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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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새해다. 

여의보주(여의주)는 우리 전설에서는 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무기가 수행을 거치면 여의주를 얻고 용이 될 수 있다. 여의주를 하나만 가져야 되는데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무기는 2개 이상 가지려다가  용이 되지 못하고 더 강한 이무기가 되어 버린다. 

 

용이 하늘을 날고 호풍환우를 행할 수 있는 것은 여의보주의 신통력 때문이다. 만약 용이 여의보주를 잃는다면 신통력을 잃고 땅에 떨어져 다시 이무기가 되기 때문에 “용”하면 여의주를 생각하게 된다. 

 

불교 설화에서도 이 묘한 구슬을 소유하면 모든 삿된 일과 나쁜 기운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모든 일과 소원을 뜻대로 이루어 주는 보배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용(갑진년)의 해다. 우리 마음속에 모두 여의보주 하나씩 소유하여 우리의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를 드려보자.

 

모든 것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의주를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복을 만들어 실천하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 예를 들면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을 피우고, 가슴엔 항상 기쁨을 담고, 자신을 사랑하며 준비하고, 남을 기쁘게 하며 긍정과 감사함을 지니고, 신용을 지키며 고운 말을 쓰며 열정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우리 마음속에는 4단(四端)과 함께 인간의 마음을 7정(7情)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대로 흔들어 댄다. 왜 우리는 감정의 기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온한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운가? 

오(惡)가 지나치면 노(怒)로 변하고 희노(喜怒)를 억누르면 병이 되고 공포는 인간을 두려움(懼)에 떨게 하지만 조절만 잘하면 인간의 잠자는 세포에 불을 켜줄 수 있다. 욕망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되고 탐욕(貪慾) 으로 넘치면 삶을 파멸로 이끈다. 

 

인간의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고 길들여야 할 대상이므로 조심(操心)하고 잘 조절해서 이 좋은 용의 해에 여의주 하나씩만 가지시길 소원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마음 공부와 더불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신체, 경제, 사회, 정신 등에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따르고, 적당한 돈을 소유해야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고(절대빈곤은 인간 도리 못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으므로 인간 간의 신의를 지켜야 하고,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듯이 탐욕을 버리고 정신적 충만감이 행·불행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고 방하착(放下着)정신을 갖자.

 

어떤 이는 교육을 장선육덕(獎善育德)을 위한 활동이라고 정의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면서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게 하기 위해 사회가 유지 발전되게 선을 장려하고 덕을 육성(장선육덕)해 올바른 조화를 이루면서 살도록 해주는 것이 수단이기도 하다. 장선육덕의 한 방법으로는 맹자의 4단 7정을 마음속에 새겨야 할 덕목(德目)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는 유교사상으로 이 4단에 신(信)을 더해  다섯가지 덕목(인·의·예·지·신)을 오상(五常)이라 하고 한양에 4대문을 두고 가운데 보신각을 세워 백성들이 문을 드나들 때마다 마음속에 새기도록 했다. 

 

▲인(仁); 측은지심-동대문(흥仁지문)  ▲의(義); 수오지심-서대문(돈義문)  ▲예(禮); 사양지심-남대문(숭禮문) ▲지(智); 시비지심-북대문(홍智문) ▲신(信); 광명지심-보신각 (보信각) 

신(信)은 광명지심(光名之心)으로 중심을 잡고 항상 가운데 위치해서 빛을 내는 마음이다. 지금도 우리는 연말연시가 시작되는 24시에 33번의 타종을 울려 어렵고 힘든 한 해를 잊어버리고 새롭고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하도록 그 종소리와 함께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희망을 기원하고 있다. 

 

또, 우리는 위의 仁義禮智  4가지가 없는 사람을 4가지가 없는 놈(싸가지 없다)이라 하고 윤리적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근대에 와서는 남자들이 앞 지퍼(6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 바지는 지퍼가 없었음)를 닫지 않으면 “남대문 열렸다”고 했는데 아마 그 중요한 남대문의 남(男)의 상징이 아니었을까?(근거는 없음). 북대문은 우리가 잘 쓰지 않았고 익숙하지 않은 말이다. 누각 없이 돌문만 있었고 숙청문 혹은 숙정문으로 부르다가 숙종 때 지어면서 홍지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로변정담'을 쓴 루쉰은 20세기 초 암울했던 중국에서 평생 희망과 사투를 벌였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땅 위의 길과 같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1921년, 40세 때). 어떤 이는 “같이 가면 길이 된다”라고 했다. 올 한 해는 희망을 갖고 다 함께(가족, 친구, 동료 등) 길을 만들고 심상사성(心想事成=마음에 새긴 대로 이루어진다)처럼 우리 모두 마음속에 원하는 하나를 간절히 상을 그리고 꼭 여의보주 하나를 얻어 나 자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 교육연합신문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갑진년 청룡의 새해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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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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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새해, 여의보주(如意寶珠)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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