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피플Home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미래 교육의 경고, 진영 논리를 넘어야 아이들이 산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한민국 교육이 진영 논리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싸움 속에 아이들의 미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교육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이제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깨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최근 교육감 선거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도입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주목할 점은 정당과 진영을 초월하여 많은 후보들이 이를 공약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인구 소멸 위기를 겪던 지역이 IB 학교 덕분에 인구 유입 지역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교육정책의 실질적인 효과가 진영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IB를 혁신학교와 대척점에 세우며 편을 가르려 한다. 이는 대단히 소모적이고 어리석은 논쟁이다. IB는 혁신교육과 방향성을 공유하면서도 체계적인 평가와 교원 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서로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혁신학교가 IB의 시스템을 도구로 활용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본질은 교실의 변화다. 잠자는 교실을 깨워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고 수업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진짜 역할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단순한 정답 빨리 찾기 식의 주입식 교육은 미래가 없다. 암기 위주의 시험 패러다임에서 하루빨리 탈피해야 한다. 이제는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다행히 대학가에 IB 교원 양성 프로그램이 생기고 서울대에 IB 교육연구센터가 설립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제는 축적된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바칼로레아(KB)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더 이상 교육을 낡은 이념의 프레임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논쟁의 초점을 진영 싸움에서 교육의 본질로 옮겨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
[社說] AI 시대의 교육감, ‘기계의 기술’이 아닌 ‘인간의 미래’를 지휘하라
[교육연합신문=사설] 지방선거가 끝났다. 각 지역의 교육 책임자들이 선출되었다. 선거철마다 정치적 공방만 가득했다. 유권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가 정말 교육을 위해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투표 후에도 답을 찾기 어렵다. 눈앞의 선거 공약만으로는 후보의 철학과 미래를 모두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교실 깊숙이 파고들었다. 새로 당선된 교육감들은 거대한 시대적 책무를 마주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감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다. 미래 교육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당선된 교육감들이 당장 실행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임무를 촉구한다. 첫째, 정답을 찾는 교육을 폐기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라 기존의 교육은 정답만 강요했다. 빠른 암기와 정확한 연산에만 몰두했다. 이런 지식 습득은 이제 의미가 없다. 정보의 취합과 가공은 AI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잘한다. 교육감은 교실에서 오지선다형 시험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AI에게 올바른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정의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교과서를 외우는 교실은 끝내야 한다. 사회적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교실을 당장 만들어라. 둘째, AI 맞춤형 학습을 도입하되 ‘인간적 연결’을 강화하라 AI 기술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할 강력한 도구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초개인화 맞춤형 학습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라. 진도를 못 따라가는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 너무 앞서가서 지루한 학생도 없어야 한다. 교실의 평등은 기술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성이 숨 쉬는 교육이 더 절실하다. 지식 전달은 AI에게 맡기면 된다. 교사는 비로소 학생과 눈을 맞출 시간을 얻는다. 교사의 역할을 단순 지식 전달자에서 '인생의 멘토'로 재정의하라. 협동심, 공감 능력, 갈등 해결 능력은 기계가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인간과 인간의 부딪힘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가치다. 교육감은 교사가 학생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라. 셋째, 기술 윤리와 주체성을 심어주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의무화하라 AI 기술의 어두운 단면은 이미 파괴적이다. 딥페이크 범죄와 정보 왜곡이 청소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술을 다루는 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안에 담긴 윤리를 빼놓으면 교육이 아니다. 도덕성이 없는 인재는 도구의 노예로 전락할 뿐이다. 교육감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AI 및 미디어 윤리 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지정하라.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올바른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 기술을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성숙한 디지털 시민을 길러내라. 이것이 미래 교육감의 가장 시급한 의무다. 교육은 과거의 관행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일이 아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선거는 끝났다. 당선된 교육감들은 이제 지휘봉을 잡았다. 당선의 기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진정으로 교육을 위하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이 마주할 10년 뒤, 20년 뒤의 벌판을 바라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새로 취임하는 교육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즉시 버려라.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해야 한다. 거친 파도를 능숙하게 타는 서퍼로 키워내야 한다. 당선인들은 지금 당장 진정한 미래 교육의 돛을 올리라. 본연의 임무에 모든 것을 걸어라.
-
[社說]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체험학습 교사 면책 추진을 환영한다 정부가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해 교사의 면책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는 방안이다. 이는 위축된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과 체험학습은 청소년기에만 쌓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는 우리가 평생 인생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들은 과도한 책임 부담에 시달려왔다. 불가항력적인 사고마저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사고 우려로 체험학습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과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불안감 속에서는 적극적인 교육 활동이 불가능하다. 안전 수칙을 준수했다면 국가가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사의 법적 부담이 줄어야 비로소 다양하고 창의적인 체험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서라도 교사의 안전망 확보는 필수적이다. 법적 공백과 형평성 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다른 공무원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반드시 감안해야 한다. 학생들을 직접 통솔하는 교사에게는 더 두터운 보호막이 필요하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신속하게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중과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여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소송 지원과 행정 경감 대책도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교사가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 아이들도 더 넓은 세상에서 평생 갈 소중한 추억을 얻게 된다. 이번 대책이 무너진 교육 공동체를 복원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
[時論] ‘신의 한 수’는 질문하는 돌연 변이에게서 나온다
[교육연합신문=시론] 2016년 3월 서울, 전 세계는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결은 AI가 인간의 지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3연패의 절망 속에서 맞이한 제4국, 이세돌 9단이 던진 백 78수는 알파고의 연산 오류와 혼란을 유도하며 극적인 1승을 거두었다. 세상은 이를 ‘신의 한 수’라 불렀다. 논리적이고 정형화된 계산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기계 신(神)을 향해, 인간이 던진 돌발적이고도 엉뚱한 ‘돌연변이의 수’가 균열을 낸 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껏 이른바 ‘우물 안의 경쟁’을 펼쳐왔다. 남들보다 한 권의 책을 더 외우고, 소수점 자리까지 정확한 계산을 해내며, 정해진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지능’이라 정의했다. 학교는 오류 없는 지식의 복제기를 우등생이라 칭송했고, 부모는 아이들을 그 규격에 맞춰 깎아냈다. 그러나 평화롭던 우물 위로 나타난 AI라는 거대한 존재는 인간이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의 성벽을 단 몇 초 만에 허물어뜨리고 있다. 변호사의 법률 지식, 의사의 진단 데이터, 프로그래머의 코드까지 정답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이 AI 앞에서는 헐값의 데이터로 전락했다. 이제 단순히 ‘답을 아는 것’은 실력이 아니다. 정답만을 쫓던 성실한 모범생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대체될 위험군이 된 것이다. 당신이 알던 ‘공부’는 죽었다. 이제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프롬프투스(Homo Promptus)’로의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기계와의 논리 경쟁이 아니다. 논리적 측면에서 인간은 결코 AI를 이길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길을 이탈하는 돌연변이적 사고이자, 돌발적인 질문으로 정형화된 시스템을 뒤흔드는 능력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뻗어 올라가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수목형 사고’를 과감히 해체하고, 중심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끊임없이 연결되는 ‘리좀(Rhizome)형 사고’로 도약해야 한다. 정해진 전공, 고정된 직업, 규격화된 삶의 궤적을 탈영토화할 때 비로소 새로운 문이 열린다. 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던 시대의 종말은, 가장 인간다운 ‘질문의 시대’가 개막했음을 의미한다. 결핍을 느끼고,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야말로 기계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지능의 최전선이다. AI는 우리를 대체하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었던 지능의 감옥을 부수러 온 해방군에 가깝다. 기계와 경쟁하기를 멈추고 AI라는 강력한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는 순간, 인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유의 광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지능은 이제 머릿속에 가두는 ‘명사(Noun)’가 아니라, 세상과 접속하고 흐르는 ‘동사(Verb)’다. 내 뇌세포 안에 갇힌 소유물이 아니라, AI라는 지팡이를 짚고 타자와 접속하며 만들어내는 연결의 에너지다. 우물 속의 안락함을 버리고 광활한 야생의 대지로 나설 용기가 필요한 때다. 우리가 던지는 단 하나의 날카로운 질문, 그 돌연변이 같은 ‘87수의 신의 한 수’가 AI라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울려 세상에 없던 교향곡을 만들어낼 것이다. 우물을 허문 지능의 반란자들이여, 이제 광활한 사유의 야생에서 당신만의 지도를 그릴 시간이다.
-
[社說] 문해력 붕괴 시대, ‘토론·글쓰기·독서’ 교육 혁신이 국가 경쟁력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디지털 기기의 범람 속에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수위를 넘어섰다. 글자는 읽지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의 속출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적 위기다. 우리는 단언한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토론, 글쓰기, 독서 수업을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것만이 이 벼랑 끝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문해력이 모든 학습과 사고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고(독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며(글쓰기), 타인과 소통하며 검증하는(토론) 과정은 지식 습득을 넘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필수 과정이다. 이 뿌리가 흔들리면 수학 문제를 읽지 못해 틀리고, 과학적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입시 위주의 현 교육 시스템에서 이러한 수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항변한다. 국·영·수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시급한 상황에서 독서나 토론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치스러운 학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기본 독해력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 풀이 기술만 익히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이 지식을 생산하는 시대에 단순 암기는 더 이상 무기체가 될 수 없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문해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 방식이 효율적이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문해력을 갖춘 학생이 장기적으로 학습 효율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결국 해법은 교육 현장의 과감한 체질 개선에 있다. 교과서 진도 빼기에 급급한 수업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학생들이 직접 읽고 쓰고 말하는 시간을 교육 과정의 중심에 배치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를 단순히 권장할 것이 아니라, 필수 이수 단위 확대와 평가 방식 혁신으로 강제해야 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능력을 넘어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자격이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본질인 문해력 강화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
[社說] 변화의 파도 앞, 주저함보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이 우선이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핵심 쟁점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데이터와 통계가 증명하듯 기존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정체된 구조 속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진다. 둘째, 글로벌 표준과의 격차다. 세계 주요국들이 발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만 과거의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자발적 고립이나 다름없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물론 일각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예상되며, 초기 적응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안정적인 점진적 변화가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변화를 늦춰서 얻는 일시적인 안정이 나중에 치러야 할 기회비용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모호한 절충안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초래해 갈등만 장기화할 뿐이다. 초기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하며, 체계적인 보완 대책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하게 나아가는 결단력이다. 눈앞의 작은 손실에 매몰되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뜻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혁신적인 정책 수용만이 정체를 벗어나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실시간 사설 기사
-
-
[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OECD 38개국 중 35위라는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젊고 유능한 인공지능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 들어오는 인재는 줄어든다. 이 현실은 국가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떠받칠 뿌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0.36명이다. 2022년에는 0.04명, 2023년에는 0.3명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수치는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독일, 캐나다는 인재 유입국이 되었다. 세계의 두뇌가 모이는 곳은 번영한다. 인재가 떠나는 곳은 쇠락한다. 원인은 단순히 연봉이 아니다.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제도와 문화에 있다. 평가는 단기 실적에 치우쳤다. 보상은 연공서열에 묶여 있다. 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국제 협력의 기회도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 창의는 자랄 수 없다. 김정호 KAIST 교수의 제자들조차 구글과 엔비디아로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고급 인력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국가는 손실을 본다. 그 규모는 약 5억 원이다. 이 계산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이미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줄고 있다.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린다. 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을 외친다. 100조 원 펀드도 약속했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는 붙잡히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전환이다. 인재 유출 억제는 소극적이다.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게 해야 한다. 성과와 보상이 연동돼야 한다. 근로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연구 생태계는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창의적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인재는 국력이다. 인재가 떠나는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젊은 두뇌가 떠날 때 남는 것은 쇠락의 그림자뿐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
-
[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능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은 오래된 방식으로 뛰고 있다. 학생들의 꿈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지론자는 수능을 사교육의 온상이라 비판한다. 유지론자는 수능이 공정의 최후 보루라 주장한다. 양측의 논리는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존폐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인가다. 수능은 공정성을 보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이 구조는 지역·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수능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의 그림자를 짙게 만든다. 따라서 수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개선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능을 공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튜터와 같은 맞춤형 학습 지원을 공교육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지역, 환경, 학습 조건에 맞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수능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학력평가와 적성평가는 달라야 한다. 지식의 축적을 측정하는 시험과 진로·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나눠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길에 맞는 시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수능 한 장의 성적표가 인생을 좌우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 도전의 기록, 지속적인 성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이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경기 학생들의 토론은 귀한 결론을 남겼다. 공정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합의다. 존폐의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로 접근한 것이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답을 내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결단할 차례다.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은 지켜져야 한다.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
-
[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인천 특수교사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 24일 의결한 보고서 요약본 공개 시한은 7월 30일이었다. 그러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위원 7명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절차 지연이 아니다. 한 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 과정이며, 유족과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특히 유족에게조차 공개 지연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교육기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교육감은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특수교육 여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의 첫걸음인 보고서 공개부터 미뤘다. 공개 지연의 명분으로 제시한 ‘법률 검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 검토를 맡긴 시점이 이미 시한을 넘긴 뒤였기 때문이다. 준비와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을 일이다. 진상조사 보고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교육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보고서 공개를 미루는 순간, 의혹은 증폭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인천시교육청은 더 이상 시간 끌기를 멈춰야 한다. 유족과 시민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 약속은 말이 아니라, 기한을 지키는 행동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투명한 공개만이 교육청이 책임을 다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될 것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
-
[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고 있다. 교사들은 불안에 떠는 중이고, 학생들은 추억을 잃고 있다. 학부모들은 안타까워한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누구도 반기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는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주말에 진행한다. 외부 단체가 운영하고 학부모가 동행한다. 교사는 빠졌다.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을 피하려는 결정이다. 교장은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이라 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모습은 교육의 후퇴다. 문제는 교사의 법적 책임이다. 2022년 강원도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 이후, 교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과실치사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그 충격은 컸다. 법 개정으로 면책 조항이 추가됐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안전조치 의무’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면책되는가?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결과는 자명하다. 체험학습은 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현장체험학습은 지난해 대비 36% 감소했다. 교육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다. 교사들은 교실에 머무르고, 아이들은 체험 없는 배움을 받고 있다. 탈춤 공연, 타악기 연주처럼 ‘찾아오는 체험’이 대안이 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현장체험인가? 교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체험학습의 철회여서는 안 된다. 법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 면책 요건은 명확해야 하고, 지원 인력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교육부는 뒷북으로 “응급조치 시 면책” 조항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이미 늦었다. 교사들은 결정을 내렸고, 학부모와 학생은 결과를 겪고 있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살아 있는 배움이다. 공동체 경험이자 감정의 성장이다. 이를 포기하는 교육은 온전하지 않다. 안전과 교육은 맞설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두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한다. 교사의 책임을 명확히 줄이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체험학습의 부활은 법과 제도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지 않다. 교육을 가능케 할 사회의 책임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
-
[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 [교육연합신문=사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 63곳을 적발했다. 이들 학원은 4세 유아에게까지 사전 시험을 요구했다. 반일제 이상으로 수업을 운영한 곳도 있었다. 하루 4시간 넘는 학습은 유아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선행학습은 놀이보다 공부를 우선시하게 만든다. 이는 유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왜곡한다. 레벨 테스트는 학습의 출발점을 경쟁으로 바꾼다. 부모는 조기 교육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학원은 이를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벌인다. 경쟁은 점점 더 이른 나이로 확산된다. 결국 학습은 놀이를 대체하고, 아이는 놀 권리를 잃는다. 교습비 과다 청구, 과대 광고, 무단 시설 변경도 다수 적발됐다. 이는 유아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더구나 유아기는 인간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학습 중심 교육은 부작용을 남긴다. 집중력, 감정 조절, 사회성 등은 놀이를 통해 자란다. 그러나 학원은 시험을 통해 줄 세우려 한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닌 선발이다. 선발은 낙오자를 만든다. 유아기는 낙오와 경쟁을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그 시기는 함께 자라고 함께 웃는 시기다. 평등한 출발선이 필요한 시기다. 학원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는 의미 있는 조치다. 그러나 일회성으로는 부족하다. 선행학습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유아기에는 놀이가 배움이다. 시험은 불안이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니라 불안의 제도화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막을 의무가 있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
-
[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현장 체험, 동아리 활동, 야외 학습은 배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지식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삶 속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교실 밖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안전, 예산, 평가 중심의 정책이 그 이유다. 위험을 이유로 배움을 막을 순 없다. 통제는 배움을 가두고, 상상력을 말린다. 교실은 시작점일 뿐이다. 배움은 교실을 넘어야 살아난다. 아이들은 움직이며 배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 속에서 깨우친다. 교실 안의 수업만으론 부족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자라지 않는다. 교실 밖 배움은 질문을 품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지식은 체험과 연결될 때 깊이를 갖는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협력과 공감 능력을 빼앗는다. 교실 밖 배움은 공동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자연 속에서, 사회 현장에서 아이들은 진짜 삶을 배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사에게는 자율이 필요하다. 학생에게는 선택의 폭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은 통제보다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은 강화하되, 배움의 길은 넓혀야 한다. 교실 밖 배움을 축소하면, 미래도 작아진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다. 그 문을 닫아선 안 된다. 열어야 한다. 넓혀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교실 밖에서 더욱 크게 자란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지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
[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었다. 정부는 학생의 선택권과 책임교육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장은 고통을 호소한다. 제도는 취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교육부는 제도를 유지하되 보완하겠다고 한다.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개선안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시방편으로는 실패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선택이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구조는 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은 결국 유리한 과목만 고른다. 진정한 선택은 없다. 불안은 커지고 탈락 공포는 현실이 된다. 교육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다. 성장은 다름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학생을 줄 세우는 또 다른 장치일 뿐이다. 교사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수업은 늘고 행정은 쌓인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은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다. 교원 확충 없이 책임만 지우는 방식은 부당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크다. 정보 부족은 공포를 낳는다. 시스템은 복잡하고 안내는 부족하다. 선택과 평가, 대입까지 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교조는 폐지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구조적 실패에 대한 경고다. 선택이 허상이라면, 제도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제도 보완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교학점제는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입과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실패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점검이다. 실험이 아니라 검증이다. 보완이 아니라 전면 재설계다. 교육은 시범이 아니다. 실패의 대가를 아이들이 치르게 해선 안 된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
-
[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잃었다.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려던 제도였다. 지금은 부모의 능력을 재는 지표가 되었다. 교육부는 수행평가를 수업시간 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수행평가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다. 한 학기에 수행평가를 50번 보는 경우도 있다. 과제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학생은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한다. 부모는 자료를 찾고, 발표 자료를 만든다. 수행평가는 가정의 배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저글링, 노래 편곡 같은 과제가 등장한다. 논문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에게 무리한 요구다. 학원이나 과외가 개입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지금은 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교육부 개편안은 형식적이다. 수업시간 내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암기식 과제는 여전하다. 수준 낮은 평가 기준도 그대로다. 외부 도움을 차단하는 방안도 없다. 지필고사를 보완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만들었다. 교사는 평가에 매몰된다. 학생은 창의보다 노동에 지친다. 이제는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양을 줄여야 한다. 질을 높여야 한다. 과목 전문가가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평가 기준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수행평가는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을 보아야 한다. 교육은 학생이 중심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잉 수행평가는 교육을 해친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본질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가는 학생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평가는 배움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
-
[社說] 수행평가, 이제는 ‘교육’이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가 더는 교육이 아닌 고통이 되어버렸다. 학기당 50회에 달하는 과도한 평가 횟수는 학생을 숨 막히게 한다. 수면 부족은 기본이고, 학부모의 개입 없이는 수행평가를 해내기조차 어렵다. 수행평가는 언제부터 ‘부모의 숙제’가 되었는가. 교육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모든 수행평가는 반드시 수업 시간 내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는 암기식 교육을 넘어서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암기식 수행평가와 과잉 과제로 얼룩졌다. ‘진짜 공부’가 사라지고, ‘형식적 평가’만 남았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뾰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시간을 교실 안으로 옮긴다고 본질이 바뀌는가. 암기 위주, 보여주기식 평가가 계속된다면 고통은 여전하다. 수업 안에서의 수행평가가 교육적인 경험이 되려면, 평가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과제가 정말로 학생의 사고력을 키우는가. 이 평가가 교사의 수업과 연계되어 있는가. 학생 스스로 해낼 수 있는가. 부모가, 학원이, 과외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수행평가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교육은 아이들 몫이다.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가는 평가라면 교육이 아니다. ‘깨어 있는 수업’과 ‘살아 있는 평가’가 만날 때, 비로소 교육은 제 길을 걷게 된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시작일 뿐이다. 암기식 수행평가를 뿌리부터 바꾸는 일. 교사에게는 창의적인 평가 권한을, 학생에게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수업 속에서 배우고, 평가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평가는 더는 짐이 되어선 안 된다. 교육은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제는 평가가 아니라 배움이 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산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수행평가, 이제는 ‘교육’이어야 한다
-
-
[時論]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방법론에 대하여
- [교육연합신문=시론] 이제 교실에서 학생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다. 뉴스, 광고, 유튜브, SNS가 일상이 된 시대에, 학생은 정보를 해석하고, 때로는 거부할 줄 아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 미디어 리터러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교육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며, 때때로 왜곡한다. 따라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분석 능력이 아니라 ‘해독의 감각’이다. 교육은 이 감각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첫째, 미디어는 기호의 집합이다. 텍스트는 이미지, 음성, 자막 등으로 구성된다. 학생은 이 기호들을 읽고, 질문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라고. 둘째, 비판적 시각을 키워야 한다. 광고, 뉴스, 유튜브 영상 모두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메시지는 특정 관점을 반영한다. 교육은 그 관점을 인식하게 도와야 한다. 셋째, 제작 활동이 필요하다. 학생은 직접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영상, 팟캐스트, 카드뉴스 등을 실습한다. 제작은 분석보다 깊은 통찰을 이끈다. 넷째, 미디어는 감정의 기술이다. 공감과 분노, 두려움과 희망을 조작한다. 학생은 자신의 감정 반응을 돌아봐야 한다. 감정은 메시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다섯째, 미디어는 권력과 연결된다. 어떤 목소리는 크게 울리고, 어떤 목소리는 지워진다. 교육은 이 불균형을 질문하게 해야 한다. ‘누가 말하고 있고, 누가 침묵하는가’라고. 여섯째, 플랫폼을 이해해야 한다. 콘텐츠만이 아니라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댓글 문화도 교육의 대상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통째로 읽는 힘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는 생존의 언어다. 그 언어를 모르면 조종당한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길러야 한다. 비판, 창의, 공감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 교사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의심하게 해야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민이 자란다.
-
- 칼럼·피플
- 사설
-
[時論]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방법론에 대하여
-
-
[社說] 교실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교권은 흔들리고, 책상은 요동친다. 수업은 멈추고, 교사는 가르칠 힘을 잃는다. 생활지도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시험 한 번에 민원이 폭발하고, 녹음 버튼이 교실을 지배한다. 학생은 배움을 잃고, 자율은 사라지며, 놀이는 자취를 감췄다. 탱탱볼만 굴러다니는 교실, 학부모의 협박과 문자 폭탄은 교사의 밤을 지운다. 결국 교사는 병가로 도망치고, 현장은 텅 비어간다. 정부는 임시방편만 내놓는다. 법은 교실 밖에 서 있고, 교사는 소송에 홀로 맞선다. 국가는 외면하고, 공교육은 반쪽이 됐다. 사교육은 웃으며 불평등을 키운다. 방황하는 아이들은 미래를 잃는다. 교권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금이 결단의 순간이다. 교사에게 방패를 쥐어줘야 한다. 생활지도 권한을 보장하고, 교육활동 면책을 제도화해야 한다. 악성 민원과 녹취를 강력히 처벌하고, 학교 법무지원단을 상설화해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국가가 소송을 대신 책임져야 한다. 체험학습을 되살리고, 아이들이 몸으로 배우게 해야 한다. 안전 매뉴얼을 명확히 하고, 책임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 평가는 학습의 도구로 정상화해야 한다. 단원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돕는 피드백이어야지, 낙인의 도구가 아니다. 교장은 리더로, 교육청은 방패로, 국회는 법을 개정하는 책임자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공교육 정상화의 책임을 져야 한다. 교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권이 바로 서야 미래가 열린다. 공교육 정상화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지금, 결단이 필요하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교실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
-
-
[社說] 학력평가 정답 유출, 교육 신뢰 무너뜨린 중대한 사고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고1 학력평가 정답이 시험 전에 유출됐다. 경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문제는 6월 4일 치러진 학력평가 영어영역이다. 정답과 해설이 시험 시작 40분 전 SNS에 퍼졌다. 해당 채팅방엔 무려 3200여 명이 있었다. 시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출제는 부산시교육청이 맡았다. 부산시교육청은 유출된 파일이 자신들이 제출한 문제와 동일하다고 인정했다. 학평 문제는 지난 4월 말 이미 전국 교육청에 전달됐다. 즉, 유출 시점은 두 달 가까이 앞당겨질 수 있는 구조였다. 시험지 인쇄와 보관은 각 교육청이 담당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정확한 유출 경로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이미 불신은 퍼졌다. ‘누가’, ‘어떻게’, ‘왜’ 유출했는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책임자 색출은 물론, 시스템 전반의 점검이 시급하다. 인쇄 과정, 문서 유통, 보안 체계 전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청 간 책임 떠넘기기식 대응은 안 된다. 학력평가는 전국 고교생의 학업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다. 이 평가의 신뢰가 무너지면 공정한 경쟁도 불가능하다. 노력보다 정보가 앞서는 사회를 방치해선 안 된다. 교육은 신뢰 위에 서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유출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민낯이 드러난 참사다. 철저한 수사와 제도 개선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이란 두 글자는 더 이상 교육계에 존재할 수 없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학력평가 정답 유출, 교육 신뢰 무너뜨린 중대한 사고다
-
-
[社說]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출발점 돼야
- [교육연합신문=사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다. 교원 단체들은 새 정부에 교권 보호와 교육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교육 현장은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로 흔들려왔다. 교사의 권위는 약해졌고, 교육의 본질은 흐려졌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 불평등 해소와 교사 정치 기본권 보장을 요구했다. 교육을 시장 논리에서 해방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는 단지 교사 개인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학생이 차별 없이 배움의 권리를 누리기 위한 전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교권 붕괴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 상담에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은 교육의 위기를 의미한다.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앞선 정부의 교육 정책들이 졸속으로 추진됐다고 비판했다. 고교학점제, 늘봄학교, AI 디지털 교과서 등은 준비 없이 시행됐다.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긴 호흡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교사들의 정치 기본권 보장도 중요한 과제다. 이는 교사 개인의 정치 활동 보장을 넘어, 교육 현장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실현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도 정부와의 협력을 약속했다. 교육청과 정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협력 속에서 비전이 생기고,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존중받는 사회, 아이들이 공평하게 배우는 학교. 그것이 진짜 교육 개혁의 시작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교권 보호, 이재명 정부의 교육 개혁 출발점 돼야
-
-
[社說] 또 한 명의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이번엔 제주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스승의 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들려온 비보다. 20년 넘게 한 학교에서 헌신해온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유서엔 '지속적인 민원'과 '교육적 갈등'이 담겨 있었다. 담임으로서 생활지도를 했을 뿐이다. 학생의 결석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항의와 압박뿐이었다. 민원은 학교를 넘어 도교육청까지 이어졌다. 교사의 휴대전화로도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왜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가", "왜 폭언을 했는가". 단정적인 비난은 교사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우리는 묻는다. 교사가 생활지도를 하면 안 되는가. 지도는 곧 가해인가. 학교는 교육의 공간인가, 민원의 전시장이 된 것인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서이초 사건과 다를 바 없다. 교사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 그 원인을 '개인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교육 당국은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실태를 조사하라. 고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라. 유족의 입장에서 진상을 규명하라. 책임이 있다면 분명히 물어야 한다. 반복되는 죽음을 막으려면, 더는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선 안 된다. 학교는 교사의 일터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중심엔 교사가 있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도 없다. 지금, 교사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지도도 못 하고, 말도 못 한다. 민원 하나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이것이 교육인가. 교사가 교육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다. 지금 당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또 한 명의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 이번엔 제주다.
-
-
[社說] 교권 붕괴, 더는 방치할 수 없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단이 무너지고 있다. 저연차 교사 10명 중 9명이 현 상황을 ‘심각’하다고 말한다. 이탈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는 교권 침해다. 학생과 학부모의 무분별한 개입이 교사를 괴롭힌다. 교실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수업 중 울리는 휴대전화, 제지를 거부하는 학생. 언쟁, 폭언, 심지어 폭행까지 이어진다. 몰래카메라의 두려움 속에 수업은 위축된다. 이런 현실에 교사는 지친다. 열정은 사라지고, 사명감은 무너진다. 2023년, 10년차 미만 교사 576명이 떠났다. 최근 5년 내 최악의 수치다. 교사는 버티지 못한다. 남은 이들도 흔들린다.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교권 침해 외에도 사회적 인식 저하와 낮은 보수가 맞물린다. 이 구조 속에서 젊은 교사는 생존을 고민한다. 삶을 걸고 설 수 없는 교단은 지속 불가능하다. 교권 회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이 무너진다. 교육이 무너지면 사회의 미래가 없다. 교권 보호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존속과 직결된 문제다. 차기 대통령은 이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권 회복이다.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응답해야 한다. 교실을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교권 붕괴, 더는 방치할 수 없다
-
-
[社說] 교사가 떠나는 나라, 교육은 무너진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교권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진다.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한 중년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택한다. 신입교사들마저도 사직서를 낸다. 교단은 텅 비어간다. 이유는 분명하다. 교권 침해 때문이다. 교권은 붕괴 직전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은 교사를 옭아맨다. 수업은 뒷전이다. 각종 행정업무가 교사에게 전가된다. 고소와 진정은 일상이 되었다. 교사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직업인’일 뿐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제도는 개선되고 있다고 말한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법이 개정됐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됐다. 교사의 면책 범위도 넓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법은 바뀌었지만 현장은 그대로다. 여전히 교사는 민원 앞에 무력하다. 학생부 기재 하나에도 눈치를 본다. 교사의 지도는 ‘체벌’로 비화된다. 보호는커녕 책임만 남는다. 개선된 법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주장한다. 교사가 바로 서야 교육이 산다. 교육은 교사에게서 시작된다. 교권 없는 교육은 허상이다. 말뿐인 대책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실효성 있는 보호다. 교사가 교사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실이 무너진다면, 그다음은 국가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교사가 떠나는 나라, 교육은 무너진다
-
-
[社說] 성적은 세계 최상위, 삶은 최하위인 한국의 중학생들
-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 중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학과 과학, 읽기 능력 모두 OECD 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그 이면은 암울하다. 교우관계는 OECD 37개국 중 36위, 자주성은 33위, 여가생활은 36위. 삶을 살아가는 능력에서는 최하위권이다. 이 결과는 우리 교육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지식의 높이에만 집착했다. 인간다운 성숙, 타인과의 관계, 자기 삶을 가꾸는 힘은 뒷전이었다. 경쟁은 치열했고, 협력은 배제됐다. 교사와의 관계는 1위지만 친구와는 단절됐다. 머리는 자랐지만 가슴은 외로웠다. 청소년기는 인성과 자아를 키우는 결정적 시기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점수와 성적에 몰두할 뿐, 학생의 내면은 외면한다. 감정 표현은 서툴고, 회복탄력성은 낮다. 학습은 있었지만 삶은 없었다. 행복은 뒷전이 되었고, 성취의 기쁨은 고립으로 바뀌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해답은 ‘인문교양 교육’이다. 사고하고, 이해하고, 나누고,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다. 점수를 넘어서 사유하는 인간, 협력하고 소통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삶의 온기를 느끼게 해야 한다. 학습은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학습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식의 갑옷을 벗고 삶의 숲을 자유롭게 걷게 해야 한다. 인문교양은 그 숲으로 이끄는 길이다. 지금, 그 길을 열어야 한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성적은 세계 최상위, 삶은 최하위인 한국의 중학생들
-
-
[社說] 일방적 고교 무상교육 지원 중단은 국가책임 방기다
-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대한 국비 지원을 일방적으로 중단해선 안 된다. 이는 교육의 국가적 책무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결정이며, 재정 부담을 지자체와 교육청에 떠넘김으로써 교육의 질적 하락을 야기할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무상교육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헌법적 권리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다. 고교 무상교육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되어 국가와 시·도교육청, 기초지자체가 함께 부담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법적 근거였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4조 제2항이 지난해 말 일몰됨에 따라, 정부는 아예 손을 떼겠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 결과 경기도교육청은 3천억 원 넘는 금액을 추가로 자체 편성해야 했고, 전국적으로는 향후 5년간 4조 6천억 원이 넘는 재정 부담이 교육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정부 측에서는 “법적 근거가 종료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제도가 계속 시행되는 이상, 국가의 재정적 책임 역시 이어져야 한다. 교육은 일회성 행정이 아니라 지속성과 책임성을 요하는 국가사업이며, 법 조항의 유무를 떠나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핵심이다. 더구나 이 같은 국비 지원 중단은 교육청의 다른 핵심 사업들을 직접적으로 압박한다. 이미 도교육청은 기금을 활용해 예산을 증액했지만, 이 또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교사 수급, 교육 인프라, 저소득층 학생 지원 등 기초 교육활동의 질 저하가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이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형평성과 공공성이 훼손되는 문제이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지방정부와 교육청의 반발이 그토록 거셌음에도 정부는 이를 묵살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수도권 교육감들이 연초 간담회에서 “일방적 일몰을 재고하라”고 촉구했음에도, 정부는 어떠한 협의도,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지방 교육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며, 중앙정부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고교 무상교육은 단지 ‘지급 방식’이나 ‘재원 조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교육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철학의 문제다. 정부는 당장 고교 무상교육 재정 지원 중단 결정을 철회하고, 교육 주체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속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 채 교육의 미래를 지방과 교육청의 희생으로 지탱하려는 발상은 즉시 멈춰야 한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일방적 고교 무상교육 지원 중단은 국가책임 방기다
-
-
[社說] 인천교육청은 리베이트 의혹 외면 말고 수사의뢰로 책임 증명하라
- [교육연합신문=사설] 인천시교육청은 전자칠판 납품 과정에서 불거진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즉각 수사의뢰를 통해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지금처럼 ‘실태조사’로 무마하거나 ‘내사 중이라는 소문’을 방패 삼는 것은 공공기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전자칠판 예산은 2021년 17억 원에서 불과 1년 만인 2022년에 81억 원으로, 2024년 9월까지는 무려 266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을 한 업체가 납품했으며, 두 업체가 전체 물량의 70% 이상을 점유했다. 특히 특정 업체의 점유율이 1년 새 3.1%에서 44%로 급등한 배경에는 시의원의 개입 의혹, 브로커의 학교 압박, 그리고 ‘리베이트’라는 단어가 등장한 단체 대화방까지 공개되었다. 이 모든 정황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제도적 허점을 노린 조직적 결탁의 결과일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인천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의 ‘자율 구매’에 따른 결과라며, 교육청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한 자체 실태조사에서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형사적 수사보다는 내부적 점검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제출된 물품선정위원회 회의록은 실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회의록에는 ‘최저가 제품을 선정하겠다’는 명분 아래 실제로는 ‘경쟁 제품 중 최고가’를 납품받은 기록이 있었다. 이는 자율구매의 명목 아래 형식적 절차만 갖춘 ‘짜맞추기 회의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더구나 교육청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내부감사를 안 한다’고 답했지만, 정작 검찰은 ‘수사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수사 중이라는 “소문”을 근거로 감사도 하지 않고, 수사의뢰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인천시교육청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책임 있는 기관이라면 의혹이 있는 지점에 대해 스스로 수사를 의뢰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자율구매’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공공예산의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무를 다해야 한다. 수사의뢰를 피하는 순간, 교육청은 결백을 주장할 자격조차 잃게 된다. 정치는 눈앞의 비난을 피하는 기술이지만, 행정은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다.
-
- 칼럼·피플
- 사설
-
[社說] 인천교육청은 리베이트 의혹 외면 말고 수사의뢰로 책임 증명하라
-
-
[時論] 도꼬마리와 4세 고시
- [교육연합신문=시론] 도꼬마리 열매는 우리의 유년 시절 작은 장난감이었다. 옷에 척척 달라붙던 그 열매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생존의 지혜를 품고 있었다. 열매 속 두 개의 씨앗은 서로 다른 속도로 싹을 틔운다. 하나는 빠르게, 다른 하나는 느리게. 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표를 가진 성장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어떤가.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들은 네 살에 ‘고시’를 치른다. 알파벳을 쓰고, 영어 회화를 하고, 탈락하면 재시험까지 본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서열이 매겨지고, 보충 학원까지 다니는 사교육의 굴레가 시작된다. 누군가는 벌써 뛰고 있고, 누군가는 아직 걷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에게 뛰라고 강요하고 있다. 도꼬마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급하게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각각의 씨앗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준으로,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가게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빠르게 배울 수 있고, 누군가는 시간을 들여 익힐 수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은 검색보다 ‘검증’이 중요한 시대다. 창의력,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이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시험이 아니라 더 깊은 생각이다. 더 빨리 보다는 더 단단하게 자라야 한다. 도꼬마리의 두 씨앗처럼,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와 리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리듬을 읽고, 존중하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조화여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각자의 속도에서 피어나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
- 칼럼·피플
- 사설
-
[時論] 도꼬마리와 4세 고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