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사설]
사건은 지난달 23일에 일어났다. 전날 밤 떠들었다는 이유로 20kg 완전군장을 한다. 연병장을 구보하는 얼차려를 받았다. 6명의 훈련병 중 한 명이 쓰러졌다. 후송된 지 이틀만인 25일 오후에 숨졌다.
군 훈련 규정에는 완전군장을 한 경우는 걷기만 해야 한다. 걷더라도 1회에서 4회까지 가능하다. 1회 1km 이내다. 팔굽혀 펴기도 맨몸이어야 한다. 군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입대한지 10일만에 청년은 죽었다. 현재까지 나온 팩트다.
군에 다녀온 선배들은 말한다. “그까짓 얼차려에 훈련병이 죽어? 우리 때는 그보다 더 힘든 얼차려도 받았다. 우리 때는 다 그랬다. 요즘 청년들은 몸과 정신이 약해서 탈이야.” 댓글이 넘쳐난다. 옛날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이나 6.25 전쟁 때의 백병전에는 그 말이 맞았다. 그때는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의는 아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드론 전쟁, 핵전쟁 시대다. 사이버 전쟁이다. 인구소멸시대다.
군 인권센터는 “제보에 따르면 이번 사망사고는 집행 간부가 훈련병의 이상 상태를 인지하고도 꾀병 취급해 발생한 참사”라고 주장했다. 군은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군 사망사고는 매년 발생되고 있다. 이에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보낸 자식을 왜 부모가 걱정해야 하나? 그건 나라에서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나?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를, 나라는 청년의 목숨을 지켜주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군은 무슨 무슨 훈련이나 교육이란 말만 갖다 붙이면 마음대로 얼차려를 해도 된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군기교육이 아닌 군기를 가장한 가혹행위였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자랑스럽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러 입대했다. 그런 자랑스러움에 흠집이 나지 않게 교육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진정으로 국방에 도움이 되는 훈련, 자랑스럽게 훈련을 받는 모습을 우리는 진정으로 원한다. 물론 규정에 맞는 훈련이어야 한다. 이제는 훈련의 교육과정도 세상의 흐름에 맞게 변화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망 사고의 수사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입대한 청년에 대한 국방부의 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