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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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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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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100세 시대를 위한 내 몸 사용 설명서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오십견’은 시간이 약일까? 방치하면 굳어지는 어깨 어깨가 굳어 팔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극심한 통증. 흔히 '오십견'이라 불리는 이 질환의 정확한 의학적 명칭은 '유착성 관절낭염(Adhesive Capsulitis)' 또는 '동결견(Frozen Shoulder)'입니다. 이름 그대로 어깨 관절을 둘러싼 주머니(관절낭)에 염증이 생기고 두꺼워져, 관절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지는 질환입니다. 50대 전후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십견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PC의 장시간 사용,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해 30~40대에서도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오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 오십견에 대해 대중이 가진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특별한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병"이라는 인식입니다. 과거에는 이 질환을 스스로 치유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최신 임상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사실입니다. 미국 의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된 2026년 최신 리뷰 논문에서는 상당수의 오십견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수년이 지나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어깨 관절의 운동 범위가 영구적으로 제한되는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 염증기에는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이후 관절이 굳어지는 동결기를 거쳐 서서히 풀리는 해동기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됩니다. 따라서 '시간이 약'이라며 고통을 참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굳어진 관절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현대 과학이 밝혀낸 부드러운 침 치료의 힘 굳어진 어깨를 부드럽게 풀고 통증을 덜어내는 데 있어 침치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최근 여러 국제 연구를 통해 그 과학적 원리가 명확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첫째, 침과 일반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회복이 훨씬 빠릅니다. 2024년 발표된 통증 관리 전문 국제학술지의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두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들이 물리치료만 받은 환자들보다 어깨 통증이 더 많이 줄고 움직임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침 자극이 우리 몸의 천연 진통 물질인 엔돌핀 분비를 돕고, 환부의 혈류를 늘려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돕기 때문입니다. 둘째, 전침이나 약침 같은 다양한 한의 기법은 어깨 속 굳은 조직을 직접적으로 풀어줍니다. 2024년과 2025년의 최신 연구들은 전기 자극을 더한 전침이나 정제된 한약 성분을 주입하는 약침이 단순한 일시적 통증 완화를 넘어 어깨 관절 주변의 염증 물질을 억제하고, 유착되어 엉겨 붙은 근막 조직을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집에서 실천하는 굳은 어깨 회복 운동법 굳어진 관절의 운동 범위를 안전하게 회복하고 2차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스트레칭 프로그램이 필수적입니다.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자가 운동법을 소개합니다. ▶ 전자 운동: 테이블이나 카운터에 건강한 쪽 손을 짚고 상체를 살짝 숙인 뒤, 아픈 팔을 아래로 편안하게 늘어뜨립니다. 시계추처럼 팔을 앞뒤, 좌우, 그리고 원형으로 부드럽게 흔들어줍니다. ▶ 막대를 이용한 수동적 내회전: 등 뒤로 가벼운 막대(예: 자)를 잡고, 건강한 손으로 막대의 반대쪽 끝을 가볍게 쥡니다. 건강한 팔로 막대를 가로 방향으로 당겨, 아픈 쪽 어깨가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동적으로 당겨지도록 30초간 유지한 뒤 30초간 휴식합니다. ○ 오십견 자가 관리 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 오십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세심한 관리는 병원 치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스트레칭을 시작하기 전에는 걷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 같은 부담 없는 활동으로 5~10분간 체온을 높여 몸을 웜업해주어야 근육과 인대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엄격히 지켜야 할 원칙은 '운동 중 결코 통증을 억지로 참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팽팽한 느낌이 드는 부드러운 범위 내에서만 관절을 움직여야 합니다. 또한 환자의 병기(초기 극심한 염증기인지, 이후 굳어지는 동결기인지)와 환자가 가진 동반 기저질환에 따라 관리 및 운동 방법이 철저히 개별화되어야 합니다. 극심한 염증기에 무리한 운동을 강행하면 오히려 관절낭의 염증이 덧나게 됩니다. 따라서 막연한 자가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정확한 상태 평가를 바탕으로 안전한 치료와 맞춤형 재활 운동을 병행하여 튼튼한 어깨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Achilova F, Daher M, Nassar JE, Daniels AH, Abboud JA. Frozen shoulder: Diagnosis and treatment of adhesive capsulitis. Am J Med. 2026 Jan 23:S0002-9343(26)00055-0. doi: 10.1016/j.amjmed.2026.01.021. 2. Xu B, Zhang L, Zhao X, Feng S, Li J, Xu Y. Efficacy of Combining Acupuncture and Physical Therapy for the Management of Patients With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Pain Manag Nurs. 2024 Dec;25(6):596-605. doi: 10.1016/j.pmn.2024.06.009. 3. Kim D, Park KS, Kim SA, Seo JY, Cho HW, Lee YJ, Yang C, Ha IH, Han CH. Pharmacopuncture therapy for adhesive capsulitis: A pragmatic randomized controlled pilot study. Integr Med Res. 2024 Sep;13(3):101065. doi: 10.1016/j.imr.2024.101065. 4. Ji R, Huang W, Weng M, Zhang M.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acupuncture-related therapies for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Front Med (Lausanne). 2025 Nov 26;12:1673193. doi: 10.3389/fmed.2025.1673193.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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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3월의 동래는 단순히 봄을 맞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19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며, 도시의 정체성과 책임을 동시에 환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동래구가 주관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기념행사라는 틀을 넘어, 지역 역사자산을 교육과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행사는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시작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헌화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어 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이어졌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세대 간의 기억 계승이라는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래구가 역사적 동선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 일대를 잇는 만세 행렬은 1919년 당시 실제 만세운동이 전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현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게 함으로써 체험형 역사교육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3·1운동에 응답한 지역이다. 장터와 골목, 동헌과 읍성 일대는 민족의 자존을 외치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상인과 학생, 이름 없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래구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도시 브랜드의 일부로 재해석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행사에서는 동래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지역 인물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구체적 서사로 전달했다는 점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조명한 점 또한 교육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수동식 태극기 인쇄 체험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먹 냄새가 번지는 인쇄 체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나요?” 이 질문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는 순간 살아난다. 동래구가 마련한 이 재현의 장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3·1운동의 본질은 ‘만세’라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결단,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았던 책임에 있다. 오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그 장면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래구의 이번 재현행사는 지역 역사자산을 문화·교육 콘텐츠로 확장한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참여 확대, 역사 공간의 상시 해설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이어진다면 동래의 3·1정신은 도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단단하다. 기억을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는 품격이 있다.동래의 봄바람 속에서 울린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동래가 어떤 도시로 서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기념을 넘어 교육으로, 교육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동래의 3·1정신은 도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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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금 우리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 구조가 새로운 방향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교육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기업인들도 다 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의 철학을 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포착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타난 철학을 훈고하거나 끌어들여 사용해 보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닐까? 선진 사회, 선진 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일이 아닐까? 이쯤에서 1880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생각, 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사회나 모두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를 넘어서 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야 딱 시선의 높이만큼 산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는 치명적이다. 시선이 높아야 마음이 크고, 시선이 낮으면, 마음도 작다. 작은 마음은 쉽게 차고, 큰마음은 어지간한 양으로도 잘 차지 않는다. 쉬이 차는 작은 마음은 쉽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자만과 교만이 깃든다. ‘마음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래서 老子도 말한다. ‘大器免成’,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 큰 그릇이 되는 건 끝이 있는 '완료형'이 아닌 계속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만족함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큰 가르침이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근대 유럽의 정치구조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 평화조약)부터 문명은 ‘국가’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는데, 1800년대 중반부터 ‘근대’의 큰 흐름이 동아시아에 닥칠 때,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처해있어, ‘근대’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습·수용할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서 할 때와 주체적으로 알아서 할 때 사이의 실력에 큰 차이가 나듯이, 국가나 문명의 형성과 학습도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에 따라 큰 실력 차이를 내게 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앞선 생각으로 주도권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갖는 분기점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입인들만 앞장 서서 실천을 한다. 왜, 실천을 하느냐? 안 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교육자들, 관료들은 앞장서서 실천을 안 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한 공동체의 승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동시에 생각하는 예민함이 있다. 인문학은 생존과 직결되며,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서는 예민함의 필요함을 일러주므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전방에 보초를 서는 척후병처럼, 모든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경계 태세, 즉 조짐을 찾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불안하고 모호하다. 불안과 모호함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결국, 모호함과 두려움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용기이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함량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즉 일류 국가에서 인류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메시지’, ‘비전’, ‘생각들’을 받아들여서 그 사람들 대신에 잘 수행해 왔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을 조금 더 앞서가는 일이다. 그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계속 꿈꿔보는 일이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길은 무엇일까? 대답하는 인재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특히 교육은 모든 정치 구조, 인재의 틀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한국 사회에서 요체는 뭐냐? 국민 각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갖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역할’을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몸에 배게 하는 훈련장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교육, 행정을 가지고 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 구조며, 교육 구조, 교육 정책이다. 다 우리가 만든 것이다. 시민이 국가 운영의 방관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교육자들을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을 만든 근본이 우리 국민이라는 역사적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과 실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갖추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일이고, 우리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것을 자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연수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는 일로써 자신의 역할이 끝나서는 어렵다. 이 역사는 우리의 눈물과 피와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앞으로도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曾子 선생의 ‘吾日三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曾子 선생의 성찰은? 인간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 경제, 교육의 구조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발휘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이 말도 曾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선조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살림살이’, 즉 ‘三一哲學’에 이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주로 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존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변화를 만들며 산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존재다. 인간이 만든 세계, 곧 문명, 인간이 안 만든 세계,자연, 두 무대에서 사는 인간은 보이던 것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것으로 이동해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존재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떻게 변화를 이루는가? 관념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을 통해서다. 질문하고 관념을 깨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행복과 자유 또한 질문의 대상이지, 행복과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어야, 자유나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질문하며 추상의 세상을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묻는 성찰의 시간이 현재의 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왜? 인간이 변하고 달라지는가?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해야 될 내용과 방법도 달라진다. 그 해결하는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人文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하나둘, 세어보는 삶, ‘自快’하는 삶의 길이지 않을까?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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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마트팜으로 도약하는 중장년, 제2의 재배를 꿈꾸다
[교육연합신문=이고은 기고]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 중장년에게 은퇴는 또 하나의 선택지 앞에 서는 전환점이다. 문제는 선택의 폭이다. 제조업 구조조정, 기술 변화, 산업 전환 속에서 중장년이 다시 설 수 있는 현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농업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제2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스마트팜은 더 이상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농업이 아니다. 센서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PLC와 제어 시스템으로 온·습도와 생육 조건을 관리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산업이다. 이는 기계, 전기, 설비, 자동화 분야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중장년에게 결코 낯선 영역이 아니다. 공장에서 설비를 다뤘던 경험은 이제 작물을 키우는 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기반 스마트팜 운용·관리 교육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당 과정은 단순한 귀농 교육이 아니라, 스마트팜 자동화 이론, PLC 제어 실습, 센서·계측, 환경제어, 설비 보전, 빅데이터, 드론 활용까지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충남캠퍼스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스마트팜 중장년 과정은 ‘배워서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쓰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마트팜을 단독 산업이 아닌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융합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팜 설비는 결국 기계와 전기, 제어, 유지보수의 집합체다. 센서 고장 진단, 제어 로직 수정, 설비 트러블 대응 능력은 중장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재배 인력을 넘어, 스마트팜을 ‘운영·관리’하는 전문 인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 산업 구조 측면에서도 스마트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충청남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 조성과 디지털 농업 확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설비를 운영하고 관리할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스마트팜은 지어졌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사람은 부족한 현실이다. 중장년 인력이 이 공백을 채운다면, 개인의 재취업 문제와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제2의 재배’란 단지 작물을 다시 심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경험을 새로운 산업에 옮겨 심는 일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손은 이제 스마트팜 설비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읽던 눈은 작물의 생육 상태를 분석한다. 과거의 경력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토양 위에서 다시 자라난다.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묻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동시에 답을 제시한다. “당신의 경험은 아직 쓸모가 있다.” 기술로 재배되는 두 번째 인생,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선택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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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보다 먼저 죽이는 것, 연기다
- [교육연합신문=안오룡 기고]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이 아니라 연기다. 그리고 그 속에 섞인 유독가스다. 우리는 여전히 화재를 ‘불과의 싸움’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일산화탄소와 시안화수소와 같은 유독가스는 단 몇 분 만에 사람의 의식을 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불길을 피했더라도 숨을 쉴 수 없다면 탈출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불보다 먼저 ‘연기’에 갇힌다는 사실이다. 현대 건축물은 플라스틱과 합성소재, 각종 내장재로 채워져 있다. 이들이 연소되면서 발생하는 독성가스는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치명적이다. 불길이 번지기 전에 이미 공간은 보이지 않는 독으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쓰러진다. 문제는 명확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건물마다 소화기는 있다. 경보기는 울린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순간, 개인이 숨을 지킬 수 있는 장비는 없다. 불을 끄기 위한 준비는 되어 있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는 빠져 있는 것이다. 소화기와 감지기로는 불을 알릴 수는 있어도,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는 없다. ■ “5분이면 끝난다”…그리고 15분 화재에서 생존을 좌우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유독가스에 노출된 후 약 5분, 이미 치명적인 상황이 시작된다. 그리고 남은 시간, 15분이 ‘골든타임’을 버틸 수 있느냐가 생사를 가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15분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대피 경로를 찾기까지 필요한 그 시간은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왜 우리는 ‘살아남을 준비’를 하지 않는가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기술은 존재한다. 문제는 정책과 인식이다. 화재 대응은 여전히 ‘진압’ 중심에 머물러 있고, ‘생존’은 개인의 선택으로 방치돼 있다. 현대의 화재는 과거와 다르다. 건물은 높아졌고, 구조는 복잡해졌으며, 내부는 더 많은 유독물질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안전 기준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 소화기와 감지기로는 불을 알릴 수는 있어도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는 없다. ■ 현장의 조언 “연기를 피하려 하지 말고, 버틸 준비를 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기를 피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연기를 완전히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이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단 10분에서 15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은 크게 달라진다. 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개인 보호장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고 싶다. ■ 생명구조 마스크, 패러다임을 바꾸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불을 끄는 것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생명구조 마스크는 그 전환의 출발점이다. 산소를 공급하고 유독가스를 차단해 최소한의 생존 시간을 확보하는 장비. 핵심은 단순하다.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 15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고, 한 가족의 미래다. ■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한다 화재 대응을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이는 분명히 공공의 영역이며, 국가의 책무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중이용시설에 개인 생존 보호장비 비치 기준 의무화, 기존 소방 기준을 넘어선 호흡 보호 중심 안전 체계 전환, 어린이·노약자 등 취약계층 대상 공공 지원 확대,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시범 도입 및 단계적 보급 정책 추진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 “15분을 준비하는 사회”가 생명을 지킨다 재난은 막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꿀 수 있다. 그 차이는 단 15분이다. 그 15분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놓칠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불이 아니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해답도 분명하다. 사람이 숨 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준비, 단 15분을 버틸 수 있는 사회다. ▣ 안오룡 ◇ (주)세이빙스토리 회장 ◇ (주)유월무역 회장 ◇ (주)지앤지 대표이사 ◇ (주)콜 사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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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불보다 먼저 죽이는 것,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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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言)의 질서와 신뢰의 회복, 정명(正名)에서!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선거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서게 됩니다. 선거는 본래 국민의 신뢰를 확인하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신성스러운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선거의 풍경은 어떠한가요? 퇴직한 교육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말의 질서’는 처참히 무너져 내렸고, 그 자리는 혐오와 선동, 무책임한 공약들이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것은 너무 나간 걱정인가요? 공자는 일찍이 정치를 묻는 제자인 자로에게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는 것’을 정치의 첫걸음으로 꼽았습니다.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이 평범한 진리가 무너질 때 사회는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면, 개념이나 명칭이 공유되고, 소통되는 데 논리적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치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질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공자는 논리적 연쇄를 통해 이를 경고했습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名不正 則言不順),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국가의 대사가 성취되지 않으며(言不順 則事不成), 결국 예악과 법치라는 사회적 신뢰 시스템이 통째로 흔들려 백성들이 손발 둘 곳조차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악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 질서, 그다음에 이데올로기,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질서, 사회 규칙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말의 타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정도는 그냥 우습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말이라는 우리말은 ‘크다.’는 뜻과 함께 ‘끝’이라는 뜻으로 한 사람을 크게 성장시킬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끝낼 수도 있다.’을 정도로 타인을 해칠 수도, 혹은 스스로를 경계해야 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선거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언어들은 ‘설득’이 아닌 ‘선동’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확실치 않은 지식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을 경계하며 “모르면 입을 다물라(多聞闕疑).”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지식인과 공직자가 가져야 할 무거운 언어적 책임감을 뜻합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말의 무질서’가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거판을 보며 “이기기 위해서라면 거짓말과 비방도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학습할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이를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는 국가 경영 전략으로까지 언급했습니다. 군대(兵)와 식량(食)이 풍족해도 국민의 신뢰(信)가 없으면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는 말로, 신뢰 시스템의 붕괴는 곧 공동체의 종말까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신뢰를 복원할 것인가? 그 해답은 ‘수치심(羞恥心)’의 회복에 있습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정의(義)의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명분에 어긋났을 때, 뜨거운 부끄러움을 느끼는 ‘염치’가 살아날 때, 비로소 말의 질서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행기유치(行己有恥)”, 즉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선비 정신이 정치인과 시민 모두에게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본래 ‘말’로 이루어지는 제도라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진실한가? 선한가? 유용한가?’라는 세 가지 체에 걸러야 한다고 했고, 부처는 바른말(正語)을 수행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신뢰받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레의 연결고리(輗, 軏)와 같은 신의를 회복해야 합니다. 연결고리가 없는 수레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듯, 신의 없는 사회는 결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選擧라는 시스템을 넘어, 우리 삶의 근간인 언어의 품격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내뱉은 말이 행실이 되고, 그 행실이 다시 신뢰라는 이름의 열매를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백성이 손발을 편안히 둘 수 있는’ 도(道)가 있는 사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가 교육에 미치는 선한 영향과 악한 영향은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입니다. 학생들이 정책 토론과 투표 과정을 보며 주권자로서의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거 과정에서의 흑색선전, 편 가르기, 언어 폭력은 교육적으로 치명적입니다. “아이들이 목적을 위해 수단(거짓말, 비방)을 정당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학습하게 됩니다. 선거의 교육적 선한 영향력을 제고하는 방법으로 공자가 강조한 위기지학(爲己之學, 나를 닦는 공부)의 태도가 선거 문화에 도입되어야 합니다. 후보자는 자신의 정책이 교육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성찰해야 하며, 유권자는 ‘누가 더 도덕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선거는 신뢰 시스템과 민의의 반영입니다. 국민들의 생각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방법을 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하여 정치의 근본을 ‘신뢰’라고 했습니다. 국민의 생각이 반영되려면 ‘정명(正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자체장은 지자체 장답게, 시민은 시민답게,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통할 때 신뢰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공자가 말한 ‘다문궐의(多聞闕疑)’를 의미합니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부분은 빼놓고 말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라, ‘확실치 않은 지식으로 남을 현혹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말라.’는 지식인의 엄격한 책임감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의미는, 즉, 말은 칼처럼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말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은 단어가 가진 본래의 정의가 왜곡되고(명칭의 타락), 말에 책임(행동)이 따르지 않는 언행 불일치의 상태가 고착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선거가 말의 질서에 미치는 영향의 언어는 ‘설득’이 아닌 ‘선동’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표를 얻기 위한 자극적인 언어는 말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상대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여 사회적 담론의 질을 저하시킵니다. 信이라는 글자는 ‘사람(人)’과 ‘말(言)’이 합쳐진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곧 그 사람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권부터 공약을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일상에서 정직함이 손해 보지 않는 사회적 보상 체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말의 중요성을 언급한 성인인 소크라테스는 “말하기 전에 세 가지 체(진실, 선함, 유용함)에 걸러라.”고 했습니다. 부처는 정어(正語)를 강조하며,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험한 말,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수행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논리에 맞지 않고, 말이 논리에 맞지 않으면 사회적 과업(事)이 실패합니다. 예악불흥(禮樂不興), 일이 안 풀리면 문화적 질서(예악)가 무너지고, 결국 공정한 법 집행(형벌)이 불가능해져 백성들이 불안에 떨게 됩니다. 공자는 군대(兵)나 먹을 것(食)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信)라고 했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신의’가 없으면 사회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비(士)란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입니다. 국가가 도가 없을 때 녹봉(穀)만 탐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마음이 정치의 시작이라고도 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성현들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를 성찰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시인하는 것을 ‘용기’로 대접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양심이라는 거울 앞에 서는 신독(愼獨)의 자세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앞선 나라는 신뢰로부터 나옵니다. 진(秦)나라 효공 때 재상 상앙은 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시장 거리에 세우고 누가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면 그 사람에게 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백성이 속는 셈치고 나무를 옮기자, 약속대로 거금을 주었습니다. 이는 국민과 맺은 신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나라 백성들은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도 신용을 잃어버리면 설 땅이 없습니다. 신용은 인간관계의 기본 질서요 사회 존립의 근본 원리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과 친해질 수도, 동업할 수도 없으며, 우정도 협동도 사랑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용은 인간의 으뜸가는 도덕적 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야 정치권 모두 ‘민생’은 뒷전이고 싸움질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생을 반드시 살리겠다.”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겠다.” 등 그 숱한 약속들은 말 잔치로 끝난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도 정치도 가장 큰 자산은 신뢰입니다. 정치인들은 ‘무신불립’을 각인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도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데 무엇이 먼저일까를 사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양의 격언에도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적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또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금년 한여름에도 신뢰라는 명제를 한번 깊게 되새겨 보면서 지내봄이 어떨까 하는 화두를 던져봅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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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말(言)의 질서와 신뢰의 회복, 정명(正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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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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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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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가 일하는 사회, 인간 역할의 재정의
- [교육연합신문=오양환 기고] “그분이 아주 뛰어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IT 혁신을 맡겨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너무 우수해서 오히려 ‘위험’합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이 기묘한 대화는 어느 기업의 채용 자문 현장에서 실제로 오간 것이다. 최고의 찬사가 되어야 할 ‘우수함’이 어째서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뜻일까. 이 역설적인 경고는 AI가 일의 심장부로 침투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서늘한 미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재 한 명이 조직을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단 한 명의 초우수 인재와 AI의 결합이 기존의 조직 체계를 통째로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대다. 어느 한 중견기업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증명한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한 명의 인재가 투입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그 기업은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정립해온 ‘고용’과 ‘협업’이라는 근간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10명의 업무를 대체한 단 하나의 지능 그 인재는 부임 직후 회사의 모든 사무 공정을 현미경처럼 분석했다. 그리고 AI 기반의 가상 직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10명이 넘던 관리·사무직 부서는 순식간에 해체되었고,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임원만 남게 되었다. 전화 응대는 남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상황에 맞게 톤을 조절하는 AI가 맡았고, 복잡한 문서 작성과 보고, 고객 소통은 실시간으로 처리되었다. 심지어 정기 세무조사를 위해 방문한 세무 공무원들조차 AI의 완벽한 응대에 압도당했다. 수만 페이지의 회계 자료를 단 몇 초 만에 분석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AI 앞에서 인간의 추궁은 무력했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없다. 기업은 효율화를 선택할 자유가 있고, AI 활용을 규제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은 사무직에 그치지 않았다. AI가 공정 설계와 로봇 제어를 직접 결합하면서 블루칼라 업무까지 빠르게 자동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불과 6개월 만에 ‘사장 혼자만 남은 회사’가 등장했다. 인간 직원이 사라진 자리를 무한한 지능과 지치지 않는 기계가 채운 것이다. ‘AI 자기 복제’가 가져올 인재의 대홍수 이 이야기의 결말은 더욱 큰 충격을 안긴다. 그 초우수 인재는 결국 자신의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학습한 이른바 ‘AI 자기 복제본’을 만들어냈다. 이제 기업은 사람을 새로 채용하고 교육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는다. 검증된 인재의 사고 능력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 인재’를 도입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고 빠르며, 확장성 면에서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명의 천재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 천재를 본뜬 수십, 수백 개의 가상 지능이 동시에 일하는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이 사회 속에서 가져왔던 ‘희소성’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다. 기술의 속도가 아닌, ‘사회적 준비’의 속도를 고민할 때 이 사례는 단순히 어느 효율적인 기업의 성공담이 아니다. AI가 가져올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 뒤에 숨겨진 ‘일자리 실종’과 ‘구조적 소외’를 예고하는 경고등이다. 국가 입장에서는 기업 이익이 늘어 세수가 확보될지 모르나, 그 안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들의 존재는 거대한 사회적 숙제로 남게된다. 이제 우리는 AI를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로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AI를 도구로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인간을 재정립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이 준비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비판적 사고’, ‘윤리적 판단’, 그리고 ‘현장과의 공감 능력’을 갖춘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AI 사회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술의 속도에 발맞춰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재설계하는 사회적 합의의 속도다. 미래의 공장은 AI와 인간이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성세대와 리더들의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 ▣ 오양환 ◇ (유)코아시스템 CEO ◇ 경남대학교 AI·SW융합전문대학원 원우회장 ◇ (사)한국인공지능기술산업협회 부산경남 지회장 ◇ 前인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前창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 ◇ 일본 동경 Coredump SW사 근무 ◇ 창녕군 남지초·중학교·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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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가 일하는 사회, 인간 역할의 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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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셀프 심사’가 만든 국가대표…공정성은 어디에 있었나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국가대표 선발 과정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정성과 투명성이 최우선으로 담보되어야 하는 공적 절차다. 특히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수중핀수영협회의 이번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 과정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스스로 허물었다. 심사를 맡은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각각 감독과 코치에 지원했고, 심사 과정에도 참여한 뒤 최종 선임됐다. 누가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셀프 심사’ 구조다. 이해관계자는 심사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공공 영역의 최소 기준이다. 이는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공정성을 지탱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 선이 무너진 순간,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란이 커지자 협회는 선발을 무효화하고 재공모에 나섰다. 그러나 그 사이 발생한 행정 혼선과 시간 손실은 오롯이 선수단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대회를 앞둔 국가대표에게 지도자 공백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에 직결되는 심각한 변수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해충돌 관리 실패, 독립성 없는 심사 구조, 불투명한 기준, 그리고 사전 검증 부재까지.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더욱이 여성 선수 비중이 상당한 대표팀에서 여성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선발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대 흐름과도 어긋난다. 적합 판정을 받은 후보가 있음에도 관례를 이유로 배제됐다면, 이는 공정성 이전에 구조적 문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선발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도 존중받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이해충돌 방지 장치의 실질적 작동,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 심사 구조, 그리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국가대표는 특정인의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자리다. 그 자리가 ‘누가 뽑았는지’가 아니라 ‘왜 뽑혔는지’로 설명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는 회복된다. 이번 논란이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체육계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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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셀프 심사’가 만든 국가대표…공정성은 어디에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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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미래!’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에서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과거의 경험이 남긴 '기억'이라는 강력한 데이터베이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공의 기억과 실패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우리 뇌의 회로에 관여하여 개인의 미래의 행동 방향을 결정짓게 됩니다. 성공을 경험할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을 분출합니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하여 "이 행동은 유익하니 다시 반복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기효능감'을 만들어 냅니다. "위대한 일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자기효능감은 타고나는 기질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해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반면, 실패의 기억은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실패의 기억은 생존에 위협적인 신호로 인식되어 성공보다 훨씬 선명하게 저장되는데, 이를 잘못 관리하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전두엽을 깨우는 것은 교육자의 따뜻한 시선과 일관된 지지입니다. 교육자의 태도는 아이가 실패의 기억에 함몰될지, 아니면 그 실패를 딛고 성장의 디딤돌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선물하는 것은 거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어른들의 단단한 지지와 믿음입니다. 실패의 기억을 '나의 무능력'이 아닌 '수정해야 하는,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 경험적 데이터'로 해석할 때, 뇌는 비로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마인드셋'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실패의 기억을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의지'로 연결한 인물은 《논어(論語)》와 《회남자(淮南子)》 등에 등장하는 위나라의 현자 거백옥입니다. 그의 삶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한 인간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거백옥은 쉰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난 49년 동안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이 불편한 기억들을 회피하는 대신, 매일 아침 "어제의 나의 실패를 직시하는 것"에서 변화의 의지를 끌어냈습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논어》 〈헌문(憲問)〉편에서 공자와 거백옥의 사자가 나누는 대화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蘧伯玉 使人於孔子 (거백옥 사인어공자)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자를 보내니, 孔子 與之坐而問焉 曰 (공자 여지좌이문언 왈) 공자가 그와 더불어 앉아 묻기를, "夫子 何爲?" (부자 하위?) "선생(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對曰 "夫子 欲寡其過而未能也" (대왈 부자 욕과기과이미능야) 사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허물을 줄이고자 하시나, 아직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십니다.“ 거백옥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의 뇌 속에 저장된 '실패'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억들을 현재의 자신을 담금질하는 정(釘)으로 삼아, 매일같이 스스로를 새롭게 빚어냈습니다. 거백옥의 ‘직시’가 주는 메시지는 메타인지의 용기입니다. 공자와 거백옥의 대화는 ‘완성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 첫째는 불편함의 수용입니다. 자신의 49년 치 실패를 낱낱이 꺼내 놓는 것은 뇌의 방어기제를 거스르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직시’만이 고도의 메타인지를 활성화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혁신입니다. “허물을 줄이고자 하나 능히 하지 못한다.”는 고백은,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정질(담금질)하는 태도가 진정한 현자의 조건임을 말해줍니다. 현대의 스티브 잡스 역시 거백옥과 닮은 꼴의 궤적을 보입니다. 1985년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은 그에게 치욕적인 실패의 기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억에 매몰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독단적이었던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잡스는 훗날 이 시기를 통해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가벼움'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잡스의 사례는 ‘실패를 통한 유연성의 획득’을 시사합니다. 그 첫째는 중압감에서 가벼움으로입니다. 성공의 신화에 갇혀 있던 자아를 버리고, 실패라는 치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 치환입니다. 둘째는 경직된 회로의 파괴입니다. 과거의 독단적 성공 기억이 만든 경직된 사고 회로를 실패라는 충격요법으로 끊어내고, 더 창의적이고 수용적인 리더로 거듭나는 ‘자기 혁신’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이는 거백옥이 쉰 살에 과거의 허물을 씻어내고자 했던 노력과 궤를 같이합니다. 실패의 기억을 통해 기존의 경직된 사고 회로를 끊어내고,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리더로 거듭난 것입니다. 거백옥과 공자가 지향한 삶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입니다. 남들의 칭송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입니다. “지나온 세월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역설적으로 “앞으로의 시간은 다를 수 있다.”는 강력한 낙관론에서 비롯됩니다. 결국 미래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토대로 오늘 우리가 내리는 해석과 실천의 총합입니다. 거백옥이 매일 자신의 허물을 줄여가며 스스로를 혁신했듯이, 우리 역시 실패의 기억을 '나를 무너뜨리는 상처'가 아닌 '나를 완성하는 동력'으로 삼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육자와 부모는 아이의 편도체를 안정시키는 ‘따뜻한 지지대’가 되어야 하며, 아이의 실패를 ‘수정 가능한 데이터’로 인식하게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주시는 선생님들의 그 ‘따뜻한 시선’이 아이들의 편도체를 잠재우고 위대한 전두엽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잊지 마시길 응원합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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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미래!’ 스스로의 허물을 찾는 엄격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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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부경(天符經) 철학으로 본 삶과 배움의 가도(街道)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태양과 만물 공생의 기저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빛(태양)이라고 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태양 에너지를 근간으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살이(삶) 근거의 99.86%가 태양에 의지한다고 합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 광선을 유기 화합물로 전환하며, 동물과 인간은 그 에너지를 섭취함으로써 삶을 영위합니다. 해(태양)는 차별 없이 모든 만물을 비추며,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조건 없는 사랑’과 ‘생명의 연속성’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천부경에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의 본래 마음은 본래 밝은 태양과 같다.”는 뜻으로 광명성과 보편성, 자각의 철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과 같은 순수한 지혜와 밝음이 이미 존재한다는 선언이며, 이는 광명성(光明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태양이 하늘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듯, 우리 마음의 본질 또한 사사로운 욕심에 가려지지 않는다면 만물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각의 철학은 외부에 있는 태양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태양(본성)을 깨우고 회복하는 것이 인간 완성의 길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천부경은 운명공동체의 가치관을 말합니다. 천부경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로 시작해서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로 끝납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운명공동체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 첫째로 가치관을 이야기합니다. ‘나'와 ‘남’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하나라는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고 외칩니다. 또한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의 자세, 그리고 조화와 상생을 중시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공유를 실천하는 삶이 천부경적 공동체 삶의 핵심입니다.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이 주는 현대적 교훈은 현대인들에게 ‘자존감의 회복’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안의 밝은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열정(빛)을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과 사회 공헌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처럼 하는 배움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배움은 해처럼 하는 것’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학습의 자세를 시사합니다. 해가 매일 어김없이 뜨듯, 배움 또한 쉼 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속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리지 않고 섭취하되,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무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운 것을 가슴 속에만 가두지 않고, 행동과 실천을 통해 세상에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방사)해야 합니다. 즉 발산해야 합니다. 저 하늘에 해를 봤더니, 해는 말이야, 우리를 위해서 일하지 않아. 그냥 해는 자기 일을 할 뿐이야. 그런데 그의 영향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해처럼 살아야 돼’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면서, 교훈이면서, 명령이면서, 인류에게 주는 천명(天命)입니다. 모든 경전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를 알아야 우리 홍익인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 나무 막연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게 관념적으로만 이해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법 1조에 ‘홍익인간’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관념적으로만 이해하니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 ‘홍익인간’, 좋은 말이지. 그런데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한자를 우리처럼 하면, ‘홍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해처럼 하나 됨’, 이런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홍익’이라고 문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 가르침, 으뜸가는 가르침이 천부경에 담겨 있고, 천부경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 삶의 방식,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때로 우리가 그것 때문에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결정적 해답이 ‘해처럼’입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들은 내일부터 해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나도 해처럼 살아야지’, ‘해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해를 보는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망치로 한 방 맞은 것 같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누구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고, 매번 반복해서 듣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들이 자기 내면에서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천부경의 결정적 명령!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그것이 ‘해와 같이’, ‘해처럼’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치고, 천부경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81자의 한자를 자기 마음대로 풉니다. 수백 명이 천부경을 썼는데, 책마다 내용이 다릅니다. 천부경은 한국 철학의 핵심이며, 세계인의 양식입니다. 양식은 일상입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가치관과 인생관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우리말(한국어)과 우리글(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관입니다. 하늘(·), 땅(ㅡ), 사람(ㅣ)이 어우러진 글자 구조처럼,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순응하며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둘째, 수평적 소통입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게 만든 한글은 ‘지식의 민주화’와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꿈꾸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반영합니다. 弘益人間(홍익인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홍익인간은 단순히 ‘남을 돕는다.’는 수준을 넘어, ‘인간 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한다.’는 통치 철학이자 삶의 목적입니다. 이는 나의 존재 가치를 타인의 행복 속에서 찾는 고차원적인 이타주의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ility)과 지구촌 공생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설마 한국인으로서 ‘살림’, ‘살림살이’라는 말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홍익을 어렵게(?) 느낄만한 많은 장삼이사들을 배려해서 만든 용어가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 살아감을 ‘살림’ 또는 ‘살림살이’라고 말합니다. ‘살림’, ‘살림살이’가 무슨 말인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살리는 것을 자기 삶의 목표로 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살림’이고 ‘살림살이’입니다. 전쟁과 폭력, 이해타산이 난무하는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서 권력이나 명예나 각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겠다는 각오가 훨씬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한국인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이어서 평생 수신제가도 힘겨울 듯한 사람들조차도 자기 삶의 목표를 ‘살림’이라는 거창한 말로 부르는 것일까요? 더구나 누구도 회피할 수조차 없도록 아예 생활 용어로 못 박아, 노상 고백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장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국인의 공동체적 철학, 사고의 경향을 알지 못하고는 쉽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홍익’의 개념을 정립한 이들이 누구인가? ‘홍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홍익’ 본연의 근본 이념에 반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근기가 조금 부족한 사람들일지라도 ‘홍익’에 동참할 수 있는 방편으로 배려한 장치가 바로 ‘살림’이라는 말이다. 살면서 노상 ‘살림’을 생각하라는 의미다. ‘살림살이’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말 ‘살림’은 ‘살리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진정한 경제 활동이나 일상생활(살림살이)의 목적은 나를 포함한 주변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살리는 상생의 미학이 진정한 살림살이의 지혜입니다. 천부경의 핵심 명령은 ‘해처럼 살아라.’입니다. 해처럼 산다는 것은 ‘자각(自覺)과 방사(放射)’의 삶입니다. ‘자각’은 ‘자발적 삶’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처럼 주도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따뜻한 포용’입니다. 차가운 이성이 아닌 따뜻한 감성으로 만물을 품어주는 삶입니다. 셋째는 ‘어둠의 소멸’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갈등과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과 희망이 샘솟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천부경이 제시하는 최종적인 천명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입니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대행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천명은 내 안의 태양을 찾아(本心本太陽),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며(弘益人間), 모든 생명을 살리는(살림살이) 것입니다. 우리는 한 점의 빛으로 시작해 온 우주를 밝히고, 다시 그 거대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부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준엄하고도 따뜻한 명령입니다. 天符經을 찾아, 天符經의 부름을 따라 힘찬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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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부경(天符經) 철학으로 본 삶과 배움의 가도(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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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교단에 서는 사람에게 학생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이며,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우리가 잠시 맡아 기르는 존재다. 그래서 교사는 늘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배웅한다. “잘 다녀오너라.” 그 말은 무사 귀환을 바라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봄, 그 약속은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지 못한 비극이었다. 그날 이후 교사들의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결석’이 남았다. 왜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는가. 아이들의 잘못은 없었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안전보다 효율을 앞세운 구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대응 체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회가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재난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다. 사회는 하나의 교실이며, 국가는 가장 큰 교육자다. 반복되는 사고는 잘못된 사회적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책임을 묻고, 교훈을 제도화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며,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조치는 반복을 막기 위한 사회적 기준이다. 국가의 사과와 배상 역시 공동체 책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생명안전 기본법 제정, 독립적인 재난조사 체계 구축,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월호 12주기를 맞아 다시 다짐한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그날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남은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겠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 왔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그 미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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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교실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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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김미혜 기고] 입시 중심 교육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점수와 등급,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해 온 결과, 아이들은 많은 지식을 갖추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질문은 줄어들고 있다. 정답을 찾는 데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데는 서툰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제 교육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떤 경험을 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 그리고 그 경험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시대다. ■ 교실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교육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적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며,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은 단순한 교실 수업만으로는 길러지기 어렵다. 실제 상황 속에서 부딪히고, 소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외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단순한 ‘어학연수’를 넘어, 실제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또래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화 속에서 배우는 교육은 교과서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명문 사립고에서 운영되는 글로벌 리더십 캠프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학생들은 3주 동안 현지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과목’이 아닌 ‘도구’가 되고, 학습은 ‘시험’이 아닌 ‘경험’으로 전환된다. ■ ‘짧지만 깊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성장 일각에서는 “3주라는 시간이 과연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난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처음에는 서툴고 두렵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워간다. 낯선 언어로 말을 걸고, 다른 문화 속에서 관계를 맺고, 스스로 하루를 계획하며 생활하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한 자기 효능감을 심어준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학습 동기를 넘어, 인생 전반을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또래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언어 습득을 넘어,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앞으로의 글로벌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다. ■ 학부모의 선택이 아이의 방향을 바꾼다 결국 교육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과거에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변화가 빠른 사회일수록, 정해진 길보다 스스로 길을 찾는 힘이 더욱 요구된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스스로 꿈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학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호를 넘어 ‘기회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경험이 스펙을 넘어 ‘자산’이 되는 시대 이제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라, 아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되고 있다. 입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단순한 성적보다 과정과 성장, 그리고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 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은 단순한 해외 체험이 아닌, 아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주라는 시간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얻는 깨달음과 변화는 아이의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흔적으로 남는다. ▣ 김미혜 ◇ 국제진로전문가 ◇ 위스콘신대학교 한국입학홍보처 이사 ◇ UHR Korea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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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험이 경쟁력이다…우리 아이 교육, 이제는 ‘현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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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 〔교육연합신문=석윤찬 기고〕 교실에서 우리는 자주 비슷한 장면을 마주한다. 아이는 교과서를 펴고 고개를 숙인 채 줄을 따라가며 읽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읽는 듯하다. 그러나 내용을 물으면 답이 비어 있고, 문제를 풀게 하면 엉뚱한 선택지를 고른다. 이때 교사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이 아이는 읽지 않은 것일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읽는 척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해력의 문제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해력이 더 이상 국어 한 과목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문장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 사회 교과서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과학 실험 절차를 해석하는 능력,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선별하고 신뢰도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거의 모든 학습은 문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문해력은 특정 교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전반을 떠받치는 기초 역량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의 문해력을 어떻게 보아 왔을까. 대체로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독후감, 발표, 수행평가, 교사의 관찰 기록이 주요 판단 근거였다. 물론 이런 지표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으로는 읽기의 과정을 충분히 볼 수 없다. 문장을 천천히 읽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읽기 능력이 낮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낱말은 읽지만 문장 의미를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매우 신중하게 읽는 좋은 독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빨리 읽는 아이가 반드시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빠르게 훑으면서 핵심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정답을 맞혔는가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읽었는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선추적기술은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선추적은 아이의 읽기 결과가 아니라 읽기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학생이 화면이나 글의 어느 부분을 오래 보는지, 어디에서 멈추는지, 어느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지, 어떤 순서로 정보를 탐색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던 읽기의 흔적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물론 시선추적기술이 교사를 대신해 문해력을 자동 판정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아이의 읽기 행동은 컨디션, 배경지식, 과제 난도, 정서 상태, 수업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되읽기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일 수 있고, 다른 학생에게는 줄을 놓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시선 데이터는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단서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교육적으로 읽어 내는 교사의 전문성이다. 그럼에도 시선추적기술의 의미는 크다. 지금까지 교사는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와 ‘실제로 읽고 있는 아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교실 안에 20명, 30명의 학생이 있을 때 개별 학생의 눈 움직임까지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선 데이터는 읽기의 미세한 흔적을 보여 준다. 어떤 학생은 첫 문단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어떤 학생은 핵심 문장을 건너뛰며, 어떤 학생은 문제의 선택지를 먼저 훑고 본문을 대충 읽는다. 이런 정보는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와 피드백, 상담의 언어를 바꾸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보자”는 말은 흔하지만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반면 “너는 제목과 첫 문단은 오래 보았지만, 문제의 조건이 있는 부분은 빨리 지나갔구나” 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멈추기보다 앞뒤 문맥을 먼저 보자”와 같은 피드백은 훨씬 구체적이다. 시선추적기술은 문해력 지도를 태도 중심의 지시에서 전략 중심의 지도 쪽으로 옮겨 갈 수 있게 한다. 지금 학교 현장의 문해력 담론은 때로 지나치게 무겁고, 때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책을 안 읽어서 문제”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AI 시대이니 새로운 기술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들인다고 곧바로 읽기 능력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읽기의 본질을 다시 붙드는 일이다. 문해력은 글자를 읽는 능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미를 연결하고, 맥락을 추론하고,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스스로 이해를 점검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미세하다. 그래서 이제 문해력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고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선추적기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다. 그것은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학생의 읽기 과정을 더 면밀히 보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며, 더 정확하게 돕기 위해서다. 앞으로의 문해력 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인간 교사의 해석력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던 학습 과정을 드러내는 기술이다. 교사는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의 좋은 교사는 아이의 답안지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 과정까지 읽어 내는 사람일 것이다. 문해력의 미래는 더 많은 시험지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가 한 문장을 읽을 때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로 되돌아가며 무엇을 놓치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 석윤찬 ◇ 서울대 전기공학부 ◇ 비주얼캠프 대표 ◇ 시선추적(Eye-tracking) 기술 분야 창업가 ◇ AI 기반 시선추적 소프트웨어 “SeeSo” 개발 ◇ 문해력코스웨어 리드포스쿨 공급 ◇ 기술혁신대전 국무총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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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지금 다시 문해력인가"…시선추적기술이 교육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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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 [교육연합신문=황영식 기고] 사람은 언제까지 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부산 남구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에는 조금 특별한 학생들이 있다. 대부분 노년의 학습자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닐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대 속에서 배움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다시 교실에 앉는다. 오상호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박춘화 할머니는 만주에서의 유년 시절을 지나 평생을 생계에 묶여 살아왔다. 두 사람에게 학교는 언제나 ‘다음에’로 미뤄진 삶의 영역이었다. 처음은 쉽지 않다. 글자는 낯설고, 손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한 글자를 쓰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교실에서는 그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이 말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다. 배움의 속도가 아니라, 배움의 지속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선언이다. 해람학교의 교실에서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입학식에서 교장은 말한다.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는 다시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왔느냐입니다.” ‘시와 음악의 밤’과 같은 자리에서는 배움이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삶을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배움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이어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삶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못 배운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따라다녔던 자기 인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그 변화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드러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를 읽고, 거리의 간판을 소리 내어 읽고, 키오스크 앞에서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제 와서 배우느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편지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자식들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글로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 편지는 과거의 자신에게 닿는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어린 날의 자신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방식으로. 해람학교의 교실은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장소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다림이 있다. 조급함이 아닌 기다림, 비교가 아닌 존중, 경쟁이 아닌 동행. 이러한 교육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다. 성인 문해교육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는 공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는 오랜 시간 한글교육을 이어오며, 늦게 시작한 배움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증명해 왔다. 이곳에서 졸업장은 학력의 증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했다는 기록이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 다만 시작이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이 교실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서툴지만 분명하게, 그 문장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 황영식 ◇ 기러기문화원 해람학교 교장 ◇ (재)하정육영장학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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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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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 [교육연합신문=고선화 기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루하루 기적이 쌓이는 과정이다.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시간은 기다림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한다. 작은 변화 하나에 담긴 기쁨,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결코 한 가정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 한 명이 성장하기까지는 학교와 지역사회, 그리고 제도의 뒷받침이 함께해야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누군가는 말이 느리고, 누군가는 움직임이 불편하다.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함께 웃고 싶고, 함께 배우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바람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나누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그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할 때다. 아이를 기준으로 세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 학교는 더 따뜻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돌봄과 교육 역시 더 이상 가족에게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다. 그 책임은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다행히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함께하는 프로그램, 주민과 봉사자들이 참여하는 돌봄 활동,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손을 잡아주고, 한 걸음을 함께 내딛어 주는 일.그 사소한 실천이 아이들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이 차별 없이 웃을 수 있는 사회, 부모가 조금 덜 불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그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곁에 있는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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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이마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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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200만 원짜리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전당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6년. 직장 옆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 불리는 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규모만큼이나 사람도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낮에도 도로가 주차장처럼 막히기 일쑤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5시 야외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오후 2시에 출근한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리허설을 지켜본 뒤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차를 가지고 가려면 정오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두 시간쯤 지나면 백화점 인파로 도로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불편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백화점 식당가에는 언제나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1일 화요일.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부산의료원장이 영화의전당을 찾았다. 새로 취임한 배우 출신 대표에게 병원 홍보영상 제작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원의 회생을 위해 대대적인 홍보를 준비 중이라는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11시에는 서울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생중계 회의가 진행됐다. 예상보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관객들에게 따뜻한 복장을 안내하는 문자 발송과 현장 안내판 설치까지 세세한 논의가 이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공연팀 동료들과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그날의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라면과 우동사리를 추가해 배가 터질 듯 먹고 나왔다. 그러나 배부름도 잠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신호가 찾아왔다. 급히 1층 스타벅스 뒤편 화장실로 향했다. 두 번째 칸에 들어가 앉는 순간, 시야에 낯선 물체 하나가 들어왔다. 왼쪽 휴지걸이 위에 놓인 큼지막한 손지갑. 순간 손이 멈췄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오만원권 지폐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대략 100장, 500만 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면…?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뒤따랐다. ‘여긴 CCTV 천국이다.’ 짧은 갈등 끝에 나는 안내센터로 향했다. 분실물 습득 신고를 하고 명함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후 3시, 부산시의회 정책지원담당관 미팅이 있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운대경찰서 우동지구대였다. 조금 전 습득한 지갑과 관련해 확인할 사항이 있으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보상금. 법적으로 습득자는 일정 비율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20%라면 100만 원. ‘100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자 경찰관은 신분 확인을 마친 뒤 봉투 하나를 건넸다. 지갑 주인께서 감사 인사와 함께 전해달라고 하셨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오만원권 40장. 200만 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자 경찰관이 덧붙였다. “보상금은 1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법적 기준에 맞게 전달된 금액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갑 주인은 어떤 분입니까?” 경찰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해운대역 인근 사찰의 스님입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스님은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때 경찰관이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사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종이를 펼쳤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한 줄을 바라보았다. 만우절. 이 이야기를 나는 매년 4월 1일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사람들은 처음엔 진지하게 듣는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 ‘200만 원 봉투’ 대목에 이르면 분위기는 금세 달아오른다. “대박이다!”,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회에 소주 가자!” 그들의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나는 마지막 한 줄을 꺼낸다. "그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냐면, 만우절.”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한숨과 야유가 터져 나오고, 곧 웃음이 번진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짧은 이야기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결국 웃음으로 끝나는 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연극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하나의 거짓말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웃음을 남기기 위해... ▣ 서승우 ◇ (재)영화의전당 공연본부장 ◇ 동천고등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 부산시 영화영상정책위원회 위원 ◇ 부산 남구립예술단 운영위원 ◇ 부산연극연극상 선정위원 ◇ 부산창작오페라단 이사 ◇ 前부산문화재단 이사 ◇ 前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운영위원 ◇ 前부산국제연극제조직위원회 부집행위원장 ◇ 前부산연극협회 부회장 ◇ 2025년 국무총리표창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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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우절에 남기는 작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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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 [교육연합신문=김미정 기고] 뒷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요즘 한 드라마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다양한 이유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동에서 벌이는 해프닝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다. 정신병동 간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드라마는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해와 회복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우울한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들의 회복은 극적인 완치가 아니라 조금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보호관찰 현장에서 마주하는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최근 보호관찰 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 문제를 동반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개인과 가족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문제가 이제야 사회 밖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우울증, 양극성장애, 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숨기거나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치료를 통해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이해가 확산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있어 사회가 한 걸음 더 책임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관련된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안은 결국 ‘누가, 어떻게, 계속 이런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호관찰은 바로 그 지점을 담당하며 치료와 사회내 관리를 이어주는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대상자에 대한 보호관찰은 판결문을 검토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범죄의 내용, 양형의 이유를 꼼꼼히 살피고, 보호관찰 기간 중 지도·감독의 방향과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대상자는 정신건강 선별검사를 실시하여 판단한다. 정신질환 대상자로 판명되면 보호관찰 기간 중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인 진료 및 복약 사실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보호관찰관이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2023년부터는 보호관찰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정신질환자의 보호관찰 종료사실을 경찰과 지자체에 통보하여, 종료 후에도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소유예 마약사범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위한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보호관찰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재범이나 보호관찰관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할 경우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보호관찰 대상자를 지역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호관찰관은 생계지원이 필요하면 행정복지센터와 협력하고, 치료 지속여부를 더 면밀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한다. 취업과 자립을 돕기 위해 법무보호복지공단 등 다양한 지역자원과 협력하는 일도 보호관찰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드라마 속 의료진이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의미를 두듯, 보호관찰관의 현장도 그렇게 흘러간다. 보호관찰 대상자의 극적인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 없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일,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정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책임지는 일, 그것이 지금 보호관찰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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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게 하는 시간, 보호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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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 [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알고리즘의 시대, ‘나’에 대한 본질을 묻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초연결 시대’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타인이 정해 놓은 유망 직종이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길에서 ‘천직(天職)’을 찾으려 방황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참된 천직은 단 하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천직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직업’이 아니라, 내면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天職은 배움과 실천으로 빚어내는 자신만의 길이고 모습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말합니다. ‘태생적 천재’는 없다, 오직 ‘구하는 자’만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흔히 천직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인(聖人) 공자조차 『논어』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구하는 자(好古敏以求之者)일 뿐이다.” 공자가 강조한 천직의 핵심은 ‘역동적인 배움’입니다. 배움은 지식을 채우는 행위를 넘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끊임없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즉, 천직은 완성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공자가 ‘배움의 태도’를 말했다면,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배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구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난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밤새 읽은 문장을 다시 써보는 ‘재구성 훈련’을 통해 지식을 손끝의 감각으로 익혔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격을 닦기 위해 ‘3가지 덕목’을 세우고, 매일 밤 검은 점을 찍으며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절제: 배부르도록 먹지 말 것, 결단: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할 것, 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절제, 결단, 겸손, 이 세 가지 덕목이 자신의 몸에 흐르도록 하고, 그것를 점검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자기 수련(Self-Discipline)을 통해 그는 인쇄공에서 과학자로, 다시 외교관으로 자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그에게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수련의 장’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천직이란 특정 직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는 자아 완성의 과정입니다. 우세남의 시 <선(蟬)>에 등장하는 매미가 생각납니다. “居高聲自遠(거고성자원), 높은 곳에 머무니 소리 절로 멀리 퍼지는 것이지, 非是藉秋風(비시자추풍), 가을바람을 빌린 것이 아니라네. 매미의 울음소리가 멀리 퍼지는 것은 가을바람,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의 도움 덕분이 아니라, 높은 곳, 고결한 인격과 수련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남의 힘을 빌려 돋보이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내면을 닦아 빛을 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읽은 한 줄의 문장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것이 자신을 지키고 키워주는 내면의 힘이 되어 비로소 하늘이 내린 단 하나의 진짜 직업, ‘자아 완성’의 천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완성을 넘어 ‘공동체의 완성’으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경계를 허무는 공감, 초연결 시대의 기술은 우리를 잇지만, 마음은 단절시키기 쉽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나’라는 개인은 비로소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덕목을 사회적 헌신(외교, 과학적 발견)으로 연결했듯, 지속 가능한 배움과 나눔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여져야 합니다. 외부의 평가나 알고리즘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격을 닦는 사람들의 ‘고결한 향기’가 모일 때, 인류는 비로소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존엄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가을바람을 빌리지 않아도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처럼, 당신의 진심 어린 실천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세계인을 향한 공동체 의식과 ‘더 나은 나’를 위한 묵묵한 발걸음만이 ‘나’를 ‘나’이게 하고 ‘세계’를 ‘세계’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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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아 완성! 시대의 거친 바람을 이기는 나만의 고결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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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君子固窮! 역경이라는 폭풍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빚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불청객이 삶의 문턱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경제적 위기, 혹은 끝을 알 수 없는 정신적 우울감이 그것입니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말하듯, 모든 인류는 역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역경 속에서 피어난 꽃”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성장하며 빛나는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이나 존재가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황제가 뮬란에게 한 명대사, “The flower that blooms in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가 대표적 예로, 힘든 상황을 극복한 사람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중국 로맨스 고장극《석화지》(2024, 40부작, YOUKU 방영)에서는 이 표현이 주인공 화지의 성장 서사와 연결됩니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여성의 성장과 자립, 역경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시청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달합니다. “역경 속에서 피어난 꽃”은 문학, 영화, 드라마 등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한 존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뮬란》에서는 개인의 용기와 희생을, 《석화지》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지혜와 강인함을 통해 이 메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견디고 성장하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홀로 남은 거실에서, 혼자만의 생각과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갈등, 입장 다름에서, 각자의 역경과 마주하며 고뇌하며 삶에 지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화를 내고, 누군가는 환경에 끌려다니며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환경을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당할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논어』는 우리에게 놀라운 답을 제시합니다. 5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검찰총장직(대사구)을 내려놓고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 그 여정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14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노숙을 했고, 끝내 진나라에서는 양식이 완전히 바닥나는 ‘재진절량(在陳絶糧)’의 위기를 맞습니다. 제자들은 굶주려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고, 다혈질이었던 자로는 화를 내며 묻습니다. “군자도 이렇게 궁할 때가 있습니까?”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하늘을 향해 던지는 “성실하게 산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라는 원망과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성실하게 살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나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합니다. 공자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역경이 닥쳤을 때 오히려 그 상황을 견뎌내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지는 사람이다. ‘소인궁사람(小人窮斯濫)’, 소인은 역경이 오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넘쳐흐르며(濫), 자신을 잃고 주변에 화를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번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곧 군자라고 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건 분명 슬프고 괴롭다. 그렇다고 남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공자는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해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는 공자의 충고는 자기의 길을 가고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면서 비난이나 칭찬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내 삶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좌지우지하려는가? 내 참모습은 내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데’ 달려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준엄한 말씀이겠지요. 말을 들을 때는 ‘그래야지’ 하지면 조금 지나면 ‘나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린다?’ 공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높이 평가한 건 ‘그들이 과거의 원수를 기억하지 않았고, 따라서 원한도 적었다(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포숙(鮑叔)을 기억하는 건 물론 그의 인품이 뛰어나고 판단이 냉철했던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중(管仲)에 대한 끝없는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관중이 “자신을 낳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고 고백한 것만 봐도 그의 그릇을 알 수 있다. 관중을 천거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리까지 관중에게 내주고도 그가 자신을 챙겨주지 않았을 때조차 전혀 불평하지 않은 포숙이 없었다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조차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이 나를 무시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면 아무리 만나서 시시덕거려도 뒤끝이 허전하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말은 그렇게 한다? 주머니의 송곳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본디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뜻이지만 그걸 꼭 재주에만 국한할 까닭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특히 나는 그렇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유형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자신보다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 그 화를 푸는 경우가 흔하다. 국장이 과장을 깨면 과장은 사무관이나 주무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다. 학교에서도 그렇다. 담임선생이 아침부터 교장에게 한 소리를 들으면 그 학급의 기상도는 하루 종일 흐려진다. 밖에서 일어난 일로 가족들에게 원망을 하는 내가 부끄럽다. 그런데 顏淵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많다. 화를 옮기지 말아야 할 때 화를 옮김으로써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조직의 인화 단결이 깨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안연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법에서 초범과 재범의 양형을 달리 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야구에서 내야수를 보는 선수들이 한 번 실수한다고 교체를 하는 감독은 드물다.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교체를 한다. 심리적 부담감으로 똑같은 실수가 또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한 교체여야 한다. 그것이 결단이다. 공자는 실천윤리로서의 인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안연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공자는 인의 기준을 거창한 것에서 찾지 않는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인의 기준이다.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하루에 한 번이라고 외치고 싶다. 오늘부터라도 외쳐보련다. ‘不遷怒 不貳過’ 우리가 겪는 직장 내 갈등, 사업의 실패, 인간관계의 균열은 공자가 겪은 ‘굶주림’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역경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나다움’을 유지하는 정신력이야말로 군자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 ‘호학(好學)’과 ‘중용(中庸)’입니다. 자기 초월의 힘은 ‘호학(好學)’입니다. 공자는 스스로를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로 규정했습니다. “열 가구 정도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만큼 충성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역경을 이기는 힘은 ‘배움’에서 나옵니다. 배움은 고정된 생각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초월하여 ‘건너가는’ 행위입니다. 내 무지를 자각하고 남의 말을 듣는 태도를 가질 때, 우리는 역경이라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습니다. 균형의 감각은 중용(中庸)에서 시작합니다. 최근 우리 시민들이 보여준 상식적인 행동들은 유교의 ‘중용’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중용은 멈춰있는 고정된 값이 아닙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끊임없이 중심을 잡으려는 ‘동적인 균형’이자 ‘노력’입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삶의 균형감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우리를 역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지식은 머리에 이고 다니는 과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깨뜨려 먹고 내 몸의 양분으로 삼는 ‘실천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막스 베버가 강조한 종교적 윤리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듯, 유학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이라는 황금률은 이제 세계인의 공동체 윤리가 되어야 합니다. 1988년, 영국 브라이튼에서 열린 제18차 세계 철학자 대회에서, 인류의 golden rule로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己所不慾 勿施於人’이 최고 투표율을 2번이나 기록했다고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나다움’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묵묵히 자아를 닦아나간다면, 당신의 삶 또한 외부의 도움 없이도 고결한 향기를 내뿜으며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겪는 그 역경은, 당신을 파괴하러 온 재앙이 아니라 더 단단한 존재로 빚어내기 위한 ‘축복의 신호’입니다. 더 단단한 나를 빚는 하루하루를 생각합니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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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君子固窮! 역경이라는 폭풍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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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기대한다
- [교육연합신문=최재춘 기고] 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는 정신문화다. 오늘날 태권도는 200여 개국, 수천만 명이 수련하는 세계적 무도이자 교육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술과 경기의 영역을 넘어 예절과 인내, 존중과 평화를 강조하는 태권도 정신은 한국이 세계에 전해온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이제 그 가치를 남북이 함께 세계에 알릴 중요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필자는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남북 공동 등재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왔다. 태권도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남북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태권도계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는 일도 필요했고, 남북 공동 등재라는 정치적 현실 또한 넘어야 할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태권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을 대표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소속 태권도인들까지 응원 메시지와 챌린지로 힘을 보태며 태권도가 민족 공동의 문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태권도는 이미 국경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하는 문화이지만, 동시에 남과 북이 함께 발전시켜 온 민족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초기 등재 추진 과정에서는 곳곳에서 어려움과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 태권도인들의 열망과 국내 태권도 가족들의 전폭적인 응원, 그리고 관련 기관과 단체의 협력 속에 최근 유네스코 본부에 등재안이 신청되는 성과를 이뤘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제사회의 공감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우리는 이미 중요한 선례를 가지고 있다. 2018년 남북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사례다. 당시 유네스코는 분단국가인 남북이 공동 문화를 통해 화합과 평화를 모색하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고,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과 국제사회의 협력 속에서 공동 등재라는 역사적 결과가 이루어졌다. 오늘날 남북 관계는 과거보다 더 경색된 상황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문화는 갈등을 넘어서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정치와 외교가 막힌 상황에서도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적 문화유산 회의인 만큼, 정부와 관련 기관이 문화 외교 차원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태권도의 남북 공동 등재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태권도는 1960년대 이후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며 한국의 예절과 정신을 알리는 문화 외교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단순한 스포츠 기술을 넘어 예의와 배려,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태권도 교육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축적된 태권도의 저력은 이제 스포츠를 넘어 평화와 화합의 문화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권도가 남북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이는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남북이 공유하는 민족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태권도가 남북을 잇는 문화의 다리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길이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의 품격과 정신을 더욱 빛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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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권도 남북 공동 유네스코 등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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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 [교육연합신문=이현우 기고]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거창한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일상 속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중 가장 따뜻하고 숭고한 실천이 바로 헌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대한적십자사 서구지회 회원들과 함께 동아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 헌혈캠페인에 참여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마음들이 모인 자리였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기꺼이 팔을 걷어 올리고 헌혈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날 49번째 헌혈에 참여했다. 헌혈을 할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헌혈은 특별한 누군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봉사라는 사실이다. 위급한 환자에게 한 봉지의 혈액은 단순한 의료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이어주는 희망이며, 한 가족에게는 다시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귀중한 기회다. 그래서 헌혈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봉사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지역일꾼의 역할은 정책을 말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나 역시 부산서구의회 의원으로서 구민들의 삶과 직결된 다양한 구정 현안과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과 시장, 주민들의 생활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고, 지역의 작은 불편과 어려움이 행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역일꾼의 역할은 책상 위 정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답을 찾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서구지회 회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우리 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생명 나눔을 위해 시간을 내어 헌혈캠페인을 펼치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모습은 공동체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번 동아대학교 캠퍼스 헌혈캠페인에서는 젊은 학생들의 참여가 더욱 의미 있었다. 미래세대가 나눔과 봉사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49번째 헌혈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지역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말보다 행동으로, 약속보다 실천으로 봉사하는 지역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앞으로도 구민의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의정활동과 함께 생명 나눔과 봉사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태겠다." 헌혈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봉사다. 우리가 팔을 걷는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기적이 된다.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그것이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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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일꾼의 첫 번째 책무,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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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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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100세 시대를 위한 내 몸 사용 설명서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오십견’은 시간이 약일까? 방치하면 굳어지는 어깨 어깨가 굳어 팔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고,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극심한 통증. 흔히 '오십견'이라 불리는 이 질환의 정확한 의학적 명칭은 '유착성 관절낭염(Adhesive Capsulitis)' 또는 '동결견(Frozen Shoulder)'입니다. 이름 그대로 어깨 관절을 둘러싼 주머니(관절낭)에 염증이 생기고 두꺼워져, 관절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지는 질환입니다. 50대 전후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오십견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PC의 장시간 사용, 운동 부족 등으로 인해 30~40대에서도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오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 오십견에 대해 대중이 가진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특별한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병"이라는 인식입니다. 과거에는 이 질환을 스스로 치유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최신 임상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사실입니다. 미국 의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된 2026년 최신 리뷰 논문에서는 상당수의 오십견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수년이 지나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어깨 관절의 운동 범위가 영구적으로 제한되는 후유증을 겪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기 염증기에는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고, 이후 관절이 굳어지는 동결기를 거쳐 서서히 풀리는 해동기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이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됩니다. 따라서 '시간이 약'이라며 고통을 참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굳어진 관절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현대 과학이 밝혀낸 부드러운 침 치료의 힘 굳어진 어깨를 부드럽게 풀고 통증을 덜어내는 데 있어 침치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최근 여러 국제 연구를 통해 그 과학적 원리가 명확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첫째, 침과 일반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회복이 훨씬 빠릅니다. 2024년 발표된 통증 관리 전문 국제학술지의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두 치료를 함께 받은 환자들이 물리치료만 받은 환자들보다 어깨 통증이 더 많이 줄고 움직임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침 자극이 우리 몸의 천연 진통 물질인 엔돌핀 분비를 돕고, 환부의 혈류를 늘려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돕기 때문입니다. 둘째, 전침이나 약침 같은 다양한 한의 기법은 어깨 속 굳은 조직을 직접적으로 풀어줍니다. 2024년과 2025년의 최신 연구들은 전기 자극을 더한 전침이나 정제된 한약 성분을 주입하는 약침이 단순한 일시적 통증 완화를 넘어 어깨 관절 주변의 염증 물질을 억제하고, 유착되어 엉겨 붙은 근막 조직을 본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 집에서 실천하는 굳은 어깨 회복 운동법 굳어진 관절의 운동 범위를 안전하게 회복하고 2차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스트레칭 프로그램이 필수적입니다.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자가 운동법을 소개합니다. ▶ 전자 운동: 테이블이나 카운터에 건강한 쪽 손을 짚고 상체를 살짝 숙인 뒤, 아픈 팔을 아래로 편안하게 늘어뜨립니다. 시계추처럼 팔을 앞뒤, 좌우, 그리고 원형으로 부드럽게 흔들어줍니다. ▶ 막대를 이용한 수동적 내회전: 등 뒤로 가벼운 막대(예: 자)를 잡고, 건강한 손으로 막대의 반대쪽 끝을 가볍게 쥡니다. 건강한 팔로 막대를 가로 방향으로 당겨, 아픈 쪽 어깨가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수동적으로 당겨지도록 30초간 유지한 뒤 30초간 휴식합니다. ○ 오십견 자가 관리 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주의사항 오십견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의 세심한 관리는 병원 치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스트레칭을 시작하기 전에는 걷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 같은 부담 없는 활동으로 5~10분간 체온을 높여 몸을 웜업해주어야 근육과 인대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엄격히 지켜야 할 원칙은 '운동 중 결코 통증을 억지로 참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팽팽한 느낌이 드는 부드러운 범위 내에서만 관절을 움직여야 합니다. 또한 환자의 병기(초기 극심한 염증기인지, 이후 굳어지는 동결기인지)와 환자가 가진 동반 기저질환에 따라 관리 및 운동 방법이 철저히 개별화되어야 합니다. 극심한 염증기에 무리한 운동을 강행하면 오히려 관절낭의 염증이 덧나게 됩니다. 따라서 막연한 자가 판단보다는, 전문가의 정확한 상태 평가를 바탕으로 안전한 치료와 맞춤형 재활 운동을 병행하여 튼튼한 어깨 건강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Achilova F, Daher M, Nassar JE, Daniels AH, Abboud JA. Frozen shoulder: Diagnosis and treatment of adhesive capsulitis. Am J Med. 2026 Jan 23:S0002-9343(26)00055-0. doi: 10.1016/j.amjmed.2026.01.021. 2. Xu B, Zhang L, Zhao X, Feng S, Li J, Xu Y. Efficacy of Combining Acupuncture and Physical Therapy for the Management of Patients With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Pain Manag Nurs. 2024 Dec;25(6):596-605. doi: 10.1016/j.pmn.2024.06.009. 3. Kim D, Park KS, Kim SA, Seo JY, Cho HW, Lee YJ, Yang C, Ha IH, Han CH. Pharmacopuncture therapy for adhesive capsulitis: A pragmatic randomized controlled pilot study. Integr Med Res. 2024 Sep;13(3):101065. doi: 10.1016/j.imr.2024.101065. 4. Ji R, Huang W, Weng M, Zhang M.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acupuncture-related therapies for frozen shoulder: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Front Med (Lausanne). 2025 Nov 26;12:1673193. doi: 10.3389/fmed.2025.1673193. ▣ 최윤용 ◇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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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칼럼] 100세 시대를 위한 내 몸 사용 설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