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민영 기자]

 

바로 지금, 여기가 ‘천국’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인술(仁術)


이덕수  이덕수내과 원장|의학박사|(전)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단위원


이웃집과의 사이에는 나지막한 담장이 아닌 콘크리트 벽이 세워지고 이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치수화된 공간 안에서 사라져가는 소통으로 인해 자신을 내세울 것은 오로지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탓일까. 어느새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해져버린 현 사회에서 병원의 규모를 늘려 물질적 부를 추구하기 보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자신을 찾아주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한 인술을 펼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 활동에 기부와 참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내어주는 의사가 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하지만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이러한 이야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인 ‘전북 전주 아중지구의 슈바이처’ 이덕수 원장의 풍문은 주간인물에게까지 전해졌고,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용히 활동을 이어갔으면 한다는 이 원장을 어렵게 설득하여 두 달여의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_취재 이선진, 이민영 기자 / 글 이민영 기자

 

환자는 ‘작은 예수’

 

시골의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워도 사랑만큼은 넉넉하게 받으며 자라고 있던 이 원장은 그의 뛰어난 학습능력을 발견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생 시절 이미 홀로 전주로 유학을 왔는데, 집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이 원장은 어린나이에도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했고, 자취를 하며 열 번도 넘는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힘든 시기를 겪음으로써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배운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원장의 얼굴에는 고난의 흔적은 다 씻겨 나가고 평온한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천식이 심하여 고통 받는 아버지를 보며 내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이 원장은 예수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며 의학서적인 지식을 넘어서 환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환자를 대하자는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이 생겼고, 깊은 신앙심가운데 그 뜻을 더욱 확고히 하며 드디어 지금의 그가 있는 데에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실제로 오후 7시가 넘어 진료시간이 끝나고 인터뷰가 이뤄지던 도중에 내원을 하신 한 할머님에게도 아무 내색 없이 안부를 물으며 침착하게 약을 처방해드리고 좀 더 세심히 진료해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시원한 음료수를 손에 쥐어드리는 이 원장의 모습을 보니 환자 한명 한명을 ‘작은 예수’로 모시며 짧은 진료 시간이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이 원장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마음이 전달된 것인지 그의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병원의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 있을지 물어보았는데, 전혀 그럴 뜻이 없다고 밝혀온 그는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온전하게 병원을 운영하며 남은 힘으로는 병원 밖에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아무래도 병원의 크기를 키우다 보면 그만큼 병원에서 보내야 할 시간도 많아지겠죠. 때에 따라서는 야간과 일요일 진료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저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여건이라든지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위해 저만의 이익이 발생하는 병원을 벗어나 일주일의 며칠이라도 진료 외의 외부 활동을 통해 그분들을 돕고 싶습니다. 따라서 병원의 안과 밖에서의 저의 생활을 조율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죠. 또한, 병원의 규모가 커져 여러 명의 의사들이 있게 되면 의견을 조율해야 할 문제들이 생기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가 어려운 경우도 발생할 수 있는데 저는 ‘나눔’과 ‘섬김’의 제 신념을 저를 찾는 환자분들에게 꼭 지켜드리고 싶고요.”

 

 

사회의 건강까지 챙기는 의사

 

미션스쿨인 신흥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자연스레 신앙의 씨앗이 심어진 이 원장은 예수병원에서 말 그대로 ‘예수’의 가르침으로 환자를 돌보는 선배들의 모습에 감명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전주제자교회와의 인연을 29년째 이어오며 현재에는 시무장로로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의료 신념이 된 ‘나눔’과 ‘섬김’은 그를 찾는 환자들뿐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는데, 개원 초기에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돌보는 것에 집중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속한 아중지구의 주민들이 있기에 자신의 병원 또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이 원장은 그 뒤로는 주민들과의 소통과 이해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나눠주고 돌려주기 위해 여러 건강 강좌와 봉사를 통해 지역 활동에 참여하며 명절 관련 행사나 음악회 공연 같은, 크고 작은 지역 행사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더불어 청소년들을 위한 단체에도 기부금 및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그의 ‘사회가 건강해야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랍니다’라는 말을 통해서는 이러한 지역 활동 참여에 현재 불거지고 있는 자살, 따돌림과 학교 폭력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열 손가락으로는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그의 지역 활동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봉사활동 내역이었는데, 앞서 병원 밖에서도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대로 이 원장은 수년간 꾸준히 무료 진료를 진행해 오고 있었고, 이러한 무료 진료는 사람들의 생사와 연결된 병원을 전투 장소에 빗대어 ‘최전방’이라고 묘사하는 그가 사람들이 그 ‘최전방’에 오는 일이 없게끔 사전에 병을 예방하고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에게도 그 기회를 주어 지역 사회를 돕고자 시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 기자의 눈에 들어온 무료 진료 시행 장소 중 하나, 전주 교도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는 이 색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진료 활동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작은 예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 있는 분들도 직접 만나보면 결국은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죄를 짓게 된 과정에서 분명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고 저마다의 애환이 있는 분들이며, 언젠가는 다시 세상에 나와야 하니 그 아픔을 나눠드리고 싶고 충분히 그분들을 도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것은, 그곳이 병원이든 교도소든 저의 진료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는 바로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리는 비에 꽃잎은 젖어도 그 향기는 젖지 않듯, 이러한 그의 선행과 지역발전에 대한 노고는 꽃향기처럼 퍼져나가 이미 그는 전주시 모범시민상, 전라북도도지사상, 전주시 새마을협의회 감사패, 대한민국사회 공헌대상,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혁신 의료기관, 한국을 빛낸 사람들(내과 부문),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와 아중지구 슈바이처 등 다수의 수상을 하였고 한국인물 33선, 현대 한국인물사 등재,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한국의 슈바이처들, 사랑과 인술의 명의, 전주시 파워 메디컬 등으로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우선은 현재 너무 세분화 되어버린 현대의학을 통찰력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환자를 살피는 눈을 가짐으로써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지금과 같이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전주의 시민단체와 함께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싶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평생건강연구소’를 설립하여 국민들의 질병을 예방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훗날 통일이 되어 북한의 환우들까지 돕고 싶다던 그는 이 자리를 빌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을 전했는데, 환자들의 진료에 집중하다 보니 초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것을 보았을 때 미안한 마음이 컸고, 초등학교 6학년인 늦둥이 막내딸이 어린 나이임에도 아빠를 이해해주는 것이 너무나 기특하다고. 그리고 특히, 대학시절 졸업여행으로 갔던 소록도에서 한센씨병 환우들의 손을 서슴없이 잡아주는 모습을 보고 평생을 함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아내에게는 그 이해심과 내조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진료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로 인해 목소리가 잠긴 상태였음에도 멋진 목소리를 가졌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 원장은 역시나 그 근사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즐기고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며 아무래도 자신의 목소리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환자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노래쯤은 못해도 상관이 없다며 웃어보이던 이덕수 원장. ‘만리향’의 아호를 가진 그가 사랑의 향기를 만 리까지 전한다는 아호의 뜻처럼 ‘전북 전주 아중지구’의 슈바이처가 아닌 ‘대한민국’의 슈바이처가 되는 그날까지 주간인물이 응원할 것이다.   

 

◈profile  

이덕수내과 원장 / 내과 전문의 / 의학 박사
내시경 전문의 / 초음파 인증의 / 노인병 인증의
대한소화기학회 평생회원 / 대한대장학문학회 평생회원
대한장연구회 회원 / 대한검진학회 회원
(전)전주예수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전주신흥고 총동창회 부회장 및 20주년 회장, 30주년 위원장
(전)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단위원
전북의사회상임이사 / 전북개원내과의사회이사
유네스코 전주음식창의도시 자문위원 / 새만금 리틀모델 선발대회 심사위원
전주 제자교회 시무장로 
신세계 라이온스 회원 / 인후3동 주민자치위원 / 아천모 회원
한국불우청소년 선도위원, (전)온고을 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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