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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다문화 사회! ‘한국어 적응’을 넘어 ‘생각하는 정주형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학교를 생각한다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학령인구 감소의 한파가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교육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 학생 수는 536만 여명으로 전년 대비 3.4%나 감소했다.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유치원이 160여 곳 이상 문을 닫는 등 교육 현장의 지형도가 급변하는 와중에도 확연한 역주행을 보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이주배경학생 수의 증가다. 올해 초·중·고 이주배경학생 수는 약 22만 명으로 전년 대비 4.3%나 늘어났으며, 이주배경 고등학생만 해도 최근 5년 새 2.7배 증가해 3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이제 이주배경학생은 우리 교실의 일상적인 구성원이자 공교육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문화 교육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소수 적응 지원'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전교생 중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30% 이상인 학교가 전국 350곳에 달하고, 재학생 100명 이상인 '다문화 학생 밀집학교'가 급증하면서 심리·정서적 상처, 교육과정의 양극화, 한국어학급 과밀화 등 복합적인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최근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 강조했듯, 핵심은 몇 명을 유치했는가가 아니라 이들이 얼마나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한국어 습득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교육 체계로의 대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실질적 이정표를 제시하는 현장이 전남미래국제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AI 실시간 통번역 시스템을 활용해 언어 장벽을 낮추고, 교과 지식과 한국어 학습을 접목한 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혁신의 중심에는 이창민 교장과 안상묵 교감, 그리고 현장 교사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학교는 다문화 교육을 하나의 '복합적 성장 시스템'으로 접근한다. 교과 성취기준과 한국어 성취기준을 융합하고,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발표·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대학 연계 기술 교육과 독일·우즈베키스탄 등과의 국제직업교육교류, 한국문화 체험학습을 접목하여 졸업 후 자립의 발판을 제공한다. 이는 다문화 학생을 단순 '배려의 대상'이 아닌 '미래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러한 선도적 모델이 지역 현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책·제도적 보완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성년 외국인 유학생 관련 제도 운용에 있어 출입국 관리 당국의 관리·검증 기준과 지자체·교육청의 인구 소멸 대응 방향 간의 시각차를 정교하게 조정하고, 직업계고 현실에 부합하는 유연한 행정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 이미 30~40년 전부터 이민자 수용과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결합해 온 독일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독일은 학교와 현장을 오가는 이중 직업교육(아우스빌둥) 체계와 지자체·기업·학교가 참여하는 공공 관리망을 통해 유학생의 인권 보호와 안정적인 지역 정주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현장 실무와 학문적 깊이를 병행하는 선진 교육 인프라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과 지역 사회의 상생을 위해 추진해야 할 대안적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취업과 대학 진학을 아우르는 '입체적 성장 로드맵' 구축이다. 고교 단계의 직업 교육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과의 연계교육과정을 신설하여 전문학사 및 학사 학위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문화 청소년들이 고숙련 전문 인재로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유연한 비자 및 제도적 트랙을 다각화해야 한다. 둘째, 관계 부처 간 협력 및 유연한 제도 운용이다. 지자체와 교육청의 인재 양성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출입국 및 외국인 정책 당국 역시 미성년 직업계고 유학생에 특화된 정주 연계 가이드라인과 비자 기준을 전향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교육청 차원의 사전 검증 및 관리 역량 강화다. 재외한국교육원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전 검증으로 입국 전 한국어·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가변적 학급 운영과 교원 배치, 지자체 연계 인권 보호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넷째, '교과 융합 및 사고력 중심 교육과정'의 전국적 확산이다. 에듀테크 인프라를 적극 지원하여 언어적 부족함이 지적 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교과 수업의 질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저출산 위기는 역설적으로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전남미래국제고가 보여준 공교육 모델이 중앙부처의 유연한 결단과 교육청의 정교한 보완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될 때, 대한민국 공교육은 '준비된 미래'를 당당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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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부산에서 다시 묻는다: AI 시대, 기억을 다루는 성숙한 시민의 역량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2026년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선언'을 통해 세계유산을 통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의의 주요 담론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유산의 지정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정된 유산이 '과거의 역사를 얼마나 온전하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었다. 일본 사도(佐渡)광산 관련 논의가 대표적이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되었던 '전체 역사(Full History)'의 정직한 반영과 강제노동 현장에 대한 성실한 해설 문제로 인해, 이후 개최된 추도식 등에서 상호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미흡했던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은 당사국의 이행 노력을 점검하며,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적 진실을 현장 전시에 균형 있게 반영하고 성실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역사의 어두운 면까지 포함한 전체 역사의 기록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신뢰를 얻는 기본 조건임을 재확인해 준다. 이 같은 경과는 기억의 장소를 조성하는 일과, 그 장소에 담길 역사적 진실의 깊이를 다듬는 일이 얼마나 세심한 외교적·문화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단일 국가의 영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신뢰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은 미디어와 디지털 공간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오프라인 기념관이나 종이 교과서를 넘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와 세계유대인회의(World Jewish Congress)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생성형 AI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료를 환각(Hallucination)하여 제시할 위험성에 대한 세심한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는 기술을 활용하여 가짜 희생자 프로필이나 검증되지 않은 사진을 유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시각 자료가 가져온 "진실의 증거력"에 대해 보다 엄정하고 비평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역사 기억에 위험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쇼아재단(USC Shoah Foundation)의 '증언 360' 프로젝트나 생존자 홀로그램 작업처럼, 기술은 참상의 기억을 후대에 생생하게 전승하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때 기술진이 생존자의 실제 언어와 증언 범위 내에서만 AI가 응답하도록 엄격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운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되, 사료의 원본성과 역사적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는 윤리적 절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공교육과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은 성숙한 대안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초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사료의 출처 확인'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역사적 콘텐츠를 접할 때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고, C2PA 등 출처 정보 표시를 확인하며 정직한 사실을 선별해 내는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중·고등학교 답사 프로그램의 내실화다. 기념관 관람을 단지 정서적 감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질문-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어떠한 전시 장치가 활용되었는가, 사료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어 있는가-을 바탕으로 공간을 능동적으로 분석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등학교와 대학 과정에서 AI 생성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의 도입이다. 출처 확인, 맥락 파악, 타 사료와의 대조 등 전통적인 사료 비판 메커니즘을 디지털 정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AI의 답변을 완결된 사실이 아닌 '검증이 필요한 기초 자료'로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을 확립해야 한다. 넷째, 논리적 글쓰기와 토론 교육의 획기적 강화다. 역사적 주장을 펼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와 통계의 근거를 밝히고, 단순한 감정적 수사와 객관적 인과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방의 합리적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논리적으로 반론을 다듬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섯째, 교사와 시민이 함께하는 교육적 연대다. 디지털 기술과 역사학의 사료 비판을 융합한 종합적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가 다변화되는 정보 환경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사료의 부족보다는, 기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이를 다루는 정보 환경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해법 역시 성숙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비판 의식과 윤리적 통찰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을 정직하게 확인하고, 왜 이 기억이 호출되었는가를 깊이 있게 질문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와 기억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의 엄정함과 성찰의 마음을 균형 있게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의 세계유산위원회가 던진 성찰적 메시지처럼,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억의 소유가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우리의 성숙하고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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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연세대학교 논술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 가운데 상당수는 논술을 어렵게 생각한다. 긴 제시문을 읽어야 하고, 여러 글을 비교해야 하며, 제한된 시간 안에 답안까지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세대 인문논술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고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화제에 대해 다면적 사고를 요구한다. 따라서 극단적 대립성을 주의하고 양립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논술은 제시문의 내용을 외우는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의 관계를 찾는 시험이다.” 연세대 논술을 준비할 때는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다음 순서만 정확하게 익히면 된다. 화제→쟁점→핵심어→비교 기준→제시문 관계→답안 작성이 여섯 단계가 연세대 논술의 기본 틀이다. ■ 1단계, 가장 먼저 ‘화제’를 찾는다. 논술 문제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제시문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찾는 것이다. 이것을 화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세 제시문이 인간의 행동, 자유, 사회적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공통 화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화제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 글들은 모두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화제를 찾지 못하면 제시문을 각각 따로 읽게 된다. 그러면 세 글의 관계를 놓치기 쉽고 답안 역시 단순한 내용 정리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화제를 먼저 잡으면 제시문 전체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 2단계, 서로 의견이 갈리는 ‘쟁점’을 찾는다. 화제를 찾았다면 그다음에는 쟁점을 찾아야 한다. 쟁점은 같은 화제를 놓고 제시문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공통 화제가 ‘인간의 행동’이라고 하자. (가)는 인간의 행동이 타고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나)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 두 제시문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렇게 질문형으로 바꾸면 쟁점이 훨씬 쉽게 보인다. 수험생은 논술을 읽을 때 늘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이 글들은 무엇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바로 그 답이 쟁점이다. ■ 3단계, 각 제시문을 한 두 단어로 압축한다. 쟁점을 찾았다면 각 제시문의 입장을 대표하는 핵심어를 찾아야 한다. 제시문 전체를 길게 외우거나 정리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나)가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한다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가) = 개인·자율 ▲(나) = 공동체·규범 이처럼 핵심어를 잡으면 두 글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은 논술 답안은 어려운 표현을 많이 쓰는 답안이 아니다. 복잡한 제시문을 짧고 정확한 개념으로 정리하는 답안이 좋은 답안이다. ■ 4단계, 세 제시문의 ‘자리’를 정한다. 연세대형 논술에서는 세 개 이상의 제시문(영어 제시문 1개)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각의 제시문을 읽은 뒤 “이 글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올 수 있다. ▲(가) : 개인의 자유를 강조 ▲(나) : 사회의 규범을 강조 ▲(다) :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규범을 모두 인정 이 경우 (가)와 (나)는 서로 대립하고, (다)는 두 입장을 절충하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문제에서는 (다)가 양쪽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관점에서 두 입장을 모두 포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은 뒤 반드시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누가 누구와 반대되는가?” “누가 누구와 비슷한가?” “나머지 한 제시문은 절충하는가, 보완하는가, 포괄하는가? ” 이 세 질문만 제대로 해도 제시문 구조가 상당히 명확해진다. ■ 5단계, 답안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을 쓴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답안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제시문 (가)는… ”이렇게 시작하면 제시문 요약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다 좋은 방법은 세 제시문을 나누는 비교 기준을 첫 문장에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본성과 사회적 환경 가운데 어디에서 찾는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 한 문장이 정확하면 이후 답안은 훨씬 쉬워진다. 그다음 (가)의 입장을 설명하고, ‘반면’을 이용해 (나)를 쓰고, ‘한편’을 이용해 (다)의 입장을 정리하면 된다. 즉, 답안 작성의 기본 공식은 간단하다. ▲첫 문장 = 비교 기준 ▲다음 문장 = 각 제시문의 입장과 근거이 구조를 기억하면 답안이 훨씬 안정적으로 정리된다. ■ 6단계, 접속어를 이용하면 관계가 선명해진다. 논술에서 접속어는 매우 중요하다. ‘반면’ ‘그러나’ ‘한편’ ‘공통적으로’ ‘이에 비해’ 등의 표현은 단순히 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시문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시다. 예를 들어 (가)와 (나)가 반대라면 ‘반면’을 사용하고, (다)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면 ‘한편’을 사용할 수 있다. 채점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수험생이 제시문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쟁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세 가지부터 확인하라. 가끔은 제시문을 읽어도 무엇이 다른지 쉽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다음 세 가지 기준부터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첫째는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변화 전과 변화 후가 대비되는지 본다. ▲둘째는 공간이다. 동양과 서양, 도시와 농촌, 국가와 세계처럼 위치나 범위가 다른지 확인한다. ▲셋째는 관점이다. 철학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 개인 중심과 사회 중심처럼 접근 방식이 다른지 살펴본다. 이 세 가지를 적용하면 숨겨져 있던 차이가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 예시 하나로 정리해 보자. ▲화제 : 인간의 본성 (가) : 인간은 본래 선하다 (나) : 인간은 본래 악하다 (다) : 인간에게는 선과 악의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 경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화제 = 인간의 본성 ▲쟁점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핵심어 = 선 / 악 / 양면성 ▲제시문 관계 = (가)와 (나)는 대립 (다)는 절충답안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 이후에는 (가), (나), (다)의 주장을 차례로 설명하면 된다. 이렇게 구조를 먼저 잡으면 답안을 쓰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 연세대 논술은 ‘많이 쓰는 학생’보다 ‘정확히 나누는 학생’이 강하다. 논술 답안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답안은 아니다. 제시문 내용을 많이 옮겨 적었지만 비교 기준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반대로 분량이 조금 짧더라도 쟁점과 비교 기준이 분명하고 각 제시문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논리적인 답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으면서 늘 다음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무엇이 같은가?", ”무엇이 다른가?”, “왜 다른가?”, “이 차이를 어떤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이 논술 독해의 기본이다. ■ 기출문제를 풀 때도 반드시 구조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기출문제를 풀고 답안을 작성했다면 끝내서는 안 된다. 답안을 쓴 뒤 다음 사항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화제를 정확하게 찾았는가. 쟁점을 질문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각 제시문을 한두 개의 핵심어로 정리했는가. 세 제시문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이 들어가 있는가. ‘반면’, ‘한편’ 등의 접속어를 정확하게 사용했는가. 이 과정을 반복하면 처음 보는 제시문이 나오더라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 “논술은 글을 잘 쓰는 시험이기 전에, 글의 구조를 찾아내는 시험이다.” 수험생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섯 가지다. 화제 → 쟁점 → 핵심어 → 비교 기준 → 제시문 관계 → 답안 작성이 순서를 반복해서 훈련하면 어렵게만 보이던 연세대 논술도 점차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논술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무엇을 말하는지 찾고, 어디에서 생각이 갈리는지 확인하고, 그 차이를 정확한 말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출제자는 왜 이 제시문들을 함께 제시했을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수험생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읽게 된다. 제시문의 내용을 읽는 학생에서 제시문의 관계를 읽는 학생으로 바뀌는 순간, 논술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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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한 추모: 난징대학살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성찰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1937년 12월 13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 난징(南京)을 점령했다. 이후 약 6주 동안 자행된 무차별 학살과 성폭력, 방화와 약탈은 인류 문명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비극이었다. 짓밟힌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과 참혹한 범죄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위로하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차분히 돌아볼 때도 피해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장제스(蔣介石) 휘하 국민당 군대와 중국 민중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치열한 항전의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러한 희생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사료 검증을 거친 정밀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과 비판의 정당성을 더 한층 굳건히 세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희생자 수치를 둘러싼 논쟁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식 입장의 '30만 명' 수치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20만 명 이상' 판정, 그리고 여러 사료에 기반한 학계의 다양한 추정치는 저마다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간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자의적인 수치 축소나 학살 부인 시도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두 번 짓밟는 행위로서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피해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숫자 줄다리기'에 매몰되어 정작 개개인이 겪은 삶의 파괴를 잊는 일이다. 숫자의 다과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내야 했던 참혹한 고통과 인권의 짓밟힘 그 자체를 아프게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추모의 출발점이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중국어: 侵华日军南京大屠))의 건립과 발전 과정은 이처럼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피해국 중국의 절박한 기억 투쟁이었다. 과거 일본 교과서 검정 파동 이후 침략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가 높아지자, 난징시는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보존하여 집단학살 유적지인 장둥먼(江東門) 위에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후 자료실 확장과 '평화의 배' 형상의 신관 건립, 그리고 국가 추모일 지정에 이르기까지 기념관은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성찰의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다만 국가적 차원의 의례와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가 겪은 숭고한 슬픔과 애도의 본질이 정형화되거나 정치적 대립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하다. 진정한 추모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적 선전이나 외교적 대립의 틀을 넘어, 방문객 개개인이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자발적인 슬픔과 평화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따뜻하고 유연한 감성적 여백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가해의 역사를 모호하게 흐리거나 봉인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역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비극을 다루는 가장 성숙한 태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피해자의 관점'을 확고히 중심에 두고,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사실에 기반하여 참상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강조해 온 것처럼, 참상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분노를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배움터'로 승화될 때 더욱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얻는다. 하나의 정해진 국경의 서사에 갇히기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다양한 역사적 증언이 생생하게 소통하게 하고,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편적 평화의 연대로 나아가는 포용적 태도가 기대된다. 독일과 폴란드가 오랜 대화 끝에 출간한 공동 역사교과서 『유럽-우리의 역사』(Europa – Unsere Geschichte)는 좋은 이정표가 된다. 이 교과서는 단일한 정답을 강요하는 대신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국의 시각과 근거 사료를 나란히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비평적으로 검증하게 한다. 동아시아 역시 소모적 갈등을 넘어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역사적 진실에 기반한 공통의 평화 지혜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교실 현장에서도 숫자를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 다양한 사료와 기록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 스스로 추적하며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가"를 다투기보다 "무엇이 입증된 사실이며, 참혹한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아프게 묻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30만이라는 수치 뒤에 숨겨진 수많은 개인의 참혹한 희생과 중국 민중이 겪어낸 슬픔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엄정한 사료와 진실에 뿌리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윤리적으로 직시할 때, 비로소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온 인류가 함께 고개 숙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배우는 거룩한 성지로 완성될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교육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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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역설] "명문고 아닌 빈 교실 우려" 자사고 지원자 4년 연속 감소…지방 유치 신중해야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향한 학생들의 선택이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역단위로 운영되는 자사고들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면서, 지방 소도시에서 논의되는 신규 자사고 설립·유치 계획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시전문 종로학원이 공개한 2026학년도 고입 지원 현황을 보면, 전국 32개 자사고 지원자 수는 1만 2,786명으로 전년(1만 4,228명) 대비 10.1% 감소했다. 자사고 지원자는 2023학년도 1만 4,527명을 정점으로 2024학년도 1만 4,050명, 2025학년도 1만 4,228명을 거쳐 올해까지 4년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 평균 경쟁률도 1.36대 1에서 1.22대 1로 낮아졌다. 지역단위 자사고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전국 22개 지역단위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1.09대 1에 불과해, 지원자 수(8,572명)가 사실상 모집 정원과 맞먹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부일외고(0.95대 1)를 비롯해 대전대성고(0.90대 1), 안산동산고(0.78대 1), 양정고(0.86대 1), 세화여고(0.85대 1), 경희고(0.77대 1) 등은 이미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강남권 전통 명문으로 꼽혀온 휘문고(0.50대 1)마저 2년째 미달을 기록했다. 취약계층을 배려하기 위한 사회통합전형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전국 22개 자사고의 사회통합전형 평균 경쟁률은 0.52대 1에 머물렀고, 서울 소재 자사고 14곳은 6년 연속 단 한 곳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 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 수가 전년보다 2,823명 늘었는데도 지원율이 떨어진 것은, 단순한 학령인구 감소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사고 선호도 하락'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학 실적을 봐도 '자사고=입시 성공'이라는 공식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2025년 2월 졸업생 기준 전국단위 자사고 10개교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평균 65.3%로 전년(59.7%)보다 올랐지만, 진학률 통계에서 빠지는 재수·N수 추정 비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2025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중 자사고 출신은 500명으로 전체의 13.3%를 차지해 상위권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이 성과는 소수의 전국단위 명문 자사고에 집중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비 부담과 제도적 불확실성도 자사고의 발목을 잡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자료와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단위 자사고 학생 1인당 학부모 부담금은 약 1,335만 8,000원으로, 일반고(약 71만 3,000원)의 19배에 이른다. 자사고 측은 정부 지원 없이 재단 전입금과 학부모 부담금만으로 기숙사와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구조상 학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부모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 방향도 불안 요소다. 2019년 자사고 79개교를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가 2024년 1월 시행령 개정으로 존치가 결정됐지만, 2025년 12월 서울시교육감이 2030년까지 자사고를 다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본지 2026.07.28. 보도) 교육감이 5년 주기 운영성과평가를 근거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권한(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4)을 갖고 있다는 점도 신규 설립을 검토할 때 짚어야 할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외고·국제고의 경쟁률은 같은 기간 4년 연속 올라(1.24대 1→1.54대 1) 자사고와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되는 내신 5등급제 개편으로, 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자사고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신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자사고 기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교육계에서는 "기존 자사고조차 정원을 못 채워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학생 수급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지역 명문고 유치'라는 상징성만 앞세워 신규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와 교육 당국이 신규 유치를 검토한다면 단기적 이슈보다 지역 학생 배정 비율, 차별화된 교육과정,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먼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본지 2025.08.14.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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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삐걱거리는 무릎 관절염, ‘연골 마모’ 가 아닌 ‘전신 대사 질환’ 관점으로 관리하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단순 관절 퇴행이 아닌 전신성 만성 질환으로 인식되는 골관절염의 새로운 이해 - 골관절염(OA)은 전 세계적으로 6억 명 이상이 고통받는 대표적인 퇴행성 관절 질환입니다. 과거에는 골관절염을 단순한 역학적 과부하와 노화에 따른 '관절 연골의 물리적 손상'으로만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신 병태생리학 연구들은 골관절염을 연골뿐만 아니라 연골하골(subchondral bone), 활액막(synovium), 인대, 슬개하 지방패드(IPFP) 등 관절 전반의 조직과 전신 대사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전신 질환'이자 '전체 관절 질환(whole-joint disorder)'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골관절염으로 인하여 일단 관절 손상이 시작되면 손상된 조직에서 분비되는 손상 관련 분자 패턴(DAMPs)이 패턴 인식 수용체(PRRs)를 자극하여 활막염을 유발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성화된 대식세포와 연골세포에서 인터루킨-1베타(IL-1β),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인터루킨-6(IL-6) 등의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대량 방출됩니다. 이 물질들은NF-κB, MAPK, JAK/STAT 신호전달 경로를 자극하여 MMP-13 및 ADAMTS-4/5와 같은 세포외기질(ECM) 분해 효소의 합성을 유도하고 제2형 콜라겐(Col2a1)과 아그레칸(aggrecan)의 파괴를 가속화합니다. 나아가 연골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에 따른 활성산소(ROS) 축적과 소포체 스트레스가 연골세포의 조기 사멸(apoptosis)과 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SASP)의 분비를 유발하며 만성적인 관절 퇴행의 악순환을 형성하게 됩니다. 2. 진통제와 대증 치료만으로 골관절염 관리가 힘든 이유 - 현재 골관절염의 표준 약물 치료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 아세트아미노펜, 마약성 진통제(opioids) 경구 투여 및 히알루론산,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관절강 내 주사 등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들은 일시적인 통증 경감에 그칠 뿐, 질병의 구조적 진행을 정지시키거나 역전시키는 근본적인 구조 개선 치료제(DMOAD)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를 장기복용하게 되면, 소화성 궤양, 위장관 출혈의 발생률이 높아지며, 신혈류 감소로 인한 급성 신장 손상 및 심혈관계 혈전 질환, 뇌졸중의 위험이 증가하여 고혈압, 당뇨병 등을 동반한 고령 환자에게는 지속적인 처방이 권장되지 않습니다. 아울러 관절강 내 스테로이드 주사 역시 반복 시술 시 오히려 연골 손상을 촉진하고 감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통증 조절에 실패한 환자들이 선택하는 인공관절 치환술은 인공 삽입물의 수명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근본적인 한계 이외에도, 상황에 따라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 감염의 위험과 함께 수술 후에도 20~30% 환자에서 만성 중추성 통증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3. 관절염과 비만·노화가 얽힌 ‘대사성 표현형’과 ‘SASP(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 - 골관절염 환자의 60~85% 이상은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 근감소증 등 한 가지 이상의 만성 전신 질환을 동반합니다. 특히 비만은 단순한 체중 부하의 증가뿐만 아니라, 백색 지방 조직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 아디포넥틴, 아딥신(adipsin) 등 아디포카인(adipokine)과 보체계 인자의 만성적 분비를 통해 전신 및 손, 무릎 등 다발성 관절의 염증과 통증 감작을 촉진합니다. 세포 수준에서는 스트레스와 노화로 인해 영구적인 세포 주기 정지에 들어간 ‘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 연골세포의 축적이 핵심 병인으로 작용합니다. 세포 분열을 멈춘 노화 연골세포는 사멸하지 않고 대사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IL-1β, IL-6, TNF-α, MMP-3, MMP-13 등을 지속적으로 분비하여 주변의 건강한 정상 연골세포까지 연쇄적으로 분해합니다. 골관절염은 이처럼 국소 관절의 문제를 넘어, 체내 염증성 대사 이상과 세포 노화가 관절에 투영된 '전신 대사-면역 불균형 질환'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4. 골관절염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 침, 전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연골의 구조적 보존 및 전신적 조절을 달성하기 위해 한의학적 복합 중재 치료가 전 세계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첫째, 침 및 침전기자극술(electroacupuncture) 치료의 우수한 진통 및 기능 개선 효과가 대규모 다기관 임상시험과 메타분석을 통해 명확히 규명되었습니다. 2024년 BMJ Evidence-Based Medicine에 발표된 80건의 무작위 대조 시험(RCT, 총 9,933명) 대상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침 치료는 가짜 침, NSAIDs, 일상 관리 대조군 대비 무릎 통증 강도(VAS)와 WOMAC 신체 기능 장애를 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게 개선하였습니다. 특히 네트워크 메타분석(SUCRA 99.7%) 결과, 전침 치료는 일반 수기 침에 비해 통증 완화 효과가 유의하게 우수함(SMD -0.75, 95% CI -1.34 ~ -0.17)이 확인되었으며, 충분한 치료 자극 용량(주 2~3회 이상, 8주 이상)이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2026년에 저명 의학 학술지인 eClinicalMedicine에 보고된 480명 대상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6주간의 전침 치료(주 3회, 혈위: 혈해, 양구, 독비, 내슬안, 족삼리, 양릉천, 삼음교, 현종)가 가짜 침 대비 WOMAC 총점을 현저히 개선하였고, 치료 효과가 30주간 지속됨을 입증하였습니다. 또한 이 연구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정량적 무릎 MRI 분석을 통해, 전침 치료군가 슬개하 지방패드(IPFP) 신호 강도 및 관절삼출액 깊이를 유의하게 감소시켜 활막염을 억제하고, 대퇴 및 경골 연골 두께와 부피 손실을 지연시키는 초기 구조 보호 효과를 확인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독활기생탕, 양화탕 등 관절염에 전통적으로 활용되어 온 대표 한약 처방은 다중 경로·다표적 분자 조절 기전을 발휘합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독활기생탕은 TGF-β/Smad2/3 신호전달계를 활성화하여 제2형 콜라겐과 아그레칸의 합성을 촉진하는 동시에 MMP-13 발현을 차단하여 손상된 관절 연골을 회복시킵니다. 양화탕은 AMPK-SIRT3 경로를 매개로 미토파지(mitophagy)를 촉진해 산화 스트레스와 연골세포 조기 사멸을 유의하게 차단합니다. 아울러 관절염 치료에 널리 활용되어온 한약재들의 유효 성분(ASP, APS, Achyranthoside D, Tanshinone IIA 등)은 NF-κB 및 p38 MAPK의 인산화를 억제하고 Nrf2/HO-1 항산화 시스템을 가동하여 관절 내 만성 염증 환경과 SASP 분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5. 관절 건강 수명을 늘리는 일상 속 골관절염 자가 관리법 - 성공적이고 장기적인 관절염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한의학 치료와 더불어 관절에 가해지는 역학적·대사적 부하를 줄이는 생활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 체중 조절 및 전신 대사 관리: 과체중 및 비만 환자의 체중 감량은 무릎에 가해지는 기계적 압력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전신 혈액 내 전염증성 아디포카인(leptin) 수치를 신속히 낮춰 통증 감작을 완화합니다. 단순 식사 제한보다는 양질의 단백질 섭취와 결합된 체중 유지가 권장됩니다. • 관절 맞춤형 저부하 운동: 통증이 두려워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액 순환이 이루어지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허벅지 근육은 위축되기 때문에 도리어 관절 불안정성이 심화됩니다. 평지 걷기, 실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체중 부하가 적은 유산소 운동과 함께 대퇴사두근(허벅지 앞쪽) 등척성 근력 강화 운동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 관절 손상 및 미세손상 예방: 바닥에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 자세, 무거운 짐을 드는 동작은 무릎 관절 내 압력을 정상의 수 배로 치솟게 만들어 관절 파괴와 연골세포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는 좌식 대신 입식 의자 생활이 권장됩니다. 만성 골관절염은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닌 관절 조직과 전신 대사 면역계가 얽힌 복합 질환입니다. 관절의 비정상적인 미세 염증을 가라앉히고 조직 손상을 완화하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대사·운동 관리를 병행하여, 관절 통증의 굴레를 끊고 건강한 100세 관절을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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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 M, Shao Y, Lu W, Wang X, Xu H, Chen S, Yu X, Zhu J, Luo X, Yi H, Zhang J, Wang Y, Xue S, Liu S, Gong Z, Song Z, Xiao L, Xiang Z, Yan S, Zhang T, Yao R, Wang T, Tang Z, Cong L, Li Q, Zhao H, Meng W, Fan Y, Ao R, Liu B, Tao L, Gu X, Ding L, Wu T, Xu Y, Wang Y, Liang Q. Electroacupuncture for knee osteoarthritis: a multicentre randomised controlled trial assessing symptomatic and structural efficacy. eClinicalMedicine. 2026;96:103982. 6. Lu Y, Zhou H, Luo H, Hu W, Hu L, Xie J, Wu X, Li B, Zhou J, Fan S, Shan J, Chen Y, Zhang F. Molecular Mechanism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in Treating Osteoarthritis. Am J Chin Med. 2026;54(3):763-793. 7. Zhang Y, Han Y, Sun Y, Hao L, Gao Y, Ye J, Wang H, Zhang T, Liu Y, Yang Y. Osteoarthritis: molecular pathogenesis and potential therapeutic options. Signal Transduct Target Ther. 2026;11(1):81. 8. Afzal M, Rekha MM, Sahoo S, Pandey SN, Maji C, Goyal K, Ali H, Singh SK, Gupta G, Hussain MS. Targeting the 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to modify osteoarthritis in aging. Inflammopharmacology. 2025;33(11):6555-6575. 9. Collins KH, Haugen IK, Neogi T, Guilak F. Osteoarthritis as a systemic disease. Nat Rev Rheumatol. 2025;21(12):733-747. 10. Peng Z, Li Y, Sun N, Jia Y, Shi M, Xi K, Dong H, Zhou Z, Leng X. Advancements in Osteoarthritis Treatment: The Potential of Natural Herbs in Reducing Inflammation and Cartilage Degeneration. Phytother Res. 2026;40(1):1-23.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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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기침과 발열의 악순환 감기, 다중표적 면역 조절로 이겨내기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닌 바이러스의 침습, 감기의 병태생리 - ‘감기(Common cold)’는 인류가 가장 흔하게 마주하는 호흡기 감염 질환이지만, 그 기저에 자리 잡은 분자생물학적 기전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감기는 비인두를 비롯한 상기도 점막이 라이노바이러스(Rhinovirus), 계절성 엔데믹 코로나바이러스(HCoV-229E, OC43, NL63, HKU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FV),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아데노바이러스(AdV) 등 다양한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시작됩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표면의 특이 수용체—예컨대 시알산(Sialic acid)이나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2(ACE2), 디펩티딜 펩티다아제 4(DPP4) 등—에 스파이크 단백질이나 혈구응집소(HA)를 결합하여 세포 내로 침투합니다.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숙주의 톨유사수용체(TLR3, TLR4, TLR7)와 세포질 내 센서 단백질을 자극하여 선천 면역 방어망을 가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핵 내 전사인자인 NF-κB가 핵 내로 이동하고, 세포질 내 다중 단백질 복합체인 ‘NLRP3 염증복합체(NLRP3 inflammasome)’가 활성화됩니다. NLRP3 복합체는 프로-카스파제-1(Pro-caspase-1)을 절단·활성화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인터루킨-1베타(IL-1β)와 인터루킨-18(IL-18)의 분비를 유도하고, 가스더민 D(GSDMD) 매개 세포 사멸(Pyroptosis)을 촉발합니다. 이어 종양괴사인자(TNF-α), 인터루킨-6(IL-6)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방출되면서 혈관 투과성이 증가하고, 기도 점막 부종, 비루(콧물), 인후통, 기침, 발열 등의 전신 염증 증상이 폭발적으로 발현됩니다. 2.진통제와 항생제를 활용한 감기치료의 딜레마 - 임상 현장에서 감기 초기 치료로 흔히 사용되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 해열진통제, 항히스타민제, 비충혈제거제 등은 당장의 불편한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치료(symptomatic treatment)입니다. 이들 약제는 바이러스의 복제나 점막 손상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며, 장기 또는 과다 복용 시 위장관 출혈, 간독성, 심혈관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바이러스성 상기도 감염에 대한 무분별한 ‘항생제(Antibiotics) 처방’입니다. 유럽 이비인후과학회 가이드라인(EPOS 2020) 및 다수의 역학 연구에 따르면, 급성 바이러스성 비부비동염(감기) 환자의 60~88%에서 항생제가 남용되고 있으나, 실제 세균성 합병증이 입증되어 항생제 치료가 정당화되는 경우는 0.5~2%에 불과합니다. 바이러스 질환에 투여된 항생제는 치료 기간을 단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질병의 자연 치유 경과나 안와·두개 내 합병증 발생률에도 유의미한 예방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히려 항생제의 과용은 전신 미생물 생태계를 파괴하고, 폐 조직 내 다제내성균의 출현과 집락화를 촉진하여 향후 난치성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는 위험을 야기합니다. 아울러 감기 후 염증으로 민감해진 기도 신경과 점막 손상으로 인해 3~8주간 발작성 마른기침이 지속되는 ‘감염 후 기침(Post-infectious cough)’ 역시 일반 진통제나 진해거담제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임상 난제입니다. 3.폐와 장의 신경·면역학적 고리, ‘장-폐 축(Gut-Lung Axis)’의 통찰 - 최근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발견 중 하나는 호흡기 면역과 소화기 면역계가 긴밀히 소통한다는 ‘장-폐 축(gut-lung axis)’ 이론입니다. 이는 한의학에서 강조해 온 “폐와 대장은 상호 밀접한 관계하에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肺與大腸相表裏)”라는 명제와 흥미로운 관련성을 보입니다. 호흡기가 인플루엔자나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손상된 폐 조직에서 분비되는 케모카인 축(CCL25-CCR9)을 통해 폐의 활성화된 CD4+ T 세포가 장 점막 고유층으로 이동합니다. 이 세포들이 분비하는 인터페론 감마(IFN-γ)는 장내 미생물총의 불균형) 초래하여 대장균(Escherichia coli)을 비롯한 유해균의 비정상적 과증식을 유발합니다. 증식한 대장균과 그 내독소(LPS)는 장 점막의 밀착연접 단백질(ZO-1, Claudin-1)과 분비형 면역글로불린 A(sIgA)를 파괴하여 장벽 누수(Leaky gut)를 일으킵니다. 이로 인해 세균과 독소가 혈관과 림프관을 타고 다시 폐포로 역유입(Bacterial translocation)되며, 폐포 대식세포와 호중구를 자극해 전신성 염증이나 급성 폐 손상 등의 병리를 2차적으로 증폭시킵니다. 반대로 장내 유익균이 식이섬유를 분해하여 생성하는 단쇄지방산(SCFAs: 아세트산, 부티르산, 프로피온산)은 혈류를 타고 폐로 이동하여 면역세포 표면의 GPR41/43 수용체에 결합합니다. 단쇄지방산은 조절 T 세포(Treg)의 분화를 촉진하고 과도한 NF-κB 활성화를 차단함으로써 폐포 내 염증 폭풍을 억제하고 손상된 점막 장벽을 신속히 복구합니다. 즉, 감기를 근본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상기도 국소 증상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장-폐 축 전반의 면역 항상성을 정상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에서의 결론입니다. 4. 감기와 호흡기 감염을 치료하는 한약의 현대 과학적 근거 - 현대 과학적 분석 기술과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해, 복합 한약 처방과 천연 유효 성분들이 지닌 다표적(Multi-target) 항바이러스 및 항염증 기전이 다각도로 규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한약에서 유래한 거대분자 복합 다당류(Polysaccharides)의 생물학적 활성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황기(Astragalus membranaceus), 인삼(Panax ginseng), 길경(Platycodon grandiflorus), 백부근(Stemonae Radix) 등에서 분리된 다당체는 음전하 기반의 정전기적 상호작용과 입체적 삼중나선 구조를 통해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시알산이나 ACE2 수용체에 부착하는 첫 단계를 물리화학적으로 차단합니다. 동시에 세포 내 바이러스 복제 핵심 효소인 3CLpro 및 RdRp 복합체의 활성을 저해하며, 장내 유익균주를 선택적으로 증식시켜 혈중 단쇄지방산(SCFA) 농도를 높임으로써 장-폐 축 면역 방어선을 강화합니다. 둘째, 한의학의 대표적 처방들은 초기 염증 증폭을 강력히 제어합니다. 저명 국제 의학 저널에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은교산(銀翹散)과 마행감석탕(麻杏甘石湯) 병용 투여는 타미플루와 동등 이상의 해열 시간 단축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바이러스성 폐포 염증 반응을 유의하게 억제했습니다. 황금의 바이칼린(Baicalin), 연교의 포시소사이드(Forsythoside), 금은화의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 감초의 글리시리진(Glycyrrhizin) 등은 TLR4/MyD88 경로를 차단하고 NLRP3 염증복합체의 조립과 Caspase-1 활성화를 억제하여 IL-1β, IL-6, TNF-α의 분비를 차단합니다. 이외에 행인의 아미그달린(Amygdalin)과 길경의 플라티코딘 D(Platycodin D)는 중추성 진해 작용과 함께 점막 분비 기능을 정상화하고 기도 과민성을 완화하여 감염 후 만성 기침의 기간을 단축시킵니다. 5. 면역을 깨우고 회복을 앞당기는 일상 속 호흡기 자가 관리법 - 흡기 바이러스 질환의 예방과 신속한 회복을 위해서는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신체의 고유한 면역 탄력성을 유지하는 생활 관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온도 및 점막 습도 유지: 바이러스는 차고 건조한 환경에서 상기도 상피 침투력이 극대화됩니다. 실내 습도를 40~60%, 온도를 20~22°C로 유지하고, 미온수를 수시로 마셔서 인후 점막의 섬모 운동성과 국소 방어 물질 분비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생리식염수 비강 세척: 외출 후 또는 비충혈 및 비루 발생 시 등장성 생리식염수를 이용한 비강 세척은 상기도에 부착된 바이러스 입자와 염증 매개 물질을 물리적으로 배출시켜 부비동염 및 하기도 합병증으로의 이행을 효과적으로 방지합니다. -장-폐 축을 강화하는 식이 요법: 장내 미생물의 단쇄지방산 생성을 돕는 수용성 식이섬유(귀리, 버섯, 해조류 등)와 발효식품을 충분히 섭취해야 합니다. 반면 고지방·단순당 중심의 식단은 장내 유해 대장균을 증식시켜 폐 염증을 악화시키므로 감염기에는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호흡기 안정 약차(藥茶) 활용: 초기 인후 통증과 마른기침에는 항염·거담 효능이 입증된 도라지(길경)와 감초를 함께 달인 ‘감길탕(甘桔湯)’, 으슬으슬한 오한과 미열에는 파뿌리(총백)와 생강차를 따뜻하게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급성기 휴식과 점진적 활동 재개: 급성 발열기에는 고강도 운동을 피하고 충분한 수면을 통해 멜라토닌 분비와 T 세포 면역 기능을 회복시켜야 하며, 해열 후 점진적인 가벼운 산책과 복식호흡을 통해 폐활량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감기는 단순한 계절성 질환을 넘어 인체의 면역 조절력과 점막 항상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장과 폐의 유기적 연결망을 회복하고 신체 본연의 기운을 북돋우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일상 관리를 통해, 거친 기침과 감염의 굴레를 벗어나 맑고 건강한 숨결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Jiang W, Qi J, Li X, Chen G, Zhou D, Xiao W, Li N. Post-infectious cough of different syndromes treated by traditional Chinese medicines: A review. Chin Herb Med. 2022 Sep 28;14(4):494-510. doi: 10.1016/j.chmed.2022.09.002 2. Zhao Y, Guan M, Li S, Du Y, Kuang H, Wu L. Multi-target antiviral mechanism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polysaccharides against respiratory viruses: A review from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s to modern applications. Int J Biol Macromol. 2026 Jul;370:152859. doi: 10.1016/j.ijbiomac.2026.152859 3. Jaume F, Valls-Mateus M, Mullol J. Common Cold and Acute Rhinosinusitis: Up-to-Date Management in 2020. Curr Allergy Asthma Rep. 2020 Jun 3;20(7):28. doi: 10.1007/s11882-020-00917-5 4. Luo J, Luo J, Fang Z, Fu Y, Xu BB. Insights Into Effects of Natural Bioactive Components on Inflammatory Diseases in Respiratory Tract. Phytother Res. 2025 Sep;39(9):4199-4229. doi: 10.1002/ptr.8367 5. Zumla A, Hui DS, Peiris M, Perlman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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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stinal Escherichia coli and related dysfunction as potential target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or respiratory infectious diseases. J Ethnopharmacol. 2023 Sep 15;313:116381. doi: 10.1016/j.jep.2023.116381 9. Bai Y, Liu T, Zhang S, Shi Y, Yang Y, Ding M, Yang X, Guo S, Xu X, Liu Q.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or Viral Pneumonia Therapy: Pharmacological Basis and Mechanistic Insights. Int J Biol Sci. 2025 Jan 6;21(3):989-1013. doi: 10.7150/ijbs.105086 10. Liu Y, Meng J, Liu J, Zhang F, An C, Yang J. NLRP3 inflammasome in acute lung injury: Cumulative evidence for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natural products. Chin Herb Med. 2025 Jun 24;17(4):703-719. doi: 10.1016/j.chmed.2025.06.002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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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기침과 발열의 악순환 감기, 다중표적 면역 조절로 이겨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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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다문화 사회! ‘한국어 적응’을 넘어 ‘생각하는 정주형 인재’를 길러내는 새로운 학교를 생각한다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학령인구 감소의 한파가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을 거세게 흔들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교육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유·초·중·고 학생 수는 536만 여명으로 전년 대비 3.4%나 감소했다.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유치원이 160여 곳 이상 문을 닫는 등 교육 현장의 지형도가 급변하는 와중에도 확연한 역주행을 보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이주배경학생 수의 증가다. 올해 초·중·고 이주배경학생 수는 약 22만 명으로 전년 대비 4.3%나 늘어났으며, 이주배경 고등학생만 해도 최근 5년 새 2.7배 증가해 3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이제 이주배경학생은 우리 교실의 일상적인 구성원이자 공교육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문화 교육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소수 적응 지원'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전교생 중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30% 이상인 학교가 전국 350곳에 달하고, 재학생 100명 이상인 '다문화 학생 밀집학교'가 급증하면서 심리·정서적 상처, 교육과정의 양극화, 한국어학급 과밀화 등 복합적인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최근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 강조했듯, 핵심은 몇 명을 유치했는가가 아니라 이들이 얼마나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한국어 습득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교육 체계로의 대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실질적 이정표를 제시하는 현장이 전남미래국제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AI 실시간 통번역 시스템을 활용해 언어 장벽을 낮추고, 교과 지식과 한국어 학습을 접목한 융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혁신의 중심에는 이창민 교장과 안상묵 교감, 그리고 현장 교사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학교는 다문화 교육을 하나의 '복합적 성장 시스템'으로 접근한다. 교과 성취기준과 한국어 성취기준을 융합하고,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발표·토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대학 연계 기술 교육과 독일·우즈베키스탄 등과의 국제직업교육교류, 한국문화 체험학습을 접목하여 졸업 후 자립의 발판을 제공한다. 이는 다문화 학생을 단순 '배려의 대상'이 아닌 '미래의 자산'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러한 선도적 모델이 지역 현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책·제도적 보완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성년 외국인 유학생 관련 제도 운용에 있어 출입국 관리 당국의 관리·검증 기준과 지자체·교육청의 인구 소멸 대응 방향 간의 시각차를 정교하게 조정하고, 직업계고 현실에 부합하는 유연한 행정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한다. 이미 30~40년 전부터 이민자 수용과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결합해 온 독일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독일은 학교와 현장을 오가는 이중 직업교육(아우스빌둥) 체계와 지자체·기업·학교가 참여하는 공공 관리망을 통해 유학생의 인권 보호와 안정적인 지역 정주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현장 실무와 학문적 깊이를 병행하는 선진 교육 인프라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과 지역 사회의 상생을 위해 추진해야 할 대안적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취업과 대학 진학을 아우르는 '입체적 성장 로드맵' 구축이다. 고교 단계의 직업 교육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과의 연계교육과정을 신설하여 전문학사 및 학사 학위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문화 청소년들이 고숙련 전문 인재로 지역에 정주할 수 있도록 유연한 비자 및 제도적 트랙을 다각화해야 한다. 둘째, 관계 부처 간 협력 및 유연한 제도 운용이다. 지자체와 교육청의 인재 양성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출입국 및 외국인 정책 당국 역시 미성년 직업계고 유학생에 특화된 정주 연계 가이드라인과 비자 기준을 전향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교육청 차원의 사전 검증 및 관리 역량 강화다. 재외한국교육원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전 검증으로 입국 전 한국어·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가변적 학급 운영과 교원 배치, 지자체 연계 인권 보호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넷째, '교과 융합 및 사고력 중심 교육과정'의 전국적 확산이다. 에듀테크 인프라를 적극 지원하여 언어적 부족함이 지적 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교과 수업의 질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저출산 위기는 역설적으로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전남미래국제고가 보여준 공교육 모델이 중앙부처의 유연한 결단과 교육청의 정교한 보완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될 때, 대한민국 공교육은 '준비된 미래'를 당당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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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부산에서 다시 묻는다: AI 시대, 기억을 다루는 성숙한 시민의 역량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2026년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선언'을 통해 세계유산을 통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회의의 주요 담론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유산의 지정에 그치지 않고, 이미 지정된 유산이 '과거의 역사를 얼마나 온전하고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었다. 일본 사도(佐渡)광산 관련 논의가 대표적이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되었던 '전체 역사(Full History)'의 정직한 반영과 강제노동 현장에 대한 성실한 해설 문제로 인해, 이후 개최된 추도식 등에서 상호 간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미흡했던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은 당사국의 이행 노력을 점검하며, 광산 개발의 모든 시기를 아우르는 역사적 진실을 현장 전시에 균형 있게 반영하고 성실한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역사의 어두운 면까지 포함한 전체 역사의 기록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신뢰를 얻는 기본 조건임을 재확인해 준다. 이 같은 경과는 기억의 장소를 조성하는 일과, 그 장소에 담길 역사적 진실의 깊이를 다듬는 일이 얼마나 세심한 외교적·문화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단일 국가의 영역을 넘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신뢰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은 미디어와 디지털 공간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무대가 오프라인 기념관이나 종이 교과서를 넘어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와 세계유대인회의(World Jewish Congress)의 보고서가 지적하듯, 생성형 AI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료를 환각(Hallucination)하여 제시할 위험성에 대한 세심한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디지털 공간에서는 기술을 활용하여 가짜 희생자 프로필이나 검증되지 않은 사진을 유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오랫동안 시각 자료가 가져온 "진실의 증거력"에 대해 보다 엄정하고 비평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역사 기억에 위험요소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쇼아재단(USC Shoah Foundation)의 '증언 360' 프로젝트나 생존자 홀로그램 작업처럼, 기술은 참상의 기억을 후대에 생생하게 전승하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때 기술진이 생존자의 실제 언어와 증언 범위 내에서만 AI가 응답하도록 엄격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세운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의 편의성을 누리되, 사료의 원본성과 역사적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는 윤리적 절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공교육과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은 성숙한 대안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초등 교육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사료의 출처 확인'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역사적 콘텐츠를 접할 때 이미지 역검색을 해보고, C2PA 등 출처 정보 표시를 확인하며 정직한 사실을 선별해 내는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중·고등학교 답사 프로그램의 내실화다. 기념관 관람을 단지 정서적 감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세 가지 질문-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어떠한 전시 장치가 활용되었는가, 사료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되어 있는가-을 바탕으로 공간을 능동적으로 분석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고등학교와 대학 과정에서 AI 생성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의 도입이다. 출처 확인, 맥락 파악, 타 사료와의 대조 등 전통적인 사료 비판 메커니즘을 디지털 정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AI의 답변을 완결된 사실이 아닌 '검증이 필요한 기초 자료'로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을 확립해야 한다. 넷째, 논리적 글쓰기와 토론 교육의 획기적 강화다. 역사적 주장을 펼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와 통계의 근거를 밝히고, 단순한 감정적 수사와 객관적 인과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방의 합리적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논리적으로 반론을 다듬는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섯째, 교사와 시민이 함께하는 교육적 연대다. 디지털 기술과 역사학의 사료 비판을 융합한 종합적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가 다변화되는 정보 환경에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대개 사료의 부족보다는, 기억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와 이를 다루는 정보 환경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해법 역시 성숙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비판 의식과 윤리적 통찰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을 정직하게 확인하고, 왜 이 기억이 호출되었는가를 깊이 있게 질문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역사와 기억은 서로를 이끌어주는 두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의 엄정함과 성찰의 마음을 균형 있게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부산의 세계유산위원회가 던진 성찰적 메시지처럼, 우리가 고민해야 할 핵심은 단순한 기억의 소유가 아니라 '기억을 다루는 우리의 성숙하고 정직한 태도'일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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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부산에서 다시 묻는다: AI 시대, 기억을 다루는 성숙한 시민의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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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연세대학교 논술
-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 가운데 상당수는 논술을 어렵게 생각한다. 긴 제시문을 읽어야 하고, 여러 글을 비교해야 하며, 제한된 시간 안에 답안까지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세대 인문논술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고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화제에 대해 다면적 사고를 요구한다. 따라서 극단적 대립성을 주의하고 양립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논술은 제시문의 내용을 외우는 시험이 아니라, 제시문의 관계를 찾는 시험이다.” 연세대 논술을 준비할 때는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다음 순서만 정확하게 익히면 된다. 화제→쟁점→핵심어→비교 기준→제시문 관계→답안 작성이 여섯 단계가 연세대 논술의 기본 틀이다. ■ 1단계, 가장 먼저 ‘화제’를 찾는다. 논술 문제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제시문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찾는 것이다. 이것을 화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세 제시문이 인간의 행동, 자유, 사회적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공통 화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화제는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이 글들은 모두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화제를 찾지 못하면 제시문을 각각 따로 읽게 된다. 그러면 세 글의 관계를 놓치기 쉽고 답안 역시 단순한 내용 정리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화제를 먼저 잡으면 제시문 전체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 2단계, 서로 의견이 갈리는 ‘쟁점’을 찾는다. 화제를 찾았다면 그다음에는 쟁점을 찾아야 한다. 쟁점은 같은 화제를 놓고 제시문들의 생각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공통 화제가 ‘인간의 행동’이라고 하자. (가)는 인간의 행동이 타고난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나)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 두 제시문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렇게 질문형으로 바꾸면 쟁점이 훨씬 쉽게 보인다. 수험생은 논술을 읽을 때 늘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이 글들은 무엇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바로 그 답이 쟁점이다. ■ 3단계, 각 제시문을 한 두 단어로 압축한다. 쟁점을 찾았다면 각 제시문의 입장을 대표하는 핵심어를 찾아야 한다. 제시문 전체를 길게 외우거나 정리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나)가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한다면 다음처럼 정리할 수 있다. ▲(가) = 개인·자율 ▲(나) = 공동체·규범 이처럼 핵심어를 잡으면 두 글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좋은 논술 답안은 어려운 표현을 많이 쓰는 답안이 아니다. 복잡한 제시문을 짧고 정확한 개념으로 정리하는 답안이 좋은 답안이다. ■ 4단계, 세 제시문의 ‘자리’를 정한다. 연세대형 논술에서는 세 개 이상의 제시문(영어 제시문 1개)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각의 제시문을 읽은 뒤 “이 글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나올 수 있다. ▲(가) : 개인의 자유를 강조 ▲(나) : 사회의 규범을 강조 ▲(다) :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규범을 모두 인정 이 경우 (가)와 (나)는 서로 대립하고, (다)는 두 입장을 절충하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문제에서는 (다)가 양쪽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관점에서 두 입장을 모두 포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은 뒤 반드시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누가 누구와 반대되는가?” “누가 누구와 비슷한가?” “나머지 한 제시문은 절충하는가, 보완하는가, 포괄하는가? ” 이 세 질문만 제대로 해도 제시문 구조가 상당히 명확해진다. ■ 5단계, 답안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을 쓴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답안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제시문 (가)는… ”이렇게 시작하면 제시문 요약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다 좋은 방법은 세 제시문을 나누는 비교 기준을 첫 문장에 먼저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본성과 사회적 환경 가운데 어디에서 찾는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 한 문장이 정확하면 이후 답안은 훨씬 쉬워진다. 그다음 (가)의 입장을 설명하고, ‘반면’을 이용해 (나)를 쓰고, ‘한편’을 이용해 (다)의 입장을 정리하면 된다. 즉, 답안 작성의 기본 공식은 간단하다. ▲첫 문장 = 비교 기준 ▲다음 문장 = 각 제시문의 입장과 근거이 구조를 기억하면 답안이 훨씬 안정적으로 정리된다. ■ 6단계, 접속어를 이용하면 관계가 선명해진다. 논술에서 접속어는 매우 중요하다. ‘반면’ ‘그러나’ ‘한편’ ‘공통적으로’ ‘이에 비해’ 등의 표현은 단순히 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시문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표시다. 예를 들어 (가)와 (나)가 반대라면 ‘반면’을 사용하고, (다)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면 ‘한편’을 사용할 수 있다. 채점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수험생이 제시문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쟁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세 가지부터 확인하라. 가끔은 제시문을 읽어도 무엇이 다른지 쉽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다음 세 가지 기준부터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첫째는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 변화 전과 변화 후가 대비되는지 본다. ▲둘째는 공간이다. 동양과 서양, 도시와 농촌, 국가와 세계처럼 위치나 범위가 다른지 확인한다. ▲셋째는 관점이다. 철학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 개인 중심과 사회 중심처럼 접근 방식이 다른지 살펴본다. 이 세 가지를 적용하면 숨겨져 있던 차이가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 예시 하나로 정리해 보자. ▲화제 : 인간의 본성 (가) : 인간은 본래 선하다 (나) : 인간은 본래 악하다 (다) : 인간에게는 선과 악의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 경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화제 = 인간의 본성 ▲쟁점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핵심어 = 선 / 악 / 양면성 ▲제시문 관계 = (가)와 (나)는 대립 (다)는 절충답안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 있다. “세 제시문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 이후에는 (가), (나), (다)의 주장을 차례로 설명하면 된다. 이렇게 구조를 먼저 잡으면 답안을 쓰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 연세대 논술은 ‘많이 쓰는 학생’보다 ‘정확히 나누는 학생’이 강하다. 논술 답안이 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답안은 아니다. 제시문 내용을 많이 옮겨 적었지만 비교 기준이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반대로 분량이 조금 짧더라도 쟁점과 비교 기준이 분명하고 각 제시문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논리적인 답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제시문을 읽으면서 늘 다음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무엇이 같은가?", ”무엇이 다른가?”, “왜 다른가?”, “이 차이를 어떤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이 논술 독해의 기본이다. ■ 기출문제를 풀 때도 반드시 구조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기출문제를 풀고 답안을 작성했다면 끝내서는 안 된다. 답안을 쓴 뒤 다음 사항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화제를 정확하게 찾았는가. 쟁점을 질문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각 제시문을 한두 개의 핵심어로 정리했는가. 세 제시문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 첫 문장에 비교 기준이 들어가 있는가. ‘반면’, ‘한편’ 등의 접속어를 정확하게 사용했는가. 이 과정을 반복하면 처음 보는 제시문이 나오더라도 일정한 순서에 따라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 “논술은 글을 잘 쓰는 시험이기 전에, 글의 구조를 찾아내는 시험이다.” 수험생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섯 가지다. 화제 → 쟁점 → 핵심어 → 비교 기준 → 제시문 관계 → 답안 작성이 순서를 반복해서 훈련하면 어렵게만 보이던 연세대 논술도 점차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논술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무엇을 말하는지 찾고, 어디에서 생각이 갈리는지 확인하고, 그 차이를 정확한 말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드시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출제자는 왜 이 제시문들을 함께 제시했을까?”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수험생은 제시문을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읽게 된다. 제시문의 내용을 읽는 학생에서 제시문의 관계를 읽는 학생으로 바뀌는 순간, 논술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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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의 왕 김광휘] 2027 대입논술 비법 - 연세대학교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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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한 추모: 난징대학살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성찰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1937년 12월 13일,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중국 난징(南京)을 점령했다. 이후 약 6주 동안 자행된 무차별 학살과 성폭력, 방화와 약탈은 인류 문명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긴 비극이었다. 짓밟힌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과 참혹한 범죄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위로하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차분히 돌아볼 때도 피해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장제스(蔣介石) 휘하 국민당 군대와 중국 민중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치열한 항전의 역사적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러한 희생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사료 검증을 거친 정밀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과 비판의 정당성을 더 한층 굳건히 세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희생자 수치를 둘러싼 논쟁 역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온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 공식 입장의 '30만 명' 수치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의 '20만 명 이상' 판정, 그리고 여러 사료에 기반한 학계의 다양한 추정치는 저마다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간절한 노력의 산물이다. 일부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자의적인 수치 축소나 학살 부인 시도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두 번 짓밟는 행위로서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피해의 크기를 둘러싼 소모적인 '숫자 줄다리기'에 매몰되어 정작 개개인이 겪은 삶의 파괴를 잊는 일이다. 숫자의 다과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이 겪어내야 했던 참혹한 고통과 인권의 짓밟힘 그 자체를 아프게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추모의 출발점이다. 난징 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중국어: 侵华日军南京大屠))의 건립과 발전 과정은 이처럼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피해국 중국의 절박한 기억 투쟁이었다. 과거 일본 교과서 검정 파동 이후 침략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깊은 우려가 높아지자, 난징시는 사료를 모으고 현장을 보존하여 집단학살 유적지인 장둥먼(江東門) 위에 기념관을 개관했다. 이후 자료실 확장과 '평화의 배' 형상의 신관 건립, 그리고 국가 추모일 지정에 이르기까지 기념관은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고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성찰의 공간으로 발전해 왔다. 다만 국가적 차원의 의례와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에서, 자칫 피해자가 겪은 숭고한 슬픔과 애도의 본질이 정형화되거나 정치적 대립의 언어로 소비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성찰이 필요하다. 진정한 추모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적 선전이나 외교적 대립의 틀을 넘어, 방문객 개개인이 피해자의 억울한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자발적인 슬픔과 평화의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따뜻하고 유연한 감성적 여백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가해의 역사를 모호하게 흐리거나 봉인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역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비극을 다루는 가장 성숙한 태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피해자의 관점'을 확고히 중심에 두고,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사실에 기반하여 참상을 정직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랜 시간 강조해 온 것처럼, 참상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분노를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배움터'로 승화될 때 더욱 깊은 울림과 설득력을 얻는다. 하나의 정해진 국경의 서사에 갇히기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다양한 역사적 증언이 생생하게 소통하게 하고,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보편적 평화의 연대로 나아가는 포용적 태도가 기대된다. 독일과 폴란드가 오랜 대화 끝에 출간한 공동 역사교과서 『유럽-우리의 역사』(Europa – Unsere Geschichte)는 좋은 이정표가 된다. 이 교과서는 단일한 정답을 강요하는 대신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각국의 시각과 근거 사료를 나란히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비평적으로 검증하게 한다. 동아시아 역시 소모적 갈등을 넘어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역사적 진실에 기반한 공통의 평화 지혜를 모아갈 필요가 있다. 교실 현장에서도 숫자를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을 넘어, 다양한 사료와 기록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지 스스로 추적하며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가"를 다투기보다 "무엇이 입증된 사실이며, 참혹한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아프게 묻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30만이라는 수치 뒤에 숨겨진 수많은 개인의 참혹한 희생과 중국 민중이 겪어낸 슬픔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엄정한 사료와 진실에 뿌리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윤리적으로 직시할 때, 비로소 난징대학살기념관은 온 인류가 함께 고개 숙여 피해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배우는 거룩한 성지로 완성될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교육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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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피해자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한 추모: 난징대학살기념관이 지향해야 할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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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역설] "명문고 아닌 빈 교실 우려" 자사고 지원자 4년 연속 감소…지방 유치 신중해야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향한 학생들의 선택이 4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역단위로 운영되는 자사고들은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곳이 속출하면서, 지방 소도시에서 논의되는 신규 자사고 설립·유치 계획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입시전문 종로학원이 공개한 2026학년도 고입 지원 현황을 보면, 전국 32개 자사고 지원자 수는 1만 2,786명으로 전년(1만 4,228명) 대비 10.1% 감소했다. 자사고 지원자는 2023학년도 1만 4,527명을 정점으로 2024학년도 1만 4,050명, 2025학년도 1만 4,228명을 거쳐 올해까지 4년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 평균 경쟁률도 1.36대 1에서 1.22대 1로 낮아졌다. 지역단위 자사고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전국 22개 지역단위 자사고의 평균 경쟁률은 1.09대 1에 불과해, 지원자 수(8,572명)가 사실상 모집 정원과 맞먹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부일외고(0.95대 1)를 비롯해 대전대성고(0.90대 1), 안산동산고(0.78대 1), 양정고(0.86대 1), 세화여고(0.85대 1), 경희고(0.77대 1) 등은 이미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강남권 전통 명문으로 꼽혀온 휘문고(0.50대 1)마저 2년째 미달을 기록했다. 취약계층을 배려하기 위한 사회통합전형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전국 22개 자사고의 사회통합전형 평균 경쟁률은 0.52대 1에 머물렀고, 서울 소재 자사고 14곳은 6년 연속 단 한 곳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 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 수가 전년보다 2,823명 늘었는데도 지원율이 떨어진 것은, 단순한 학령인구 감소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사고 선호도 하락'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학 실적을 봐도 '자사고=입시 성공'이라는 공식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2025년 2월 졸업생 기준 전국단위 자사고 10개교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평균 65.3%로 전년(59.7%)보다 올랐지만, 진학률 통계에서 빠지는 재수·N수 추정 비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2025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중 자사고 출신은 500명으로 전체의 13.3%를 차지해 상위권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이 성과는 소수의 전국단위 명문 자사고에 집중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비 부담과 제도적 불확실성도 자사고의 발목을 잡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자료와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단위 자사고 학생 1인당 학부모 부담금은 약 1,335만 8,000원으로, 일반고(약 71만 3,000원)의 19배에 이른다. 자사고 측은 정부 지원 없이 재단 전입금과 학부모 부담금만으로 기숙사와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구조상 학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부모가 느끼는 부담은 상당하다.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 방향도 불안 요소다. 2019년 자사고 79개교를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가 2024년 1월 시행령 개정으로 존치가 결정됐지만, 2025년 12월 서울시교육감이 2030년까지 자사고를 다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본지 2026.07.28. 보도) 교육감이 5년 주기 운영성과평가를 근거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권한(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4)을 갖고 있다는 점도 신규 설립을 검토할 때 짚어야 할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외고·국제고의 경쟁률은 같은 기간 4년 연속 올라(1.24대 1→1.54대 1) 자사고와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되는 내신 5등급제 개편으로, 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자사고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신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자사고 기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교육계에서는 "기존 자사고조차 정원을 못 채워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학생 수급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없이 '지역 명문고 유치'라는 상징성만 앞세워 신규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와 교육 당국이 신규 유치를 검토한다면 단기적 이슈보다 지역 학생 배정 비율, 차별화된 교육과정, 정책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먼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본지 2025.08.14.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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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의 역설] "명문고 아닌 빈 교실 우려" 자사고 지원자 4년 연속 감소…지방 유치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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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삐걱거리는 무릎 관절염, ‘연골 마모’ 가 아닌 ‘전신 대사 질환’ 관점으로 관리하기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단순 관절 퇴행이 아닌 전신성 만성 질환으로 인식되는 골관절염의 새로운 이해 - 골관절염(OA)은 전 세계적으로 6억 명 이상이 고통받는 대표적인 퇴행성 관절 질환입니다. 과거에는 골관절염을 단순한 역학적 과부하와 노화에 따른 '관절 연골의 물리적 손상'으로만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신 병태생리학 연구들은 골관절염을 연골뿐만 아니라 연골하골(subchondral bone), 활액막(synovium), 인대, 슬개하 지방패드(IPFP) 등 관절 전반의 조직과 전신 대사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전신 질환'이자 '전체 관절 질환(whole-joint disorder)'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골관절염으로 인하여 일단 관절 손상이 시작되면 손상된 조직에서 분비되는 손상 관련 분자 패턴(DAMPs)이 패턴 인식 수용체(PRRs)를 자극하여 활막염을 유발합니다. 이 과정에서 활성화된 대식세포와 연골세포에서 인터루킨-1베타(IL-1β),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인터루킨-6(IL-6) 등의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대량 방출됩니다. 이 물질들은NF-κB, MAPK, JAK/STAT 신호전달 경로를 자극하여 MMP-13 및 ADAMTS-4/5와 같은 세포외기질(ECM) 분해 효소의 합성을 유도하고 제2형 콜라겐(Col2a1)과 아그레칸(aggrecan)의 파괴를 가속화합니다. 나아가 연골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에 따른 활성산소(ROS) 축적과 소포체 스트레스가 연골세포의 조기 사멸(apoptosis)과 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SASP)의 분비를 유발하며 만성적인 관절 퇴행의 악순환을 형성하게 됩니다. 2. 진통제와 대증 치료만으로 골관절염 관리가 힘든 이유 - 현재 골관절염의 표준 약물 치료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 아세트아미노펜, 마약성 진통제(opioids) 경구 투여 및 히알루론산,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관절강 내 주사 등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들은 일시적인 통증 경감에 그칠 뿐, 질병의 구조적 진행을 정지시키거나 역전시키는 근본적인 구조 개선 치료제(DMOAD)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를 장기복용하게 되면, 소화성 궤양, 위장관 출혈의 발생률이 높아지며, 신혈류 감소로 인한 급성 신장 손상 및 심혈관계 혈전 질환, 뇌졸중의 위험이 증가하여 고혈압, 당뇨병 등을 동반한 고령 환자에게는 지속적인 처방이 권장되지 않습니다. 아울러 관절강 내 스테로이드 주사 역시 반복 시술 시 오히려 연골 손상을 촉진하고 감염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통증 조절에 실패한 환자들이 선택하는 인공관절 치환술은 인공 삽입물의 수명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근본적인 한계 이외에도, 상황에 따라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 감염의 위험과 함께 수술 후에도 20~30% 환자에서 만성 중추성 통증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3. 관절염과 비만·노화가 얽힌 ‘대사성 표현형’과 ‘SASP(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 - 골관절염 환자의 60~85% 이상은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 근감소증 등 한 가지 이상의 만성 전신 질환을 동반합니다. 특히 비만은 단순한 체중 부하의 증가뿐만 아니라, 백색 지방 조직에서 분비되는 렙틴(leptin), 아디포넥틴, 아딥신(adipsin) 등 아디포카인(adipokine)과 보체계 인자의 만성적 분비를 통해 전신 및 손, 무릎 등 다발성 관절의 염증과 통증 감작을 촉진합니다. 세포 수준에서는 스트레스와 노화로 인해 영구적인 세포 주기 정지에 들어간 ‘노화 연관 분비 표현형’ 연골세포의 축적이 핵심 병인으로 작용합니다. 세포 분열을 멈춘 노화 연골세포는 사멸하지 않고 대사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IL-1β, IL-6, TNF-α, MMP-3, MMP-13 등을 지속적으로 분비하여 주변의 건강한 정상 연골세포까지 연쇄적으로 분해합니다. 골관절염은 이처럼 국소 관절의 문제를 넘어, 체내 염증성 대사 이상과 세포 노화가 관절에 투영된 '전신 대사-면역 불균형 질환'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4. 골관절염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 침, 전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연골의 구조적 보존 및 전신적 조절을 달성하기 위해 한의학적 복합 중재 치료가 전 세계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첫째, 침 및 침전기자극술(electroacupuncture) 치료의 우수한 진통 및 기능 개선 효과가 대규모 다기관 임상시험과 메타분석을 통해 명확히 규명되었습니다. 2024년 BMJ Evidence-Based Medicine에 발표된 80건의 무작위 대조 시험(RCT, 총 9,933명) 대상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침 치료는 가짜 침, NSAIDs, 일상 관리 대조군 대비 무릎 통증 강도(VAS)와 WOMAC 신체 기능 장애를 임상적으로 매우 의미 있게 개선하였습니다. 특히 네트워크 메타분석(SUCRA 99.7%) 결과, 전침 치료는 일반 수기 침에 비해 통증 완화 효과가 유의하게 우수함(SMD -0.75, 95% CI -1.34 ~ -0.17)이 확인되었으며, 충분한 치료 자극 용량(주 2~3회 이상, 8주 이상)이 치료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2026년에 저명 의학 학술지인 eClinicalMedicine에 보고된 480명 대상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6주간의 전침 치료(주 3회, 혈위: 혈해, 양구, 독비, 내슬안, 족삼리, 양릉천, 삼음교, 현종)가 가짜 침 대비 WOMAC 총점을 현저히 개선하였고, 치료 효과가 30주간 지속됨을 입증하였습니다. 또한 이 연구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정량적 무릎 MRI 분석을 통해, 전침 치료군가 슬개하 지방패드(IPFP) 신호 강도 및 관절삼출액 깊이를 유의하게 감소시켜 활막염을 억제하고, 대퇴 및 경골 연골 두께와 부피 손실을 지연시키는 초기 구조 보호 효과를 확인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독활기생탕, 양화탕 등 관절염에 전통적으로 활용되어 온 대표 한약 처방은 다중 경로·다표적 분자 조절 기전을 발휘합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독활기생탕은 TGF-β/Smad2/3 신호전달계를 활성화하여 제2형 콜라겐과 아그레칸의 합성을 촉진하는 동시에 MMP-13 발현을 차단하여 손상된 관절 연골을 회복시킵니다. 양화탕은 AMPK-SIRT3 경로를 매개로 미토파지(mitophagy)를 촉진해 산화 스트레스와 연골세포 조기 사멸을 유의하게 차단합니다. 아울러 관절염 치료에 널리 활용되어온 한약재들의 유효 성분(ASP, APS, Achyranthoside D, Tanshinone IIA 등)은 NF-κB 및 p38 MAPK의 인산화를 억제하고 Nrf2/HO-1 항산화 시스템을 가동하여 관절 내 만성 염증 환경과 SASP 분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5. 관절 건강 수명을 늘리는 일상 속 골관절염 자가 관리법 - 성공적이고 장기적인 관절염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한의학 치료와 더불어 관절에 가해지는 역학적·대사적 부하를 줄이는 생활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 체중 조절 및 전신 대사 관리: 과체중 및 비만 환자의 체중 감량은 무릎에 가해지는 기계적 압력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전신 혈액 내 전염증성 아디포카인(leptin) 수치를 신속히 낮춰 통증 감작을 완화합니다. 단순 식사 제한보다는 양질의 단백질 섭취와 결합된 체중 유지가 권장됩니다. • 관절 맞춤형 저부하 운동: 통증이 두려워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액 순환이 이루어지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허벅지 근육은 위축되기 때문에 도리어 관절 불안정성이 심화됩니다. 평지 걷기, 실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체중 부하가 적은 유산소 운동과 함께 대퇴사두근(허벅지 앞쪽) 등척성 근력 강화 운동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 관절 손상 및 미세손상 예방: 바닥에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 자세, 무거운 짐을 드는 동작은 무릎 관절 내 압력을 정상의 수 배로 치솟게 만들어 관절 파괴와 연골세포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는 좌식 대신 입식 의자 생활이 권장됩니다. 만성 골관절염은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닌 관절 조직과 전신 대사 면역계가 얽힌 복합 질환입니다. 관절의 비정상적인 미세 염증을 가라앉히고 조직 손상을 완화하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올바른 대사·운동 관리를 병행하여, 관절 통증의 굴레를 끊고 건강한 100세 관절을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Liu CY, Duan YS, Zhou H, Wang Y, Tu JF, Bao XY, Yang JW, Lee MS, Wang LQ. Clinical effect and contributing factors of acupuncture for knee osteoarthritis: a systematic review and pairwise and exploratory network meta-analysis. BMJ Evid Based Med. 2024;29(6):374-384. 2. Saxer F, Jansen G, Bierma-Zeinstra SMA, Holzhauer B, Demanse D, Melnick J, Vukadinovic Greetham D, Rall T, Mesenbrink P, Schieker M. Why is there no treatment for osteoarthritis - Opportunity for AI based big data analytics to advance the field. Osteoarthritis Cartilage. 2026;34(5):657-666. 3. King LK, Abhishek A. OA fundamentals series: Diagnosis and clinical assessment of osteoarthritis. Osteoarthritis Cartilage. 2026;34(10):1293-1300. 4. Umar M, Wang Z, Li J, Li Z, Li G, Tong L, Chen D. Novel therapeutic strategies for osteoarthritis: from mechanistic insights to precision medicine. Bone Res. 2026;14(1):64. 5. Hang M, Shao Y, Lu W, Wang X, Xu H, Chen S, Yu X, Zhu J, Luo X, Yi H, Zhang J, Wang Y, Xue S, Liu S, Gong Z, Song Z, Xiao L, Xiang Z, Yan S, Zhang T, Yao R, Wang T, Tang Z, Cong L, Li Q, Zhao H, Meng W, Fan Y, Ao R, Liu B, Tao L, Gu X, Ding L, Wu T, Xu Y, Wang Y, Liang Q. Electroacupuncture for knee osteoarthritis: a multicentre randomised controlled trial assessing symptomatic and structural efficacy. eClinicalMedicine. 2026;96:103982. 6. Lu Y, Zhou H, Luo H, Hu W, Hu L, Xie J, Wu X, Li B, Zhou J, Fan S, Shan J, Chen Y, Zhang F. Molecular Mechanism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in Treating Osteoarthritis. Am J Chin Med. 2026;54(3):763-793. 7. Zhang Y, Han Y, Sun Y, Hao L, Gao Y, Ye J, Wang H, Zhang T, Liu Y, Yang Y. Osteoarthritis: molecular pathogenesis and potential therapeutic options. Signal Transduct Target Ther. 2026;11(1):81. 8. Afzal M, Rekha MM, Sahoo S, Pandey SN, Maji C, Goyal K, Ali H, Singh SK, Gupta G, Hussain MS. Targeting the 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to modify osteoarthritis in aging. Inflammopharmacology. 2025;33(11):6555-6575. 9. Collins KH, Haugen IK, Neogi T, Guilak F. Osteoarthritis as a systemic disease. Nat Rev Rheumatol. 2025;21(12):733-747. 10. Peng Z, Li Y, Sun N, Jia Y, Shi M, Xi K, Dong H, Zhou Z, Leng X. Advancements in Osteoarthritis Treatment: The Potential of Natural Herbs in Reducing Inflammation and Cartilage Degeneration. Phytother Res. 2026;40(1):1-23.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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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삐걱거리는 무릎 관절염, ‘연골 마모’ 가 아닌 ‘전신 대사 질환’ 관점으로 관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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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신분증 한 장의 힘-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어떻게 우리를 설득하는가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미국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입구에서 한 장의 신분증을 손에 쥐게 된다. 그 카드 안에는 나치 치하에서 실제 삶을 영위했던 어느 희생자의 신원과 얼굴, 나이, 직업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 순간, 관람객의 관념 속에 거칠게 맴돌던 '600만 명'이라는 막연한 통계 수치는 눈앞의 '구체적인 한 사람'의 생애로 체화된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열거하고 설명하는 고전적 공간이 아니다. 관람객을 참상의 서사 속으로 깊이 침전시키는 고도의 감정 이입 장치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설계되었다. 미국 워싱턴 D.C.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외관 또는 중앙홀(Hall of Witness) 전시 동선은 정교하고도 치밀하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면 수용소를 처음 목격했던 미군 병사들의 충격 어린 시선이 먼저 전시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실물 크기로 확대된 희생자들의 아득한 시선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유대인들을 실어 나르던 가혹한 화물열차가 놓여 있고, 폴란드 마이다네크(Majdanek) 수용소에서 옮겨온 약 4,000켤레의 신발 더미가 유리벽 너머 산처럼 쌓여 있다. 빛 바랜 어른의 구두와 때 묻은 아기의 신발이 뒤엉킨 그 참혹함 앞에서 관람객들은 비통함에 말을 잃는다. 오랫동안 폴란드 박물관의 대여품이었던 이 신발들은 최근 영구 기증 절차를 마감하며 박물관의 영구 소장품으로 안착했다. 유물의 소유권조차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얼굴들의 탑'은 또 다른 정서적 파경을 선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 에이시슈케스(Eišiškės) 주민들이 들녘과 카메라 앞에서 밝게 웃음 짓던 일상의 사진들이다. 참혹한 시신 사진보다 온기가 남아있는 일상의 웃음이 상실의 깊이를 더욱 아프게 파헤친다. 그러나 전시의 종장(終章)에 다다르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난민 입국 완화 조치와 유대인들의 미국 이주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 독립선언서가 차례로 배치된다. 여기서 서사의 주어가 조용히 바뀐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는가? 유럽 땅에서 자행된 학살의 비극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절망에 빠진 이들을 포용하고 구원한 '관용의 제국 미국'의 서사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것이 기념관이 수행하는 정교한 재구성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 그 사실들을 어떤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 속에 안착시킬 것인가를 공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념관은 역사적 진실을 부당하게 왜곡하고 있는가? 단정하기는 어렵다. 역사학의 엄정한 비평 기준-사료의 진위성, 증거의 대표성, 해석의 자율성 보장, 감정과 맥락적 원인 설명의 균형-을 대입해 볼 때, 워싱턴 박물관은 합격점을 받는다. 나치의 학살은 객관적 문서와 입증된 증언으로 증명된 사실이며, 유물은 진품이고, 학살의 구조적 원인도 충실히 제시된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해석을 물리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기억이 도덕적 성찰을 넘어 하나의 '산업'이자 정치적 자본으로 전환될 때 발생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를 둔 학자 핑켈슈타인(Norman G. Finkelstein)은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The Holocaust Industry)을 통해 이 지점을 매섭게 고발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미국 내에서 홀로코스트는 오랫동안 전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유대계 미국인 주류 사회가 주류사회에의 융합과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최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 분쟁을 거치며 이스라엘의 안보 위기가 고조되자,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미국 외교 정책과 유대계 공동체 결속을 위한 핵심적 도덕적 방패로 전면에 소환되었다. 배상금을 둘러싼 비판은 한층 더 신랄하다. 피해 생존자의 범위를 기형적으로 확장하여 거액의 배상금을 수령했음에도, 그 자금이 정작 고통받은 개인에게 전달되기보다 유대계 정치 단체의 기금과 사업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지적이다. 단적인 예로 언급되는 스위스 은행 집단소송을 보자. 당시 스위스 정부가 난민 송환에 대해 공식 사과했으나, 항간에 알려진 12억 5,000만 달러는 초기 청구액이 아니다. 법원에 제기된 집단소송이 스위스 유수의 은행들과의 합의를 통해 확정된 최종 타결금이었으며, 이 자금은 이후 전 세계 수십만 명의 피해자들에게 분배되었다. 핑켈슈타인의 파격적 주장은 여전히 치열한 논쟁 한가운데 있다. 역사적 비극이 권력과 금전의 지렛대로 오용되는 현상을 겨냥한 정당한 비판이라는 평가와, 역사 부정론자들에게 악의적인 빌미를 제공한다는 반론이 매섭게 맞선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핵심은 특정 입장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명백한 역사적 사실일지라도, 그것이 소환되는 시점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정치적 역학을 발휘한다는 무서운 진실이다. 이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중동의 충돌 상황을 두고 독일 지성계는 "독일이 지켜온 기억문화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하게 분열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절대적 독자성을 강조하는 주장에서부터, 로트베르크(Michael Rothberg)처럼 서구 식민주의 폭력의 역사와 홀로코스트를 연대적으로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다원적 기억론이 거세게 충돌한다. 불붙은 쟁점은 '과거에 일어난 팩트'가 아니라, '그 팩트를 오늘날 어떤 언어로 소환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기억이 실시간으로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는 고통스러운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사점은 한국의 수많은 역사 및 평화 기념관을 학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의 기념관 역시 일방적인 추모나 순종적 감탄에 머무르는 성지가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연출된 의도를 해부하는 비판적 학습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장 답사 수업에서 학생들이 전시 공간이 유도하는 정서, 이를 구현한 물질적 장치, 그리고 전시가 침묵한 어둠을 스스로 탐색하게 한 뒤, 상호 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다원적 수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간의 서사를 능동적으로 읽어내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칠 때, 기념관은 비로소 성찰하는 배움터로 전환된다. 더 나아가 중등 및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정서적 감흥과 맥락적 원인 규명을 엄격히 구분하는 ‘논리적 글쓰기와 반론 토론’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 자체가 오류는 아니다. 그러나 정서적 몰입이 인과관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압도할 때 교육은 선동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 경계를 감지하고 객관적으로 논증해 내는 비판적 사고야말로 성숙한 시민 의식의 출발점이다. 신분증 한 장은 관람객의 마음을 흔드는 경이로운 교육적 장치다. 그러나 그 신분증을 인쇄하고 동선을 설계한 주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감동이라는 달콤한 환각 속에서 판단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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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신분증 한 장의 힘-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어떻게 우리를 설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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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수능 전 논술, 준비된 학생에게 기회가 온다
- [교육연합신문=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이제부터의 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수능만 바라보며 달려가기도 벅찬 시기지만, 논술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바로 수능 전에 실시되는 논술고사다. 일부 대학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기 전부터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특히, 10월 초부터 논술 일정이 시작되는 만큼 해당 대학을 지원한 학생들은 수능과 논술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와 자신에게 맞는 전략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 학생들의 논술과 면접을 지도하면서 늘 이렇게 말해왔다. “입시는 많이 하는 학생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학생이 강하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지원 대학의 공식자료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대학이 어떤 사고력과 답안방식을 요구하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 10월부터 시작되는 논술 레이스 2027학년도 수시 논술전형은 수능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10월 3일에는 서울시립대와 홍익대 서울캠퍼스 자연계열 논술고사가 예정돼 있다. 홍익대는 자연계열에 이어 10월 4일 인문계열 논술고사를 진행한다. 이처럼 논술은 수능이 끝난 뒤 준비하는 시험이 아니다. 특히 수능 전 논술을 선택한 학생은 지금부터 대학별 기출문제와 모의논술을 직접 풀어보며 실전감각을 키워야 한다. “수능을 잘 본 뒤 논술을 생각해 보겠다”는 전략은 수능 전 논술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지원했다면 준비해야 한다. 준비했다면 실제 답안까지 써봐야 한다. ■ 수능최저가 없다고 쉬운 시험은 아니다 수험생들이 논술전형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수능최저학력기준이다. 대학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떤 대학은 논술을 잘 보더라도 수능최저를 충족해야 최종 합격이 가능하다. 반대로 수능최저를 적용하지 않는 대학도 있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수능최저가 없으면 합격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수능최저가 없는 대학에서는 논술 자체가 당락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수능최저가 없다는 것은 문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논술 자체가 문턱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모의고사 성적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논술 실력, 대학별 문제 유형, 지원 학과의 경쟁률과 전형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 수능과 논술은 서로 싸우는 공부가 아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수능 공부도 바쁜데 논술까지 해야 합니까?”.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논술을 준비한다고 해서 수능공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논술은 제시문을 읽고 핵심을 찾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시험이다. 이 과정은 국어의 독해력과 사고력과 연결된다. 자연계 수리논술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운 수학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개념을 문제 상황에 적용하며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힘을 본다. 결국 논술의 바탕도 학교공부와 수능공부다. 논술은 그 위에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더하는 것이다.따라서 논술 준비 때문에 수능공부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수능을 중심에 두되, 주 1~2회라도 실제 논술시험처럼 시간을 재고 답안을 써보는 것이 좋다. 짧더라도 꾸준해야 한다. ■ 김광휘의 첫 번째 비법, ‘답보다 질문을 먼저 읽어라’ 논술을 오래 가르치면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글을 잘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문제를 제대로 읽는 법이었다. 학생들은 문제지를 받으면 곧바로 답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논술에서 가장 위험한 습관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출제자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비교하라.’ ▲‘분석하라.’ ▲‘평가하라.’ ▲‘설명하라.’ ▲‘논하라.’ 이러한 동사가 답안의 방향을 결정한다. 비교하라고 했는데 자기 의견만 길게 쓰면 안 된다. 분석하라고 했는데 단순히 제시문을 요약해서도 부족하다. 논술은 많이 아는 학생보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읽는 학생이 강하다. 문제를 정확히 읽으면 답안의 절반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 두 번째 비법, 제시문을 ‘한 문장’으로 줄여라 긴 제시문을 읽다 보면 학생들은 내용에 끌려다니기 쉽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각 제시문을 읽고 반드시 한 문장으로 줄여보라고 했다. “이 글이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제시문의 핵심을 잡지 못하면 비교도 어렵고 분석도 어렵다. 인문논술에서는 각 제시문의 핵심주장과 차이를 빠르게 정리해야 하고, 자연계 논술에서는 문제에서 어떤 수학개념을 요구하는지를 찾아야 한다. 길게 읽되, 짧게 정리하는 힘. 그것이 논술의 중요한 능력이다. ■ 세 번째 비법, 첫 문장은 ‘멋’보다 ‘정확함’이다 학생들은 좋은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첫 문장을 지나치게 어렵게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럴 필요가 없다. 논술은 문학작품이 아니다. 채점자는 화려한 표현보다 학생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첫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해야 한다. 나는 늘 말한다. “첫 문장은 멋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써라”. 첫 문장에서 답안의 방향이 보이면 다음 문장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네 번째 비법, 자연계 논술은 ‘정답’보다 ‘과정’을 보여줘라 자연계 수리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과정이다. 최종 답만 맞힌다고 좋은 답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이 공식을 사용 했는지, 어떤 조건을 이용 했는지, 어떤 순서로 결론에 도달 했는지를 답안지에 보여줘야 한다. 채점자는 학생의 머릿속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식과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했다. “내 풀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이 답안만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좋은 수리논술 답안에 가까워진 것이다. ■ 다섯 번째 비법, 반드시 시간을 재고 써라 논술은 집에서 천천히 완성하는 글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읽고, 생각하고, 써야 하는 시험이다. 따라서 연습도 실제 시험처럼 해야 한다. 기출문제를 풀 때는 반드시 시간을 재야 한다. 읽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는지, 한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지는 않는지, 마지막 검토시간은 남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면 마지막 5~10분은 검토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이 좋다. 문제를 빠뜨리지는 않았는지, 문장이 끊기지는 않았는지, 수식과 계산에는 오류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논술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간 안에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 여섯 번째 비법, 모범답안을 외우지 마라 학생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 모범답안을 외우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만 달라지면 외운 답안은 사용할 수 없다. 모범답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문장 자체가 아니다. 구조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근거를 어디에 배치하는지, 문단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결론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봐야 한다. 답을 외우지 말고, 답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실전에 강한 공부다. ■ AI 시대에도 자기 생각은 대신할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은 AI를 이용해 논술문제의 해설을 찾고 답안도 만들어볼 수 있다. 분명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사용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읽고 답안을 작성해 보는 것이 좋다. 그다음 AI나 대학의 공식 해설자료를 활용해 빠진 관점과 약한 논리를 점검할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AI가 답을 줄 수는 있어도, AI가 곧 답은 아니다. 실제 논술시험장에서 학생을 대신해 문제를 읽어주고 답을 써줄 수는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손으로 써내는 힘이다. AI는 공부를 돕는 도구이지 생각을 대신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대학별 기출문제가 가장 좋은 교과서다 논술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재는 무엇일까. 나는 단연 지원대학의 공식 기출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마다 출제방식이 다르고 원하는 답안의 형태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을 정했다면 먼저 입학처 홈페이지의 모집요강, 기출문제, 모의논술, 논술가이드북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직접 풀어봐야 한다. 문제만 읽고 해설을 보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실제 시험시간에 맞춰 답안을 작성하고, 대학이 공개한 출제의도와 예시답안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논술은 눈으로 배우는 시험이 아니라 손으로 익히는 시험이다. ■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2027학년도 수능과 논술을 준비하는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들이 몇 문제를 풀었는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누가 더 빨리 준비했는지만 바라보면 자신의 공부가 흔들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다. 자신이 지원할 대학을 정확하게 알고, 그 대학의 공식자료를 확인하며, 매일 조금씩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다. 논술은 특별한 학생만 잘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정확하게 읽고, 차분하게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꾸준히 한 학생에게 기회가 열린다. 수능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아침에 성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오늘 공부한 한 문제, 오늘 정리한 한 개념, 오늘 써본 한 편의 답안이 쌓여 결국 시험장에서 힘을 발휘한다. 입시를 준비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고, 논술답안이 마음대로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포기하기보다 자신의 공부방법을 다시 돌아봤으면 한다. 입시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속도를 지키는 긴 과정이다. 수능 전 논술은 부담만 있는 시험이 아니다. 준비한 학생에게는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대학이 논술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도 결국 단순한 암기력이 아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정보를 판단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다. 그 힘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한 힘이다. 그래서 나는 논술을 단순한 입시과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술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이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남은 기간 동안 수능과 논술을 차분하게 준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끝까지 믿었으면 한다. 그리고 시험장에서는 남의 답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해온 생각과 실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준비한 학생에게 기회는 반드시 온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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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휘 논술] 2027학년도 수능 전 논술, 준비된 학생에게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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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기념일은 늘어나는데, 왜 다툼도 늘어날까: '역사'와 '기억'은 어떻게 다른가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본지는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기념관에서 알고리즘까지, 역사를 둘러싼 네 가지 질문’을 주제로 김춘식 논설위원의 기획 칼럼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본 칼럼은 필자가 포스텍(POSTECH) 재직 당시 공동 저자로 참여한 기획 도서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 기억과 망각에 관한 17가지 해석》(책세상, 2014) 제3장 수록작 〈기억과 망각의 역사: 역사 소환과 기억 정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의 학술적 통찰을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적·기술적 맥락과 현안에 맞게 한층 깊이 있게 재구성된 이번 연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광복 80주년의 상징적 반환점을 돌아선 오늘날, 달력 속 기념일과 추모일은 더욱 빼곡해졌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과거를 함께 기억하자고 약속한 날들이 늘어날수록, 역사를 둘러싼 반목과 갈등도 한층 첨예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의 타래를 풀려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역사'라는 말이 겪어낸 신세 변화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20세기 전반, 인류는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을 겪었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사이,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일본의 군국주의, 소련의 스탈린 독재가 연이어 도래했다. 인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18세기 계몽주의 이래 인류가 이성의 힘으로 더 나은 세계를 향해 진보하리라 믿어왔건만, 그 이성의 절정에서 가장 참혹한 학살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거대한 신화가 무너진 자리에 차가운 의심이 싹텄다. 우리가 배운 역사란 한낱 승자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엮어낸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여기에 두 번의 거센 파도가 더해졌다. 1968년 유럽을 흔든 학생·문화운동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강요되던 권위주의 역사관을 뿌리째 흔들었다. 이어 냉전이 해체되고 세계화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단일한 국가 단위로 설명되던 전형적인 역사 서술은 설 자리를 잃었다. 문화비평가 호이센(Andreas Huyssen)은 이 시기를 "시간 질서가 무너진 시대"라 파악했다. 거대 서사로서의 역사가 비틀거리며 비워둔 그 열망의 자리를 파고든 것이 바로 '기억'이었다. 역사학 내부의 지형도 크게 개편되었다. 과거의 역사학이 "누가 더 객관적으로 과거를 복원했는가"를 겨루었다면, 국가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고 지워버릴 때 객관성이라는 공식적 잣대만으로는 역사의 비극을 모두 담아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때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 곧 '기억'이 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통로로 떠올랐다. 동시에 역사학의 시선은 거시적 국가사에서 미시사(Microhistory)로 이동했다. 거창한 왕조와 전쟁 대신, 이름 없는 한 사람, 한 마을, 일상의 한 장면을 파고들며 개인이 고통을 어떻게 통과하고 기억해 냈는지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여기서 역사학이 다루는 기억은 개인의 사사로운 추억에 머물지 않는다. 여럿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규정하고 구성해 온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이다. 사회학자 알박스(Maurice Halbwachs)가 통찰했듯, 기억을 떠올리는 주체는 개인일지라도 그 기억을 형상화하고 채색하는 것은 사회가 제공하는 틀이다. 우리가 무엇을 또렷이 기억하고 무엇을 까마득히 잊을지조차 사회적 관심사와 권력 관계에 의해 조율된다는 뜻이다. 프랑스 역사가 노라(Pierre Nora)는 여기에 '기억의 터'(lieux de mémoire)라는 상징적 개념을 보탰다. 기념관, 기념비, 추모일 같은 공간과 의례들이다. 그의 통찰은 자못 매섭다. 이러한 장소가 도처에 들어서는 것은 기억이 풍요롭게 살아 숨 쉬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기억'이 삶의 현장에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고통의 서사가 끊어질 때, 사회는 서둘러 돌과 철근으로 비석을 세운다. 독일의 얀 아스만(Jan Assmann)과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부부 역시 이를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 연구로 승화시키며, 상징물이라는 제도적 그릇 없이는 기억이 오랫동안 전승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엄엄한 사실이 있다. 기억은 지나간 과거에 고정된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의 욕망에 의해 호출되는 '현재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정치학자 허시(Herbert Hirsch)의 지적처럼, 이제 기억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를 갖는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을 위해 과거를 불러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전혀 다른 얼굴로 재구성된다. 하나의 과거를 두고 무수한 기억이 각축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기억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망각이 수반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기억에 한계가 있듯 지나간 일들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망각이 순수한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을 쥐어잡은 주체가 자신이 내세우고 싶은 장면만 도드라지게 조명하고, 불리하거나 수치스러운 장면은 어둠 속에 침묵시킬 때가 많다. 이를 우리는 '기억의 정치'라 부른다.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기득권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은 너무나 손쉽게 일어난다. 그렇기에 기념관은 숭고한 추모의 장소인 동시에, 극도로 위험한 기억의 전장이 된다. 기념관은 사라져가는 고통의 기억을 보존하는 소중한 공간이지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릴지 누군가의 의도가 정교하게 개입된 건축적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The U.S. Holocaust Memorial Museum)과 중국 난징의 난징대학살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을 나란히 비교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곳 모두 참혹한 인류적 범죄를 기록한 진지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국가적 기억의 정치가 강렬하게 작동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답은 명료하다. 과거를 접할 때 두 가지 질문을 주체적으로 던지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첫째, "이것은 검증된 사실인가?" 둘째,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이것을 기억의 상징으로 호출했는가?" 지역의 작은 기념비나 국가 기념일을 조명하며 건립 주체와 배경을 추적하는 활동은 훌륭한 시작점이 된다. 나아가 중등교육과 대학 등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사료와 증언, 기념물, 그리고 후대의 해석을 엄격히 구분하여 인용하고 논증하는 '논리적 글쓰기와 발표·토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 구분을 스스럼없이 혼동하는 글은 아무리 수사가 화려해도 논증이 아니며, 근거와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은 아무리 유창해도 성찰적 토론이 될 수 없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기억은 맹목적인 신화로 전락하고, 기억의 온기를 잃은 사실은 차디찬 통계표에 갇히고 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화와 통계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엄정함과 기억의 서사를 융합하여 역사적 통찰을 다듬어내는 일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역사철학부 석사학위(역사학, 교육학, 정치학), 동 대학 철학박사학위(서양근현대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2024 칼만 펠로우(독일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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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기념일은 늘어나는데, 왜 다툼도 늘어날까: '역사'와 '기억'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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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휘 칼럼] 노년의 건강, 숫자보다 삶을 보자
- [교육연합신문=김광휘 칼럼] 나이가 들수록 건강검진표의 숫자에 마음이 흔들린다. 혈압이 조금 높아도 걱정하고, 혈당 수치가 기준을 넘으면 불안해한다. 콜레스테롤 수치 하나에도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을 앞에 두고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년의 건강을 젊은 시절과 똑같은 하나의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질문에서 ‘노년의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노년의학은 단순히 혈압과 혈당의 숫자만을 보는 진료가 아니다. 어떤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 복용하는 약은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 잘 걷고 생활할 수 있는지, 근육과 체력은 유지되고 있는지, 기억력과 식욕은 어떤지 등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종합적으로 살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살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가’이다. 숫자의 정상보다 ‘나에게 맞는 건강’을 찾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몸의 조건도 달라진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관리할 때도 나이와 건강상태, 동반 질환, 생활기능, 약물 부작용 가능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으면 혈압이나 혈당이 높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무조건 낮추는 것도, 무조건 방치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해 자신의 몸에 맞는 적절한 관리기준을 찾는 일이다. 노년의 건강은 검사표의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다. 내 발로 잘 걷는가. 밥을 맛있게 먹는가. 밤에 편안히 잠드는가. 사람을 만나고 웃을 수 있는가. 내 일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런 것들 또한 건강을 말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노년의 운동은 경쟁보다 꾸준함이다. 노년이 되면 운동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건강한 노년의 답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젊은 시절처럼 기록을 세우거나 남과 경쟁하기 위해 몸을 혹사할 필요는 없다. 걷고,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자신의 몸에 맞는 근력운동을 하며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의 목적은 남보다 빨리 뛰는 데 있지 않다. 내 발로 걷고, 내 힘으로 일상을 살아가며,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는 힘을 오래 유지하는 데 있다. 노년의 운동은 ‘얼마나 많이 했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음식도 두려움보다 균형이다. 나이가 들수록 먹는 것에 대한 걱정도 많아진다. '이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 '저 음식은 피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밥상마저 걱정의 자리가 된다. 물론 절제는 필요하다. 특정 질환이 있다면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음식 조절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금식과 편식으로 체중과 근육이 줄어드는 것 역시 노년에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다양한 음식을 적당히 먹고, 단백질과 채소, 수분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식사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건강한 노년의 식탁은 마음껏 먹는 식탁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먹지 못하는 식탁도 아니다. 맛있게 먹되 적당히, 즐겁게 먹되 균형 있게 먹는 식탁이어야 한다. 건강도 결국 교육의 문제다. 나는 건강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생활습관과 교육이 쌓여 오늘의 몸과 삶을 만든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몸의 신호를 이해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음식과 휴식의 균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한 생활교육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건강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많이 접한다고 해서 모두 올바른 정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출처를 확인하고, 전문가의 의견과 비교하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건강문해력’이다. 앞으로 학교와 가정의 건강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운동해라”, “몸에 좋은 것을 먹어라”라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왜 운동이 필요한지, 왜 충분한 수면이 중요한지, 어떤 건강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자신의 생활습관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건강교육의 목적도 결국 정답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몸을 이해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이 점에서 건강교육과 논술교육은 닮아 있다. 남이 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읽고, 비교하고, 판단해 자기 삶에 맞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은 맹신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병원에 자주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도 간혹 들린다. 그러나 고혈압과 당뇨병을 비롯한 여러 만성질환은 특별한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요한 건강검진과 정기적인 진료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다만 검사 결과의 숫자 하나 때문에 지나친 불안에 빠질 필요도 없다. 검진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의료진과 상의해 자신에게 맞는 관리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고의 건강법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다. 노년의 건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과 안부를 묻고, 사회와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노년의 삶에 큰 활력을 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뿐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도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웃고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달라진다. 나는 걷기와 음식 못지않게 사람과의 관계와 웃음도 중요한 건강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과 밥 한 끼를 나누고,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세상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하루. 그 하루 자체가 훌륭한 건강관리다. 그리고 이것 역시 다음 세대가 배워야 할 중요한 삶의 교육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법, 안부를 묻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런 교육이 결국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 오래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건강을 관리한다고 해서 세월을 멈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건강을 관리하는가. 단순히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내 발로 걷고,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친구들과 웃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여행을 떠나며, 오늘 하루를 내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백세시대를 이야기하는 지금,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명이 아니라 건강수명이다.그리고 건강수명을 지키는 일은 병원과 의사만의 몫이 아니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어릴 때부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르치고 올바른 건강정보를 판단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결국 건강도 교육에서 시작된다. 건강 때문에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반대로 인생을 즐긴다는 이유로 건강관리를 모두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노년의 지혜는 어느 한쪽의 극단에 있지 않다. 과도한 걱정은 내려놓되 필요한 관리는 하고, 무리한 운동은 피하되 몸은 계속 움직이며, 음식은 두려워하지 않되 과식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웃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남은 인생에서 혈압과 혈당의 숫자 몇 개가 우리의 행복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말자. 잘 먹고, 적당히 움직이고, 좋은 사람과 어울리고, 많이 웃으며 살아가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한 가지는 꼭 가르쳐주자.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숫자를 완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균형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하루를 마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참 잘 살았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배우고, 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따뜻한 건강교육인지도 모른다. ▣ 김광휘 ◇ 前현광문리학원 원장 ◇ 前부산종로학원 원장 ◇ 前부산학원 부원장 ◇ 언어영역 문학(창과창) ◇ 언어영역 독해(한샘출판사) ◇ 홀로서기 논술(대학진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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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휘 칼럼] 노년의 건강, 숫자보다 삶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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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염증 제어를 넘어 관절 조직 보호로 - 류마티스 관절염을 마주하는 한의학의 통합적 시선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면역계의 오작동이 야기하는 전신 관절 질환, 류마티스 관절염 - 류마티스 관절염(Rheumatoid Arthritis, RA)은 단순한 노화성 관절 질환과 달리, 면역계가 자신의 관절 활막을 공격하여 만성 염증과 비가역적인 연골·골 파괴를 일으키는 전신성 자가면역 질환입니다. 유전적 감수성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하여 자가항원(RF, ACPA 등)에 대한 면역 관용이 무너지면, T 세포와 B 세포, 대식세포가 활막으로 대거 침윤합니다. 침윤된 면역세포들은 종양괴사인자(TNF-alpha), 인터루킨-1베타(IL-1beta), 인터루킨-6(IL-6) 등의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폭발적으로 분비합니다. 이로 인해 관절 활막이 종양처럼 비후해지는 '판누스(Pannus)'가 형성되고, 기질금속단백분해효소(MMPs)와 RANKL이 분비되면서 관절 연골과 연골하 골조직이 서서히 파괴되면서 극심한 통증 및 관절 변형을 동반하게 됩니다. 2. 표준 약물 치료의 한계와 '치료 반응 정체(ceiling effect)'의 딜레마 - 현재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는 메토트렉세이트(MTX)를 위시한 항류마티스제(csDMARDs), 생물학적 제제(bDMARDs), 표적 합성 제제(tsDMARDs) 및 글루코코르티코이드(스테로이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단일 염증 경로나 면역세포를 차단하는 현행 표준 약물 치료는 환자의 30~40%에서 불충분한 반응을 보이거나 약물 내성이 발생하는 치료 반응의 한계, 즉 '천장 효과(ceiling effect)'가 상당수 비율로 보고됩니다. 더욱이 장기적인 스테로이드 사용은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감염 및 대사 이상 등의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하며, 약물을 중단하거나 감량할 때 질환이 다시 악화되는 반동 현상(flare)이 빈번합니다. 결국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는 단일 표적 억제제만으로는 복합적인 전신 면역 불균형을 온전히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 현대 류마티스 치료가 추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3. 새롭게 밝혀지는 류마티스의 활막 미세환경의 세포 네트워크와 후성유전학·장-관절 축 기전 - 최근 분자생물학적 연구들은 류마티스 관절염이 단일 세포의 이상이 아닌, '활막 미세환경(synovial microenvironment)' 내 다양한 세포들의 비정상적인 상호작용 네트워크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섬유아세포 유사 활막세포는 대식세포, T세포와의 끊임없는 신호 교환을 통해 스스로 사멸하지 않고 침습적인 종양형 세포로 변모합니다. 또한 DNA 메틸화 이상과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HDAC) 활성화 같은 후성유전학적 변형이 염증성 전사인자(NF-kB, JAK-STAT 등)를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함으로써 전신의 만성 염증이 멈추지 않고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장-뼈/관절 축(Gut-Bone/Joint Axis)'의 붕괴로 장내 유익균이 감소하고 유해균이 증식하면서 장 점막 장벽이 손상되면, 세균 독소와 염증 매개체가 혈류를 타고 관절로 이동해 자가면역 반응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4.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한 다중 표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처럼 류마티스 관절염이 보이는 다차원적인 병리기전 조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러 표적과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는 한의학적 복합 치료가 현대과학적 연구를 통해 고려해볼만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침 치료의 양방향 면역 항상성 회복: 침 치료는 미주신경-부신 축과 콜린성 항염증 경로를 활성화하여 전신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합니다. 특히 자가면역 붕괴의 핵심인 Th1/Th2 및 Th17/Treg 세포 간의 면역 불균형을 교정하고, 염증성 M1 대식세포를 조직 회복형 M2 대식세포로 전환(Polarization)시켜 관절 내 면역 관용을 회복시킵니다. 여러 임상시험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도 침 치료는 환자의 관절 통증 지수와 28개 관절 질환 활성도(DAS28)를 유의하게 개선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보고되었습니다. 한약(EAHM)의 다중 표적 조절과 시너지 효과: 최근 발표된 대규모 임상 무작위 대조시험(RCT) 메타분석(186편 및 415편 대상) 결과, 한약 단독 요법 또는 한약-양약 병용 요법은 서양의학 단독 치료 대비 ACR 20/50/70 반응률을 대폭 향상시키고 관절 압통 및 종창 수, 염증 수치(ESR, CRP)를 유의미하게 낮추었으며, 부작용 발생률도 현저히 줄이는 것으로 보고하여 한약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했습니다. 분자생물학적 치료 기전: 류마티스 관절염의 치료에 널리 활용되어온 한약 처방(계지작약지모탕, 독활기생탕 등)의 활성 성분(Paeoniflorin, Liquiritin, Triptolide 등)은 NF-kB, MAPK, JAK-STAT 및 PI3K-AKT 신호 전달 체계를 다각도로 차단하여 비정상적인 활막세포(FLS)의 증식과 침습을 억제하고 세포 사멸(Apoptosis)을 촉진합니다. 나아가 비코딩 RNA(ncRNA) 조절과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HDAC) 등 후성유전학적 이상을 바로잡고, 손상된 장-관절 축(Gut-Joint Axis)의 미생물 생태계를 정상화하여 파골세포 분화와 골·연골의 영구적 파괴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5. 관절 변형과 재발을 막는 일상 속 자가 관리법 - 류마티스 관절염의 장기적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학적 치료와 더불어 면역계의 안정을 돕는 생활 습관 실천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장내미생물 균형 조절을 위한 항염증 식단: 류마티스 관절염의 장기적 관리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의학적 치료와 더불어 면역계의 안정을 돕는 생활 습관 실천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관절 가동 범위를 유지하는 규칙적 저강도 운동: 염증 급성기에는 안정을 취하되, 만성기에는 수영, 실내 자전거, 부드러운 관절 스트레칭을 통해 관절 주변 근력을 강화하고 관절 강직을 예방해야 합니다. •온열 요법 및 관절 보호: 관절 부위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국소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관절에 과도한 하중이 가해지는 반복 동작을 피해야 합니다. •스트레스 조절과 금연: 흡연은 류마티스 자가항체(ACPA) 생성을 촉진하고 후성유전학적 변형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므로 반드시 금연해야 하며, 명상과 충분한 수면으로 신경-면역 균형을 다스려야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단순히 관절만의 염증이 아니라 전신 면역과 대사, 신경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만성 소모성 질환입니다. 면역계의 자생적 복원력을 높이고 다중 표적으로 관절 파괴를 차단하는 과학적 한의 치료와 적극적인 생활 관리를 병행하여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일상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Wu Z, Li J, Li R, Zhao L, Su Y, Liu Y, Zhang H, Zhang L. Chronic Inflammation and Aging in Rheumatic Diseases. Aging Dis. 2026 Jan 15. doi: 10.14336/AD.2025.1182. 2.Huang C, Liang Y, Li Y, Wei Q, Ouyang L, Zhang J. The epigenetic landscape of rheumatoid arthritis: Pathogenesis and drug therapeutic potentials. Acta Pharm Sin B. 2025 Nov;15(11):5601-5631. doi: 10.1016/j.apsb.2025.08.022 3.Qin R, Yu P, Wang H, Zhou J, Gong R, Duan Y, Jia H, Xie M, Zhou Y, Hu J. Gut-bone axis crosstalk: Microbiota-driven immune-metabolic-neural networks in bone disorders and precision interventions. J Orthop Translat. 2026 May 11;58:101126. doi: 10.1016/j.jot.2026.101126 4.Feng M, Chen H, Liao L, Huang D, Shen J, Xiao L, Lu Q, Xie P. Cellular crosstalk and signaling networks in the rheumatoid arthritis synovial microenvironment. J Transl Med. 2026 Jul 3;24(1):874. doi: 10.1186/s12967-026-08482-7 5.Buttgereit F, Tam LS. Glucocorticoid treatment in patients with inflammatory rheumatic diseases: current practice and open questions. Lancet Rheumatol. 2026 May;8(5):e389-e400. doi: 10.1016/S2665-9913(26)00072-X 6.Jo HG, Seo J, Lee D. Clinical evidence construction of East Asian herbal medicine for inflammatory pain in rheumatoid arthritis based on integrative data mining approach. Pharmacol Res. 2022 Nov;185:106460. doi: 10.1016/j.phrs.2022.106460 7.Jo HG, Seo J, Baek E, Lee D. Exploring the benefits and prescribing informations of combining East Asian herbal medicine with conventional medicine in the treatment of rheumatoid arthritis: A systematic review and multifaceted analysis of 415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armacol Res. 2025 Feb;212:107616. doi: 10.1016/j.phrs.2025.107616 8.Wen J, Liu J, Wan L, Wang F, Li Y. Therapeutic Properties and Underlying Mechanisms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in Managing Rheumatoid Arthritis: An Integrative Review of Clinical and Molecular Findings. Phytother Res. 2026 Aug 18. doi: 10.1002/ptr.70429 9.Liu F, Wang Y, Lyu K, Du X, Zhou M, Shi J, Na R, Guo Y, Wang G, Xu W, Zheng T. Acupuncture and its ability to restore and maintain immune homeostasis. QJM. 2024 Mar 27;117(3):167-176. doi: 10.1093/qjmed/hcad134 10,Gamus D, Shoenfeld Y. Acupuncture therapy in autoimmune diseases: A narrative review. Autoimmun Rev. 2025 Jan 31;24(2):103709. doi: 10.1016/j.autrev.2024.103709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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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염증 제어를 넘어 관절 조직 보호로 - 류마티스 관절염을 마주하는 한의학의 통합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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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인천송일초 허준양 교장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학교는 왜 점점 더 버거운 곳이 되었을까. 아이들은 왜 쉽게 흔들리고, 교사는 왜 지쳐 가며, 학교는 왜 감정과 절차의 압력 속에서 교육보다 방어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 책은 초등학교 현장을 오래 지켜본 한 교육자가 오늘의 학교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학교의 본질을 다시 묻는 기록이다. 아이의 성장, 가정의 역할, 기본 생활 습관,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의 마음, 학생 인권과 책임, 학교폭력과 민원,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진 생활지도, 현장체험학습의 두려움, 줄지 않는 행정업무, 중간관리자의 소진, 학교장의 리더십까지 오늘의 학교를 이루는 여러 현실을 깊이 있게 돌아본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무너진 학교의 일상과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학교가 끝내 놓아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성찰한다. 이 책은 학교를 비난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학교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 책이다. ■ 책 속으로 학교를 오래 지켜보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이 어느 날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오지만, 예전처럼 자라지 않는다. 교사들은 여전히 교실에 서지만, 예전처럼 가르치기 어렵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때로 불안이 되어 학교를 흔든다. 학교는 여전히 사람을 키우는 곳이어야 하지만, 갈등과 절차, 민원과 감정, 안전과 행정의 무게 속에서 점점 더 버거운 조직이 되어 간다. 이 책은 오늘의 학교를 이루는 여러 장면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은 왜 저절로 자라지 않는지, 기본은 왜 여전히 중요하며 가정과 학교는 어디서 만나야 하는지, 실패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왜 작은 좌절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는지, 권리와 책임의 균형은 왜 무너졌는지, 학교폭력 사안은 왜 교육보다 절차로 먼저 흘러가는지, 말 한마디가 신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교사는 왜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학교가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차분히 묻는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무너진 학교의 일상과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학교가 기술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되묻는다. 학교를 향한 과도한 기대와 불신, 지쳐 가는 교사와 관리자, 흔들리는 교실과 아이들 사이에서 이 책이 붙드는 것은 하나다. 학교는 결국 사람을 길러 내는 곳이어야 하며, 학교를 다시 세우는 힘도 마지막에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제도보다 먼저 사람을, 방어보다 먼저 교육을, 냉소보다 먼저 책임을 생각하게 하는 책.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세우는 일에 대해 오래 학교를 지켜본 한 교육자가 건네는 깊은 성찰이다. ■ 추천사 학교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는 사람이 있다. 화려한 말이나 눈에 띄는 업적 때문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믿음을 주었던 사람이다. 허준양 교장선생님이 제게는 그런 분이다. 나는 인천은봉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허준양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교감 첫 부임지였지만 그는 늘 학교의 중심을 사람에게 두고 있었다. 교사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고, 교장과 교사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며, 학교 안에 따뜻한 공기가 흐르도록 애썼다. 누군가는 학교를 행정으로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나는 학교는 결국 사람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허준양 선생님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육자였다. 당시 우리는 함께 새로운 학교를 꿈꾸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고, 교사들이 서로 존중받으며, 학교가 아이들의 삶을 따뜻하게 품어 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경쟁과 성과만을 앞세우기보다 사람의 성장과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함께 고민하고 걸어갔던 시간들은 결국 학교의 문화를 바꾸었고, 우리가 떠난 뒤 그 학교는 행복배움학교로 이어져 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교육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출간되는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는 오랜 시간 학교를 지켜 온 한 교육자의 깊은 성찰이 담긴 책이다. 아이를 키우고 학교를 세운다는 일이 결국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는 믿음이 책 곳곳에 진하게 배어 있다. 특히 오늘날 빠르게 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학교가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묻고 있다.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은 교육 이야기를 넘어, 교육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삶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허준양 교장선생님은 늘 곁에서 사람을 살피는 분이었다. 아이들의 작은 마음도 가볍게 지나치지 않았고, 교사들의 어려움 또한 함께 고민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 곁에서 위로를 받았고 힘을 얻었다. 따뜻함은 결코 약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울림을 남기는지를 선생님은 오랜 시간 학교 현장에서 보여 주셨다. 이제 선생님은 긴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의 길목 앞에 서 계신다. 돌아보면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 속에 선생님의 시간이 함께 있었고, 학교의 계절마다 선생님의 진심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교육자가 걸어온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 따뜻함으로 남고,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조용히 비춰 주기 때문이다. 참 오랜 시간 애쓰셨다.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선생님 자신의 삶을 천천히 걸어가셨으면 한다. 그동안 교육을 위해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건강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시고, 남은 인생 또한 지금처럼 잔잔하고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던 한 사람의 교육자로 남아 계실 것이라 믿는다. 학교를 사랑했고 사람을 아끼며 살아온 선생님의 시간은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희망과 위로로 남을 것이다.(추천인 박정희 / 前인천광역시교육청교육연수원장, 인천은봉초등학교장) ▣ 저자 허준양 경인교대를 졸업한 후 40년 가까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를 만나며 살아온 교육자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을 시작해 교감과 교장을 거쳤으며, 현재 인천송일초등학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교간형 전문적 학습공동체인 ‘10년 후’ 회원으로 활동하며, 《평화로우신가요?》, 《함께 한 시간 여행》, 《교장, 삶을 쓰다》 등 세 권의 전자책을 출간(공저)하였다. 오랜 시간 학교를 지켜보며 학교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책임을 떠안고 있는지, 그 속에서 교사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아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 때로는 흔들리고 지치는 학교의 모습을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학교 안에는 여전히 사람을 키우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 펴낸곳 보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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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인천송일초 허준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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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 - ‘60년 외길 무예인생’ 오동석 총재 자서전
- [교육연합신문=편집국] 대한민국 전통무예 계승·발전에 헌신…평생의 발자취와 무예정신 한 권에 담아 무예인·사회체육인·방송인·수필가로 걸어온 삶…후배 무예인들에게 귀감과 삶의 지침 전해 대한민국 전통무예 발전을 위해 한길을 걸어온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오동석 총재가 60년 무예인생과 삶의 철학을 담은 자서전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을 출간했다. 오동석 총재는 오랜 세월 무예인의 길을 지키며 전통무예의 계승과 발전, 무예인들의 화합과 저변 확대를 위해 힘써왔다. 특히 한 분야에서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그의 삶과 발자취는 후배 무예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전한다. 이번 자서전은 ‘사진으로 엮어 본 오동석의 인생흔적’이라는 표현처럼 오 총재가 무예인·사회체육인·방송인·수필가로 활동하며 걸어온 삶의 여정을 다양한 사진과 기록을 통해 담아냈다. 책에는 60년에 걸친 무예인생 속에서 지켜온 신념과 책임감, 수많은 도전과 성취뿐 아니라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후배들을 아껴온 삶의 철학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특히,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이라는 제목에는 오 총재가 긴 세월을 살아오며 체득한 삶의 자세와 철학이 함축돼 있다. 자신을 다스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예의와 인내를 중시하는 무예정신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최근 오 총재와 뜻깊은 시간을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직접 사인한 자서전을 전달받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는 “대한민국 무예계를 위해 평생 한길을 걸어오신 오동석 총재님의 60년 무예인생은 후배 무예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소중한 발자취”라며, “총재님의 경험과 삶의 철학이 담긴 이 책이 무예인을 넘어 많은 사람에게 삶의 방향과 지혜를 전하는 인생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출간을 축하했다. 무예는 단순히 기술의 강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절제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사람을 바르게 세워가는 정신적 수련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그런 점에서 한평생 무예인의 길을 지켜온 오 총재의 삶은 대한민국 무예인이 지향해야 할 정신과 자세를 되새기게 하는 하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자서전은 한 개인의 회고록이라는 의미를 넘어 오랜 세월 대한민국 무예인이 걸어온 시대의 흔적을 기록하고, 전통무예의 정신과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선배 무예인의 경험과 정신이 후배에게 이어지고 다시 다음 세대로 전해질 때 전통은 더욱 굳건해진다. 오 총재가 걸어온 60년의 기록 역시 대한민국 전통무예의 역사와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특히, 오동석 총재의 60년 무예인생은 단순히 오랜 시간 무예를 수련해 왔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변화와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무예의 가치를 지키고, 무예인의 자긍심과 화합을 위해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수련과 승패를 넘어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는 선배 무예인의 책임과 품격이 담겨 있다. 무예를 통해 몸을 단련하고 마음을 비우며, 사회와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온 삶 자체가 하나의 무예정신이라 할 수 있다.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분야를 지켜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무예 환경이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오 총재는 전통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을 이어왔다. 그러한 그의 발자취는 오늘의 무예인들에게 ‘무엇을 위해 무예를 하는가’, ‘어떤 무예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한다.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은 그래서 한 무예인의 개인적인 회고록을 넘어선다. 한 시대를 살아온 무예인의 기록이자 대한민국 전통무예의 변화와 성장을 함께 보여주는 증언이며, 후배들에게 전하는 정신적 유산이다. 오 총재가 평생 강조해 온 예의와 인내, 절제와 배려,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무예의 본질이 기술의 우열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강함보다 바름을, 승리보다 품격을, 개인의 성취보다 함께 성장하는 길을 중요하게 여겨온 그의 무예인생은 대한민국 무예계가 오래 기억해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이제 그의 60년 무예인생은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선배 무예인이 걸어온 길과 경험이 후배들의 나침반이 되고, 그 정신이 다시 새로운 세대의 무예인들에게 전해질 때 전통무예의 생명력은 더욱 깊고 단단해질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이 후배 무예인들에게는 무예인의 자세와 책임을 되새기는 지침서가 되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한 분야를 평생 지켜온 한 사람의 신념과 인생철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60년 외길을 걸어온 오동석 총재의 무예인생은 결국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을 넘어 ‘바른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준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발자취와 정신이 대한민국 전통무예의 소중한 역사로 오래 기억되고, 후배 무예인들에게 변함없는 귀감과 삶의 이정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저자 오동석 ◇ (재)부산광역시 사회체육문화센터(창립설립자) ◇ 한국전통무예협의회 총재 ◇ 대한차력무술협회 총재 ◇ 한국건신기공협회 회장 ◇ (사)한국자원봉사연합회 자문위원장 ◇ 대한노인회 부산시연합회 이사 ◇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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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음을 비우는 감동과 보람 - ‘60년 외길 무예인생’ 오동석 총재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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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AI 시대, '덕목'을 넘어 '자율'과 '연대'의 인성교육으로
- [교육연합신문=김춘식 칼럼] 한국 사회에서 '인성교육(人性敎育)'은 오랫동안 교육의 뿌리이자 사회적 통합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과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유교적 전통 속에서 인성교육은 관계와 예의를 중시하는 공동체 윤리의 기틀을 마련했다. 광복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에서도 이는 왜곡되지 않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한국 특유의 높은 교육열과 결합한 인성교육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공동체의 안녕과 협력을 우선시하는 높은 수준의 시민적 의무감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5년 제정된 세계 최초의 『인성교육진흥법』 역시 급변하는 사회적 갈등과 학교폭력 등 위기 상황에 대한 국가적 헌신과 대응 의지를 보여준 역사적 결실이었다. 정직, 책임, 효, 예, 배려, 소통 등 전통적·사회적 가치를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끌어들여 제도화하려는 노력은 한국 교육이 추구해 온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역사적 성과를 지닌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적 질서와 공동체적 연대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문명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의 입구에서, 지금까지의 인성교육 방식은 커다란 변혁의 요구나 다름없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정답이 정해진 지식이나 단편적인 도덕적 규범을 전달하는 일조차 기술에 의해서 구현되는 시대다. 이제 단순히 주어진 덕목을 암기하고 사회적 규범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수준의 인성교육으로는 미래 세대가 맞닥뜨릴 복잡하고 다원화된 도덕적 기로를 헤쳐 나갈 수 없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성은 타율적 순응이 아닌 '자율적 판단력(Mündigkeit)'과 타자와의 깊은 '사회적 연대성(Soziale Solidarität)'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독일 교육이 선사하는 통찰은 매우 깊다. 최근 전라남도교육연수원 교사단의 독일 교육기관 방문 당시, 함부르크 민주시민교육원(La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교사단이 "독일에서는 인성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실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현지 관계자의 답은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단호했다. "독일에는 한국과 같은 방식의 인성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대답은 독일이 인성교육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 아니다. 독일 교육에서 인성(Persönlichkeit)은 독립된 특정 과목이나 국가가 지정한 덕목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인성은 민주시민교육(Politische Bildung)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개인이 자율적인 주체로 성장하는 '빌둥(Bildung)'의 전 과정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와 나치즘의 잔혹한 역사를 반성하며 구축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은, 타인의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맹목적으로 굴복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율적 인격체'를 키우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즉, 독일에서 인성교육은 곧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율성과 비판 의식을 키우는 교육 그 자체다. 이러한 '인격형성교육(Persönlichkeitsbildung)'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지극히 실제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사단이 탐방한 브레멘의 바움슈울렌베크(Baumschulenweg) 초등학교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커플 댄스와 같은 예체능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호흡을 맞추며, 자신의 몸을 인식함과 동시에 타인의 신체와 인격을 존중하는 법을 피부로 배운다. 말이 아닌 몸의 움직임을 통해 타자와의 거리를 조절하고, 공감하며, 협력하는 경험—이것이 바로 독일이 실천하는 '사회적 연대성 교육(Soziales Lernen)'의 본질이다. 타자에 대한 감각적 이해와 신체적 공감이야말로 도덕적 관념을 넘어선 진정한 사회성의 출발점인 셈이다. 독일의 이러한 현장은 AI 시대를 살아갈 한국의 인성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고유의 가치는 타인과 실제로 만나 느끼는 신체적·감정적 교감, 그리고 복잡한 도덕적 갈등 상황에서 스스로 비판하고 결정하는 자율적 판단 능력에서 배어난다. 이제 한국의 인성교육은 과거의 성과를 발판 삼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해야 한다. 첫째, '덕목 주입'에서 '민주시민적 자율성'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가 정한 가치를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수덕(修德) 교육을 넘어, 학급 자치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이견을 조정해 보는 민주시민교육과의 강력한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의나 비합리적인 규범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이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갈 주체적 인간의 핵심 인성이다. 둘째, '서류와 평가 중심의 인성'에서 '몸과 삶으로 체화하는 연대성'으로의 변화다. 생활기록부 기재를 위한 봉사활동이나 형식적인 인성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 브레멘 초등학교의 커플 댄스처럼, 신체적 활동과 예술, 체육, 또래 간의 실제적 갈등 해결 과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늘려가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함께 협력하는 사회적 연대성은 머리로 외우는 글자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인성교육이 공동체 발전의 굳건한 토대를 제공하며 그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면, 다가오는 AI 시대의 인성교육은 개개인을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바로 세우고 타자와 깊게 연대하는 '인간성 교육'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이 보여주듯, 인성은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체화하는 민주적 자율성이자 공존의 기술이다. 한국 교육이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낼 때, 우리 아이들은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타인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진정한 미래 인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이자 한국독일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교육, 독일의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만나다』(포스텍융합문명연구원; 소명, 2025) 등이 있다. ◇ 교육연합신문 논설위원 ◇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한국독일네트워크(ADeKo) 이사 겸 인문교육위원장 ◇ 2024 칼만 해외석학(독일 연방교육연구부, 아헨공과대학교) ◇ 前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前 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특별위원회 전문위원 ◇ 前 한국전문대학평가인증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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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칼럼] AI 시대, '덕목'을 넘어 '자율'과 '연대'의 인성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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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에필로그 - 사유의 꽃, 미래 문명의 위대한 씨앗으로 피어나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은자(殷字)의 시원을 찾아 대륙의 동방을 횡단했던 이 지적 탐험으로 매혹의 꽃을 피워냈다. 이제 그 장엄한 막을 내린다. 푸른 벌판을 호령하던 동이족의 거친 숨결에서 시작해, 갑골(甲骨)에 새겨진 정교한 부호의 미학을 거쳐, 오늘날 우리 삶 속에 도도히 흐르는 문화적 유전자를 확인하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아득한 시공간을 거슬러 왔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목격한 은자(殷字)는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글자 하나하나에 인간과 자연, 신과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으로 바라보았던 고대인들의 위대한 철학적 결정체이자, 사유로 빚은 매혹의 꽃이었다. 0과 1로 모든 것을 파편화하고 인간의 영혼마저 디지털 코드로 환원하는 AI 현대 사회에서, 은자가 지닌 함축과 상징, 그리고 영적 소통의 힘은 오히려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이자 나침반으로 다가온다. 온 우주를 한 획의 선으로 포착해 내던 그 독창적인 사유의 맥박은 지금도 우리의 감각 깊은 곳에 시퍼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사유를 타인의 옷에 맞춰 빌려 입었다는 문화적 부채감을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당당히 선언할 수 있다. 은자(殷字)는 동방의 선조들이 인류 문명사 위에 아로새긴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자산이다. 이 책을 덮고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때, 길거리의 간판이나 서책 속의 글자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빛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리라. 그것은 낯선 이국의 문자가 아니라, 당신의 핏줄 속에 흐르는 오래된 기억이자 인류 문명의 깊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이 매혹적인 문명의 유전자가, 이제 당신의 가슴속에서 세상을 바꿀 새로운 창조의 씨앗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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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에필로그 - 사유의 꽃, 미래 문명의 위대한 씨앗으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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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장(腸)내 생태계의 붕괴와 염증의 악순환: 염증성 장질환을 제어하는 한의학의 역할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복합적인 전신 면역 질환, 염증성 장질환의 경고 -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으로 대표되는 염증성 장질환(IBD)은 위장관에 발생하는 만성적이고 재발성이 강한 면역 매개 염증성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단순한 소화기 문제를 넘어 유전적 감수성, 환경적 노출, 장내 미생물 불균형(dysbiosis), 그리고 점막 면역계의 비정상적인 활성화가 복잡하게 얽혀 발생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염증성 장질환의 발병은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후성유전-미생물군집-미토콘드리아 축(epigenetic-microbiome-mitochondrial axis)'의 조절 이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장내 미생물이 생성하는 단쇄지방산과 같은 대사 산물들은 숙주의 후성유전학적 조절과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대사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무너질 때 장 상피 장벽의 기능 부전과 만성 염증이 촉발된다는 것입니다. 2. 기존 표적 약물 치료의 한계와 대장암의 위협 - 현재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는 염증 경로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생물학적 제제(항-TNF, 항-IL-12/23 등)와 소분자 억제제(JAK 억제제 등)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약물들은 중증 환자의 증상 완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환자의 30~40%는 초기 무반응이나 내성 발생을 경험하며 완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면역 억제로 인한 감염 위험 증가, 높은 치료 비용, 그리고 약물 중단 시의 높은 재발률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장기간 지속되는 만성 장내 염증이 산화 스트레스와 유전적, 후성유전학적 변이를 유발하여 '염증성 장질환 유발 대장암(colitis-associated cancer)'이라는 치명적인 악성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염증 기간이 7년을 초과하거나 염증의 정도가 심할수록 이러한 암화(Carcinogenesis)의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3.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세포 사멸 메커니즘 '페롭토시스(ferroptosis)' - 염증성 장질환 환자의 장내 환경을 분석해 보면, 병의 초기 단계부터 장내 미생물의 심각한 불균형이 뚜렷하게 관찰됩니다. 특히 유익한 혐기성 세균이 급감하는 반면, 산소에 내성이 있거나 구강과 연관된 유해균이 장내로 유입되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미생물 불균형은 장내 점막에 과도한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세포 사멸인 '페롭토시스(ferroptosis)'를 촉발합니다. 페롭토시스는 철분 대사의 이상과 지질 과산화(lipid peroxidation)에 의해 발생하는 비세포사멸성 세포 죽음으로, 장 상피세포를 대량으로 파괴하여 장 점막 장벽을 무너뜨리고 2차적인 면역 염증 반응을 증폭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4. 염증성 장질환 치료의 총체적 대안: 침, 뜸, 한약을 활용한 다중표적 치료 - 최근 각종 체내 염증 상태의 복합적 병리 표적 및 다중 경로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한의학적 치료가 염증성 장질환의 관리의 보완적 선택지로 부상하는 추세입니다. 침과 뜸 치료는 크론병 환자의 임상 활동 지수(CDAI)를 유의미하게 감소시키며, 피로감을 개선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특히 뜸 치료와 침 치료의 병행은 밀착 연접 단백질(ZO-1 등)의 발현을 상향 조절하여 손상된 장 상피 장벽을 물리적으로 복구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한편, 복잡한 병리기전을 가진 이 질환의 약물 치료로는 한약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약에 포함된 폴리페놀, 알칼로이드(베르베린 등), 테르페노이드 등의 활성 성분은 면역 세포의 Th17/Treg 균형을 회복시키고, NF-kB, MAPK, PI3K/AKT 등의 염증성 신호 전달 경로를 동시에 억제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분비를 근본적으로 차단합니다. 더 나아가, 한약은 장내 '페롭토시스'를 직접적으로 억제하여 지질 과산화로부터 장 점막 세포를 보호하며, 무너진 장내 미생물 환경을 재건하여 유익한 단쇄지방산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염증이 대장암으로 악화되는 경로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치료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펴보신바와 같이 한의 치료는 면역 조절, 항염증, 장벽 기능 복원, 장내 미생물 생태계 개선 등 신체 전반의 불균형을 총체적 관점에서 바로잡는 효과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근거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5. 장내 면역 환경을 복원하는 일상 속 자가 관리법 - 염증성 장질환의 성공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의학적 치료와 함께 환자 스스로의 환경 및 생활 습관 교정이 필수적입니다. •항염증 식이요법: 고지방, 고당분의 서구식 식단은 장내 유해균을 늘리고 장벽을 파괴하므로 피해야 합니다. 반면, 식이섬유와 폴리페놀이 풍부한 지중해식 식단은 단쇄지방산을 생성하는 유익균을 늘려 장벽을 튼튼하게 하고 면역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프로바이오틱스 및 프리바이오틱스 섭취: 유익균과 그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의 섭취는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회복시키고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규칙적인 중강도 운동: 적절한 신체 활동은 심혈관 기능을 개선하고 피로와 불안을 줄여주며, 면역 세포의 반응성을 조절하여 장내 염증을 완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스트레스 관리 및 금연: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흡연은 면역 조절 유전자의 DNA 메틸화(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장내 미생물 군집을 악화시켜 크론병의 진행을 가속화하므로 반드시 관리되어야 합니다. 염증성 장질환은 단순히 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신의 면역과 대사, 미생물이 얽힌 복합 질환입니다. 장내 환경을 재건하고 신체의 자생력을 다중으로 끌어올리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해 보다 평온한 일상으로 한발짝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 참고문헌 (References) 1. Peter Rimmer, Zhang F, Scott G; Microbiome Data Provision Group; Hold GL, Gordon M, Iqbal TH, Hansen R. The Gut Microbiome at the Onset of Inflammatory Bowel Disease: A Systematic Review and Unified Bioinformatic Synthesis. Gastroenterology. 2026 Mar;170(3):539-556. doi: 10.1053/j.gastro.2025.09.014. 2. Kazemifard N, Shahrokh S, Dimitrov G, Totonchi M, Dimitrov S. From signals to systems: the epigenetic-microbiome-mitochondrial axis in IBD pathogenesis. Gut Microbes. 2026 Dec 31;18(1):2692755. doi: 10.1080/19490976.2026.2692755. 3. Graham DB, Xavier RJ. Mechanisms of inflammatory bowel diseases: Insights from human genetics and chemical biology. Immunity. 2026 May 12;59(5):1184-1200. doi: 10.1016/j.immuni.2026.04.002. 4. Yang X, Guo H, Zou M. Inflammatory bowel diseases: pathological mechanisms and therapeutic perspectives. Mol Biomed. 2026 Jan 7;7(1):2. doi: 10.1186/s43556-025-00395-z. 5. Feng Y, Pan M, Li R, He W, Chen Y, Xu S, Chen H, Xu H, Lin Y. Recent developments and new directions in the use of natural products for the treatment of inflammatory bowel disease. Phytomedicine. 2024 Sep;132:155812. doi: 10.1016/j.phymed.2024.155812. 6. Liu Y, Zhang JT, Sun M, Song J, Sun HM, Wang MY, Wang CM, Liu W. Targeting ferroptosis in the treatment of ulcerative colitis by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 novel therapeutic strategies. Phytomedicine. 2025 Apr;139:156539. doi: 10.1016/j.phymed.2025.156539. 7. Zhang Y, Zhang Y, Yao S, Chen L, Dong Q, Luo R, Zheng K, Liu J, Liu Y, Chen Y, He Y, Chen Z, Li L. Inflammatory Bowel Disease Induces Colorectal Cancer: Risk Factors, Triggering Mechanisms, and Treatment With Phyto-Derivatives. Phytother Res. 2025 Aug;39(8):3386-3418. doi: 10.1002/ptr.70015. 8. Ribaldone DG, Valdiserra G, Di Salvo C, Puxeddu I, Bertani L, Antonioli L. The right drug at the right time: key to IBD success. Trends Mol Med. 2026 Jul;32(7):658-677. doi: 10.1016/j.molmed.2025.10.010. 9. Xie J, Huang Y, Wu HG, Li J. Acupuncture and moxibustion for treatment of Crohn's disease: A brief review. World J Gastroenterol. 2022 Jul 7;28(25):3001-3003. doi: 10.3748/wjg.v28.i25.3001. 10. Zeng SH, Jiang XY, Lin DR, Zhang WJ, Wu YQ, Xu L, Guo SJ. Mechanisms and therapeutic potential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for inflammatory bowel disease. World J Gastroenterol. 2026 Mar 14;32(10):115821. doi: 10.3748/wjg.v32.i10.115821.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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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용의 100세 칼럼] 장(腸)내 생태계의 붕괴와 염증의 악순환: 염증성 장질환을 제어하는 한의학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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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者, 비천한 ‘놈’과 귀한 ‘분’ 사이… 키질이 걸러낸 인생의 무게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가 흔히 ‘놈 자(者)’라고 부르는 이 글자는 현대어에서 사람을 낮잡아 이르거나 단순히 대상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하지만 상나라 후기 금문(金文) 속에 박제된 이 글자의 원형을 발굴해 보면, 그 안에는 땀 흘리는 농부의 ‘키질’과 바닥에 쌓이는 ‘알곡’의 미학이 숨어 있다. ■ 자형의 진실: 키질 끝에 바닥에 남은 ‘진짜’ 금문에 나타난 자(者)의 초기 형태는 자못 역동적이다. 위로는 무언가 흩날리는 점들이 있고, 아래에는 입 구(口)와 닮은 ‘바닥’의 형상이 자리한다. 이는 키질을 할 때 가벼운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묵직한 알곡들만 바닥(止)에 차곡차곡 모이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이 글자의 본래 설계도는 “엄격한 선별을 거쳐 바닥에 남은 소중한 결실”을 의미했다. 고대인들에게 ‘자(者)’는 무작위적인 군중이 아니라, 키질이라는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존재였다. ■ ‘선별된 전문가’와 ‘바닥의 존재’라는 이중성 이 ‘바닥에 모인 알곡’이라는 개념은 사람에게 투영되면서 흥미로운 양면성을 갖게 되었다. 선별된 자(者): 알곡처럼 가려 뽑힌 귀한 존재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학자, 기술자 등)를 뜻한다. 비천한 놈(자): 반대로 사회적 구조의 가장 아래, 즉 ‘바닥’에 머무는 낮은 지위의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의미로 분화되었다. 하나의 글자 안에 ‘가장 귀한 것’과 ‘가장 낮은 곳’의 의미가 공존하는 셈이다. 이는 인생의 무게가 결국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고대인의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 도읍(都)과 김치(諸) 속에 흐르는 ‘축적’의 논리 ‘바닥에 모여 쌓인다’는 어원적 맥락은 파생된 한자들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도읍 도(都): 알곡과 같은 지배층과 풍요로운 자원들이 바닥부터 차곡차곡 모여 있는 거대한 중심지를 뜻한다. 모두 제/김치 저(諸): 이 글자가 ‘김치’를 뜻할 때는 김칫독 바닥부터 정성껏 쌓아 올린 상태를 의미한다. 알곡이 바닥에 차오르듯, 시간과 정성이 쌓인 결과물이 곧 ‘저(諸)’였던 것이다. ■ 당신은 어떤 알곡으로 남을 것인가 결국 놈 자(者)는 단순한 지칭어가 아니라, 삶이라는 커다란 키질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인 글자다. 바람에 날아가는 가벼운 쭉정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바닥을 든든하게 채우는 묵직한 알곡이 될 것인가. 수천 년 전 고대인이 키질 끝에 얻은 알곡에서 ‘사람’의 본질을 읽어냈듯, 우리 또한 매 순간 삶의 키질을 하고 있다. 글자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 ‘선별’과 ‘축적’의 원리를 되새길 때, 비로소 ‘자(者)’라는 글자는 박제된 문자를 넘어 우리 인생의 무게를 다는 저울로 되살아날 것이다. [그림 39] (者) 자의 형성과정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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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者, 비천한 ‘놈’과 귀한 ‘분’ 사이… 키질이 걸러낸 인생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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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不, 하늘로 못 간 ‘새’가 아니라 수면을 덮은 ‘수련’이다
- [교육연합신문=육구균 칼럼] 우리가 흔히 부정(否定)의 의미로 쓰는 아닐 부(不)자는 한자 공부의 기초 중의 기초다. 허신의 『설문해자』는 이 글자를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려다 내려오는 모습"이라 풀이했고, 우리는 수천 년간 이 해석을 정답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이라는 거울에 비춰본 '不'의 진실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새의 날갯짓이 아니라, 수면 위로 잎을 넓게 펼친 수생식물 '수련'의 생명력을 담고 있다. ■ 자형의 진실: 위는 막히고 옆으로 퍼지는 생존 전략 갑골문에 나타난 不의 상단 가로선(一)은 하늘이 아니라 '수면' 혹은 '한계'를 뜻한다. 그 아래로 뻗은 선들은 물속으로 내린 뿌리와 줄기다. 나무처럼 위로 높이 자라는 식물과 달리, 수련이나 마름 같은 부엽식물은 수면에 닿으면 더 이상 위로 자라지 못한다(一). 대신 옆으로 평평하게 잎을 펼치며 수면을 가득 채운다. 즉, "위가 막혀 높이 자라지 못하고(不), 옆으로 넓게 퍼져 나간다"는 생태적 특징이 이 글자의 본래 설계도였다. ■ ‘크다’와 ‘잔’ 속에 살아있는 수련의 형상 이 원리를 대입하면 그간 개별적으로 외워야 했던 한자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진다. 클 비(丕): 수련 잎이 수면을 가득 덮으며 무성하게 번성한 모습에서 '크다'는 뜻이 나왔다. 임신하여 배가 불룩하게 나온 상태를 배(胚), 풍채가 당당한 것을 비(伾)라 하는 것도 수련 잎처럼 옆으로 부풀어 오른 형상에서 기원한다. 잔 배(杯): 나무(木)로 만든 술잔의 받침이 옆으로 넓고 평평한 수련 잎의 모양을 닮았기에 '不'이 들어갔다. 질경이 부(芣): 땅바닥에 잎을 쟁반처럼 넓게 펼치고 자라는 질경이의 특성을 '풀(艹)+옆으로 퍼짐(不)'으로 완벽하게 묘사했다. ■ 부정(否定)과 왜곡(歪曲), 막힘에서 시작된 의미 그렇다면 왜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이 되었을까. 아닐 부(否)를 보면 답이 나온다. 긍정의 대답이 흘러나와야 할 입(口) 위를 수련 잎처럼 평평한 막(不)이 가로막고 있는 형상이다. 소통이 차단된 상태가 곧 '부정'이 된 것이다. 기울 왜(歪) 역시 "평평해야 할 윗면(不)이 바르지 못하고(正)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수평을 유지해야 할 수련 잎이 기울어진 상태, 그것이 바로 '왜곡'의 본질이다. ■ 권위의 늪에서 상형의 본질로 우리는 오랫동안 『설문해자』라는 거대한 권위에 의존해 한자를 해석해왔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이 보여주는 상형의 본질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고대인의 삶을 증언한다. 아닐 부(不)는 단순히 안 된다는 거부의 기호가 아니다. 위로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도 옆으로 잎을 넓혀 세상을 덮으려 했던 식물의 끈질긴 생존 지혜가 담긴 글자다. 한자의 막힌 혈관을 뚫는 작업은 이처럼 박제된 글자에 푸른 잎사귀를 돋아나게 하는 일과 같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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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不, 하늘로 못 간 ‘새’가 아니라 수면을 덮은 ‘수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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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寧, 메주가 익어가는 ‘뜨락’에서 찾은 진정한 안녕(安寧)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무사히 잘 있는 상태를 안녕(安寧)이라 묻는다. 여기서 편안할 녕(寧)자는 흔히 마음(心)이 편안한 상태로 풀이되곤 한다. 하지만 한자의 가장 오래된 모습인 갑골문과 금문을 추적해보면, '안녕'의 실체는 추상적인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집안 깊숙한 곳에서 구수한 메주가 익어가는 '물질적 풍요'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丁(정)’의 비밀: 깊숙이 박히고 쌓이는 생명력 저(宁·貯)와 녕(寧)의 자형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는 못 정(丁)자다. 오늘날에는 ‘못’으로 쓰이지만, 본래는 무언가 ‘깊숙이 박히는 것’ 혹은 ‘단단하게 채워진 덩어리’를 뜻한다. 이 ‘덩어리’가 집(宀) 안의 그릇(皿)에 담겨 있는 모습이 바로 녕(寧)의 원형이다. 그렇다면 고대인의 집안 그릇에 담긴 그 단단한 덩어리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우리 민족의 생명줄과 같았던 메주다. ■ 메주를 ‘쌓고(貯)’, 기운을 ‘띄우는(宁)’ 공간 흥미롭게도 우리말에서 마당을 뜻하는 ‘뜰’이나 ‘뜨락’은 메주를 ‘띄우는’ 공간과 그 궤를 같이한다. 쌓을 저(貯): 메주를 차곡차곡 깊숙이 쌓아 갈무리하는 행위다. 뜰 저(宁): 발효를 통해 메주의 기운이 위로 몽글몽글 떠오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결국, 녕(寧)은 잘 띄운 메주가 집안 가득 쌓여 있는 풍경이다. 『설문해자』 시기에 이르러 ‘마음 심(心)’이 추가되며 철학적 의미로 변모했지만, 본래의 안녕은 “먹거리가 곳간에 가득 차 몸과 마음이 든든한 상태”를 의미했던 것이다. ■ 문화의 뿌리로 복원하는 문자의 생명력 이처럼 한자의 원형을 추적하는 과정은 단순한 문자 해독을 넘어 우리 문화의 뿌리를 복원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만이 공유하는 ‘메주를 띄우다’라는 감각을 통할 때, 비로소 寧(녕)이라는 글자에 흐르는 막힌 혈관이 뚫린다. 집안의 뜨락에서 메주가 잘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가장(家長)의 마음, 그것이 바로 고대인이 정의한 진정한 ‘편안함’이었다. ■ 풍요가 뒷받침된 평화 현대 사회에서 ‘안녕’은 지나치게 심리적인 위안으로만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寧의 원형이 보여주듯, 진정한 평화는 삶을 지탱하는 구체적인 풍요(메주)가 곁에 있을 때 완성된다. 오늘날 우리의 ‘뜨락’에는 무엇이 익어가고 있는가. 수천 년 전 메주 덩어리에서 평안을 읽어냈던 선조들의 통찰을 빌려온다면, 우리의 안녕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의 소중한 먹거리와 온기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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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寧, 메주가 익어가는 ‘뜨락’에서 찾은 진정한 안녕(安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