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0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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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社說] 수능은 끝났다. 이제는 어른들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2026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긴장과 불안이 지나갔다. 교실은 조용해졌고, 도시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시험의 종료가 책임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절박하다. 수능은 한국 사회가 만든 가장 혹독한 관문이다. 수험생들은 몇 년을 이 시험에 바쳤다. 잠을 줄였다. 마음을 갈아 넣었다. 가족들은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오늘 시험을 마친 학생들은 모두 잘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수능을 둘러싼 압박은 너무 크고, 너무 오래 지속됐다. 우리는 매년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 왔다. “한 번의 시험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낡은 신념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념을 깨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계속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이제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수능이 끝났다. 그러나 아이들의 미래는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점수의 사회를 끊어내야 한다. 아이를 숫자로 판단하는 문화를 중단해야 한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책무다. 어른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책임이다. 수험생들에게 말한다. “정말 고생했다. 이제 네 삶을 너의 속도로 걸어라.” 그리고 다시 묻는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른들은 무엇을 바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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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7
  • [社說] AI 인재를 키우는 것은 단순히 예산만 투입하는 일이 아니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다. 내년 예산은 10조원을 넘는다. GPU 26만 대를 들여오고,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정작 그 장비를 다룰 사람이 없다. OECD 38개국 중 AI 인재 순유입은 35위다. 돈은 있지만 사람이 없다. 기술 경쟁은 이미 인프라의 싸움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의 전쟁이다. 대만의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불과 몇 년 전, 대만도 인재 유출에 시달렸다. 유능한 연구자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양밍자오퉁대(國立陽明交通大學)를 중심으로 반전이 일어났다. 정부, 대학, 산업계가 함께 움직였다. AI 고성능 컴퓨팅(HPC) 플랫폼을 구축했다. 연구 인프라와 산학 협력, 인재 육성의 3중 방어막을 세웠다. 그 결과, 떠났던 과학자들이 돌아왔다. 첫째, 연구자가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양밍자오퉁대는 교수의 행정 업무를 줄였다. 강의 부담도 덜어줬다. 초기 연구비를 별도로 지원했다. 연구자는 서류 대신 실험에 집중한다. 행정보다 창의가 우선이다.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연구자들은 각종 평가와 보고서에 묶여 있다. 창의는 자율에서 자란다. 자유로운 탐구 환경이 혁신의 토양이다. 둘째, 산업계와의 실질적 협력 생태계가 중요하다. 대만의 기업은 대학 안으로 들어왔다. 엔비디아, TSMC, 미디어텍이 그 중심에 있다. 대학 안에 연구센터를 세우고 함께 일한다. 학생과 교수가 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연구와 산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실무형 인재가 자란다. 한국은 아직 다르다. 학교와 기업의 협력은 취업 연계 수준에 머문다. 협력은 형식이 아니라 지식 생산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셋째, 지속 가능한 인재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대만의 동문 기업인들은 모교에 거액을 기부한다. AI 연구 빌딩을 세우고, 후배들을 돕는다. 대학, 기업, 정부가 함께 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인재가 떠나지 않는 구조다. 한국은 다르다. 인재가 나가면 돌아올 이유가 없다.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 조건과 협업 기회, 도전의 무대가 있어야 한다. AI 인재 양성은 단순한 교육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미래 전략이다. GPU 몇 대보다 한 명의 연구자가 더 중요하다. 한 명의 창의적 연구자가 세상을 바꾼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예산이 아니다. 생태계다. 인재가 자랄 흙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들이 떠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대만은 이미 길을 보여줬다. 인프라, 협력, 자율. 세 축이 맞물릴 때 인재는 남는다. 그리고 세계는 찾아온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다. AI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키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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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0
  • [社說] 지방대 붕괴, 생존의 경고음이 울린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지방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 2026학년도 수시모집 결과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쟁률 3대 1 이하 대학이 속출했다. 일부 대학은 1대 1도 넘지 못했다. 정원 미달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학령인구 감소는 더 이상 ‘다가올 위기’가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붕괴’다. 수험생은 늘었지만, 지방대의 교정은 비어간다. 부산, 대구, 광주, 제주, 강원, 충청—전국 곳곳에서 신입생이 사라지고 있다.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의 그늘에 갇혀 숨이 막히고 있다. 종교계 대학들은 경쟁률조차 숨긴다. 낮은 수치를 감추려는 방어 본능이다. 그러나 침묵은 해답이 아니다. 위기는 숫자를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경영위기대학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대구예대는 경쟁률이 0.68대 1, 한일장신대는 0.94대 1이다. 몇몇 대학은 ‘미달’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상황을 요약했다. 학자금 지원이 끊기면 학생은 떠난다. 재정은 말라붙고, 대학은 껍데기만 남는다. 이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입시 실패가 아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맞물린 구조적 붕괴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간다. 사람이 떠난 도시에는 대학도 남지 않는다. 이제는 땜질식 대책으로 버틸 수 없다. 정원 감축만으로는 대학을 살릴 수 없다. 지역 산업과 연계된 교육, 실질적인 재정 지원, 교육의 질적 혁신이 필요하다. 정부는 더 이상 구호로 버티지 말아야 한다. 정책은 ‘균형’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지방대 붕괴는 지역의 붕괴다. 대학이 사라지면 지식의 생태계도 사라진다.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다. 혁신 없이는 생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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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3
  • [社說] 현장 혼란이 말한다, 고교학점제 폐지 시급
    [교육연합신문=사설] 고교학점제를 폐지해야 한다. 올해부터 1학년 전면 시행됐다. 학교 현장은 혼란이다. 교사들은 집회에서 문제를 토로했다. 학생들은 내용을 제대로 모른다. 입학과 동시에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제도의 취지는 좋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학점을 쌓는 구조다. 대학식 교육과정을 고등학교에 적용한 것이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진로를 바로 결정해야 한다. 대부분 학생은 당황한다. 방향을 잡지 못한다. 우왕좌왕한다. 중도에 바꾸기도 어렵다. 원하는 과목을 듣기도 힘들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더 어렵다. 한 교사가 여러 과목과 학년을 맡는다. 수업 준비가 힘들다. 시험 출제도 어렵다. 출결 관리도 복잡하다. 단계를 8~9번 거쳐야 한다. 업무량이 폭증했다.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9명이 시행이 어렵다고 답했다. 다른 교원단체도 재검토와 폐지를 주장한다. 취지는 훌륭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1학년 때 진로를 확정하는 것은 어렵다. 중간에 바꾸기도 어렵다. 좋은 취지라도 혼란이 있으면 강행할 일이 아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지금이야말로 되돌아볼 때다. 고교학점제는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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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7
  • [時論] 새로운 교육의 탄생
    [교육연합신문=시론] 1. 교육의 전환점 21세기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술과 정보의 흐름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하며, 전통적 교육 모델은 이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다. 학교와 교과서 중심의 교육, 교사의 일방적 지식 전달, 시험과 점수로 평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현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AI, 디지털 플랫폼, 글로벌 연결성, 평생학습 등은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과 목적을 재정의하는 계기다.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기술과 인간, 사회와 배움의 관계를 근본부터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2. 배움의 주체 변화 과거 교육에서 주체는 교사였고, 학생은 수동적 수용자였다. 새로운 교육에서는 학습자가 주체가 된다. 자기주도적 학습, 흥미 기반 탐구, 프로젝트 중심 학습은 학생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질문을 만들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한 청소년이 환경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터넷 자료와 AI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교사는 안내자와 피드백 제공자로 존재하며, 학생은 주체적 배움의 경험을 쌓는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에서 인간의 성장을 중심에 두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3. 평가의 재구성 새로운 교육에서는 시험과 점수 중심 평가가 한계를 드러낸다. 정답만을 중시하는 평가 방식은 창의적 사고와 협력, 문제 해결 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 대신 과정 중심 평가, 프로젝트 기반 평가, 협업과 성찰을 포함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예컨대, 학생이 과학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학습 능력, 창의성, 협업 능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새로운 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 정답보다는 학습 경험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4. 기술과 인간의 공존 디지털 기술과 AI는 새로운 교육의 핵심 도구다. 학습자의 수준과 관심을 분석하고, 맞춤형 콘텐츠와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며, 학습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 배움의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술을 활용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를 확장하지만, 질문을 만들고 선택하며 윤리적·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영역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은 기술과 인간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5. 평생학습과 자기주도 성장 새로운 교육은 특정 연령이나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변화와 직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배움은 평생 지속되는 과정이 된다. 개인은 자신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새로운 역량을 쌓는다. 온라인 플랫폼과 AI는 개인별 학습 경로를 설계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해 평생학습을 지원한다. 이는 배움이 단순한 학교 교육을 넘어, 삶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6. 공동체적 배움의 강화 새로운 교육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을 배움의 핵심으로 강조한다. 개인적 학습뿐 아니라 공동체적 프로젝트와 협력적 학습 경험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학생들이 환경, 사회, 기술 문제를 공동으로 탐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배움과 사회적 연결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AI와 기술은 이를 지원하는 도구로 기능하며, 공동체적 학습 경험을 기록하고 분석해 학습자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7. 윤리와 인간다움의 교육 새로운 교육은 인간다움과 윤리적 성찰을 배움의 핵심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는 AI가 제공할 수 있지만, 공감, 윤리적 판단, 사회적 책임, 창의적 사고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에서는 기술 활용 능력뿐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학습 과정에 통합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8.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의미 새로운 교육은 단순한 교실과 교과서 중심 교육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이는 배움의 주체를 학습자로 이동시키고, 평가와 학습의 기준을 재정의하며, 기술과 인간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확립하는 근본적 전환이다. 배움은 더 이상 특정 장소와 시간, 제도에 제한되지 않고, 평생 동안 사회적, 인간적 경험과 결합하며 이루어진다. 이는 교육의 민주화, 자기주도적 성장, 공동체적 참여, 인간다움의 실현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9. 결론: 교육의 미래와 인간의 성장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우리 사회가 맞이할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기술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 학습과 삶이 통합된 교육 모델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스스로 성장하고 성찰하며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돕는다. 미래 사회에서 배움은 더 이상 제도적 틀과 점수, 정답에 갇히지 않는다. 학습자는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며, AI와 기술을 도구 삼아 자신의 역량을 확장한다. 새로운 교육의 탄생은 인간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시대의 출발점이며, 배움과 삶을 통합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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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0
  • [社說] 디지털 시대, 사라지는 한글 능력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글날을 맞아 우리 국어 교육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아동 상당수가 국어 기초 학력 기준에 미달한다. 세계는 K-pop과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에 주목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꾸준히 높아진다. 하지만 정작 국내 아동들은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진다. 문해력 부족은 사고력과 표현력에도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영상과 디지털 매체의 압도적 영향력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SNS 등 시각 중심 매체가 독서 시간을 잠식한다. 글보다 영상과 이미지가 더 쉽고 빠른 즐거움을 준다. 둘째, 학교와 가정에서 글쓰기와 읽기 습관을 지도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단순히 교과서 중심 학습으로는 사고력과 문장력 향상이 어렵다. 셋째, 즉각적 반응과 클릭 중심의 디지털 환경이 사고의 깊이를 약화한다.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에서 독서와 글쓰기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 짧더라도 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둘째, 가정에서도 디지털 기기 사용을 관리하고, 부모와 함께 읽고 쓰는 활동을 늘려야 한다. 셋째, 영상과 게임 속에서도 읽기와 쓰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넷째, 교사 연수와 교육 정책을 통해 문해력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어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것과 달리, 국내 아동들의 기초 학력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읽고 쓰는 능력은 단순 학습을 넘어 사고력과 삶의 기반과 직결된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는 문자와 언어의 힘을 지키는 책임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 세대 속에서도 읽고 쓰는 습관과 사고의 깊이를 지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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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社說] 고교학점제, 땜질식 처방으로는 무너진 교실을 살릴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의 발표는 공허하다. 유연화, 교원 정원 확대, 생활기록부 기재 조정. 모두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교실은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 현장의 고통은 단순히 시수나 지침의 문제가 아니다. 고교학점제 자체가 구조적 과부하를 안고 있다. 학생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교사는 관리와 행정에 파묻힌다. 수업의 본질은 뒷전이다. 유연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보충수업은 서류용으로 전락했다. 강의 대신 유인물, 대체과제, EBS 강의. 이름만 남았다. 교사들은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완화’라는 말을 반복한다.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것이다. 교원 정원 확대도 허울뿐이다. 전국 2,380개 고등학교에 1,600명. 학교당 한 명도 채 안 된다. 과목별 수요는 제각각이다. 한 명 늘어난다고 달라질 현실이 아니다. 현장은 이미 알고 있다. “어림없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한다. 국가교육위원회 논의 역시 희망적이지 않다. 위원들이 퇴임하고 2기 구성이 미정이다. 현장은 내년 시간표를 꾸리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불안정하다. 교사와 학생 모두 불안 속에 방치된다. 교육은 실험장이 아니다. 현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땜질식 처방은 혼란을 키운다. 고교학점제의 근본을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정책의 방향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교육부는 숫자로 현장을 달랠 수 없다. 구호로 교사의 피로를 덮을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 제도적 폭주를 멈춰야 한다. 교실은 붕괴 직전이다. 교육부가 진정 학생을 위한다면, 고교학점제의 전면 재설계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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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6
  • [社說] AI 기반 서·논술형 평가, 미래 교육의 공정한 발걸음
    [교육연합신문=사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AI 서·논술형 평가시스템 도입을 본격 논의했다. 잘하는 일이다. 교육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안한 ‘하이러닝(Hilearning)’ 모델은 문제 출제부터 채점, 피드백까지 한 번에 처리한다. 자동화된 과정은 사람의 편견을 줄인다. 평가의 일관성을 보장한다. 국어, 사회, 과학에서 이미 시범 운영 중이다. 다른 교과로 확대되는 것이 옳다. 서울, 대구, 충남 등도 자체 시스템을 개발한다. 교육청 간 협력은 필수다. 협의회가 속도를 높이기로 한 결정은 현명하다. 기술만의 발전이 아니다. 미래형 공정평가로 가는 전환점이다. AI 평가가 대입에만 쓰일 필요는 없다. 학교 현장 전체로 퍼져야 한다. 형평성 높은 평가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학생은 공정한 기회를 얻는다. 교사는 채점 부담을 덜 수 있다. 학부모는 결과를 신뢰한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연구 성과를 토대로 법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보안과 알고리즘 투명성도 챙겨야 한다. 그러나 멈출 이유는 없다. 사립학교 교원 징계제도, 학교폭력 대응, 특수학급 지원 등 다른 안건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총회의 핵심은 단연 AI 평가였다. 미래 교육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다. 공정한 평가 없이는 미래도 없다. AI 서·논술형 평가는 그 출발점이다. 교육계가 한발 더 나아간 지금, 우리는 그 결정을 힘껏 지지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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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9
  • [社說] 의대 쏠림과 두뇌 유출, 한국의 미래는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은 지금 인재의 황무지가 되고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은 의대로 몰리고, 남은 AI 인재마저 해외로 떠난다. 두뇌 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난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서울대 공대 신입생 5명 중 1명이 의대로 이탈한다. 공학의 심장에서조차 인재가 빠져나간다. 이들은 안정된 직업과 높은 수익을 좇는다. 국가가 키운 인재가 첨단 산업 대신 의료로만 몰린다. 그 결과, AI·반도체·양자 분야는 속이 비어간다. 남아 있는 소수의 AI 인재마저 실리콘밸리로 떠난다. 구글, 애플, 엔비디아는 성과 기반 보상과 개방적 문화를 내세운다. 한국의 연공서열과 단기성과 중심 체계는 매력이 없다. KAIST 연구실의 제자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뇌 유출은 곧 국력 손실이다. 공교육비, 세수 손실까지 계산하면 인재 1명당 수억 원의 손해다. 첨단 산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가는 그보다 크다. 세계는 AI 인재 전쟁에 나섰다. 중국은 ‘천인 계획’으로 석학을 불러들이고, 일본은 고급 인력에 영주권까지 내준다. 미국은 빅테크를 앞세워 수억 달러 보상으로 인재를 사들인다. 반면 한국은 인재를 지켜내지도 못한다. AI 인재는 빠져나가고, 의대 정원은 늘어난다. 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기업의 80%가 AI 인력이 부족하다. 2027년엔 1만 명이 넘는 AI 인력이 공백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대로는 AI 강국은커녕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한다. 의대 공화국과 두뇌 수지 적자는 국가적 재앙이다. 정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성과 중심의 보상, 연구 인프라 확충, 국제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동시에 의대 쏠림을 완화할 전략이 시급하다. 지금의 흐름을 방치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의대와 해외만 바라보는 인재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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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5-09-15
  • [時論] 배움의 진짜 얼굴
    [교육연합신문=시론]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성취도’, ‘평가’, ‘입시’, ‘스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시험에서 몇 문제를 맞혔는지가 배움의 척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진정한 배움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을 넘어선다. 배움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Humanness)은 단순한 도덕적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힘이다. 이 힘은 자율성과 주체성, 그리고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말했다. “진정한 자아는 결코 외부의 규칙에 맞추어질 수 없다.” 교육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배움이란 외부 기준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발굴해가는 여정이다. 사례 ① 몬테소리 교육: 스스로 피어나는 배움 이탈리아의 교육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아이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보았다. 교사는 지식을 주입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전통 수업에서는 교사가 시간표와 커리큘럼을 정하지만, 몬테소리 교실에서는 아이가 교구를 직접 선택하고 흥미를 따라 탐구한다. 아이 안에 있는 자기 주도성과 내적 동기를 깨우는 것이다.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 안에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 교사는 억누르지 않고, 조율하고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만 한다. 교육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면의 열망이 피어나는 장이어야 한다. 사례 ② 핀란드 교육: 경쟁 없는 배움의 공동체 핀란드는 교육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를 동시에 높이는 나라로 유명하다. 놀랍게도 전국 단위 시험이 거의 없다. 학생들은 등수에 신경 쓰지 않고, 학습의 즐거움을 우선한다. 핵심은 ‘협력과 토론’이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는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주제로 조별 토론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자료를 조사하고 의견을 나눈 뒤, 함께 해결책을 도출한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과 사회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수업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진 연결성과 공동체 감각을 길러주는 배움이다. 배움은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소유할 때 비로소 자유롭다.” 배움은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사유의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생각을 소유한다는 것은 외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는 인간을 기르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실천 방안: 배움의 중심을 학생에게 1. 학습자 중심 수업 설계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촉진자(facilitator) 역할 학생이 스스로 주제를 설정하고 탐구할 수 있는 열린 과제 제공 다중 지능 이론 기반 개인 맞춤형 학습 경로 구성 2. 평가의 혁신 기존 상대평가와 표준화 시험은 개인 고유성을 평가하지 못한다. 포트폴리오, 서술형 수행평가 중심으로 전환 실험, 창작, 프로젝트 활동 등 다양한 표현 방식 허용 성장 중심 피드백으로 학습 동기 고취 3.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확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학습자가 지식 생산자로 변모 예: 지역 환경 문제 다큐 제작, 사회적 이슈 캠페인 기획 창의력, 협업 능력, 문제 해결력 등 핵심 역량 강화 교과 경계를 넘는 융합적 사고 훈련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교육 진정한 교육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학생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타인과 관계하며,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어떻게 느끼고, 연결하고, 사용할지를 고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답게 배운다. 교육은 지금 다시 묻고 있다. “우리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작은 결론 배움의 목표는 외적 성취가 아니라, 내적 성장이다. 평가 방식은 숫자와 등수가 아닌, 성장과 발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의 호기심과 열망을 깨우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AI와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다움은 인간이 길러야 한다. 지식은 빠르게 확산되지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교육의 진정한 승리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도 질문해야 한다. 시험 문제를 맞히는 인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생각하고 느끼고 연결할 줄 아는 인간을 기르고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미래 교육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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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8
  • [社說] 인재가 떠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한국의 두뇌 수지 적자가 심각하다. OECD 38개국 중 35위라는 성적표는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젊고 유능한 인공지능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 들어오는 인재는 줄어든다. 이 현실은 국가 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떠받칠 뿌리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상의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은 0.36명이다. 2022년에는 0.04명, 2023년에는 0.3명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수치는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과 독일, 캐나다는 인재 유입국이 되었다. 세계의 두뇌가 모이는 곳은 번영한다. 인재가 떠나는 곳은 쇠락한다. 원인은 단순히 연봉이 아니다. 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제도와 문화에 있다. 평가는 단기 실적에 치우쳤다. 보상은 연공서열에 묶여 있다. 연구 인프라는 열악하다. 국제 협력의 기회도 부족하다. 이 구조에서 창의는 자랄 수 없다. 김정호 KAIST 교수의 제자들조차 구글과 엔비디아로 간다. 이것이 현실이다. 고급 인력 한 명이 떠날 때마다 국가는 손실을 본다. 그 규모는 약 5억 원이다. 이 계산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이미 대학과 연구소의 역량이 줄고 있다.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에 시달린다. 산업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미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한다. 정부는 AI 세계 3대 강국을 외친다. 100조 원 펀드도 약속했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는 붙잡히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전환이다. 인재 유출 억제는 소극적이다.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게 해야 한다. 성과와 보상이 연동돼야 한다. 근로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연구 생태계는 세계와 연결돼야 한다. 창의적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인재는 국력이다. 인재가 떠나는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두뇌 유출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야 한다. 구호가 아니라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젊은 두뇌가 떠날 때 남는 것은 쇠락의 그림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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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01
  • [社說] 수능, 존폐 논쟁 넘어 공정의 길로
    [교육연합신문=사설] 수능은 여전히 한국 교육의 심장이다. 그러나 그 심장은 오래된 방식으로 뛰고 있다. 학생들의 꿈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지론자는 수능을 사교육의 온상이라 비판한다. 유지론자는 수능이 공정의 최후 보루라 주장한다. 양측의 논리는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존폐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학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것인가다. 수능은 공정성을 보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이 구조는 지역·학교 간 격차를 줄이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동시에 수능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의 그림자를 짙게 만든다. 따라서 수능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개선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수능을 공교육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가도 충분히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AI 튜터와 같은 맞춤형 학습 지원을 공교육이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지역, 환경, 학습 조건에 맞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수능의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학력평가와 적성평가는 달라야 한다. 지식의 축적을 측정하는 시험과 진로·탐구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을 나눠야 한다. 학생은 자신의 길에 맞는 시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반영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수능 한 장의 성적표가 인생을 좌우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배움의 과정, 도전의 기록, 지속적인 성장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꾸준한 학습이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경기 학생들의 토론은 귀한 결론을 남겼다. 공정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합의다. 존폐의 논쟁을 넘어, 교육의 본질로 접근한 것이다. 정치권과 교육 당국은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답을 내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결단할 차례다. 수능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은 지켜져야 한다. 시험은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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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5
  • [社說] 진상조사 보고서, 약속은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인천 특수교사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7월 24일 의결한 보고서 요약본 공개 시한은 7월 30일이었다. 그러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결국 위원 7명은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절차 지연이 아니다. 한 교사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규명 과정이며, 유족과 시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특히 유족에게조차 공개 지연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은 교육기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교육감은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특수교육 여건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의 첫걸음인 보고서 공개부터 미뤘다. 공개 지연의 명분으로 제시한 ‘법률 검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 검토를 맡긴 시점이 이미 시한을 넘긴 뒤였기 때문이다. 준비와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기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을 일이다. 진상조사 보고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교육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특수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보고서 공개를 미루는 순간, 의혹은 증폭되고 상처는 깊어진다. 인천시교육청은 더 이상 시간 끌기를 멈춰야 한다. 유족과 시민 앞에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 약속은 말이 아니라, 기한을 지키는 행동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투명한 공개만이 교육청이 책임을 다했다는 최소한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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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8
  • [社說] 현장체험학습의 위기, 교사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 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고 있다. 교사들은 불안에 떠는 중이고, 학생들은 추억을 잃고 있다. 학부모들은 안타까워한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누구도 반기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는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을 주말에 진행한다. 외부 단체가 운영하고 학부모가 동행한다. 교사는 빠졌다. 교사의 안전사고 책임을 피하려는 결정이다. 교장은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이라 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 모습은 교육의 후퇴다. 문제는 교사의 법적 책임이다. 2022년 강원도에서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 이후, 교사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과실치사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그 충격은 컸다. 법 개정으로 면책 조항이 추가됐다지만,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안전조치 의무’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면책되는가?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결과는 자명하다. 체험학습은 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현장체험학습은 지난해 대비 36% 감소했다. 교육의 일부가 사라진 것이다. 교사들은 교실에 머무르고, 아이들은 체험 없는 배움을 받고 있다. 탈춤 공연, 타악기 연주처럼 ‘찾아오는 체험’이 대안이 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현장체험인가? 교사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체험학습의 철회여서는 안 된다. 법은 현실을 담아야 한다. 면책 요건은 명확해야 하고, 지원 인력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교육부는 뒷북으로 “응급조치 시 면책” 조항을 검토 중이라 한다. 이미 늦었다. 교사들은 결정을 내렸고, 학부모와 학생은 결과를 겪고 있다. 현장체험학습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다. 살아 있는 배움이다. 공동체 경험이자 감정의 성장이다. 이를 포기하는 교육은 온전하지 않다. 안전과 교육은 맞설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두 가치를 함께 지켜야 한다. 교사의 책임을 명확히 줄이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체험학습의 부활은 법과 제도의 뒷받침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교사에게만 있지 않다. 교육을 가능케 할 사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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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1
  • [社說] 4세 고시, 배움이 아닌 불안의 시작
    [교육연합신문=사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유아 대상 영어학원 63곳을 적발했다. 이들 학원은 4세 유아에게까지 사전 시험을 요구했다. 반일제 이상으로 수업을 운영한 곳도 있었다. 하루 4시간 넘는 학습은 유아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선행학습은 놀이보다 공부를 우선시하게 만든다. 이는 유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왜곡한다. 레벨 테스트는 학습의 출발점을 경쟁으로 바꾼다. 부모는 조기 교육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학원은 이를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벌인다. 경쟁은 점점 더 이른 나이로 확산된다. 결국 학습은 놀이를 대체하고, 아이는 놀 권리를 잃는다. 교습비 과다 청구, 과대 광고, 무단 시설 변경도 다수 적발됐다. 이는 유아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더구나 유아기는 인간 발달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에 학습 중심 교육은 부작용을 남긴다. 집중력, 감정 조절, 사회성 등은 놀이를 통해 자란다. 그러나 학원은 시험을 통해 줄 세우려 한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닌 선발이다. 선발은 낙오자를 만든다. 유아기는 낙오와 경쟁을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그 시기는 함께 자라고 함께 웃는 시기다. 평등한 출발선이 필요한 시기다. 학원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는 의미 있는 조치다. 그러나 일회성으로는 부족하다. 선행학습을 구조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유아기에는 놀이가 배움이다. 시험은 불안이다. 4세 고시는 교육이 아니라 불안의 제도화다. 국가와 사회는 이를 막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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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04
  • [社說]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실 밖의 배움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현장 체험, 동아리 활동, 야외 학습은 배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지식은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삶 속에 있다. 그러나 최근 교실 밖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안전, 예산, 평가 중심의 정책이 그 이유다. 위험을 이유로 배움을 막을 순 없다. 통제는 배움을 가두고, 상상력을 말린다. 교실은 시작점일 뿐이다. 배움은 교실을 넘어야 살아난다. 아이들은 움직이며 배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 속에서 깨우친다. 교실 안의 수업만으론 부족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자라지 않는다. 교실 밖 배움은 질문을 품게 하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지식은 체험과 연결될 때 깊이를 갖는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협력과 공감 능력을 빼앗는다. 교실 밖 배움은 공동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자연 속에서, 사회 현장에서 아이들은 진짜 삶을 배운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사에게는 자율이 필요하다. 학생에게는 선택의 폭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은 통제보다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은 강화하되, 배움의 길은 넓혀야 한다. 교실 밖 배움을 축소하면, 미래도 작아진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다. 그 문을 닫아선 안 된다. 열어야 한다. 넓혀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은 교실 밖에서 더욱 크게 자란다. 교실 밖 배움의 기회를 지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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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28
  • [社說] 고교학점제, 미봉책 아닌 근본 재설계가 필요하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었다. 정부는 학생의 선택권과 책임교육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장은 고통을 호소한다. 제도는 취지와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교육부는 제도를 유지하되 보완하겠다고 한다.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개선안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임시방편으로는 실패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선택이다. 하지만 입시 중심의 구조는 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학생은 결국 유리한 과목만 고른다. 진정한 선택은 없다. 불안은 커지고 탈락 공포는 현실이 된다. 교육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다. 성장은 다름을 인정하고 가능성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교학점제는 학생을 줄 세우는 또 다른 장치일 뿐이다. 교사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수업은 늘고 행정은 쌓인다. 최소성취수준 보장은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넘긴다. 교원 확충 없이 책임만 지우는 방식은 부당하다.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도 크다. 정보 부족은 공포를 낳는다. 시스템은 복잡하고 안내는 부족하다. 선택과 평가, 대입까지 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전교조는 폐지를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구조적 실패에 대한 경고다. 선택이 허상이라면, 제도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제도 보완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교학점제는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입과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어붙이면 실패한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현실은 준비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점검이다. 실험이 아니라 검증이다. 보완이 아니라 전면 재설계다. 교육은 시범이 아니다. 실패의 대가를 아이들이 치르게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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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5-07-21
  • [社說] ‘학부모 숙제’된 수행평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잃었다.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려던 제도였다. 지금은 부모의 능력을 재는 지표가 되었다. 교육부는 수행평가를 수업시간 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족하다. 핵심은 수행평가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다. 한 학기에 수행평가를 50번 보는 경우도 있다. 과제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학생은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한다. 부모는 자료를 찾고, 발표 자료를 만든다. 수행평가는 가정의 배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저글링, 노래 편곡 같은 과제가 등장한다. 논문 수준의 과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에게 무리한 요구다. 학원이나 과외가 개입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지금은 그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교육부 개편안은 형식적이다. 수업시간 내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암기식 과제는 여전하다. 수준 낮은 평가 기준도 그대로다. 외부 도움을 차단하는 방안도 없다. 지필고사를 보완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만들었다. 교사는 평가에 매몰된다. 학생은 창의보다 노동에 지친다. 이제는 평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양을 줄여야 한다. 질을 높여야 한다. 과목 전문가가 평가를 설계해야 한다. 평가 기준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수행평가는 학습의 과정이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을 보아야 한다. 교육은 학생이 중심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과잉 수행평가는 교육을 해친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본질을 돌아보아야 한다. 평가는 학생을 괴롭히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평가는 배움을 여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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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4
  • [社說] 수행평가, 이제는 ‘교육’이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수행평가가 더는 교육이 아닌 고통이 되어버렸다. 학기당 50회에 달하는 과도한 평가 횟수는 학생을 숨 막히게 한다. 수면 부족은 기본이고, 학부모의 개입 없이는 수행평가를 해내기조차 어렵다. 수행평가는 언제부터 ‘부모의 숙제’가 되었는가. 교육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모든 수행평가는 반드시 수업 시간 내에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는 암기식 교육을 넘어서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암기식 수행평가와 과잉 과제로 얼룩졌다. ‘진짜 공부’가 사라지고, ‘형식적 평가’만 남았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뾰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단지 시간을 교실 안으로 옮긴다고 본질이 바뀌는가. 암기 위주, 보여주기식 평가가 계속된다면 고통은 여전하다. 수업 안에서의 수행평가가 교육적인 경험이 되려면, 평가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과제가 정말로 학생의 사고력을 키우는가. 이 평가가 교사의 수업과 연계되어 있는가. 학생 스스로 해낼 수 있는가. 부모가, 학원이, 과외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수행평가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교육은 아이들 몫이다.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가는 평가라면 교육이 아니다. ‘깨어 있는 수업’과 ‘살아 있는 평가’가 만날 때, 비로소 교육은 제 길을 걷게 된다. 교육부의 이번 조치는 시작일 뿐이다. 암기식 수행평가를 뿌리부터 바꾸는 일. 교사에게는 창의적인 평가 권한을, 학생에게는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수업 속에서 배우고, 평가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평가는 더는 짐이 되어선 안 된다. 교육은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제는 평가가 아니라 배움이 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산다.
    • 칼럼·피플
    • 사설
    2025-07-07
  • [時論]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방법론에 대하여
    [교육연합신문=시론] 이제 교실에서 학생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다. 뉴스, 광고, 유튜브, SNS가 일상이 된 시대에, 학생은 정보를 해석하고, 때로는 거부할 줄 아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 미디어 리터러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 교육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디어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며, 때때로 왜곡한다. 따라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분석 능력이 아니라 ‘해독의 감각’이다. 교육은 이 감각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첫째, 미디어는 기호의 집합이다. 텍스트는 이미지, 음성, 자막 등으로 구성된다. 학생은 이 기호들을 읽고, 질문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라고. 둘째, 비판적 시각을 키워야 한다. 광고, 뉴스, 유튜브 영상 모두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메시지는 특정 관점을 반영한다. 교육은 그 관점을 인식하게 도와야 한다. 셋째, 제작 활동이 필요하다. 학생은 직접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영상, 팟캐스트, 카드뉴스 등을 실습한다. 제작은 분석보다 깊은 통찰을 이끈다. 넷째, 미디어는 감정의 기술이다. 공감과 분노, 두려움과 희망을 조작한다. 학생은 자신의 감정 반응을 돌아봐야 한다. 감정은 메시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다섯째, 미디어는 권력과 연결된다. 어떤 목소리는 크게 울리고, 어떤 목소리는 지워진다. 교육은 이 불균형을 질문하게 해야 한다. ‘누가 말하고 있고, 누가 침묵하는가’라고. 여섯째, 플랫폼을 이해해야 한다. 콘텐츠만이 아니라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댓글 문화도 교육의 대상이다. 디지털 생태계를 통째로 읽는 힘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는 생존의 언어다. 그 언어를 모르면 조종당한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길러야 한다. 비판, 창의, 공감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 교사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의심하게 해야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시민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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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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