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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제의 목요칼럼] 전쟁과 올바른 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전쟁은 먼 이야기이고 생뚱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계에서 전쟁이 그칠 날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전쟁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국지전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전쟁은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전쟁은 무력을 써서 행하는 싸움이다. 전쟁은 살상을 초래하고 일상의 온전한 파괴를 감수한다. 오직 상대를 굴복하기 위한 가장 비참한 수단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기말시험이 끝나서인지 힉셍들이 현장체험으로 많이 왔다. 전쟁은 기념할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기념하기보다는 기억해야 할 사건이다. 승자의 역사에서 전쟁은 영웅을 기념하지만 우리는 살상과 잔악함을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무엇보다 비인간적이다. 전쟁은 인간을 숫자로 환원한다. 전사자 수, 난민 규모 같은 통계 속에서 개인의 얼굴은 사라진다. 경쟁 교육 역시 그 얼굴을 닮고 있다. 성적, 등수, 진학률로 줄 세울 때 교육은 전쟁의 언어를 닮아간다. 경쟁과 승패, 효율과 성과만이 강조될 때 교육은 평화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거대한 범죄는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생각하지 않는 교육, 질문하지 않는 수업, 정답만 외우는 학습은 언제든 폭력의 토양이 될 수 있다. 과거 학교에서 교련을 배우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진정한 질문은 없었다.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순종만이 미덕이었다. 전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공감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이성, 갈등을 언어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화에 대한 교육은 모든 수업에 녹아있어야 한다. 국어 시간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이야기를 읽고 역사 시간에는 승자의 기록뿐 아니라 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과학 시간에는 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함께 토론해야 한다. 세계가 종교, 민족, 영토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은 현재도 휴전상태에 있다. 전쟁은 언제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올바른 교육은 ‘다른 선택은 없는가’를 계속 묻는다. 전쟁을 상상하기 이전부터 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실에서 사유와 양심, 명령보다 질문, 적대보다 공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의 시대일수록 교육은 무엇보다 인간다운 인간을 가르쳐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으면 언젠가 전쟁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다. 전쟁은 명령에 따르는 인간을 원한다. 올바른 교육은 질문하는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 세계에서 ‘공존과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종주국이 되는 꿈. 그 꿈이 대한민국의 올바른 교육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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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5
  • [전재학의 교육칼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요즘 한국의 교육 현실은 낙관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갈등은 여전히 반복되고, 교사의 권위는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했으며, 학부모와 학교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한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아닌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 서 있다. 지역·계층에 따른 학습 격차는 심화되고, 디지털 환경의 급변은 학생들의 집중과 정서를 흔들고 있다. 교실은 더 복잡해졌고, 교사는 갈수록 지쳐 간다. 이제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조차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먼저 떠오르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 말고 무엇이 희망을 가져다줄 것인가? 사회적 양극화, 기술 격차, 세대 간 단절, 빠른 변화 속의 불안 등 오늘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서 결국 해답은 사람의 역량, 태도, 감수성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역량을 가장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영역이 바로 교육이다. 현실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에 그럴수록 교육은 더 강한 희망이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2학년 한 학생은 스마트폰 중독과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잦은 문제 행동으로 교사와 친구들에게 부담이 되는 아이였다. 학교는 촘촘한 상담 지원과 기초 학습 코칭, 또래 멘토 프로그램을 함께 적용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성적이 아니라 ‘관계’였다. 친구 한 명이 자신의 조용한 관심을 계속 기울이자, 그 학생은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미워하지만은 않는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1년 뒤 그는 단번에 모범생이 되진 않았지만, 지각이 줄고 담임교사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고, 교내 드론 동아리에도 참여했다. 한 교사, 한 또래의 작은 손길이 한 아이의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이는 교육이 변화시키는 것은 성적표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사례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제도 개편과 규정 강화에만 눈을 돌린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이 희망이 되려면 제도의 효율이 아니라 관계와 의미의 회복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곳,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곳, 불확실한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을 내면의 기준을 세우는 곳, 이 모든 것은 교육이 아니면 대신할 수 없다. 더 나아가 AI 시대가 오히려 교육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술은 많은 것을 대신하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 스스로 사고하는 힘,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결코 대체할 수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인간다움을 기르는 교육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기반이어야 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진 교육현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한 낭만이나 로망이 아니다. 지금의 혼란은 교육이 중요한 만큼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는 방증이며,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교육만이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교육은 오늘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희망은 교육이 완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비록 학교는 혼란스럽고 교사는 지치고 학생들은 불안해도,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을 붙들어야 한다. 교육을 포기하는 순간,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피력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희망이어야 한다. 희망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내일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신뢰하는 한, 현실은 흔들리더라도 미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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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9
  • [구본희 반려詩選] 세 개의 방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세 개의 방 우리 집엔 아이들 방이 세 개 있다. 기숙사처럼 복도형 구조, 거실에서 보면 큰애는 맨 끝방, 둘째는 가운데, 막내는 가장 가까운 방ㅡ 보살핌과 작은 비밀을 고려한 배치다 한때는 왁자지껄하던 방들, 지금은 적막하다. 아이들 물건도 그대로인데, 금방이라도 "엄마, 배고파!" 하며 들어올 것 같은 현관문은 무료하게 졸고 있다. 어릴 땐 직장과 돌봄에 지쳐 빨리 커서 독립하길 바랐는데, 막상 하나둘 떠나고 자주 못 보게 되니 괜히 서운하다. 이젠 가족 단톡방에서나 말 섞고, 성장이 멈춘 가족사진을 보며, "자식도 품어야 자식이다"라는 말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사무친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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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8
  • [김홍제의 목요칼럼] 교사 자율성과 교육의 품격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과거에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는 교육법 75조 규정에 매여 있어야 했다. 1998년에 ‘교장의 명’이 아닌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내용으로 바뀌기 전까지의 일이다. 교육에서 창의성과 자율성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면 그 시작은 교사의 자율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율성이 없다면 전문성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 상황은 천태만상이지만 모두 같은 지침에 매여 있다. 자율성이 없는 교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진정으로 학생을 성장시키려면 교사를 믿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변화는 늘 더디고 제한적이었다. 교사가 교실의 주체로 설 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교육의 전문가로서 기초적인 자율권마저 행사할 수 없는 환경이 근원적인 걸림돌이다. 교육 혁신은 결국 교사의 손에서 완성되지만 정작 교사는 경직된 행정 체계, 촘촘한 평가 기준 속에 갇혀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아는 만큼 할 수 없는’ 현실이 교사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오늘날 교실은 다양한 요구와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흥미는 천차만별이다. 디지털 기술은 학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 환경을 설계하고 학생의 경험을 조율하는 ‘교육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수업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해도 과도한 평가 기준과 행정 규정에 막히기 일쑤다. 교사는 교육과정과 평가와 복무에 대한 자율성은 없고 민원과 상담과 부가적 업무에만 자율성을 강요받고 있다. 교사의 자율성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학생의 특성과 지역의 환경에 따라 효과적인 교육 방식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교실과 농촌의 교실, 학습 동기가 높은 학생이 많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전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 체제는 모든 학교가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업하도록 강요한다. 교사는 교실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이다. 교사에게 더 큰 판단권과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교사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은 교사를 편하게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율성은 곧 책임을 의미한다. 교사가 수업 방식과 교육과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전문성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야 한다. 교사가 수업 연구와 연수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를 대폭 줄여야 한다. 학생 수준과 교실 조건의 복잡한 과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주체가 바로 교사다. 교육정책에서 ‘교사를 믿는가 통제하는가’는 중대한 핵심 요소이다. 교사를 믿지 않는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세계 주요 선진국이 교사에게 높은 자율성과 전문적인 판단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교사의 자율성은 교사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품격은 통제와 규제 중심의 체제가 아닌 자율과 책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교육은 교실에서 일어나며 교실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교사의 자율성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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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8
  • [전재학의 교육칼럼] KBS '트랜스휴먼'이 던지는 교육적 메시지와 미래교육의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우리는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즈음에 우리는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선다. “인간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최근 KBS의 다큐멘터리 '트랜스휴먼'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뇌과학, 로봇기술이 결합하며 인간 능력의 경계를 다시 쓰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과학 소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교육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이 보여준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돕고, 유전자 편집이 질병을 지우고, 인간의 사고와 기계가 연결되는 세상, 이 변화 앞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기존의 지식 전달 중심 교육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기계는 인간을 능가해 지식을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암기한다. 따라서 단순 지식의 우열을 가리는 교육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트랜스휴먼'이 주는 가장 큰 교육적 의미는 ‘교육의 목적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지능과 초연결의 세계에서 교육은 더 이상 지식을 나열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확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초인류’를 만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미래교육은 기술을 선도하는 교육이 아니라 기술을 이끄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할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보다 더 큰 사고력, 즉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학생들은 정답을 찾는 법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술의 목적을 묻고, 기술의 한계를 고민하는 윤리적 상상력이야말로 초겸손의 미래를 살아갈 진짜 능력이 될 것이다. 둘째, 초인류 시대일수록 감성·공감·관계 능력 배양이 더욱 중요하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아주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다. '트랜스휴먼'이 보여주는 기술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성과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미래교육은 학생들에게 협력하는 법, 갈등을 해결하는 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는 어떤 AI도 대신해 주지 못할 인간의 본질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의 유연성이다. 급변하는 미래는 정해진 길(定道)을 따르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 실패를 통한 성찰, 끊임없는 자기 재창조가 가능한 학습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는 힘’이 아니라,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혁신의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넷째, 미래교육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에 진짜 위기는 ‘능력의 격차’가 아니라 ‘존재의 균열’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 “너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를 묻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트랜스휴먼'은 우리에게 인간을 기술 뒤에 놓지 말고, 기술 앞에 세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 초인류가 오는 시대, 교육의 역할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대비’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길잡이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사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길의 끝에 어떤 인간이 서게 될지는 교육이 결정한다. 기술은 인간을 확장시키지만, 교육은 인간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완성은 더 빠른 인간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으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 초인류의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을 넘어서, 초인류의 시대를 이끌 인간을 기르는 교육, 그것이 바로 '트랜스휴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강력한 교육적 메시지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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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5
  • [구본희 반려詩選] 차선 변경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차선 변경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졌는데, 운전을 하다 고민한다. 차선을 바꿀까, 다른 길로 돌아갈까. 그 고민이 도리어 더 아프게 한다. 인생도 그렇다. 고민했고, 망설였고, 그러다 그냥 흘러갔다. 그래도 도착한다.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길.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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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04
  • [김홍제의 목요칼럼] 이제 그만해야 하는 대입수학능력시험 제도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11월 13일 목요일 전국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연 이 시험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수능은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의 상징’이 아니다.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 ‘정답생산기’로 길러진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수능 폐지는 단순히 시험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객관식 선다형 사고로 사는 나라에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라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교사들은 신분상의 위험까지 안고 수능 감독관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한다. 학교에서 어린 나이순으로 감독관 참여를 강요받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몸짓과 언어에도 소송이 뒤따를 수 있다는 위험은 교사에게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돈을 내고라도 수능 감독시험에 착출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수능 업무에 대한 힘겨움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 수능을 위한 EBS 수업을 정규 수업시간에 공공연히 한다. 교실 수업은 오직 수능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다가 수능이 끝나면 모든 수업을 할 수 없는 ‘시장판 교실’이 된다. 교사들이 이 과정에서 겪는 자괴감은 매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수능을 치르고 난 후 고등학교 교실은 교과과정이 유명무실해진다. 교사가 교실에서 앉아 있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체적으로 많은 행사를 하지만 이미 대입에 실패한 학생이나 입학이 확정된 학생에게 아무런 참여 의지가 없다. 교사의 권위나 말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자괴감을 교사가 느끼는 계절이다. 수능이 지속되는 이유는 효율성과 공정성 때문이다. 수능 존치론은 공정성, 효율적 선발, 기초학력 검증을 말하고 폐지론은 창의력 억압, 불평등 심화, 한 번의 시험이라는 비인간적 제도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대안이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능 폐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 대안을 만들어 시행해 나가야 한다. 학교생활 전반을 평가하는 과정 중심의 학생부 중심 종합전형을 해야 한다. 학습 태도와 성실성을 반영하고 꾸준한 노력과 성장 과정을 보아야 한다. 물론 학교와 교사의 평가 신뢰성, 지역별 교육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제도가 시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붕괴의 수능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충실히 하는 학생이 대학에서도 존중받는 학생이 되도록 그 길로 가야 한다. 수능으로 미래 사회형 인재를 선발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학생 사고력, 표현력, 가치관을 평가하는 방식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볼 수 있는 평가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이 있다. 나중에는 어찌 되든 당장 좋은 것만 취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곶감먹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왔다. 학교, 학부모, 교직원, 교육청, 학생이 고통받는 제도와 학생의 미래역량에 역행하는 제도는 이제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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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7
  • [전재학의 교육칼럼] ‘AI 3대 강국’을 외치면서 인재를 유출하는 현실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강력한 ‘AI 3대 강국’을 꿈꾸고 있다. ‘국가과학자’제도를 신설해 AI인재 해외유출을 막으려 하고 있다. 5년간 100명을 뽑아 개인당 연 1억을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또한 AI 분야 등 해외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며 “과학 문명 투자한 국가는 흥해”라는 대통령 발언도 강조하고 교육부, 과학기술부, 대학 총장들까지 나서 총체적으로 AI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제 AI가 미래 산업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과거에도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AI 대학원을 설립하고, 코딩과 데이터 과목을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겉으로는 혁신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구호 뒤에는 한 가지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지금도 AI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어렵게 석·박사 과정을 마친 젊은 연구자들이 미국, 중국, 캐나다, 유럽의 연구소나 빅테크 기업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창의적 연구보다 ‘성과 지표’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여전히 상명하복식 구조에 묶여 있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혁신의 싹을 자르고 있다. 정부는 “AI 인재 10만 명 양성”을 외쳤지만, 정작 그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토양은 만들지 못했다. 이 모습은 단지 AI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 전체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찍어내는 공장형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교실은 여전히 정답 중심, 주입식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기보다 ‘어떤 전공이 유망한가’를 계산하며 진로를 택한다. 인문학적 사유와 예술적 감성은 ‘비경제적’이라며 밀려나고, 교육이 산업의 수요에 종속되면서, 청년은 점점 더 좁은 틀 안으로 몰리고 있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AI 강국’을 표방하면서도, AI 인재를 잃어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 한국 출신 연구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연구보다 보고서를 쓰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디어보다 상사의 눈치를 먼저 봐야 했죠.” 그의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느끼는 시스템적 피로의 고백이다. 우리가 청년을 ‘미래 자원’으로만 대하는 한, 그들은 언젠가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나 캐나다의 교육을 보면, 그들은 인재를 붙잡기 위해 억지로 “AI 전공자를 늘리자”라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창의와 실패의 자유를 보장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든다. 학생이 철학을 전공하다가 데이터 과학으로 옮겨가도, 사회는 그것을 ‘진로 방황’이 아니라 ‘탐색’으로 이해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선택한 계열이 평생의 족쇄가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스템의 불편한 존재로 취급된다. 정작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AI 기술이 아니라 AI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상상력을 두려워하고, 다른 길을 걷는 청년을 ‘비효율’로 본다. 미래는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철학, 윤리, 창의력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AI 강국”이라는 구호에 취해 있는 사이, 귀한 청년들은 떠나고 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 자율이 없는 문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지금처럼 교육이 국가의 산업정책을 위한 하청 구조로 머무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두뇌 유출국(Brain Drain)’으로 남게 될 것이다. 청년을 낭비하지 않는 교육은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교실은 인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라, 인간이 꿈꾸는 실험실이어야 한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강국을 이끌 청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한국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교육이 없는 한, 우리의 미래는 구호 속 숫자로만 남을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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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1
  • [김홍제의 목요칼럼] 시간을 잊고 사는 하루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명예퇴직 공문을 만지작거린다. 해마다 오는 공문인데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관심을 담아서 보게 된다. 이제 한 번만 옮기면 40년 가까운 공직 생활이 끝날 것이다. 친구 말대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명예퇴직을 한 친구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자랑하며 단톡방에 올리는 여행 사진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올라온다. 아침 6시 45분에 아파트를 나선다. 동절기에는 사방이 어둡다. 출근을 하면 매일 조용한 날이 드물다. 학교폭력이 언론에 나고 교육 비리, 학생 사고, 학교 시설 민원, 전입학에 대한 민원, 각종 행사와 위원회 참석 요청, 수능시험장 학교 폭발물 신고까지 온갖 민원이 늦가을 낙엽처럼 가득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과 달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고 이집트 사람들은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했다고 한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 합의된 시간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1884년 국제자오선 회의에서는 전 세계를 24시간대로 나누었다. 시간이 전 세계의 공통어로 자리 잡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알람 시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알람 시계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에 의지해 일어났다. 옛사람들은 아침 햇빛, 닭의 울음소리가 아침 신호였다. 기계식 알람 시계는 1787년 미국 뉴햄프셔에 살던 시계공 리바이 허친스(Levi Hutchins)가 발명했다고 한다. 그는 해가 뜨기 전인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터로 가야 했다. 시계 문자판의 숫자 '4' 위치에 핀을 박고 시침이 핀에 닿는 순간 지렛대 장치가 움직여 종을 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제 시간은 아침햇살처럼 모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직장인의 아침 침대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다. 시계와 화폐가 발명되면서 사람은 그것에 노예가 되다시피 살고 있다. 편리함을 위해 만든 대상인데 이제 사람이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형세가 되었다. 때로 그것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운 인간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역설적으로 그것을 버림으로 더 크고 진실한 것을 얻는 예를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기존의 틀을 깨는 것에서 커다란 변화와 변혁이 시작되었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살아가는 시대이다. 과거만 가지고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학교에서 예술과 인문학, 동아리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한 활동은 스스로 추동의 힘을 갖고 기존의 것에서 더 새롭고 자유롭고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영역이 될 수 있다. 하루 정도는 공적 시간을 벗어버리고 싶다. 핸드폰과 시계를 멀리하고 오직 ‘존재’와 ‘마음’과 ‘삶의 의미’를 사색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 타인과 사회에 맞추는 시간은 잠시 멈추고 나만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이번 휴일에 가져보려 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말한 ‘현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를 생각하며 내 안의 여행을 가려 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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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0
  • [구본희 반려詩選] 기프티콘 세상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기프티콘 세상 선물보다 기프티콘이 더 익숙해진 세상. 포장지를 뜯던 그 설렘은 어디에 쌓였을까. 선물엔 주는 이의 시간과 정성이 겹겹이 쌓이고, 눈빛과 마음이 서로 스며든다. 알림 소리로 도착한 기프티콘은 고맙지만, 빈 메아리처럼 스쳐 간다. 오늘은 그리운 손길의 선물을 받고 싶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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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8
  • [전재학의 교육칼럼] 깊어가는 가을, 교육의 수확을 바라보며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전국이 온통 만산홍엽으로 물들어 가고 하늘은 높고 청명하기만 하다. 깊은 가을의 공기는 한층 차분하고, 그 속에는 성찰의 향기가 배어 있다. 황금빛 이삭을 거두어 들인 논과 밭에서는 철새들이 줄지어 날아들고, 나무들은 한 해의 결실을 잎의 빛깔로 드러낸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릴 때 이미 가을의 수확을 그리지만, 그 수확은 단지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다. 비와 바람, 햇살과 토양의 조화 속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문학인들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하고 결과에 대한 칭송을 노래한다. 교육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가르침과 배움의 세계는 ‘가을의 수확’처럼 시간의 축적과 정성의 누적 속에서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교육의 본질을 농경의 순환에 빗대어 보면, 가을은 학습의 성찰기이자 성장의 확인기라 할 수 있다. 봄의 파종이 교육의 시작이라면, 여름은 열정적인 성장의 시기, 그리고 가을은 그 모든 노력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가을은 한 해의 교육 여정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던진 ‘교육과 배움의 씨앗’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매년 가을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나의 성장 나무’를 그리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배운 것, 느낀 것, 새롭게 도전한 것을 나뭇잎 하나하나에 적는다. “처음에는 글씨를 잘 못 썼지만, 지금은 일기 쓰기가 즐거워졌어요.”, “친구와 싸우지 않고 대화로 해결했어요.”… 작은 문장 속에는 아이들의 성장이 오롯이 담긴다. 교사는 말한다. “이 나무는 아이들이 지식만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증거이죠. 그 잎사귀 하나하나가 교육의 결실이에요.” 이처럼 교육의 수확은 점수나 등수가 아니라 성장 그 자체에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가을 배움 축제’를 연다. 학생들은 자신이 한 해 동안 탐구한 주제나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한다. 누군가는 과학 실험의 결과를 공유하고, 누군가는 자작시를 낭독하며, 또 누군가는 지역 노인정과 함께한 봉사활동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그 축제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배움의 열매를 나누는 장’, 즉 교육의 수확제(收穫祭)다. 교사들은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실감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 사회와 연결된다는 기쁨을 배운다. 그러나 모든 가을의 수확이 풍성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뭄이나 태풍으로, 혹은 잡초의 번성으로 기대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교육도 그렇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가르쳐도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가을이 일시적 실패의 계절이 아니라, 다음 해를 준비하는 순환의 고리이듯, 교육의 여정에서도 실패는 다음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돌봄의 의지’다. 교육의 수확은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변화 속에서 더욱 깊게 익는다. 한 중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던 아이가 요즘은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제게는 올해 가장 큰 수확이에요.” 가을의 들녘에서 단 한 줄의 벼라도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순간, 농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교육의 현장에서도 한 명의 아이가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때, 그 한 해의 교육은 이미 결실을 맺은 거다. 깊어지는 가을, 우리는 또 한 해의 배움의 끝자락에 서 있다. 학교와 교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교육이란 밭을 일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노력 하나하나가 내일의 결실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교학상장”, “심은 대로 거둔다”, “인과응보”, “절차탁마”… 비슷비슷한 언어의 향연이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한 만큼 그 결과로 수확하는 진리를 품고 있다. 이제 가을의 나무가 잎을 떨구며 내년을 준비하듯, 교육의 여정도 쉼과 성찰을 통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결국 교육의 가을은 끝이 아니라 인고의 겨울을 나면서 새로운 봄을 잉태하는 계절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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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4
  • [전재학의 교육칼럼]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는 교육의 길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교육은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입시 중심, 일방향적인 교육 정책, 그리고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이 제한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교육’이 가능할까? 그 해답은 바로 교육자치에 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조차 “교육자치의 꽃은 학교자치”라고 우리 교육 정책의 방향을 한 마디로 압축하기도 했다. □ 교육자치란 무엇인가? ‘교육자치’란 학교 구성원들이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함께 결정하고 실행하는 민주적인 과정이다. 이때 교사, 학생, 학부모는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교육의 주체가 된다. 특히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는 점수와 경쟁이 아닌, 학생 개개인의 삶과 성장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자치’다. 자율이 개인의 자유라면, 자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책임지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 사례 1. 핀란드 교육의 본질은 ‘신뢰와 자치’ 핀란드는 교육자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교사는 커리큘럼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삶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운영한다. 시험은 최소화되고, 비교와 경쟁보다 성장과 협력이 강조된다. 모든 학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존재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실제 학교 운영에 반영된다. 핀란드 교육부의 슬로건은 단순하다. “신뢰하라(Trust).” 이 신뢰가 교사에게, 학생에게 자율성을 넘어 자치를 가능케 하는 기반이 된다. □ 사례 2. 지방 A 중학교 - 삶 중심 교육의 실현 국내에서도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의 모범 사례가 있다. 2023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공식 블로그에 의하면 지방의 A 중학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혁신학교이다. 이 학교는 수업, 생활지도, 동아리 활동까지도 학생 자치회와 교사 공동체가 함께 결정한다. 매년 ‘삶을 나누는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한 공연과 작품이 학교 전체를 채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삶을 함께 꾸려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 사례 3.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자치활성화 조례’ 2020년 서울시교육청 보도자료에 의하면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학생자치활성화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모든 학교에 학생 자치기구 구성과 운영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며, 학교장은 이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실제로 이 조례 이후 많은 학교에서 학생회가 교육과정, 급식, 학교 축제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말한다. “이제 우리는 학교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다.” □ 교육자치가 가꾸는 것은 '삶'이다 교육자치는 단순한 행정 절차나 학교 운영의 민주화를 넘어, 사람을 살리는 교육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자치가 있는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며 수업을 만들어가고, 학부모는 아이들의 일상에 함께 참여한다. 교육의 중심이 ‘지식’에서 ‘삶’으로 옮겨가는 순간, 교실은 변화한다. 그 변화는 점수로 환산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 태도 속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정답을 잘 맞히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를 길러야 한다. 그 시작은 교육자치이며, 그 끝은 모두의 삶이 아름답게 가꾸어지는 교육의 공동체다. 어느 교사의 교단 일기에는 "삶을 가꾸는 교육자치란,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고 돕는 일이다. 그것이 진짜 교육이다"라고 쓰여있다. 이는 우리 교육이 지향할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 압축한 것이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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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7
  • [김홍제의 목요칼럼] 고교학점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김불이’는 117cm의 작은 키를 가진 노동자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난장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었습니다”와 “저희는 인간 취급을 받고 싶었습니다”라는 말은 소외에 대한 절규라고 할 수 있다. 교실에서 ‘학습 미도달자’에 대한 방관도 사회적 소외이다. ‘난장이’로 표상되는 ‘학습 미도달자’나 ‘학습 포기자’에 대한 우리의 교육은 얼마나 양심적이었는가 하는 윤리적 반성을 하게 된다. 고교학점제가 폐지론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고교학점제가 꿈꾸던 이상과 현실의 대입제도는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 절대평가제를 설계로 했지만 입시는 상대평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학생-교사’의 관계를 ‘학생-학습’으로 이동시키려는 구조적 개혁이라고 하지만 최소성취보장제에서 국가의 책임교육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확인하였다. 과거에 학교부적응 학생은 스스로 자퇴를 했다. 최소성취보장제도의 미도달학생이라는 말은 이런 학생들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교사들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수업에 아무런 흥미도 없는 학생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신평가제도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학원은 선전하고 학부모는 불안해하고 있다. 학생은 진로를 선택하기도 전에 진로에 대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니 불안하기만 하다. 교사는 증원은 없고 업무는 증가하여 불만이 많다. 교실은 점점 일상적인 수업이 힘든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정서행동 문제와 게임중독, 자살 위기, 무기력이 모두 한 교실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물고기, 독수리, 거북이, 사자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법으로 달리기를 요구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방치되었던 ‘학습 저성취 학생’에 대하여 특단의 대책으로 수업과 평가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교실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은 인권 침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는 동일 반복의 은유이다. 가난한 하루가 반복되는 일상은 그 띠 위의 무한 반복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뫼비우스의 띠’는 현실이 가진 이중성과 모순도 보여준다.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이 결국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길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하고 선을 악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습 부진은 곧 자기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스스로에게 느끼는 좌절과 수치는 학생을 학교에서 떠나가게 한다. 학교는 학생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뿌리가 썩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줄 교육과정은 있는가. ‘작은 공’은 희미한 희망을 상징한다. 고교학점제가 불러온 소외된 학생에 대한 관심이 ‘하늘로 날아간 작은 공’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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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6
  • [구본희 반려詩選] 내일이면 생각나겠지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내일이면 생각나겠지 오늘도 사람 찾는 문자 하나. 의학은 발전했고 오래 사는 건 이젠 당연하다지만, 사람들은 말한다ㅡ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지." 하지만 치매 환자는 늘고, 우리도 가끔 기억이 흐려진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내일이면 생각나겠지. 어쩌면 우린 이미 그 길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세월에 몸을 맡긴 채.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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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5
  • [전재학의 교육칼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우리 교육 현실, 이대로 좋은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Gresham’s law)”는 말은 경제학 법칙으로 가치가 낮은 화폐가 시장에 넘쳐날 때, 가치 있는 화폐는 점점 사라진다는 원리다. 이는 오늘의 한국 교육 현실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진실 되고 성실한 노력이 힘을 잃고, 전략과 정보, 자본이 우선시되는 구조가 그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법칙이 교육이라는 공공영역에서조차 부정할 수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입시 제도다. 본래 ‘수시’는 학생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발굴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는 점점 변질됐다. ‘비교과 활동’을 수치화하고, 대입 자기소개서를 컨설팅 업체에서 ‘기획’하며, ‘진로 설계‘조차 사교육에 맡기는 현실은 결국 자본력과 정보력이 학생의 성실함을 앞서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교실은 점점 더 왜소해졌다. 아이들은 교사의 수업보다 사교육 강사의 강의를 더 신뢰하고, 교사는 학생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리기보다 실적과 성적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정직하게 내신을 준비한 학생이 외부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에게 밀리는 것을 반복해서 목격하면, 아이들 스스로도 교육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우리 교육의 민낯이다.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붕괴, 공동체 가치의 해체, 교육 정의의 상실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아이들이 배움을 삶과 분리시키고, 경쟁만이 살아남는 방식임을 조기 학습하게 된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돌이켜 보아야 할 때다. 교육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일찍이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야기한 제도(시스템)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몇 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첫째, 수시 제도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이미 진행 중인 자기소개서 폐지, 외부 인증서⋅대회 실적의 제한 등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학교 안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활동과 성장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시 비율을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할 뿐이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구조적 신뢰를 완전하게 회복해야 한다. 둘째, 공교육 내 입시 정보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 진로진학지원센터나 대입지원단 제도를 확대해, 누구나 자신의 학교 안에서 공정하고 질 높은 입시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유일한 길은 공적으로 책임지는 진로 설계 시스템이다. 다행히 각시도 교육청마다 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원단을 크게 확대해 나가는 것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셋째, 교사의 교육권과 평가권 회복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사는 이제 ‘관리자’나 ‘행정인력’이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과 성장을 이끄는 전문직으로 명실공이 자리매김해야 한다. 학교가 다시 ‘교육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신뢰와 자율성을 완전 돌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비 나아가 현직교사들의 교육과 평가 역량을 고도로 강화시키는 전문성 함양 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넷째, 성과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평가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 점수로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과정과 참여, 변화의 흔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평가가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정답보다 ‘과정의 힘’을 믿는 학습자로 성장할 수 있다. 교육이 무너질 때, 사회의 공정도 함께 흔들린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과연 지금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거나 ‘심은 대로 거둔다’는 믿음을 확실하게 주고 있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오늘의 교육 현실을 바꾸는 것은 한순간의 개혁이 아니라, 구조와 문화, 믿음의 회복을 위한 연대의 여정이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가, 우리 사회의 정의가, 교육에 달려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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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31
  • [김홍제의 목요칼럼] 일상에서 양심을 지킬 줄 아는 교육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한국은 먹고사는 것이 큰 화두인 근대화를 거치면서 교육은 사회 적응에 중점을 두었다. 이제 교육의 효과로 경제도 성장했고 사회도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다운 교육이라는 지향점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감독 없이 양심껏 시험을 보는 문화는 불가능한 이야기인가. 양심 우산, 양심 무인계산 등 양심을 앞에 붙이면 공짜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있는 한 사회 발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은 구멍이 뚫린 배를 함께 타는 격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양심과 정직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누구의 탓인가. 9월 14일 기획재정부·한국은행·통계청 등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2027년 4,526달러로 사상 처음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처음 넘어선 시점은 2016년(3,839달러)이다. 2024년 IMF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GDP는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 한국은 6위로 일본(7위)을 앞서고 있다. 과연 한국은 경제성장만큼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있는가, 외국인 사이에서 한국 화장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에서 지켜야 할 시민의식은 어떨까. 휴지통을 없앤 서울지하철에서는 변기가 막힌 횟수가 시행 전보다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빨대, 음료 뚜껑, 생리대 등을 버린다고 한다. 여름 바닷가 공영주차장은 야영장처럼 변한다. 야영과 취사가 금지된 곳인데 캠핑카와 차박 차량이 차지해서 불편을 준다.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주변 도로와 화장실은 쓰레기가 넘쳐난다. 일부 야영객은 공중화장실의 물과 전기를 몰래 빼 쓰기도 한다고 한다. 고3 담임을 할 때였다. 학생들에게 “만약에 부정한 방법으로 수능 만점을 받았다면 재응시를 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몇 명은 “미쳤어요? 왜 다시 시험을 봐요?”하며 웃었다. 10억을 받으면 1년의 감옥살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조사에 많은 청소년이 긍정적인 답을 했다고 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에는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올바른 말이라 믿는다. 정직은 많은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일시의 손해는 거짓으로 나중에 치르게 될 굴욕이나 피해에 비하면 아주 적은 비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논어 공야장편에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라는 말이 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물건이 형편없게 돼 더 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나라의 동량이 될 수 없다. 되어서도 안 된다. 양심과 정직을 실천하는 일이 유치원에서 끝나면 안 된다. 작은 양심과 정직을 키우는 일은 ‘착한 어린이’가 아닌 ‘성숙한 시민’의 가장 단단한 기초 소양이다. 교육과정과 체험학습에서 양심과 정직을 체현(體現)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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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3
  • [구본희 반려詩選] 깜빡임의 일상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깜빡임의 일상 현관문을 나서던 아내가 급히 거실로 들어간다. 묻자, "안경 가지러" 웃음 짓지만 안경은 이미 쓰고 있었다. 괜찮다. 나는 더하다. 휴대폰 쥐고도 휴대폰을 찾으니. 나이 든다는 건 이런 순간들이 쌓이는 일. 깜빡임이 부끄럽지 않다. 그저 또 하나의 삶이다. 스스로 위로하며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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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2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삶을 사랑하는 교사와 청소년에게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시인 신경림의 이 짧은 문장은 삶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단지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우리가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실을,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요즘 학교 현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지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서기를 힘겨워하는 교사들로 가득하다. 청소년들은 경쟁과 비교 속에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묻고, 교사들은 그 질문에 진심으로 답해주기 위해 매일 자신을 다그치는 상황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 번쯤 걸음을 멈추고, 시인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몇 해 전, 한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화다. 학급에서 늘 말이 없고 웃지 않던 한 아이를 보고 교사는 처음엔 그저 내성적인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깊은 어둠이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쓴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된 교사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냥 사라지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를 때까지.” 그날 밤, 교사는 아이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네가 존재해서 이 교실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다음 날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 제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한 문장이, 그 아이를 다시 살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 한 명의 ‘살아 있음’을 지켜주는 게 교육이라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삶에, 아이들은 교사의 삶에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관계는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고, 버텨낼 힘을 준다. 우리는 ‘성공’이나 ‘성과’만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시험 점수, 진학, 승진, 성과 … 그러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도 살아있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 수업 끝나고 웃으며 나가는 아이들,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점심시간에 나눈 짧은 대화 한 줄... 이 모든 것이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동시에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그대들이 불안하고 초라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대들은 의미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사명 속에서, 때로는 자신의 존재가 흐려질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기다려주는 침묵 속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당신의 ‘살아 있음’이 누군가에게는 길이 되고, 숨이 된다는 말이다. 신경림 시인은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피투성이로 사랑하면서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 사랑이 힘들고, 때로는 상처로 남을지라도,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은 결국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살아있기에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에 살아갈 이유가 생긴다. 지금 이 순간 힘들고 지쳐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름답다. 교실 속에서,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오늘 하루,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살아있고, 그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작은 목소리로 건네주자. “너는 살아있어서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 그 한마디가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따뜻한 빛이 될지도 모르니까.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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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7
  • [구본희 반려詩選] 가을 문턱에서
    [교육연합신문=구본희 詩選] 가을 문턱에서 하늘은 멀어지고 좁쌀 구름 손수건 흔든다. 소래 썰물은 밀물 되어 다시 오고, 무대 뒤 찬 바람이 옷을 갈아입는다. 우는 건 어찌 매미뿐이랴. 흩어지는 마음아. 여름은 작아진 가슴 조용히 울고 있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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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8
  • [전재학의 교육칼럼]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2024년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학교폭력 예방 교사 연수에서 한 교사는 담당 학생이 “도와주고 싶었지만, 나까지 왕따당할까 봐 그럴 수 없었어요”라고 고백했음을 밝혔다. 이 실화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왕따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많은 교사들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 사례는 요즘 학교 현장에서의 단순한 방관이 아닌, 용기를 내기 어려운 교육 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청소년들에게 공감의 중요성, 배려의 의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는 ‘용기’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사랑도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 할 것이다. ■ 혐오와 냉소가 일상이 된 시대, 청소년은 어떤 메시지를 받고 있는가? 청주 A고 교사 간담회 사례 공유(2025.03, 충북교육청 주관)자료에 의하면 반 단체 채팅방에서 어느 학생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침묵하거나 방관했다. 그러나 다음 날, 조롱당한 학생에게 “말리진 못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싫었어.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보낸 친구가 있었다. 이 학생은 평소 담임교사에게서 “친절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단지 교훈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메시지와 모델을 통해 행동을 배운다. ■ 청소년에게 ‘사랑의 용기’를 가르치기 위한 3가지 방향 1. 사랑을 감성보다 ‘결단’의 문제로 설명하자 요즘 공감 능력, 정서 교육이 더 없이 강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공감은 행동으로 옮겨질 때만 의미 있는 가치가 될 수 있다. 단지 “친구를 도와줘야 한다”는 말은 이제 한계를 내포한다. 이제는 다음과 같이 언어를 바꿔야 한다. “사랑은 그냥 착한 게 아니라, 네가 강하다는 증거야.”, “누군가를 감싸줄 때, 너는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이처럼 용기와 성장을 직접 연결 짓는 언어가 필요하다. 2. 사례 중심 교육으로 ‘사랑의 순간’을 구체화하자 학교에서는 ‘배려’와 ‘존중’을 말하지만, 그 장면이 대개는 추상적이고 이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함께 토론할 수 있다. ‘누군가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친구가 실수했을 때, 감싸주는 것과 질책하는 것 중 어떤 선택이 더 어렵고 의미 있는가?’ 이러한 사례 중심 수업은 교육부가 2023년부터 보급한 ‘공감과 상생’ 인성교육 자료집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장면에 대한 역할극, 글쓰기, 감정 나누기 등을 통해, 아이들이 사랑을 ‘실천의 기술’로 체득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3. 교사와 어른들이 ‘사랑의 용기’를 먼저 보이자 아이들은 어른의 말보다 행동을 기억한다. 따라서 교사나 부모가 실수한 학생에게 여유를 보이고, 소외된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그 모델이 되는 일상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 가장 어려운 교육, 그러나 가장 가치 있는 교육 우리는 혐오 표현, 조롱, 무관심이 일상이 되어 갈수록 자연스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히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색함을 견디고, 한 발 먼저 다가가는 아이가 늘어날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따뜻한 방향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사랑도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교실에서부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을 가르쳐야 하는 골든타임을 살고 있다. 여기에 교사의 역할과 사명이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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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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