가치가 될 때,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철학 담론이 아니라, 교실에서 토론 수업과 프로젝트 학습으로 확장될 수 있다. 실제 사례를 들어 본다. 한 고등학교에서 『라이프 3.0』의 일부를 읽고 ‘AI가 교사가 되는 사회’라는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AI 튜터의 장점(개별 맞춤 학습, 공정성)과 한계(공감의 부재, 가치 판단의 문제)를 스스로 분석했다. 이후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AI는 답을 잘 주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깨달음이야말로 AI 시대 교육의 핵심 성취라 할 것이다. 『라이프 3.0』은 교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AI가 빠르게 대체할 수 있지만, 가치를 해석하고 책임을 가르치는 일은 인간 교사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학생뿐 아니라 예비 교사, 현직 교사, 교육 정책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은 더 많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되어야 한다. 『라이프 3.0』은 그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을 교실로 들여와야 하는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AI를 두려워하지도,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도 않고, 책임 있게 설계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학생들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와 함께 글을 쓰고, 문제를 풀며,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 교육은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만 머물러 있고, “AI와 함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AI 시대에 반드시 읽고 이해할 필요성과 가치가 큰 서사에 눈길을 돌릴 계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각급 학교에서는 독서를 적극 권장하고 활용하여 혁명적인 AI 시대의 흐름과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발전 모습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실용적인 교육을 실시할 것을 기대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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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9
  • [김홍제의 목요칼럼] 새해에 내 안을 단순하고 깨끗하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직원과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에 전화가 왔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지인이다. 전화하는 대부분은 부탁을 하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에 부탁을 하는 것이다. 부탁을 듣고 나니 소화가 안 된다. 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살다 보면 잡다한 고민이 많다. 선택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다. 무엇을 내가 중요시하는지도 알려 준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에게 문제를 던져 주는 상대방은 주로 내가 나쁜 사람 역할하기를 원한다. 사료를 먹고서 졸고 있는 개를 보면 행복해 보인다.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고 남에게 부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본능에 충실한 삶이 평안을 준다. 옛날보다 쌀밥과 고기반찬을 더 많이 먹는데도 행복감이 적다. 인간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얕고 넓은 모임이 많아지고 선택은 고민을 낳는다. 청렴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비우는 것이다. 깨끗한 것이다. 욕심이 없는 사람. 가을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되어보자. 매일 조금씩 버려보자. 법정의 ‘무소유’에서 비움의 철학을 살뜰히 말하지 않았던가. 물건을 버리면 집착이 없어진다. 삶이 불편할 정도로 비워내고 싶다. 현대는 적어서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차고 넘쳐서 병이 되고 있다. 이발을 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고 샤워를 하고 거실에 누워 눈을 감으면 실구름처럼 몸은 가볍고 마음은 평안하다. 담담함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형형색색의 간판이 있는 도시의 거리보다 조용한 오솔길을 걸을 때에 얼마나 영혼이 충만하고 좋았던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쓸모가 없어진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도 버리자.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을 보라. 그들은 잠자가 죽자 모두 훌륭하게 자신들의 생활을 잘 꾸려 나갔다. 세상일에서 내가 아니면 망할 것 같은 망상을 버리자. 세상은 내가 아니어도 잘 돌아간다. 자유롭고 싶다면 비우자. 비우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손에 움켜쥔 것을 놓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짐승들은 몸이 아프면 단식을 한다. 자신의 몸을 비운다. 비우는 것이 자연이 가르치는 최상의 치유 방법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잠자던 반려견처럼 자신에게 충실해 보자. 신이나 타인에게 주는 관심을 자기 내면으로 돌려보자. 새해가 되어 많은 성취를 꿈꾸고 체계적인 계획을 구상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겨울나무처럼 중요한 뼈대만 남기고 정리해야 한다. 너무 많은 계획도 욕심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이라도 시간을 내서 내면을 깨끗이 하자. 새해맞이 집안 대청소도 필요하지만 내면의 묵은 때를 벗기는 시간도 필요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는지 내 안을 들여다보자. 자기가 아닌 나머지는 버리자. 2026 병오년 말처럼 자유롭게 달리려면 먼저 안장 위 짐을 확 줄이자.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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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5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법 속에서 사라진 짐승, 해치(獬豸)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어릴 적 나는 “법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이 굽이쳐도 끝내 바다로 흘러가듯, 법도 억지로 틀을 짜 맞추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과 공평함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법은 종종 불공정했고, 정의와 거리가 멀었다. 법정의 판결이 “옳음”과 “그름”을 나눈다기보다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기울어져 있다는 체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법은 본디 무엇이었을까? 문자학의 눈으로 ‘법(法)’이라는 한자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놀랍게도 오늘의 법이 잃어버린 무언가가 보인다. 갑골문과 금문 속 ‘법’에는 신수(神獸), 곧 해치(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 해치(獬), 옳고 그름을 가르는 짐승 해치는 전설 속 동물이다. 뿔이 하나 달린 짐승인데, 사람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면 반드시 그 가운데 옳은 사람을 알고, 그쪽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반대로 잘못한 자에게는 뿔로 들이받아 징벌을 가했다고도 전한다. 그래서 중국 고대의 재판 이야기를 담은 문헌들에는 해치가 법정 옆에 있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관복에 해치 무늬를 새겨 넣어 “나는 공정하게 판단하겠다”는 다짐을 상징하기도 했다. 갑골문 속의 ‘법’자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水), 해치(獬), 그리고 거(去). 물은 평평히 흐르는 성질, 곧 공평함을 뜻했다. 거는 제거한다는 뜻, 곧 불의와 부정을 없앤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해치는 정의의 화신이었다. 세 요소가 함께 있을 때, 법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신성한 정의를 상징했다. 오늘날 법에 대한 회의적 인식과 달리, 고대의 법은 적어도 문자 속에서는 자연법적·정의론적 기초를 품고 있었던 셈이다. □ 사라진 해치, 남은 법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문자는 단순화되고 통일되었다. 진시황의 문자 정리 과정에서, ‘법’에서 해치가 빠져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法자는 물(水)과 거(去)만 남아 있다.([그림 12] ‘法’ 참조) 이 변화는 단순히 글자의 획수가 줄어든 문제가 아니다. 법이라는 개념에서 정의의 상징이 지워진 것이다. 이제 법은 해치의 뿔 같은 초월적 기준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규칙을 뜻하게 되었다. 법이 곧 정의라는 자연스러운 연상이 약해지고, ‘성문법’과 ‘실정법’이라는 제도적 의미가 강화된 것이다. 우리가 법정을 떠올릴 때, 판사 뒤에 앉아 있는 해치 대신 국가의 문장(紋章)이나 국기가 걸려 있는 모습은 이 전환의 문화적 결과다. □ ‘율(律)’이라는 또 다른 길 법과 짝을 이루는 글자로 ‘율(律)’이 있다. 이 글자 역시 흥미롭다. 갑골문을 보면, 손이 붓을 들고 길(道)에 무언가를 적는 형상이다. 곧 “길을 글로 적는다”, 다시 말해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문서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그림 12] ‘律’ 참조) 따라서 ‘율’은 처음부터 성문법, 제정된 규칙의 세계를 가리켰다. 반면 ‘법’은 본디 자연스러운 정의, 해치가 상징하는 옳고 그름의 감각을 담았다. 그렇다면 고대 사회에서 법과 율은 서로 보완적 관계였다. 하나는 정의의 원칙, 다른 하나는 그 원칙을 글로 고정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법 체계는 ‘율’, 곧 성문화된 규범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 있다. 법조문이 두껍게 쌓이고, 조항이 무수히 늘어날수록, 해치의 자리는 더욱 희미해졌다. □ 이름의 흔적 - ‘해태’는 왜 해치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음운학적 문제도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해치를 ‘해태’라고 부른다. 마치 잘못된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고대의 운서(韻書)와 사전 기록을 보면, 獬(해)의 발음은 시대에 따라 [태], [해], [치] 등으로 달라졌다. 즉 [해태]라는 발음은 전승 과정에서 나온 오류가 아니라, 역사적 음운 변화의 산물이었다. 서울 광화문 앞의 돌짐승 ‘해태’는 그래서 결코 잘못된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 변화를 품은 문화사의 흔적이라 할 만하다. □ 자연법과 실정법 사이에서 문자학적 분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해치가 포함된 ‘법’은 자연법적 의미, 곧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초월적 기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문자에서 해치가 제거되면서, 법은 점점 성문법과 실정법의 세계로만 기울게 되었다. 물론 문자의 단순화는 행정 효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법이 정의의 상징을 잃어버린 것은 문화적 손실이기도 하다. 이제 법은 권력이 정한 규범을 집행하는 제도적 장치로만 이해되기 쉽다.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우리의 체감은, 어쩌면 갑골문 속 해치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 오늘의 법, 그리고 잃어버린 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법치’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크다. 그러나 그 ‘법치’가 과연 정의를 보장하는지는 늘 의문이다. 권력자에게 유리한 판결, 돈에 따라 달라지는 법의 무게를 보며 사람들은 법을 불신한다. 이럴 때 갑골문 속 해치의 그림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법은 본래 물처럼 공평해야 하고, 불의를 제거해야 하며,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신성한 눈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법의 제도적 개혁만이 아니라, 법에 내재된 정의의 상징을 복원하려는 문화적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법은 다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 맺으며 법(法)의 옛 그림은 단순하지 않았다. 물(水), 제거(去), 그리고 해치(獬). 그 셋이 함께 있을 때 법은 비로소 법다웠다. 해치가 사라진 뒤, 우리는 규칙만 남은 법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효율적일지 모르나, 때로는 정의를 잃은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문 지면마다 터져 나오는 법의 불공정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다시 광화문 앞의 돌해태를 떠올린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은 귀여운 그 모습. 하지만 그 뿔은 여전히 곧게 하늘을 향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눈과 뿔을 되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법이 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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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4
  • [김홍제의 목요칼럼] 학교의 위치와 한국 사회의 철학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학교는 언제인가부터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입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집단적 고백이다. 도시는 가장 비싼 땅에 무엇을 세우는지를 통해 사회의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백화점, 고급 주거지, 상업시설이 중심을 차지하는 동안 학교는 늘 외곽으로 밀려났다. 아이들의 미래보다 더 값진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학교는 가장 비싸고 좋은 땅에 있어야 한다. 나는 시골 지역에서 교장을 할 때 학생 화장실에 비데 있는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행정실에서 돈이 없다고 했지만 우선 층마다 몇 개라도 만들자고 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이 꿈을 꿈꾸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며 한 사회의 철학이 형성되는 장소이다. 민주시민의 경험이 길러지는 공적 공간이다. 그렇기에 학교는 접근성이 가장 좋고 안전하며 문화, 자연, 공공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학교는 문화센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육 시설의 열악함은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낡고 비좁으며 비인간적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가. 세계의 교육 선진국들은 학교를 도시의 자산으로 인식한다. 학교는 지역의 문화 거점이다. 공원과 도서관, 예술 공간과 연결되며, 주민과 함께 숨 쉬는 장소로 설계된다. 학교가 좋은 땅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특권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사회중심에 두겠다는 선언이며 교육을 투자로 보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좋은 자리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분명하게 올바른 철학을 학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대답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다. 학교는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투자이고 가장 멋진 투자이다. 공간을 같이 쓴다면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학교는 공공기관으로서 가장 많은 지역에 있다. 이 시설이 주민과 하나가 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문화시설, 회의실, 영화관, 수영장, 도서관, 농구장, 공연장이 학교와 같이 한다면 학생과 주민이 모두 성장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60년대 석탄이 이제 전기 난방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학교 부지와 시설은 가난하다. 오죽하면 학생에게 학교를 생각하라고 하면 감옥을 연상하겠는가. 중고등학교도 강당만이 아닌 도서관과 동아리실, 수영장, 운동시설, 휴게실, 회의실을 모두 모아놓은 학생회관 건물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역의 군수나 시장과 협의하여 주민시설을 학교 옆에 지어서 함께 이용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과감하고 놀라운 결단으로 학교 부지와 시설을 가장 좋은 곳으로 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은 나라의 가장 귀한 보배이고 미래이다. ‘학교를 어느 곳에 세우고 어떤 대우를 하느냐’라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교육 철학을 보여준다. 반성해야 할 일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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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8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갑골문이 들려주는 ‘道德’의 뿌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도덕(道德)’이라는 말을 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도덕 교과서를 배우고, 정치인들은 늘 도덕성을 강조하며, 신문 지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덕적 해이가 문제라고 적힌다. 하지만 가만히 물어보자. ‘도덕’이라는 말은 원래 어디서 온 것일까? 길(道)은 어디서 왔고, 덕(德)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고 행(行)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한자의 가장 원초적인 그림, 곧 갑골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갑골문은 상나라 사람들이 점을 치며 거북 껍데기와 짐승 뼈에 새겨 넣은 글자다. 그곳에 새겨진 낯선 형상들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추상적 개념이 사실은 매우 신체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 사거리에서 시작된 ‘행(行)’ ‘행(行)’의 갑골문을 보면 의외로 단순하다. 네 갈래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스케치다. 오늘날 우리가 ‘行’을 보면 길을 가는 사람, 행동하다, 행위라는 뜻을 떠올리지만, 본래의 출발점은 그냥 길 모양이었다.([그림 11] ‘行’ 참조)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그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가 덧붙었다. 그렇게 ‘길 → 걷다 → 행동하다’라는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행동’이란 본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저 길 위를 걷는 구체적인 몸짓이었다. □ 길이 철학이 되기까지 - ‘도(道)’ ‘도(道)’ 역시 갑골문에서 출발한다. ‘도’는 본래 ‘행(行)’과 거의 같은 그림, 즉 사거리 모양에 ‘사람이 걷는다’는 요소가 더해진 글자였다. 뜻은 단순하다. “사람이 다니는 길”.([그림 11] ‘道’ 참조) 그런데 후대에 이 ‘길’이라는 물리적 의미는 놀라운 확장을 겪는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 세상의 원칙, 마침내 노자에 이르러서는 우주 만물의 근본 법칙을 뜻하게 된다. ‘도’가 철학적·형이상학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자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애초에 들어 있던 뜻이 아니라, 후대 사상가들이 덧씌운 해석이었다. 처음의 ‘도’는 그저 네거리와 사람의 그림일 뿐이었다. □ 눈과 심장이 들어온 ‘덕(德)’ 그렇다면 ‘덕(德)’은 어떨까? 덕의 갑골문을 보면 ‘행(行)’, 즉 사거리의 모양에 눈(目)과 마음(心)이 덧붙는다. 앞을 똑바로 보며 걷는 마음, 곧 올곧게 나아가는 태도를 상징한 것이다.([그림 11] ‘德’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덕의 의미가 단순히 개인의 미덕이나 인격적 성품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서 재해석되었다는 점이다. 상(商) 왕조는 혈통을 통해 통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주(周) 왕조는 달랐다. 그들은 혈통 대신 ‘덕’을 앞세웠다. 군주가 덕을 지니면 하늘이 그에게 천명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정권은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는 식이었다. 공자 역시 이를 이어받았다. 그는 군자가 백성을 다스리려면 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통치 질서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장치였다. ‘덕’은 본디 사거리와 눈, 심장의 그림이었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천하를 다스리는 근거’로 둔갑한 셈이다. □ 교육에서 ‘도덕’이 변한 길 이처럼 ‘도·덕·행’의 의미가 바뀌어 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현대의 교육사도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식민지 시절 ‘수신(修身)’이라는 과목을 통해 충성스러운 신민을 길러내려 했다. 해방 후에는 과목명이 ‘국민윤리’로 바뀌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도덕’이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최근에는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 같은 이름이 병용되고 있다. 과목명이 바뀔 때마다,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도 달라졌다. 충성하는 신민, 국가에 헌신하는 국민, 도덕적인 시민, 혹은 합리적이고 사유할 줄 아는 주체. 도덕과 윤리라는 말은 단순한 학문적 개념이 아니라, 시대가 바라는 인간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도구였다. □ 오늘의 사례 - 여전한 정치적 도덕 담론 이러한 맥락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강의에서 인용된 사례 하나를 보자. 2024년 중국의 대학입시, 곧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은 한 학생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 글은 유려한 문장으로 가득했지만, 결국 핵심은 ‘개인은 덕을 지켜야 하고, 덕은 곧 국가와 민족을 위한 책임’이라는 메시지였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담론의 흔적이 있다. ‘덕’을 강조하는 순간, 그것은 언제든 국가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 된다. 3천 년 전 주 왕조가 그랬듯, 오늘의 국가들도 여전히 ‘덕’을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 갑골문이 전하는 비판의 눈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문자학적 기원을 되짚는 일이 오늘의 도덕 논쟁에도 비판적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행(行)’은 단순한 사거리 그림이었고, ‘도(道)’는 사람이 걷는 길이었으며, ‘덕(德)’은 눈과 심장이 더해진 올곧은 마음이었다. 그것이 정치와 사상의 필요에 따라 추상화되고, 정당화되고, 제도화된 것이다. 오늘날 도덕 교육이나 정치 담론 속의 ‘덕’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따질 때, 우리는 이 긴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만 논의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권력이 만든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 마무리 - 길(道)에서 덕(德)으로 결국 갑골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도덕은 원래 길 위의 몸짓에서 출발했다. 네거리를 걷는 사람, 앞을 똑바로 보는 눈, 곧은 마음. 그것이 문자로 새겨졌고, 후대에 철학과 정치가 그 위에 층층이 의미를 덧입혔다. 오늘의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도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각자의 길을 비추는 마음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도구인가? 갑골문의 옛 그림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도덕의 뿌리는 언제나 길 위의 사람과 마음에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도덕은 다시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실천의 언어가 될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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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7
  • [전재학의 교육칼럼] 2026년 고전의 가르침으로 시작하는 교육개혁의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희망을 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우리 교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시대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변화의 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만큼은 보수적 성향의 특성대로 아직도 과거의 형틀에 묶인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 새해 정초의 시점에 우리는 지혜의 보고(寶庫)인 고전(古典)의 지혜를 빌려 교육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고, 과감한 개혁의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일찍이 스승 공자는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有教無類)”고 했다. 빈부의 격차나 지위고하의 출신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정한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교육의 첫 원칙이라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 그렇게 3,000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키웠다. 2,5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지역·계층·학교에 따라 기회가 갈리고, 출발선의 격차가 결과의 격차를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다. 국가가 올해 반드시 세워야 할 교육개혁의 첫 축은 바로 공정한 출발선의 회복, 곧 공자가 말한 ‘차별 없는 배움’의 실천이어야 한다. 맹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 했다. 이는 단순 암기 중심의 지식 축적이나, 근거 없는 사유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지금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을 대신 정리하는 시대, ‘잘 외우는 학생’보다 ‘깊이 생각하고 새롭게 연결하는 학생’을 길러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탐구를 설계하고 경험을 조합할 수 있는 학습경험의 혁신, 교실을 넘어 지역·대학·기업과 연결되는 확장된 배움의 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순자는 “국가의 밝음은 교육을 바로 세움에서 비롯된다(國之明在於興學)”고 강조했다. 교육의 질은 곧 국가 경쟁력이며,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은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 행정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구조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사는 과도한 행정과 무분별한 민원의 파도 속에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교사를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습의 설계자’ 또는 ‘학습의 길잡이’로 재정립하고,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한다. 교실을 교사에게 돌려주지 않고는 어떤 교육개혁도 현장에서 실현될 수 없다. 《대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말하며, 모든 변화는 개인의 성찰에서 시작한다고 일깨운다. 교육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정권마다 바뀌는 정책, 이해관계의 충돌로 흔들리는 행정, 현장의 피로를 외면하는 결정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개혁이 불가능하다. 교육의 원리에 기반한 정책의 일관성, 공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는 협치 체계, 그리고 국가·교육청·학교 간의 명확한 책임 구조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교육정책은 정치에 예속되어 갖은 변덕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인재를 기르는 ‘도(道)’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제 병오년의 아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교육 과제를 던진다. 변화의 기운이 움트는 해라면, 교육도 그 변화의 문을 열어야 궁합이 맞을 것이다. 고전의 가르침이 일러주듯, 교육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며, 국가의 백 년 기틀을 다지는 작업이다. 한 세대가 미루면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짐이 더 무거워질 뿐이다. 올해만큼은 더 이상 말을 앞세우지 말고, 교육위기라 일컫는 이 시대에 보다 합당한 실천과 결단을 수행해야 할 때다. 병오년 정초에 다시 새기자. 교육개혁은 희망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희망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교육계의 지혜와 사회의 신뢰, 국가의 책임이 하나로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 떳떳한 미래를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눈앞에 펼쳐질 내일이 오늘의 많은 교육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한 해가 되도록 과감한 결단과 함께 그의 실행을 기대하고자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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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1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12월의 독립운동가 윤동주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12월 30일, 별을 헤던 어느 때, 별을 노래하는 시인 윤동주가 태어났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시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에서 일제의 만행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다. 그때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 적용해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윤동주는 일제의 탄압을 보고 역사적 무게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어 글을 쓰지 않다가, 1941년부터 그 압박감을 시로 써 내려가며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의 고뇌와 번민을 자신의 시에 담으며 일제와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윤동주는 일제에 대한 격렬한 반항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일제가 억압해 지우려고 했던 한민족의 아름다움까지도 글로 기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읽으며 아직까지도 감동을 느낀다. 1943년, 일제에 대한 반감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서일까. 그는 일본 유학 도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겨우 29년 동안 일제의 탄압 속에 내던져졌지만 그의 시는 이제 자유롭다. 윤동주는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독립운동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윤동주도 그만의 방법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일제에 저항했고 한민족의 문화를 계승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새해, 2026년에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읽는 것을 목표로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시들을 읽으며 윤동주의 삶을 따라가고 그때의 생각들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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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1
  • [오피니언리더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사람 중심 도시, 교육에서 답을 찾다"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이 머무르며, 배움이 일상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도시는 미래를 갖는다. 인구 구조 변화와 기술 환경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도시의 미래’를 다시 묻는 이유다. 김광회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은 “지금은 성장의 속도를 논할 때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며, “도시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그릇”이라고 강조한다. ■ "미래도시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김광회 이사장은 미래도시의 출발점으로 기술이나 행정이 아닌 교육을 꼽는다. 그는 “기술과 행정은 도구이지만 교육은 사람을 만든다”며, “사고 방식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도시는 첨단 시설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배움과 성장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 교육이 흔들리면 젊은 세대는 도시를 떠나고, 그 순간 도시는 빠르게 늙어간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 "사람 중심 도시로의 전환" 김 이사장이 강조하는 ‘사람 중심 도시’는 기존의 개발 중심 도시 정책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그동안 도시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크게 성장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면, 이제는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묻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 하나, 건물 하나를 설계하더라도 차량 흐름뿐 아니라 아이들의 통학, 어르신의 보행, 장애인의 접근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사람 중심 도시의 핵심이다. 이는 복지 차원을 넘어 도시의 품격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 “교육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국가의 책임” 김 이사장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한다. 모든 아이에게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며, 교육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강조했다. ■ AI 시대, 공교육의 역할 AI와 미래교육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김 이사장은 교육 격차 해소의 핵심 원칙으로 공공의 선제적 책임을 꼽았다. AI 교육이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공교육 안에서 충분히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은 잘못 쓰이면 격차를 키우지만, 제대로 설계하면 오히려 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산, 글로벌 교육특구의 가능성 김 이사장은 부산, 특히 해운대를 글로벌 교육특구의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이미 국제적 도시 인프라를 갖춘 해운대에 교육 콘텐츠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된다면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단순한 외국인 학교 유치가 아니라, 지역 학생과 세계가 함께 배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 "도시가 캠퍼스가 되는 미래" 김 이사장이 구상하는 글로벌 교육특구는 학교 단위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가 되는 모델이다. 학교, 대학, 연구기관, 산업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교육이 지역 발전 전략의 중심에 놓이는 구조다. 이는 부산만의 실험이 아니라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인재 구조를 분산시키는 국가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는 “부산의 성공은 대한민국 교육과 도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는 건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라고, 배움이 이어질 때 도시의 미래는 현실이 된다." 김광회 이사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교육이 바뀌면 도시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면 국가의 내일도 달라진다. ▣ 김광회 이사장 ◇ (사)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 ◇ 부산광역시 미래혁신정책 고문 ◇ 前부산광역시 미래혁신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경제 부시장 ◇ 前부산광역시 균형발전실장 ◇ 前부산광역시 행정관리국장 ◇ 부산대학교 예술학 박사 수료 ◇ 美 일리노이대학교 행정학 석사 ◇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해운대 초·중·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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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1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해돋이의 나라, ‘한(韓)’이라는 이름의 비밀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1897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했다. 구한말의 혼란한 정세 속에서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국가 명칭 이상의 상징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韓)’이라는 글자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왜 하필 우리 민족은 ‘한’이라는 이름에 자기 정체성을 담았을까. 이 물음은 단순히 한 글자의 뜻풀이를 넘어,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해왔는지, 또 이 땅의 역사가 어떤 빛을 받아왔는지를 되묻는 과정이 된다. 문자학과 문헌, 그리고 역사적 전승을 두루 살펴보면, ‘한(韓)’이라는 글자 속에 해돋이의 빛과 그것을 지키려는 무리의 서사가 고스란히 숨어 있다. □ 빛날 간(倝) - 해돋이의 광휘 먼저 ‘한(韓)’의 왼쪽 부분, 즉 ‘간(倝)’을 살펴보자. 이 글자는 단순히 ‘방해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자형을 거슬러 올라가면 풀 사이, 혹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도상에서 비롯한다. 전국시대 금문에서는 태양의 광휘가 강조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소전에서는 ‘풀 사이의 해돋이’ 형상으로 정리되었다. 해서에 이르러 ‘빛날 간’으로 정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침 조(朝)’와의 비교다. ‘조’가 단순히 “해가 떠오른다”는 출현의 순간을 그렸다면, ‘간’은 그 가운데서도 찬란히 퍼져나가는 빛 자체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 ‘간’은 동방의 아침, 곧 해가 솟아오르며 세상을 밝히는 그 순간의 광휘를 담아낸 글자다.([그림 10] 참조) □ 가죽 위(韋) - 둘러 지키는 힘 그렇다면 오른쪽의 ‘위(韋)’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은 ‘무두질한 가죽’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만, 원래는 ‘성곽을 둘러싼 발자국’, 즉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비롯했다. 성벽을 에워싸며 수호하는 형상에서 ‘둘러싸다’, ‘지키다’라는 뜻이 나왔고, 이후 ‘위(衛)’와 ‘위(圍)’ 같은 글자로 분화했다.([그림 10] 참조) 가죽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었다. 몸을 덮고 보호하며, 물건을 감싸 단단히 고정하는 성질 덕분에 ‘둘러 지킨다’는 상징성을 오래 간직했다. 흔히 쓰이는 고사 ‘위편삼절(韋編三絕)’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공자가 경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만큼 탐독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위’는 물질적 가죽임과 동시에 지식과 도를 지탱하는 상징으로도 기능한다. □ 韓 -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지키는 무리 이제 두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 ‘韓’을 보자. ‘간’이 뜻하는 해돋이의 빛, ‘위’가 지닌 둘러 지킴의 의미가 합쳐져 “해돋이의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 혹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라는 뜻이 된다. 문자 자체가 곧 동방, 해뜨는 곳, 광명의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대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속에는 ‘동방의 빛을 이어받은 나라, 스스로를 지켜내는 무리’라는 깊은 상징이 담겨 있었다.([그림 10] 참조) □ ‘우물 난간’ 해석의 한계 물론 『설문해자』에서는 ‘韓’을 달리 풀이한다. 韓을 “우물의 난간”으로 설명하며, 단순히 구조물의 일부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 해서에 이르기까지 글자의 도상 변천을 추적해보면, ‘해와 빛, 그리고 둘러 지킴’의 모티프가 일관되게 보인다. 우물 난간이라는 해석은 국호로서의 상징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소전 단계까지 남아 있던 ‘사람(人)’의 흔적이 해서에서 간략화되는 과정을 보면, 이 글자가 본디 사람들의 무리와 연관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韓은 사람, 빛, 보호의 의미망이 얽힌 글자라 할 수 있다.([그림 10] 참조) □ 문헌 속의 ‘한’ ‘한’이라는 명칭은 중국 고대 문헌에도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사기』나 『한서』에서는 ‘삼한’의 직접적인 기술이 희박하지만, 『위략』(3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기록이 늘어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시경』 속 ‘韓奕(한혁)’이라는 구절이다. 후대 왕가의 『잠부론』에서는 이를 인용하며 “한성(韓城)은 연나라와 인접한다”고 했다. 『수경주』(6세기)에 이르러서는 한성의 위치를 지금의 북경 남쪽, 유주 일대와 연결짓기도 한다. 즉, ‘한(韓)’이라는 명칭은 이미 기원전 9세기 시가 전승 속에 등장했고, 연 인근의 지명 전승과 함께 동북 지역 문화권과 맞닿아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비정에는 학계의 논란이 따른다. 한성의 위치를 북경권으로 볼지, 아니면 한반도와 연결할지는 여전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삼국시대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동방과 해돋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 ‘진(辰)’과 ‘한(韓)’의 울림 여기서 ‘진(辰)’과 ‘한(韓)’의 관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은 본래 동남, 곧 해돋이의 방위를 뜻하는 글자로, 후한·삼국시대 기록에서는 삼한의 전신으로서 ‘진국(辰國)’이 언급된다. 이때 ‘진’은 “해가 떠오르는 나라”라는 상징을 품고 있었다. ‘한’ 역시 어원 해석이 분분하지만, 공통적으로 태양성과 광명성을 강조한다. ‘하나(One)’, ‘하라’, ‘해’ 같은 소리와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다. 종합하면, ‘진’과 ‘한’ 모두 결국 동방과 해돋이를 지향하는 이름이 된다. 이는 아사달(해 뜨는 터), 배달·박달(밝은 땅) 같은 우리 고유의 명명 전통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 ‘대한’이라는 국호의 의미 이 모든 맥락을 종합해보면, 韓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그것은 해의 빛을 받는 나라를 둘러 지키는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시경』의 전승, 삼한·진국의 기록, 그리고 국호 ‘대한’으로의 계승까지, 韓은 동방의 해돋이와 수호의 상징을 이어온 이름이었다.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한 행정적 명칭을 넘어선 긴 역사의 기억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해가 떠오르는 나라, 빛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의 무리,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온 공동체의 서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 ‘한(韓)’에서 ‘대한민국’까지 - 이름에 담긴 서사 우리가 지금 부르는 국호 ‘대한민국’은 사실 긴 역사의 강줄기를 따라 흘러온 결과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고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대한제국과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주되면서 이어져 왔다. □ 삼한(三韓) - 동방 세 무리의 나라 먼저, ‘한’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무대는 삼한이다. 후한서 등 중국 정사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언급되는데, “본래 모두 진국에서 나왔다”라는 설명이 붙는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 살펴본 ‘진(辰)’과 ‘한(韓)’의 연결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해 돋는 나라’라는 동방적 상징이 삼한의 뿌리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삼한은 단순히 세 나라가 아니라, 동방의 여러 부족 공동체가 느슨하게 연합한 형태였다. 그 이름을 중국인들은 ‘삼한’이라 불렀고, 이는 곧 “세 무리의 해 돋는 나라”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한’은 여기서 공동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자리 잡는다. □ 고려와 조선 - ‘한’의 잠재된 기억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국호 자체에 ‘한’이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한’은 여전히 우리 민족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 있었다. 고려 후기의 문인들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같은 표현으로 ‘삼한’을 곧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삼한’은 여전히 문화적 자긍심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스스로를 ‘삼한의 후손’이라 부르며, ‘삼한의 문장’, ‘삼한의 학문’ 같은 표현을 즐겨 썼다. ‘조선’이라는 국호 아래에서조차, ‘한’은 여전히 뿌리 깊은 정체성의 이름이었다. □ 대한제국 - ‘한’이 국호로 부활하다 그러던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大韓)’이라 선포하면서 ‘한’은 다시 국호의 전면으로 돌아온다. 이는 단순한 이름의 변경이 아니었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지닌 봉건적 이미지를 벗고, 삼한의 전통을 잇는 새로운 국가임을 선포하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대한’이라는 이름은 곧 삼한의 계승자라는 자부심, 동방의 해 돋는 나라를 지켜온 무리라는 상징을 담았다. 당시 열강의 압박 속에서 국호 ‘대한’은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이자, 민족적 정체성의 불씨였다. □ 대한민국 - 빛을 잇는 이름 1919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 국호는 다시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었어도, 이름만큼은 잃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민국’이라는 두 글자가 붙으면서, ‘대한’은 더 이상 단지 삼한의 계승을 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대, 민주와 자치의 나라라는 지향을 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우리 모두의 삶과 함께 살아 있다. ‘한(韓)’이라는 글자가 품은 해돋이의 광휘와, 둘러 지키는 무리의 의미는 이제 국가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는 상징이 되었다. □ 이름에 깃든 빛 이렇게 ‘한’이라는 이름은 삼한에서 시작해 고려·조선을 거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해돋이의 나라, 스스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무리라는 상징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입었다.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이라 부를 때, 그 속에는 단순히 네 글자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과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반도의 동쪽 바다에서 여전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한(韓)’이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 맺으며 역사란 이름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종종 그 안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한다. ‘한(韓)’이라는 이름은 동방의 해돋이를 품은 글자이자, 우리 스스로를 지켜온 힘의 은유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해돋이의 빛을, 우리는 여전히 지켜내고 있는가. ‘한’이라는 이름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빛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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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1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Myeongdong Cathedral, Seoul’s Historic Catholic Landmark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The Myeongdong Cathedral(명동성당) is located in Seoul, South Korea, and stands as one of the most visited and populous churches in Korea. It is officially known as the Cathedral Church of the Virgin Mary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and is located at the heart of Myeongdong. As Korea’s first Catholic cathedral, it is a powerful symbol of Korean Catholicism and religious freedom. The site itself has been sacred since 1784, when Korea’s first Catholic community secretly gathered there during the Joseon Dynasty–a period when Christianity was banned. The official construction of the current cathedral began in 1894 under the supervision of French missionaries. King Gojong laid the first stone, and the building was completed on May 29, 1898. At the time, it was the largest building in Seoul and the first Gothic-style church in Korea. The Myeongdong Cathedral now serves as the birthplace of organized Korean Catholicism and a sanctuary for persecuted believers in the past. It is a symbol of religious tolerance and national identity. The cathedral itself houses the relics of the Korean martyrs, especially the martyrs of the 1866 persecution, making it a central pilgrimage site. Myeongdong Cathedral has been a center for social justice, democracy, and peace movements in Korea in the modern era. Rallies and vigils have been held there during times of significant political change, thereby underscoring the cathedral’s impact on modern Korean society. The site, of course, remains a safe, public place of worship for anyone to pray, protest, or reflect. During the winter season and Christmas, Myeongdong Cathedral has become a major Christmas destination, hosting special Christmas masses, midnight masses, carol concerts, and other public events. The cathedral and Myeongdong district together create a vibrant Christmas atmosphere. As a living monument of Korea’s religious history, Myeongdong Cathedral continues to inspire faith and national identity, especially during holidays such as Christmas. It is heavily recommended for all, believers and nonbelievers, to visit the beautiful site with warm clothes and open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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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9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전쟁과 올바른 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전쟁은 먼 이야기이고 생뚱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계에서 전쟁이 그칠 날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국지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전쟁은 무력을 써서 행하는 싸움이다. 전쟁은 살상을 초래하고 일상의 온전한 파괴를 감수한다. 오직 상대를 굴복하기 위한 가장 비참한 수단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기말시험이 끝나서인지 힉셍들이 현장체험으로 많이 왔다. 전쟁은 기념할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기념하기보다는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 승자의 역사에서 전쟁은 영웅을 기념하지만 우리는 살상과 잔악함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무엇보다 비인간적이다. 전쟁은 인간을 숫자로 환원한다. 전사자 수, 난민 규모 같은 통계 속에서 개인의 얼굴은 사라진다. 경쟁 교육 역시 그 얼굴을 닮고 있다. 성적, 등수, 진학률로 줄 세울 때 교육은 전쟁의 언어를 닮아간다. 경쟁과 승패, 효율과 성과만이 강조될 때 교육은 평화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거대한 범죄는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생각하지 않는 교육, 질문하지 않는 수업, 정답만 외우는 학습은 언제든 폭력의 토양이 될 수 있다. 과거 학교에서 교련을 배우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진정한 질문은 없었다.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순종만이 미덕이었다.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공감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이성, 갈등을 언어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화에 대한 교육은 모든 수업에 녹아있어야 한다. 국어 시간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이야기를 읽고 역사 시간에는 승자의 기록뿐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과학 시간에는 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함께 토론해야 한다. 세계가 종교, 민족, 영토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현재도 휴전상태에 있다. 전쟁은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올바른 교육은 ‘다른 선택은 없는가’를 계속 묻는다. 전쟁을 상상하기 이전부터 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실에서 사유와 양심, 명령보다 질문, 적대보다 공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교육은 무엇보다 인간다운 인간을 가르쳐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으면 언젠가 전쟁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다. 전쟁은 명령에 따르는 인간을 원한다. 올바른 교육은 질문하는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에서 ‘공존과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종주국이 되는 꿈. 그 꿈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교육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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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5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는 누가 만들었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한자’라는 이름의 기원, 그리고 잊힌 흔적들 우리는 흔히 문자를 ‘한자(漢字)’라고 부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쓰던 글자를 결코 ‘한자’라 부르지 않았다. ‘한(漢)’이라는 이름은 훗날 한나라가 들어선 뒤에야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시황이 소전으로 문자를 통일했을 때조차 그런 명칭은 없었다. ‘한자’라는 말이 굳어진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원나라 시기 몽골 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가나와 구분하려 ‘漢字’를 적극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1920년대 이후, 식민지 교육 과정에서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사람들은 문자를 뭐라고 불렀을까? 조선과 고려, 삼국, 더 멀리 은·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서계(書契)’, ‘문자(文字)’, 혹은 ‘진서(秦書)’라 불렀다. ‘한자’라는 이름은 없었다. □ ‘문(文)’ - 무늬에서 학문으로 ‘문(文)’은 흔히 ‘무늬’나 ‘문신’을 뜻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갑골문을 보면 원형은 조금 다르다. 가축 암컷의 발정 상태를 표현한 흔적과 닮았다. 발정 → 색 변화 → 무늬. 이 과정을 상징하면서 ‘문(文)’은 ‘표식’, ‘무늬’를 뜻했고, 나중에는 ‘글’과 ‘학문’으로 확장됐다. 글자가 처음부터 지적 상징이었던 게 아니라, 몸과 생활의 흔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그림 9] 참조) □ ‘자(字)’ - 집에서 아이를 낳다 ‘자’는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에 와서야 등장한다. 모양은 ‘집(宀)’과 ‘아이(子)’의 결합이다. 원래 뜻은 ‘집에서 아이를 낳다’였다. 여기서 파생해 ‘아이를 낳는다 → 문장을 낳는다 → 글자를 낳는다’로 발전했다. 즉 ‘글자’라는 개념 자체가 주나라와 진나라 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정착된 셈이다.([그림 9] 참조) □ ‘서(書)’ - 점괘를 적던 손길 ‘서’는 오늘날 ‘쓰다’, ‘책’을 뜻한다. 하지만 은나라 시절에는 아직 붓도, 벼루도 없었다. 갑골문 속 ‘서’는 손, 나뭇가지, 먹물, 입의 조합이다. 점을 치고 나온 괘를 나뭇가지나 먹물로 기록하는 행위를 표현했다. 즉 본래 의미는 ‘점괘를 기록하다’였다. 훗날 붓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글을 쓰다’라는 뜻을 덧입게 된 것이다. 글쓰기가 처음에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점술과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림 9] 참조) □ ‘계(契)’ - 약속의 흔적 ‘계’는 지금도 ‘계약’의 뜻으로 쓰인다. 갑골문을 보면 칼과 나무·뼈를 새긴 표시가 그려져 있다. 동이족은 약속을 맺을 때 나무나 뼈 조각을 쪼개 나누었는데, 두 조각이 맞아야 약속이 확인됐다. 여기서 ‘약속하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소전에 이르러 ‘팔 벌린 사람(大)’이 추가되면서, ‘성인 앞에서 맺는 약속’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주역의 “옛날에는 매듭으로 다스리다가 서계로 발전했다”는 구절도 이 맥락과 이어진다.([그림 9] 참조) □ 문자 속에 남은 동이의 기억 이 네 글자의 기원을 모아보면 공통점이 뚜렷하다. 모두 생활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발정기의 징표, 아이를 낳는 장면, 점괘를 기록하던 손길, 나무를 쪼개 나누던 약속. 그리고 이 문화적 배경은 은나라를 비롯한 동이계 전통과 깊게 연결돼 있다. 즉, 갑골문은 단순히 중국 한족의 창작물이 아니라, 동이계 문화권 속에서 태어나 공유된 문자 체계였다. □ 이름 하나가 바꾸는 역사 인식 오늘날 우리는 ‘한자’를 당연히 중국 문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명칭은 20세기 이후에야 굳어진 것이다. 만약 지금도 ‘서계’라고 불렀다면, 글자를 한족만의 유산으로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자란 생활의 언어에서 태어나 권력에 의해 통일되고, 후대의 이름 붙이기 속에서 재구성된다. ‘문·자·서·계’라는 글자들은 생활의 흔적이자 동이와 화하가 함께 남긴 기억이다. □ 마무리 문자 기원을 더듬어 보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과 정치, 민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한자=중국 문자’라는 등식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역사는 언제나 이름 붙이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 속 글자들은 묵묵히 다른 목소리를 전한다. 문자란 권력의 기록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롯된 흔적이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한층 넓어진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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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4
  • [전재학의 교육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요즘 한국의 교육 현실은 낙관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교사의 권위는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했으며, 학부모와 학교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한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아닌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서 있다. 지역·계층에 따른 학습 격차는 심화되고, 디지털 환경의 급변은 학생들의 집중과 정서를 흔들고 있다. 교실은 더 복잡해졌고, 교사는 갈수록 지쳐 간다. 이제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조차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먼저 떠오르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 말고 무엇이 희망을 가져다줄 것인가? 사회적 양극화, 기술 격차, 세대 간 단절, 빠른 변화 속의 불안 등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서 결국 해답은 사람의 역량, 태도, 감수성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량을 가장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영역이 바로 교육이다.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에 그럴수록 교육은 더 강한 희망이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2학년 한 학생은 스마트폰 중독과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잦은 문제 행동으로 교사와 친구들에게 부담이 되는 아이였다. 학교는 촘촘한 상담 지원과 기초 학습 코칭, 또래 멘토 프로그램을 함께 적용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성적이 아니라 ‘관계’였다.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조용한 관심을 계속 기울이자, 그 학생은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만은 않는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1년 뒤 그는 단번에 모범생이 되진 않았지만, 지각이 줄고 담임교사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고, 교내 드론 동아리에도 참여했다. 한 교사, 한 또래의 작은 손길이 한 아이의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는 교육이 변화시키는 것은 성적표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제도 개편과 규정 강화에만 눈을 돌린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이 희망이 되려면 제도의 효율이 아니라 관계와 의미의 회복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곳,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곳, 불확실한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을 내면의 기준을 세우는 곳, 이 모든 것은 교육이 아니면 대신할 수 없다. 더 나아가 AI 시대가 오히려 교육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술은 많은 것을 대신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스스로 사고하는 힘,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인간다움을 기르는 교육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기반이어야 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진 교육현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한 낭만이나 로망이 아니다. 지금의 혼란은 교육이 중요한 만큼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는 방증이며,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교육만이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교육은 오늘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은 교육이 완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비록 학교는 혼란스럽고 교사는 지치고 학생들은 불안해도,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을 붙들어야 한다. 교육을 포기하는 순간,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피력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희망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내일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신뢰하는 한, 현실은 흔들리더라도 미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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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구본희 반려詩選] 세 개의 방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세 개의 방 우리 집엔 아이들 방이 세 개 있다. 기숙사처럼 복도형 구조, 거실에서 보면 큰애는 맨 끝방, 둘째는 가운데, 막내는 가장 가까운 방ㅡ 보살핌과 작은 비밀을 고려한 배치다 한때는 왁자지껄하던 방들, 지금은 적막하다. 아이들 물건도 그대로인데, 금방이라도 "엄마, 배고파!" 하며 들어올 것 같은 현관문은 무료하게 졸고 있다. 어릴 땐 직장과 돌봄에 지쳐 빨리 커서 독립하길 바랐는데, 막상 하나둘 떠나고 자주 못 보게 되니 괜히 서운하다. 이젠 가족 단톡방에서나 말 섞고, 성장이 멈춘 가족사진을 보며, "자식도 품어야 자식이다"라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사무친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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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8
  • [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 자율성과 교육의 품격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과거에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는 교육법 75조 규정에 매여 있어야 했다. 1998년에 ‘교장의 명’이 아닌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내용으로 바뀌기 전까지의 일이다. 교육에서 창의성과 자율성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면 그 시작은 교사의 자율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율성이 없다면 전문성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 상황은 천태만상이지만 모두 같은 지침에 매여 있다. 자율성이 없는 교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진정으로 학생을 성장시키려면 교사를 믿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변화는 늘 더디고 제한적이었다. 교사가 교실의 주체로 설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로서 기초적인 자율권마저 행사할 수 없는 환경이 근원적인 걸림돌이다. 교육 혁신은 결국 교사의 손에서 완성되지만 정작 교사는 경직된 행정 체계, 촘촘한 평가 기준 속에 갇혀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는 만큼 할 수 없는’ 현실이 교사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오늘날 교실은 다양한 요구와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흥미는 천차만별이다. 디지털 기술은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 환경을 설계하고 학생의 경험을 조율하는 ‘교육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수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과도한 평가 기준과 행정 규정에 막히기 일쑤다. 교사는 교육과정과 평가와 복무에 대한 자율성은 없고 민원과 상담과 부가적 업무에만 자율성을 강요받고 있다. 교사의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학생의 특성과 지역의 환경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 방식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교실과 농촌의 교실, 학습 동기가 높은 학생이 많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 체제는 모든 학교가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업하도록 강요한다. 교사는 교실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이다. 교사에게 더 큰 판단권과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은 교사를 편하게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율성은 곧 책임을 의미한다. 교사가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전문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야 한다. 교사가 수업 연구와 연수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학생 수준과 교실 조건의 복잡한 과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체가 바로 교사다. 교육정책에서 ‘교사를 믿는가 통제하는가’는 중대한 핵심 요소이다. 교사를 믿지 않는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세계 주요 선진국이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과 전문적인 판단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교사의 자율성은 교사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품격은 통제와 규제 중심의 체제가 아닌 자율과 책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교육은 교실에서 일어나며 교실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교사의 자율성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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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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