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27(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국 고대사의 서막을 장식한 두 나라가 있다. 은나라(상商)와 주나라(周). 중국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 두 나라가 "중국 문명의 뿌리"처럼 이야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간 축적된 고고학 연구와 고문헌 해석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두 나라가 사실상 “동이족의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이족’ 하면 곧바로 중국이 말하는 ‘오랑캐’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절반만 보여주는 시선이다. 동이는 단순한 주변 세력이 아니라, 황하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대 동방의 주역이었고, 심지어 은과 주, 즉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 깊숙이 관여한 주체였다. 

 

□ 알에서 태어난 시조, 은나라와 동이 신화의 닮은꼴

은나라 시조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다. 『사기』 은본기에서 사마천은 은나라의 시조를 “설(契)”이라 적는다.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새의 알을 삼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른바 “난생(卵生) 신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장면이 보인다.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 신라 혁거세가 알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은나라와 한반도의 신화가 같은 원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은나라가 분명히 동이 문화권 속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단서다.

물론 은나라 시조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죽서기년』은 순(舜) 임금의 아들 의균(義均)이 상(商)에 봉해져 시조가 되었다고 하고, 『노사』에서는 그가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전한다. 『금문신고』 같은 다른 기록에서는 설의 부친이 곤(鯀), 조부가 전욱(顓頊)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계보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은나라와 주나라 시조의 뿌리가 모두 “제곡(帝嚳)”이라는 사실이다. 제곡은 누구인가? 바로 동이족의 대표적인 제왕, 소호(少昊)의 손자다. 즉, 부계 혈통에서 은과 주는 모두 동이족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 은과 주, 형제의 나라

주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 棄(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농업의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은의 시조 설과 주의 시조 후직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만 다른 형제다. 다시 말해, 은과 주는 처음부터 같은 씨족 혈통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라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시조의 이름이 설이든 의균이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고, 주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순(舜) 임금 역시 맹자가 ‘동이족 출신’이라고 못박았으니, 그의 아들이 시조가 되었다는 『죽서기년』의 기록 역시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즉, 중국 고대사의 첫 장을 연 두 나라, 은과 주의 뿌리는 동이족이었다.


□ 은허의 발굴과 불편한 진실

문헌만으로는 믿기 어렵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고학 증거가 이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은허(殷墟). 하남성 안양에서 발굴된 이 유적은 은나라가 실존했던 국가임을 처음으로 입증한 현장이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학계는 하(夏)와 은(殷)을 “전설 속 왕조”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은허가 모습을 드러내자, 은나라는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임이 명백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은나라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곧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이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한족(漢族) 중심의 역사관을 강조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역사공정’이다. 하나라(夏)를 실존 국가로 만들려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말이다.

왜냐하면 은을 첫 국가로 인정하면, 중국사의 출발은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중국은 실체가 불분명한 하나라를 억지로 실존 국가로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 동이족, 잊혀진 주인공

결국 고대 문헌 기록, 신화 전승, 고고학 증거를 종합하면 분명한 결론이 나온다.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까지, 이 두 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여전히 세부 논쟁이 많다. "은나라의 실제 시조가 설이냐, 의균이냐" 같은 문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가지의 문제일 뿐,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동이족의 피와 문화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이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중국 고대사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동이는 더 이상 ‘주변부 오랑캐’가 아니라, 문명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중심이었다. 황하의 문명과 요동·한반도·산동의 문화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낸 다중적 기원이 바로 동아시아 고대사의 출발점이었다.


□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날 "동이"라는 말은 중국의 시각에서 주변을 부르던 호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실체는 오히려 우리가 찾아야 할 기억이다.

우리가 쓰는 문자, 신화, 언어의 뿌리 곳곳에 은과 주, 그리고 동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 신화가 은나라의 신화와 닮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골문과 청동기 문양 속에서 동이계 도상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언어로 쓰인다. 오랫동안 동이는 ‘남이 적은 역사’ 속에서 주변인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문헌과 신화, 그리고 땅속에서 나온 유물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과 주, 중국 국가사의 출발점에서 동이는 결코 주변이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공정은 하나라를 내세워 은나라의 동이적 뿌리를 가리려 하지만, 땅속에 묻힌 증거와 오래된 신화는 여전히 그 사실을 증언한다.

은과 주, 중국사의 두 시원은 동이족의 나라였다. 이름이 무엇이든, 시조가 누구든, 그 뿌리만은 변하지 않는다.

 

 

육우균.jpg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전체댓글 0

  • 6969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나라와 주나라, 그리고 동이족의 뿌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