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에너지 방전의 신호, 만성피로증후군의 과학적 실체 -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넘겼던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단순한 과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 몸의 조절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상태인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피로증후군(ME/CFS)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ME/CFS는 단순히 ‘피곤하다’는 주관적 증상이 아니라, 면역계 조절 이상, 산화 스트레스,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중추신경계의 신경염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전신 질환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 안에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있습니다. 하지만 ME/CFS 환자에서는 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세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ATP)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뇌와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회로가 지속적인 염증 반응에 영향을 받게 되고,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량을 줄이는 ‘질병 행동(sickness behavior)’ 상태에 들어갑니다. ME/CFS의 진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작업후 권태감(Post-exertional malaise)입니다. 이는 가벼운 신체 활동이나 정신적 활동 후에도 며칠 동안 극심한 피로와 기능 저하가 이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2. 완치제가 없는 만성 피로, '운동이 독이 되는' 역설 - 안타깝게도 ME/CFS를 완전히 치료하는 표준 약물이나 치료법은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치료는 주로 피로 증상을 조절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피로 관리법이 일부 환자에게는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만성 피로 환자들에게 널리 권장했던 '점진적 운동치료'나 '인지행동치료'는 최근 연구에서 효과와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ME/CFS 환자는 일반적인 운동 부족과 달리 세포 에너지 대사와 면역 조절 체계에 이상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운동은 미토콘드리아 부담을 증가시키고 작업후 권태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환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는 치료보다는, 개인의 상태와 생체 반응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3. 코로나19 장기 후유증(Long COVID)과 '뇌-장 축(Brain-Gut Axis)'의 교란 - 최근 만성 피로 연구가 크게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장기 후유증(Long COVID)이 있습니다. 많은 코로나 19 장기 후유증 환자는 ME/CFS와 유사하게 지속적인 피로, 운동 후 악화, 집중력 저하(Brain fog)를 경험합니다. 이 때문에 두 질환 사이의 공통된 생물학적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중요한 연결고리 중 하나로 뇌-장 축(brain-gut axis)의 이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장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면역과 신경 기능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감염이나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 장벽 기능이 약화되면 장내 미생물 유래 물질이 혈액으로 이동하는 ‘미생물 전위(microbial translocation)’가 일어나고, 이러한 변화가 면역계 이상 및 신경계 염증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장의 변화가 뇌 기능과 자율신경계 조절에 영향을 미치는 ‘뇌-장 축’의 악순환이 만성 피로 증상을 지속시키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것이 최근 연구의 관심사입니다.
4. 만성 피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 침·뜸·추나·한약 연구의 가능성 - 최근에는 뇌-장 축과 신경-면역 조절 체계를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치료 접근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의학적 치료법들이 이러한 생체 조절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다수 진행중입니다.
첫째, 한의학에서 전통적으로 기력 저하와 허약 상태의 개선에 사용되어온 대표적 처방인 '사군자탕(四君子湯)'의 효능이 다기관 무작위 대조 이중맹검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 사군자탕은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장내 미생물 균형을 직접적으로 재조정하여 유익균의 점유율을 높이고 피로 증상을 유의하게 개선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한약재 황기에서 추출한 '황기 다당류(Astragalus polysaccharide)' 역시 복합 인자로 유발된 만성 피로 동물 모델에서 단쇄지방산(SCFA) 대사산물을 촉진하고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뇌-장 축의 병리 상태를 개선한다는 연구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의 정밀 의학 기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만성 피로 한약 치료는 한의학 특유의 맞춤형 세분화 진단 유형에 따라 처방이 이루어진 후, 말초혈액 단핵구의 히스톤 인산화(Histone phosphorylation)와 같은 후성유전학적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여 개인별로 최적화된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둘째, '침 및 전침 치료'는 자율신경계 조절의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RCT 연구에 따르면, 침과 뜸 치료는 심박수 변동성(HRV)을 유의미하게 조절하여 교감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함으로써 신경-면역계의 항상성을 회복시킵니다. 특히 뇌-장 축 치료 기전 연구에서는 깊은 비골신경(deep peroneal nerve) 부위의 전침 자극이 미주신경 반사를 강력하게 유발하여, 중추신경계의 신경염증을 억제하고 장벽의 투과성을 회복시키는 뇌-장 축 조절 효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수기 요법인 '추나 치료' 역시 의미있는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루어진 임상시험 연구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게 4주간 주 3회(총 12회)의 추나 치료를 일반 관리와 병행한 결과, 단순 일반 관리군에 비해 환자가 느끼는 다차원적 피로 점수와 신체 기능 장애가 비약적으로 감소하고 치료의 안전성 또한 매우 우수함이 밝혀졌습니다.
5. 세포 에너지를 지키는 일상 속 만성 피로 자가 관리법 - 만성 피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치료와 병행되는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합니다. 핵심은 뇌-장 축과 미토콘드리아가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생활 페이스 조절을 통한 에너지 보존: ME/CFS 관리의 핵심은 무리한 활동으로 작업 후 권태감을 유발하지 않는 생활 페이스 조절(pacing)입니다. 일상생활 중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파악하고, 신체 활동과 정신적 집중 후에는 반드시 충분한 휴식을 취해 피로 증상의 악화를 예방하는 것이 좋습니다.
•뇌-장 축 보호를 위한 식이 및 장 건강 관리: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과 장벽 투과성을 개선하기 위해 정제당과 가공식품, 글루텐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식단을 통해 미생물이 장내에서 유익한 대사산물을 생성하는 것을 돕고 면역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 이완을 위한 부드러운 심신 요법: 격렬한 운동보다는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 등과 같은 저강도 심신 이완 요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몸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긴장된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수면과 회복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성 피로는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참으면 지나가는 피곤함’이 아니며, 우리 몸의 면역계와 신경계, 그리고 장내 환경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앞으로의 만성 피로 치료는 단순히 증상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 세포 에너지 대사와 뇌-장 축, 면역 조절 시스템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만성 피로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반한 과학적 한의 치료와 관리를 바탕으로 여러분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Latimer KM, Gunther A, Kopec M. Fatigue in Adults: Evaluation and Management. Am Fam Physician. 2023 Jul;108(1):58-69.
2.Komaroff AL, Dantzer R. Causes of symptoms and symptom persistence in long COVID and myalgic encephalomyelitis/chronic fatigue syndrome. Cell Rep Med. 2025 Aug 19;6(8):102259. doi: 10.1016/j.xcrm.2025.102259.
3.Li T, Litscher G, Zhou Y, Song Y, Shu Q, Chen L, Huang Q, Wang Y, Tian H, Teng R, Wang H, Liang F. Effects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 on heart rate variability in chronic fatigue syndrome patients: Regulating the autonomic nervous system in a clinical randomized controlled trial. Complement Ther Med. 2025 Sep;92:103184. doi: 10.1016/j.ctim.2025.103184.
4.Wang D, Yang T, Cui Y, Qu Y, Feng C, Sun Z, Zhang M. From tradition to healing: the promise of acupuncture in managing chronic fatigue syndrome. Front Med (Lausanne). 2026 Jan 20;12:1724290. doi: 10.3389/fmed.2025.1724290.
5.Fan J, Jiao J, Chang HQ, Zhong DL, Liu XB, Li J, Chen LM, Jin RJ, Wu X. Myalgic encephalomyelitis/chronic fatigue syndrome (ME/CFS): diagnosis and management. J Transl Med. 2025 Dec 9;24(1):62. doi: 10.1186/s12967-025-07506-y.
6.Dai L, Liu Z, Zhou W, Zhang L, Miao M, Wang L, Hua H, Wang B, Ji G. Sijunzi decoction, a classical Chinese herbal formula, improves fatigue symptoms with changes in gut microbiota in chronic fatigue syndrome: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multi-center clinical trial. Phytomedicine. 2024 Jul;129:155636. doi: 10.1016/j.phymed.2024.155636.
7.Xu T, Gao S, Cheng X, Man W, Wang Y, Yin Y. Histone phosphorylation analysis of two main TCM syndromes of chronic fatigue syndrome. J Transl Med. 2025 Dec 25;24(1):69. doi: 10.1186/s12967-025-07579-9.
8.Wang S, Ren J, Zhou X, Fang S, He T, Wu Z, Xu S, Kong L, Fang M. Tuina therapy for patients with chronic fatigue syndrome: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Transl Med. 2026 Jan 8;24(1):301. doi: 10.1186/s12967-025-07624-7
9.Kim DY, Youn J, Kang N, Cho SI, Ha IH. Potential application of brain-gut axis-based treatments in Long COVID and ME/CFS: a case-based systematic review. J Transl Med. 2026 Feb 10;24(1):371. doi: 10.1186/s12967-026-07807-wIF.
10.Wei X, Xin J, Chen W, Wang J, Lv Y, Wei Y, Li Z, Ding Q, Shen Y, Xu X, Zhang X, Zhang W, Zu X. Astragalus polysaccharide ameliorated complex factor-induced chronic fatigue syndrome by modulating the gut microbiota and metabolites in mice. Biomed Pharmacother. 2023 Jul;163:114862. doi: 10.1016/j.biopha.2023.114862.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