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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매달 반복되는 원발성 월경통, 프로스타글란딘과 중추신경 감작의 연결고리 풀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자궁이 보내는 경고음, 원발성 월경통의 원인과 유병률 - 원발성 월경통(Primary dysmenorrhea)은 골반 내 뚜렷한 기질적 이상 없이 월경 주기에 맞춰 발생하는 하복부의 경련성 통증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70개국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원발성 월경통은 여성 인구에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학업·업무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대표적 여성 건강 문제로 지목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통증의 핵심은 자궁 내막에서 과도하게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자궁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감소시켜 허혈성 통증을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월경통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며, 점차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상태를 초래하여 신경학적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진통제만으로 월경통 관리가 어려운 이유와 숨은 위험성 - 현재 원발성 월경통의 1차 치료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경구 피임약이 주로 처방됩니다. 이들 약물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하여 급성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통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장애, 신장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어 복용을 중단하곤 합니다. 식물 유래 한약 치료(plant-derived therapies)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기존 약물의 한계와 부작용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월경통이 포함되면서, 표준화된 한약 치료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월경통이 동반하는 심리적 부담입니다. 매달 반복되는 심한 통증은 신경면역학적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진통을 넘어 신체 전반의 신경학적 안정과 염증 제어를 돕는 다각적인 접근이 절실합니다. 3.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한 월경통의 뇌과학적 재해석 - 최근 뇌과학 연구는 월경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의 신경영상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원발성 월경통을 앓은 여성들은 통증을 지각하고 조절하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대뇌피질-변연계 등) 구조와 활성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자궁에서 시작된 말초의 염증 신호가 뇌의 통증 조절 회로를 교란시켜,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월경통 치료가 자궁 수축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과흥분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4.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러한 맥락에서 한의학 치료는 월경통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효과와 기전이 최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뇌의 통증 조절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f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침술은 월경통 환자의 비정상적인 뇌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여 중추성 진통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양한 침 관련 치료를 비교 분석한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침 치료는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19년간 진행된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에서는 원발성 월경통 환자에게 꾸준히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신경면역 조절 기전을 통해 향후 우울증으로 이행될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침 치료가 단순 진통을 넘어 중추신경계 보호 효과를 지님을 의미합니다. 한약 역시 다양한 약리 성분이 여러 병리적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여 자궁 내 염증 환경과 혈류 개선에 기여합니다. 월경통에 다용되는 대표적 처방인 온경탕은 최신의 인공지능 기반 약리분석 연구를 통해 염증 발현의 핵심 경로인 PI3K/AKT/NF-κB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하복부의 혈류에 장애를 야기하는 원인 염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근래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는 월경질환 치료에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계지복령환이 위약군에 비해 월경통 강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특정 처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발표된 국내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도 환자 맞춤형 한약 치료가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고 통증 지속 시간을 단축하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월경통 자가 관리법 - 임상적인 한의 치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관리 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만성 월경통을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요법 :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천연 진통제입니다. 2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종합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규칙적인 요가, 스트레칭, 중등도의 유산소 운동은 골반 내 혈류 순환을 개선하고 통증 유발 물질을 배출시켜 월경통 강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기저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온 유지와 하복부 보온 :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응혈어(寒凝血瘀, 차가운 기운이 혈액을 뭉치게 함)'는 실제 생리학적 혈관 수축과 일치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골반 근육의 긴장을 풀고 미세혈류 순환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생리통을 '여성이라면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진통제에만 의존한 채 위장 장애와 우울감을 감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궁의 국소적 염증을 다스리고 중추신경계의 예민함을 잠재우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운동 습관을 통해, 매달 찾아오는 통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de Arruda GT, Barbosa-Silva J, Driusso P, Pathmanathan C, Armijo-Olivo S, Avila MA. Worldwide prevalence of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cross 70 countries. Pain. 2026 Jan 1;167(1):41-55. doi: 10.1097/j.pain.0000000000003768 2.Iacovides S, Avidon I, Baker FC. What we know about primary dysmenorrhea today: a critical review. Hum Reprod Update. 2015 Nov-Dec;21(6):762-78. doi: 10.1093/humupd/dmv039. 3.Cho SI, Jung HJ, Park M, Kim DI. Effectiveness and safety of herbal medicine on treatment of dysmenorrhea: An analysis of a multicenter, p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Integr Med Res. 2026 Mar;15(1):101209. doi: 10.1016/j.imr.2025.101209 4.Wu L, Xu Lou I, Hu Z, Wang G, Deshpande SV, Cáceres-Matos R. Efficacy of Plant-Derived Therapies for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ytother Res. 2026 Apr 15. doi: 10.1002/ptr.70324 5.Tsai IC, Hsu CW, Chang CH, Lei WT, Tseng PT, Chang KV.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Different Exercises for Reducing Pain Intensity in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Sports Med Open. 2024 May 30;10(1):63. doi: 10.1186/s40798-024-00718-4. 6.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2023:8307249. 7.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 Feb 18;2023:8307249. doi: 10.1155/2023/8307249. 8.Liao CC, Lin CL, Tsai FJ, Chien CH, Li JM. Acupuncture's long-term impact on depression prevention in primary dysmenorrhea: A 19-year follow-up of a Taiwan cohort with neuroimmune insights. J Affect Disord. 2024 Jan 1;344:48-60. doi: 10.1016/j.jad.2023.10.013. 9.Li XL, Jin Y, Gao R, Zhou QX, Huang F, Liu L. Wenjing decoction: Mechanism in the treatment of dysmenorrhea with blood stasis syndrome through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erification. J Ethnopharmacol. 2025 Jan 30;337(Pt 1):118818. doi: 10.1016/j.jep.2024.118818. 10.Luo Y, Mao P, Chen P, Li C, Fu X, Zhuang M. Effect of Guizhi Fuling Wan in primary dysmenorrhea: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Ethnopharmacol. 2023 May 10;307:116247. doi: 10.1016/j.jep.2023.116247.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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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제철 음식과 탄소 중립 그리고 환경교육의 재인식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작년 겨울, “할아버지, 이 딸기 맛이 좀 이상해~.” 제철이 지난 시기에 어린 손녀가 먹던 딸기를 내려놓으며 하던 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 지난 과일의 맛은 6살 아이의 기억과 입에도 낯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딸기 한 알을 우리 식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날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만큼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나 과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가뭄, 폭우, 태풍, 식량 위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런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도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은 그 자체가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이나 비제철 작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평균 11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인공조명, 난방, 수분조절 등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곧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0년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겨울에 먹는 딸기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약 3.4kg의 CO₂로 밝혀졌다. 반면에, 제철인 봄에 재배된 딸기는 0.8kg의 CO₂로 훨씬 적다. 같은 딸기이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철 급식’을 운영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철저한 탄소 중립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는 2022년부터 ‘제철 급식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한 주일씩 제철 재료로만 구성된 메뉴를 만들고, 식사 후에는 환경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한 학생은 “처음엔 낯선 반찬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연이 지금 주는 맛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먹는 음식이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때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끄는 울림 있는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제철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소비함으로써 난방, 냉방, 장거리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업의 활성화이다. 식재료는 대개 지역 농산물이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식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식문화의 회복이다. 제철 음식은 자연이 주는 최적의 영양 상태를 가진다. 건강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소비자로서의 책임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 선택의 윤리성과 환경적 영향을 배움으로써, 더 넓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제로 푸드 마일(Zero Food Mile)’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한 학생이 쓴 글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지구에 무게가 될 수도, 지구를 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철이라는 건 단지 맛있는 시기가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제철 음식 먹기’는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실천이자 위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은 거창한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경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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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한·독 미래 교육의 만남: 기술적 수용성과 윤리적 성찰의 글로컬 상생을 향하여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 따스한 봄 햇살이 깊숙이 내려앉는 이 계절, 전라남도와 독일 브레멘·니더작센주가 미래 교육이라는 가치 아래 국경을 넘어 손을 맞잡았다. 양국 교육 교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되는 전라남도교육청교육연수원(JETI)과 독일 브레멘주교육연구원(LIS)·니더작센주 교육전문가의 교원 공동 연수를 앞두고, 수많은 교육 관계자들과 교사들이 뜻을 모아 연수를 준비해 왔다. 필자 또한 양국 교원들의 교육적 고뇌가 담긴 발제문들을 한국어와 독일어로 다듬고 살피는 과정에 동참하며, 비록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마음만큼은 내내 뜨거웠음을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교육의 본질은 결국 아이들을 가슴에 두고 서로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입하는 정성과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장의 수많은 손길이 모여 시작된 헌신이 인류 보편의 가치와 맞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글로컬(Glocal) 교육의 진정한 서막을 목도하게 된다. 이 역사적인 만남이 뜻깊은 결실을 보게 된 배경에는 교육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교육 리더들과 실무자들의 결단과 헌신이 있었다. 전남 담양교육지원청 교육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혜안,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한·독 공동 연수라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교육연수원장과 연수기획부장, 그리고 교육연구사의 교육적 진심이 맞물려 이 경이로운 무대가 완성되었다. 형식주의와 일회성 퍼포먼스를 과감히 걷어내고, 오직 교사와 학생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했던 이들의 교육 철학은 전남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대한민국 공교육 전반에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이러한 글로컬 실천의 중심에서 이루어진 양국 교육의 만남은 '기술 수용성'과 '윤리적 성찰'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거시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번 교류의 핵심 축인 ‘민주주의 교육’, ‘지속가능발전 교육(ESD)’, 그리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교육’이라는 글로벌 3대 의제는 오늘날 지구촌 전체가 마주한 문명사적 위험이자,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래 세대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공동의 숙제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과 전남의 교육은 인공지능과 디지털 인프라를 빠르게 흡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기술적 수용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반면 독일의 교육은 디지털 전환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주권, 그리고 강력한 기술 윤리적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인간 중심의 철학적 브레이크를 밟아왔다. 따라서 속도를 내며 질주하는 한국의 디지털 교육과, 방향과 안전을 철저히 점검하는 독일의 윤리적 교육이 만난 것은 단순한 친선을 넘어 미래 문명을 선도할 상호 보완적 융합의 계기다. 학교 현장을 방문하는 동안 디지털화가 가져온 편리함 뒤에 숨은 인간 소외 현상, 그리고 알고리즘 의존으로 인한 비판적 사고 저하를 깊이 염려해 온 독일 교사들의 고뇌는 대한민국 교육이 쫓던 속도전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반대로 한국의 역동적인 디지털 수업 모델과 담양 관내 학교에서 펼쳐진 생태·역사·진로 중심의 유연한 교육과정은 독일 연수단에게 미래 교육의 실천적 가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었다. 주목할 만하게도 교류 첫날, 담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5·18 민주화운동' 주제의 현장 수업은 양국 교육자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선사했다.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이 수업에서, 독일 연수단은 한국 초등학생들의 높은 역사적 문제의식과 성숙한 태도에 큰 감동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처럼 국경을 초월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뜨겁게 공유했던 상생의 현장 속에 존재한다. 이번 한·독 교원 교류는 단순한 지역 단위의 연수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거버넌스를 확장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향후 대한민국 교육 정책을 이끌어갈 선구자들과 행정 담당자들에게 세 가지 정책적 제안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글로벌 교육 교류에 대한 지속가능한 행정·재정적 지원의 확대와 제도화가 시급하다. 미래 교육의 도전과제는 개별 지역이나 국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정책 담당자들은 지역의 우수한 교육 자산이 글로벌 무대와 중단 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전용 예산을 확보하고 수립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기술' 중심의 디지털 수용성 정책에서 '철학과 윤리' 중심의 가치 정책으로 확고하게 대전환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 보급률이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속도라는 수치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독일 교육이 보여준 개인정보보호, 데이터 윤리, 그리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AI 리터러시'를 대한민국 교육과정 전반에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기술을 다루는 테크니션을 넘어, 기술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사수하고 다스리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일회성이자 일방향적인 교원 연수를 넘어선 '글로컬 교육공동체 및 학생 교류 모델'의 정립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교사들의 만남과 사유의 시간은 반드시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의 실질적인 상호 교류로 이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세계의 학생들과 민주주의와 인권, 디지털 윤리를 주제로 함께 토론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지역의 특수성과 세계의 보편성을 잇는 글로벌 교육 네트워크를 국가 정책 차원에서 밀어주어야 한다. 이번 교류는 현장 리더들의 교육적 혜안과 보이지 않는 실무진의 땀방울이 맞물려 일궈낸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역동적인 출발점이다. 참된 교육은 외형적 형식을 넘어 내실 있는 가치를 채우는 일이며, 교사의 뜨거운 가슴을 통해 아이들의 숨결을 온전히 느껴야 하는 본질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이번 한·독 교류가 전남의 대지 위에 가꾸어 놓은 글로컬 상생의 불씨를 이어받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거대한 디지털 해일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단단히 쥔 채 당당한 세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前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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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오지선다형 수능, 개선해야 할 교육의 본질을 가로막는 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지선다형 수학능력시험(수능)은 효율성과 공정성을 앞세워 오랜 기간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제 교육 전문가들과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 체제가 AI 시대, 최첨단 과학·기술의 디지털 시대에는 대한민국 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강력한 틀이라는 사실에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배출한 유능한 엘리트들은 실제로는 교육 현장에서 빠른 시간에 정답을 찾는 ‘기술’을 익히는 구조에 남다르게 익숙한 인재들이었다. 한 교육 전문가는 “수업 중 학생들이 ‘답이 몇 번이냐’를 먼저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지적하며, 문제해결보다는 시험 요령에 집중하는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이 같은 경향은 사교육 의존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이루어 왔다. 왜냐면 객관식 수능은 ‘선택지를 제거하는 기술’을 요구하는 형태고, 이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일수록 전문 사교육이 의존해 효과를 얻어 결국 계급의 세습화를 부채질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내의 수능 운영 방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제한적이다. 다만, 2028학년도부터 서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며, 이를 통해 사고력 평가 강화가 기대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다만, 공정성과 비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논의들은 개관식의 한계를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같은 서술·논술형 대입 시험은 사고력과 표현력을 측정하는 데 유리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술형 문항 도입에 대해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깊이 있는 성찰 능력을 측정할 수 있어 진일보한 방법”이라며, “2028학년도부터의 도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입시 전문가는 “서술형 문항은 전산 채점이 어렵고, 채점 기준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빈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역시 채점의 신뢰성과 관리 비용 문제는 현실적인 장애물로 지적된다. 앞서 말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전통적인 논술형 중심 평가 방식으로 역사적으로 사고력과 논리적 표현을 핵심으로 여겼다. 프랑스어 과목은 수험생이 출제된 주제에 대한 긴 글을 작성해야 하며, 수학은 풀이 과정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독일, 이탈리아, 영국도 유사한 방식의 논술·서술형 대입 평가를 채택하고 있어, 학습자의 ‘사고하는 능력’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흐름은 우리 교육도 단순한 지식 암기가 아닌 사고력 중심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수능은 평가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만, 교육이 지향해야 할 사고력, 창의성, 다양성이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정답 중심의 구조는 이미 변화의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에 따라서는 수능 문제의 ‘해킹’조차 가능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선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상을 위한 ‘교육’이다. 여기엔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으로의 전환은 필수다. 이제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수능의 고득점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내내 문제 풀이 기술을 익혀 빠르게 정답을 찾는 것만이 학창 시절의 고정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이렇게 길러진 우리의 엘리트들은 토의⋅토론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인재로 고위직에 올라 공인된 인재들임에도 ‘공부머리’와 ‘일머리’의 극심한 부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객관식 정답 찾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기존의 시스템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과 반발로 밖에 볼 수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랴”는 말처럼 수능 개혁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개선이 가능한 핑계 수단일 뿐이다.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행한다. 이제 수능 개혁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의 미래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필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수능 개혁을 도모하고 대비하는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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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차트는 읽지만 삶은 읽지 못하는 시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차트를 읽는 데는 민감하지만 삶의 방향을 읽는 데는 서툴러지고 있다. 투자 광풍과 가짜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에 한국 교육의 책임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보다 ‘따라가는 법’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주식 열풍은 결국 돈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양극화와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집단 심리의 거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모든 시대의 광풍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암호화폐 열풍도 당시에는 모두 새로운 질서와 미래의 약속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끝내 남는 것은 본질이었다.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이성의 힘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 공식은 배웠지만 자본의 원리는 배우지 못했다. 문제를 푸는 훈련은 반복했지만 위험을 판단하는 능력은 익히지 못했다. 객관식 시험에 길들여진 사회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을 만든다. 삶은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잔인한 진실은 세상이 객관식 시험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상승하는 종목들을 보라. 반도체와 인공지능, 전력과 에너지 전환 산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먼저 반영하고 있다. 상승하는 자산의 본질은 ‘변화에 대한 감각’에 있다. 전력 기업의 상승은 에너지 질서의 전환을 예고하고 인공지능 기업의 부상은 인간의 노동과 사고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미래의 방향을 읽고 있는데 우리의 교육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주식은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낼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교육보다 시장의 움직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주가를 확인하면서도 정작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무관심하다. 자본은 사회를 움직일 수 있지만 인간의 품격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존재는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고 말했다. 지금 교육에 필요한 것도 단순한 제도의 개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다. 질문할 수 있는 인간, 의심할 수 있는 인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다. 교육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인간’이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유행하는 답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힘은 긴 독서와 토론, 예술과 철학, 그리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 속에서 단련된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깊은 내면이다. 차트를 읽는 능력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만 삶의 방향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를 살아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다. 미래를 주도적으로 살아갈 학생에게 교육에서 그 힘을 길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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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백제의 이름, ‘밝은 나라’에서 ‘일본’까지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는 과거를 읽는 일이지만, 단지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는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 국호(國號), 즉 나라의 이름을 새삼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어원 풀이가 아니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은 후대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큰 자산이 된다. 우리에게 백제는 교과서 속에서 흔히 “한반도 서남부의 소국,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 학계와 현장의 발굴은 그 단순화된 서술에 물음표를 던진다. 백제의 범위는 더 넓었고, 영향력은 훨씬 깊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이름이 지닌 의미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풍부했다. □ 백제라는 이름의 여러 얼굴 문헌과 금석문에는 백제의 국호가 한 가지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百濟(백제) 말고도, 광개토대왕비에는 百殘(백잔), 다른 기록에는 十濟(습제), 또 이체자인 佰濟, 남부여(南扶餘)라는 표기도 보인다. 일본에서는 倶太羅(구다라), 百濟(일본식 발음 구다라)라 불렀다. 더 나아가 은유적 표현으로 扶桑, 風谷, 半島라는 지칭까지 섞여 있다. 이처럼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표기들이 얽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이 찾는 것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어원 열쇠”이다. □ ‘백’과 ‘제’, 문자에 담긴 빛과 물 먼저 ‘백(百)’이라는 글자를 보자.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본래 엄지손톱의 흰빛을 그린 상형이었다. 그 흰빛이 곧 밝음, 순수함을 뜻하게 되었고, 후대에 ‘많다’의 의미가 붙으며 수사 ‘백(100)’이 된 것이다. 결국 그 뿌리는 ‘밝음’이었다.([그림 30] ‘百’ 참조) ‘제(濟)’는 본래 제나라의 ‘제(齊)’에서 갈라져 나온 글자다. 물(水) 변이 붙으며 강과 관련된 뜻으로 발전했다. 중국의 제수(濟水)와 연결되고, 후대에는 ‘건너다’, ‘구제하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러니 百濟는 문자적으로도 ‘밝음’과 ‘강’이 결합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그림 30] ‘濟’ 참조) □ 예군 묘지명에 새겨진 단서 2011년, 중국 서안에서 발견된 한 묘지명은 백제사 연구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백제계 인물로 추정되는 ‘예군(禰群)’의 묘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日本餘燼(일본의 여초, 전란 뒤 살아남은 무리)”, “扶桑에 의지하여 죽임을 면했다.” 여기서 ‘일본’을 단순히 열도, 즉 야마토로 읽을 수는 없다. 당시 맥락에서 ‘餘燼(여초)’는 멸망한 나라의 잔민을 뜻했으니, 이는 분명 백제를 가리킨 것이다. 같은 문맥의 ‘扶桑’이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은유로 쓰였음을 고려하면, 문장은 이렇게 읽힌다. “망국 백제의 유민이 일본(扶桑)에 의지하여 살아남았다.” 즉, 묘지명 속 ‘日本’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로 백제를 지칭했다고 보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 왜가 일본이 되다, 그리고 백제 『신당서』는 함형 원년(670)에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고 기록한다. 『삼국사기』 문무왕 10년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인다. 하지만 『구당서』와 『신당서』의 서술은 미묘하게 다르다. 한쪽은 “일본이 예전 작은 나라였는데 왜를 병합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왜가 일본을 병합했다”고 전한다. 명칭이 혼용되던 전환기의 혼란이 드러난다. 해석은 이렇다. 백제 멸망 이후 유민과 지배층이 열도 정치에 깊이 편입되었고, 그 결과 670년 국호 ‘일본’ 채택은 백제 재기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단순히 왜의 새로운 이름이 아니라, 백제인의 자의식이 투영된 이름이었다. □ ‘해의 근본’, 일본과 백제를 잇다 여기서 흥미로운 언어학적 연결고리가 등장한다. 고구려 건국지로 알려진 ‘졸본(卒本)’은 광개토왕비에는 ‘홀본(忽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홀’은 ‘해’를 뜻하는 말과 음운적으로 이어지고, 결국 ‘日(해)의 本(근본)’이라는 ‘日本’의 의미망과 연결된다. 소서노가 졸본계 부여 혈통이라는 전승, 해모수·주몽의 태양적 신화 계보와 겹쳐 보면, ‘해의 근본’이라는 관념이 이미 고대 건국서사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백제, 밝음의 나라 우리 고대 국호 가운데는 태양과 광명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조선(아침 해가 비치는 나라), 부여(벌판, 햇볕이 드는 곳), 고구려(높음, 태양), 발해(큰 바다에 뜨는 해) 모두 그렇다. 백제도 예외가 아니다. 국어학자 양주동은 백제를 ‘밝은 성(城), 곧 광명성’으로 풀이했다. ‘백’은 밝음, ‘제’는 성·고을을 뜻하는 자을(齊)의 음차라는 것이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가 비치는 나라’라는 뜻으로 확장된다. 이는 예군 묘지명의 ‘日本(해의 근본)’ 은유와도 정확히 호응한다. ‘박달’이라는 말도 같은 계열이다. ‘밝-달(양달, 해가 드는 곳)’이 ‘배달’로 발전했고, 이는 곧 밝은 나라, 태양의 나라를 뜻했다. 백제의 이름도 바로 이 ‘밝음’의 계열에 속한다. □ 다양한 별칭과 변이 물론 백제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도 있었다. ‘十濟(습제)’는 몽골어·튀르크어의 ‘온(온, 열)’과 연결짓는 가설이 있지만, 『수서』의 “백가가 바다를 건너 백제라 부름”과 같은 후대식 설명에 가깝다. ‘남부여(南扶餘)’는 부여계 혈통을 강조한 표기였다. 일본에서 부른 ‘구다라(倶太羅)’는 어원설이 다양하다. ‘큰 나라(쿠) + 타라(땅)’라는 풀이, 공주 구드레 나루에서 비롯되었다는 지명설, 심지어 브리야트계 민족명과의 연결까지 제기된다. 일본어 속 ‘구다라나이(くだらない, 하찮다)’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설까지 있지만, 아직 분분하다. □ 맺으며 사료, 금석문, 언어학, 신화적 상징을 종합하면, 백제라는 이름은 결국 ‘밝음, 해, 근본’이라는 의미장으로 수렴한다. 예군 묘지명 속 ‘日本’이 백제를 지칭했다는 해석은, 백제의 멸망 이후에도 그 이름과 상징이 일본 열도 속에서 살아남아 정치적 재편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660년 백제가 무너진 뒤, 불과 10년 만에 왜가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 사실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제인의 기억과 정체성이 열도에 깊이 뿌리내린 사건이었다. 결국 백제는 ‘밝은 땅, 해의 나라’였다. 그 이름 속에는 태양의 힘과 동아시아를 가로지른 백제인의 활력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 우리가 백제를 다시 불러내는 까닭은, 단순히 잊힌 나라를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에 깃든 빛을 오늘의 자존과 내일의 역량으로 되살려내기 위함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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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조작했는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역사는 왜 늘 패배자를 탓하는가 역사를 읽다 보면 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술과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쳤다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의 백제 의자왕,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은나라 주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방탕했기 때문에 나라가 무너졌을까? 사실 당시 모든 군주는 사냥과 연회, 술자리를 즐겼다. 그것은 권위를 과시하고 신하들과 결속을 다지는 통치 행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망한 나라의 군주만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라는 낙인이 찍혔다. 후대 사관이 새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이야기였던 셈이다. □ 폭군 대 성인 - 오래된 이분법 사마천은 진시황을 ‘정신병자 같은 군주’로 묘사했다. 김부식은 신라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의 왕들을 깎아내렸다. 진수 역시 한나라의 권위를 세우려 진나라 군주를 매도했다. 새로운 권력이 옛 권력을 비난하는 방식, 이것이 역사의 오래된 패턴이다. □ 진시황과 공자, 정통성의 싸움 이 패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분서갱유다. 진시황이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었다는 사건이다. 흔히 ‘광기의 폭군’ 이미지로 소개되지만, 그 본질은 지식인 탄압만이 아니었다. 공자와 유생들은 화하족 중심의 정통 서사를 세우려 했다. 반면 진시황은 동이족과 연결된 뿌리를 지니면서도, 자신을 화하 문명의 적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공자가 순임금의 입을 빌려 “한나라는 야만”이라고 폄훼한 기록은 진시황에게 치명적인 도전이었다. 분서갱유는 곧 정권의 정체성과 역사적 위치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 1917년, 땅속에서 나온 반격 이 갈등을 비춰주는 증거가 1917년 중국 감숙성에서 드러났다. 진나라 선조의 제기에서 “혁사만하(虩事蠻夏)”에서 온 말이다. 즉 공자보다 앞서 100년 전에 공언한 진목공의 “혁사만하(虩事蠻夏)”를 뒤집은 말이다. 진목공이 ‘하족의 나라를 야만스러운 놈들’이라고 지목한데 대한 반발로 공자는 거꾸로 100 년 후에 나타나 진나라가 속한 이(夷) 족을 오랑캐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이(夷) 족 출신의 순(舜) 임금이 말한 것처럼 꾸며서 완전범죄를 기도했다. '혁사만하(虩事蠻夏)'는 “오랑캐 하나라를(蠻夏) 두려워 떨게 하고 괴롭히라”는(虩事) 말이다. 공자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새겨진 글자였다. 여기엔 진나라가 이미 화하 중심의 정통 서사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음이 기록돼 있다. 제기에는 12대 조상의 이름도 적혀 있는데, 동이족 시조인 소호와 연결되는 흔적이 보인다. 진나라의 기원이 화하족만의 계보가 아니라는 증거다. □ 글자 속의 갈등 흥미로운 건 ‘혁사 만하(虩事蠻夏)’라는 네 글자다. ‘만(蠻)’은 원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뱀이 덧붙으며 ‘야만’으로 굳어졌다. 반면 ‘하(夏)’는 원래 ‘여름 더위에 지쳐 앉은 사람’을 뜻했는데, 유가 지식인들이 이를 문명의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결국 동이와 화하의 긴장은 문자 자체에 각인됐다. 혁사 만하라는 표현은 진나라가 화하 중심 서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 유물의 목소리 은허의 갑골문 발견 이전까지 중국 학자들은 하·은 시대를 전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발굴된 갑골문과 청동기 명문은 사마천의 기록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진시황을 왜곡한 서술과 달리, 유물은 진나라가 동이와 화하의 경계에서 성장한 집단이었음을 증언한다. 혁사 만하 명문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학계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불편한 증거가 우리가 역사 서술의 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진시황은 폭군으로, 공자는 성인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히 ‘폭군 대 성인’의 구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 정통성과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었다. ‘혁사 만화’라는 명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사관의 기록인가, 아니면 땅속 유물이 남긴 증언인가? 역사는 늘 권력에 의해 쓰인다. 하지만 글자와 유물은 권력이 지우려 한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제 우리는 교과서 속 정통 서사 너머, 실제로 남겨진 기록을 다시 읽어야 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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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조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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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떡볶이, 궁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음식
- [교육연합신문=원선재 학생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푸드(K-Food) 열풍의 중심에는 매콤달콤한 맛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는 떡볶이가 있다. 단순한 길거리 음식을 넘어 한국의 상징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떡볶이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즉석 떡볶이’의 성지인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 다녀왔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매우 많았고 각 가게마다 들어가기 위해 줄들이 길에 늘어서 있었다. 20분가량 대기하고 들어간 매장은 매우 컸으며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큰 냄비에 떡, 라면, 오뎅, 튀김 등등 원하는 재료를 넣어 끓어 먹으며 마지막에는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 메뉴가 꿀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떡볶이가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부터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되었는지 떡볶이의 유구한 역사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 떡볶이의 기원-간장 양념의 궁중 음식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빨간 떡볶이와 달리, 떡볶이의 기원은 궁중 음식에 뿌리는 두고 있다. 고추가 임진왜란(1592년) 이후에야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떡볶이는 고추장이 아닌 간장을 주로 양념으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궁중 떡볶이는 왕이 먹던 고급 음식으로 맵지 않고 쇠고기와 다양한 채소를 곁들여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찜 종류의 요리였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하며 볶는 것보다는 양념장에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 형태에 가까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현대 떡볶이의 탄생-고추장과의 만남과 대중화 현재의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 개발되어 대중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 전후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됨녀서 비싼 쌀 대신 밀가루 떡을 활용한 분식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이는 떡볶이 제작 단가를 낮추어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까지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간식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신당동 떡볶이 골몰의 탄생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현대적인 고추장 떡볶이의 시초이자 ‘즉석 떡볶이’ 문화를 이끈 마복림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마복림 할머니가 서울 중구 신당동 동화극장 앞에서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떡볶이를 팔기 시작한 것이 신당동 떡볶이 역사의 출발점이다. 피난민들이 몰려들던 당시, 할머니의 독특한 양념 떡볶이는 큰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후반 가스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손님이 직접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무렵 주변에 유사한 떡볶이 가게들이 밀집하기 시작하며 ‘떡볶이 골목’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는 떡볶이 집마다 ‘DJ박스’를 도입하여 손님의 신청곡을 틀어주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먹거리와 놀거리를 동시에 제공하며 신당동 떡볶이 타운을 청춘들의 명소로 만들었고 골목의 번성기에 크게 기여했다. 이 곳은 단순한 음식 거리를 넘어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사와 분식 문화의 발달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 글로벌 K-푸드로서의 떡볶이 위상 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들이 떡볶이를 즐겨 먹는 모습이 전파되고,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레시피가 소개되면서 떡볶이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K-푸드로 자리매김했다. 매운맛을 즐기는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쌀떡, 밀떡, 다양한 토핑, 퓨전 소스 등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가진 요리로 미래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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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떡볶이, 궁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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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양산 풍경요양병원 제창민 병원장, "항암치료 이후가 진짜 시작"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안녕하십니까? 풍경요양병원 병원장 제창민입니다.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누구나 큰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치료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저는 환자분들이 단지 병을 치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신의 자리로 편안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병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풍경요양병원은 환자의 몸과 마음이 함께 치유되는 곳입니다. 면역력 회복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환자 한 분 한 분의 회복 과정에 함께 동행하는 병원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암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며, 그 길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 암환자들을 위한 암재활요양병원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무엇인가? 암환자들은 갑작스런 암 진단과 함께 힘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힘들기도 하지만 치료의 성공 여부,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 심리적인 불안감도 많아, 이 분들도 편안하게 치료 과정을 이겨낼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 건강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병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풍경이라는 이름도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에서 따왔다. 그 노래 가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라는 부분이 있다. 제 의도와 너무 일치하는 것 같아 이름짓게 되었고 환우분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 도대체 우리는 왜 암에 걸리는 것인지 설명해 달라. 제가 입원하는 모든 환자분들에게 처음에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다. 환자분들께 "왜 본인이 암환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남들에게 생기지 않는 암세포가 특별히 나에게만 생겨서 암환자가 되었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는 매일 수만 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긴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암환자한테만 암세포가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많은 수의 암세포가 생긴다면 다 암환자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 몸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면역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이 시스템이 작용하게 되면 우리 몸에서 생기는 암세포는 파괴되거나 파괴되지 않더라도 증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암환자가 아니라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는데, 내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언젠가부터 내 몸 안의 정상세포들이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을 만든다면, 그래서 내 몸의 정상세포들이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이 된다면, 이런 암세포들은 본인의 세포 특성에 따라 중단없는 증식을 하게 되어 궁극에는 종양의 형태로 우리에게 발견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암환자가 되는 것은 남들한테 생기지 않는 암세포가 특별히 나에게만 생겨서 암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면역력이 어느 순간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암세포에게 증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므로써 암환자가 된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암으로 진단받고 나면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많이 당황해 한다. 그걸 받아들이는 모양새는 다 다르지만, 은연중에 생명의 위협에 대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은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암은 이제 희귀 질환이 아니고 너무나 흔한 질환이 되어 있다. 암 발생률이 40%에 육박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 어떤 질병보다 발생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신 발생률은 높아졌지만 이겨내고 계속적인 생을 살아가는 비율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드문 병도 아니고 흔한 병이며, 치료가 불가능한 병도 아니라는 인식을 먼저 가지고 의료기관에서 치료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면 차분하게 치료를 받는 게 일차적인 접근이 되겠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의학적 치료는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지만, 그럼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되나 하는 것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알아 보고, 또 이것을 실천하는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내가 암환자가 된 것은 내 나름에는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온 생활습관이 나도 모르게 내 몸안의 환경을 내 몸의 정상세포가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런 상태에서 의학적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내가 내 생활습관을 이전과 똑같이 한다고 하면, 나는 계속해서 내 몸의 환경을 암세포한테 유리한 환경을 만들면서 살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암으로 진단된 이후에는 내 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내 몸의 컨디션을 저해하는 생활습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도움되는 생활습관들은 반드시 실천해서 내 몸안의 환경을 내 세포들이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는 컨디션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암환자들을 치료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학적 치료에 중점을 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암환자의 재활의 필요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리가 암환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면역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현대의학으로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암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의학적 치료만으로는 우리 몸의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암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이냐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비록 완벽하게 제거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몸의 암세포의 세력을 많이 줄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우리 몸의 면역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줄일 수 있으며, 우리는 우리 몸 안의 암세포를 증식 못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러면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 우리 몸의 면역력이 많이 저하되는 부분을 막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 떨어진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심할 경우 항암치료의 정도를 조절해야 하며 생활면에서도 음식, 운동, 정서적 안정, 수면, 기타 정상적 컨디션 회복에 도움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내 몸의 면역력의 정상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암 치료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우리의 면역력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현재의 암도 치료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암에 대해서도 대응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암재활요양병원은 정확히 어떤 치료를 하는 병원인가?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대학병원급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주 치료 방법이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 등이 되겠다. 그런데 이런 치료들이 치료과정에서 내 몸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오히려 많이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암재활요양병원에서의 첫 번째 목표는 이런 치료 과정을 잘 견뎌내게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 부분을 환자 혼자서 해내기가 쉽지가 않기에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물론 가족들이 많이 도와주겠지만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전문의료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에 대해서 관리를 해주거나 환자의 컨디션이 저하된 부분의 회복을 위해 의학적 도움을 주는 역할 등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암환자의 약화된 면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학적 요법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습관의 개선이 중요하다. 음식,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 일상의 활동에서 우리 몸의 정상 컨디션을 저해하는 요소는 배제하고,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을 습득하기 위해 교육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 우리가 우리 몸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통 암환자들이 주위에서 많이 권하기도 하고, 본인들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없는가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내 몸의 정상화는 그냥 내 생활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햇볕은 잘 쐬는지, 평소 심리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냥 잠에서 깨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아니 수면까지 포함해서 내 생활에서 과연 이런 생활들이 내 몸의 컨디션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를 고찰하고 방해되는 습관들은 배제하고 도움되는 습관들은 실천하다 보면 당연히 내 몸 안의 환경이 변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 몸 안의 환경은 내가 하는 이런 생활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우리 몸의 컨디션 정상화를 위해 습관들을 고찰할 때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 몸은 우리는 한 개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사실 우리 몸은 60조 이상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개체다. 그리고 이 세포들은 각각의 생명체다. 이 생명체들이 진화들 하면서 혼자 생활하는 것보단 이렇게 모여서 다핵세포로 살아가는 게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모여서 살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정상화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세포가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냐가 관건이다. 그럼 이 각각의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있지만 제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게 이 세포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잘 공급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 세포들이 그걸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우리 몸에서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이 대사되고 남은 노폐물이라든지 불필요한 독성물질들을 잘 배출시켜줘야 한다.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서 아주 기본적인 이 두 가지가 잘 이루어 져야 한다. 내 몸에서 이 세포들에게 이렇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필요 없는 것들은 치워 주는 역할을 누가 할 것이냐라고 할 때 혈액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환자들이 내 몸의 정상화를 위한 생활습관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이 과연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습관인지 방해가 되는 습관인지가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겠다. ■ 풍경요양병원에서는 암환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의학적 치료와 의학 외적인 관리를 병행하고 있는데 ▲의학적 치료-항암치료의 부작용 관리, 면역증강치료 ▲교육-암에 대한 개념잡기, 내가 무얼 해야 되는지에 대한 고찰(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을 위한 생활습관에 대한 고찰) ▲상담-불안과 걱정 두려움등 부정적 감정과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 주위에선 많이 접하게 되는 수많은 정보로부터의 혼란을 교육 및 상담을 통해 알맞은 정보 제공을 통한 심리적 안정 획득 ▲음식-정상적인 컨디션에 도움되는 식단 구성 ▲운동-신체 활동의 활성화를 통한 호흡 개선, 혈액순환 개선, 정서적 안정 ▲호흡, 명상-신체내의 원할한 산소 공급 및 정서적 안정을 도모 ▲그림그리기외 각종 집중향상 프로그램-일상에서 일어나는 잡생각 해소 등을 들 수 있다. ■ 풍경요양병원만의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첫 번째로 타병원에서 의학적 치료에만 주로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풍경은 환자의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이 암치료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인식하고, 이를 위해 환자들에 대한 교육, 상담 그리고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환자들 스스로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향후 일상생활에 복귀해서도 계속적으로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한 시스템이 타병원에 비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풍경요양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교육, 상담, 음식, 운동(산책, 요가), 호흡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받음에 있어서 타병원에 비해서 좋은 점이라고 평가해 주고 있다. 두 번째로는 저희 병원은 통도사와 영축산 앞에 위치해 환자들이 산책하고 운동하기에 좋은 지리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케어하고 있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풍경요양병원의 운영 철학과 향후 비전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삶을 되찾아 내 몸을 건강하게 하자”이다. 여기서 제대로 된 삶이란 육체적, 정서적으로 최대한 편안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습관에서 내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을 최대한 멀리하고, 정서적으로는 세상을 좀 더 편하게 또는 감사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 환자들에게 많은 상담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고, 환자들이 공감하면 같이 실천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고 있다. 풍경의 목표는 환자들이 단순히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그렇게 하므로써 건강한 신체로 살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풍경요양병원의 비전은 ▲암요양 표준 모델 구축 ▲면역력 강화 프로그램 확대 ▲힐링정원·명상실 조성 ▲퇴원 후 재택의료 지원 강화 ▲항암 부작용 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환자 한 분 한 분이 스스로를 건강한 몸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병원이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암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최근에 암환자들의 치료 후 정상 생활로의 복귀 성공률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암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이해하고 올바른 치료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다. 암치료는 암세포에 대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내 몸의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아주 주요한 요소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의사에게 맡겨 놓고,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파악하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다 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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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양산 풍경요양병원 제창민 병원장, "항암치료 이후가 진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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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글자 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흔적 우리는 매일 한자를 만난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자성어, 관공서 현판, 옛 비석의 문구까지. 그런데 그 글자들, 단순히 의미만 전달하는 도구일까? 강준식 선생은 최근 강의에서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회와 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적 장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蠻)·이(夷)·하(夏)’ 같은 글자에는 동아시아 고대사의 정체성과 권력 관계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 말이 꼬여 들리던 이방인, ‘만(蠻)’ 오늘날 ‘남만(南蠻)’이라고 하면 흔히 남쪽 오랑캐를 뜻한다. 하지만 원래 ‘만’자는 그렇게 험악한 뜻을 지니지 않았다. ‘만(蠻)’은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엔 있는데, 재미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양쪽에는 실타래 같은 선이 있고, 가운데엔 혀 모양이 들어가 있다. 마치 말소리가 얽혀 뒤죽박죽 들리는 듯한 모습이다. 즉,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던 셈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글자에 뱀 모양이 추가됐다. 단순히 언어가 다른 집단이었던 ‘만’은 어느 순간 “사악하고 위험한 오랑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정치적 긴장과 갈등이 고스란히 글자의 변천에 반영된 사례다.([그림 8] 참조) □ 활로 규정된 타자, ‘이(夷)’ ‘동이족’ 하면 중국 동방의 집단을 떠올린다. 글자의 변화 과정을 보면 그 이미지가 어떻게 굳어졌는지 알 수 있다. 초기의 ‘이’는 단순히 사람을 뜻하는 기호였다. 그런데 주나라 말기로 가면 활과 화살, 주살 모양이 들어간다. 동이족이 활을 잘 다루는 집단으로 인식되면서 글자 속에 “활의 민족”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다. 하지만 동이족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철기·청동기 문화와 사상 형성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집단이기도 했다. ‘이’자는 활로 대표되는 타자 이미지이자 동시에 동방 문화의 흔적을 담은 표식이었다.([그림 8] 참조) □ 여름에서 문명의 이름으로, ‘하(夏)’ ‘하(夏)’ 하면 떠오르는 건 중국 문명의 대명사다. 화하(華夏)라 부르면 곧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 칭하는 호칭이다. 그런데 갑골문 속 ‘하(夏)’는 달랐다. 원래는 ‘태양 아래 지쳐 앉아 있는 사람’의 그림이었다. 말 그대로 ‘무더운 여름’을 나타낸 글자였다. 하지만 춘추전국 시대 이후, ‘하(夏)’는 단순한 계절 이름에서 벗어나 ‘중원의 문명’을 뜻하는 상징이 됐다. 후대 학자들은 ‘하(夏)’를 ‘크고 중심적인 것’이라 풀이하며, 아예 중국 국가의 기원을 ‘夏 왕조’에 두려 했다. 여름 더위를 뜻하던 글자가 곧 정통성의 이름으로 변한 것이다.([그림 8] 참조) □ 글자가 말해주는 것 세 글자의 변천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한 줄, 한 점이 추가되면서 집단의 정체성, 권력의 시선이 담겼다. ‘만(蠻)’은 뱀을 품고 오랑캐가 되었고, ‘이(夷)’는 활을 들고 타자가 되었으며, ‘하(夏)’는 더위를 넘어 문명의 이름이 되었다. 문자는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권력이 필요로 하는 서사를 품었고, 후대의 해석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됐다. □ 우리가 읽어야 할 것 오늘 우리가 쓰는 글자에도 오래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단순히 언어학적 기호로 볼 게 아니라, 고고학과 문헌학, 정치사상사와 함께 읽어야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만(蠻)’의 뱀, ‘이(夷)’의 활, ‘하(夏)’의 태양 아래 앉은 사람. 이 작은 그림들은 모두 시대의 목소리다. 글자를 다시 읽는 일은 곧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였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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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가 말해주는 권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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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KBS '트랜스휴먼'이 던지는 교육적 메시지와 미래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즈음에 우리는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인간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최근 KBS의 다큐멘터리 '트랜스휴먼'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뇌과학, 로봇기술이 결합하며 인간 능력의 경계를 다시 쓰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과학 소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육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이 보여준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돕고,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지우고, 인간의 사고와 기계가 연결되는 세상, 이 변화 앞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기존의 지식 전달 중심 교육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기계는 인간을 능가해 지식을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암기한다. 따라서 단순 지식의 우열을 가리는 교육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트랜스휴먼'이 주는 가장 큰 교육적 의미는 ‘교육의 목적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지능과 초연결의 세계에서 교육은 더 이상 지식을 나열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확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초인류’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미래교육은 기술을 선도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이끄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할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보다 더 큰 사고력, 즉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학생들은 정답을 찾는 법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술의 목적을 묻고, 기술의 한계를 고민하는 윤리적 상상력이야말로 초겸손의 미래를 살아갈 진짜 능력이 될 것이다. 둘째, 초인류 시대일수록 감성·공감·관계 능력 배양이 더욱 중요하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아주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트랜스휴먼'이 보여주는 기술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성과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미래교육은 학생들에게 협력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는 어떤 AI도 대신해 주지 못할 인간의 본질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의 유연성이다. 급변하는 미래는 정해진 길(定道)을 따르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 실패를 통한 성찰, 끊임없는 자기 재창조가 가능한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는 힘’이 아니라,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혁신의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넷째, 미래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에 진짜 위기는 ‘능력의 격차’가 아니라 ‘존재의 균열’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 “너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를 묻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트랜스휴먼'은 우리에게 인간을 기술 뒤에 놓지 말고, 기술 앞에 세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 초인류가 오는 시대, 교육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길잡이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사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길의 끝에 어떤 인간이 서게 될지는 교육이 결정한다. 기술은 인간을 확장시키지만, 교육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완성은 더 빠른 인간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으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 초인류의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을 넘어서, 초인류의 시대를 이끌 인간을 기르는 교육, 그것이 바로 '트랜스휴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교육적 메시지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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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KBS '트랜스휴먼'이 던지는 교육적 메시지와 미래교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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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차선 변경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차선 변경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졌는데, 운전을 하다 고민한다. 차선을 바꿀까, 다른 길로 돌아갈까. 그 고민이 도리어 더 아프게 한다. 인생도 그렇다. 고민했고, 망설였고, 그러다 그냥 흘러갔다. 그래도 도착한다.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길.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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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차선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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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이족의 뿌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국 고대사의 서막을 장식한 두 나라가 있다. 은나라(상商)와 주나라(周). 중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 두 나라가 "중국 문명의 뿌리"처럼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 연구와 고문헌 해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두 나라가 사실상 “동이족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이족’ 하면 곧바로 중국이 말하는 ‘오랑캐’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시선이다. 동이는 단순한 주변 세력이 아니라, 황하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대 동방의 주역이었고, 심지어 은과 주, 즉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 깊숙이 관여한 주체였다. □ 알에서 태어난 시조, 은나라와 동이 신화의 닮은꼴 은나라 시조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사기』 은본기에서 사마천은 은나라의 시조를 “설(契)”이라 적는다.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새의 알을 삼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른바 “난생(卵生) 신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장면이 보인다.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 신라 혁거세가 알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은나라와 한반도의 신화가 같은 원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은나라가 분명히 동이 문화권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단서다. 물론 은나라 시조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죽서기년』은 순(舜) 임금의 아들 의균(義均)이 상(商)에 봉해져 시조가 되었다고 하고, 『노사』에서는 그가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전한다. 『금문신고』 같은 다른 기록에서는 설의 부친이 곤(鯀), 조부가 전욱(顓頊)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계보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은나라와 주나라 시조의 뿌리가 모두 “제곡(帝嚳)”이라는 사실이다. 제곡은 누구인가? 바로 동이족의 대표적인 제왕, 소호(少昊)의 손자다. 즉, 부계 혈통에서 은과 주는 모두 동이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 은과 주, 형제의 나라 주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 棄(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농업의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은의 시조 설과 주의 시조 후직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만 다른 형제다. 다시 말해, 은과 주는 처음부터 같은 씨족 혈통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시조의 이름이 설이든 의균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고, 주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순(舜) 임금 역시 맹자가 ‘동이족 출신’이라고 못박았으니, 그의 아들이 시조가 되었다는 『죽서기년』의 기록 역시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즉, 중국 고대사의 첫 장을 연 두 나라, 은과 주의 뿌리는 동이족이었다. □ 은허의 발굴과 불편한 진실 문헌만으로는 믿기 어렵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가 이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은허(殷墟). 하남성 안양에서 발굴된 이 유적은 은나라가 실존했던 국가임을 처음으로 입증한 현장이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학계는 하(夏)와 은(殷)을 “전설 속 왕조”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은허가 모습을 드러내자, 은나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임이 명백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은나라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곧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이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관을 강조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역사공정’이다. 하나라(夏)를 실존 국가로 만들려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말이다. 왜냐하면 은을 첫 국가로 인정하면, 중국사의 출발은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중국은 실체가 불분명한 하나라를 억지로 실존 국가로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 동이족, 잊혀진 주인공 결국 고대 문헌 기록, 신화 전승, 고고학 증거를 종합하면 분명한 결론이 나온다.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까지, 이 두 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여전히 세부 논쟁이 많다. "은나라의 실제 시조가 설이냐, 의균이냐" 같은 문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의 문제일 뿐,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동이족의 피와 문화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중국 고대사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동이는 더 이상 ‘주변부 오랑캐’가 아니라, 문명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중심이었다. 황하의 문명과 요동·한반도·산동의 문화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다중적 기원이 바로 동아시아 고대사의 출발점이었다. □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날 "동이"라는 말은 중국의 시각에서 주변을 부르던 호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실체는 오히려 우리가 찾아야 할 기억이다. 우리가 쓰는 문자, 신화, 언어의 뿌리 곳곳에 은과 주, 그리고 동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 신화가 은나라의 신화와 닮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골문과 청동기 문양 속에서 동이계 도상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언어로 쓰인다. 오랫동안 동이는 ‘남이 적은 역사’ 속에서 주변인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문헌과 신화, 그리고 땅속에서 나온 유물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과 주,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서 동이는 결코 주변이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하나라를 내세워 은나라의 동이적 뿌리를 가리려 하지만, 땅속에 묻힌 증거와 오래된 신화는 여전히 그 사실을 증언한다. 은과 주, 중국사의 두 시원은 동이족의 나라였다. 이름이 무엇이든, 시조가 누구든, 그 뿌리만은 변하지 않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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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이족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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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Honoring royal spirits through centuries of tradition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With autumn fast arriving and quickly fleeting, the various palaces of the Joseon Dynasty are the perfect places to go to witness Korea in its four seasons. With the gray skyline and modern buildings forming a backdrop for vivid shades of red, yellow, and gold, Seoul creates a unique seasonal charm. Jongmyo, with its quiet pathways and serene traditional architecture, is one of the most peaceful places in Seoul to experience this autumn atmosphere. Jongmyo Shrine is located right next to these palaces, and with the cultural opportunities it offers, the heritage site holds significance for many, especially this time of the year. Jongmyo Shrine is the premier state shrine in the country to hold ancestral rites for kings and queens, emperors and empresses of Joseon and the Korean Empire. It was initially built to the east of Gyeongbokgung Palace in 1395, and at that time, there was only the Jeongjeon Shrine. In this single shrine, five kings–the four ancestors of reigning kings, including King Taejo, the founder of Joseon–were enshrined. However, King Sejong found that the deities of kings who deviated from the four ancestors required shrines, and therefore built Yeongnyeongjeon Hall. King Yeonsangun later changed the system of enshrinement, dividing the place by establishing “Sesil” and “Jocheon”. A “Sesil” was a king who had succeeded or had high merit, and a “Jocheon” was for kings with a short line of succession, or who had passed away. The “Sesil” was kept in Jeongjeon Hall, while “Jocheon” was moved to the Yeongnyeongjeon Hall. Source: Official Website of the Jongmyo Daeje (https://jongmyo.net/57) Jongmyo Shrine was inscrib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1995 for its well-preserved original structure and distinctive architectural style. Even more significant, however, are the Jongmyo Jerye Ritual and Jongmyo Jeryeak Music performed at the shrine, both of which are registered as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These traditions are uniquely Korean and represent a rich, comprehensive cultural heritage. The Jongmyo Jerye is a royal ancestral ritual held at Jongmyo Shrine, where the spirit tablets of past kings and queens of the Joseon Dynasty are enshrined. This year,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took place on November 1, marking the conclusion of the 2025 ceremonies, which occur annually on the first Sunday of May and the first Saturday of November. The ritual itself consists of two parts: the Substitute Rite and the Royal Rite. The ritual itself follows in this order: Chwiwi (positioning), Singwan-rye (Purification Rite), Cheonjo-rye (food offerings), Choheon-rye (first wine offering), Aheon-rye (second wine offering), Jongheon-rye (final wine offering), Eumbok-rye (Sharing of Blessings), Songsin-rye (farewell to the spirits), Mangnyo-rye (fire offering), and finally Mangnyo (completion). In addition, the Jongmyo Daeje includes Jeryeak, royal ancestral ritual music, and Ilmu, court dance. These extensive traditions reflect the significance of the history of these kings in Korea. Jongmyo Shrine features numerous rocky pathways, with signs warning against walking on them, as they are reserved for the spirits that roam the area. These small details are what make Korea such a historically and culturally significant location. In addition to the beautiful autumn foliage and sights, Jongmyo Shrine offers a cultural context of Korea, with traditions that honor the past while engaging the people of the present–a rare, yet beautiful opportunity for anyone visiting or living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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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The Jongmyo Autumn Ancestral Rite: Honoring royal spirits through centuries of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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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이제 그만해야 하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제도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11월 13일 목요일 전국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연 이 시험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수능은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의 상징’이 아니다.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 ‘정답생산기’로 길러진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수능 폐지는 단순히 시험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객관식 선다형 사고로 사는 나라에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라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교사들은 신분상의 위험까지 안고 수능 감독관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한다. 학교에서 어린 나이순으로 감독관 참여를 강요받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몸짓과 언어에도 소송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위험은 교사에게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돈을 내고라도 수능 감독시험에 착출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수능 업무에 대한 힘겨움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수능을 위한 EBS 수업을 정규 수업시간에 공공연히 한다. 교실 수업은 오직 수능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다가 수능이 끝나면 모든 수업을 할 수 없는 ‘시장판 교실’이 된다. 교사들이 이 과정에서 겪는 자괴감은 매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수능을 치르고 난 후 고등학교 교실은 교과과정이 유명무실해진다. 교사가 교실에서 앉아 있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체적으로 많은 행사를 하지만 이미 대입에 실패한 학생이나 입학이 확정된 학생에게 아무런 참여 의지가 없다. 교사의 권위나 말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자괴감을 교사가 느끼는 계절이다. 수능이 지속되는 이유는 효율성과 공정성 때문이다. 수능 존치론은 공정성, 효율적 선발, 기초학력 검증을 말하고 폐지론은 창의력 억압, 불평등 심화, 한 번의 시험이라는 비인간적 제도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대안이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능 폐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대안을 만들어 시행해 나가야 한다. 학교생활 전반을 평가하는 과정 중심의 학생부 중심 종합전형을 해야 한다. 학습 태도와 성실성을 반영하고 꾸준한 노력과 성장 과정을 보아야 한다. 물론 학교와 교사의 평가 신뢰성, 지역별 교육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붕괴의 수능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충실히 하는 학생이 대학에서도 존중받는 학생이 되도록 그 길로 가야 한다. 수능으로 미래 사회형 인재를 선발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학생 사고력, 표현력, 가치관을 평가하는 방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볼 수 있는 평가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이 있다. 나중에는 어찌 되든 당장 좋은 것만 취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곶감먹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다. 학교, 학부모, 교직원, 교육청, 학생이 고통받는 제도와 학생의 미래역량에 역행하는 제도는 이제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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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이제 그만해야 하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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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어와 문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의 뿌리였다. 종이에 활자를 찍고, 휴대폰 자판 위에 글자를 두드리는 오늘 우리의 일상은 사실 수천 년 전 뼈와 거북등에 새겨진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동이(東夷)’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바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과 맞닥뜨리게 된다. □ 거북등 위의 언어 상나라 말기, 제사의 밤을 떠올려 보자. 제관이 붉게 달군 쇠침을 거북등 위에 갖다 대면, 번개처럼 균열이 번진다. 왕은 그 무늬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제관은 그 내용을 뼈 위에 상형으로 새겨 넣는다. 오늘날 ‘갑골문(甲骨文)’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의 문자 기록 장면이다. 날씨, 수확, 전쟁, 병세, 사냥. 삶의 모든 것이 그 위에 적혔다. 그러나 이 문자는 단지 ‘중원의 문자’만은 아니었다. 고고학은 말한다. 상나라 이전, 이미 요하 유역과 산동 반도, 한반도 서북부에서 동이계의 상징과 문양이 나타났다고. 그 무늬가 글자가 되고, 글자가 체계가 되어 상나라 제사의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갑골문은 곧, 동이와 중원이 만난 지점에서 태어난 언어였다. □ 바다와 강의 사람들, 동이 동이는 고대 중국 문헌에 ‘동쪽의 활 잘 쏘는 사람들’로 기록된다. 『산해경』은 그들을 ‘해가 뜨는 곳의 사람들’이라 불렀고, 『사기』는 요서와 요동, 산동에 흩어진 부족들을 그렇게 묘사했다. 그들의 삶은 물과 함께였다. 농사도 지었지만,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조개껍질과 옥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다. 남방과 북방을 잇는 해상 교역에도 능했다. 당연히 이런 삶은 기록 체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항로, 계절풍, 물고기 떼, 조류.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는 기호가 사실은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언어였던 셈이다. 오늘 우리가 갑골문에서 물결(氵), 배(舟), 물고기(魚)를 발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동이의 세계관이 새겨진 자취다. □ 제의의 언어, 정치의 권력 동이와 중원에서 문자는 곧 권력이었다. 제사를 통해 왕은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 균열무늬 속에서 미래를 읽었다. ‘풍년’, ‘전쟁’, ‘사냥’ 같은 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왕국의 운명을 가르는 질문이었다. 동이 사회에서도 제사는 중심 의식이었다. 바다와 강의 신에게 제물 바치고, 조상 영혼에게 곡식과 짐승을 올렸다. 그때 쓰인 상징은 돌, 뼈, 옥에 새겨졌고, 훗날 갑골문 속으로 흡수됐다. 문자란 곧 신과 인간을 잇는 계약서였다. □ 자연과 함께 숨 쉬던 언어 갑골문을 보면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긴밀했는지 알 수 있다. 해(日), 달(月), 산(山), 바람(風), 비(雨). 동이 사람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다. 해는 어머니였고, 바람은 메신저였으며, 비는 은총이었다. 글자는 이를 담았다. ‘雨’의 갑골문은 빗줄기와 받치는 그릇을 그렸고, ‘風’은 바람 속에 깃든 벌레를 표현했다. 인간과 자연이 한 호흡을 나누던 시절의 언어였다.([그림 7] 참조) □ 증거는 형태와 유물 속에 중국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을 확대해보면, 단순한 직선과 곡선이 아니다. 해와 달이 겹쳐 있는 독특한 조형이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은 요하 유역 홍산문화 옥기 무늬와 닮아 있다. 고고학자 장광지는 “문자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도상문화의 축적 위에서 세워진다”고 했다. 갑골문의 해(日) 점 하나, 달(月) 곡선 하나는 신석기 도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문자 탄생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긴 문화적 기억의 집합이었다. 산동 반도의 토기, 요동의 청동기, 홍산의 옥기에서 발견된 기호들 역시 갑골문과 겹친다. 중국 학계도 인정하듯, 문자는 ‘황하 문명 단일 중심’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피어난 다중 중심의 산물이었다. □ 언어의 흔적, 이동하는 문화 언어학자들은 갑골문 속 일부 발음이 현대 중국어보다 오히려 한국어나 일본어의 옛말과 가깝다고 말한다. ‘바다(海)’, ‘물고기(魚)’, ‘배(舟)’ 같은 어휘가 그렇다. 갑골문은 문자일 뿐 아니라, 언어의 교류 흔적이기도 하다. 동이계 부족이 남하하거나 동진하면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이주했을 때, 그 언어와 문자가 함께 전해졌다. 고조선과 삼한, 일본 고훈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기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림 7] 참조) □ 문화의 흡수와 소멸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융합과 동시에 소멸을 불러왔다. 주나라가 변방 부족을 제후국으로 편입하면서 언어와 문자는 표준화되었다. 동이 제관이 새기던 갑골문은 궁정 속 전서체로 바뀌었고, 그의 아들은 그것을 ‘옛 글자’라 부르며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문화는 흡수되고, 기억은 단절되었다. □ 다시 발견된 동이의 목소리 20세기 초 은허 발굴 이후 갑골문은 ‘중국 최초의 문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요하문명과 산동·요동 해안, 한반도 서북부에서 연이어 발견된 부호들은 그 통설에 균열을 냈다. 어떤 연구자는 발굴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중원의 언어가 아니라, 동이족의 목소리입니다.” 그 말은 곧, 갑골문이 특정 왕조의 소유물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 전체가 공유한 유산이라는 선언이었다. □ 문자, 정체성의 뿌리 왜 오늘날 우리가 다시 갑골문을 읽으려 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고대학자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문자는 정체성의 뿌리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일이다. 동이의 문자 전통을 복원하는 것은, 잊힌 세계관을 복원하는 것이다. □ 뼈 위의 기억에서 미래의 언어로 문자는 과거의 유물인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이다. 뼈 위에 새겨졌던 갑골문이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오늘의 한글과 디지털 코드로 이어졌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우리 손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뼈 위에 새기던 그 날카롭고 간절한 손길을 기억하는 한, 우리의 언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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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뼈 위에 새겨진 동이의 기억, 오늘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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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역사를 돌이켜보면,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작게 여기곤 한다. 국권을 빼앗기고, 가난에 시달리며, 세계의 변방에서 소외되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세계 최하위권이었고,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을 보라. K-팝과 K-드라마가 전 세계를 누비고, 첨단 반도체와 IT 기술이 지구촌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하지만 과연 기적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축적된 저력의 발현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한국인의 창의성과 생명력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문자와 기술의 발명에서 이어져 온 정신의 결실이다. 갑골문, 금속활자, 한글. 이 세 가지는 한국인의 저력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한 흔적이다. □ 거북선과 금속활자, 그리고 한글 우리는 종종 창의성과 발명 정신을 이야기할 때 이 세 가지를 빠뜨리지 않는다. 거북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기발한 발상이었고,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수 세기 앞서 문자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한글은 더욱 독보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라 불리는 이 발명은 문자 해방과 평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연일까? 아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오래된 ‘문자 DNA’가 우리 역사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열쇠가 바로 갑골문이다. □ 갑골문의 발견과 충격 1899년, 중국의 학자 왕의영은 ‘용골(龍骨)’이라 불리던 약재에서 우연히 낯선 문양을 발견한다. 후에 밝혀진 것은 그것이 상나라 사람들이 거북 껍질과 소의 뼈에 새긴 문자, 곧 갑골문이었다. 이후 안양 일대에서 수십만 조각의 갑골이 발굴되면서, 상나라의 정치·사회·종교가 구체적으로 되살아났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문자와 기록으로 확인된 최초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이 문자 발명의 출발점이었는가?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더 오래된 흔적이 있다. 도자기에 새긴 도문, 뼈에 새긴 골각문자가 그것이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도문은 갑골문보다 천 년 이상 앞서는 원시 문자로 추정된다. 2000년대 들어 재조명된 골각문자 역시 갑골문의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즉, 문자의 역사는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글자로, 끊임없는 진화를 거쳐온 것이다. □ 동이족과 문자, 그리고 전파의 길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이런 문자 흔적이 발견되는 지역이 바로 만주, 산동, 홍산 등 동이족이 살던 영역과 겹친다는 점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 지역의 문자 전통이 남하하면서 중국 상나라의 갑골문으로 정착했다고 본다. 또 해상로를 따라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많은 복골(점복용 거북 껍질)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원, 부산, 김해, 경산, 무산 등지에서 ‘무자 갑골’이 보고되었다. 글자가 남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것이 단순한 공백인지, 혹은 소실된 흔적인지는 아직 논란 중이다. 어쨌든 이 발견들은 문자와 의례가 동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히 교류했음을 시사한다. □ 논쟁의 중심, 홍도관 사건 문자와 유물 연구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한국에 들어온 한 붉은 도자기(홍도관 [그림 6] 참조)는 학계의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그 표면에 갑골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감정 결과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은 “진품, 고대 유물”이라고 했고, 또 다른 기관은 “근대의 모조품”이라 단정했다. 심지어 어떤 연구팀은 방사성 연대 측정을 통해 더 오래된 시기로 판정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진위 논란을 넘어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고고학은 감각이나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과학적 분석과 국제적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말과 글, 정체성의 근원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갑골문, 도문, 골각문자 같은 오래된 문자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말과 글은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한 민족이 언어를 잃으면 기억을 잃고, 기억을 잃으면 존재의 뿌리마저 흔들린다. 한글이 오늘날 한국인의 자존과 자부심의 근원이 되는 이유도, 문자 없는 백성은 목소리 없는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골문과 그 전신들을 탐구하는 일은 단순한 고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정체성의 깊은 뿌리를 더듬는 작업이며, 동아시아 문명의 복잡한 혈맥을 밝히는 일이다. □ 미래를 향한 희망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복골의 진정한 성격은 무엇인지, 일본 대량 출토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홍산문화의 도문이 어떤 경로를 거쳐 갑골문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미완의 질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더 많은 발굴, 더 정밀한 과학적 분석, 더 넓은 국제 협력이 이어진다면, 이 고대 문자의 비밀은 조금씩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이족의 피와 한국인의 저력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갑골문에서 금속활자, 한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문자와 기술의 발명족이었다. 지금의 성취는 기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온 저력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과거의 문자가 미래의 길을 밝히듯,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유산을 더 깊이 연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하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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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국인의 문자 DNA, 갑골문에서 한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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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인재를 유출하는 현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강력한 ‘AI 3대 강국’을 꿈꾸고 있다. ‘국가과학자’제도를 신설해 AI인재 해외유출을 막으려 하고 있다. 5년간 100명을 뽑아 개인당 연 1억을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또한 AI 분야 등 해외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며 “과학 문명 투자한 국가는 흥해”라는 대통령 발언도 강조하고 교육부, 과학기술부, 대학 총장들까지 나서 총체적으로 AI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제 AI가 미래 산업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과거에도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AI 대학원을 설립하고, 코딩과 데이터 과목을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겉으로는 혁신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구호 뒤에는 한 가지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지금도 AI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어렵게 석·박사 과정을 마친 젊은 연구자들이 미국, 중국, 캐나다, 유럽의 연구소나 빅테크 기업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창의적 연구보다 ‘성과 지표’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여전히 상명하복식 구조에 묶여 있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혁신의 싹을 자르고 있다. 정부는 “AI 인재 10만 명 양성”을 외쳤지만, 정작 그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토양은 만들지 못했다. 이 모습은 단지 AI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 전체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찍어내는 공장형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교실은 여전히 정답 중심, 주입식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기보다 ‘어떤 전공이 유망한가’를 계산하며 진로를 택한다. 인문학적 사유와 예술적 감성은 ‘비경제적’이라며 밀려나고, 교육이 산업의 수요에 종속되면서, 청년은 점점 더 좁은 틀 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AI 강국’을 표방하면서도, AI 인재를 잃어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 한국 출신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연구보다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디어보다 상사의 눈치를 먼저 봐야 했죠.” 그의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느끼는 시스템적 피로의 고백이다. 우리가 청년을 ‘미래 자원’으로만 대하는 한, 그들은 언젠가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나 캐나다의 교육을 보면, 그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억지로 “AI 전공자를 늘리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창의와 실패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든다. 학생이 철학을 전공하다가 데이터 과학으로 옮겨가도, 사회는 그것을 ‘진로 방황’이 아니라 ‘탐색’으로 이해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선택한 계열이 평생의 족쇄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스템의 불편한 존재로 취급된다. 정작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AI 기술이 아니라 AI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상상력을 두려워하고, 다른 길을 걷는 청년을 ‘비효율’로 본다. 미래는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철학, 윤리, 창의력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AI 강국”이라는 구호에 취해 있는 사이, 귀한 청년들은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 자율이 없는 문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국가의 산업정책을 위한 하청 구조로 머무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두뇌 유출국(Brain Drain)’으로 남게 될 것이다. 청년을 낭비하지 않는 교육은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교실은 인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라, 인간이 꿈꾸는 실험실이어야 한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강국을 이끌 청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한국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교육이 없는 한, 우리의 미래는 구호 속 숫자로만 남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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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인재를 유출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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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시간을 잊고 사는 하루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명예퇴직 공문을 만지작거린다. 해마다 오는 공문인데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관심을 담아서 보게 된다. 이제 한 번만 옮기면 40년 가까운 공직 생활이 끝날 것이다. 친구 말대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명예퇴직을 한 친구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자랑하며 단톡방에 올리는 여행 사진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올라온다. 아침 6시 45분에 아파트를 나선다. 동절기에는 사방이 어둡다. 출근을 하면 매일 조용한 날이 드물다. 학교폭력이 언론에 나고 교육 비리, 학생 사고, 학교 시설 민원, 전입학에 대한 민원, 각종 행사와 위원회 참석 요청, 수능시험장 학교 폭발물 신고까지 온갖 민원이 늦가을 낙엽처럼 가득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과 달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고 이집트 사람들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했다고 한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 합의된 시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1884년 국제자오선 회의에서는 전 세계를 24시간대로 나누었다. 시간이 전 세계의 공통어로 자리 잡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알람 시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알람 시계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에 의지해 일어났다. 옛사람들은 아침 햇빛, 닭의 울음소리가 아침 신호였다. 기계식 알람 시계는 1787년 미국 뉴햄프셔에 살던 시계공 리바이 허친스(Levi Hutchins)가 발명했다고 한다. 그는 해가 뜨기 전인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터로 가야 했다. 시계 문자판의 숫자 '4' 위치에 핀을 박고 시침이 핀에 닿는 순간 지렛대 장치가 움직여 종을 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제 시간은 아침햇살처럼 모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직장인의 아침 침대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다. 시계와 화폐가 발명되면서 사람은 그것에 노예가 되다시피 살고 있다. 편리함을 위해 만든 대상인데 이제 사람이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형세가 되었다. 때로 그것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운 인간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역설적으로 그것을 버림으로 더 크고 진실한 것을 얻는 예를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존의 틀을 깨는 것에서 커다란 변화와 변혁이 시작되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살아가는 시대이다. 과거만 가지고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학교에서 예술과 인문학, 동아리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한 활동은 스스로 추동의 힘을 갖고 기존의 것에서 더 새롭고 자유롭고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영역이 될 수 있다. 하루 정도는 공적 시간을 벗어버리고 싶다. 핸드폰과 시계를 멀리하고 오직 ‘존재’와 ‘마음’과 ‘삶의 의미’를 사색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 타인과 사회에 맞추는 시간은 잠시 멈추고 나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이번 휴일에 가져보려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말한 ‘현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를 생각하며 내 안의 여행을 가려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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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시간을 잊고 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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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기프티콘 세상
-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기프티콘 세상 선물보다 기프티콘이 더 익숙해진 세상. 포장지를 뜯던 그 설렘은 어디에 쌓였을까. 선물엔 주는 이의 시간과 정성이 겹겹이 쌓이고, 눈빛과 마음이 서로 스며든다. 알림 소리로 도착한 기프티콘은 고맙지만, 빈 메아리처럼 스쳐 간다. 오늘은 그리운 손길의 선물을 받고 싶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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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희 반려詩選] 기프티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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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깊어가는 가을, 교육의 수확을 바라보며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전국이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가고 하늘은 높고 청명하기만 하다. 깊은 가을의 공기는 한층 차분하고, 그 속에는 성찰의 향기가 배어 있다. 황금빛 이삭을 거두어 들인 논과 밭에서는 철새들이 줄지어 날아들고, 나무들은 한 해의 결실을 잎의 빛깔로 드러낸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릴 때 이미 가을의 수확을 그리지만, 그 수확은 단지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다. 비와 바람, 햇살과 토양의 조화 속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문학인들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하고 결과에 대한 칭송을 노래한다. 교육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가르침과 배움의 세계는 ‘가을의 수확’처럼 시간의 축적과 정성의 누적 속에서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교육의 본질을 농경의 순환에 빗대어 보면, 가을은 학습의 성찰기이자 성장의 확인기라 할 수 있다. 봄의 파종이 교육의 시작이라면, 여름은 열정적인 성장의 시기, 그리고 가을은 그 모든 노력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가을은 한 해의 교육 여정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던진 ‘교육과 배움의 씨앗’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매년 가을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나의 성장 나무’를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배운 것, 느낀 것, 새롭게 도전한 것을 나뭇잎 하나하나에 적는다. “처음에는 글씨를 잘 못 썼지만, 지금은 일기 쓰기가 즐거워졌어요.”, “친구와 싸우지 않고 대화로 해결했어요.”… 작은 문장 속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오롯이 담긴다. 교사는 말한다. “이 나무는 아이들이 지식만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증거이죠. 그 잎사귀 하나하나가 교육의 결실이에요.” 이처럼 교육의 수확은 점수나 등수가 아니라 성장 그 자체에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 배움 축제’를 연다. 학생들은 자신이 한 해 동안 탐구한 주제나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한다. 누군가는 과학 실험의 결과를 공유하고, 누군가는 자작시를 낭독하며, 또 누군가는 지역 노인정과 함께한 봉사활동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그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배움의 열매를 나누는 장’, 즉 교육의 수확제(收穫祭)다. 교사들은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실감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 사회와 연결된다는 기쁨을 배운다. 그러나 모든 가을의 수확이 풍성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뭄이나 태풍으로, 혹은 잡초의 번성으로 기대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교육도 그렇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가르쳐도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가을이 일시적 실패의 계절이 아니라, 다음 해를 준비하는 순환의 고리이듯, 교육의 여정에서도 실패는 다음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돌봄의 의지’다. 교육의 수확은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변화 속에서 더욱 깊게 익는다. 한 중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던 아이가 요즘은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제게는 올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가을의 들녘에서 단 한 줄의 벼라도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순간, 농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교육의 현장에서도 한 명의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때, 그 한 해의 교육은 이미 결실을 맺은 거다. 깊어지는 가을, 우리는 또 한 해의 배움의 끝자락에 서 있다. 학교와 교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교육이란 밭을 일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노력 하나하나가 내일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교학상장”, “심은 대로 거둔다”, “인과응보”, “절차탁마”… 비슷비슷한 언어의 향연이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한 만큼 그 결과로 수확하는 진리를 품고 있다. 이제 가을의 나무가 잎을 떨구며 내년을 준비하듯, 교육의 여정도 쉼과 성찰을 통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결국 교육의 가을은 끝이 아니라 인고의 겨울을 나면서 새로운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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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깊어가는 가을, 교육의 수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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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김동찬 대연6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겸 주민자치위원장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6동에서 금융과 주민자치를 두 축으로 아우르며 지역 공동체의 든든한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동찬 대연6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겸 대연6동 주민자치위원장이다. 김 이사장은 지역금융의 안정적 운영과 투명한 경영 체계를 기반으로 금고를 ‘신뢰 중심의 생활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지역현안 해결, 주민 소통 활성화, 생활 복지 강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그는 금융과 주민자치라는 상이한 영역을 조화롭게 이끌며 지역 발전을 위한 균형 잡힌 리더십을 실천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준 책임성·공공성·소통 중심의 행정 철학은 대연6동 공동체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금융은 사람을 지키는 힘”…신뢰 기반 금고 경영 강화 김동찬 이사장은 취임 이후 금고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신뢰’로 규정하고, 예·적금·대출·공제 등 기본 금융 서비스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한층 강화해 왔다. 그는 “금융의 본질은 사람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신뢰는 금고의 가장 큰 자산이다.”라고 말하며 건전경영과 고객 중심 운영 원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금고는 지역 소상공인과 서민을 위한 대출 상담, 정책자금 안내,창구 서비스 개선 등 생활밀착형 금융지원을 확대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 취약계층·어르신 중심 복지 실천…“지역이 우리를 키웠습니다” 김동찬 이사장은 금고의 정체성을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복지금고”로 강조한다. 금고는 매년 명절마다 지역 경로당을 방문해 쌀, 라면 등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으며, 취임 당시 받은 축하 화환을 모두 쌀로 바꿔 기탁하는 등 ‘보여주기보다 실천’ 중심의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긴급 생활지원, 주민·단체와 연계한 기부 프로젝트 등 지역복지망 확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현장에서 답을 찾는 자치” 실천 대연6동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동찬 위원장은 주민 의견 수렴과 생활현장 중심의 주민자치 시스템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는 주민 의견 제안창구 운영 마을 환경 개선 사업 어르신·청년 참여 프로그램 확대 공동체 행사 지원 등을 통해 ‘참여하는 주민자치’, ‘소통하는 마을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주민자치는 책상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주민과 함께 뛰며 체감하는 변화를 만드는 것이 진짜 자치이다.”라고 강조했다. ■ 디지털 금융 시대, “어르신이 소외되지 않는 금고 만들 것” 대연6동새마을금고는 디지털 금융 전환 속에서 고령층 금융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 뱅킹 1:1 교육, 금융취약계층 대상 방문 상담 직원 디지털 응대 역량강화 교육, 금고 내 디지털 이용 보조제 도입 등 김 이사장은 “편리함 속에서 소외가 생겨서는 안된다. 모든 주민이 안전하게 금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신뢰 가는 금고로 거듭나겠습니다”… 향후 비전 제시 김동찬 이사장은 앞으로의 비전으로 ‘신뢰·안전·상생’을 핵심가치로 하는 금고 운영을 제시했다. 그는 “대연6동새마을금고는 주민 여러분의 믿음으로 성장한 금고이다. 앞으로도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바탕으로 신뢰 가는 금고로 거듭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주민자치위원장으로서 지역 공동체 활성화, 마을복지 강화, 주민 참여 확대 등 ‘현장에서 작동하는 주민자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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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김동찬 대연6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겸 주민자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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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민족 문화와 갑골문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도시의 새벽,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깜빡이는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이 짧은 문장은 어디에서 왔는가. 소리의 결로만 설명하기엔 뭔가 모자라다. 우리의 언어는 물론 한글이지만, 우리의 문화적 문장은 그보다 오래된 심층에서 떠오른다. 거북의 등과 짐승의 뼈에 불을 대어 균열을 읽던 시간, 그 균열 따라 새겨진 선과 점이 우주의 질서를 불러오던 순간. 갑골문은 그 선과 점의 고향이고, 한민족 문화는 그 고향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으로 오늘을 말한다. 이 글은 그 뿌리의 언어가 어떻게 한반도의 삶과 신화,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졌는지, 한 편의 칼럼으로 더듬어 본 기록이다. □ 언어와 문자, 문화의 뿌리 언어는 소통의 도구 이전에 세계를 자르는 칼날이다. 무엇을 하나의 ‘것’으로 보고, 어디서 경계를 긋는가에 따라 문화는 다른 얼굴을 얻는다. 문자란 그 칼날을 눈으로 보이게 만든 도면이다. 갑골문은 하늘과 땅, 해와 달, 짐승과 사람을 몇 획으로 표상하는 법을 발명했다. ‘日’의 원과 점, ‘月’의 초승, ‘人’의 단순한 두 다리, ‘巫’의 교차하는 팔과 기립한 몸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압축한 결정체였다.([그림2, 4] 참조) 한글은 훨씬 훗날, 소리의 뼈대를 정교하게 설계한 위대한 발명이다. 그러나 소리가 박히는 의미의 그릇, 말의 길을 내는 상징체계는 이미 오래전에 형성되었다. 조상들은 해를 ‘오른다/진다’가 아니라 ‘나타난다/숨는다’로 느꼈고, 새의 궤적을 길의 표식으로 삼았다. 이 감각은 언어의 은유로 축적되고, 문자의 상형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답답하다”라고 할 때 가슴을 쥐어짜는 손의 느낌으로 말하고, “하늘이 높다”라고 할 때 가을의 빛을 떠올린다. 소리의 언어(훈민정음) 위에 의미의 언어(상형과 관념)가 겹쳐진 이중 구조, 그것이 한민족 문화의 문장법이다. □ 동이족의 문화가 한반도에 전한 것 ‘동이’라는 이름은 지도 바깥의 사람을 가리키는 낙인이 아니라, 바다와 숲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던 생활인의 또 다른 호칭이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물의 길을 따라, 새의 길을 따라 흘러들었다. 해안을 타고 건너온 것은 단지 옥과 패물, 활과 배가 아니었다. 제천(祭天)의 감각, 백의(白衣)의 간결함, 옻칠과 목공의 손끝, 해와 새를 기호로 새기는 미감이 함께 전해졌다. 한반도의 여러 공동체가 계절을 맞아 하늘에 제사하고, 노래와 춤으로 공동체의 시간을 묶었던 기억은 이 전승의 결을 닮는다. 바다에서 온 사람에게 태양은 절대의 시계였고, 숲의 사람에게 새는 소식을 전하는 사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를 ‘놀음’이 아니라 ‘하늘에 보이는 일’로 삼았고, 흰옷을 단지 검소함이 아니라 빛을 받는 표면으로 여겼다. 물건의 기술과 신앙의 형식, 생활의 미학이 함께 다리를 건너와,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를 키웠다. 문화는 언제나 사물과 상징이 함께 이동할 때 깊게 뿌리내린다. □ 한민족 신화와 갑골문적 상상력 신화는 공동체가 자신을 설명하는 첫 번째 문장이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하늘의 아들이 나라를 세우며,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 활을 쏘아 길을 연다. 이 모티프들은 갑골문이 그려낸 자연의 도면과 정확히 맞물린다. ‘弓’의 곡선은 단지 무기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을 잇는 장력의 기하학이다. ‘鳥’는 땅과 하늘을 횡단하는 매개이자, 태양의 길을 표시하는 움직이는 점이다. ‘日’과 ‘月’은 신화 속 영웅의 출생과 죽음, 계절의 전환과 국가의 제사를 이끄는 표지판이었다.([그림 2, 4] 참조) 곰과 호랑이, 사슴과 물고기. 이 동물들은 갑골문에서 몸의 특징으로 간명하게 표상되고, 신화에서는 길을 여는 지혜로 재해석된다. 동굴과 산, 강과 바다의 문턱에서 행해졌을 통과의례는 신화 속 금기와 시험으로 형태를 바꾸고, 제사의 시간표는 별자리의 순환과 함께 영웅 서사의 배경이 된다. 갑골문적 상상력이란, 자연의 형상을 기호로 변환하는 기술이면서 인간의 삶을 우주의 질서에 포갤 줄 아는 감각이다. 신화는 이 감각을 서사로 만든 기록이다.([그림 5] 참조) 그래서 우리의 옛이야기에는 유난히 하늘을 우러르는 장면이 많다. 활을 들어 첫 화살을 하늘로 쏘고, 새의 비상을 보며 길일을 재고, 해무리와 달무리의 변화를 날씨와 운명의 언어로 읽는다. 문자 이전에 먼저 익힌 해석법이 있었고, 그 해석법을 문자로 굳힌 것이 은자였다. 신화는 그 문자에 살을 붙여, 공동체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었다. □ 문화의 원형, 오늘의 울림 오늘 우리의 눈앞에는 뼈 대신 스크린이 있다. 그러나 원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형이란 형태의 과거가 아니라 감각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울림만 짚어본다. 첫째, 세계 읽기의 태도다. 갑골문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어제의 전쟁은 왜 졌는가, 내일의 비는 올 것인가, 아이의 병세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균열을 읽어 답을 얻으려는 태도는 오늘의 데이터 분석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질문이 언제나 공동체의 안녕과 하늘의 질서를 함께 고려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효율의 숫자만이 아니라, 공존의 징후를 함께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둘째, 몸의 언어다. 눈·입·손·발의 글자가 기록하듯, 몸은 사유의 첫 도구였다. 설계도와 보고서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손의 감각과 발의 리듬이 만드는 지식이 중요하다. 장인의 손끝, 농부의 허리, 무용수의 호흡은 사전 없는 문장이다. 교육은 다시 몸의 문해력을 회복해야 한다. 글자를 안다는 것은 몸을 통해 세계를 느끼는 법을 되찾는 일이다. 셋째, 축제의 문법이다. 제천의 기억은 오늘의 축제로 되살아날 수 있다. 하늘을 기쁘게 하던 의식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를 새로 묶는 공공의 시간으로서. 지역의 바다와 산, 별이 잘 보이는 밤을 무대로 삼아, 음악과 공예, 농사와 시장이 한데 엮이는 축제는 현대판 동맹·영고·무천이 될 수 있다. 축제는 소비의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시간표여야 한다. 넷째, 디자인의 문맥이다. 원과 점, 선과 획으로 세계를 환원한 갑골문은 오늘의 시각 언어로도 살아 있다. 도시의 표지판, 공공 브랜드, 학교와 도서관의 그래픽에 해·달·물·새의 최소 단위 기호를 응용하면, 장소는 말없이 자신을 설명한다. 말이 너무 많은 도시에서,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기호의 질서는 미덕이다.([그림 5] 참조) 마지막으로, 기억의 방식이다. 뼈에 새겼던 기억은 지워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쉽게 쓰고 쉽게 잊는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지를 다시 묻자. 기록은 많아졌지만 공명이 적다. 오래 남길 문장, 함께 돌아볼 문장을 고르고, 남기는 행위 자체를 의식으로 삼아야 한다. 학교든 가정이든 ‘기억의 의식’을 회복하는 작은 의례가 필요하다. 칼럼의 지면은 늘 모자라다. 그러나 부족한 지면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한민족 문화의 깊은 문장법은 갑골문이 열어 둔 상상력의 문간에서 시작했다. 자연을 기호로 만들고, 몸을 문장으로 삼고, 공동체를 하늘과 연결하던 그 질서. 우리는 이제 뼈 대신 픽셀에, 제단 대신 광장에, 옻칠 대신 코드에 새긴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남기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그 질문을 품고 새벽의 전광판을 다시 본다. 점멸하는 빛의 점과 선이, 문득 오래된 획처럼 보인다. 먼 옛날 불의 균열을 읽던 눈빛으로, 오늘의 문장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뿌리의 문장으로 미래를 쓰겠다고.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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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한민족 문화와 갑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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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는 교육의 길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입시 중심, 일방향적인 교육 정책,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제한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교육’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바로 교육자치에 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조차 “교육자치의 꽃은 학교자치”라고 우리 교육 정책의 방향을 한 마디로 압축하기도 했다. □ 교육자치란 무엇인가? ‘교육자치’란 학교 구성원들이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함께 결정하고 실행하는 민주적인 과정이다. 이때 교사, 학생, 학부모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교육의 주체가 된다. 특히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는 점수와 경쟁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삶과 성장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자치’다. 자율이 개인의 자유라면, 자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책임지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 사례 1. 핀란드 교육의 본질은 ‘신뢰와 자치’ 핀란드는 교육자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교사는 커리큘럼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운영한다. 시험은 최소화되고, 비교와 경쟁보다 성장과 협력이 강조된다. 모든 학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존재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실제 학교 운영에 반영된다. 핀란드 교육부의 슬로건은 단순하다. “신뢰하라(Trust).” 이 신뢰가 교사에게, 학생에게 자율성을 넘어 자치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 사례 2. 지방 A 중학교 - 삶 중심 교육의 실현 국내에서도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의 모범 사례가 있다. 2023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공식 블로그에 의하면 지방의 A 중학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혁신학교이다. 이 학교는 수업, 생활지도, 동아리 활동까지도 학생 자치회와 교사 공동체가 함께 결정한다. 매년 ‘삶을 나누는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한 공연과 작품이 학교 전체를 채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삶을 함께 꾸려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 사례 3.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자치활성화 조례’ 2020년 서울시교육청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학생자치활성화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모든 학교에 학생 자치기구 구성과 운영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학교장은 이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실제로 이 조례 이후 많은 학교에서 학생회가 교육과정, 급식, 학교 축제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다.” □ 교육자치가 가꾸는 것은 '삶'이다 교육자치는 단순한 행정 절차나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넘어, 사람을 살리는 교육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자치가 있는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며 수업을 만들어가고, 학부모는 아이들의 일상에 함께 참여한다. 교육의 중심이 ‘지식’에서 ‘삶’으로 옮겨가는 순간, 교실은 변화한다. 그 변화는 점수로 환산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 태도 속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정답을 잘 맞히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그 시작은 교육자치이며, 그 끝은 모두의 삶이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교육의 공동체다. 어느 교사의 교단 일기에는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란,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돕는 일이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다"라고 쓰여있다. 이는 우리 교육이 지향할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 압축한 것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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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는 교육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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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고교학점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김불이’는 117cm의 작은 키를 가진 노동자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난장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었습니다”와 “저희는 인간 취급을 받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은 소외에 대한 절규라고 할 수 있다. 교실에서 ‘학습 미도달자’에 대한 방관도 사회적 소외이다. ‘난장이’로 표상되는 ‘학습 미도달자’나 ‘학습 포기자’에 대한 우리의 교육은 얼마나 양심적이었는가 하는 윤리적 반성을 하게 된다. 고교학점제가 폐지론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고교학점제가 꿈꾸던 이상과 현실의 대입제도는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절대평가제를 설계로 했지만 입시는 상대평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학생-교사’의 관계를 ‘학생-학습’으로 이동시키려는 구조적 개혁이라고 하지만 최소성취보장제에서 국가의 책임교육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과거에 학교부적응 학생은 스스로 자퇴를 했다. 최소성취보장제도의 미도달학생이라는 말은 이런 학생들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교사들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수업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학생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신평가제도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학원은 선전하고 학부모는 불안해하고 있다. 학생은 진로를 선택하기도 전에 진로에 대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니 불안하기만 하다. 교사는 증원은 없고 업무는 증가하여 불만이 많다. 교실은 점점 일상적인 수업이 힘든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정서행동 문제와 게임중독, 자살 위기, 무기력이 모두 한 교실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물고기, 독수리, 거북이, 사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법으로 달리기를 요구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학습 저성취 학생’에 대하여 특단의 대책으로 수업과 평가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교실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은 인권 침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는 동일 반복의 은유이다. 가난한 하루가 반복되는 일상은 그 띠 위의 무한 반복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뫼비우스의 띠’는 현실이 가진 이중성과 모순도 보여준다.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이 결국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길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하고 선을 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습 부진은 곧 자기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좌절과 수치는 학생을 학교에서 떠나가게 한다. 학교는 학생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뿌리가 썩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줄 교육과정은 있는가. ‘작은 공’은 희미한 희망을 상징한다. 고교학점제가 불러온 소외된 학생에 대한 관심이 ‘하늘로 날아간 작은 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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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고교학점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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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 이전의 기억, 은자(殷字)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 이전의 시대는 어둠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도 인간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바위 위의 동굴벽화, 나무껍질에 새긴 무늬, 그리고 동방의 옛사람들이 택한 특별한 매개체, 거북의 등과 짐승의 뼈가 바로 그것이다. 기원전 13세기 전후, 은(殷) 왕조의 제사장은 거북 등껍질과 소의 어깨뼈를 정성껏 손질해 그 위에 글자를 새겼다. 불에 넣어 금이 가면, 그 균열을 하늘의 목소리로 해석했다. 이때 새겨진 문자가 바로 은자(殷字)다. 은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려는 시도의 흔적이자, 초월과 소통하려는 간절한 몸짓이다. 우리는 오늘날 종이에 활자를 찍어 지식을 전하지만, 최초의 문자 창조자들은 하늘의 뜻을 묻기 위해 살아 있는 생명의 뼈와 껍질을 빌려 썼다. 그 뼈마디에 새겨진 글자는, 인간이 얼마나 절박하게 자연과 신을 향해 귀 기울였는지를 보여준다. □ 갑골문 속에 남은 동이족의 발자취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갑골문이 단지 은(殷) 왕조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자들은 그 문자 속에 동이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갑골문에 등장하는 새, 활, 태양을 상징하는 글자들은 동이족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동이족이 숭배하던 태양과 새의 상징, 활을 든 인간의 형상은 갑골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실제로 은 왕조는 동이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때로는 충돌했다. 은의 제사에 사용된 옥, 조개껍질 화폐, 바닷새 문양은 동이 해안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갑골문 속 ‘이(夷)’는 단순히 변방의 타자가 아니라, 문자 탄생의 공동 증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자가 탄생하는 순간, 그 자리에 동이족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 해, 달, 별 - 자연을 새긴 최초의 상형 갑골문을 들여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연이다. 해(日)는 가운데 점이 찍힌 원으로, 달(月)은 초승달 모양으로, 별(星)은 나무에 점이 모여 있는 형상으로 그려졌다. 인간은 하늘의 빛을 문자로 옮겨 적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기록이었다. 오늘날 과학은 태양을 뜨겁게 불타는 가스 덩어리라 설명하지만, 고대인에게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자 신의 얼굴이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해와 달은 우주의 시계였고, 인간 삶의 리듬을 결정하는 힘이었다. 달의 주기는 여성의 몸과 연결되었고, 별자리의 움직임은 계절과 농사의 주기를 알려주었다. 문자 이전의 기억은 곧 자연의 기억이었고, 갑골문은 그것을 형상화한 첫 번째 시도였다.([그림 2] 참조) □ 몸과 삶을 새기다 - 인간 형상의 등장 자연만 기록된 것은 아니다. 갑골문에는 인간의 몸과 삶 또한 깊이 새겨졌다. 눈(目), 입(口), 손(手), 발(足) 같은 글자들은 놀라울 만큼 사실적이다. 사람의 형상(人) 역시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이 글자들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인식하고 정리한 최초의 시도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몸의 글자들이 사회적 관계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父(아버지)’는 손에 도끼를 든 모습으로, 가문의 권위를 상징한다. ‘女(여자)’는 무릎을 꿇은 여인의 모습으로, 가정과 생명의 근원을 의미한다. 몸의 형상은 곧 관계의 형상이고, 삶의 질서를 반영하는 기호였다.([그림 3] 참조) 갑골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들고, 입으로 기원하며, 발로 걸어가는 존재. 그것을 고대인은 문자로 남겼다. 문자는 단순히 기록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 기억을 불러내는 뼈의 언어 오늘 우리는 종이에, 혹은 디지털 스크린에 문자를 남긴다. 그러나 문명의 첫 기억은 종이가 아니라 생명의 뼈에, 살아 있는 껍질에 새겨졌다. 갑골문은 문자 이전의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체다. 칼럼의 자리에서 우리가 갑골문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대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갑골문은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려 한 기록이었고, 동이족의 흔적이 스며 있는 공동의 문화유산이었다. 그 속에는 해와 달,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새기고, 인간의 몸을 그려내며 존재를 확인하려 했던 원초적 충동이 담겨 있다. 갑골문은 말한다. 문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사유와 신앙을 담는 그릇이라고. 뼈와 껍질 위에 남겨진 그 글자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묻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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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문자 이전의 기억, 은자(殷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