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손덕원 기자]
1. 5·18민주화 운동 관련 서술
가. 12.12에 대한 기술 왜곡 <12.12사태가 아니라 12.12 군사반란임(1997. 4. 17 대법원 판결)>
나.‘1980년 5월 17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통해 정치적 개입을 본격화하였다’는 기술(치밀하게 준비된 신군부의 내란과 5.17비상계엄확대 조치가 정확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음)
다.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5월 18일 광주에서 전남대생들의 주도록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신군부는 계엄군을 광주에 투입하여 과잉 진압하였다>는 기술(계엄군의 폭력진압과 대학생 시위의 선후가 바뀌어 기술되어 있음)
라.‘수습위원회와 계엄군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계엄군이 군대를 투입하여 전남도청을 장악하였다’는 기술(마치 평화적인 협상이 이루어졌고, 이런 협상이 결렬되어 불가피하게 계엄군이 진입했다는 내용으로 이해됨. 끝까지 이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한 쪽은 광주 시민이었고, 이를 거부하고 총과 탱크로 수많은 시민을 살상하고 강제진압한 쪽은 계엄군이었음. 당시 수습위원회에서는 과잉진압 인정 및 책임자 처벌,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계엄군을 이를 거부하고 강제 진압함)
마. 본문 중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된 내용 없이 사진과 설명글로 대체함(5·18민주화운동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과 이후 평가와 의의가 담겨져야 함)
바.‘5·18민주화운동은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기술로 구체적인 내용 생략(전두환 노태우가 5·18과 관련하여 내란목적 살인죄로 대법원에 의해 사법처벌 받았다는 내용이 빠져 있음 → 국가기념일이 되었다는 내용 생략)
2.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서술
가. ‘성진회’를 ‘독서회 중앙 본부’로 바꾸어야 함.
나. 광주학생항일운동기념비→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수정되어야 함.
나. 일본과 만주, 미주 등 해외 확산 서술이 누락됨.
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성격 규정 축소됨(미래엔 교과서는 <학생들이 앞장서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참여한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규명한 반면 국정교과서는 <학생 주도로 이루어진 최대 민족운동>으로만 서술)
3. 호남 의병 관련 서술
가. 분량 대폭 축소(미래엔 교과서는 한말의병에 대해 3페이지 분량으로 다루고 있으나 국정교과서는 1 1/2페이지로 축소 기술)
나. 호남의병에 대한 서술 축소(1908~1909년까지 가장 활발하게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던 호남의병에 대한 서술을 단 몇 줄로 정리. 반면 미래엔 교과서는<의병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몰락 양반, 평민, 천민 출신 의병장이 활발한 호남지방이었다>고 명시됨. 호남의병의 토벌과정에 대한 서술도 미래엔 교과서는 <호남의병 토벌에서 의병장 100명, 의병 4000여 명이 체포 학살되었다>고 명시한 반면 국정교과서는 <일제는 호남의병 세력을 꺾고자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쳐 의병을 학살하였다>고만 서술.)
다. 지도의 의병장 소개에서 호남지역 누락(정미의병장으로 안규홍만 표시함. 호남의병의 맹주인 기삼연, 김태원, 심남일, 전해산 등 일제에 의해 거괴로 지목되었던 의병장들이 전혀 업급조차 안됨)
4. 여수·순천 10·19사건 관련 서술
가. 분량 축소(미래엔 교과서에 12줄로 서술했던 것을 국정교과서는 단 5줄로 압축. 특히 미래엔 교과서는 사진을 게재한 반면 국정교과서는 사진 삭제)
나. 여수·순천 10·19사건의 배경 성격 누락(제주도 출동 반대, 통일 정부 수립 등 사건의 배경이 되는 14연대의 구호 삭제.)
다. 공권력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삭제(미래엔 교과서는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도 일어났다>고 서술한 반면 국정교과서는 관련 서술 삭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