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개미학교'부터 생활관까지 24시간 교육과정 운영
지난해 서울지역 자율형공립고, 신입생 최고 경쟁률 기록

지난 2008년 처음 학교가 문을 열 때였다.
학교로 향하는 진입로는 어른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비좁을 만큼 좁은 골목길이었고 사이 사이 전봇대까지 들어서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늦은 귀가길 학생의 안전마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중소제조업체와 공구상가들이 밀집한 공장지대 한 구석, 진입로조차 정비되지 않는 후미진 곳에 문을 연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인근 학부모들의 걱정은 매우 컸다.
공모를 거쳐 학교의 첫 교장으로 부임한 한명복 교장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찾아온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등교하는데) 5분 더 걸리겠지만 자녀의 24시간을 학교가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신임교장의 열정에 가득 찬 확신은 학부모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학교는 그해 3월 첫 입학생을 받았다.
교과부가 지정한 전국 10곳의 개방형자율학교 가운데 한 곳, 지난해 서울시내 자율형 공립고 최고 신입생 경쟁률(7.5대1) 기록, 교육과 학력의 사각지대였던 서울 구로지역을 떠오르는 교육 1번지로 변모시키고 있는 신흥명문. 개교 3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학교는 더 이상 변두리의 빛바랜 학교가 아니다.
교장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의 발상의 전환과 열정이 학교 교육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는 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학교, 서울 구현고등학교를 소개한다.
'개미학교'에서 '전인교육관(생활관)'까지…twenty four hours care!
학교는 학생의 24시간을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개교 당시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
학교는 아침 7시 30분 '개미학교'로 첫 일과를 시작한다.
개미학교는 오전 7시 30분부터 8시까지 30분간 열린다. 이 시간은 말하자면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영어단어나 국어어휘력 학습교재를 나눠주고 학생들은 그 날 분량만큼의 영어단어나 국어어휘를 공부한다. 학습의 기본이 되는 영어와 국어의 어휘력을 길러주는 시간이다.
토요일에는 개미학교를 통해 기른 영어와 국어 어휘력을 평가하는 쪽지시험을 치른다.
매주 월요일 '개미학교'는 '리더십 트레이닝' 시간으로 운영된다. 이 시간에는 한명복 교장이 직접 학생들 앞에 나선다. 한 교장은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펼친다. 강의 내용과 주제는 직접 한 교장이 준비한다. 'Freedom is not free', '그룬트비히(Nikolai Grundtvig)를 다시 생각함', '지금은 공부할 때' 등 한 교장은 보편적 가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칫 스쳐지나가기 쉬운 주제들을 선택해 학생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강의 내용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나 다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교의 리더십 교육과정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학습계획서 작성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규수업 후, '디딤돌학교Ⅰ' 문열어…전교생 93% 참여

학생을 24시간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학교의 책임의식은 정규수업을 마친 후에도 계속된다.
정규수업을 마치면 '디딤돌학교Ⅰ·Ⅱ' 과정이 시작된다. 오후 4시30분부터 5시20분까지 열리는 디딤돌학교Ⅰ은 국·영·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학입시 대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학교는 매일 과목을 바꿔 한 과목을 집중 수업한다.
학년 별 10개 반으로 운영되는 이 과정은 특히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수준별 학습의 '급간'을 세분화해 수준별 학습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학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과정에는 전교생의 93%가 참여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과정이다.
교사들은 수준별 10그룹으로 진행되는 디딤돌학교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수시로 교사협의를 거친다고 한다. 여느 학교와 같이 외부강사를 거의 쓰지 않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저녁에는 '디딤돌학교Ⅱ'…제2외국어, 예·체능 등 심화과정 100분간 운영
저녁에는 '디딤돌학교Ⅱ'가 문을 연다.
100분간 운영되는 이 과정은 심화학습과정으로, 국영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디딤돌학교Ⅰ과는 달리 제2외국어와 예체능과목도 개설된다.
특히 그 운영에 있어 학생들의 선택권을 폭 넓게 보장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학교는 '디딤돌학교' 참가신청을 학교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받는다. 심화과정인 디딤돌학교Ⅱ의 경우에는 원하는 강의를 학생이 스스로 신청할 수 잇도록 하고 있다. 일정 인원 이상 신청자가 없으면 해당 과목은 폐강되기도 한다.
대학의 수강신청과 유사한 모습이다.
'반딧불학교'와 '전인교육관'…예산 및 시설 지원 아쉬워

심화 디딤돌학습이 끝난 후에는 '반딧불학교'가 그 뒤를 잇는다.
야간 자율학습 형태인 이 과정은 저녁 10시까지 운영된다. 이 과정 역시 원칙적으로 전교생이 참여한다.
빈딧불학교는 모두 600석으로 구성된 자율학습실과 각 교실에서 진행된다.
개인별 독서대 등 편의시설을 갖춘 600석 규모의 자율학습실 인원은 학생의 생활태도와 출석률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특히 학교 안에는 모두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생활관, '전인교육관')가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더욱 심화된 교육과정에 참여한다. 전인교육관 입실인원은 2~3학년 학생들로 이곳에는 순번으로 감독을 맡는 교사이외에도 사감교사가 별도로 배치돼 있어 학생들을 보호한다. 학교의 특화된 교육과정을 고려할 때. 그 수용인원을 늘린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족한 시설과 예산의 지원이 아쉬운 부분이다.
특화 교육과정 방학중에도 계속…오전·오후 디딤돌학교, 교사 열정 남달라
방학중에도 학교의 특화된 교육과정은 그대로 운영된다. 오히려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인다.
방학 중 운영되는 디딤돌학교는 오전과 오후로 나뉜다.
오전 디딤돌학교는 아침 8시부터 50분씩 모두 4교시로 운영된다. 학기중 운영되는 디딤돌 학교Ⅰ과 같이 국·영·수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세 과목 가운데 한 과목은 하루 두 시간 수업을 받는다.
오후에는 심화 디딤돌학교가 열린다.
학기중과는 다르게 100분씩 모두 2교시로 운영된다(오후 1시~2시 40분, 3시~4시 40분).
학기는 물론이고 방학중에도 디딤돌학교가 운영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쉴 틈이 없다.
심화 디딤돌학교(디딤돌학교Ⅱ) 수업 개설은 교사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으나 적지 않은 교사가 본인의 선택으로 강좌를 개설한다.
낮은 수업료…학부모 부담 크게 줄여
디딤돌학교 과정은 학기별로 1기와 2기로 나뉘어 운영된다. 지난 1학기의 경우 1기는 개학시부터 중간고사까지, 2기는 중간고사 후 학기 종료일까지였다.
비용도 저렴하다. 1기 당 수강료는 15만원 선. 심화과정인 디딤돌학교Ⅱ의 경우에는 과목당 4만원이다. 결국 1.5개월에서 2개월 과정을 학생들은 일반 학원 수강료의 절반 이하 금액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독서마라톤, 북페스티벌 등 책을 주제로 한 3일간의 축제 펼쳐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이 선정한 '독서오거서(五車書)운동' 거점학교이기도 하다.
지난 7월 8~10일, 3일간 학교는 책을 주제로 한 축제를 펼쳤다. 독서의 날을 맞아 학교는 이 기간 동안 독서마라톤 대회, 독서골든벨, 작가와의 대화 등 책을 주제로 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학교만의 특색사업이기도 한 '북페스티벌'도 함께 열렸다.
북페스티벌은 학생들이 교사 및 학부모와 함께 시내 대형서점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고른 책을 학교가 구매해 도서관에 비치하는 행사로,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학교 도서관 운영의 새로운 '롤-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이틀에 걸쳐 약 8시간 가량 책을 읽었다. 독서마라톤 후에는 퀴즈대회, 독후감 시상 등이 이어졌으며,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독서마라톤 프로그램 참여 인증서가 주어졌다.
한명복 교장 >

학교의 진입로는 말끔히 단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학교 근처에는 중소제조업체와 공장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학교 주변은 잘 정비돼 있었다.
개방형자율학교로 개교할 때부터 관심을 끌었던 학교는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한 첫 해 서울 지역 최고 신입생 경쟁률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언론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학교는 교육과정 운영과 그 성과에 있어서 여러모로 다른 학교와는 남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한명복 교장의 리더십이다.
휘경중 교장을 거쳐 공모제 교장으로 부임한 한 교장은 학교운영과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춘 교장 중 한 명으로도 손에 꼽힌다.
취재 당일에도 한 교장은 교장실에서 학교운영위원들을 대상으로 학교생활기록부, 학교행정시스템, 대학입학사정관 전형 실태 등 교육과정 전반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자칫 무거워질수도 있는 분위기를 특유의 입담으로 누그러뜨리며 설명을 계속하는 한 교장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쳐났다.
한 교장의 모습에서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나오는 구태의연한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교 당시 문제가 된 학교 진입로 골목길 전봇대 10여 개를 뽑아낸 저돌적인 추진력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의외의 모습이다.
한 교장은 교육과정을 포함한 학교의 현안에 대해 학교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한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본래의 취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협조를 구한다. 매우 세련된 '수평적 리더'의 전형이다.
한 교장의 리더십은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동질감'과 '발상의 전환'에서 나오는 듯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아침 7시30분 '개미학교'부터 시작되는 학교의 유별난 교육과정은 이같은 리더십이 빚어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