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20(일)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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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선언'을 통해 세계유산을 통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의의 주요 담론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유산의 지정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정된 유산이 '과거의 역사를 얼마나 온전하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었다.
 
일본 사도(佐渡)광산 관련 논의가 대표적이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되었던 '전체 역사(Full History)'의 정직한 반영과 강제노동 현장에 대한 성실한 해설 문제로 인해, 이후 개최된 추도식 등에서 상호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미흡했던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은 당사국의 이행 노력을 점검하며,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적 진실을 현장 전시에 균형 있게 반영하고 성실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역사의 어두운 면까지 포함한 전체 역사의 기록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신뢰를 얻는 기본 조건임을 재확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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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쟁점은 역사의 전체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일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장 전경 또는 사도광산 갱도

 

이 같은 경과는 기억의 장소를 조성하는 일과, 그 장소에 담길 역사적 진실의 깊이를 다듬는 일이 얼마나 세심한 외교적·문화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단일 국가의 영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신뢰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은 미디어와 디지털 공간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오프라인 기념관이나 종이 교과서를 넘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와 세계유대인회의(World Jewish Congress)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생성형 AI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료를 환각(Hallucination)하여 제시할 위험성에 대한 세심한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는 기술을 활용하여 가짜 희생자 프로필이나 검증되지 않은 사진을 유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시각 자료가 가져온 "진실의 증거력"에 대해 보다 엄정하고 비평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역사 기억에 위험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쇼아재단(USC Shoah Foundation)의 '증언 360' 프로젝트나 생존자 홀로그램 작업처럼, 기술은 참상의 기억을 후대에 생생하게 전승하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때 기술진이 생존자의 실제 언어와 증언 범위 내에서만 AI가 응답하도록 엄격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운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되, 사료의 원본성과 역사적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는 윤리적 절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공교육과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은 성숙한 대안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초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사료의 출처 확인'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역사적 콘텐츠를 접할 때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고, C2PA 등 출처 정보 표시를 확인하며 정직한 사실을 선별해 내는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중·고등학교 답사 프로그램의 내실화다. 기념관 관람을 단지 정서적 감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질문-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어떠한 전시 장치가 활용되었는가, 사료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어 있는가-을 바탕으로 공간을 능동적으로 분석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등학교와 대학 과정에서 AI 생성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의 도입이다. 출처 확인, 맥락 파악, 타 사료와의 대조 등 전통적인 사료 비판 메커니즘을 디지털 정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AI의 답변을 완결된 사실이 아닌 '검증이 필요한 기초 자료'로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을 확립해야 한다. 
 
넷째, 논리적 글쓰기와 토론 교육의 획기적 강화다. 역사적 주장을 펼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와 통계의 근거를 밝히고, 단순한 감정적 수사와 객관적 인과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방의 합리적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논리적으로 반론을 다듬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섯째, 교사와 시민이 함께하는 교육적 연대다. 디지털 기술과 역사학의 사료 비판을 융합한 종합적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가 다변화되는 정보 환경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사료의 부족보다는, 기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이를 다루는 정보 환경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해법 역시 성숙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비판 의식과 윤리적 통찰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을 정직하게 확인하고, 왜 이 기억이 호출되었는가를 깊이 있게 질문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와 기억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의 엄정함과 성찰의 마음을 균형 있게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의 세계유산위원회가 던진 성찰적 메시지처럼,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억의 소유가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우리의 성숙하고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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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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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부산에서 다시 묻는다: AI 시대, 기억을 다루는 성숙한 시민의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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