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매일같이 바람을 느낀다. 여름날 더위를 식혀 주는 산들바람, 가을 들판을 흔드는 갈바람, 태풍처럼 무섭게 몰아치는 강풍. 하지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고대인들은 ‘바람’을 글자로 표현하는 데 큰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오늘 우리가 쓰는 ‘풍(風)’ 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놀라운 사실과 만난다. 갑골문 속 초기의 ‘풍’ 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벌레(虫)’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새’, 특히 봉황 같은 거대한 조류의 형상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바람을 새로 그렸다는 발상, 여기에 고대인의 자연 인식과 신화적 상상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왜 바람을 ‘새’로 그렸을까?
갑골문 초기의 ‘풍’ 자를 보면, 머리와 날개를 단 새의 모습이 분명하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깃털이 흩날리고, 깃발이 펄럭이고,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은 눈앞에 보인다. 고대인에게는 이런 현상을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날개 치는 새였다.(그림 26 ‘風’ 참조)
특히 봉황은 단순한 새가 아니었다. 머리 위에 삼각형·역삼각형 같은 권위의 표식을 얹고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표지가 아니라 제사와 권력, 신성의 영역과 연결된 기호였다. 바람은 농업과 직결되는 힘이었고, 봉황의 형상은 그 힘을 길들이고 제어하려는 사회적·종교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 바람의 신, ‘비렴(飛廉)’
음운학적 흔적도 남아 있다. 최춘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갑골문 시기 바람의 발음은 [팔람] 계열로 추정되며, 이것이 오늘날의 ‘풍(風)’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문헌에는 바람의 신 ‘비렴(飛廉)’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나라 장군의 이름이기도 한 ‘비렴’은 날개 달린 전설적 존재로, 곧 바람을 의인화한 신이었다.
즉,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사회와 전쟁, 제사의 질서를 좌우하는 거대한 존재였고, 그 형상은 새, 특히 봉황으로 그려졌다.
□ 그런데 왜 ‘벌레(虫)’가 끼어들었을까?
문제는 후대다. 상 후기 이후부터 ‘풍’ 자 오른쪽에 이상한 부호가 붙는다. 전국 시대에 들어서면 ‘虫’ 혹은 ‘凡(범)’과 비슷한 글자가 따라붙어 지금 우리가 아는 ‘風’의 형태가 된다.([그림 26] ‘風’ 참조)
민간에서는 이를 억지로 설명하려 했다. “바람이 불면 벌레가 생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문자학적 분석은 이것이 가차(假借)와 형태 전이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음을 빌려 쓰는 과정에서 발음 표식이 덧붙고, 후대 필사 과정에서 벌레 모양으로 단순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벌레는 본래 바람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다만 문자 사용과 전승의 과정에서 우연히 끼어들었을 뿐이다.
□ 봉황과 대붕, 그리고 오로라의 기억
봉황을 왜 바람의 상징으로 택했는가에 대해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바로 오로라와 같은 북방의 자연현상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빛의 장막이 하늘을 물들이는 모습을 고대인은 거대한 새, 날개짓하는 대붕(大鵬)의 형상으로 기억했을 수 있다.
이 상상은 후대로 이어져 다양하게 변주된다. 유가에서는 봉황을 인의예신의 덕목을 상징하는 도덕적 존재로 만들었고, 장자 같은 도가 사상에서는 대붕을 자유와 초월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홍산문화 등 북방 문화권의 상상력이 중원으로 흘러들어와 용과 봉황이라는 거대 상징체계를 형성한 것이다.
□ 왜 복잡한 봉황 그림을 고집했을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고대 문자라면 간단한 기호를 쓰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 왜 굳이 새의 머리와 날개를 그려 넣는 복잡한 도형을 고집했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봉황은 단순한 자연 표지가 아니라 의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제사와 정치의 질서를 나타내는 글자이니 함부로 간소화할 수 없었다.
둘째, 시각적 기억 때문이다. 오로라 같은 거대한 현상을 집단이 기억하는 방식은 상징과 그림이었다. 그 기억은 문자 속에서도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
셋째, 문자적 보수성이다. 초기의 형식이 한 번 정착되면, 실용성보다 전통과 관습이 우선하는 경향이 있었다.
□ 용봉 문화의 한 뿌리
‘풍(風)’ 자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의 기원을 본다.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을 새로 형상화했고, 그 새는 봉황으로 신성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람은 자연을 넘어 권위와 제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후대에 벌레 부호가 끼어들고 형태가 바뀌었지만, 봉황과 대붕 신화는 여전히 살아남아 동아시아의 상징 세계를 지배했다. 용과 봉, 이 두 상상의 동물이 결합해 ‘용봉 문화’를 형성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고대의 집단적 상상과 기후·신화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의 질문
우리가 매일 보는 ‘풍(風)’ 자는 단순한 언어 기호가 아니다.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려는 고대인의 고뇌, 거대한 자연현상을 기억하려는 집단적 상상력, 그리고 의례와 권위를 중시한 사회 질서가 겹겹이 녹아 있다.
다시 말해, ‘풍’ 자 하나를 통해 우리는 자연–신화–권력–문자의 복합적 교차를 읽어낼 수 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바람을 붙잡으려 한 사람들의 상상은 오늘날까지도 글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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