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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와 의사의 명예가 빛날 때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음절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 ‘님’과 ‘남’도 그야말로 점 하나 차이다. 의사와 교사는 님과 남과의 차이만큼이나 대우가 다르다. 국민과 환자가 우선이라며 2,000명을 고수하던 정부가 의대정원을 50%에서 100%로 대학 자율적으로 하라는 양보안을 냈다. 의사협회는 거부했다. 대형병원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2020년에도 집단휴업을 했지만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다. 당시와 다르게 서로가 상대의 타협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한 대화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상대에게 무릎 꿇고 두 손 들고 항복을 하라는 결연한 대결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작년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폭염에도 검은 정장을 입고 ‘질서정연’한 집회로 항의를 했다. 교사들은 신속한 법률개정을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교사들은 움직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작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언했다. 단 하루의 연가였다. 정부는 그날 연가를 내는 교사에게 중징계하겠다는 엄포를 계속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 거리로 나섰던 교사와 지금 병원을 떠나 있는 전공의는 비슷한 연배다. 젊은 세대로서 국가고시를 통하여 자격을 얻은 전문직종 종사자이다.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교사정원을 다 채운 학교가 거의 없다. 학교에 기간제 교사와 다양한 공무직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는 수업도 힘들지만 복지, 건강, 급식 등 다양한 요구로 그야말로 점입가경의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다. 교대와 사범대 학생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교생실습을 거부하고 휴학을 집단으로 한다면 지금의 교육부는 어떻게 대응을 할까. 교사가 교사 정원이나 교육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어린 학생을 두고 무기한으로 교실을 이탈하고 이후 대화를 모두 거부하고 휴직을 한다면 여론과 정부는 어떻게 했을까. 1989년에 교사 1,500명을 해직시키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들이 해임된 이유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로 학교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국민이 깨닫게 되었다. 부모들은 학교가 단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의대 정원파동으로 전공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의료가 국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를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뿐인 생명을 다루고 있는 의사와 부모에게 소중한 자녀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교사는 국가의 중요한 인적 자산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교육계 출신 12명이 국회에 입성한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보다 1명 많다. 9명이 대학교수 출신이고, 초등교사 출신 2명과 학교 비정규직 출신이 1명이다. 4명이 지역구 당선자이고 비례대표가 8명이다. 교사가 죽거나 주말마다 집회를 하지 않더라도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 입법을 해주기 바란다. 교사와 의사의 명예는 자기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때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국민에 봉사할 때 더욱 빛난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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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풍천소축의 철학–작은 축적의 위대함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위대함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람이 멈추니 작은 쌓임이다”라는 소축괘에 담긴 철학에 있다. 이 철학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은 노력과 경험의 축적이 어떻게 위대함을 창출하는지 그 핵심을 알려준다. 「대상전」에 소축괘를 보면 ‘바람이 하늘 위를 간다. 그러니 작게 쌓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구석진 곳으로 낙엽이 쌓여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크게 비가 내리거나 해서 민중에게 혜택을 베풀거나 할 수가 없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축적시켜야 한다. 멈춤은 작게 쌓인다. 그러니 더욱 자신의 덕성을 다듬는데 온 힘을 길러야 한다. 풍천소축괘는 바람이 불어 땅에 떨어진 낙엽들이 모여 한 곳에 쌓이는 모습이다. 종잣돈이 쌓이면 더욱 분발하여 끌고 가야 한다. 중간에 주저앉아버리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탄탄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반복해서 일해야 한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풀잎」(Leaves of Grass)은 작은 축적의 본질을 반영하는 시다. 그의 시는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며 작은 순간들이 어떻게 큰 전체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다.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트린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 풀은 그 자체가 어린 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 아이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애서도 싹 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있는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한다. (생략) 풀잎 하나하나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상징하며 작은 축적의 과정을 강조한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위대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그는 위대함을 추구하려면 인내와 끈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은 이익을 축적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작은 축적의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풀잎’과 ‘작은 축적’의 관계는 위대함이 하나의 거창한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격을 형성하는 소소한 일상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짐을 시사한다. 삶의 웅장함은 단순한 기쁨, 평범한 경험,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의 융합에서 나타난다. 행복한 존재의 비결은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발걸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인생의 위대한 걸작을 만든다는 깨달음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나온다. 유약한 것,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노자의 이 말은 자연의 본래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노자 자신이 기획한, 부드럽고 여성적인 문명이, 공자나 법가식의 남성적인 문명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약한 것들은, 굳세고 강한 것들의 파괴적인 속성과 맞서 왔고, 문명의 저항에 맞서 자연의 가치들을 옹호해 왔다. 특히 고은의 「열매 몇 개」는 ‘유약승강강’의 진리를 실천하는 시로, 작고 약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짧으니 시 전문을 보자.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 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시인은 가녀리고 약한 것들을 아끼고 중요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름 한 철 찔레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시련(땡볕, 불볕, 어둠)을 떠올린다. 고통과 함께 논다는 긍정성을 보여준다. 2연에서 시인은 열매를 맺는데 숨은 공로자를 찾아낸다. 바로 귀뚜라미다. 귀뚜라미가 열심히 울어주어서 자그마한 찔레 열매 몇 개가 맺어질 수 있었다는 유쾌한 상상이다. 이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비슷한 발상을 보여준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울었다는 그 싯구. 시인은 ‘찔레 열매 몇 개’라고 하는 이 작고 소박한 생명체의 탄생에서 생명력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어떤 것에 감탄할 줄 안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작고 가녀린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작고 가녀린 것의 생명력 앞에서 감탄할 줄 안다. 감탄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 중 하나다. 작은 축적의 철학을 받아들이자. 그것이 위대함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집요하게 낙엽을 쌓듯이 경험과 덕과 승리를 모으자.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으로 탈바꿈하면서 꾸준한 발전이 가져오는 변혁의 힘을 목격할 것이다. 위대함은 결국 가능성의 지평을 넘어 꿈을 꾸는 인내와 용기의 실에서 엮이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정신으로 도전하며 안락함의 한계를 넘어 나가야 한다. 이처럼 바람이 하늘 위를 가니 작게 쌓일 뿐이다. 이런 때는 내면의 덕을 아름답게 온축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고 『주역』은 말한다. 인간의 경험과 세계 이해를 형성하는데 있어 작은 순간과 경험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풍천소축괘의 효사를 보자. 지(地)의 자리다. 바람이 부니 무엇이든 변동이 심하다.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스스로 열리는 마음이 정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다. 인(人)의 자리다. 수레바퀴에서 축이 빠진다. 조금씩 아껴가면서 모은 종잣돈을 굴리려고 살피고 있는데 돈 쓸 일이 많아지고, 여기저기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여 종잣돈을 쓰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럴 때는 자기 내면의 성실함을 믿고 열심히 자기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인의 자리이기 때문에 도전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면 수레바퀴의 축이 빠졌어도 수레를 끌 수 있다. 작게 쌓였으나 크게 된다. ‘네 시작은 미미했으나, 너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천(天)의 자리다.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었다. 인생 말년에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자. 그리하면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인생 말년이 평화롭고 안정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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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육계의 민심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민심이 대폭발했다고 하고 민심이 매섭다고도 했다. 서로가 민심의 무서움을 보았다고 했다. 치열했던 선거이기에 어느 한 쪽은 선거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선거결과에 따른 후폭풍은 대단했다. 선거를 이끌었던 여당지도부가 사의를 표명했다. 국정 기조에서도 인적쇄신을 한다고 한다. 국정쇄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거를 통하여 민심을 확인한 결과이다. 교육에서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민심은 무엇인가. 국가교육위원회는 4월 12일에 ‘대국민 교육현안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한국 교육이 직면한 문제점으로 ‘과도한 학벌주의’와 ‘대입경쟁 과열로 인한 사교육시장 확대 및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꼽았다.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과 학벌주의를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았다는 내용이다. 교육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82점이었다. 변화가 가장 시급한 교육 분야는 고교교육(46.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민심에 정부가 얼마나 발 빠르게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늘봄학교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이다. 맞벌이 가정 등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학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늘봄학교는 학교 현장에 얼마나 자리 잡았을까. 돌봄교실 확충과 늘봄전담사 인력 충원이 문제다. 돌봄교실을 겸용교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수업준비를 할 교실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술형 문항 폐지 및 교원 인권침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한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어떠한가.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전국 초·중·고, 특수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교원의 능력과 전문성을 신장한다는 취지로 2010년에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교사노조는 교원능력개발평가의 폐지를 교육당국에 촉구하고 있다. 깜깜이 평가, 보복성 평가, 교사 외모 평가를 비롯한 성희롱 등 부작용이 많다고 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교육적 효율성은 증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권침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하다. 교육개혁은 왜 구호에 그치고 있는가. 진정성 있는 교육개혁은 왜 성공이 어려운가. 교육에서 많은 개정과 쇄신을 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교육 현장과 함께 가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교육 현장의 민심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못한 원인도 있다. 정부가 정책을 수행하면서 현장의 의견수렴을 형식적으로 하면서 밀어붙이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한 교육 개혁은 힘들 것이다. 민심은 물과 같고 배는 물이 있어야 항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출에 의한 승진시스템과 보직으로의 전환, 교사 행정 업무를 대신할 충분한 인력 확보, 교사에게 평가의 자유, 교육과정 편성의 책임과 자유, 표현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학교와 교사를 통제하기보다는 학교와 교원에게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이 가야 한다. 그것이 교육 현장의 민심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천안교육지원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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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파괴와 변화-'파리대왕'에 담긴 인간 본성의 철학적 고찰(산풍고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산풍고괘를 보면 ‘바람이 산 밑에서 불다가, 산을 만나면 산을 휘돌아가면서 산의 모든 질서를 깨뜨린다.’고 되어 있다. 즉 바람ㅁ이 산을 휘돌아나가면 초목과 과실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쇠락의 조짐이다. 이를 인간 세상으로 보면 아랫사람이 굴종하면 윗사람은 정체하니, 부패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러나 부패 자체에는 원시와 형통이 포함되어 있어서 거듭 변화한 다음에 질서로 돌아간다. 그래서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移涉大川).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은 타락, 무질서, 파괴로부터 일어난다. 즉 썩어 문드러져야 비로소 진정한 일이 생겨난다. 혁명도 그러하다. 변화는 썩음, 파괴를 그 계기로 삼는다. ‘일’은 시(時)와 의(義)에 의해 나타난다. 시(時)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운명적, 종교적이다. 반대로 의(義)는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우리 삶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시는 우연이, 의는 필연이 지배하는 것이다. 우연과 필연의 교착점에서 ‘일’이 만들어진다. 산풍고의 ‘고(蠱)’라는 글자도 그릇(皿) 속에 벌레(虫)가 세 마리(蟲) 들어 있다. 그릇은 생존할 수 있는 도구를 상징한다. 그것에 생존을 위협하는 벌레(독충)가 세 마리나 있다. 갑골문에 이 글자가 ‘저주’를 의미하는 이유다. 고괘는 부패와 파괴의 모습이다. 군자는 대중에게 리더십을 발휘하여 구체적인 사업을 대대적으로 감행하여야 한다.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1954』에는 산풍고괘가 말한 무질서, 혼란, 파괴, 타락 등의 환경에 놓인 무인도에서 15소년이 겪는 갈등과 해결 방안을 이야기로 풀이한다. 즉 이 소설은 영국 소년들이 핵폭탄이 터져 영국 전역이 초토화 되어버린 상황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15명의 아이들만 무인도에 남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동인물인 랄프와 반동인물인 잭의 갈등이 주요 화소(話素)를 이룬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존재 양식적 삶을 지향하고 크로머는 소유 양식적 삶을 지향하듯이, 랄프는 존재 양식적 삶을, 잭은 소유 양식적 삶을 지향한다. 무인도의 소년들은 투표를 통해 가장 성숙해 보이고 잘 생긴 랄프를 대장으로 선출하고, 랄프는 성가대원을 이끌던 잭을 이인자로 포섭한다. 랄프는 나름 리더십을 발휘하여 지나가는 배들에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불을 피우자고 제안한다. 소년들은 피기의 안경을 햇빛에 반사해 불을 피운다. 그러나 불은 잘못하여 정글까지 퍼지게 된다. 소년들은 심기일전하여 오두막과 봉화를 짓는다. 잭은 열심히 무인도를 탈출하려 애쓴다. 한편 잭은 돼지 잡는데 온 신경을 쓴다. 하지만 해변에 피운 불을 감독하는 임무를 소홀히 한다. 지나가던 배가 구조 신호를 못보고 지나치게 만든다. 그 일로 랄프와 잭의 사이가 벌어져 갈등이 시작된다. 한편 소년들은 산 위에서 짐승을 보았다는 악몽을 꾼다고 호소했다. 랄프와 잭은 산을 수색한다. 랄프 일행이 짐승의 그림자를 보고 기겁한다. 서둘러 무리에서 돌아온 후 잭이 랄프는 겁쟁이라며 놀린다. 이어 새로운 대장을 뽑자고 제안한다. 이후 무리는 분열한다. 잭은 돼지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를 미끼로 랄프 편에 선 소년들을 빼내오기 시작한다. 잭의 무리들은 야만인들처럼 얼굴에 돼지피를 칠하고 창을 들고 불 주변을 도는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이에 동조한다. 한편 사이먼은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정글 깊숙이 탐험한다. 그러다가 산언덕에서 조종사의 썩은 시체와 낙하산이 바위에 매달려 있는 기괴한 형상을 목격하게 된다. 공포로 넋이 나간 상태에서 환상을 보게 된 사이먼. 그 앞에 파리대왕이 나타나 인간은 절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며 비웃는다. 잭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다. 랄프 일행을 습격한다. 피기의 안경을 훔친다. 이 일을 계기로 서로 싸우게 된다. 결국 피기가 절벽으로 떨어진다. 홀로 남겨진 랄프는 잭의 일행에게 쫓기게 된다. 잭은 랄프를 잡기 위해 섬 전체에 불을 지른다. 섬을 덮친 대화재를 목격한 해군이 섬에 상륙한다. 무인도의 소년들과 조우하게 된다. 모두가 오열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작가는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 목격한 인간의 숨겨진 사악한 내면을 소년들이 조금씩 야만인같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은 막연한 공포, 내재된 익명성을 상징한다. 인간의 생존 욕구가 인간을 가장 쉽게 타락시키는 심리적 기제임을 고발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쟁이나 학살을 벌인 지도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도 다름 아닌 생존이다. 생존 본능이 양심을 누르는 순간부터 악은 그 본능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즉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가 펼쳐진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주역』에서는 ‘진민육덕(振民育德)’이라 했다. 진민(振民)은 사회적 사업, 그러니까 구제사업이다. 육덕(育德)은 개인적 내면의 진실을 쌓는 사업이다. 진민은 외적인 것, 육덕은 내적인 것을 함께 해 나가는 것만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썩어야 혁명이 일어난다. 일이 생긴다. 혁명이 일어나야 일시에 새롭게 바뀐다. 총이나 칼로 일어난 혁명은 부질없다. 인간의 의식이 변화되는 혁명이라야 한다. 그래야 그 혁명이 오래간다. 그렇기 때문에 ‘진민육덕’이다. 외부적으로 대대적인 구제사업을 추진하고, 내부적으로 개인들의 의식이 변화되도록 힘써야 한다. 산풍고의 ‘고(蠱)’라는 글자는 ‘고혹’이라는 단어와 같이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마치 요즘의 마약처럼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만드는 독충이다. 그릇에 독충이 세 마리나 들어가 있다. 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데, 그 독충도 함께 먹는다. 병에 걸리거나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마약을 먹었을 때 느껴지는 증상과 유사하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파괴, 저주, 혼란, 무질서가 득세하여 썩어 문드러져야 끝이 난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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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호랑이 꼬리를 밟는 행위–'안나 카레니나'와 안수등정(천택리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삶에서 종종 작은 노력이 큰 성취로 이어지는 순간이 있다. 천택리괘의 철학은 우리가 열망을 추구할 때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대상전」에 천택리괘를 보면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연못이 있는 모습’이다. 하늘은 건괘라서 호랑이를 뜻하고, 아래에 있는 연못은 기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호랑이를 머리에 이고 기쁘게 따라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것은 이상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나타낸다. 또한 미지의 신성에 도전하는 모험 같기도 하다. 이상을 향한 꿈의 도전은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 있으면 그저 땅 위일 뿐이지만 걸으면 길이 된다. 사회원들의 조심스런 실천(밟음)을 통해서만 사회는 안정된다. 그런데 조심스레 밟아 나가도 호랑이 꼬리를 밟을 때가 있다. ‘안수등정(安樹藤井)’이라 했다. 미친 코끼리에게 쫓겨, 우물에 빠지는 순간, 등나무 덩굴을 잡고, 추락을 모면하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위에서는 코끼리가 씩씩대고, 밑에서는 뱀들이 우글거리고, 중간에는 쥐들이 나무 덩굴을 갉아 먹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꿀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꿀맛에 취해서 입을 벌리고 그 꿀을 받아먹는다. 달콤한 꿀에 취해 모든 상황과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게 인간이다. 이런 ‘안수등정(安樹藤井)’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문학작품을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가 썼다. 바로 『안나 카레니나』 다. 안나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안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무미건조한 성격의 카렌닌에게 시집을 가 8살 난 세료자라는 아들을 두고 산다. 그들의 결혼은 사랑보다는 조건을 중시한 결혼이었다. 나이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 차이도 그들의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했다. 안나는 매력적이고 저돌적인 귀족 청년 브론스키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의 사랑은 그 자체로 이미 불길한 전조를 띠고 있었다. 안나는 아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브론스키는 군대를 떠나는 것으로 그들은 불륜의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회는 인습적으로 자유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고, 안나 역시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지방 귀족으로 사교계의 청년과는 거리가 먼 레빈은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키티를 사랑한다. 하지만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빠져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이에 실망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을 계몽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펼치지만 키티에 대한 사랑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내의 불륜을 알고도 이혼조차 해주지 않는 남편과 사교계의 배척으로 안나와 브론스키는 괴로움을 겪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브론스키와 안나에게 상처를 입은 키티는 레빈의 진지한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탈리아 여행도 지겨워질 무렵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정열이 점차 식어간다. 이때 브론스키는 젊고 예쁜 소로키나와의 연애를 하게 된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며 괴로워하고 점차 우울증에 빠진다. 브론스키와의 첫 만남의 장소였던 기차역으로 가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안나 카레니나』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랑 이야기가 서로 대조되며 전개된다. 하나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키티와 레빈의 행복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다. 전자는 에로스에서 타나토스로 이어지는 불행한 로맨스다. 이들에게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처럼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후자에서의 사랑은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이며, 건전한 사랑의 모델이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정열의 과잉에서 생겨난 이기적이고 수치스런 사랑으로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톨스토이는 그들의 사랑보다는 고통에서 행복으로 이어지는 키티와 레빈의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제시한다. 사랑은 많은 신비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사연과 사랑의 코드를 가지고 있다. 누구의 사랑이 아름답고 누구의 사랑이 추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름 고통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성숙해지고 사랑의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스의 시인인 에우리피데스는 ‘사랑은 가장 달콤하면서도 가장 쓰라린 것’이라 했다. 안나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은 자기 영혼의 구원자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바뀌었다. 안나는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랑에 솔직했으나, 그녀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었다. 금지된 사랑은 매혹적이지만 언제나 치명적이다. 금지된 불륜은 파멸과 죽음을 경고하는데, 그럴수록 매혹의 힘은 강해진다. 사랑은 죽음을 불 지피고, 죽음은 사랑을 완성한다. 안나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여성이다. 안나의 사랑에서처럼 있을 수 없는 사랑은 없다. 다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있을 뿐이다. 7080시대 양희은의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주인공 안나의 비극은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서 비롯된다. 자기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남편과 사랑의 감정 없이 결혼했다. 이 과정이 호랑이 꼬리를 밟는 행위인 것이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 했다. 이는 『시경』에 있는 말인데, ‘살얼음을 밟듯 언행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의 속담에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다. 인생길을 별것 아니라고 자만하지 말고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스레 밟아나가다 보면 호랑이 꼬리를 밟는 일이 있더라도 호랑이를 머리에 이고 기쁘게 따라가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천택리괘는 상천하택의 모습, 즉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연못이 있는 형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모두 자기 위치에서 자기의 뜻하는 바를 올바로 실천해 나가면 사회는 안정된다. 우리는 살면서 마치 호랑이 꼬리를 밟은 듯 자책할 때가 있다.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망치거나 가지 말아야 할 회사에 들어갔거나 잘못 투자해서 큰돈을 잃거나 반드시 잡아야 할 인연을 놓쳐버렸을 때 스스로를 자책한다. 천택리괘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았어도 호랑이가 물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가 호랑이 꼬리로 봤던 일이 사실은 호랑이 꼬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에게도 극적인 희망은 있는 법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처럼. 지의 자리와 천의 자리는 무대의 배경이 되므로 여기서는 인의 자리를 보자. 63효사를 보면 설치고 장담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기꾼들이다. 사기꾼들에게 호랑이 꼬리를 밟게 된 것이다. 위기다.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까? 바로 신중함과 발 빠른 행동이다. 자기가 스스로 떠 안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주위 사람에게 알리고 현명한 대책을 강구해서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착한 삶보다 현명한 삶이 더 좋은 것이다. 대개 착한 사람들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된다. 착한 것이 악한 것보다는 좋을지 몰라도 자신의 착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되고 자기로 인해 친구들, 가족, 친척에까지 해를 끼치게 되는 일이 많다. 착해지려 하기보다 현명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사기꾼들은 착한 사람들을 먹이로 생각한다. 필자도 사기당한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사기꾼한테 속아 주식투자를 했다. 실패했다.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 발생하는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 가족의 분열, 직장의 실패, 나아가 내 자신의 인생까지 그야말로 핵폭발급 해악이 뒤따라 온다. 호랑이 꼬리를 밟은 것이다. 고민하다가 아버님을 찾아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버님은 필자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계시다가 산행이나 하자며 필자를 보문산으로 데려갔다. 함께 산행하던 중에 아버님이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한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돌부리에 걸려 두 번 넘어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필자는 아버님 뒤를 따라 걷다가 옆에 있는 소나무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그 후 주식투자를 끊었다. 아버님의 말씀이 호랑이 꼬리를 밟은 필자를 빠져나오게 한 것이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안수등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천택리괘를 보면서 그런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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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삶을 위한 학교’로의 학교철학의 제고(提高)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간은 살아가면서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라는 배움(교육)의 과정을 거친다. 각 과정은 고유의 역할을 존재의 사명으로 간직하며 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한다. 여기서 각 교육기관의 ‘존재의 사명’은 곧 그 기관의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를 통칭하여 ‘학교철학’이라 부른다. 곧 학교철학은 학교의 고유한 사명을 일컫는 말이며 이는 유아의 세계를 대표하는 ‘놀이의 세계’에서 성인의 세계인 ‘일과 직업의 세계’로 나아가는 준비단계인 것이다. 학령 전 아동기, 즉 유아기에는 유치원이라 지칭하는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을 거치는데 이는 “어린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동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유아들은 놀이하면서 자라고 놀이를 통해 배우게 된다. 그만큼 노는 것은 유아기의 중요한 삶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유아는 놀이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놀이와 함께 살아가고 배우는 과정에서 점차 나이를 먹게 되고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는 놀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성인의 세계를 향한 사회적 역할을 가르치도록 위임을 받게 되고 그 속에서 일과 직업의 전문적 세계를 준비하는 위대한 사명을 안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 속에는 필연적으로 ‘문화 충격(culture shock)’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일 뛰어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성인이 될 준비 즉, 일과 직업의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이고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아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숭고한 사명을 갖게 된다. 이런 논리는 19세기 독일의 박애주의 시대부터 학교의 기본 과제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독일을 비롯한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들은 이러한 학교교육의 철학을 준수하는 교육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잠시 학교의 단계별 과정을 보자. 초등학교는 놀이의 단계를 대표하는 유아의 세계에 더욱 밀착하게 되고 고등학교는 일과 직업을 향한 성인의 세계에 더욱 밀착하게 된다. 따라서 그 중간단계인 중학교 교육은 위상에 걸맞은 역할과 기능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찍이 놀이의 세계로부터 성인의 세계로 가는 중간의 중학교 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우리가 다시금 중학교 과정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근거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학교를 졸업하고 ‘일과 직업의 세계’를 위한 ‘사회적 역할(social role)’을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학교는 이를 위해 존재의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즉, 학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삶의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철학이자 학교의 사명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교육을 보자. 이러한 학교교육의 목표에 얼마나 충실하게 다가서고 있는가? 학교가 놀이의 세계에서 일의 세계로 사회화를 위한 연착륙을 얼마나 충실하게 도와주고 있는가? 역할놀이에서 전문지식을 터득하도록 전환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할 역할, 예컨대 직업인으로서의 역할, 어머니로서의 역할, 아버지로서의 역할,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 경제인으로서의 역할, 정치인으로서의 역할, 문화인으로서의 역할 등등을 제대로 학습시키고 있는가? 학교교육의 역할, 즉 학교철학은 이제 다시금 제고(提高)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교육으로의 일방적 교육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이는 곧 출세와 성공지향을 위한 뿌리 깊은 교육가치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벌타파를 위한 강력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전인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시민의 육성은 말로만 그치는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숭고한 학교철학을 드높여 그 속에서 누구나 단계별 학교 과정을 통해 즐겁고 만족스럽게 배우고 경험하는 것은 물론 미래의 행복한 전문인의 삶을 준비하는 학교로 거듭나야 한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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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경복궁에 담긴 소소한 우리 역사
- [교육연합신문=김나원 학생기자] 지난 10월 21일(토) 국제교류문화진흥원의 마리이야기 프로그램을 통해 경복궁에서 경복궁에 담겨 있는 역사를 배우는 수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에는 5대 궁궐이 있다. 그중 경복궁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관광지로 삼는 곳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의 역사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경복궁, ‘경복’은 임금님의 어진 정치로 백성들이 아무 걱정 없이 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경복궁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좋은 위치에 놓여 있고, 비교적 다른 궁들보다 큰 것을 보면 우리는 경복궁이 많은 심의를 기울여 지은 궁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소소한 정보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지킬 수 있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번 수업을 통해 전해받은 이야기들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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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경복궁에 담긴 소소한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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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다움과 심리 지배(Gaslighting)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교사는 ‘교사다워야 한다’라는 프레임은 누가 만들었을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용어는 1938년 영국에서 상영된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했다. 상황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가스라이팅을 겪은 피해자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겪으며 사회적 관계에서 점차 고립된다. 가스라이팅 가해 방식은 다양하다. 시작은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거나 경시하는 것이다. 교사들이 아무리 말을 해도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교사의 잘못이라는 것만 강조하고 교사의 힘겨움을 듣지 않으면 담임은 심리적으로 고립된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본인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내 뜻대로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관리자가 직원에게 그런 실수를 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는 결국 가해자 본인의 이기심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교사답다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교사다움이라는 프레임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해주지 않을 때 올가미로 쓰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생각하는 교사다움은 자신을 희생하고 참고 견디며 돈을 밝히지 말고 성직자여야 하며 순종해야 하며 집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사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오직 국가에서 원하는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을 충실히 수행하는 공무원을 바라는 것일 것이다. 머리채가 잡히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해를 입어도 교사를 능멸하는 욕을 해도 즉시 적절한 대응을 못한다.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교사이면서 최소한의 권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교사들의 자괴감은 느끼지 않은 사람은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교사다워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서 모욕을 감당하고 상대를 고소하지 못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정당한 교육적 지도를 할 수 있는 것이 교사다움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높은 사람은 가스라이팅의 대상에 되기 쉽지 않다. 교사에게 자존감은 그만큼 중요하다. 교사도 임금을 받는 실질적 노동자이고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도움을 줄 선생님의 선생님이 필요한 존재이다. 교사도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교사에게 봉급을 준다. 교사는 자기 의사를 충분히 밝히고 불의한 것에는 당당하게 도전하며 자존감을 지키고 보람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무엇보다도 학생에게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당당하고 주체적이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던져놓은 올가미에 얽혀서 스스로를 무력화하면 안 된다. 교사는 오랜 시간 동안 교사다움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학생다움을 요구하며 두발과 복장 단속을 하던 시대가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정부다움이나 교육청다움이나 교장다움이란 용어는 왜 없는가 생각해 본다. 약자에게 ‘다움’이라는 프레임을 자기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놓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모습은 없어져야 한다. 진정한 교사다움은 오직 교육적 양심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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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다움과 심리 지배(Gasl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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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불과 물, 생명의 근원과 철학적 의미(중화리)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중화리괘를 보면 ‘밝음이 또다시 겹쳐 오른다. 태양이 매일 끊임없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대인은 이를 본받아 태양의 밝음과 같은 자신의 밝음을 계속 이어나가고 그 덕의 빛을 천하에 구석구석 비춘다’라고 되어 있다. ‘중화리’의 ‘리(離)’는 ‘생명의 근원이며 붙음’의 괘이다. 불이 붙음의 속성을 지니고 있듯이 우리 존재도 바름에 붙었다면 그 덕성을 기르고 익혀서 잘 닦아야 한다. 불은 그 실체가 없다. 바람이 다른 물체와 상호 작용할 때만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불도 존재하려면 점화되어야 한다. 산소와 결합하여 빛과 열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은 불의 존재가 애착에 달려 있음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씨앗이 흙에 붙어서 싹을 틔워야 생명이 탄생하는 것처럼 붙음을 통해 생명이 탄생한다. 따라서 불은 생명의 생명력과 변화의 힘을 상징하는 생명의 은유가 된다. 불꽃의 존재는 만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가장 큰 불의 근원인 태양은 가까이에서 관찰할 때 흥미로운 역설을 드러낸다. 공허함 또는 '허명'(虛明)으로 나타난다. 비움 속의 충만함이라는 본질을 담고 있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심오한 성취를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필집 『텅 빈 충만』을 쓴 법정 스님도 ‘텅 빈 충만’을 ‘맑은 가난(청빈)’이라 하여 청빈한 생활을 강조한다. 오늘날 넘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며 겉으로는 화려할지 모르나 정신적으로 초라하고 궁핍하다. 욕심 때문이다.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가꿔야 한다. 산길에서 만나는 꽃 한송이의 소소한 기쁨, 친구에게서 온 다정한 전화 한 통에 행복을 찾음으로써 개인은 숨겨진 행복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중론』을 쓴 용수도 이런 말을 했다. “그대가 만족할 줄 모른다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그대는 그 돈과 재산의 노예일 뿐이다.” 행복은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다. 인생을 알차게 살려면 그 행복을 찾는 것이다. 물성에 한눈팔지 말고, 정성에 초점을 맞추라. 오늘날 인류의 문명은 언어의 사용에서 비롯됐다. 언어의 사용은 책을 만들고 도서관을 만들어 미래 세대의 지적 발전에 기여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알렉산드라 도서관을 짓게 한 것이다. 알렉산드라 도서관은 고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적 축적은 질적 변화를 가져와 세월이 지날수록 문명이 향상되었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나. 불의 사용 때문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감사해야 하나. 아니다. 불은 인간이 만들어 사용했다. B.C.50만 년 전 북경 원인의 두개골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그때 두개골 옆에 불에 탄 볍씨가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불을 사용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불에 고기를 익혀 먹었고, 덕분에 소화 에너지를 덜 쓰게 되어 남는 에너지는 뇌 발달에 쓰였다. 고기를 익혀 먹게 되니까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었고, 이것은 뇌의 발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즉 두개골 뼈가 얇아지고 근육이 얇아지게 되어 뇌가 커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더불어 구강이 넓어져 혀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이로써 인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말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생각은 더욱 치밀해졌다. B.C.5,000∼3,000년 경 석기의 도구가 타제 석기에서 마제 석기로 변했는데, 이것은 인류가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보다 치밀해졌다는 역사적 반증이다. 돌을 바위에 떨어뜨려 날카로운 돌을 골라 쓰다가 돌을 자기가 쓰려고 하는 목적에 맞게 갈아서 쓰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생각이 발달함으로써 사냥감(사슴, 소, 말, 멧돼지 등)을 동굴에 그릴 때 모양 그대로 그리다가 점차 기호를 사용하여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 즉 구체화에서 추상화로 나아갔다. 이어서 말을 저장하는 글이 만들어졌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 없앤다. 태양은 바위를 돌로 그리고 돌을 모래로 부순다. 그렇게 부숴진 모래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의 재료가 된다. 콘크리트의 핵심 성분인 이산화규소(SiO₂)가 모래와 석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인류가 이룩한 현대문명은 결국 모래와 불의 변형력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그릇이 유용하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고 수레바퀴 축이 굴러가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몸도 최적의 기능을 위해 맑은 마음과 공허함이 필요하다. 이 공허함은 꿈과 열망이 번창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강한 사회와 국가는 헌신과 열망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집단적 힘을 키우는 개인의 자발적인 기여로 형성된다.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다. 인간의 나이테다. 열대 우림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고 한다. 추위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테를 복잡하고 아름답게 만들려면 인생에서 고난, 고통, 기쁨, 사랑 따위가 서로 섞여 만들어내는 무늬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무늬를 스스로 꾸며 키워야 한다. 나비가 누에고치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쓸 때, 인간이 도와주려고 가위를 가지고 구멍을 넓혀주면 누에는 누에고치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누에고치에서 나온 나비는 오히려 날지 못한다. 스스로 빠져나오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붓는 과정을 거쳐야 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신의 오묘한 진리다. 사회의 힘은 성장과 번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쏟는 개인의 노력이 합쳐져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강한 사회다. 그런 사회가 모여 형성된 국가가 강한 국가다. 여기까지가 『주역』 상경이다. 건・곤에서 시작하여 감・리에서 끝났다. 다음 하경은 함・항에서 출발하여 기제・미제로 끝난다. 중화리는 『주역』 상경의 마지막 괘다. 태양이 중첩되어 있는 모습이다. 매우 밝고 희망적이다. 중화리(重火離)의 리(離)는 ‘떠남’의 뜻이다. 그런데 리(離)와 동음으로 된 글자가 려(麗)다. 려(麗)는 ‘붙는다“의 의미다. 떠남과 붙음. 반대말이다. 떠남과 붙음은 모든 물질대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주의 탄생(빅뱅)와 소멸(빅크런치, 또는 빅립)을 보라. 원자들이 달라붙어 별을 만들고, 나중에는 다시 원자들이 떨어져 별은 소멸된다. 중화리괘를 보면 음과 양이 서로 번갈아 있는 모양이다. 즉 만나고 헤어지면서 인간 사회가 형성되는 것과 같다. 원자들이 서로 붙어 물질을 형성하고 원자들이 흩어져 소멸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떠남과 붙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씨를 아무 데나 뿌린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적합한 토양에 달라붙어야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다. 인간도 자궁에 착상이 되어야 비로소 임신이 된다.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중화리의 리(離)는 해의 상징이다. 해는 허명이다. 텅 비어있지만 그 안에 빛으로 가득하다. 그 빛은 햇빛이다. 에너지를 가진 빛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태양은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린다. ’조우사방(照于四方)이다. 태양 빛은 천하 사방에 구석구석 아니 비췬 곳이 없다. 생명의 근원이다. 자신의 선한 능력을 ‘조우사방(照于四方)’해야 한다. 어떻게? 베풀고 봉사하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러면 선한 능력이 바이러스처럼 사방에 퍼진다. 그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사회가 밝아진다. 중화리처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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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불과 물, 생명의 근원과 철학적 의미(중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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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서울 탑골공원서 펼쳐진 CIC와 함께하는 우리 문화 나들이
- [교육연합신문=서지훈 학생기자]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8일(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는 채드윅송도국제학교 청소년문화재지킴이 동아리(이하 CIC)에서 추진한 'CIC와 함께하는 우리 문화 나들이와 다양한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뜻깊은 행사가 진행됐다.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속 공원이자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알리고 탑골공원을 이용하는 어르신들과 이용객들에게 좋은 추억과 함께 친근하게 주변을 가꾸어 나가자는 의미로 체험활동을 추진했다. 중요한 문화재(원각사지 십층석탑)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낙후됐다는 이미지가 많아 그동안 꾸준히 국제문화진흥원 청소년문화재지킴이와 CIC가 게이트플로깅 등으로 환경정화와 홍보를 해왔고, 이번에 CIC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고 기부를 받았다. 함께 도움을 준 예술로 위더스 사회적협동조합 이경숙 이사장은 "고등학생인데도 우리 문화재에 관심과 지식이 풍부해서 놀라웠고 무엇보다 이런 행사를 추진하고 어르신들과 방문객들에게 따뜻하게 응대하며 설치부터 마지막 정리까지 성실히 하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치매 어르신과 함께 온 아들은 "기억도 잃어가시는 분이 이렇게 웃으시며 지갑을 만드시는 걸 보고 정말 행복했다. 저희에게 행운의 날이다."라며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또한, 색칠공부를 처음 해본다며 정성껏 색칠을 하고, 함께 사진찍자며 손주에게 자랑하겠다고 웃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CIC단원들은 체험활동을 진행한 것에 가슴 벅찬 자부심을 느꼈다. 이번 행사에는 문화재청, 국제교류문화진흥원, 종로구청, 탑골공원 관리소에서 지원과 장소 제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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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서울 탑골공원서 펼쳐진 CIC와 함께하는 우리 문화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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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절망의 끝에서 시작하는 희망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교육이 위기이다. 교실 붕괴 경고음은 20년 전부터 울렸다. 신뢰가 무너지고 시스템이 붕괴하고 입시가 지배하고 무엇보다도 무기력에 빠져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학교를 떠나려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광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구한말 일본이 사립학교법(1908)을 공포하면서 시작된 근대적 학교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어려운 시기에 뗏목으로 강을 건넜다. 하지만 뗏목을 짊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따라갈 수 없다.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서서히 죽는 편리함이라는 우물과 알 수 없는 미래로 가는 강물 가운데 대중은 편리함을 택한다. 여행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편안하다.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만 있으면 편안하다. 알 속에 평생 있으면 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변화에 눈을 감게 한다. 상대평가와 오지선다형과 입시교육이 교육을 망친다고 아무리 외쳐도 입시 체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총체적인 문제라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존의 것을 모두 다 무너뜨려서 평지로 만들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하여 미군정의 영향을 받은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국민을 선진국 국민으로 만드는 미래역량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과정이 미래역량 중심을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구호가 아닌 실제로 핵심 중추를 바꾸어야 한다. 중학교부터 진로를 결정하는 교육과정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이 선정한 주제로 주제 중심 프로젝트 수업을 학기 단위로 하는 교육과정은 불가능한가.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은 불가능한가. 살기 어려운 시기에 시작했던 학교 건물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야 한다. 사각형이고 콘크리트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간, 교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 군대 연병장을 본떠서 만든 운동장과 시설, 문화시설이 없는 학교 공간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변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잠자고 친구를 괴롭히고 교사에게 대들고 무기력하고 기계적인 학습을 한다면 그런 학교는 없는 것이 낫다. 창의력을 죽이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이기심을 기르고 활동력을 묶어두는 학교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학부모들이 공교육보다 대안교육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다. 부모에게 자식보다 귀한 존재가 없다. 자식을 위해 어려운 일도 참고 굴욕도 참는다. 그런데 자식이 12년 이상이나 생활하는 초중고 학교에 관심이 적다. 가장 좋은 것, 가장 깨끗한 것, 가장 귀한 것이 있어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가장 귀한 자녀들이 몸을 담고 있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곳이 초중고 학교이다. 신도시를 만드는 구상은 구도심을 조금 수선하는 수준이 되면 안 된다.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 구도심에서 조금씩 지붕을 개선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지 못한다. 남이 지어준 건물에서 한 세기가 지난 근대교육은 이제 재건축 시기가 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녹물이 나오고 배관이 흔들리고 방수와 방음이 안 된다. 우리 미래인 아이들에게 비가 새는 낡은 건물에서 구해내서 산뜻하고 멋진 건물과 도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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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절망의 끝에서 시작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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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대자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천산둔괘를 보면 ‘하늘이 위에 있고, 산이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매우 정상적인 모습이다. 『주역』의 괘에서 정상적인 모습은 별로 좋은 괘의 모습은 아니다. 정상적일 때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정지되어 생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은 떠나가려 하고, 산은 아래에 있는 것을 능멸하려 하니, 양자는 서로 엇갈려서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둔거(은둔하여 사라지다)라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다. 어쨌든 군자는 이를 본받아 소인들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천산둔’의 ‘둔(遯)’은 ‘은둔’의 의미다.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것은 은둔이 아니다. 반드시 대의가 있어야 한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한다. 은둔하면서 하늘(신, 영혼)을 떠받드는 실천성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으로 『월든』(Walden, 1854)이 있다. 초월주의자인 핸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자신의 고향인 메사추세츠주의 콩코드라는 마을에서 3.2km 떨어진 숲이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월든’이란 곳에서 2년 정도(1845년부터 1847년까지) 머무르며 잃어버린 실재를 회복하고 지각의 문제를 가장 단순한 조건, 즉 인간과 자연으로 환원하여 실재를 찾으려 했다. 소로우는 지고의 청정성을 자연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자연의 영원함을 느끼는 시적 감정이 충만한 내적 풍요를 누리려 한다. 소로우가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진리의 추구는 인간혼의 영원성이었다. 그리고 그 영원의 모든 계기를 현재에 두었다. 즉 소로우는 영원이란 것이 자기가 존재하는 시대와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여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무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현재라는 촌각에 놓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후 소로우의 이런 사상은 시민 불복종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는 간디, 만델라, 톨스토이, 마틴 루터 킹목사 등이다. 『숫다니파타』(경의 모음)에 나오는 제1장 뱀의 장 중 세 번째 경인 코뿔소 뿔의 경 71에 나오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바로 대자유를 빗댄 말이다. 확증 편향적인 생각을 탈피하는 사람이 바로 대자유인이다. 자신의 몸과 정신에 잘 맞는 습관을 버려야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것인가. 새처럼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편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음식을 용기를 내어 먹어보는 것, 그래서 나중에 그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음식에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을 한국인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삭힌 홍어를 맛있게 먹을 때다. 청국장을 스스럼없이 먹게 될 때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고 인정하지 않는가. 따라서 자유인이 되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려야 한다. 드럼 악기에 자유로워지려면 드럼을 잘 연주해야 한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 나와도 자유롭게 드럼을 연주하면 된다. 그때 드럼에 대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드럼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리듬을 안 보고 노래만 듣고도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불교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자를 일컬어 대자유인이라 한다. 음악에 자유인이 되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트롯 장르만 들으면 안 된다. 재즈, R&B, 흑인영가, 라틴 음악까지 듣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 분야의 임계점을 뛰어넘어 특이점까지 가야 한다. 무한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훈련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자신이 가진 편견을 깨부수어야 한다. 흔적도 없는 바람처럼. 다음은 고(故) 신해철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 중 첫 부분의 가사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이하 생략) 좁고 좁은 저 문으로 가야 하긴 하는데, 문을 부수는 방법이 있고, 나를 잘라서 가는 방법이 있을텐데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자르고, 내가 나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긴다면 무엇이 남을까? 어디서 어디까지 버려야 나인게 될까, 어디서 어디까지 버리면 내가 아닐까. 내가 가진 것들, 사회적으로 가진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주위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평판을 얻기 위해 자제해야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깡그리 버린다면 오로지 남는 것은 의지와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마저 버려야 대자유인이 된다. 자존심 가득한 공무원이 은퇴하면 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힘들까. 자존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구속인이 되고, 자존감을 가진 사람을 자유인이 된다. 자유인이 되려면 구속인에서 자유인으로 ‘건너가기’를 잘해야 한다. 건너가기의 사다리에 오르려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낯선 것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자기의 마음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들과 친근하게 지내야 한다. 대자유인의 정치가는 여야를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속한 당을 위해서도 상대되는 당까지 포섭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저 하늘 위로 날아가는 새처럼 육지에서 하늘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왔다 갔다 하는 자유로운 새처럼 어떤 분야라도 마음껏 날아다녀야 대자유인의 정치가라 할 수 있겠다. 산 속에 은둔한다고 하여 대자유인이 될 수 없다. 그건 자연인이다. 대자유인이 되려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끊임없는 훈련을 하여 감정적 공감 능력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임계점을 넘어 특이점까지 찾아 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실현 가능한 대의를 찾을 수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월든』에서 말했듯이 자기가 존재하는 시대와 장소, 즉 현재에 바탕을 두고 현재라는 촉각에 놓인 삶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월든』은 소로우의 고의적인 은둔 선택이 개인의 성장, 성찰, 자연과의 더 깊은 연결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삶과 사회, 행복 추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소로우의 은둔 경험은 궁극적으로 단순함, 자립, 그리고 외부 세계의 요구와 산만함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 오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도록 이끌었다. 소로우의 은둔은 자연이 준 대 자유지 대 자유인은 아니다. 그건 자연인에 가깝다. 대자유인이 되려면 ‘은둔을 하더라도 하늘(백성)의 뜻을 받들 줄 알아야 한다’고 천산둔괘는 말하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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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대자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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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탐방] 충북 진천상고, 전국상업경진대회 교육부장관상 2년 연속 수상
- [교육연합신문=유기성 기자] 충북 진천상업고등학교(교장 반채익)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전국상업경진대회 창업동아리엑스포 종목에서 교육부장관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9월 14일(목)부터 16일(토)까지 3일간 경남 진주에서 열린 제13회 전국상업경진대회는 교육부가 주최하고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회로서 상업계열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한 대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2011년 처음 개최돼 올해로 13회 차인 전국상업경진대회 창업동아리엑스포 종목은 시도 예선을 거쳐 전국에서 실력 있는 27개의 창업동아리가 참가하며 열띤 경쟁을 벌였고 진천상고는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동일 종목에서 교육부장관상을 2년 연속 수상한 기록은 전무후무한 최초이기도 하다.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진천상업고등학교는 1964년 개교 이래로 59년간 지역사회에서 우수한 일꾼들을 배출한 명문 특성화고로서 인재를 육성, 배출하고 있다. 또한 매년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으로 독거 어르신을 위한 목도리 뜨기와 김장 나눔 행사, 반찬 봉사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나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도 청주 오송 수재민 돕기 자원봉사활동과 기부금 일백만 원을 전달한 바 있다. 명실상부한 창업교육의 명문고로 발돋움하고 있는 진천상고의 학생을 만나 2년 연속 교육부장관상 수상 비결과 함께 짧지만 긴 여정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Q. 2년 연속 교육부장관상 수상의 비결은? 창업동아리의 학생들이 서로 협업하여 퀄리티 높은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시중에서 지금 판매해도 될 정도의 수준을 뛰어 넘는 제품들이다. 그 중 참들기름을 생산하는 ‘맛정’ 동아리는 15년 역사를 지닌 전통을 가지고 있고 지역사회 내에서도 아주 유명하다. 2년 연속 수상 비결은 학생들의 결의와 그것을 뒷받침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인 것 같다. 단순히 수상을 위해 준비했더라면 부담감 때문에 힘들기만 했을텐데 우리가 땀 흘려 생산한 품질 좋은 제품에 자부심을 느끼고, 대회 준비에 즐겁게 임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얻어낸 것 같다. Q. 창업동아리가 유명한 이유는? 신박한 아이템들과 트렌드에 맞게 생산된 제품들이 시중에서도 수준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지역의 가치를 높이고 홍보할 수 있는 많은 제품들을 상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동아리가 유명하다고 생각된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학생 본인의 의욕과 더불어 지도 교사의 전문적 지식과 열정을 바탕으로 운영돼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고 있고, SNS와 창업동아리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학교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Q. 중학생 후배들에게 진천상고를 홍보한다면? 단순히 책만 읽고 이론만 배우는 것이 배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일 때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경험해 봐야 대학 진학을 하든 사회에 나가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것들이 우리 진천상고에 16개의 동아리로 자리 잡고 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더 많은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다. 창업뿐만 아니라 취업과 대입 관련해서도 많은 정보가 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찾아봐도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 진천상고에 오셔서 많이 알아가시면 좋겠다. 상업계열 특성화고 진천상고의 이러한 성과들은 창업교육의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지역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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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탐방] 충북 진천상고, 전국상업경진대회 교육부장관상 2년 연속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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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이 시대는 단순한 예측보다 희망을 말하는 교사가 필요하다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인간의 특성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늦게 알아차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망각하는 순간 비극이 찾아왔던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친구의 칼에 찔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카이사르(Gaius Caesar: BC100~44)의 삶이 그렇다. 또 “나는 세계의 파괴자다”라는 말을 남긴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이자 미국 원자폭탄 제조의 총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John Robert Oppenheimer :1904~1967)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들이 남긴 공통의 메시지도 바로 ‘예측해서 속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작가 이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를 살펴보자. 그는 교사가 에피메테우스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뉴얼이라는 획일적인 절차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기계적인 알고리즘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에게 ‘목록과 코드를 깨뜨리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에피메테우스는 ‘뒤에 알아차리는 자’란 뜻이며 프로메테우스의 ‘미리 알아차리는 자’란 의미와 대조를 이룬다. 일리치는 판도라와 결혼한 에피메테우스는 그 자체로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사는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기만의 잣대로 상황을 예측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현재 삶에 필요한 희망을 나누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가 아이들의 창의성을 박탈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획일적 인간을 길러내는 공간이 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학교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교육이 이루어지는 사회(Deschooling society)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을 바로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이라고 말했다. 잠시 원문을 인용해 본다. “기대가 아니라 희망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다. … 나는 이처럼 희망찬 형제자매를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자. 과거 어느 시점에 좋았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지 않은 일인 경우가 많다. 또 과거엔 손해 본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 일이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처럼 삶의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예측’보다는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예측했지만 쇠사슬에 묶여 절벽에 매달리는 삶보다는, 조금 늦게 알아차리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하며 희망을 줄 수 있는 자유의 삶, 교사는 이런 모습을 닮아야 한다. 교사가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말인가? 먼저 사회가 교사에게 스승이 되라고 강요하기에 앞서 학생이 자신의 교사를 좋은 스승으로 대우하고 학부모 또한 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시급하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 사회에 스승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사는 많은데 진정한 스승은 없다”거나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스승이 존재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배경이라 믿는다. 즉, 교사 대접해야 스승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가 매우 소원하고 상호 간에 기대하는 관계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 내면엔 오늘날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는 교사를 전적으로 믿고 학생, 학부모와의 만남을 지지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했고 따라서 ‘군사부일체’란 존중사상이 이 사회에 스승을 낳았고 그렇게 스승이 우리의 가슴에 남았다. 시대는 변하고 상황은 크게 달라졌어도 이 시대의 교육 역시 국가 발전의 확실한 보루이고 교사는 그 보루를 지키는 굳건한 파수꾼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단순한 예측만을 말하기보다 진정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교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은 더욱 알차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인곡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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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이 시대는 단순한 예측보다 희망을 말하는 교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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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사는 법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연휴 기간에 경기도 양평에 있는 용문사를 다녀왔다. 용문사보다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가 더 유명하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라고 한다. 안내판에는 나무 나이가 1,100년이 넘었다고 적혀 있다. 천년이 넘는 나이에도 열매를 생산하여 나무 아래 길에는 으깨진 열매에서 은행 특유의 냄새가 났다. 머리를 들어 나무 끝을 보자니 고개가 아플 정도다. 40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물을 끌어 올려 잎과 열매를 만드는 모습이 놀라웠다. 천년이 넘도록 지속하고 있는 자기관리 능력이 경이로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 고령자 통계’에서 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49만 9,9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이다. 통계청은 2년 뒤인 2025년이면 고령인구 비중이 20.6%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초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비용이 20%를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초고령사회가 멀지 않았다.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는 올해 기준 549만 1,000 가구로 전체 가구의 25.1%를 기록했다. 가구 유형별로 보면 1인 가구가 36.3%로 가장 많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는 계속 증가해 205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절반(49.8%)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 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높은 수준인 40.4%이다. 외로움과 빈곤은 노인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노인들은 늘어나지만 노인의 미래는 아름답지 않다. 남성 노인의 자살률이 높은데 이는 퇴직 후 고독과 생활고가 겹치고 그에 따른 우울감 등이 원인이다. 인간답게 늙는 것도 어렵고 인간답게 죽는 것도 어렵다. 건강하게 늙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고하게 높이 서서 열매를 만드는 용문사 은행나무에 그 답이 있다. 한시도 쉬지 않고 해마다 자기에게 적정한 일로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다. 젊은 나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봄이 되면 잎을 만들고 여름이 되면 열매를 준비하고 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이면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역량에 맞게 잎과 열매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겉모습이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면을 위해 새로운 배움을 놓지 말아야 한다. 배움을 놓으면 삶도 내리막길로 간다. 배움은 자기관리의 필수조건이다. 평생교육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평생교육이란 학교교육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활동이다. 평생학습은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가치와 만족감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각 지자체에서는 평생교육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지원을 확대해 가야 한다. 천년을 넘게 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노년을 건강하고 멋지게 사는 것인지 배울 수 있다. 쉬지 않고 배움으로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뿌리가 깊어야 오래 간다. 뿌리는 배움이다. 깊고 넓은 배움의 뿌리가 있어야 삶의 풍파에 견딜 수 있다. 배움을 평생 멈추지 않아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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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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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공산성을 지켜라!
- [교육연합신문=이혁현 학생기자] 지난 9월 29일 추석을 맞이해 공주로 여행을 떠났다. 공산성은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 공주의 전략적 요새로서 백제가 중요시 여겼던 요충지였다. 공산의 산세를 그대로 살려 성벽을 쌓아 전체적으로 들쭉날쭉한 외형이 특징이 있다. 공산성 앞에서는 수문병 근무교대식이 치러지는데 매주 토·일 1일 3회 운영하고 어린이날 및 백제문화기간에도 수문병 근무교대식을 진행한다. 수문병 근무 교대식 시간은 오전 11시(무령왕 회전의식), 오후 2시(수문병 근무 교대식), 오후 4시(수문병 근무 교대식) 이렇게 3회 차로 나뉜다. 수문병 뒤에는 북과 징 꽹과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수문병과 보는 이들을 긴장시키게 만들어준다. 수문병들은 공산성 외곽에 올라가서 깃발을 들고 서 있다. 공산성 위에 서 있는 수문병들은 백제의 위상을 나타내며 자연스레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지난여름 장마철 때 폭우로 인해 공북루가 잠기게 돼 금서루부터 공북루까지 가는 성곽 부분이 훼손돼 출입이 통제가 되고 있다. 그래도 전 성안마을이 있던 곳은 가볼 수 있다. 성안마을은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발굴하던 도중 옻칠 갑옷이 발견이 됐던 곳이다. 충청남도 공주에 가면 공산성을 한 번쯤 둘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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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공산성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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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겸손-높은 덕이 낮은 자세 안에 숨어있는 향기로운 꽃(지산겸)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겸괘를 보면 ‘땅 속에 높은 산이 들어 있다. 즉 낮은 자세 속에 높은 덕이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많은 것을 덜어내어, 적은 것에 보태고, 사물의 높고 낮음을 잘 저울질하여 그 베풂을 평균적으로 행해야 한다. 겸괘의 ‘겸(謙)’은 言(말씀 언) + 禾禾(벼화, 많은 벼)가 합한 회의자이다. 손이 많은 벼(禾禾)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거 얼마 안되지만…….’하며 겸양의 말(言)을 해서 겸소의 의미가 되었다. 따라서 ‘겸(謙)’ ‘겸손’이다. 산이라는 높고 큰 물건이 땅 아래에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땅 속에서 자기가 스스로 멈출 줄 알고, 밖으로는 유순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겸손의 자세다. 높은 산이 지면 아래에 있는 것도 지고한 가능성(잠재성)을 지닌 자가 몸을 극도로 낮추는 모습이니 바로 겸손의 이미지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있다. 여기서 노자는 물과 같은 삶을 강조했는데, 물이 가진 겸손의 철학이다. ‘모든 삶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가장 높은 것일 수 있다. 역설의 미학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겸손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솝 우화』에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강둑에 뿌리를 박고 듬직하게 자라고 있던 참나무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를 보며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다니,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 연약하니? 나를 좀 봐. 어지간한 바람에도 끄떡없잖아.” 참나무의 비웃음에 갈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엄청난 태풍이 불어 왔습니다. 태풍에 맞서 끝까지 버티던 참나무는 뿌리째 뽑혀 강물에 떠내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나무는 태풍에도 아무 일 없는 갈대들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습니다. “내가 이렇게 뿌리째 뽑혔는데 어떻게 너희는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믿을 수 없어!” 갈대들이 그런 참나무를 보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처럼 미련하게 힘만 믿고 버티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야. 우리는 언제 얌전하게 고개를 숙여야 할지 안다고.” 쓰러진 참나무를 보고 갈대들은 자기들이 강해서 살아남았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쓰러진 참나무 주위로 몰려와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재미삼아 옆에 있던 갈대들을 한 움큼씩 잡아 뜯어서 이리저리 함부로 내둘렀습니다. 뽑혀 버려진 갈대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만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참나무가 갈대를 비웃었지만 결국 참나무는 태풍에 뽑혀 강물로 떠내려간다. 그에 비해 갈대는 겸손하게 피해 갔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갈대도 참나무에게 자랑을 했고, 그 결과 아이들에 의해 뽐혀 말라 죽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만과 오만보다 겸손한 자세가 생존과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세상엔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 다만 겸손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얼마 전 김칫독에 김치를 눌러 놓는 볼품없는 넓적한 돌에다 ‘세심(洗心)’, ‘하심(下心)’ 중 ‘세심(洗心)’으로 붓을 그었다. 그런 다음 사진을 찍어 수석 채집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이윽고 ‘카톡’하고 소리를 내며 답장이 왔다. “돌에다 낙서하는 것 아니야. 돌은 그냥 무심하게 보아야 해. 그런 경지가 돌봄이지” 하면서 자기가 왜 교육계의 무한 돌봄(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살펴보는 것, 수석을 보는 것)인지 알려 주겠다고 초대장을 날렸다. 필자는 카톡을 받고 당황했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돌에다 쓴 말이 낙서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신중히 고른 나만의 활구(活句)였다.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려고 쓴 것인데, 그렇게 낙서로 생각했다니 그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카톡의 말은 필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돌도 인간처럼 처음에는 산중턱의 엄마돌인 바위에서 떼어져 나와 계곡으로 구르고 돌끼리 부딪히며 날카로운 부분들을 떼어내고 서로 부딪히며 갈고 닦아 동글동글한 자갈도 되고 조약돌도 된다. 인간도 거칠게 태어나서 사회생활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하면서 마음이 둥글-동굴해진다.’며 자기의 인생 철학을 요약하여 말했다. 사람은 살면서 겸손해진다. 또 그래야만 한다. 붓다의 길이 그랬다. 이른바 ‘절대적 탈영토화’의 길이다. 정복이 아니라 공감, 쾌락이 아니라 지복, 증식이 아니라 비움, 유한이 아니라 무한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원초적 자기 중심성은 완벽하게 해체된다. 그 중심에는 겸손이 자리하고 있다. 겸손은 들레즈의 말을 빌면 ‘절대적인 탈영토화’를 통해 얻어지는 덕성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흐름을 따라가면서, 겸손은 점차 이루어진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서로의 관계와 연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그릇에 담겨 있느냐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것처럼, 겸손한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열어준다. 겸손은 향기로운 꽃이다. 겸손하고 존중과 친절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려는 의지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행복과 성취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덕성이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 담긴 겸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겸손한 속성이 있는가 하면 모자란 곳을 메워주고 깨끗하게 만들기도 한다. 억지로 그 흐름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좁고 꼬불꼬불한 길도 잘 흐른다. 물은 형체가 없다. 한 가지로 고정되고 경직된 모습이 아니다. ‘정해져 있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물의 속성이다. 이것은 겸손의 속성이기도 하다.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다. 주역의 지산겸 효사(초6)에도 보면 ‘겸겸 군자’라 했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 군자여! 겸손이야말로 세상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겸손을 멀리하고 오히려 자기 PR을 하라 한다. 시대가 변하면 과거의 사상이나 철학이 고리타분해진다. 그러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이다. 주역에서도 효사(상6)에 보면 겸손을 무시한다면 군대를 일으켜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모든 것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즐기고 호의호식하는 데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물처럼 겸허한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물처럼 겸허한 마음이란 남에게 下心으로 대하고 자기에게 洗心으로 대하는 마음이다. 그러면 겸손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고조선, 우리 옛 선조들은 넓은 벌판처럼 그 마음이 항상 비어있고 겸손하고 서로 양보할 줄 알았다. 오늘날 한국인의 품성도 선조들의 덕성을 이어받아 공동체 정신의 기반을 형성하는 디딤돌이 됐다. 봉우리보다는 바다를 보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자. 하심(下心), 세심(洗心), 여수(如水) 세 단어는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활구(活句)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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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겸손-높은 덕이 낮은 자세 안에 숨어있는 향기로운 꽃(지산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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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시민이 주도한 수원화성문화제
- [교육연합신문=김예원 학생기자] 지난 9월 23일을 시작으로 수원을 대표하는 4개의 축제가 43일 동안 열린다. 힐링폴링 수원화성은 세계유산축전 수원화성(9월 23일~10월 14일), 수원화성 미디어아트(10월 6일~11월4일), 수원화성문화제(10월 7~9일),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10월 8~9일) 등 4개의 축제를 일컫는다. 특히 시민이 만들고, 모두가 즐긴다는 수원동락을 주제로 수원화성문화제는 60주년을 맞이한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한 프로그램에는 여민각 타종행사, 시민도화서, 거리에서 놀장, 성안에서 놀장, 예술놀이터 등이 있다. 수원화성문화제는 6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주제공연, 자궁가교를 올렸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수원화성문화제에 참석한 이재준 수원시장은 개막연에서 “수원화성문화제의 주인공은 시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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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시민이 주도한 수원화성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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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수동적으로 살면 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나다움이란 능동적인 선택에서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도 허전함이 가득하다. 왜 허전한가. 자신의 뚜렷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을 오랜 기간 동안 다녔지만 공갈빵처럼 내면이 허전하다. B.S.라즈니쉬의 『잠에서 깨어나라』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이 결정해 주는 것을 받아 그대로 살아온 나를 발견했다. 수동적으로 사는 곳에 나는 없었다. 의심 없이 여러 매체에서 제공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길은 편하고 쉽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따라하다 보면 뿌듯함이란 없다. 그러한 일들은 결과가 잘못되어도 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책임도 회피하고 주인의식도 없다. 주인의식이 없으니 당연히 삶의 의미도 발견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를 잘 모르니 허전한 것이다. 골치 아픈 선택보다는 방임하면서 관망하는 것이 살기 편하다. 스스로 고민하여 선택하거나 결정하기보다는 알고리즘에서 보여주는 것을 선택한다. 쉽게 얻는 뉴스 정보를 믿고 플랫폼 업체가 맨 위에 제공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선택하기 보다는 스스로 선택 당한다. 던져 주는 것을 받아먹고 쉽게 판단한다. 타인이 제공하는 많은 것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주체성이나 올바른 판단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없다. 우리는 주입식으로 지식을 제공하는 단방향 교육을 효율적으로 해 왔다. 정답이 있는 오지선다형 교육과 받아서 그대로 옮기는 복사기 교육으로 경쟁을 조장해 왔다. 질문하고 소통하고 정답이 없는 문제에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협력하는 교육은 외면해 왔다. 비판적 토론이나 합리적 토의는 제외했다. 아직도 암기, 지식, 받아 적기, 선다형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1초 안에 하는 일에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질문이 없는 교육은 한국교육의 단면이다. 선진국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질문이나 선택을 한다는 것은 능동성을 전제로 한다. 선택에는 위험과 책임이 따른다. 대중은 쉬운 방법을 택한다. 선택을 하지 않거나 언론 매체나 타인이 주는 달콤한 먹이를 덥석 물어 머리에 넣는다. 작은 일에도 선택을 미룬다. 진정한 나로 설 수 있는 것은 능동적 선택에서 시작한다. 남이 결정하고 남이 선택해 주면 진정한 나는 찾을 수 없다. 결정이나 선택은 존재의 외로움과 실수에 대한 공포와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준다.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결정을 할 수도 없고 책임도 가질 수 없게 하는 현재의 교육은 무책임한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참여를 통한 능동적 선택을 하지 않고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시민이 많아지면 한국의 미래사회는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시작이다. 틀에서 찍어주는 대로 나오는 붕어빵에서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나를 찾을 수 없다. 주체적인 나를 찾을 수 없다면 보람이나 진정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육성하려면 작은 것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를 교육현장에서 길러 주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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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수동적으로 살면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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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나주!
- [교육연합신문=이정은 학생기자] 긴 추석 연휴를 맞아 전라남도 나주시를 방문했다.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인만큼 문화유산과 유적지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나주향교는 향교 건축양식을 대표하고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향교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산이다. 향교란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요즘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학교로, 공자를 중심으로 유학의 성현 27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며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유학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제향 기능), 학생들이 유학을 교육하기(강학 기능)때문에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이 핵심공간이 된다. 특히, 나주향교는 대성전이 명륜당 앞쪽에 위치해 있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다. 향교가 자리 잡은 곳이 평지인 터에서는 앞 쪽에 제향공간을, 뒤쪽에 강학공간을 배치해 제향공간이 높은 위상을 갖게 하고, 경사진 터에서는 높은 뒤쪽에 제향공간을 두고 앞쪽 낮은 터에 강학공간을 두어 높이 차이를 이용해 제향공간의 위상을 높인다. 즉,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인 대성전은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보다 위쪽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나주향교는 공자의 아버지를 모시는 계성사가 있고 평지에 건축돼 있어 명륜당과 대성전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이다. 향교의 가장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으로 보물로 지정 보존하고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향교 대성전 건물 가운데 규모나 격식 면에서 가장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특히나 대성전 벽 흙은 공자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 전하며, 서울의 성균관을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을 때 나주 향교 대성전을 참조해 지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다. 전라남도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나주 향교를 비롯해 금성관, 나주학생독립기념관, 영산강,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등 생생한 역사 현장의 발자취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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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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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느낌의 무한한 매력 – 우주와 춤을 추는 삶(택산함)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택산함괘를 보면 ‘산 주위를 연못이 흘러내려 산을 윤택하게 하듯이 연못과 산은 서로를 생성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움으로써 타인들을 포용한다. 즉 자기를 비움으로써 많은 것을 느낀다.’고 되어 있다. ‘택산함’의 ‘함(咸)’은 戌(도끼)으로 口(어떤 지역 혹은 성)을 모두 파괴하는 데서 나왔다. 다른 풀이는 戌(도끼)을 들고 일제히 口‘(함성)을 지르는 모습이라 한다. ‘다함’, ‘모두’의 뜻이다. 함(咸)‘ 자 밑에 ‘마음 심(心)’자를 붙이면 감(感)이 된다. ‘느낀다’는 의미다. 삼라만상 모두가 느낌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7정(喜怒愛樂哀惡慾)과 이성, 언어까지 포함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함괘는 부부의 모습, 남녀 간의 사랑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따라서 함괘는 건곤에 비교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다. 그래서 『주역』을 상・하경으로 구성할 때, 상경은 건 곤 - 감 리괘까지고, 함 항 - 기제 미제까지가 하경이 된다. 그 중 최상의 느낌은 젊은 남녀의 호상 감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발랄한 표현이다. 남녀의 발랄한 교감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준다. 인간만이 아니다. 식물도 교배함으로써 결실을 맺는다. 광물도 그렇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물질은 양전기를 띤 원자핵과 음전기를 띤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서로 교감운동을 통하여 그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은상은 「사랑」이란 시에서 “탈대로 다 타시오/타다 말진 부디 마오/타고 다시 타서/재 될 법은 하거니와/타다가 남은 동강은/쓸 곳이 없소이다.”라고 말하며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의 마음을 상대에게 모두 태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광물까지도 그와 관계할 땐 느낌으로 한다. 보고 싶은 꽃이 있고, 갖고 싶은 광물도 있다. 그것을 느낌이 먼저 안다. 헬렌 켈러의 스승은 앤 설리번이다. 앤 설리번은 그와 같은 장애인인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오직 느낌으로써 했다. 예를 들어 ‘물(water)’이라는 단어를 가르칠 때 남들처럼 단어 스펠링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기보다 물가로 헬렌 켈러를 데려가 물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한 것이다. 직적 헬렌 켈러의 손으로 물의 흔적을 느껴보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것이 물이라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앤 설리번이 있었기에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하고 교육자, 작가, 사회운동가가 될 수 있었다. 필자는 세상의 유명한 영웅이라 여기는 나폴레옹, 알렉산더대왕, 징기스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헬렌 켈러였고,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앤 설리번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느낌’으로 교육할 수 있었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잠깐! 샛길로. 필자도 앤 설리번의 흉내를 낸 적이 있었다. 중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이 ‘사랑’이 뭐냐고 묻길래, 그리스의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가 한 말 “사랑은 가장 달고 가장 쓴 것”을 인용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느낌으로 알려줘야 하겠다고 생각해, 저기 창 밖 교정에 있는 라일락 잎사귀를 따오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잎사귀를 입으로 씹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아이 퉤 퉤”하며 쓰다고 난리였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교장 선생님의 호출과 함께 질타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교정에 있는 라일락 잎사귀를 모두 따서 가지만 남았다는 말과 함께 필자가 책임지라는 말도 안 되는 질타였다. 사랑의 이별은 쓰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을 느낌으로만 가르치려 할 때는 더 쓰다는 것을 알았다. 느낌은 나의 존재 여부와 직결된다. 삶은 느낌에서 시작된다. 『반야심경』에 보면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라 하여 여섯 가지 느낌의 강도를 말하고 있다. 안은 시각인데, 이것은 느낌 중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시각은 미혹되기 십상이다. 새끼줄을 보고 뱀이라 하기도 하고 우산도 그림자만 보고 칼이라 한다. 마술사가 마술을 부릴 때 눈속임을 최우선하고 있는 이치다. 시각보다 조금 신뢰가 가는 감각은 청각이다. 이런 식으로 후각, 미각, 촉각, 의식의 순서로 감각이 강해진다. 의식은 뇌의 감각이라 하는데, 한 번 형성된 의식은 목숨과도 바꾸지 않는다. 남의 의식을 바꾸는 행위는 그래서 어렵다. 느낌의 주인이 되어야 행복하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느낌을 완전히 살리는 데서부터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 택산함의 효사에 보아도 발가락부터 시작하여 장딴지, 허벅지, 머리, 어깨, 허리, 엉덩이를 거쳐 윗턱, 뺨, 혀까지 그 느낌을 찾아내라고 한다. 언어는 언어 이전의 느낌의 바탕 위해서만 유효하다. 발가락에서 등 근육까지 그 몸의 총체적 느낌 위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한다. “입 속의 말은 내가 주인이지만, 입 밖의 말은 나를 노예로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또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여 갈등을 일으킨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말에서 시작됨을 잊지 말라. ‘말은 사상의 옷이다.’, ‘말은 화석이 된 시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도 있다. 노신의 『입론』에 있는 말에 대한 일화다. 어떤 집안에 사내 아이가 태어나 온 집안이 말할수 없이 기뻐하였다. 한 달이 되었을 때 아기를 안고 나와 손님들에게 보여주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한 가지 길조의 말을 얻어내려는 생각에서였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돈을 많이 벌겠군요.” 그는 이에 감사하다는 말을 한바탕 들었다.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큰 벼슬을 하겠군요.” 그는 이에 몇 마디 겸손해하는 말을 되받았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죽게 되겠군요.” 그는 여러 사람에게 매를 한바탕 맞게 되었다. 죽게 될 것이라 말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부귀하게 될거라고 말한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사람은 좋은 보답을 받고, 필연적인 것을 말한 사람은 얻어 맞았던 것이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얻어맞지도 않게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 아가야! 보시오! 얼마나……. 아유! 하하!”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있는 사실만 그대로 말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언영색을 진실이라 믿고 사실을 진실이라 믿지 않는다. 말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택산함괘는 산의 특성인 ‘허심무아(虛心無我)’의 모습을 배우라고 한다. 산은 실상 물로 배를 채우지 않고 항상 계곡으로 물을 흘러내려 버림으로써 배를 비운다. 산은 물을 내려보내고 속을 비워야만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고 또 비가 내리면 끊임없이 그 수분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심무아의 모습을 본받아 마음을 비움으로써 타인들을 포용하는 자세가 『주역』 하경의 바탕을 마련한다. 느낌이다. 세상 만물을 대할 때 나 자신을 버리고 오직 무아(無我)로서 느낌을 마주 대하라.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그러면 우주와 춤을 추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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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느낌의 무한한 매력 – 우주와 춤을 추는 삶(택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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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충북로타리 3740지구 이경수 신임 총재
- [교육연합신문=유기성 기자] 국제로타리 고든 매키넬리 RI 회장은 2023-2024회기 '세상에 희망을'이라는 테마를 발표하고 첫 번째로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고 했다. 분쟁지역을 위해 클럽과 지구 차원에서 도움을 주어 세상에 희망을 주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고 '소아마비 제로'를 통해 매직을 선물하자고 했다. 두 번째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상처받은 이웃들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정신 건강을 위해 노력하자고 했다. 로타리 3740지구 제35대 이경수 신임 총재는 "RI회장님의 테마와 함께 '로타리를 선물하자'라는 지구 슬로건을 실천하고자 한다."고 발표했다. 이 총재는 2004년 6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청주로타리클럽에 입회했다. 그 후 클럽 회장, 지역대표 등을 역임하며 오늘의 영광스런 자리에 서게 됐다. 이 총재는 "3740지구 역대 총재님들이 이루어 놓으신 업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며 저의 열정을 뿜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로타리 3740지구 이경수 총재는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며 포용하는 국제 봉사는 늘 가슴 뛰게 했고, 로타리는 단순 봉사 단체가 아니며 우리의 경험치인 벅찬 감동을 공유하고 로타리라는 브랜드를 강화시켜 받고 싶은 선물과 주고 싶은 선물 1위에 로타리가 담겼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충북로타리 3740지구 제35대 신임 이경수 총재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그의 총재직 수행 방향과 봉사 철학을 들어보았다. ▣ 로타리 3740지구 신임 총재로서 앞으로의 총재직 수행 방향은 무엇인가? 제가 좋아하는 단어는 가족과 약속이다. 입을 통해 드러내는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로타리는 가족이다. 3740지구의 소중한 가족분들과 우리 사회를 좀 더 밝고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더 헌신하며 낮은 자세로 임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 임기가 끝났을 때 여러분들 가슴 속에 꼭 기억에 남는 총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로타리 정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저는 로타리 정신을 '초아의 봉사'로 정의하고 싶다. 자기의 이해관계를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다.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로타리 가족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더 헌신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는 리더가 되겠다. ▣ 총재께서 그간 로타리 회원으로서 봉사활동 중 기억에 남는 활동을 밝혀달라. 2004년에 로타리에 입문하여 20년 이상의 봉사활동을 통해 로타리 정신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 특히, 기부활동과 장학금 지원을 통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고, 어린이들의 심장 수술비를 지원하는 등 사회적 봉사에 힘써왔다. 또, 집 짓기와 집수리 사업 등의 봉사활동을 수행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주변에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 미래의 로타리는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로타리의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로타리를 미래에는 받고 싶은 선물과 주고 싶은 선물 1위로 만들기 위해 헌신할 것이다. 선물은 받은 사람도 좋지만 주는 사람에게도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불우청소년과 복지와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놓여 있는 사회적배려 계층에도 적극적인 지원과 더 다양한 봉사활동을 수행해나가겠다. 이경수 총재는 로타리 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업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다. 충청대학교 관광학과 졸업 후 1998년에 (주)아일항공여행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며, 현재 충북도관광협회장, 청주시 소상공인협회 부회장, 충청북도 의료관광협의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이경수 총재의 봉사정신과 리더십은 로타리 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그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로타리는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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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리더스] 충북로타리 3740지구 이경수 신임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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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풍성한 수확의 절기에 교육에의 소명의식을 재고(再考)하며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가 사는 사회엔 약자 아닌 약자로 불명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어린이, 여성, 노인,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학생), 성소수자, 사회 극빈층 등등이 그렇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약자로 대접받기를 원치 않으며 이들의 권리, 즉 인권(人權)에 제한을 두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 왜냐면 이들도 우리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권리를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자신들의 권리를 운운하며 이들을 배제하려는 사람들, 즉 강자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로 우리 사회가 양분되어 가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권리는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배제하면서 누릴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이기주의화 되면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것을 제한하려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이를 권리라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컨대 한때 음식점마다 아이들의 동반을 제한하려는 이른바 노키즈 음식점이나 레스토랑이 그렇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 적용이 남아 있다. 물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사람들 간에 만남을 통해서 중차대한 이야기를 하고 업무상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소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배제하면서 자신들만의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자기가 존중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은 배제를 당하는 제로섬 게임은 정의롭지 않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영화관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입장하여 다소 간의 시끄러움과 소란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그러한 아이들을 동반한 소수의 경우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그것을 전체로 보편화하여 규정짓는 것은 빈대 잡는다고 초가를 태우는 격이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철없는 어른들도 때로는 아이들과 마찬가지의 행동으로 다른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공공장소를 노키즈, 노어덜트, 노커플, 노맨 식으로 구별 짓는 것은 권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비민주적인 행위다. 우리는 이런 경우엔 매너 없는 개인의 문제라고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이들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비약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매우 비정하다. 평상시 누군가의 잘못은 그저 개인의 문제로 여기면서도 자신보다 약한 존재라 여기는 사람들의 잘못은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여 ‘노키즈존’과 같은 혐오의 공간을 만들거나 ‘맘충’ ‘틀딱’이라는 비인격적인 말을 지어내고 혐오한다. 누군가는 그걸 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존재를 혐오하고 배제할 권리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사회는 나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의 권리를 지켜주려는 배려와 관용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더불어 사는 인간사회이고 우리는 이를 교육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래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2018년 이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율(2022년 0.78) 기록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1명 미만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어느 유명 인구학자는 “이 나라 망했다”고 한마디로 토로한다. 이대로 가다간 미래 학자들이 예견하듯이 대한민국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로 남을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요구는 너무 염치없다. 그렇다면 혐오와 배제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교육할 수 있을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말과 행동으로 실천궁행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감사와 기억과 나눔,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관용,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공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누구든지 어느 때든지 어느 곳이든지 배우고 체득해야 할 교육의 필수다. 풍요로운 한가위 명절을 보내며 바야흐로 수확의 풍성함을 누리는 시기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상호 ‘감사’하고 타인을 ‘기억’하고 자기 것의 ‘나눔’을 널리 공유하는 인간 존중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교육의 소명의식으로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 믿는다. ▣ 인곡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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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풍성한 수확의 절기에 교육에의 소명의식을 재고(再考)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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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아기가 우는데 볼기를 때리거나 큰 소리로 위협을 하는 행동은 올바른 대응이 아니다. 배가 고픈 건지 옷 안에 이물질이 있는지 기저귀가 젖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보호자가 해야 하는 올바른 대응이다. 우는 아기의 입을 막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해결방법이다. 우는 것조차 막으면 억울함을 느낀다. 아기가 우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우는 아기는 없다. 이유를 모를 뿐이지 청소년도 이유 없이 반항하지 않는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계속되는 교사들의 죽음이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죽음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 하나는 억울함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잘못한 것만큼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면 극단적 선택은 없었을 것이다. 마음이 분하고 답답한 심정이 억울함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악성민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없다는 무력감에 분하였을 것이다.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주변 상황이 답답했을 것이다. 무력감과 고독함은 삶의 의지를 소멸시켰을 것이다. 교사들이 주말에 자기 돈을 내고 시간을 소비해서 간절하게 울고 있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교육을 하는데 범법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법과 악성민원으로 이런 상황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이 죽음을 불사하도록 억울하다는 것이다. 죽음이 있고 난 이후에야 간절함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억울한 것이 없을까. 아무리 달려도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두고 가혹한 채찍질을 견디며 사는 학생들은 경쟁에서 쓰러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친구조차도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현실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사랑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1등이나 최고를 차지하지 못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점수와 경쟁과 얽매임과 열패감을 업보처럼 안고 산다. 보호자는 억울한 것이 없을까. 학교를 믿지 못해서 학원에 많은 돈을 낸다. 학교교육만으로 사회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다. 학교만 잘 다니면 훌륭하게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된다. 소중한 자식이 학교에서는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학부모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을 할 뿐이다. 학교는 보호자의 의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식을 맡겨 놓아 참으며 억울함을 느낀다. 관리자들은 억울한 것이 없을까. 윗사람을 존중하던 문화는 사라졌다. 많은 책임을 관리자에게 지우려한다. 젊은 시절에는 박봉에 시달리며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사명감으로 지내 왔다. 요즘 교직원은 권리만 요구하고 책임감이 없어 보인다. 샌드위치 신세가 억울하다. 억울함은 분노나 파멸로 이어진다. 국가는 세금을 국민에게 걷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억울함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정부는 억울한 교사, 억울한 학생, 억울한 학부모, 억울한 관리자가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억울함이 없는 환경을 고민하여 제공하는 사회여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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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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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대유의 비전–공적이고 아름다운 천명 (화천대유)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대상전에 화천대유괘를 보면 ‘하늘 위에서 불(태양)이 빛나는 모습이다.’ 태양 빛은 사람과 사물에서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햇볕은 비타민 D을 공급한다. 우울증은 햇볕을 보지 못해서, 즉 비타민D가 부족해서 걸리는 병이다. 밝음, 선(善), 긍정성 등의 상징을 갖는 태양은 인간이 항상 우러르는 자연이다. 태양은 자연 중 으뜸이다. 그래서 태양을 ‘하늘의 눈’이라 한다. 피로할 줄 모르는 태양은 매일매일 그의 창조력을 발휘한다. 모든 대지 위에 전능한 태양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대유괘의 인간상은 바로 임상옥이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에 나오는 실존 인물 임상옥은 200여 년 전에 실재하였던 의주 상인이다. 우리나라가 낳은 최대의 무역왕이며 거상이었다. 임상옥은 죽기 직전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고, ‘재물는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매점매석과 같은 부정적인 도리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정직하지 못한 재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파멸을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소설은 석숭 스님이 임상옥에게 내려주었던 세 가지 즉, ‘죽을 사(死)’와 ‘솥 정(鼎)’과 ‘계영배’의 세 활구(活句)를 가지고 그것을 서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상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푸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먼저 ‘죽을 사(死)’의 활구(活句)다. 중국과의 인삼 무역에서 중국 상인들이 담합하여 인삼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커다란 사업의 존폐 위기에 처한다. 이때 임상옥은 ‘죽을 사(死)’를 생각하여 백척간두에서 다시 걸어 나간다. 백척간두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그 벼랑 끝에서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지혜를 터득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결론을 낸다. 임상옥은 계속되는 중국 상인들의 불매 운동에 가져온 5천 근이나 되는 인삼을 모두 불태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5천 근이나 되는 인삼의 반 정도가 실제로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본 중국 상인들은 앞다투어 불을 끄는데 동참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상옥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거상으로서 이름을 드날리게 된다. 세상 모든 일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아 포기의 죽음이란 무(無)를 반드시 통해야만 생명의 기쁨인 존재의 유(有)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다음 ‘솥 정(鼎)’의 활구(活句)다. 중국의 도가에서는 솥의 세 발을 인간이 가진 세 가지 욕망으로 흔히 비유하여 말한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욕망이 있다. 명예욕, 지위욕, 재물욕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욕망을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삼욕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재물을 가진 사람은 명예뿐 아니라 권세까지 누리려 한다. 권세를 가진 사람은 명예뿐 아니라 재물까지 가지려 한다. 이것은 분명히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계영배(戒盈杯)’의 활구(活句)다. 임상옥은 언제나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품 속에 지니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계영배는 가득 채우면 어느새 한 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고 7부 정도 채워야만 온전하다. 억지로 가득 채우려 하면 술독의 술은 물론 한강물을 전부 쏟아붓는다고 해도 채울 수 없는 술잔이다. “장사는 곧 사람이다. 사람이 곧 장사다” 상즉인(商卽人). 임상옥이 말하는 상도(商道)란 무엇인가. 하늘 아래 최고의 거부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욕망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욕망의 절제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진다. 곧 장사는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마치 『초한지』에 진시황의 실제 아버지인 여불위처럼. 임상옥은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린다. 요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화천대유’ 부동산 사건은 ‘(백성들의 삶을)크게 풍요롭게 하다’의 대유의 뜻을 ‘크게 해 처먹는다’로 곡해해서 벌어진 웃지 못할 사건이다. 결국 대유괘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공적 베풂이다. 그래서 대상전에서는 말한다. ‘알악양선(遏惡揚善), 순천휴명(順天休命)’이라고. 악을 근절시키고 선을 드러내어 아름다운 하늘의 명령에 순응한다는 의미다. 하늘의 명령에는 이미 알악양선의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다. 천명의 선악에는 사의(私意)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고, ‘크게 아름다운 천명을 따른다’는 의미다. 사적인 개인적 취함이 아니라 공적인 보편적 가치를 발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무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화천 대유해야 한다. 재계 서열 상위에 드는 기업들도 화천 대유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처럼.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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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대유의 비전–공적이고 아름다운 천명 (화천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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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특집] ② 북한 밖의 북한, 다문화의 교차점
- [교육연합신문=유재관 기자] 2018년 4월 27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판문점 선언'은 국내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교류 활동에 물꼬를 트게 되었고, 남북한 사이의 화합을 모색하는 이 같은 움직임이 교육계에도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다. 교원단체와 각 시도교육청이 잇따라 남북 교류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북한과의 접촉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교육부에서는 미래 통일 교육을 위한 밑그림으로 평화 통일 교육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통일 교육 내실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경기, 강원, 서울 교육감들은 평화 통일 교육 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평화 통일 교육 공동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육청은 부산과 닮은 점이 많은 북한의 항구 도시 원산 지역과 교사와 학생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부산에서 ‘다 같이 독서토론 한마당’을 열어 남북 고등학생들이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기회를 얻으며, 원산에 부산 고등학교 축구부가 방문해 친선 축구대회를 열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추진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그보다 10여 년 전 2007년 11월 부산시교육청에서는 북한 학교 급식 기구 지원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그해 여름 북한은 최악의 집중 호우로 큰 피해를 보게 되어 북한 학교에 급식 기구 지원을 위해 부산시 전 교직원을 비롯하여 유·초·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모금한 2억 3,391만 원의 성금을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 전달했고, 12월 초 교육청 방북단을 구성하여 평양 방문을 통해 전달한 구호 물품을 확인하며 상호 교류 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북한과의 교류 활동 및 지속적인 관계 유지는 정치적, 제도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제약을 안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2007년 인권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북한 수해 복구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었던 그 시점부터 사실, 우리는 미래 통일 교육의 초석을 다질 복안을 좀 더 세심하게 고민하고 장기적인 남북한 상호 교육 협력 방안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윤미향 국회의원이 일본 조총련 행사를 방문한 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 사이에 찬반의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줄임말로, '조선총련' 또는 '총련'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총련'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조총련 단체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즉 동포들 가운데 좌익 계열에 속하는 사람들이 설립한 단체로서, 조총련의 구성원들은 북한을 '공화국'으로 부르고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 부르며 대한민국이 아닌 북한을 그들의 조국으로 여기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 최악의 경제난으로 인하여 긴밀한 관계에 있던 북한과 조총련이 다소 소강상태에 진입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는 있지만, 조총련의 뿌리는 북한 공산주의 체제와 밀접한 유대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고, 38선 이북의 북한 학교와 북한 밖의 북한, 즉 일본에 자리 잡고있는 조총련 학교는 그 뿌리가 같음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8년 일본 시마네 국립대학에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기차 안에서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조총련 초등학교 학생과 마주 앉게 된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독도와 영토 분쟁으로 유명한 시마네현 마츠에시는, 일본 신화의 탄생지로 유명하며, 바다를 끼고 철도가 놓여져 있어, 일본 국도 9호선을 타고 부근 지역을 가다 보면 빼어난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차창 밖을 쳐다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어느 날 기차 안에서 맞은편 좌석에 앉은 조총련학교의 초등학생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편생활을 하던 중에 일본 문부성 초청 교원 연수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갔기에, 당연히 일본 현지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본인에게는 교육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조총련 초등학생과 마주 앉은 순간, 본능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를 확인하고 싶어, 마주 앉은 여학생들에게 인사말을 건네며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교과서 몇 권을 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사칙 연산을 지도하는 수학 교과서에서 어린 학생들이 총을 들고 미군 병사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맞추는 그림을 제시하면서 쓰러진 미군 병사의 숫자와 아직도 총을 더 쏘아 죽여야 할 미군 병사의 숫자를 계산하는 내용과 사회 교과서에는 남한을 나타내는 지도에 불빛이 거의 없는 컴컴한 곳으로 표현한 것이며 교과서 곳곳에 김일성 사진과 전쟁에서 승리해 총칼을 앞으로 겨누며 깃발을 휘날리는 삽화 등은 실제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로 대한민국 교과서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교할 수 없는, 교과서가 아닌 잔인한 동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조총련 학생들에게 본인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 같으냐고 물어보았더니, 고급 일식당이나 옷 가게에서 일을 하는 사람 같다는, 너무나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어 그 또한 놀라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조총련 학교에서는 모든 여선생님이 똑같은 옷을 입고 화장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신고 있는 핸드백과 구두를 쳐다보며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이 귓속말로 속닥거리며 뭐라고 말을 나누곤 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기차 안에서의 조총련 학생들과의 만남은 생전 처음 경험한 잊을 수 없는 북한 체제와의 교류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날 지금은 북한 역시 교육 과정도 개편하여 조총련 학교의 교과서도 새로운 단장을 하였으리라 짐작은 하나, 북한 체제에서 가르치는 공산당 교육의 근본이념은 바뀌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본에 자리 잡고 있는 조총련 학교 역시 38선 이북의 북한 학교와 그 뿌리가 다를 리 없으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활발하게 물꼬를 트고 있는 남북 교류 활동의 연장선상에도 조총련이 있음을 인식할 때, 현재 국내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여러 교육적 교류 프로그램을 굳이 38선 이북의 북한 학교에만 국한 시킬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일본 조총련은 일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와 그 속에 자리 잡고있는 북한 밖의 북한 체제라는 이원화로 접근할 수 있는 점에서 다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훨씬 효율적이고 다각적인 면으로 시각을 넓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미래 통일 교육을 대비하는 방법으로 북한 밖의 북한인, 일본 조총련 학교와도 그 맥락을 같이 이어가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25년 전 기차 안에서 마주 앉은 초등학생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들이 되어 나름대로 현실을 직시하며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으리라. 판문점 선언이 계기가 되었지만 25년이 지난 지금, 38선 이북 평양이나 함흥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 아니라 내일이라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가서 그때 그 시절처럼 우연히 기차 안에서 조총련 학교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하여 또 그렇게 25년이 지난 오늘날, 그들의 교과서를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 이정애 ◇ 한국다문화공동체 대표 ◇ 前한국다문화국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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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특집] ② 북한 밖의 북한, 다문화의 교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