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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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지내오지는 못했다. 교직에서 부러웠던 모습은 교직이 천직인 양 교직에 보람을 느끼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물론 가끔씩 보람도 있고 뿌듯함도 있었지만 담임을 하면서 청소와 잡다한 잡부금을 정리하고 버릇없는 학생과 악다구니를 하다보면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생활지도가 힘든 학교에서 공부와 아예 담을 쌓은 아이들 수업을 하다보면 내가 왜 아이들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 여기에 서서 아까운 청춘을 허비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내게 나름대로 충격적인 작은 사건이 있었다. 군대 갔다 와서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 것이다. 책상 정리를 하던 학년말 시기에 어떤 선생님이 쓰레기통에 버린 교무수첩을 보았다. 그 선생님은 학년말에 책상 정리를 하면서 교무수첩을 거꾸로 들어 휴지통에 처박은 것이다. 교무수첩을 슬쩍 꺼내 보니 아이들 증명사진들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그렇게 아이들의 사진이 있는 교무수첩을 쓰레기통에 던지는 교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한 권도 교무수첩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 둘 모으다 보니, 아직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모으기보다는 버리지 않다보니 이제는 교무수첩이 책꽂이 두 칸을 버젓이 차지하게 되었다. 
 
1988년 9월 천안여중에서부터 매해마다 교무수첩이 책장에 진열되어 있다. 누렇게 종이가 변색된 것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안에 선생님들과 연찬회에 가서 찍은 사진도 있고 직원명렬표도 있고 내 독사진도 있고 때로는 잡다한 메모도 있었다. 
 
글씨체의 변화도 보이고 담임을 하면서 빼곡하게 적어 놓았던 아침조회 전달사항도 보인다. 수행평가 점수를 준 흔적, 그리고 생활기록부에 적기 위해 행동특성들을 적어 놓은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담임을 했던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흥취가 있다. 때로 담임을 맡지 않아 학생요람 칸에 학생들 사진이 없는 경우에는 교사를 한 것 같지 않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제자들이 갑자기 연락을 해 올 때 이 교무수첩은 나에게 참 요긴하게 활용된다. 특히 여제자 중에는 초단기 기억력 삭제대왕인 나에게 짓궂게도 “제 이름이 뭐게요?”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관심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꼭 있다. 나에게 이러한 시련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교무수첩 덕분에 미리 얼굴과 이름을 몇 번 보고 나가서 아이들을 놀라게 할 수 있었다. 
 
17년이 지나 문득 장문의 편지를 한 남학생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름을 보아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황하여 집에 가서 교무수첩을 찾아 사진을 보니 그때야 비로소 선명하게 생각이 났다. 졸업을 한 제자들이 어쩌다 연락을 할 때도 나는 교무수첩을 본다. 
 
교무수첩의 외형변화도 한 눈에 들어온다. 좀 작은 B5 크기의 자주색에서 A4 크기의 검은색, 자주색이 있고 뒤에 있는 부록도 전철노선도, 국내지도, 가족호칭 등 조금씩 다른 것이 보인다. 당시 뒤에 있는 메모란에 끄적거렸던 것들은 지금 읽어보면 감회가 깊다. 낡은 영사기를 돌리듯 그 메모들은 영상을 끄집어내 훨훨 날아다니게 만들었다. 
 
26년 9개월만에 전문직원으로 전직을 했다. 이제 학생들 사진을 교무수첩에 붙일 일보다는 업무수첩에 해야 할 업무와 행정적인 참고자료로 내용을 채울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학에 느끼는 나릇함과 동료 교사의 친밀감과 웃는 아이들 얼굴을 잃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교직이라는 것은 학생과 함께하는 의미가 있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든 것이 담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세상에 바꿀 수 없는 추억을 남겨주었던 시절이 담임을 하던 시절이다. 
 
한 권씩 꺼내보면 비가 올 때 창을 보고 끄적거리던 글, 전교조 사태와 갈등, 담임 배분의 문제, 참으로 말 듣지 않는 아이 때문에 속이 곪아 터지던 상황, 졸업식까지 속 썩이고 끝내 졸업장도 찾아 가지 않은 아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보고 싶을 정도로 참 착실했던 아이, 유머가 많았던 선생님, 목소리가 유난히 컸던 나이든 선배 선생님 등등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신기한 일이다. 교무수첩은 추억의 화석이다. 그 화석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환된다. 홀로그램보다 선명하게 눈앞에서 재현되는 모습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어떤 때 펼치면 소풍 갔을 때 빙 둘러 앉아 부모님들이 싸 주었던 각양각생의 김밥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숙직실에서 뽀얀 담배연기에 싸여 짜장면을 먹으면서 바둑을 두는 장면도 생각나고, 어떤 때는 조개탄을 주번에게 가져오라고 했더니 바닥에 엎어버려 시커먼 탄으로 난장판이 된 일도 보인다. 때로는 술을 많이 먹고 몸살로 병가를 내고 학교에 못 오던 남선생님이 떠오르기도 한다. 마치 화수분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나게 하는 것이 바로 교무수첩이다. 
 
교무수첩은 내 성장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일기를 자주 쓴다고 했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일기는 툭툭 날짜를 끊어 먹었다. 하지만 교무수첩에는 매일 기록을 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우울할 때 교무수첩 메모란에 시 비슷한 낙서를 끄적거렸다. 아침자습 때도 아이들을 보며 이것저것 끄적거렸다. 글씨체만 보면 그 때의 그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글씨를 보면 슬플 때도 있고, 적적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고, 약간의 들뜬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참 글씨가 참 작았다. 지금은 글씨를 더 크게 쓰려고 노력한다. 의기소침한 글씨가 많이 보였다. 자신감이 많이 없어 보였다. 때로는 수많은 다짐들도 보였다. 
 
어떤가. 교직에 있는 한 교무수첩에 인생을 담을 생각은 없는지. 그 안에 업무 메모만이 아닌 읽은 책도 쓰고 만남과 인연도 쓰고 함박눈을 보는 감상도 쓰고 가끔은 10년짜리 계획도 세워보고 내가 왜 사는지도 써보자. 사장들은 회사와 돈이 남고, 정치가들은 기념식수와 표석에 이름이 남지만 교사들은 교무수첩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힘겨움과 나에 대한 희노애락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한 나만의 교무수첩을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곧 자신의 삶이고 자신의 직장이고 자신의 흔적 그 자체일 것이다. 학교에서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보다 옹골차게 만들어 보자. 교무수첩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가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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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교육연구관)
◇ 천안서산고등학교 교장
◇ 천안쌍용고등학교 교감
◇ 충청남도교육청 장학사
◇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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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교무수첩과 교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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