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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독한 열정이 빚어낸, 두 번째 인생의 선율
[교육연합신문=정현도 기고] “인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은 그 길 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입니다. 때로는 삶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 길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은 그 흐름을 다시 이어주는 작은 숨결이 되고, 잊고 있던 설렘과 용기를 다시 깨워줍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 믿습니다.” 지난 2012년, 우리는 조용히 모였다. 교단을 떠난 뒤 찾아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낯설었다. 수십 년을 아이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온 날들이었기에, 그 공백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의 빈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색소폰이었다. 오래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소리는 흔들렸고, 호흡은 짧았으며,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색소폰은 거짓이 없다. 숨결이 닿는 만큼만 소리가 나고, 삶을 살아온 깊이만큼만 울린다. 그래서 우리는 연주를 배우며, 어쩌면 다시 ‘나 자신’을 배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모임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육계 퇴직자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함께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색소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선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윤기호 선배 교장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교단을 떠났지만 배움을 멈춘 적은 없습니다. 지금의 도전은 늦은 시작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색소폰의 한 음 한 음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품고, 또 새로운 내일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머물렀다. 인생의 후반기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음이 제대로 울려 퍼지는 순간, 그 작은 성취는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의 숨결을 맞추는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작은 공연이 끝난 뒤였다. 한 관객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저도… 지금 시작해도 될까요?”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인생에는 늦은 시작이 없다. 다만,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을 뿐이다. 고독 속에서 시작된 우리의 열정은 이제 서로를 지지하는 힘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여는 작은 불빛이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색소폰을 든다. 남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다. ▣ 정현도 ◇ 고독과 열정 동호회 원장 ◇ 前부산대연고등학교 교장 ◇ 前용호1동 주민자치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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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고병구 '어쩌다 의사가 되어'를 읽고
[교육연합신문=송근식 기고] 한 해의 작은 달 2월, 설 명절과 입춘이 들어 있는 달, 봄이 다가오는 기다림과 설렘이 있는 달도 벌써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되었다. 옛말에 복(福)은 받는 것이고, 덕(德)은 쌓는 것인데, 손(手)으로는 나누고 발(足)로 걸어서 건강을 지키고, 얼굴(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마음(心)으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책(冊)을 골라 독서 하면서 자아(自我)의 성숙과 마음을 키우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번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읽을거리를 찾다가 몇 권의 책 중에서 우연히 “어쩌다 의사가 되어”라는 에세이집을 발견하고 단숨에 반쯤 읽었는데 바로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저자인 고병구 원장이 의사로서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면서 환한 얼굴로 설명하는 열정이 존경스럽고 위의 말에 부합된 분이라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는 우리 교육연합신문 전국 애독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이 귀한 자료를 알리고, 국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향후 진로와 직업선택에 도움이 되고 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이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장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없는 이익에 대한 탐닉에 빠진 부류들이 많다. 노동을 조롱하고 성실함을 비웃으며 요행을 미덕처럼 기대하고 비트코인, 주식, 불법도박, 마약, 스포츠베팅 같은 투기에 쉽게 빠져드는 현실의 일탈에 젖어 드는 청소년들에게는 시금석이 되고 나침판이 될 것을 확신한다. 노력으로 쌓은 인생만이 결국 흔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은 쉽게 버는 돈이 아니라 땀과 기다림, 인내, 그리고 정당한 성공, 공정함과 책임감, 사회적 신뢰감을 갖추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고 ▲어쩌다 의사가 되어 ▲추억 속의 나날들 ▲내가 잘 할수 있는 것 ▲나를 위한 시간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시에 담다.로 나누어 구성됐다. ■ 보이지 않는 얼굴들 "의사로서 나 자신을 평가한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의사에 불가하다. 사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의사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보통의 의사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내가 배운 지식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직업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환자들과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저자 고병구 원장은 겸손(謙遜)이 넘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 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슈바이쳐 박사는 “겸손은 크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숙이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이해하면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부가 의사인데도, 40년 전에는 부산 1급지(광복동, 서면 등)에 개업해서 부를 창조했을 수 있는 충분조건에도 중심지를 벗어나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당감동을 선택해, 지금의 준종합병원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고, 외아들 고지환 원장도 부산의대를 졸업, 동 대학에서 소화기내과 진료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소화기 종양학 분야의 세계적인 SCI급 국제학술지 저널 표지모델로 선정돼 장식한 능력가인데도 대학병원, 대형병원에 보내지 않고, 가족 3명의 의사와 외부 원장 3명과 함께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도 전혀 과시하는 모습은 하나도 없다. 또, 책 표지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 멋지게 지을 수 있는데도, 의사 가운을 입고 근엄한 모습을 취한다거나 진찰하는 모습을 택할 법한데, 순하고 연한 녹색 바탕에 별이 새겨진 나무(Tree) 한 그루가 전부일 만큼 겸손하다. 물론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책의 머리말에서 나오긴 한다. ■ 머리말 '무슨 말을 해야 할까?'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의 답으로 주말이면 가끔 아내와 함께 운전대를 잡고 시골길을 달릴 때 고향처럼 느끼는 마을 어귀마다 서 있는 고목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나무처럼 살자. 저 나무처럼 늙어 가자.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마지막 날에 나는 웃으면서 떠나리라”는 문장을 대하면서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무는 우리에게 열매를 제공하고, 잎은 그늘을, 봄에는 새싹으로 희망을, 여름에는 잎의 그늘로 쉬는 휴식처로,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나목으로 우리에게 인내심과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준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고병구 원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90년대 중반 한 직장 동료가 해인사 백련암 성철스님의 수좌스님을 뵈러 간다기에 금일봉을 보시했더니 법명을 하나 받아 왔는데 '하목(夏木)'이었다. 나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인데 나는 깜작 놀랐다. 우연히도 내 한자 이름에는 나무목(木)이 3개 들어 있어, 나는 내 아이디도 hamoksong으로 쓰고, 호(號)도 하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 잊을 수 없는 한마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학생을 본적이 없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으로 여기던 한적한 시골, 산간벽지의 오지 경북 문경의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오직 농사일만 선택할 수 있었던 운명에서, 그래도 꿈이 있어 전액 국비 지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려고 했을 때, 김천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재종형(고무림 선생)이 찾아와 아버지와 나의 진로를 의논하던 중 ”애를 왜 바보로 만들려고 하세요?“하던 그 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고무림 선생의 안내로 오늘날 고병구 저자가 된 것은, 마치 존 레논이 아들을 위해 작사한 Beautiful Boy의 가사 일부를 연상케 한다. ”너의 마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단다 날지 못한다고 미리 겁먹지 마라. 세상에는 너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있단다.“ 그 울타리는 가정, 부모, 형제, 학교, 선한 이웃 등이 있다. 문경에서 못살던, 오직 철도고를 꿈꾸던 소년에게 김천고와 경북의대를 안내한 울타리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사람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인생길이 바뀌게 되는 숙명적인 계기가 되는 일이 간혹 있다. 바로 이 저자도 그 은혜를 입었지만,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과 행복은 유지할 수 없었다. 요즘도 의과대학에 진학 하려면 초등학교부터 과외를 받고, 고교 성적이 상위 1~5%에 들어야 하며, 경제적 능력과 부모의 관심과 본인의 숱한 어려움과 특출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드는데, 하물며 50년 전 국립의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재종형님의 선견지명과 본인의 얼마나 혹독(酷毒)한 노력을 했을지 예견할 수 있다. ■ 나의 모교 송설학원 김천고등학교 김천고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마지막 궁녀이자 육영사업가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설립, 영친왕 보모상궁으로 책봉, 고종황제로부터 송설당 칭호 하사. 재산 전부를 해인사에 희사 예정이었는데, 만해 한용운 스님의 권유로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결심, 1931년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평북 전주에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와 더불어 민족사학 칭호. 개교 당시 영남의 오아시스로 통함. 지금도 3.1절에 입학하는 전통. 1907년 을사늑약 앞두고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 잡혀간 후 귀국 때는 부산에 상륙해 김천에서 내려 김천고 '정걸재'에 들려 송설당을 친견하였다고 함. 지금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로 전국적으로 240명 선발. 교훈은 ”깨끗하게, 부지런하게“(남자고 아닌 여자고 교훈처럼). 풀어 쓰면 마음(心)은 깨끗하게(眞實), 몸(身)은 부지런하게(誠實)라는 뜻이다. 저자는 김천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은혜로 여기고 있다.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올해(2026년) 3월 1일 모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 격려사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도산 안창호(1878 ~1938)선생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워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강조했다. 공리공론을 배척하고, 참되고 성실하게 힘써 행할 것을 강조. 實은 힘쓰자는 것으로 진실, 성실, 거짓 없는 것을 말하며 역행은 반드시 이루자는 뜻. ■ 연좌제의 희생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무관 후보생으로 중위, 대위 계급을 받고 장교로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6.25때 당숙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무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등병 의사가 되어 위생병으로 3년을 보낸 원통함이 있었다. 전역을 석 달 남긴 1980년 10월 어느 날 영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국보위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방송을 듣고 할 수만 있다면 남은 3개월이라도 군위관으로 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온다. 얼마나 원통하고 가슴 아파 제대 후 한동안 동기들 모임에서 군대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뒷자리로 물러났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년 후 대전 군의학교에서 열리는 아들 지환 군(부산의대 졸)의 임관식에서 대위 계급장을 다는 아들의 모습에서 ”비로소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구나“하는 위로와 묘한 감회를 느꼈다고 했다. *연좌제(緣坐制) : 범죄자의 친족 또는 기까운 사이, 범죄자의 주변인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제도. 해방 후 납북, 월북자 가족은 공무원은 물론 사회 생활에 불이익을 당함. 1980년 헌법 금지됨. ■ 잊을 수 없는 추억 추억에는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과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좋은 추억은 잔잔하게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같은 어릴적 동심의 추억부터 기억하기 좋은 것. 나쁜 추억은 죄를 지었거나 상처를 입힌 잔인한 추억이고 그리고 부끄러운 추억은 미숙함으로 수치(羞恥)가 담겨있는 추억으로 자신이 좀 더 자랄 수 있었던 것이고, 가슴 아픈 추억은 칼날 같이 날카롭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보석 같은 추억이고 나를 자라게 하는 추억이다. 저자는 시간은 과거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요술 지팡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세월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는 일에 내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 꽃과 바람과 물 사방이 병품처럼 산으로 둘러쌓인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보이는 것이 산과 꽃과 바람과 물이었는데, 이젠 도시의 빌딩숲 속에서 매일 병원 건물 사무실 속에서 환자만 대하는 숨막히는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산뜻한 들국화가 되고, 시원한 솔바람이 되고, 맑은 물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두고두고 이 자리를 지키다가 고향 언덕에 재로 뿌려지는 게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한 부분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감을 느끼며, 70대 중반을 넘긴 저자나 독자인 내가 공통점을 갖는 부분이면서 그래도 남은 삶의 막바지에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로 1년 늦게 입학했고, 의예과 시절엔 고열, 오한을 동반한 장티푸스에 고생했고, 43세 땐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 절제 수술과, 곧 B형 간염에 걸려 친구들 사이엔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났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 심한 몸이 어느 날 B형 간염균이 사라졌고, 이것은 로또 당첨될 만큼 드문 확률이라고 한다. 그 후 식사를 잘하고 60이 넘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고기와 채소, 날과일과 비빔밥 등 ”밥이 보약이다“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즐겁게 먹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고 했는데 위의 내용은 의사의 전문적 처방이 아닌 일반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말하는 순수한 지혜의 덕담 같아서 더욱 친근감과 신뢰감이 든다. 의사인 저자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오래 사세요“란다.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이런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위 내용 외에도 '소 팔자 인생', '나를 위한 시간', '눈썹과 인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굽은 인생길' 등 수많은 울림과 되새겨야 할 내용과 말들이 많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독립시킨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생각 났다. ”절망을 느낄 때 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진리와 사랑의 방법은 늘 승리했다. 우리에겐 선과 진리와 사랑은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준다. 글 전체가 연좌제에 대한 불평 즉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약간 주먹을 쥐고 울분을 터뜨린 것 외는 모두가 긍정적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심장을 안정시켜 주었다. 결국 자기 직분을 다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기쁨과 행복이 멀리 있다 생각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연이 되어 지난 3월 1일(삼일절)날 모교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에서 동문 대표로 ”격려사(檄勵辭)“를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송설 후배들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는 비결.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오늘 여러분처럼 김천고 입학이었으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김천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김천고는 내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우리 김천고는 일본의 압제하에 있던 암흑기에 대한의 미래를 위해 송설당 할머니께서 세운 민족학교이다. 초대 정열모 교장 선생께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학교는 공립전환이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었다. 이처럼 유서깊은 학교에 여러분이 들어오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며 영광이다. ---중략--- 의사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후배 여러분께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시오. 장차 술과 담배, 혹은 다른 약물들을 가까이 할 기회가 올 것이다. 그때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단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70대 중반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큰 수술을 받았고, 수개월 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만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하루 8시간 이상 환자를 보고, 나머지 먹고 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은 뭔가를 하면서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진다. 별도의 휴식 시간을 갖지 않아도 지치는 일이 없다. 나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바빠도 성취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가진 비결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길을 찾아 실천하시기 바란다. ▣ 송근식 ◇ 교육연합신문 부산지사장 ◇ 前부산예문여고·광명고·경혜여고·건국중학교 교장 ◇ 학교법인 선화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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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래의 만세, 기념을 넘어 도시의 품격으로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3월의 동래는 단순히 봄을 맞이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1919년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며, 도시의 정체성과 책임을 동시에 환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동래구가 주관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는 해마다 열리는 기념행사라는 틀을 넘어, 지역 역사자산을 교육과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담긴 자리였다. 행사는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 참배로 시작됐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헌화는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어 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이어졌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세대 간의 기억 계승이라는 상징성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동래구가 역사적 동선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동래시장과 수안인정시장 일대를 잇는 만세 행렬은 1919년 당시 실제 만세운동이 전개됐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과거의 현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걷게 함으로써 체험형 역사교육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래는 부산에서 가장 치열하게 3·1운동에 응답한 지역이다. 장터와 골목, 동헌과 읍성 일대는 민족의 자존을 외치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상인과 학생, 이름 없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동래구가 이러한 역사적 자산을 도시 브랜드의 일부로 재해석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행사에서는 동래 출신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강화됐다. 지역 인물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구체적 서사로 전달했다는 점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역사적 인물을 지역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재조명한 점 또한 교육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수동식 태극기 인쇄 체험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먹 냄새가 번지는 인쇄 체험 공간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던졌다. “그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했나요?” 이 질문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는 순간 살아난다. 동래구가 마련한 이 재현의 장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3·1운동의 본질은 ‘만세’라는 구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결단,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내려놓았던 책임에 있다. 오늘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그 장면을 되살린다. 그렇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가치 앞에서 용기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래구의 이번 재현행사는 지역 역사자산을 문화·교육 콘텐츠로 확장한 모범적 사례로 볼 수 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학교 교육과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 참여 확대, 역사 공간의 상시 해설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이어진다면 동래의 3·1정신은 도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는 단단하다. 기억을 자산으로 만드는 도시는 품격이 있다.동래의 봄바람 속에서 울린 만세는 과거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동래가 어떤 도시로 서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기념을 넘어 교육으로, 교육을 넘어 책임으로 이어질 때, 동래의 3·1정신은 도시의 품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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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省察?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금 우리의 경제 구조, 정치 구조, 교육 구조가 새로운 방향으로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을, 교육자들도, 정치인들도, 관료들도, 기업인들도 다 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누구의 철학을 취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하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포착해야 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타난 철학을 훈고하거나 끌어들여 사용해 보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신적 독립을 시도해 보는 일이 아닐까? 선진 사회, 선진 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일이 아닐까? 이쯤에서 1880년에 태어나 1936년에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생각, 즉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사회나 모두 각자가 가진 시선의 높이를 넘어서 사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야 딱 시선의 높이만큼 산다. 그래서 시선의 높이는 치명적이다. 시선이 높아야 마음이 크고, 시선이 낮으면, 마음도 작다. 작은 마음은 쉽게 차고, 큰마음은 어지간한 양으로도 잘 차지 않는다. 쉬이 차는 작은 마음은 쉽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르는 마음에 자만과 교만이 깃든다. ‘마음의 크기’가 삶의 크기다. 그래서 老子도 말한다. ‘大器免成’,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 큰 그릇이 되는 건 끝이 있는 '완료형'이 아닌 계속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만족함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혁신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큰 가르침이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근대 유럽의 정치구조가 나타나는 계기가 된 평화조약)부터 문명은 ‘국가’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는데, 1800년대 중반부터 ‘근대’의 큰 흐름이 동아시아에 닥칠 때,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 처해있어, ‘근대’를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학습·수용할 수 없었다. 공부도 시켜서 할 때와 주체적으로 알아서 할 때 사이의 실력에 큰 차이가 나듯이, 국가나 문명의 형성과 학습도 주체적이냐 종속적이냐에 따라 큰 실력 차이를 내게 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앞선 생각으로 주도권을 갖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갖는 분기점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입인들만 앞장 서서 실천을 한다. 왜, 실천을 하느냐? 안 하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교육자들, 관료들은 앞장서서 실천을 안 해도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한 공동체의 승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들에게는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동시에 생각하는 예민함이 있다. 인문학은 생존과 직결되며,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서는 예민함의 필요함을 일러주므로 기업가들이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해야 할까?, 즉 전방에 보초를 서는 척후병처럼, 모든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주시하는 경계 태세, 즉 조짐을 찾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불안하고 모호하다. 불안과 모호함을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계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다. 결국, 모호함과 두려움을 오롯이 감내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용기이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함량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에서, 즉 일류 국가에서 인류와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메시지’, ‘비전’, ‘생각들’을 받아들여서 그 사람들 대신에 잘 수행해 왔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인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방향을 조금 더 앞서가는 일이다. 그럼,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계속 꿈꿔보는 일이다. 그럼, 창의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길은 무엇일까? 대답하는 인재보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 특히 교육은 모든 정치 구조, 인재의 틀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한국 사회에서 요체는 뭐냐? 국민 각자가 역사적 책임성을 갖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의 역할’을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몸에 배게 하는 훈련장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이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교육, 행정을 가지고 욕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시민들이 다 만들었다. 시민들이 만든 정치 구조며, 교육 구조, 교육 정책이다. 다 우리가 만든 것이다. 시민이 국가 운영의 방관자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 관료, 교육자들을 욕하기에 앞서, 그분들을 만든 근본이 우리 국민이라는 역사적 책임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 역사와 사회를 내가 책임진다고 하는 자각과 실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역사적 책임성을 갖추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과 관련되는 일이고, 우리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일이다. 이것을 자각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연수나 강의를 통해서 강조하는 일로써 자신의 역할이 끝나서는 어렵다. 이 역사는 우리의 눈물과 피와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이 일은 앞으로도 쉼 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모두가 曾子 선생의 ‘吾日三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曾子 선생의 성찰은? 인간성의 실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모든 정치, 경제, 교육의 구조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을 발휘해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이 말도 曾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선조들의 진정한 삶의 가치인 ‘살림살이’, 즉 ‘三一哲學’에 이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주로 제자 플라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는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인간의 본질을 묻게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만드는 존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변화를 만들며 산다.’고 최진석 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문화적 존재다. 인간이 만든 세계, 곧 문명, 인간이 안 만든 세계,자연, 두 무대에서 사는 인간은 보이던 것에서 살다가 안 보이던 것으로 이동해서, 자기 영토를 건축하는 존재다. 해석되지 않은 것을 꿈꾸는 존재고, 생각하는 존재다. 어떻게 변화를 이루는가? 관념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변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생각을 통해서다. 질문하고 관념을 깨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변화를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인가? 종속적인 삶을 살 것인가? 자신에게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짐으로써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행복과 자유 또한 질문의 대상이지, 행복과 자유는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이 들어간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꿀 수 있어야, 자유나 행복을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질문하며 추상의 세상을 사유하는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묻는 성찰의 시간이 현재의 자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왜? 인간이 변하고 달라지는가?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이 해결해야 될 내용과 방법도 달라진다. 그 해결하는 내용과 방법을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인간은 그냥 들쑥날쑥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人文이라고 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크고 작은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하나둘, 세어보는 삶, ‘自快’하는 삶의 길이지 않을까?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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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스마트팜으로 도약하는 중장년, 제2의 재배를 꿈꾸다
[교육연합신문=이고은 기고]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일의 끝’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지금, 중장년에게 은퇴는 또 하나의 선택지 앞에 서는 전환점이다. 문제는 선택의 폭이다. 제조업 구조조정, 기술 변화, 산업 전환 속에서 중장년이 다시 설 수 있는 현장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농업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제2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스마트팜은 더 이상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농업이 아니다. 센서로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PLC와 제어 시스템으로 온·습도와 생육 조건을 관리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산업이다. 이는 기계, 전기, 설비, 자동화 분야에서 오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중장년에게 결코 낯선 영역이 아니다. 공장에서 설비를 다뤘던 경험은 이제 작물을 키우는 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기반 스마트팜 운용·관리 교육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다. 해당 과정은 단순한 귀농 교육이 아니라, 스마트팜 자동화 이론, PLC 제어 실습, 센서·계측, 환경제어, 설비 보전, 빅데이터, 드론 활용까지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충남캠퍼스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스마트팜 중장년 과정은 ‘배워서 끝나는 교육’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쓰는 기술’을 목표로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마트팜을 단독 산업이 아닌 디지털기계시스템과의 융합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팜 설비는 결국 기계와 전기, 제어, 유지보수의 집합체다. 센서 고장 진단, 제어 로직 수정, 설비 트러블 대응 능력은 중장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 재배 인력을 넘어, 스마트팜을 ‘운영·관리’하는 전문 인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지역 산업 구조 측면에서도 스마트팜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충청남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 조성과 디지털 농업 확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설비를 운영하고 관리할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스마트팜은 지어졌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사람은 부족한 현실이다. 중장년 인력이 이 공백을 채운다면, 개인의 재취업 문제와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제2의 재배’란 단지 작물을 다시 심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경험을 새로운 산업에 옮겨 심는 일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손은 이제 스마트팜 설비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읽던 눈은 작물의 생육 상태를 분석한다. 과거의 경력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토양 위에서 다시 자라난다.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묻는다.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동시에 답을 제시한다. “당신의 경험은 아직 쓸모가 있다.” 기술로 재배되는 두 번째 인생, 스마트팜은 중장년에게 선택이 아닌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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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장에 담긴 감사…세대 간 따뜻한 어울림
[교육연합신문=이정아 기고] 아침 등굣길에서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학교, 그 인사에 어르신들이 미소로 답하는 학교. 나는 그 짧은 순간이 교육의 시작이라고 믿어 왔다. 수영초등학교에는 오랜 시간 학교를 지켜 주신 지역 어르신들이 계신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고, 운동장과 복도를 정리하며,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맞아 주는 분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였지만, 그분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학교의 일상이 되었다. 학교는 대한노인회와 시니어클럽 소속 어르신들께 감사의 상장을 전달했다. 사실 상장은 형식에 불과했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중합니다”라는 말이었다. 상장을 받으시던 한 어르신의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상장”이라는 말씀에, 그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도움을 받아 온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지만, 학교는 그 마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단상에 오르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존중을 알고 있었다. 그 박수는 연습된 예절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쌓인 신뢰의 표현이었다. 수영초등학교는 현재 부산광역시교육청 인성교육 연구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특별한 프로그램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교문 앞 인사 한마디, 함께 지켜낸 하루의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의 묵묵한 봉사는 아이들에게 책임과 배려, 공동체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사는 어르신들께 다시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 순환이 바로 학교와 지역이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의 힘이라고 믿는다. 학교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과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앞으로도 수영초등학교는 어르신들과 손을 맞잡고,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따뜻한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상장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감사와 존중,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 약속을 지켜 가는 것이, 내가 교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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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 [교육연합신문=유정걸 기고] 야구장은 늘 시간표와 닮았다. 1회 초가 종이 울리는 첫 교시라면, 경기 종반은 스탠드 의자가 비어 가는 밤 10시의 마지막 수업이다. 부울경 학원인들이 BAT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린 지 꼭 10년, 칠판의 가루를 털던 손으로 미트의 흙먼지를 털었고, 빨간 펜으로 채점하던 집중력으로 스트라이크 존의 모서리를 공략해 왔다. 이른 아침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학원원장과 강사들이 백여 명에 이르렀고, 그들은 일상을 야구로 설명하고 야구로 버텼다. ■ 공격-수업의 첫 문장처럼, 초구를 간다 공격은 늘 문제 제시다. 수업에서 “오늘 목표”를 칠판 맨 위에 적듯, 타석에 서면 우리는 초구를 어떻게 대할지부터 계획한다. 번트로 출루율을 높일지, 과감히 초구를 당겨 장타를 노릴지. 학원 현장도 같다. 새 단원을 열어 갈 때는 작은 점수가 필요하다. 쉬운 예제로 분위기를 잡는 번트, 기초 개념을 쌓는 희생플라이. 때를 만나면 파생 개념까지 묶어 장타를 뽑는다. 홈으로 뛰어드는 건 학생이지만, 작전표는 벤치가 쥔다. 원장은 반 편성을, 강사는 학습 루틴을 짠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은 초구 노린다. 개념의 한가운데를.” ■ 수비-상담은 실점 방지다 수비의 핵심은 첫 플레이를 지키는 일이다. 무심코 흘린 송구 하나가 이닝을 길게 만든다. 학원에서의 상담이 그렇다. “우리 아이가 요즘 집중을 못 한다.”라는 포구를 제대로 받아야 다음 공이 쉬워진다. 데이터를 꺼내고(최근 출결, 과제 수행률, 단원별 정답률), 커버링을 부른다(담임–과목 선생–부모–아이). 실수는 감춘다고 줄지 않는다. 에러를 에러로 적는 용기, 코치의 첫 자격이다. 수비 위치를 한 발 앞당기듯, 상담도 한 주 먼저 잡으면 실점은 줄고 경기 흐름이 바뀐다. ■ 주루-시간표 위의 90피트 주루는 타이밍의 수학이다. 스타트가 0.2초 느리면 세이프가 아웃으로 바뀐다. 강사의 하루도 그렇다. 오후 4시 수업 전에 교재 업데이트 15분, 쉬는 시간 5분 퀴즈 피드백, 수업 후 상담 10분. 이 30분의 주루가 학기 전체의 득점을 만든다. 더그아웃에서 스톱워치를 쥐고 “지금”을 외치는 코치처럼, 우리는 알람으로 시간을 쪼개고,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베이스를 훑는다. 가끔은 오버런을 해도 괜찮다. 돌아오는 길에 학생의 질문 하나를 더 챙겨 세이프를 만든다면. ■ 교재연구-스카우팅 리포트의 힘 교재연구는 상대 투수 분석과 똑같다. 어떤 구종이 많은가, 카운트 싸움은 어떻게 하는가. 타자별 핫존을 칠해서 스프레이 차트를 만들 듯, 단원별 오개념 지도를 만든다. “지수법칙을 이유 없이 외우는 학생” “도형 이동에서 기준 좌표를 놓치는 패턴”. 이 리포트를 들고 들어가는 수업은 매 타석이 준비된 스윙이다. 덕분에 우리는 “왜 틀렸는지”를 보여 주는 코칭으로 바꿨다. 정답보다 증거를 말하는 법을 야구가 가르쳤다. ■ 더그아웃-동료라는 이름의 불펜 십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평일 오전, 도시락과 물통이 쌓인 더그아웃에서 우리는 학생 상담 사례와 수업 장치를 공유했다. 한쪽 끝에선 아이스팩으로 손목을 식히고, 다른 쪽에선 다음 주 모의고사 해설 포인트를 메모한다. “저 타자는 초구에 약간 뒤늦게 반응해.” 라는 속삭임이, “그 학생은 시작 문제에서 시간을 잃어.”로 바뀐다. 불펜에서 나와 한 타자 승부를 해내듯, 동료의 메모 한 줄이 어떤 날엔 우리 모두를 세이브한다. ■ 일상의 점수표-야구가 바꿔 놓은 것들 그들의 일정표에는 야구장이, 승용차 트렁크에는 공·글러브·배트가 함께 산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낮아지고, 채점은 밤으로 밀린다. 장마엔 경기와 수업이 함께 미뤄지고, 개학·중간고사·파이널은 늘 불펜 가동 주의보다. 그러나 시즌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알았다. 흙먼지와 땀냄새가 소진을 성취로 바꾸는 냄새라는 걸.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도 야구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우리는 미소로 대답한다. “네, 그래서 더 오래 가르칠 수 있다. ■ BAT의 의미-낭만만이 아니라 근거와 품격 BAT는 우리에게 낭만이 있다. 하지만 낭만만으로 버틴 건 아니다. 기록이 있었다. 매 경기의 포지션 변화와 타석 결과처럼, 우리는 학생의 학습 로그를 쌓았다. 서로의 실책을 덮지 않고 공처럼 정확히 주고받으면서, 탓이 아닌 해결의 언어를 익혔다. “누구 탓이냐” 대신 “다음 공은 어디로”를 묻는 습관이 학원에도 스며들었다. 그게 이 리그가 만든 품격이다. 올해도 가을이 왔다. 플레이오프의 긴장과, LED등 아래 교실의 고요가 묘하게 겹친다. 어떤 날은 파울 플라이처럼 아슬아슬하게 잡고, 어떤 날은 몸을 던져 라인을 지킨다. 그리고 가끔은, 스코어보드의 숫자보다 더 큰 승리를 안고 돌아온다. 한 학생의 표정이 바뀌었을 때, 한 문장의 설명이 스스로의 말로 정리됐을 때. 십 년 전, 십여 명의 원장과 강사 몇 명이 작은 공터에 섰다. 첫 배트는 가벼웠고, 첫 스윙은 어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덜 휘청이고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야구장에선 여전히 초구가 날아오고, 학원에선 종이 또 울린다. 우리는 오늘도 작전표를 확인한다. 공격·수비·주루, 그리고 가르침.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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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트는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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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와 문제 해결 중심 교실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의 풍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단순히 교과서를 따라가며 정해진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사회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경험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도구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고,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제시하며 학생들이 직접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돕는다. 교실은 암기와 정답 찾기의 공간이 아니라, 탐구와 실험, 협력과 토론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문제를 구조화하는 AI의 힘 AI가 주는 가장 큰 도움 중 하나는 문제를 구조화해 주는 능력이다. 학생들이 복잡한 과제를 만났을 때, AI는 막연한 문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보여주고 해결의 순서를 안내한다. 예를 들어 환경 수업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주제로 탐구할 때 AI는 지역별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정리해 시각화하고, 여러 대안을 시뮬레이션으로 비교해 준다.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가?”, “이 대안의 한계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암기가 아닌 실질적 문제 해결 과정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적 주제를 다룰 때도 유용하다. 환경·에너지 문제뿐 아니라 인구 변화, 도시 교통, 기후 위기 등 복잡한 현상은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AI와 함께 데이터를 살펴보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검토하면서 학생들은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 이는 단순히 교과 지식을 넘어서, 미래 시민으로서 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시각을 키워 준다. ■ 교과 속에서 살아나는 탐구 수학과 과학 수업에서도 AI의 효과는 뚜렷하다. 복잡한 계산 문제나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AI가 신속히 도와주면 학생들은 계산 과정에 매몰되지 않고 원리와 의미에 집중할 수 있다.예를 들어 수학에서 방대한 통계 자료를 다루거나 과학에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할 때, AI가 자료를 정리하고 오류를 검증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계산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결과가 현실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AI는 답을 대신 주는 존재가 아니라, 탐구 과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파트너가 된다. 저는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을 집필하면서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AI는 학생들이 직접 탐구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건너뛰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더 깊고 구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안내하는 학습 촉매제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성취기준을 분명히 세운 상태에서 AI를 수업에 접목할 때, 학생들은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 전체를 경험하며 성장한다. ■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감수성 AI를 활용한 문제 해결 수업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결과는 편향되거나 오류를 포함할 수 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학생들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 데이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AI의 제안을 검증하는 습관을 익힌다. 이 과정은 단순히 학습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윤리적 감수성과 정보 활용 역량을 함께 길러 준다. AI와 협력하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책임 있는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준비를 할 수 있다. ■ 성취기준과 연결되는 문제 해결 결국 교실의 중심은 변하지 않는다. 수업의 본질은 언제나 성취기준 달성이며, AI는 이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더욱 효과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동반자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기준으로 문제 해결 중심 수업을 설계하고 AI를 적절히 접목할 때, 학생들은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협력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자가 된다. 앞으로의 교실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결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AI와 함께하는 문제 해결 중심 교실은 학생들에게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한 탐구 경험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협력과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힘을 기르게 된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할 때, 학생들은 단순히 답을 아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는 미래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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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와 문제 해결 중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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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사의 레시피, 융합의 교실을 빚다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나는 늘 ‘무엇을 가르칠까’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배울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의 배움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다. 교사는 더 이상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첫 번째 동료여야 한다. 메이커교육은 그 출발점이었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들며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배움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수업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탐구의 여정이 되었다. 교과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아이들의 상상은 융합 프로젝트 수업으로 확장되었다. 수학 시간에 배운 원기둥과 원뿔이 과학 시간의 구조물 설계로 이어지고, 그 설계는 미술의 디자인 감각과 실과의 제작 기술로 완성된다. 메이커교육이 점화된 곳에서, 융합교육은 그 불꽃이 퍼져나가는 과정이었다. 특히 ‘약통분의 피자가게’ 프로젝트는 그 변화를 상징하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분수 개념을 피자 조각으로 시각화하며 놀이를 통해 학습했다. 단위분수라는 추상적 개념이, 자신이 만든 피자 모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수업은 단순한 수학 활동을 넘어, 창의적 설계와 협업, 공유의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아이들은 게임판의 디자인을 바꾸고 규칙을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 결과물은 학교 행사를 넘어 창의융합한마당에서 공유되었고, 실제 상품화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비록 코로나로 중단되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경험은 지식보다 큰 배움이었다. 나는 이런 수업을 ‘교사의 레시피’라고 부른다. 요리사가 재료의 온도를 손끝으로 느끼듯, 교사는 아이들의 반응으로 수업의 온도를 조절한다. 같은 재료로도 교사마다 다른 맛이 난다. 어떤 교사는 수학의 논리로, 어떤 교사는 예술의 감성으로, 또 다른 교사는 기술의 언어로 아이들의 배움을 빚는다. 중요한 것은 레시피의 재료가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교사의 철학이다. 교사의 철학이 바뀌면 수업의 맛도 달라진다. 완벽한 설계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배움의 향기를 느낄 때, 교실은 살아있는 배움의 공간이 된다. 이런 시도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의 수업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성찰이 일어났다. 실패의 경험조차 소중한 자산이 되었고, 한 명의 실험이 다른 교사의 도전을 이끌었다.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협력과 나눔 속에서 일어난다. 교육의 변화는 제도나 장비보다 먼저, 교사의 철학에서 시작된다.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며 나는 이 철학을 구체화하고자 했다. 메이커교육은 장비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문을 여는 철학이다. 교사가 조금의 용기를 내어 시작할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서가 되고 싶었다. 교사의 작은 시도가 아이들의 큰 변화를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교사가 한 걸음만 내딛으면, 아이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창의성과 협력, 그리고 공감이다. 그러나 그 역량을 길러주는 힘은 여전히 사람에게, 바로 교사에게 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교실로 들어오고 있지만, 아이의 눈빛을 읽고 배움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은 오직 교사의 몫이다. 교사의 한마디 격려가 아이의 도전이 되고, 교사의 시도가 교육의 혁신이 된다.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한 걸음이 아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그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미래는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 교사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교사의 레시피로 피어나는 융합의 교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자라고 있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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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사의 레시피, 융합의 교실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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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교의 자유, 생명평화 문화의 확산이다
- [교육연합신문=김대선 기고]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 민족적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정의로운 전쟁”이라 부르지만,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성과 생명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종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종교인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 종교의 본질은 생명과 평화에 있다 종교는 본래 생명 존중과 평화를 지향하지만, 역사 속에서 종종 교리의 차이를 내세워 배척과 혐오,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종교인들은 다른 길을 선택해 왔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공존의 길을 걸어왔다.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한국 종교계는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 다른 교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돕고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의 과제를 향해 함께 나아간 것이다. 이는 종교 간 연대가 낳은 아름다운 결실이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생명평화 실천의 구체적 힘이라 할 수 있다. ■ 종교의 자유, 평화공존의 토대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자유는 단지 신앙 선택의 자유를 넘어 종교 간 평등, 상호 존중, 그리고 종교와 공공선의 조화를 포함한다. 종교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때, 종교는 사회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통합과 화해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종교인연대(URI-Korea)는 1999년 5월 15일 창립됐다. “종교로 인한 폭력을 종식시키고, 지구와 모든 생명을 위한 평화와 정의, 치유의 문화를 조성한다”는 선언 아래, 25년간 종교 간 협력과 사회적 실천을 이어왔다. 현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이 함께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종교 연대의 모델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론에 따르면, 신뢰와 네트워크는 사회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한국종교인연대의 활동은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 간 신뢰와 네트워크를 형성해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 생명평화, 종교의 구체적 실천 한국종교인연대는 지난 25년간 시대정신을 반영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매년 4~5회, 지금까지 126차례의 ‘평화포럼’을 개최하며 종교 간 대화의 장을 열어왔다. 또한 2021년 3월 25일을 ‘생명존중의 날’로 제정하고, 자살 예방과 생명살리기 운동을 펼쳐왔다. 2024년에는 제1회 생명존중상을 제정해 생명존중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는 종교가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신앙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남북 인도적 지원과 평화운동,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역시 종교의 공공적 책임을 구현하는 실천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종교계가 보여준 꾸준한 화해 노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밑거름이 돼왔다. ■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 종교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도 없다(No peace among the nations without peace among the religions)”고 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갈등의 시대에 주는 뼈아픈 경고이자, 평화를 향한 가장 근본적인 제안이다. 한국종교인연대의 25년은 바로 이 명제를 실천으로 입증한 시간이었다. 종교 간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다른 나라의 현실과 달리, 한국은 종교의 자유와 연대를 바탕으로 평화적 공존의 모델을 만들어왔다. 지금 인류는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인구 소멸, 팬데믹, 불평등 심화 등 전 지구적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느 한 종교나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초국가적·초종교적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 평화는 생명평화에서 출발하며, 생명평화는 종교가 본래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때 가능하다. ■ 세계와 함께 걷는 생명평화의 길 앞으로 한국종교인연대는 국내 7대 종단을 넘어 이슬람교, 정교회,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등 다양한 세계 종교와의 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생명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공존을 위한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생명평화, 정의, 치유의 문화는 종교의 본질적 사명이다. 종교는 이를 단지 선언적 언어로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각 종단과 종교인은 삶의 현장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의무가 있다. 한국종교인연대의 25년은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평화 구축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였다. 앞으로도 종교 간 대화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가 함께 걸어가는 생명평화의 길을 열어가겠다. 종교는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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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교의 자유, 생명평화 문화의 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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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해외취업의 꿈’이 덫이 되는 순간
-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최근 캄보디아 현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강제노역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20~30대 청년층으로, SNS나 온라인 구직사이트를 통해 “고액 아르바이트”, “해외 콜센터 정규직 채용” 등의 문구를 보고 현지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압수당하고, 숙소에 감금된 채하루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 한국인을 속이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전락했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폭력과 감시, 협박이 일상인 감금형 콜센터였다. 탈출을 시도하면 폭행을 당하고, 일부는 몸값을 요구받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해외취업의 꿈’이 순식간에 지옥의 문으로 바뀌는 현실, 그곳이 바로 캄보디아다. 특히, 이 범죄의 핵심 연결망은 텔레그램이다. 모집부터 이동, 통제, 지시까지 모든 과정이 텔레그램 비밀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 익명성과 암호화 기능을 앞세운 이 앱은 범죄조직에게 완벽한 은신처가 된다.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를 유인하고, 명령을 내리고, 송금 수단과 계좌를 공유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낼 때도 텔레그램이 사용된다. 캄보디아·미얀마·라오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단순한 전화사기를 넘어선 국제 범죄 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이들은 인신매매, 감금, 폭력, 불법 송금, 암호화폐 자금세탁까지 모두 하나의 체계로 엮어 운영한다. 국경을 넘는 범죄이기에 수사망을 피하기 쉽고, 피해자 구출에는 현지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의 출발점이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과 생활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500만 원’, ‘숙식 제공’, ‘합법 비자’라는 말 한마디가 절박한 이들에게는 구원의 줄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끝에는 자유도, 인권도, 희망도 없다. 오로지 범죄조직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버려지는 젊은 노동의 잔혹한 착취 구조만이 남는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단순한 ‘해외 보이스피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건 명백한 현대판 노예시장이자,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디지털 인신매매다. 정부는 보다 강력한 외교·수사 공조체계를 가동해야 하며, 특히 텔레그램 등 익명 플랫폼을 이용한 유인·지시 행위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가 시급하다. 한 번의 클릭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그 클릭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나 자신과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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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해외취업의 꿈’이 덫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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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성;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중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대의 하나라 때,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왔다. 우임금은 그의 아들 백계(伯啓)를 보냈는데,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부하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공격하자고 했는데, 백계가 진정시킨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군사가 그들보다 많고, 진지도 더 큰데, 우리가 졌다. 이것은 분명히 내 덕이 그만 못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기술이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내 잘못을 고쳐 나가겠다.” 이때부터 백계는 일찍 일어나 근무 태도를 바꾸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고, 덕이 높은 사람을 받들었다. 이렇게 하며 1년을 보내자 유호씨가 스스로 와서 투항했다. 『論語』에서 曾子가 매일 세 가지 질문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吾日三省吾身)을 실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반성으로만 발전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계는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는가?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진실한 반성을 했기 때문이다. 반성은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백계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반성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지식은 시대의 문제점, 병, 불편한 점을 치료한 결과들이 지적인 장치로 체계화된 것이다. 따라서 지식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원래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는 고뇌와 각성의 태도를 지닌다.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기에 헌신하면 지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적이지 못하다. 시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적(公的)이다. 따라서 지식인은 윤리적이고 공적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은 지식인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업보를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의에 저항하는 힘도 없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찾는 탐욕에 빠져 있다. 그들이 기득권을 만들고 유지하는 한, 우리의 희망은 달성되기 어렵다.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혁명이 필요하다. 교육은 모든 문제로 귀결한다. 교육의 본바탕을 회복하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 배가 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이 아무리 제 자리를 잡아도 현실이 교육의 길을 반영해 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질서를 잡아주어야 한다. 특히 ‘말의 질서’가 없는 대표적인 모습이 정치인에게서 보여진다.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현충원이다. 어떤 이는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서도 참배할 대통령과 참배하지 않을 대통령을 구분하여, 특정 대통령 묘소에는 가지 않는다. 이게 통치자의 모습인가? 현충원 참배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갔다는 것인가?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아무리 사람을 길러도 보이는 현실과의 부조화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이 ‘두 국민 국가’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정치인의 민낯인가? 많은 분들이 ‘정치가 실패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이건, 교육의 실패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없다. 국가를 움직이는 두 톱니바퀴 중에 하나면 얼마나 중요한 건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정치’, ‘정치인’에게만 관심을 쏟고 ‘교육’에는 무관심한 우리 국민 모두의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글자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찰은 새로워지는 일입니다.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꾼 인물은 탕(湯) 임금이다. 3600년 전, 그는 폭군이었던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을 쳐부수고 상(商: 일명 殷)나라를 세워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리를 규합하거나 군대를 양성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놀랍게도 날마다 세수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이었다. ‘날마다 새로워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건만 똑같은 일로 매일 매일을 부딪히다 보니 힘들다가 화도 나고 ‘다 그만둬 버리자’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하지만 삼일 후에 다시 작심삼일을 한다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어져 꾸준히 지속할 수만 있다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진실로 날마다 새롭게 하자. 어제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새로움을 즐기는 ‘내’가 되자. 퇴계 이황 선생은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하였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설사로 인해 방 안의 요강에서 용변을 보면서, 윗목 한쪽에 놓여있던 분매(盆梅)를 다른 방으로 옮기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매화 형에게 불결할 터이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는 역시 부단한 수행 속에서 순결해진 생명 감각으로 매화와 교감하는 한 단면을 영상처럼 보여주지 않는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면서 몸을 청결하게 관리한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몸매를 꾸미는 데 갖가지로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처럼 육체적인 생명에는 노력과 정성을 다하면서도, 정작 마음을 곱게 가꾸는 정신 생명의 수양은 소홀히 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오히려 정신 생명의 향상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강한 종도 우수한 종도 아닌 변화하는 종”이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지구상에 살아남는 종은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한 자라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진화를 거듭한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 사회에서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개인이나 조직에서 근간을 이루는 요소인 진화의 핵심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혁신의 힘이며 이는 스스로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워지는 일을 하는 것은 생존의 터전인 세계가 계속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옛 세포가 새 세포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병들거나 죽는다. 세계가 변화하는 것에 따라서 이념이나 가치관도 바뀌지 않으면, 그 이념, 가치관, 세계관의 주인도 도태된다. 바보는 과거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멈춰 서서, 가는 세상 탓, 남 탓만 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인가? 수주대토(守株待兎)는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 않을 일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다. 이 표현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한 농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농부는 우연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토끼를 발견하고, 다시 그런 행운이 오기를 바라며 그루터기를 지키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토끼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교훈으로 사용된다. 우리말과 우리글 공부에서도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의 방법으로 현재를 풀려고 하면 ‘守株待兎’한 농부처럼 된다. 그런데 바보들은 언제나 다른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계속 같은 방법을 쓴다. 한국어는 고유어(순수 우리말), 한자어, 외래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컨대 ‘찬물’과 ‘헤엄’은 순수 우리말이고 ‘냉수’와 ‘수영’은 한자어이며, ‘버스’ ‘컴퓨터’처럼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어도 있고 ‘버섯 피자’와 ‘교통카드’ 같이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혼종어도 있다. 국가의 3요소 하면 국민, 주권, 영토를 이야기한다. 이 말은 국가라는 의미는 이 3요소 중에서 하나라도 없으면 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자의 3요소는 허신이 AD 100년에 모양, 음(소리), 뜻으로 규정하였다. 예를 들어 日(해 일)이라는 한자를 보면 모양(日), 뜻(해), 소리(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천자문 식으로 한자 공부를 했다. 따라서 모양만을 익히려고 무조건 읽고 쓰는 것을 반복했다.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뜻을 표현하는데 첫 번째 우선은 소리이고, 다음이 모양(문자)이다. 또한 소리는 뜻과 모양을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인 것이다. ‘해’를 우리는 ‘일’이라고 읽고 배우는데, 일이라는 소리(음가)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모양을 익히는 학습에서 벗어나 뜻과 소리에 눈을 돌리게 되면 뜻밖에도 우리말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日’은 ‘해 일’로 풀이하는데, 이것은 모양과 의미를 고려한 것으로 ‘일’이라는 소리의 의미가 생략된 풀이다. 그러다 보니 ‘日’의 ‘해’가 어떤 해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은 ‘일찍, 일어나다, 일하다, 일해라’ 등으로 풀이한다. 일찍은 日直에서 유래한다. 이제는 한자를 ‘하늘 천’, ‘따 지’식으로 무조건 외우지 말고 ‘하늘을 왜 천이라 할까?’, ‘땅을 왜 지라고 할까?’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공부로 바꾸어야 한다. 한자를 이렇게 보기 시작하는 순간 한자는 음을 중심으로 엄정한 체계와 질서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天’의 처음 모양을 알고, ‘하늘’을 왜 ‘천’이라고 하는지 우리말을 알아야 한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자 역시 음(소리)이 생명이며 한자의 가치와 의미는 음(소리)에 있다. ‘한글은 우리 글자, 한자는 중국 글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우리 글자인 한글을 두고 한자를 배우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한자와 한글을 잘 알지 못해서 비롯된 편견이며 오해다. 한자는 한글의 뜻풀이 사전이다. 한글은 한자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의 결합이 아니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풀이할 수 없다. ‘비’를 왜? ‘우’라고 하지? 이 한마디의 질문, 이런 공부 과정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기르고,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모든 변화는 갈등의 흐름이다. 공부 방법의 갈등을 체험하고 길을 찾는 것부터!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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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성;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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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지연 부산시의원,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 지역의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 [교육연합신문=서지연 기고] 지난 9월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본원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10월 10일), 복구율은 여전히 20%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자원봉사 포털, 민원 서비스, 각종 행정서류 발급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들이 중단된 상태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단순한 화재사고의 복구가 아닌 디지털 재난 상황이다. 우리가 외면해 온 디지털 행정의 구조적 취약성이 폭발한 예견된 재난이며, 이제는 국민을 위해 일하던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간 중대한 사회적 비극이 되었다. 정부는 지금까지 복구율 수치만 발표했을 뿐, 어떤 데이터가 유실되었고 무엇이 복구 불가능한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국민은 자신의 행정 정보가 안전한지조차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한 건물의 화재로 대한민국 전체 행정 시스템이 이토록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 속 우리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국가의 정보 인프라는 이중, 삼중의 백업 체계를 갖추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수사 자료, 안보 정보, 국가 기밀처럼 민감한 정보는 법적으로도 별도 보호 장치가 요구된다. 본 화재로 인해 백업 시스템은 작동했는지, 애초에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부실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최근 'AI 국가'를 선언하며 OpenAI 한국 진출을 환영했지만, 정작 AI가 학습하고 활용해야 할 공공 데이터의 무결성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왜곡되거나 결손된 데이터 위에 구축된 AI 서비스는 국민을 오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허위정보 생성과 여론 조작의 도구가 될 위험마저 있다. 첨단 기술을 논하기 전에 기본 인프라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정보공개청구가 멈췄다. 민원이 처리되지 않는다. 사법 절차에 필요한 수사 자료의 안전성도 불투명하다. 행정이 멈추면 민주주의도 멈춘다. 시민이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정부가 투명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부산의 데이터까지 대전에서 관리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는 중앙 집중형 정보 구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부산만의 통계를 구축하고, 부산 시민의 빅데이터를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여전히 한계투성이다. 대전의 한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부산 시민의 민원도 멈추고, 부산의 자원봉사 기록도 사라지고, 부산 기업의 행정 서류도 발급되지 않는다. 지방자치 30주년의 한계가 여전하다. 데이터 주권은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다. 자치와 분권의 핵심이다. 부산이 스스로 부산 시민의 정보를 관리하고, 부산의 미래를 설계할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위기 대응도 느리고, 지역 맞춤형 정책도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 곳의 재난이 전국적 마비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구조이다. 진정한 자치분권국가로 나아가려면 데이터 인프라부터 분산되고 독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신속하고 투명한 복구작업과 함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 집중은 효율성이라는 미명아래 오히려 국가적 재난을 키우고, 현장의 공무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구조적 취약점이 되었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지방분권에 보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광역 자치단체들이 각자의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상호 백업하는 분산형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곳의 재난이 전국을 마비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이에 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즉각적이고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실된 데이터의 종류와 규모, 복구 가능 여부와 일정, 민감 정보의 보호 현황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기술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 외부 감사가 실시되어야 한다. 백업 시스템 부실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더하여 근본적 시스템 개선을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 분산 저장 및 다중 백업을 의무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정보 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 핵심 인프라에 대한 상시 점검 체계를 확립하고, 디지털 재난 대응 매뉴얼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진정한 지방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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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지연 부산시의원, “지금은 디지털 재난 상황, 지역의 데이터 주권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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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광명 부산시의원, "세븐브릿지 투어를 완주하며"
- [교육연합신문=김광명 기고] 지난 청명한 가을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열린 '2025 세븐브릿지 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국내·외 3000여 명의 라이더들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 저 역시 한 시민이자 시의원으로서 전 구간을 완주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부산을 대표하는 77㎞와 33㎞ 두 개의 코스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벡스코에 집결해 100명 단위로 광안대교로 이동한 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 등 4개의 해상 교량과 부산항, 낙동강 하구,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코스는 그 자체로 부산의 매력을 집약한 여정이었다. 행사 당일 오전에는 주요 도로가 한시적으로 통제되어 안전하게 행사가 진행됐으며, 교통 불편을 기꺼이 감내해 주신 시민들, 그리고 현장에서 안전을 책임져주신 경찰과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헌신 덕분에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세븐브릿지 투어는 단순한 자전거 대회가 아니다. 이는 부산의 풍광과 국제도시로서의 역동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관광 브랜드이자, 자전거라는 친환경 교통수단을 통해 건강한 생활 문화를 확산시키는 소중한 계기다. 동시에 시민이 함께 즐기고 화합하는 진정한 ‘시민축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행사의 의미가 더욱 커지기 위해서는 시민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참가자로 함께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함께 현장에서 응원하거나 자원봉사로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축제를 빛낼 수 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부산시민들께서 함께해 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완주를 통해 한 가지 비전도 떠올렸다. 앞으로 세븐브릿지 투어가 부산을 넘어 국내 타 도시, 더 나아가 해외 원정 행사로 이어진다면, 부산은 세계 속에서 더욱 빛나는 스포츠·관광 허브로 성장할 것이다. 부산은 언제나 도전 속에서 성장해 왔고, 시민이 함께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저 역시 부산시민과 함께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 세계인이 찾는 매력적인 부산을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김광명 부산시의원 ◇ 부경대학교국제대학원 정치언론학과 석사 ◇ 제9대 부산광역시의회 해양도시안정위원회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운영위원회 위원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부위원장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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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광명 부산시의원, "세븐브릿지 투어를 완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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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학생 맞춤형 학습의 동반자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학생들은 AI가 제공하는 학습 자료를 통해 자기 속도에 맞게 공부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배움에 몰입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취기준 달성이 여전히 교육의 핵심이며, AI는 그 목표를 지원하는 강력한 동반자다. AI가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맞춤형 학습이다. 과거에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지는 학생이나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는 학생 모두 같은 교재와 수업 속도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AI는 학습자의 수준을 빠르게 진단하고,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학습 루트를 따라가면서 부담은 줄이고, 성취감은 높인다. 교실 속 격차를 줄이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 습관을 기르게 된다. AI가 제공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검토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습하는 힘을 길러 준다. 교사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에도 AI는 학습의 파트너가 되어 학생 곁에서 끊임없이 돕는다. 물론, 교사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AI가 아무리 정밀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해도 성취기준이라는 나침반을 기준으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AI의 제안이 때로는 과도하거나 적절치 않을 수 있기에 교사는 그 결과를 점검하고 학생의 학습 여정을 조율해야 한다. AI의 활용이 효과적이려면,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과 결합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을 집필하며 이러한 점을 더욱 깊이 고민했다. 책 속에는 AI가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 학습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사례와 함께 담았다. 결국 AI는 교사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사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는 학습 동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다만 AI를 통한 맞춤형 학습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AI의 답변은 데이터 편향이나 오류를 포함할 수 있으며 학생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잘못된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AI가 말해 준 답이 정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교사와 친구들과 토론하며 답을 다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와 학습 윤리다. 앞으로의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가 아니다.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AI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AI를 학생 맞춤형 학습에 적절히 접목시킬 때, 학생들은 격차를 줄이고 자기주도적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AI는 교실에서 새로운 주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교사의 효과적인 설계와 만나는 그 지점에서, AI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취기준에 도달하도록 돕는 든든한 학습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어떻게 펼쳐낼지는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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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학생 맞춤형 학습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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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배움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처음 3D프린터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도전하는 것은 자기 이름표다. 단순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표를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은 크다. 학교 교표를 출력해 상징색으로 색칠하며 학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도 좋은 계기가 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작은 경험에서 출발한 메이킹은 점차 교과와 연결되며 확장된다. 수학의 입체도형 단원에서는 원기둥, 원뿔, 구를 활용한 구조물을 설계하고, 모둠별 협업을 통해 태양의 고도와 방위를 고려한 집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교과와 연계된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지식을 단순히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메이커교육의 과정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손님이다. 종이, 나무, 디지털 도구 등 무엇을 활용하든 예상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출력이 잘 되지 않거나 모델링이 무너지는 경우는 교사인 나조차 매번 겪는다. 그러나 실패는 낙담이 아니라 학습의 일부다. 아이들은 수학 보드게임 「약통분의 피자가게」를 만들면서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단위분수 개념을 피자 모형으로 구현한 이 게임은, 처음에는 단순한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했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갔다. 실패 없는 성공보다, 수정을 반복하며 얻은 성취가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단순한 교구 제작을 넘어, 학습과 놀이가 결합된 창의적 산물이 되었다. 이 보드게임은 학교 축제나 창의융합한마당 행사에서 공유되었고, 실제 상품화까지 추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계약은 무산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생각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메이커교육의 또 다른 힘은 바로 협력과 나눔이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배웠다. 6학년 아이들과 진행한 ‘각기둥과 각뿔로 미래도시 건설하기’ 프로젝트는 100%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팀별 협업 공간을 공유 링크로 열고,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함께 모델링을 완성했다. 이 수업은 부산시교육청 수학과 대표 블렌디드 러닝 선도 사례로 기록되었다. 최근에는 ‘화성 거주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업해 모델을 완성한 뒤 실제 프린팅까지 진행했다. 그 결과물을 박람회에서 함께 전시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넘어 서로의 상상력을 나누고 연결하는 진정한 공유의 기쁨을 맛보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학생이 있다. 새 학급 명단에서 늘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표시되던 아이였다. 수업 중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뜯어내며 부정적인 지적을 자주 받곤 했다. 그러나 메이커교육 속에서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3D모델링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친구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프로젝트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내며 모둠의 중심 역할을 했고, 학급 분위기에도 긍정적 변화를 불러왔다. 결국 그는 발명영재 과정에 진학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한 아이의 가능성을 깨우는 힘, 그것이 메이커교육의 진정한 가치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러한 현장의 경험을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담고자 했다. 이름표 출력처럼 단순한 활동에서 출발해 교과 연계 프로젝트, 협업과 공유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단계적 흐름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교사가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한 이유는, 교사의 작은 용기가 아이들의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아이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메이커교육은 기술의 습득을 넘어,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며 협력과 나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놀이와 배움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이들은 창의적 시민으로 성장한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나누고, 공유하며 만들어가는 작은 발걸음이 곧 미래를 바꾸는 큰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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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만드는 즐거움, 나누는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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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드는 교육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태어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인이 생겨난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교육이 기초․기본이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배워서 더 나아진 사람들로 채워지는 나라는 부강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갈수록 허약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국가는 정치와 교육이라는 매커니즘으로 돌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이 국가의 기초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메시지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난 다음에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 而後有眞知)”라는 莊子의 가르침은 사람다움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의 기조를 강조한 것이다. 우리도 철학이 중심 학문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철학, 인문학 중심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에서 말이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교육의 핵심 개념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나라의 행태를 보면서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느낌은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라는 생각이다. 외국의 제도를 들여올 때에도 우리의 형편을 따져서 들여와야 한다.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교육감 직선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폐해가 눈덩이처럼 쌓이는데도 고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일까?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가와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재선, 3선 하겠다는 생각만 있고, 높은 권력을 잡아서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 속에는 ‘국민’이라고 쓰고, ‘오직 당선’이라는 말로 읽힌다. 국민은 선거 기간 동안에만 있는 단어라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 ‘국민’하는 정치인들은 ‘말의 질서’도 없다. 이것은 知的 破倫이다. ‘公約’은 ‘空約’이다. 앞으로 선거에는 홍보물에 ‘空約集’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합당한 수고를 하지 않고, 나아지는 일은 없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윤○○ 의원의 ‘국민은 내일, 모레, 1년 후면 또 달라진다.’, 즉 금방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국민’을 욕되게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선거 당시만 잘하면 된다는 인격의 발로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왜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나라가 되었을까?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Émard Sartre, 1905년~1980년)의 철학은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를 때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햄버거를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햄버거를 선택했을 때, 햄버거가 너무 기름지고 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선택은 자유롭지만,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타인과의 관계”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구가 슬퍼할 때 그 친구를 도와주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도 자유롭지만 책임이 따른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자유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더 의미가 있다.”고 말한 의미를 우리는 곱씹어야 한다. 우리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용어는 성찰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병(病)과 문제점, 그리고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면 현장을 보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과 지식에 의해서 살피거나 외국의 사례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는 어른들의 토론이 생중계되기도 한다. 우리와 외국은 세계가 다르다. 다름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해야 할 일인가? 우리의 운명은 ‘생각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높고, 가장 치명적인,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가 존속하기 어려운 그런 문제와의 투쟁으로 나온다. 즉 추상 능력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남들이 만들 때는 머릿속에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런데 따라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이 매커니즘(어떤 대상의 작동 원리나 구조)은 경험하지 못한다. 그냥 구체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받아서 쓴다. 그러니까 보이고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지고 만들어지는 것을 만들어내는 원리적인 것은 경험되지 않는다. 힘은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여기에 우리 교육의 함정이 들어 있다. 일일삼성(一日三省) 혹은 삼성오신(三省吾身)은 하루에 세 가지 일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맹자로 이어주는 제자인 증자(曾子: BC 506∼BC 436)의 말이다.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증자는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실하지 않았는지, 벗과 함께 사귀는데 신의를 잃지 않았는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했다. 이 말씀은 《논어》(학이편)의 첫 단락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랴.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느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라는 말을 재해석하고 확장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일상에서의 수양이고, 개인의 수양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가 여기에서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유학, 유교, 유도’(儒學, 儒敎, 儒道)가 고리타분하고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문명화된 현대인이 이 정도의 자기 관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이 고전을 많이 가까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니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곱씹어 보는 일은 바래서는 안 되는 일일까? 국민의힘 남양주 당협위원장이 대중 앞에서 ‘정동영, 개○○’라는 표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도자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을 나라의 병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어》의 가르침이 낡고 유효기간이 상실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이 그만큼 비천(卑賤)해짐으로써 그것이 본래의 위치보다 더 ‘고원’(高遠)해지고, 그것을 현대인은 이솝의 신포도처럼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다. 숟가락 드는 법부터 밥 먹는 것도 배워야 한다. 말하는 것도 배운다. 걷는 것도 배운다. 모든 과정이 배우는 과정이다. 배우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삶은 배움이고 앎의 운동이다. 즉 생명이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왜 배우는가? 자기한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에게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춰가는 과정을 말한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갖춰지지 않은 것을 갖추려고 하는가? 왜 그런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들이다. 세상의 문제를 치료하고 풀기 때문에 공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란? 시대를 아파하고, 느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치료하고 시대도 치료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을 ‘인재’라고 하는 것이다. 교육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너는 과연 누구냐?’,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물음을 교육과정에 편성하는 일보다는 선거 주민을 만나는 것이 더 급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 ‘문해력’의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문해력이 급선무라고 떠드는 사람만 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나서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있다. 나만 너무 예민한 것일까?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명언이 귓전을 맴돈다. 이 말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는 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를 지닌 인재를 키워가야 할 것 아닌가?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깊이 있는 자기 탐구를 통해 지혜를 얻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그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의 철학은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추구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찰’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들어보면 ‘성찰’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성찰이 무엇이며, 자신은 어떻게 하였는데,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지는 자기를 발견하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길은 없는지? 알고도 안 하는지? 못 하는지?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소통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을 찾는 길을 연구하는 시간은 필요 없는 것일까? 물음은 제대로 된 나라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교육이 국가다’라는 비전을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물음으로 바꾸는 사유가 필요하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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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드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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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도구, 학습의 날개가 되다
- [교육연합신문=최일훈 기고] 오늘날 교실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칠판과 교과서가 중심이던 수업은 이제 인공지능, 생성형 AI, 3D 프린터와 같은 디지털 도구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교구’의 차원을 넘어 교실의 문화를 바꾸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은, 디지털이 수업의 본질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업의 본질은 언제나 성취기준 달성에 있으며, 디지털 도구는 그 목표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하는 강력한 ‘날개’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놀랍다. 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는 수준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형 학습 경로를 제시한다. 덕분에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던 학생, 반대로 너무 쉬워 흥미를 잃던 학생 모두 자기 맞춤형 학습을 이어갈 수 있다. 생성형 AI는 학생들의 질문에 빠르게 대응하며 탐구의 폭을 넓혀준다. 학생들은 단순히 답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설계하고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한 단계 더 깊은 사고로 나아간다. 3D 프린터는 상상을 눈앞의 실물로 구현하며 배움을 지식 습득 이상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아이들은 놀이와 도전이 결합된 활동 속에서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친구들과 협력하며 학습을 즐긴다. 제가 집필한 『디지털 미래 영재학교 인공지능반·생성형AI반·3D프린트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교사들이 디지털 도구 활용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잘 모르면 학생들에게 해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금세 자기 생각을 구현해내며, 오히려 교사보다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지식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도전하려는 교사의 용기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디지털 도구 활용에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과제도 따른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편향과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며, 무비판적 수용은 학습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도구의 오·남용은 학습 태도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디지털의 가치를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과 윤리적 지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된다. 학생들이 연령에 맞는 방식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정직한 태도로 기술을 활용할 때 비로소 디지털은 학습의 자산이 된다. 교사의 지도는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결국 수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교사의 설계, 학생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성취기준 달성이 교육의 중심이다. 다만 디지털 도구는 그 과정을 더 쉽고, 더 즐겁고,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앞으로 교실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이다. 교사가 성취기준을 중심에 두고 올바르게 선택하고 활용할 때, 디지털 도구는 학습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고 학생들에게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길러줄 것이다. 기술은 결코 수업의 주인이 아니지만, 수업을 더 멀리 날게 하는 날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날개를 어떻게 펼치느냐는 결국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다. ▣ 최일훈 ◇ 부산 명진초등학교 교사 ◇ 2022 개정교육과정 과학교과서 집필 ◇ 2023 정보(SW,AI) 교육 발전 및 활성화 유공 교육부 장관표창 ◇ 2024~2025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선도학교 주무교사 ◇ 2024 디지털기반 교육혁신 교육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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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 도구, 학습의 날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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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상을 현실로, 교실 속 메이커교육의 힘
- [교육연합신문=김종훈 기고]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CEO들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차고지다. 허름한 차고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스로 만들며, 수많은 실패를 겪었던 경험이 결국 혁신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교실 속 무한상상실이야말로 그 차고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생들이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거듭하며, 협력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발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메이커교육은 몇 해 전 우리 교육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전국의 학교에 무한상상실이 조성되고, 3D프린터를 비롯한 다양한 장비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안전과 건강 문제로 장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먼지를 쌓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메이커교육을 특정 장비 체험으로만 오해하거나, 결과물 중심의 전시 활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메이커교육의 가치는 장비 자체가 아니라, 아이들이 상상을 실현하고 실패와 재도전을 경험하며 배우는 그 과정에 있다. 나는 3D프린터를 ‘성취의 덫’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사실 모델링과 프린팅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교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반 4학년 학생들과 함께 기초 모델링 수업을 진행해 보면,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자기 상상을 입체적인 작품으로 구현한다. “체육보다 3D 모델링 시간이 더 재미있다”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기기로 자기만의 모델링을 이어가며 친구들과 협업하는 모습은 메이커교육이 지닌 힘을 잘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메이킹은 놀이이자 도전이고, 또 하나의 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커교육은 여전히 많은 교사들에게 ‘낯선 영역’이다. 교과와 별개의 특별 활동으로만 생각하거나, 결과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집착해 시도를 꺼린다. 그러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며, 실패 속에서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에 있다. 수학 시간에 보드게임을 만들고, 과학 시간에 친환경 제품을 설계하며, 미술 시간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는 모든 활동이 메이커교육이다. 교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시도를 열어주면, 교실은 순식간에 혁신의 차고지로 바뀐다. 나는 『디지털미래영재학교 3D프린터반 1』을 집필하면서 이 지점을 가장 고민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장벽을 낮추기 위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3D 모델링과 프린팅은 결코 거창한 전공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다. 기본적인 안내만으로도 학생들은 곧바로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교사가 부담 없이 수업에 도입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교사가 문을 열어주면, 학생들은 이미 그 너머에서 즐겁게 뛰놀 준비가 되어 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단순히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다. 상상을 실현하는 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협력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다. 메이커교육은 바로 이러한 미래 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교육이다. 지금 우리 교실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계 작동법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도하고 부딪히려는 용기다. 무한상상실에서의 작은 시도가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 김종훈 ◇ 부산 명문초등학교 교사 ◇ 2019 STEAM 교육 유공 교육부 장관 표창 ◇ 2019 STEAM 교육 UCC 공모대회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1 인공지능을 이용한 실험 정보 제공 방법 및 이를 이용하는 장치 특허 등록 ◇ 2023 교육부지정 지능형 과학실 운영 유공 최우수 장관상 수상 ◇ 2024 올해의 과학교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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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상을 현실로, 교실 속 메이커교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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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지식이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 머물고,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면서 객관적인 세계와 직접 접촉하지 못하고, 항상 가치와 이념을 매개로 관계하게 되는데, 세계와 관계할 때 사용하는 자신만의 특정한 가치론적 규정을 莊子는 ‘成心’이라고 표현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정해진 마음 즉 편견을 스승처럼 받드는데”, 그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큰 오류로서 ‘세계의 진상과 인간을 크게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자에게 마음 쓰는 존재다. 인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공감 능력을 타고난다. 타자를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고 서로 협력하는 탁월한 공감력 없이 인류의 집단 성취인 문명은 불가능했다. 요즘 이런 생각에 머문다. 열심히 뭘 하긴 하는데, 가슴 한구석에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해야 한다고 동서양 막론하고 성현들은 말한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게 맞아, 그렇게 해야지.’라고 주먹을 불끈 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한 후배에게 이런 넋두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 같네.’라고 하니까 ‘형님, 그럼 말씀 하지 마세요. 잘 살아왔고, 잘 살고 계시는 겁니다.’라는 답변에 약간의 치유를 받았지만, 도로아미타불,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이 요즈음 나를 휘감는다. ‘내 생각’과 내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어리석고 밉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시작도 결국에는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에 귀결된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배움의 장이다. 왜 그런가? 알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배워야만 살 수가 있다. 그 아는 만큼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을 또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앎과 생명은 분리되지 않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주 거창한 질문인 것 같지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생명은 앎을 향한 운동이다. 이것 포기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버리면 소외의 삶, 인생 자체가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동안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붙들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요즘 남학생들도 이마에 여드름만 좀 나도 학교가 아니라 마사지 숍을 간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시대’가 된 것이다. 자기를 위한 투자, 자기 계발,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자기를 위한 게 아니라는 거, 정말 헌신적인 삶인 것 같다. ‘헌신적’이란? 자기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직 타인을 위한 헌신이라는 말이다. 왜 이렇게 남을 위해 애를 쓰는 걸까? 나한테 이로운 건 별로 없고, 오로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내 삶이 그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정 욕망이라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지수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언어가 귀에 못이 박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욕망과의 거리 두기가 더 중요한 시대는 아닌가? 『東醫寶鑑』을 배우면서 몸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의 리듬을 잘 타려면 마음을 제어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의 감정, 즉 칠정은 항상 널뛰기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일상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자기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사춘기에나 하는 짓인데, 나는 평생을 사춘기로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사람의 감정은 원숭이 같다고 한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원숭이한테 가장 어려운 일이 앉아서 명상하는 일이라고 한다. 『西遊記』를 보면, 손오공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딱 한 가지,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것만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가가 내 일생, 그리고 내가 맺는 관계를 결정하게 되는 거다. 감정은 훈련을 통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지,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나를 제멋대로 끌고 다니게 된다. 『東醫寶鑑』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데, 도교는 주로 단전호흡을 통한 정기신(精氣神)의 순환을 통한 양생의 기예를 펼치고 있다. 유학은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기준이다. 이 오상에 맞춰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제도화되고 예법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누구든 다 인의예지신을 지켜야 한다. 지키면 군자, 못 지키면 소인이 되는 거다. 왜 지키지 못할까?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수신제가(修身齊家)는 물론이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불가능하다고 성현들은 말한다. 동양에서 고대의 지혜라고 하면 유교, 불교, 도교를 말할 수 있다. 중화문명에서 유교와 도교가 발달했고, 나중에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삼교가 서로 혼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공부할 때, 삼교회통(三敎會通)을 중시했다. 지금도 이 정도의 기본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인류 지성사의 기초․기본이기 때문이다. 『논어』 외우고, 『불경』 외우고, 『동의보감』도 외우면 평생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권위자가 아니어서 그럴까? 고전은 다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지혜란 본디 중생과 만물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나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반드시 해야 하는 소명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매한 경전일수록 일용할 양식으로 써야 하다. 고전을 아득한 시공에 모셔두기만 하면 안 된다. 가장 고귀한 것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듯이,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빛이고 공기고 물인 것이다. 빛과 공기, 물을 이해한 다음에 사는 게 아니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일단 암송한 다음 계속 되새겨야 한다. 자기 몸에 딱 붙여야 한다. 장자(莊子)의 천도(天道)편에 나오는 제(齊)나라 15대 왕 환공(桓公)과 수레바퀴 깎는 장인 윤편(輪扁) 사이의 이야기다.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윤편은 그 앞 정원에서 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는 망치와 끌을 내려놓고 대청으로 올라와 환공에게 물었다. “외람되오나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을 기록한 것입니까?” “옛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해서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감히 바퀴를 만드는 자가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내가 납득하도록 설명하면 모를까 아니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윤편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퀴의 구멍을 깎을 때 느슨하게 하면 헐렁해서 빠지고, 빠듯하게 하면 빡빡해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것은 손에 익고 마음이 그에 호응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비밀이 거기에는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고, 아들 역시 저에게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저는 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과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그런즉 폐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繫辭傳上篇』12-2장에 ‘書不盡言(서부진언), 言不盡意(언부진의)’라는 말이 있다. 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가슴 속의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 “조선에는 공자가 들어오면 왜 공자의 조선이 되려고 하지? 조선의 공자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가?”라는 조선 말 신채호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새겨보자. 『般若心經』에서 관세음의 ‘觀’은 ‘본다.’보다도 ‘보여준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보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11면의 얼굴을 지닌 보살이 바로 관세음(관자재)보살이라고 한다. 미래에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을 내게 보여준다. 사실을 전한다는 기자는 많아도 이상호 기자처럼 세상의 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숨겨진 소리, 보통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안 들리는 소리, 그 소리를 찾아 나선다. 기자는 모름지기 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그토록 용감하게 자신을 현장에 던지고 사는 기자는 많지 않다. 세월호 속에 사라진 슬픈 소리도 이상호의 대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호는 그러한 삶의 자세 때문에 본인이 항상 아프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같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상호를 박해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수없이 고소를 당하면서 얼마나 깊은 시련을 겪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제야 저도 철이 드는 걸까? 옛말에 ‘생긴 대로 논다, 산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心經』을 만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더 생각하고, 타인의 苦厄을 동감하며, 진리에 대하여 개방적 자세를 유지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야 살아가야 할 소명을 더 생각하고 생각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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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익히고 되새김질하는 고전의 밥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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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 [교육연합신문=김수랑 기고]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교육 현장은 ‘AI 보편교육’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교육부 역시 202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초·중·고 전 학년에 AI 및 소프트웨어(SW) 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학생이 디지털 소양을 갖추도록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다소 다르다. “시간은 늘었지만, 학생 수준차가 너무 크다”, “블록코딩만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 연결이 안 된다”, “코딩 문법에 막혀 창의적인 시도를 못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AI 보편교육이 ‘AI 사용법 익히기’ 수준에 머물 위험이 크다. AI 보편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학생 모두가 디지털 소양을 갖추고, AI 시대에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학생들의 수준 차이가 크고, 블록코딩으로는 실생활 문제 해결과의 연결이 부족하며, 코딩 문법 학습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창의적인 시도가 제한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소프트파워가 개발한 ‘스마트메이커 AI+’는 국산 교육용 노코드 플랫폼으로서, 순수 한글 기반에 완전 노코드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문법 학습 없이도 앱, 웹, AI 콘텐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으며, ChatGPT, Gemini,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등 다양한 AI 서비스와도 연동된다. 교과 프로젝트에 즉시 적용 가능한 것이 큰 강점이다. 이미 전국 72개 대학과 1,300여 개 초·중·고교에서 스마트메이커 AI+를 활용하고 있다. 정규 수업뿐 아니라 자유학기제, 창의융합 프로젝트, 방과 후 수업 등 다양한 교육 활동에 적용되며, 교사 연수 역시 2~3일이면 충분해 프로그래밍 비전공 교사도 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장에서의 적용 방안은 명확하다. 정규 수업에 통합하고 자유학기제와 정보 과목 실습에 활용한다. 방과 후 활동과 동아리 운영에 투입하며, AI·데이터 활용 프로젝트에도 적극 적용한다. 교육청 주관 공모전과 캠프 프로그램과도 연계할 수 있다. 기대 효과도 크다. 학생들 간 수업 격차를 해소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실생활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산출물을 제작하며, 교사의 수업 부담을 줄인다. 예측 불가능한 오류나 문법 문제 없이 수업을 운영할 수 있어, 농산어촌과 소규모 학교에서도 동일한 품질의 AI 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 AI 보편교육은 단순한 도구 사용법 교육이 아니다. 학생이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해법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이다. 노코드 솔루션은 이러한 교육 철학을 실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교육청과 학교가 이를 적극 도입하고, 교사 연수와 커리큘럼 개발에 연계한다면 AI 보편교육은 선언적 정책이 아닌 현장 혁신으로 완성될 것이다. ▣ ㈜소프트파워 김수랑 대표 ◇ 現 ㈜소프트파워 대표이사 ◇ SW창의교육연구소 소장 ◇ 슬기로운 코딩 교육 위원장 ◇ 미래부 노코드 기반의 앱만드는 강의 초빙교수 ◇ 삼성전자, 하나카드, 포스코 등 대기업 임직원 대상 DX(Digital Tranceformation) 강의 ◇ 카이스트, 서울대대학원, 연세대 등 다수 대학에 노코드 기반의 앱만들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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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 보편교육, 이제는 ‘노코드’로 학교 현장에서 실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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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오늘 아침에도 내 발걸음은 텃밭을 향한다. 몸은 걷기를 바라고 눈을 텃밭의 실태를 보고자 한다. 그래서 아침 시작을 이렇게 하는 것을 나의 ‘계율’로 삼고 지킨다. 기후 변화가 심하다는 말만으로는 폭염과 폭우의 깊고 큰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타들어 가는 식물의 모습이 폭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산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시민의 복구 모습과 씻겨 내려간 농작물의 모습을 보고, 자식 같은 모습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농민들의 한숨에서 대통령과 지도자, 한 가정의 가장 마음과 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천재지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 험난한 일을 자식에게는 이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논밭을 팔아서까지 자녀들을 유학시겼던 것이리라. 흰 와이셔츠에 번지르르한 양복, 파리도 낙상할 정도의 눈부신 구두를 입은 자식의 모습을 그리며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천재지변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하늘 농사를 시키고 싶지 않았던 조부모님, 부모님 마음에 목이 맨다. 눈물이 맺힌다. 조부모님, 부모님의 뜻은 공부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는 것처럼,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대응을 하고, 상황에 따라 조치를 달리하는 삶의 원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책상만을 잡고 사는 삶에서 지금부터 조금씩 세상일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서 사는 삶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야 공부의 원칙을 깨닫는다. 모든 이론은 현장에서 시작한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의 의미가 부모님, 조부모님의 뜻이었으리라. 그런데 요즈음 뉴스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지도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치가를 만난 듯하여 내가 우주의 운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새롭게 역사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가 정치가가 아닐까? 이런 정치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이런 정치인을 내 시대에 보고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고, 삶을 바꾸는 것은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길을 내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와 민생,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구현하고, 경제와 민생을 다시 일으키고 국민의 평안한 삶을 중심에 두는 길이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가 국민 속으로, 현장 속으로,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시선이 높이가 높지 않고, 함량의 크기가 작고, 사람의 두께가 굵지 않고, 깊이가 깊지 않으면, 권력의 정점에 이루기 위해서 온갖 권력을 동원하여 사생결단으로 투쟁하고,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에만 의지한다. 그것이 소위 적대적 공존이다. 적대적 공존의 폐해는 항상 상대를 제거하려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갈등을 키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유지한다. 요즘 우리 정치인 중에는 나라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려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이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국회의원 자리만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평안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만이 최고의 길이다. 그래서 대정부 질문의 날은 다음 선거를 위한 사생결단의 날이다. 지역 구민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선명성만 부각하고, 논리는 없고, 성깔이 묻어나는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녹음기 질문을 한다. 문장은 반복되면 각인이 더 잘된다. 그래서 노래도 가사를 반복하는 구절이 자주 등장한다.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맞서지 않고, 대신 자신이 스스로 성공했으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정신 승리’인 ‘내로남불’, ‘부정적 사고’ 등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길을 간다. 이것이 아Q들이 걷는 실패의 길이다. ‘하고 싶은 공부’와 ‘해야 하는 공부’가 있으면 둘이 충돌하나요? 하고 싶은 것이 강렬하면 그것을 할 때 다가오는 지루함이나 조급함은 디 극복할 수 있다. 체력을 기르고 싶으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한계의 수고를 견뎌내야 하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야 하는 일은 감내가 된다. 반대로 해야 하는 것만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먼저다. 그래서 자기를 궁금해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를 묻는 태도 있는 상태에서 하는 공부가 좋은 공부다. 그것도 없이 그냥 지식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꿈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꿈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자신을 궁금해하는 물음 던지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최고 권력자만 있었다. 권력의 정점에 이르러 권력을 누리려는 자만 있었다. 거기에 이르러 국민과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할까 하는 꿈이 없었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의 꿈은 없다. 백성을 위해서, 국력을 기르기 위한 일은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은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당선된 뒤로부터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면 일은 수석들에게 맡기고, 개나 끌고 다니고, 좋은 안주 찾아, 좋은 술 찾아, 아첨하는 친구 찾아 비교하고 비난하고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다음에서 다음으로 꿈을 꾸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꿈 교육이 교육에서 일어져야 꿈을 꾸는 지도자,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새로운 질서를 찾아 건너고 건너가는 자인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자는 ‘어떠한 역사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꿈을 꾸는 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쁜 사람을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좋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제는 훌륭한 사람을 훌륭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어야 훌륭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경우 주요한 사안에 대해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그게 좋은가 나쁜가 같은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한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전쟁은 나쁘니까 무조건 피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나요.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전쟁에 관한 온갖 얘기가 오고 가는데, 그 수준이 너무 저열하고 천박해요. 전쟁에 반대하면 ‘종북’이고 찬성하면 ‘전쟁광’이고,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이 지금까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전쟁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알게 되면 좀 더 깊고, 넓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무회의를 국가 경영의 토론 장소로 만들고, 국가 경영의 최고 결정 과정을 진지한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고, 책상에서 만든 국민 정책이 국민들에게 현장 변화를 가져오는 정치를 위해서, 장관이 자신의 정책을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듣고 수정하는 이런 정책을 펴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政治家, 이제까지 보았는가? 보았으면 나에게 말씀해 주소. 대통령은 무엇이 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겸손해도 우러를 수밖에 없는 인물들은 다 직업을 살지 않고 꿈을 살았다. 공자가 곡식의 출납을 맡아보던 위리(委吏)나 가축을 관리하는 승전리(乘田吏)가 되기도 했지만, 공무원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위키백과는 다산 정약용을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 과학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가 문신, 저술가, 시인,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산의 꿈은 “나의 낡은 나라를 새 롭게 하겠다(新我之舊邦)”는 것이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답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는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이미 짜인 판을 벗어나 새로운 판을 짜고, 남이 세운 목표나 모범을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목표와 모범이 될 수 있는 나라. 새로운 국무회의 진행, 통치는 남이 하던 것을 ‘따라 하는’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배 두드리고 행복해하는 ‘요순 시대’를 꿈꿔볼까 하는 고민 속에서 싹이 튼다. 우리나라가 선진 국가가 아직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따라 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의 이유다. 선진국이 되려고 하면 ‘따라 하기’에서 ‘먼저 하기’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앞서면 앞선 문명을 이루고, 앞선 문명을 이루면 앞선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교육이 생각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인재를 기를 것인가?’ ‘인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지식인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늘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 교육의 책임자가 되는 시대를 꿈꾼다. 생각이 물건을 만들고, 제도를 만든다. 하이데거가 ‘인생은 비교와 잡담 속에 망한다.’고 했다. 비교는 나를 잃어버리는 거고, 잡담은 이미 있는 내용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는 거다. 비교와 잡담을 멈추고 자신을 궁금해하는 기본을 묻는 시간을 많이 갖는 교육, 내가 열리고 가정이 열리고, 나라가 열리고. 미래가 열린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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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왜? 우리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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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친구들과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서 식당으로 향하면서 한 친구가 ‘뭘 먹을래?’ ‘오늘은 내가 쏜다.’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다시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뭐, 먹을 거야?’ 귀찮다는 듯이 ‘아무거나 먹어.’라고 한 친구가 말하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아무거나 먹자’라고 합창을 한다. 우리 민족은 ‘獨唱’은 부끄러워서 하지 않으려고 하고, ‘合唱’은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올림픽 축구에서 하는 ‘떼창’이 세계 축구인들로부터 인기를 얻어 ‘k-culture’로 피어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욕과 식욕이 발동되거나 실현될 때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안주, ‘아무거나’를 아시나요?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재 심리상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반응이 직접적으로 바로 나타난다.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이런 반응은 주어진 상황을 자세하게 살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으면 좋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게 귀찮다는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하는 데에는 힘이 들고, 힘이 드니까 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생각은 네가 하고, 나는 그저 따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훌륭한 삶을 보고 따라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태어나서 많은 말 중에서 ‘책 읽어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지 않는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회자되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데 하지 않으니까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서도 한다. 어느 한쪽 면만을 보려 하는 사람은 반쪽 세상을 보는 것이다.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困辱을 치르기도 한다. 상대방 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말을 모르면 ‘적대적 공존’만 가능한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잘 읽어야 한다. 하늘도 사람도 잘 읽어야 한다. 국가 경영자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면 국민들이 사용하는 말과 문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나무를 우리는 죽(竹; 대 죽)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대’라는 말은 무슨 말이고, 죽이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며, 자녀를 낳을 때, 대문에 왜 ‘새끼’를 두르는지? 장례식 때, 상주들은 왜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는 ‘새끼’를 두르는지를 알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겨레가 어떤 가치관으로 말과 문자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고, 민족 공동체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말로는 민심에 부응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 당선이 되면 민심 따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뻔뻔하게 구는 것은 왜일까? 당선되기까지 한 말은 ‘아무 말 대 잔치’ 대회에서 ‘아무거나’ 하는 그런 구태의 모습은 아닐까? 국가의 기둥은 국방과 조세이며, 운영 중심축은 정치와 교육이라고 한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생겨나고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가 횡횡한다. 교육은 ‘어떤 사람을 키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은 신뢰를 잃은 지가 오래며, 교육의 정치화로 ‘교육’에 전념하는 지도자보다는,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표’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에 전심전력하는 교육 행정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해력 신장 연수’ 한두 시간 하고 사진 찍었다고 문해력이 신장되는가? ‘체험 학습’ 한 번 했다고 체험 학습 가기 전과 후가 달라졌는가? 교육은 나라의 뿌리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의 재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지식이 무엇이고 인재란 무엇인지 개념 정의가 학생들의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한, 아무리 ‘창의성’을 강조하는 연수를 한다 해도 공염불이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요즘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보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 편이니까, 다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내 자리를 위해서, 자기의 잘남을 과시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질러버리는 것이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자질이고 품격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물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그 말은 국가의 정체성,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 등을 생각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만이 유능하고 자질 있고 교양 있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자리인가 하는 답답함이 든다. 우리 청소년들과 나라를 위해서는 국민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는 국민의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이제는 국가적인 인재가 국회로 모이는 제도를 생각할 때다. 국민들의 높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든 제도라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 편’인가에 따라 말하는 내용과 태도가 천양지차다. 요즘 국회의원들의 말에 대한 인식은 진짜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전국 대회를 시청하는 것 같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국회의원들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수신(修身)의 첫 번째는 말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왜 몸을 닦는가? 말을 담고 있는 것은 몸이기 때문이다. 말을 들을 때 몸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愛(사랑 애)’라는 글자의 음가는 ‘애’다. ‘아낀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또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고, ‘절약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말은 자신만의 가치에 집착해서 자기 마음대로 마음을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말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후환이 없다. 요즘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결점을 밝히는 것을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흑심을 감추는 교묘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적 태도일 수가 없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왜 저렇게 말을 하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태도를 갖추어야 세계의 주도 국가가 될 수 있다. 주위에서 ‘좋아’,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너는 안 돼’ 등의 말을 많이 본다. 생각이 없는 사람의 자기표현일 뿐이다. ‘남의 말 따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이 말은 철저히 인간 편에서 한 말이다. 강산은 어제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변화를 겪는다. 생각도 변한다.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물건, 제도, 철학은 생각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도는 물건이 생산되어 흐르는 길을 만든다. 그 제도는 생각의 결과다. 공동체의 ‘문제’와 ‘불편함’을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고, 그 문제와 불편함만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인재고 지도자다. 인재는 현재의 다음 단계를 꿈꾸고 거기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道德經』 제5장에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중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多言數窮, 不如守中)가 나오는데, 말(言)은 하나의 체계, 하나의 내용으로 지속된다. 즉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있는 말’만 내뿜어질 뿐, 말을 하면서 말하고 있는 다른 내용을 동시에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전체적인 국면을 말로는 포착할 수가 없고, 그런 의미에서 말은 제한적이고 유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은 얼른 한계를 드러내고 궁색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모두 빠진 말도 자신이 모두 들어 있는 말도 없다. 말은 자신의 한쪽 면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매일 쉼 없이 읽는다. 책도 읽고, 사람도 읽고, 하늘도 읽고, 식물도 읽고, 동물도 읽는다. 즉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자기와 마주치는 모든 세계와 사건을 읽고 또 읽는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읽기’다. ‘오늘 뭐 할까?’,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하고 자신을 읽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학(學)’은 ‘지(知)’여야 하지 않을까? 『論語』「學而」편 제1장, 16장, 그리고 제20편인 「堯曰」편을 보면, ‘知’ 자가 여러 번 나오는데, ‘안다는 것’은 내 안에 담아두려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삶에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論語』를 20편으로 저술한 것도 『周易』20번째의 괘가 風地觀인 것도, ‘천하는 물론 우리가 대하는 사람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백성들의 삶이 어떤 줄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잘 보이는 곳에서 ‘보는 것’ 그것이 觀의 첫 번째 의미이지만, ‘본다.’는 것은 잘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보이다.’라는 수동적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호상적 봄이다. 그래서 ‘본다.’는 말은 ‘읽는다.’는 말을 전제한다. 그래는 ‘안다(知)’는 것은 본 것을 끊임없이 살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지식인에게 중요한 요소는 곰곰이 살피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살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思惟)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사유(思惟)하는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타고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확실하고 영원한 생명의 경탄’이라 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내게 진정 나다워질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라고 했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타고르, 몽테뉴가 한국에 와서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래서 지금도 나훈아는 ‘테스 형’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생각 없이 무조건 따르겠다는 사회적 현상을 절절하게 표현한 ‘무조건’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나 보다. 인생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는, 즉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는 과정이지 않는가?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남이 생각한 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는 한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한국인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던 ‘아무거나’는 왜 변하지 않을까? 인문적 통찰이란 ‘조짐을 읽는 능력’이다. 그 조짐을 알기 위해 옛날부터 ‘점’을 쳤던 것이다. 말은 ‘말’이다. 즉 ‘끝’을 말한다. 말을 잘하면 끝이 좋고, 말을 잘 못하면 ‘끝’이다. ‘아무거나’, ‘아무 말 대 잔치’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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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나요? '아무거나, 아무 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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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時中? ‘만물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산다.’
- [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때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어떠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이 요즘 나를 맴돈다. 나이가 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뭔가 인생을 정리할 때인가?라는. 요즘 폭염으로 만물이 고통을 호소한다. 집 근처 텃밭에 생각이 미쳤다. 식물이 바짝 타들어 가고 있었다. 식물은 움직일 수도 없으니 안타까웠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텃밭의 크기가 작아서 관정 시설도 없다. 이 식물에게 생명수를 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수레에 물통을 싣고 냇가로 가고 오기를 6회를 했다. 옛날 같았으면 ‘왜 이런 고생을 하지?’라고 했을 것은 같은데, 타 들어가는 식물이 나에게 ‘時中을 아는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옛날에 어른들이 하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다.’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후회된 일 중의 하나가 나는 ‘교원 노릇을 제대로 했을까?’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다. 교재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교재를 문자적으로만 익히고, 그것이 사회적인 삶과 결부되어서 숙성되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기만 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말의 기원과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교단에 섰던 것이 너무나 아쉽다. 더 나아가 漢字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 없이 교단에 섰던 것이 후회스럽고, 나와 함께 했던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만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제자들에게도 ‘때’가 있는데, ‘때’를 모르고 ‘때’를 가르친 후회가 엄습한다. 유학의 4대 경서중 하나인 중용(中庸)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에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용은 화살이 과녁에 정확히 꽂힐 때의 적중(的中)과 같이 딱 들어맞음을 의미하는 중(中)과, 떳떳함을 의미하는 용(庸)의 조합으로, 모든 일에 떳떳하게 들어맞는 진리를 뜻한다. 그리고 이 같은 중용의 도(道)를 원리와 상황 등 때에 맞춰 알맞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을 시중(時中)이라 한다. 초등학생 시절, 모내기 철이 되면 농부들이 자신의 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해 크게 싸움박질하는 것을 많이 봤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왜 싸움을 하지? 말로 해야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이제 퇴직을 하고 농사를 짓다 보니, 벼농사는 日照量이 벼 생육과 수확량에 비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역시 ‘때에 맞게 배워야 해’라는 생각이 든다. 孔子의 好學 정신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실감이 난다. 품종에 따라 씨뿌리고 김매고 거두고 저장하는 시기도 다 다르다. 중용 제20장에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혹곤이지지 급기지지일야(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라는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고,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해 알게 되는데 마침내 알았다는 점에서 보면 하나라는 의미다. 공자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요? 술이편에 답이 있다. “나는 나면서부터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이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자왈 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라는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천명을 궁구(窮究)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에 전념하여 50세에 천명을 깨달았습니다. 時習은 時中이어야 한다. 시중은 타이밍(Timing)과 가장 가깝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말이나 행위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런 뜻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그때 그 상황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임(Time) 자체보다 타이밍(Timing)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결국 시중이란 영혼의 민감성이요 정신의 순발력이기에,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지혜이다. 시중은 유학 실천 방법이다. 이는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시중한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라는 대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선비는 고정된 틀에 얽매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항시 겸손한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심오한 학문과 원리를 터득했다 해도 말과 행동이 때에 맞춰 적절히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무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다 간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에 빠지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잘 나가도, 다른 사람이 조금만 앞서도 속이 터지고, 상대를 비난하는 데 모든 것을 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앞선 것이 생기면 우쭐대고 집안 자랑, 동문 자랑 등에 우쭐한다. 동물을 보면 막 태어나서 걷는 송아지도 있고, 1년이 다 되어야 걷는 인간도 있다. 老子 『道德經』 8장에 나오는 말이다. ‘動善時’, ‘動善時’라는 말은 때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청명이 되면 논밭을 갈고 곡우가 되면 씨앗을 뿌려야 된다. 이때에는 군사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모두 때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보자. 자신의 계절이 지나면 그대로 뒤로 하고 다음의 길, 다음의 때로 간다. 자신의 열매를 뒤로 하고 그저 또 다른 길을 갈 뿐이다. 꽃피는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老子는 인간의 길을 자연의 운행 원칙에서 찾았을까? 봄이 봄 자신의 성취와 정당성에 취해 여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봄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그래서 쓰임을 받는 시간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찍 취업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늦은 시기에 직장을 잡는다. 늦공부 터졌다는 말도 한다. 모든 식물이 같은 시기에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햇빛을 더 받기 위한 싸움과 질투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에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사회와 만물의 삶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습관은 時中의 결과다. 시간의 계획적이고 지속적 활용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바로 그 사람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에 관한 책을 썼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정리를 정성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큰 차이를 만드는 지점이다.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은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매일매일 실행하는 즐거움을 얻게 되어 긍정적인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은 습관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아는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이 많으면 습관으로 만들기 어렵다. 습관은 처음에는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해서 몸에 배어야 한다. 습관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서면 뭐가 되었든 따지지 말고 바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 시작이 어렵다. 거창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할 수 있다. ‘습(習)’은 배운 것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행동과 실천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 ‘습’이다. ‘관(慣)’은 생각에 의해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한번 해봤다고 해서 '관'이 되지 않는다. 자는 시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일어나자마자 하는 행동, 책을 읽는 행동, 운동, 글쓰기, 말하는 태도, 인사하는 것 등 인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관'이다. 習慣은 時中의 결과다. 지도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화를 내거나 슬퍼해야 할 때 적절히 슬퍼할 줄 아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한다. 상황(時)은 늘 변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균형 잡힌 최적의 황금률(中)을 찾아내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여기서 중(中)은 정해진 실체가 아니다(中無定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다(隨時而在). 옛 어른들은 ‘사람은 때(時)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늘 때를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자신과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을 만드는가가 핵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분개하면서 정작 자신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봉지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 환경 보존을 외치면서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마구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자제하는 사람도 있다. 주장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각각이 따로 있는 사람도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라지는가? 그 사람만의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바탕이 다른가?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는 말한다. 行己有恥를 가르치는 것이 인간의 출발이고 時中의 결과다. 자기 시간의 적절한 활용이 답이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時中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사람’이,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사람’이 태어난다. ◇ 한자한글연구원장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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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時中? ‘만물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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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질문하는 교실, 세계를 향한 첫걸음
- [교육연합신문=이재웅 기고]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좌동초등학교가 최근 세계적 교육과정인 국제 바칼로레아(IB) 초등 프로그램(PYP) 인증을 공식 획득하며, 대한민국 공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인증은 단순한 학교의 성취를 넘어, 공립학교에서도 세계 수준의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좌동초는 지난 2년간 관심학교 및 후보학교 과정을 거쳐 교사 연수, 커리큘럼 재구성, 학부모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학교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실천해 왔다. IB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글로벌 교육과정으로, 창의적 사고와 탐구 중심 학습, 다문화 감수성을 핵심 가치로 한다. 그간 일부에서는 ‘귀족 교육’으로 여겨졌지만, 좌동초의 도전은 공교육 내에서도 IB가 실현 가능함을 입증한 첫 사례로 주목받는다. 좌동초 교실에서는 "왜요?"라는 학생의 질문이 허용되고, 토론과 사고가 중심이 되는 수업 환경이 조성되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습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학부모 또한 달라진 아이들의 모습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IB는 단지 수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는 교사 연수의 정례화, 학부모 대상 설명회, 서포터즈 활동 등을 통해 가정과 함께하는 교육공동체 모델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좌동초의 성과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탐구 중심 수업을 설계·운영할 수 있는 교사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둘째, 연수비, 평가비용, 자료 개발 등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창의성과 사고력을 중시하는 IB 교육과 입시 중심의 현실 간 괴리를 해소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좌동초의 사례는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벽임을 보여준다. 좌동초의 IB 인증은 한 학교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학교들이 새로운 교육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신호탄이다. 학생의 질문을 소중히 여기는 교사, 변화를 지지하는 학부모,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청의 정책적 지원이 조화를 이룬다면, 대한민국 공교육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정답을 말하는 교육에서 질문을 기르는 교육으로, 성적을 올리는 교육에서 사고를 키우는 교육으로, 경쟁 중심의 구조에서 공동체 속 배움으로 나아가는 전환점. 좌동초의 도전과 성취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미래를 밝히는 이정표다. 이 작은 교실에서 시작된 “왜요?”라는 질문이 더 많은 학교로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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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질문하는 교실, 세계를 향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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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특수학교 개교, 그때의 목발과 여정 - 김미영 부산한솔학교 초대 교장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해마다 6월이 오면, 제 마음속엔 하나의 장면이 조용히 떠오른다. 병원 침대 위에서 바라보던 흐린 창밖 풍경과 제 다리에 채워져 있던 석고 붕대. 그리고 그 이후의 믿기 어려운 여정. 그 모든 시작은 바로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 부산한솔학교의 개교에서 비롯됐다. 2013년 봄, 명지에 문을 연 부산한솔학교는 유치원부터 전공과정까지 갖춘 특수학교였다. 그러나 그 ‘문이 열리기까지’의 시간은, 누군가에겐 설계도에 그려진 건물 하나였을지 모르나, 저에겐 기적을 바느질하듯 하나하나 꿰매며 만든, 눈물과 기도의 시간이었다. 개교 두 달 전, 저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골절했고, 침대에 누운 채로 ‘초대 교장’ 임명장을 받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병실을 박차고 일어나 목발을 짚었다. 누군가 시작해야 할 일이었고, 그 누군가는 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저는 아침 6시면 목발을 짚고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건물은 아직 덜 지어졌고, 담장 하나에도 수많은 허가와 설득이 필요했다. 교직원은 모이지 않았고, 책상 하나도 조달이 늦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교실마다 들어설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입학할 예정인 110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할 80명의 교직원. 저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웠다. 책상 위에 앉을 작은 손, 복도 끝에서 휠체어를 밀고 올 엄마의 손길, 첫인사를 건네며 눈을 피하던 학생의 수줍음까지… 그 모든 것이 제게는 기도로, 사명으로, 힘으로 다가왔다. 개교식 날, 아이들이 무대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스크린에 상영된 준비 과정 영상을 보는 순간, 제 마음이 무너졌다. 흘린 땀이 다 의미 있었음을, 그들이 제게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육이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걸어주는 것임을. 그것이 목발을 짚고라도 제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스스로 작아지는 날도 많다. 그러나 그 시절, 목발을 짚고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의 공기와 아이들의 눈동자 속 따뜻한 희망이 여전히 제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때의 목발과 여정은 제게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두려운 일인가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의 교사들과 아이들이 또 다른 시작의 문 앞에 서 있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는 다시 용기를 내고, 누군가는 함께 손을 잡아 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그날의 교장으로서, 저는 오늘도 그날의 기억을 품은 채,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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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특수학교 개교, 그때의 목발과 여정 - 김미영 부산한솔학교 초대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