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균의 周易산책] 생명의 축복은 어디에 있나(중택태괘)
두드리지 마라. 삶의 문은 이미 열려 있다.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중택태괘는 위와 아래에 공통으로 연못(☱)이 있는 모양이다.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다. 두 개의 연못은 지하 수맥을 통하여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수량을 도와주고 있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붕우들과 더불어 앉아 서로 강론하고 서로 학습하고 서로의 배움을 돕는다.’고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관계 즉 연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인간 존재의 즐거움도 연결과 교섭에 있다. 이것은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확충한다.
중택태(重澤兌)의 ‘태(兌)’는 ‘八+口+人’의 회의자다. 兄은 ‘사람의 입’이고, 八자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숨’이다. 그래서 ‘신적인 떨림’의 엑스타시 상태의 신기(神氣)의 모습이다. ‘들어가다(入)’의 의미다. 들어간다는 말은 단순히 형이상학적 관념적 개념과는 다르다. 느낌의 세계에서는 들어감이란 실제로 물리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수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兌)가 들어가는 한자어로는 說, 悅, 脫이 있다. 설(說)은 말의 주고 받음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혼자서 말을 하면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배움에도 이 괘가 관련이 있다. 배움이라는 것도 스승이 말을 하고 제자가 말을 받음이다. 또한 붕우끼리 말을 교환하면서 서로 배운다. 연결이다. 서로에게 들어감이다. 열(悅)은 붕우강습(朋友講習)을 말한다. 즉 공부를 친구와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이다. 공부를 할 때 독학하면 안 된다. 독학은 배움이 고루하고, 듣는 것이 너무 적어 자칫 왜곡과 망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탈(脫)은 자기를 버린다는 의미다. 무아나 몰아를 말한다. 신과의 소통은 일종의 엑스타시 상태다. 우리가 흔히 신기가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 즉 무아(無我)와 몰아(沒我)는 즐거움을 준다. 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기쁨이다. 중택태는 인간 존재의 즐거움에 대한 괘이기 때문에 중택태 괘사에도 ‘형(亨), 이(利), 정(貞)’이 나와 있다. ‘원(元)’만 없다. 존재의 기쁨, 생성의 기쁨이다. 괘의 격이 높다.
생명의 축복은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 존재한다는 중택태괘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다. 1960년에 씌여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라는 성장 소설이다. 원래 앵무새가 아니라 ‘흉내쟁이 자빠귀’라는 새인데, 이 새는 다른 새들의 소리를 잘 흉내낸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새여서 ‘앵무새’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작품의 배경은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이다.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같은 일자리를 두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종 차별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배경인 메이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축소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의 작가인 넬 하퍼 리는 앨라배마 주 먼로빌에서 1남 3녀의 막내딸로 태어난다.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스카웃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루이즈 핀치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스카웃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3년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그 3년이 물론 육체적으로도 성장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성장과 영혼의 개안을 가져온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의 역할이 무척 크다. 그리고 스카웃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안내자로 역할을 한다.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나? 바로 남에 대한 공감, 협력, 상생을 통해서다.
이것은 중택태괘의 주제와 일치한다. 먼저 공감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스카웃에게 “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간 그 안에서 돌아다닐 때까지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그렇다.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는 스카웃이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미스터리의 인물이었던 은둔 이웃인 부 래들리(Boo Radley)와의 상호작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카웃은 부의 관점(그의 외로움, 수줍음, 핀치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열망)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두려워하는 것에서 그에게 공감하는 것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공감은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지며, 부는 스카웃과 그녀의 남동생 젬을 위험에서 구하게 된다.
다음으로 협력이다. 톰 로빈슨의 재판은 협력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다. 메이콤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로 인해 법률 시스템이 톰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 핀치는 톰과 그의 가족이 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진실성과 헌신으로 그를 대표하여 협력한다. 법정에서의 묵묵한 존중 표시와 재판 후 음식 선물로 상징되는 애티커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간의 협력은 일종의 연대와 상호 지원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은 법정을 넘어 확장됩니다. 핀치 가족의 가정부인 캘퍼니아는 흑인과 백인 공동체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스카웃과 젬을 교회로 데려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 지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협력 감각은 인종 차별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화와 상호 존중의 씨앗을 심는, 인종을 초월한 더 깊은 이해와 존중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공존이다. 특히 소설의 결론은 부 래들리라는 인물을 통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때 두려움과 오해를 받았던 부는 핀치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며 온화하고 보호적인 인물로 밝혀진다. 부가 밥 이웰에게서 스카우트와 젬을 구해내면서 두려움이나 편견이 아닌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존의 힘을 보여준다.
결국, 밥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밥 웰을 죽인 후 부가 자신의 칼에 쓰러졌다고 말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부를 대중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로 한 커뮤니티의 결정은 자비와 존경의 행동이었다. 이는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차이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공존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앵무새 죽이기』는 도덕적, 공동체적 번영으로 대표되는 삶의 축복이 공감과 협력, 공존을 통해 달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애티커스 핀치나 스카우트처럼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캐릭터는 개인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더욱 공정하고 이해심 많은 커뮤니티에 기여한다. 편견과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도 소설은 이러한 가치가 진정한 번영, 평화 육성, 상호 존중, 인류애 공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즐거움이란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나는 만족감이다. 만족한 마음이 나란히 있다는 말은 서로 공감하는 마음의 연결을 의미한다. 공감으로 연결하는 마음은 협력할 수 있는 마음이다. 이렇게 즐거움에서 출발하는 노력, 그것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이미 사회를 움직이고 국가를 움직이고 나아가서는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하물며 다수의 이러한 마음들이 공감으로 연결되어 어느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협력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어떠한 일도 어려운 것이 없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인간은 하루도, 또 누구도 고립하여 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부단히 서로 접촉하고 교섭을 가지고 어떠한 관계로 서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가 모두 유쾌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사회 구조의 고도화는 어느 사이에 인간을 집단 속의 개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 상호 관계는 거대한 기계의 회전 속에 하나하나의 톱니바퀴로서의 연결이 강요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것은 연대감, 의무감, 중압감을 느끼게 하고 어쩔 수 없는 체념을 가지게 하는 관계다. 인간은 점점 노예로 변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즐거운 협력이란 꿈은 이 이해관계 앞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기쁜 마음을 서로 연결하며 살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도자의 인격이다. 지도자는 외유내강(外柔內剛)하는 미덕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 선두에 서서 실천하는 선구자적인 용감성이 있어야 한다. 외유(外柔)한다는 것은 겸손한 태도와 몸에 밴 예절과 수양에서 오는 세련됨으로, 남과의 사교를 부드럽고 선의에 찬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한다. 내강(內剛)이란 것은 마음 속에 바르고 선한 것에 대한 부동의 신념이 있어서 한결같이 의젓하여 변함이 없음을 의미한다. 남을 즐겁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매슬로우(Meslow)의 욕구 5 단계설을 무시하고서라도 잠깐의 쾌락적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라 보기 어렵다. 선두에 서서 실천한다는 것은 진정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남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을 따라오게 할 수 있는 길이다. 자신이 진정 즐거워하는 마음이라면 남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따라오게 된다. 『맹자』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 하였으니, 언제나 백성을 먼저 기뻐하도록 해주면, 백성이 자기의 수고로움을 다 잊어버리고 나라를 위해 힘껏 일하고, 어려운 일에 임금이 솔선수범하여 뛰어들면, 백성은 죽음을 불사하고 앞장서서 뛰어든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두 권장할 만한 일이 된다. 중택태괘는 공감하고 협력해서 상생하는 괘다.
『앵무새 죽이기』란 작품은 제목이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주면서 다른 새를 죽이는 것은 몰라도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고 말한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앵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부 레들리나 톰 로빈슨은 바로 앵무새와 같은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편견이나 아집 때문에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스카웃이 숙녀가 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다룬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첨가하자면 작품의 처음 배경이 여름이었는데, 작품의 후반부에 와서는 가을이 중심적인 시간적 배경이 된다. 가을은 조락과 소멸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퍼 리가 문학적 장치를 아주 치밀하게 배열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을과 더불어 스카웃은 비로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중택태괘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처럼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생명의 축복은 공감, 협력, 상생의 길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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