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문덕근 기고]

인생이란?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이런 고통과 혼돈의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인류의 고전에 물어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그 해결의 과정에서 “자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먼 산을 보며 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나의 삶과 연결시켜보려눈 노력은 하고 살았을까?
조선시대의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학가였다. 특히 서화에 능했던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대성시켰으며, 예서, 행서의 새로운 전형을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 유배를 포함해 다양한 인생 역정을 겪었던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지정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을 받는 이유도 버림을 받게 되는 이유도 다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세한도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孔子가 춘추 말 전국 시대 초, 새로운 사회 질서를 건립하고자 했을 때, 그 기반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고 할 때, 인간에게 있는 바로 그 이유 내지는 근거가 바로 인(仁)이다. 孔子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신에게 있다고 하는 그 믿음 체계를 벗어나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인간에게서 발견하였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松)와 잣나무(柏) 그림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있다.”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어려운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믿는다. 세한도 왼쪽에는 추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논어의 한 구절이 들어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세상이 추워지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추위와 바람만이 가득할 때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를 깨달을 때쯤은 언제일까?
위기가 닥쳐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정감 많은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의리와 신념을 쉽게 포기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나’를 두고 한 말 같은 생각이 든다. 추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정말 강한 나무인지 알 수 있듯이,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은 그 사람의 정신력과 위기 대응 지수를 알게 해 주는 좋은 기회다.
논어(論語)에서는 군자(君子)를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을’, 君子固窮’으로, 소인(小人)을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 ‘小人窮濫’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진(陳)나라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많은 제자들이 병들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을 때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가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든 셈이다. 공자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고 마는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한도는 君子다운 삶을 버리고 小人輩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질타하는 모습이다. 이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어려움(窮)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궁(窮)한 상황에서 더욱 단단해(固)질 것인가? 아니면 넘쳐(濫)흘러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할 것인가? 자신은 어떠한가?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들은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은가? 그러면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1999년 5월 31일 ‘Time’ 매거진은 ‘It’s True. Asians Can’t Think.’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다. 신밍 셔우라는 기자는 싱가폴 정치인인 키쇼 마부바니가 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1,000년 전 송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서방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시안들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했다.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에게는 먼저 만든 제도, 물건, 생각이 없다. 그 말은 우리가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생각은 가치다. 수준 높은 가치를 가지려면 우리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왜? 그런가? 책 속에는 높고 넓은 가치의 생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가방도 좋지만, 좋은 책을 들고 다니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왜 생각을 하는 나라와 생각을 하지 않는 나라로 나뉘어질까? 또 왜 생각을 하는 사람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갈리는 걸까? 우리는 인간의 노력이 투입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땀과 피가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문명이라는 두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문명사회라고 한다. 따라서 문명사회를 일구어 가는데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 스스로 자기를 움직이고 이해하고 통제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세상이 인위적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세상에 맞추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삶 자체가 인위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다 일부러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왜?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생각의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과 인간이 만들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각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이루어놓은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문화가 주도한다. “K-culture”
모든 삶의 비밀은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에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고궁(固窮)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위기 때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고전은 어떤 것보다 나를 지켜주는 단단한 갑옷이 된다. 고전으로 점철된 자기를 만드는 길은?
당신, 지금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애를 써도 나 한 몸 건사하기도 쉽지 않고, 앞으로도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시대의 흐름에 몸을 채 못 가누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파도가 높을수록 자세를 낮추고 정신을 또렷이 차려야 하는 법, 모든 게 뒤바뀌고 엎어지는 시기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무게 중심이다. 격변의 흐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너무도 소중하다.
이제는 ‘자기로 존재하고 자기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우리’를 강조하는 사회여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새로워지고 새로운 꿈을 가지려면 기존에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자기 것을 다 잃어야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있다. 기존에 있는 것과 불화를 빚지 않고 새로운 전진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는 거다. 자기가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기준이 자기한테 있지 않고 외부에 있으면 안 된다. 자기를 보는 시선이 외부에 있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행복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롭지 않으면 창의적일 수 없게 된다. 자기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내가 주인이고, 자유로움과 차이도 내가 기준이고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 행위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 바람직함에 매몰되지 말고 자기가 바라는 것에 더 집중하고, 해야 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추구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주인으로 사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희망을 만들어내려고 덤비느냐, 덤비지 않느냐다. 단 한 명이라도 정말 진실하게, 정말 가장 높은 지성적 차원에서 역사와 사회를 걱정하고 헌신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주역(周易)에 ‘지중유산(地中有山)’이란 말이 있다. ‘땅속에 산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큰 산을 마음속에 품지 않으면 이념의 노예가 되거나 기준의 노예가 된다. 큰 산 하나를 품고 있으면 꿈을 이루려는 사람이 된다. 남의 위대함에 대해 손뼉 치고 숭배하는 삶은 이제는 접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위대해지는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묻고 결정하는 사람의 삶? 멋지지 않은가?
오늘은 문득 ‘나는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본다. 살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한다.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 앞에서 무너질 때도 많다. 그래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단지 강해지는 게 아니다. 부러지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다. 그보다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보면서, 삶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하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서 자신이 한 답으로 살아가는 삶? 단단해지는 삶이 아닐까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제대로 된 당신을 꿈꾼다.

▣ 문덕근
◇ 한자한글연구원장
◇ 고전연구가
◇ 한자실력급수 사범급(공인)·한자한문지도사 특급(공인)
◇ 교육학박사
◇ 前전남강진교육지원청 교육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