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09(토)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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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한민국 교육이 배출한 대다수 엘리트들은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크게 다른 것일까?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입각하는 국무위원들을 비롯한 장⋅차관급 엘리트들은 대한민국 학벌(學閥)의 정점에 있는 S대 출신들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S대 법대 출신인 현 대통령조차 인사를 단행할 때마다 대상의 인사들을 놓고 첫 마디가 “어느 대학 출신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기본부터 특정 대학 출신들이다. 특히 S대 법대 출신의 전⋅현직 법조인(판⋅검사⋅변호사)들이 집중적으로 발탁되는 이유다. 

 

이들은 대한민국 교육이 낳은 ‘공부 머리’가 탁월한 엘리트들이다. 대개는 예비고사 출신인 60대 이상과 학력고사 출신인 50대 이상으로 고교 재학 당시엔 뛰어난 학력(學力)을 소유한 ‘공부의 달인’으로 불렸다. 그들은 대학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각종 국가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들에 거는 기대만큼 ‘일 머리’에는 많은 부실함과 도덕적, 양심적인 인성조차 결여상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은 집단 토론문화에 약하고 상명하복식 명령체계, 권위의식에 매우 익숙하다. 

 

필자는 1983~1985년 사이 26개월 동안 미 육군(ARMY)에 증원된 한국군, 소위 카투사(KATUSA)로 근무한 적이 있다. 매번 중대, 또는 대대 단위에서 부대의 현안(이슈)을 놓고 전체 협의(미팅)를 할 때 비록 그들의 상당수가 고졸의 학력을 가진 지원자들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발표하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경청하는 문화에는 깊은 울림과 감동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것이 세계 최강대국의 힘이구나”하며 한껏 부러워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상명하달의 지시나 명령이 아닌 민주적인 방식의 소통과 의결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응집력이자 규율의 정착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집단의 토의⋅토론 문화에 한없이 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주입식 암기 교육에 의해 대화와 토의⋅토론 없이 일방적인 각자도생의 경쟁교육에 의해 길들여진 결과다. 특히 우리 교육이 낳은 엘리트들은 대개 성실한 모범생들이나 그들은 그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서 그대로 시험지에 옮겨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른바 ‘공부의 달인’들이다. 한때 널리 소개된 S대 최우등 졸업생들의 비결은 바로 교수의 설명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통째로 메모하고 암기해 거둔 결과라는 사실에는 씁쓸한 마음마저 들었다. 여기엔 소위 창의성과 상상력, 자기 생각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직도 우리 교육이 배출하고 있는 엘리트들의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교육의 실상이다. 그것도 부족해 이른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기계적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빠르게 문제풀이 기술을 습득한 학생만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최악의 평가 시스템이다. 매년 수능에서 발군의 성적을 거둔 졸업생들은 자신들이 고교 시절에 받은 교육은 “그저 시험문제풀이 기술을 배워 익숙하게 풀어낸 것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은 ‘공부 머리’와 ‘일 머리’가 따로따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결과의 배경은 결국 출세와 성공 지향의 맹목적인 교육가치가 우리 교육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가치는 이제 ‘배워서 남을 지배하고 잘 살자’는 가치로 바뀌었다. 이는 S대 법대 출신들이 국가의 주요 요직에 대거 포진해 있지만 그들의 ‘일 머리’는 ‘공부 머리’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것으로 입증된다. 그것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에 몰입된 까닭에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예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장관, 고위직에 오르는 것이 가문의 출세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보다 먼저 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며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개인철학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육은 엘리트들이 이 세계를 더 살기 좋은 곳(better place)으로 만드는 이타적인(beneficial) 존재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우주에서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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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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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교육칼럼] 우리 교육이 배출한 엘리트들의 ‘공부 머리’와 ‘일 머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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