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월인천강지곡',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위한 학술대회 성료
“구텐베르크보다 8년 앞선 자국 문자 금속활자본” 가치 재조명
[교육연합신문=안용섭 기자]
![[크기변환]1764632760646.jpg](http://www.eduyonhap.com/data/tmp/2512/20251202201937_flxhbdah.jpg)
세종대왕이 1447년경 직접 지은 국보 『월인천강지곡』 상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학술대회가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지난 11월 28일 개최됐다. 이 문헌이 지닌 역사적, 언어학적, 인쇄사적 가치가 학계 전문가들의 발표를 통해 총체적으로 조명됐다.
국보 소장처인 (주)미래엔 교과서박물관(관장 김동래)과 등재를 추진 중인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가 주최하고 세종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위원장 박병천)가 주관하는 이번 학술대회는 세종시립도서관 강당에서 열렸다.
발표자들은 『월인천강지곡』이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1455년)보다 8년 여 앞선 세계 최초의 자국 문자 금속활자 간행 문헌임을 강조하며, 인류 인쇄 문화사의 찬란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사회 박정숙)는 박병천 세종시 월인천강지곡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 위원장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박 위원장은 "『월인천강지곡 상권』은 1447년경 세종대왕이 목판본으로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글꼴을 조금 변형한 금속활자로 주조해 간행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간행 문헌"이라며, "일진천성(一進千成)처럼 월인천강의 빛이 온 인류의 마음속에 고루 비추기를 소망한다."라고 밝혔다.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환영사에서 "세종시는 국내 유일의 한글문화 도시로서 『월인천강지곡』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더욱 힘쓰며, 한글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라고 강조했다.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은 축사를 통해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반포 이후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한글 시가집 중 하나이며, 한글 반포 초기 금속활자로 빛낸 문학의 백미"라고 평가했다. 송하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도 "세종의 마음이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환히 빛날 것"이라며 등재 추진을 축원했다.
김동래 미래엔 교과서박물관장은 국보 소개를 통해 『월인천강지곡』의 가치를 상세히 설명했다. 김 관장에 따르면, 이 책은 한글 전용 금속활자 9986자(849종)를 사용해 인쇄됐으며, 1914년 부안 실상사 불복장에서 발견된 후 1972년 대한교과서주식회사(현 미래엔)가 인수했다. 1991년부터 유엔본부에 한국 대표 유물로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김 관장은 "2025~2027년 3개년 계획으로 국내외 학술대회 개최, 영인본 및 해설서 발행, 월인 작품전시회 개최, 월인 거리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세계 최초 자국 문자 금속활자본
권재일 한글학회 이사장은 기조 강연에서 『월인천강지곡』이 1447년경 간행된 세계 최초의 자국 문자 금속활자본임을 강조했다. 독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1455년)보다 8년 앞선 인류 인쇄 문화사의 찬란한 업적이라는 평가다. 권 이사장은 "이 책은 한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우리 글로 처음부터 지어 부른 최초의 한글 문학작품"이라며 "한글을 큰 글씨로, 한자를 작은 글씨로 적어 한글 우위 표기를 실천한 기록유산"이라고 밝혔다.
□ 세종의 꿈을 담은 찬불가
박범훈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은 초청 강연에서 『월인천강지곡』이 단순히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세종이 정간보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리기를 바란 찬불가임을 강조했다. 『사리영응기』에는 세종이 직접 작곡한 불교 의식 음악 7곡의 곡목과 9곡의 가사가 전하며, 불당 낙성식 당시 총 67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종합예술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범훈 원장은 강연에 앞서 2023년 12월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박범훈 작곡·지휘의 교성곡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이 그 선례로 소개하고 그 악보를 직접 현장에서 박병천 위원장에게 기증해 큰 박수를 받았다.
□ 세계기록유산 등재 본격화
이번 학술대회는 『월인천강지곡』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승혜 수원여대 교수는 첫 발표에서 유네스코 등재 기준에 맞춘 월인천강지곡 대응 근거를 제시했다. 『월인천강지곡』은 문자, 사상, 인쇄, 예술이 하나의 국가적 프로젝트 안에서 실현된 인류 최초의 복합 기록유산으로서 유네스코의 세 가지 핵심 가치인 ‘보편적 가치, 진정성, 인류 공동 기억의 기여’를 모두 충족하며, 학문적·문화정책적 근거에서 ‘훈민정음 이후 실용화된 문자문화의 결정판’으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타당성을 명확히 갖는다고 했다. 발표자들은 이 문헌이 초기 한글 활용의 결정적 증거이며, 훈민정음 반포 직후 국가 주도로 종교 문헌을 창작·보급한 세계사적 희귀성을 지닌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유호선 국립한글박물관 연구교육과장은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왕실 내부에서 불교 신앙이 지속된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며, 소헌왕후의 명복을 비는 추천 목적 외에도 효와 자비의 통치 사상을 교화하려는 세종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 『월인천강지곡』의 인쇄적 가치
강순애 한성대 명예교수는 『월인천강지곡』의 편찬은 그 과정을 『훈민정음』 해례본과의 연속성 속에서 파악하고, 『석보상절』과의 상호텍스트성을 밝혔다. 『월인천강지곡』은 초주갑인자 병용 한글자 대자로 한글을, 초주갑인자 소자로 한자를 병기해 간행됐는데, 이는 '국자 우위' 표기가 세계 인쇄사에서 유일한 형태라며, 성조를 나타내는 방점까지 금속활자로 구현한 기술적 성취임을 강조했다. 또한 『월인천강지곡』의 인쇄적 가치를 과학적 실용성, 독창성, 계승과 개량의 편리성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 AI 분석으로 금속활자본 입증
최강선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딥러닝 기반 고인쇄 분석 기술을 적용해 『월인천강지곡』의 금속활자본 여부를 공학적으로 검증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월인천강지곡』은 비교 대상 금속활자본 10종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최대 글자 구조 유사도(0.922)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글자 군집화와 정합 과정을 통해 한글 금속활자의 3차원 디지털 복원에도 성공했다. 최 교수는 "복원된 3차원 모형을 바탕으로 전통 주물사주조법을 적용하면 실물 동활자 재현이 가능하다."라며 문화콘텐츠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세종시 한글사랑위원회 김슬옹 위원장의 사회로 주제 발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고은숙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월인천강지곡』의 '한글 대활자, 한자 소활자' 표기 방식이 오늘날 일상화된 한글 중심 문자 생활의 전범이 된다고 평가했다. 고 연구관은 "동시대 간행된 『용비어천가』가 한글 시가 부분에서 한자음을 한글로 적지 않고 한자만 큰 글자로 적은 것과 대비된다."라며 두 문헌의 표기 방식 차이에 주목했다. 또한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 어간과 복합어의 기본형을 밝혀 적는 형태음소적 표기가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오늘날 한글맞춤법의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이라는 원칙과 연결된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16세기에 개인이 시주를 받아 복각한 『월인석보』 권21 목판(보물, 공주 갑사 소장)의 존재가 당시 『월인천강지곡』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서철원 서울대 교수는 숭유억불을 국시로 내세웠던 조선이 불교 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을 창작한 배경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서 교수는 "유교 국가에서 왕실의 불사가 허용된 기준이 무엇인지, 팔상도를 무용으로 공연했던 경험이 문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불교 서사시에서 가족과 효의 의미가 강조된 것은 조상 숭배와 얽힌 한국적 전통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불 사상 결합의 문화사적 맥락을 조명했다.
송정숙 부산대 명예교수는 『월인천강지곡』 인쇄에 사용된 활자만의 특별한 점과 산문인 『석보상절』을 세종이 운문으로 재창작한 목적에 대해 질의했다. 송 교수는 특히 "『월인천강지곡』의 악보가 남아 있는지, 사찰 의식에서 실제로 구연된 기록이 있는지"를 물으며, 향후 원본과 연구논문, 신문 기사 등을 망라한 『월인천강지곡』 자료전산화 구축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신정엽 인천대 교수는 최강선 교수의 AI 분석 연구가 서지학 분야에서만 진행되던 판본 감정을 공학 분야로 확장한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금속활자본과 목활자본을 구별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며 '한 장 내 동일 글자의 유사도' 측정 등 보완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또한 복원된 활자의 완전성을 높이기 위해 글자 면의 경사도, 활자 뒷면 모양 등 외형적 요소에 대한 근거 제시와 함께, 임진자 등 실물이 남아 있는 활자와의 비교 검증 작업도 제안했다.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세종특별자치시는 『월인천강지곡』 상권 소장처인 미래엔 교과서박물관이 위치한 곳이자 국내 유일의 '한글문화도시'로, 행사의 상징적 의미를 더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월인천강지곡』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