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교육칼럼] 깊어가는 가을, 교육의 수확을 바라보며
"교육의 가을은 끝이 아니라 인고의 겨울을 나면서 새로운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라 할 것이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전국이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가고 하늘은 높고 청명하기만 하다. 깊은 가을의 공기는 한층 차분하고, 그 속에는 성찰의 향기가 배어 있다. 황금빛 이삭을 거두어 들인 논과 밭에서는 철새들이 줄지어 날아들고, 나무들은 한 해의 결실을 잎의 빛깔로 드러낸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릴 때 이미 가을의 수확을 그리지만, 그 수확은 단지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다. 비와 바람, 햇살과 토양의 조화 속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문학인들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하고 결과에 대한 칭송을 노래한다.
교육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가르침과 배움의 세계는 ‘가을의 수확’처럼 시간의 축적과 정성의 누적 속에서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교육의 본질을 농경의 순환에 빗대어 보면, 가을은 학습의 성찰기이자 성장의 확인기라 할 수 있다. 봄의 파종이 교육의 시작이라면, 여름은 열정적인 성장의 시기, 그리고 가을은 그 모든 노력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가을은 한 해의 교육 여정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던진 ‘교육과 배움의 씨앗’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매년 가을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나의 성장 나무’를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배운 것, 느낀 것, 새롭게 도전한 것을 나뭇잎 하나하나에 적는다. “처음에는 글씨를 잘 못 썼지만, 지금은 일기 쓰기가 즐거워졌어요.”, “친구와 싸우지 않고 대화로 해결했어요.”… 작은 문장 속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오롯이 담긴다. 교사는 말한다. “이 나무는 아이들이 지식만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증거이죠. 그 잎사귀 하나하나가 교육의 결실이에요.” 이처럼 교육의 수확은 점수나 등수가 아니라 성장 그 자체에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 배움 축제’를 연다. 학생들은 자신이 한 해 동안 탐구한 주제나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한다. 누군가는 과학 실험의 결과를 공유하고, 누군가는 자작시를 낭독하며, 또 누군가는 지역 노인정과 함께한 봉사활동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그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배움의 열매를 나누는 장’, 즉 교육의 수확제(收穫祭)다. 교사들은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실감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 사회와 연결된다는 기쁨을 배운다.
그러나 모든 가을의 수확이 풍성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뭄이나 태풍으로, 혹은 잡초의 번성으로 기대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교육도 그렇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가르쳐도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가을이 일시적 실패의 계절이 아니라, 다음 해를 준비하는 순환의 고리이듯, 교육의 여정에서도 실패는 다음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돌봄의 의지’다.
교육의 수확은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변화 속에서 더욱 깊게 익는다. 한 중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던 아이가 요즘은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제게는 올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가을의 들녘에서 단 한 줄의 벼라도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순간, 농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교육의 현장에서도 한 명의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때, 그 한 해의 교육은 이미 결실을 맺은 거다.
깊어지는 가을, 우리는 또 한 해의 배움의 끝자락에 서 있다. 학교와 교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교육이란 밭을 일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노력 하나하나가 내일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교학상장”, “심은 대로 거둔다”, “인과응보”, “절차탁마”… 비슷비슷한 언어의 향연이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한 만큼 그 결과로 수확하는 진리를 품고 있다. 이제 가을의 나무가 잎을 떨구며 내년을 준비하듯, 교육의 여정도 쉼과 성찰을 통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결국 교육의 가을은 끝이 아니라 인고의 겨울을 나면서 새로운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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