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4(목)
 
[교육연합신문=시론] 
27년 만에 의대 정원이 확정되었다. 의대 입시 열풍이 몰려 왔다. 25년 의대 모집인원은 4,695명으로 늘어난다. 이공계열(AI, 반도체, 핵발전 등)에서 우수한 인재 부족과 불균형적 국가 발전을 초래한다. 이러한 영향은 초등생까지 사교육으로 내모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사집단이 잘 먹고 사는 집단이란 의식만 강하다. 자신도 그런 집단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아이에게 주어진 달란트, 즉 잠재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걸 알아야 그 바탕 위에 교육이 필요하고, 나아가 세상에 홍익인간의 정신을 펼칠 수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했다. 『주역』의 네 번째 괘인 산수몽괘에 나온 교육의 5단계가 의대 열풍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교육은 피교육자가 가진 작은 잠재력을 키워 어리석음을 걷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씨앗을 커다란 나무로 만드는 일, 옹달샘이 바다로 가는 일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교육은 옹달샘이다. 
 
‘Education’이라는 단어를 영어 어원에서 분해하면 ‘E-’는 ‘out’을 의미하고 ‘-duce + -ate’는 ‘to lead’를 의미하므로 ‘to lead out’이라는 의미를 생성한다. 즉, 인간 안에 존재하는 잠재력, 본성 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을 뜻한다. 소파 방정환도 교육을 ’어린이로 하여금 순결한 본성을 개성 있게 있는 그대로 발현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즉 교육받을 자가 가지고 있는 본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게끔 가르쳐서 기르는 일을 말한다. 
 
’평생교육‘이란 말이 강조되는 시대다. 더불어 ’학습‘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것을 학(學)이라 한다면 습(習)은 깃털(羽)이 하얀(白) 어린 새가 부단한 날갯짓 연습으로 결국 날 수 있게 되듯, 스스로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다. 배움에는 연습은 물론 내면적인 성찰과 사고의 과정 또한 필요하다. 『논어』에서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은 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고 했다. 배운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단지보(邯鄲之步)라 하여 배움에 있어서 자기 주체성이 가장 중요함을 알려준다. 배움은 모방에서 출발하지만 주체적 사고를 중심에 놓고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자세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제사 지낼 때 쓰는 지방(紙榜)에 관직명을 써 주지만 관직이 없는 사람은 남자인 경우 모두 학생(學生)이 된다. 평생동안 무언가를 배우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최고의 평가이자 예우인 셈이다. 
 
그 유명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에도 ’배움‘과 ’가르침‘을 같은 것으로 인식했다. 學은 집(宀) 안에서 아이에게 매듭짓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인데, 매듭짓는 법(×)은 결승(結繩)이라고 해서, 문자가 생겨나기 전 기억의 보조수단으로 쓰였던 방법이라 한다. 또한 學은 斅(가르칠 효)라고도 쓰는데, 이는 원글자에 매를 들고 있는 모습(支)이 추가된 형태다. 敎 역시 매를 들고, 아이에게 매듭짓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예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매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매가 논란거리가되고 있는데, 문제는 매의 사용이 아니라, 매의 오용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해주는 글자다. 『예기』의 학기(學記)편에 “배워 보고서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 보고서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알고서야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으며, 어려움을 알고서야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은 다 같이 자신을 자라나게 한다.” 고 되어 있다. 옛 사람들은 그 유명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진리를 일찍부터 간파했던 것을 아닐까? 하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발몽(發蒙)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과정을 의미하며,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부모는 무한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 이때 어른들은 올바른 교육관이 필요하다. 조기교육, 선행학습을 지양해야 한다. 사교육에 기웃거릴 시간에 백과사전을 펴서 자녀와 함께 소통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외에 고전 문학작품 등을 덧보태면 정서 함양에 더할 나위 없다. 작은 일에도 칭찬하고 박수를 쳐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이때 부모로부터 배운 각 경험을 각인하게 되고 이는 평생을 좌우한다. 
 
포몽(破蒙)은 더욱 깊은 이해와 지식을 얻기 위해 예전에 받아들인 지식을 깨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나가 지식을 배운다. 즉 부모로부터 부모 이외의 사람들(선생님)들로 대체된다. 
 
곤몽(困蒙)은 포몽을 극복한 후 발생하는 고민과 어려움을 의미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어려움을 말한다. 이때는 교육의 사춘기다. 머릿속에서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시기를 겪게 된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지는 때이다. 이때 교육자의 책임이 크다. 올바른 사고를 갖도록 지도해야 한다. ‘공부는 왜 하는가?’ 하는 질문부터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을 인식시켜야 한다. 더불어 ‘대동 사회로 가는 길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인식을 통해 거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소명의식을 주어야 한다. 
 
동몽(童蒙)은 곤몽을 극복한 후, 이전에 받아들인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융합하고 더 깊은 이해를 이루는 과정이다. 이때의 교육은 융합과 창의다. 프란츠 카프카도 말했다. ‘독서란 고정관념으로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자신이 그동안 배운 지식을 융합하고 나름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지식이어야 한다. 그 지식을 홍익인간, 대동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손질해야 한다. 또한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는 확증 편향적인 관점을 바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봐야 한다. 이것이 팩트의 힘이다. 세상을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자신이 봐야 하는 대로 세상을 보면 확증 편향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격몽(擊蒙)은 이전의 지식과 인식을 깨고 새로운 지식과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격몽은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학습으로, 기존의 생각과 인식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패러다임을 만들어 준다. 지식의 추종자에서 지식의 창조자가 된다. 강 상류의 돌은 날카롭다. 하류의 돌은 둥글둥글하다. 조금 아는 자는 오만과 편견에 빠진다. 그것이 날카로운 돌이 되어 남을 해친다. 많이 아는 자는 겸손하다. 둥근 돌이다. 남과 어울리며 소통한다. 노자는 말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라고. 
 
이런 교육과정(발몽 – 포몽 – 곤몽 – 동몽 – 격몽)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직업을 구하려는 자는 먼저 그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맹자는 ‘영과이후진(盈科而后進)’이라 했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 현안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 시스템은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실제 학습 과정에서 느끼는 호기심과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단계를 밟아 체계적으로 학문을 이뤄가는 태도다. 아직 초등생으로서 발몽의 단계에 있는데, 사교육을 통해서 포몽, 곤몽으로 나아가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물이 아직 차오르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구덩이에다 물을 대다보면 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이룰 수가 없다. 스스로 에너지를 갖지 못한 물은 웅덩이에 갇혀 버리고, 이내 말라버린다. 
 
교육은 잠재력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마치 옹달샘이 냇물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도록 그 환경(잠재력)을 잘 가꾸어 주어야 한다. 교육자는 잠재성의 계발에, 피교육자는 자발성을 전제로 교육에 임해야 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는 교육의 시너지를 활성화해주는 디딤돌이다. 
 
의사는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이 공부만 잘해서 의사집단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 무얼 하겠는가. 사람을 살리는 의료 행위가 본인이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겠는가. 
 
이제야 의대 정원이 확대됐다. 환영한다. 그러나 앞으로 의대에 어떤 인재가 올지는 이 사회가 모두 지켜보아야 한다. 올바른 소명의식을 가진 실력 있는 사람이 의사가 되어 생명을 올곧이 지키는,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자의 의무요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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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교육은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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