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오미경 기자]

 

당뇨병 치료 위한 반세기 의료 인생,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열정을 만나다!

 

허갑범 허내과의원 원장 / 연세대 명예교수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잘 닦여진 길만 쉽게 따를 겁니까? 창의력을 기반으로 우리가 선도해 나가야지요.” 안타까움이 뒤섞인 따끔한 질책 속에는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의학 발전에 대한 멈추지 않는 열정을 품고 있는 연륜 깊은 의료인의 간절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고, 모교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또한 역임하며 의사이자 의학자로서 모두가 주목하는 화려한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그리고 정년퇴임을 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고, 그 외의 시간엔 당뇨병관련 임상연구를 이어가며 국내 의학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당뇨병 치료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연세대 명예교수 허갑범 박사(허내과의원 원장). 반세기에 가까운 의료 인생을 걷고도 적지 않은 나이에 그가 이토록 쉼 없이 내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간인물 WEEKLY PEOPLE이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 위치한 허 박사의 진료실에서 현재진행형인 그의 뜨거운 열정과 마주했다.  <편집자 주>

 

‘대통령 주치의까지 지낸, 사회적으로 대단한 명성을 쌓은 의료인’이라 했을 때 으레 생각하듯 다소 차갑고 권위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오전 진료가 끝나고 짬을 낸 허갑범 박사의 진료실에 들어서자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특유의 환한 웃음으로 예를 다해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하는 그의 첫 인상은 권위와는 담 쌓은 수수한 모습이었고, 환자가 선물했다는 익살스런 모습의 자신의 캐리커처 액자가 걸린 아래로 여기 저기 쌓아 둔 책과 자료들이 가득한 진료실 안의 풍경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한국 당뇨병 역사의 산증인 허갑범 박사, ‘환자별 맞춤 치료’ 정립하다

 

 그가 머무는 공간의 인상만큼이나 허 박사가 당뇨병 치료에 열정을 바쳐온 지난 시간들 역시 우직함 그 자체다. 사실 허 박사가 전공분야로 몸 담아온 내분비학은 그가 연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기 전인 70년대 제대 후,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였다. 큰 외상이나 중병이 아니면 병원을 찾지 않았던 어려운 시대였던 탓에 환자의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박사는 당장 눈에 보이는 병은 아니라도 미래에 큰 위험이 있을 수 있는 병이라 생각하고, 과의 인기여부 보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리란 남다른 각오로 내분비학을 선택했다. 그렇게 1970년부터 당뇨병 환자를 진료 해 온 허갑범 박사는 말 그대로 한국 당뇨병의 흐름을 직접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자 한국인이 서양인과 다른 당뇨병 유형과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 근거해 ‘맞춤치료’를 강조해 온 장본인이다. 허 박사는 그 배경에 대해 묻자 숱하게 이야기 해왔을 법한데도 우선 병에 대한 개념부터 확고히 하자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뇨병이란 것은 쉽게 말해 혈중 포도당 수치가 오르는 겁니다. 섭취된 음식이 포도당과 필수 영양소로 변하여 몸 속 곳곳에 쓰이는 데에는 췌장(이자)에서 생성되는 인슐린이란 호르몬이 필요한데, 정상인은 음식 섭취 후 혈당이 오르면 췌장에서 이를 감지하고 인슐린을 자동으로 분비해 혈액 속 포도당이 우리 몸 세포 속으로 흡수되어 혈당 농도가 정상으로 유지돼요. 그러나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분비가 저하되거나 분비되더라도 제 기능을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의 문제가 생겨 혈액 안의 포도당이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못하고 혈당이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높아지는 포도당은 소변으로 나오는데 이러한 병적 상태를 당뇨병이라 하죠.”
 당뇨병은 보통 유전 및 환경적 요인으로 인슐린 분비가 적어 발생하는 1형 당뇨병과 성인이 된 후, 고열량의 식사(단 음식, 지방질, 술)와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인슐린 저항성이 나타나면서 당수치가 올라가는, 가장 많은 환자 분포를 보이는 2형 당뇨병이 있는데 허갑범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에 서양과 달리 마른 당뇨병 환자인 1.5형(중간형)당뇨병 환자도 존재함을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치료에 있어서도 각 병형에 따른 방법을 추구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생활방식의 변화로 여러 형태의 당뇨병 환자가 있는데다 인슐린의 분비능도 서양인보다 낮아요. 무엇보다 당뇨병은 생활습관과 연결되는 병으로 환자들의 다양한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여 치료해야 하는 점이 있어 환자 중심의 전인적 맞춤치료를 해야 합니다.” 일찌감치 이것을 강조해 온 허갑범 박사는 2000년대 초에 인슐린의 분비와 기능에 따른 당뇨병 맞춤치료로 ‘2형 당뇨병 표준치료 지침’을 마련하여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단순히 혈당이 기준이 아닌, 그 원인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만들어 지는지, 만들어진 인슐린은 제대로 작용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인슐린 분비능과 인슐린 저항성의 두 가지 기능검사를 통한 치료방법으로 한국인 당뇨병 환자의 발병 특성에 맞춘 진보된 치료로 평가받았다. 허 박사는 이렇듯 정년 뒤 개원 이후, 10여 년의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연구에 몰입, 여러 동료교수들의 도움으로 국내외에 20여 편의 임상연구 논문을 게재하는 등 당뇨병 치료 발전에 꾸준한 귀감이 되고 있다. 

 

대사증후군을 중심으로 한 만성질환을 예방하자

 

 한편, 허갑범 박사는 당뇨병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대사증후군의 예방 및 관리가 당뇨병의 치료 이상으로 중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당뇨병 치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단지 혈당을 낮추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환자로 하여금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렇다면 당뇨환자의 오랜 건강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뇨병과 함께 인슐린 저항성을 병의 뿌리로 하는 고혈압, 고지혈증을 공유하고 이들로 인해 뇌동맥과 관상동맥경화증 등의 만성 합병증(대사증후군)으로 가지 않도록 예방 관리 하는 것입니다.”
 대사증후군이란 과음, 과식, 운동부족에 따른 비만,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생활습관병을 과거와 같이 개별 질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오는 공통된 질환으로 묶어 지칭하는 것으로, 그 뿌리의 실체는 당뇨병과 같은 인슐린 저항성에 있다. 허 박사는 “특히 복부비만이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기 쉬운 상태를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며 국내에 대사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약 800만 명 정도 되는데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대사증후군의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복부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을 완화시키도록 식이요법과 운동 등을 적절히 병행하고,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자신 또한 일반인들에게 대사증후군을 널리 알리고, 예방과 조기 관리를 독려하고자 만든 한국대사증후군포럼 활동도 적극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의학교육,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모방과 추종에서 벗어나 창조·선도형 의학교육 지향해야

 

 허 박사가 당뇨 치료에 대한 몰입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의학교육의 방향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데는 1994년부터 96년까지 연세대 의대 학장을 역임했던 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허 박사는 2001년~2002년에 교육부가 추진하는 의학전문대학원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지금까지의 한국 의학 교육을 보면 ‘의료는 있으나 의학은 없다’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즉, 아직도 산업화 시대에 적합했던 질병의 치료에 치중해 ‘훌륭한 의사 양성’만을 목표로 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단 말입니다. 그러나 21C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달라야 해요. ‘삶의 질’이 중요해진 시대에 맞춰 질병의 치료와 예방만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건강증진과 노화방지의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고, 의생명과학이 모든 과학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의학발전을 선도할 전문 의료인 외에도 젊은 기초 의과학자 및 다양한 의학 관련 전문분야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허 박사는 “수입과 모방에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선도형 의학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거듭 되새기며, 이를 위해 의과대학 학생 선발기준과 교육과정부터 다양한 지식을 갖춘 창의적인 의사를 배출할 수 있는 연구중심의 대학으로 개혁해야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연구중심의 병원이 활성화되는데 기여하게 되고, 이것이 곧 한국의료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하는 기틀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의과대 교육은 선발부터 다양한 학부 전공자를 뽑아 이를 의학적 지식과 연계시킴으로써 의사가 연구하고 생각하는 스펙트럼을 다양화할 수 있게 해왔습니다. 제가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추진했던 것도 이 점에 근거했어요. 특히 의전원 정원의 5~10%정도를 MD-phD(의학-이학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밟도록 하여 기초의과학 임상의학분야의 인재 육성에 국가 차원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는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10개의 연구중심 병원 선정 내용에 있어서도 연구중심 대학의 활성화를 위해 젊은 기초 및 임상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재정적 지원(BK 21 Plus)과 군 특례 등의 혜택 마련이 되어야함을 설명하며, 국가적 차원의 노력에 의학계와 학생들의 동참도 뒤따라야함을 덧붙였다.
 “대형병원들은 외형적 규모 확장보다는 진료와 연구의 수준, 인재 양성을 통한 병원의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하고, 우수한 자연과학 분야의 인재인 젊은 의사 지망생들은 단편적으로 보기 보단 좀 더 멀리 보는 안목으로 임상의사만이 아닌 다양한 길을 꿈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원천 의료기술과 바이오 신약 및 첨단의료기기의 개발, 의료관광의 활성화 등 의료 분야의 선진 산업화 노력 또한 진정한 의미의 의학 강국이 되는 중요한 바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만 있고 ‘의학’은 없는 한국
    제대로 된 의학강국 되려면
         임상의사 뿐 아니라 기초의과학자 양성에도 힘써야

 


허갑범 박사에게 있어 의료인으로 산다는 것이란
 
 의사로서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기까지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만 같은 허갑범 박사. 그러나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 경기도 안성의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그리 유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어려운 시대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긴 의료 인생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과, 과분하게 주어진 기회들 덕분인 것 같아요.” 의료계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데는 서슴없이 이야기 하던 그가 자기 자랑에는 영 재주가 없는 듯 굵직한 삶의 이력을 묻는 질문에 별다른 설명없이 그저 허허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잠시 숨도 고를 겸,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 시절의 이야기를 묻자 그는 잊지 못할 영광된 기억이라며 간단히 말문을 열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후보시절부터 건강에 관한 말들에 많이 둘러 싸이셨죠. 그러나 대선 후보 시절,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제가 여러 가지 검사를 했을 때의 결과는 떠도는 말들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줬어요. 대사증후군 관리가 요구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으니까요. 난관을 겪고 대통령에 오르신 후, 저는 생각지 못하게 주치의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가까이서 뵌 그 분은 모든 면에서 참 강인한 분이셨다고 생각됩니다. 생활습관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주치의인 저의 말을 잘 따라 주셨고요.(웃음)”
 어느 자리에 있건 의료인으로서 겸손한 자세로 환자를 대하고, 본분에 충실한 우직한 모습만을 보여 왔으리라 짐작되는 허 박사를 보며 ‘대통령 주치의’라는 타이틀이 아니고서 라도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었을 것이란 기자의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50년 가까운 긴 의학 여정을 풀어내는 동안 그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가장 크게 자리했을는지도 궁금해졌다. 
 “의사란 것은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환자와의 스킨십이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누어 환자의 상태와 상황에 귀 기울임으로써 환자의 정확한 건강 정보를 알아내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해줘야 하지요. 특히나 당뇨병 치료는 치료과정의 특성상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장기전이라는 점에서 환자와 의사의 교감이나 소통에 의한 상호협력이 좋은 치료 성과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조용하지만 연륜 있는 그의 답변에는 경험의 깊이만큼이나 두터운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매일 신문 3-4개를 보며 최신 의학정보를 빼놓지 않고 체크한다는 허갑범 박사는 인터뷰 내내 빼곡하게 쌓인 진료실 안의 책장에서 필요한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와 하나씩 보여주고, 손으로 쓰고 그려가며 열성으로 취재진의 이야기에 대답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꿈을 키우기보다 정리할 단계라며 지금껏 해 온 일들을 잘 마무리 지을 것을 다짐했다.
 “세계적으로 당뇨병 치료의 흐름이 바뀌고, 그 동안 치료한 환자의 임상 데이터베이스는 계속 축적 되고 있기 때문에 종전의 연구를 이어 한 층 개선된 ‘한국인에 적합한 당뇨병맞춤치료’를 꼭 만들고자 해요. 또 임상연구 외에 한국대사증후군포럼을 통해 생활습관병의 예방 및 관리에도 앞장 서 조금이나마 더 국민 건강 증진에 보탬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마친 그의 시선이 한 동안 진료실 창밖의 먼 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번져갔다. 아마도 허 박사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끝나지 않은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의료인생 2막이 펼쳐지고 있었으리라.
                      

 

 

profile.
1957년         경복고등학교졸업
1964년         연세의대 졸업
1964~1969년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전문의
1969~1972년 육군 군의관(대위)
1974년          의학박사 학위취득(연세대 대학원)
1975~1976년 프랑스 몽뺄리에의대 당뇨병센터 연수
1984~2002년 연세대 의대 교수
1994~1996년 연세대 의대 학장
1998~2002년 대통령 주치의
2001~2002년 교육부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장
2002~2003년 대통령 직속 의료발전위원회 위원
2003년~       연세대 명예교수, 허내과의원 원장

학회활동
1992~1996년 대한당뇨병학회 회장
1992~1994년 한국지질학회 회장
1993~1994년 연세대 의대 교수평의회 의장
1996~1998년 대한내분비학회 회장
1998~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1998년         아세아-대양주 내분비학회 대회장
1999~2003년 대한영양의학회 초대 회장
1999~2003년 대한임상약리학회 회장
2000~2001년 대한동맥경화학회 회장
2001~2004년 대한성인병예방협회 회장
2003~2004년 대한임상노인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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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피플 특별 인터뷰] 끝나지 않은 열정의 삶! 허갑범 박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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