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조만철 기자]

전남 장흥장평중학교(교장 김인순)에서는 올 한해 동안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민이 지킨 나라, 우리가 이끌어갈 나라’ 프로젝트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서울·천안 일대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2박 3일 주제체험학습’을 실시했다.
학생들이 사전 수업으로 탐방지의 독립운동 역사를 탐구하고, 체험학습 현장에서는 모둠별로 나누어 각자 직접 유적지를 체험했다. 돌아와서 사후학습을 통해 각자의 경험과 느낌을 나누어 체험학습을 정리했다.
8월에는 나주에서 열린 ‘길이 길이 흥할 땅, 장흥 역사 알기’ 장흥의 동학농민혁명과 독립운동 특별전에 참여해 장흥의 삶과 독립운동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어 7월부터는 1학년 자유학년제 주제학습인 ‘마을에서 배우다’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우리동네 항일 역사를 찾아서’ 취재 활동을 하고 신문으로 제작했다. 2개월 동안 마을을 찾아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말씀을 직접 녹취했다. 장평면사무소와 장흥문화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마을의 항일운동 흔적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찾았던 내용을 신문으로 엮었다. 9월 17일에는 직접 제작한 신문을 가지고 소감과 의미를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를 가졌다.
장흥장평중은 전교생이 27명 중 1학년이 9명인 산골 작은 학교이다. 농사일로 한창 바쁠 때인데도 불구하고 취재에 응해달라며 떼를 쓰는 학생들의 청을 마을 주민들은 기꺼이 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상다리가 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어서 오너라 ~ ”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선조들을 회상하며 당당하고 자랑스런 역사를 말씀하시는 마을 분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눈만 말똥말똥 땡그렇게 뜨고 기록할지도 모르던 학생 기자들이 몇 차례 마을과 어르신들을 방문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조사할지, 어디로 찾아갈지, 무엇을 질문할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마을 기자로 변해 갔다. “그랑께 동네 사람들이 전부 들고 일어나서 항의를 했제...”
“일제강점기 1921년 6월 초순경에 간바리라고 부르는 일본인 뽕밭에서 구례댁(조씨)이 뽕잎을 따다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있다는데 혹시 아시나요?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항의하던 동네사람들 여럿이 끌려가서 감옥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이 마을에서는 ‘일본인 간바리의 살인사건’으로 부른다던데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여기저기서 할머니들이 앞 다투어 말씀 하셨다.) 시집 와서 우리 시엄씨(시어머니)한테 들었는디 뽕 따러 갔는디 일본놈이 죽여 부렀다고 그라 등마. 아니 그랑께 말이시, 뽕잎 좀 땃다고 사람을 죽이먼 쓰것는가. 그 당시 여그마을과 아랫마을에 조 씨들이 많이 살았제. 사람이 죽었으니 동네가 난리가 났제. 그란디 그 당시는 일본놈들 시상이라 일본 의사가 와서 타살이 아니라 뇌출혈, 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랑께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항의를 했제. 그란디 다 잡어가서 징역을 살리고, 온 동네가 망해부렀어. 지금이라도 이것이 명예회복을 하먼 좋것구만.
“이 마을에 부산면 금자리로 넘어가는 금장재가 있고 금을 많이 채취해서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되었다는 금장골이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일제강점기 때 금싸라기를 많이 채취해서 팔았다고 들었어요.”
“아, 알고 있지.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지만 옛날에는 금장골에 금싸라기를 채취할 때 쓰던 큰 나무 토막들이 많았지. 일본인들도 금싸라기를 가져갔지.
마을 분들의 구술, 당시 판결문을 조사하여 100년 전의 항일 의병 투쟁, 독립운동가 세 분을 만났다
2개월 간 마을 곳곳 어른들의 구술과 역사적 자료를 조사하고 항일운동가 당시 판결문을 찾아 100년 전의 항일 의병 투쟁, 독립운동가 세 분의 역사를 되살리게 좼다.
소감 발표 수업에서, 1학년 문아영 학생은 “우리 고장에는 동학농민혁명 외에는 없는 줄 알았는데, 바로 내 옆 가까운 마을에 의병활동을 했던 분이 계신 줄 몰랐다” 며 만나고 들었던 내용들이 신기하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1학년 권시온 학생은 “82세의 최장석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우리나라를 지키셨는지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진짜로 감사함을 느낀다.” 고 말했다. 신애은 학생은 내 마을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하며 뿌듯해 했다.
발표 수업을 마치고 김인순 교장은 “참으로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역대 여러 학교들 중에서 우리 아이들이 직접 제작한 신문으로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 몇 명이나 될까요!? 동학운동 최후의 격전지인 석대들 전투에 이어 항일 의병 운동이 우리지역 장평에서도 있었던, 숨은 의병들을 찾게 도와주신 장흥문화원과 우리 학생들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이러한 축적된 기록들이 많은 지역민과 아이들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면소재지에 기념실을 마련해 볼 것을 면사무소에 건의해 보겠다고 했다.
살아있는 현장 교육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하지 않는가 싶다. 옛 어른들의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이 살아있는 교육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 이곳 산골마을 작은 학교인 장흥장평중학교에서는 오늘도 학생, 학부모, 마을과 주민, 교사들이 연대하여 삶의 터전에서 살아있는 배움을 하는 중이다.
다음 주제는 ‘우리 마을의 달인 찾기’를 활동을 통해 마을을 만난다. 의향 장평 4행 글 (1학년 박세준 씀)
의: 의병들이 살았던 장평에서는 아주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군 총의 화약
향: 향이 새어나오는 총구에서 독립운동가의 열정과 독립심이 나를 감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자라온
장: 장평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평: 평화로운 우리 장평을 100년전 우리 마을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함성과 헌신이 만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