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인물 위클리피플=이선진 기자, 이준영 기자]
바로선병원의 ‘바른진료’ 철학을 듣다
최원규 바로선병원 척추센터 원장
척추전문병원이 늘면서 서로 수술환자를 늘리려고 과잉진료와 과잉시술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홍보방법을 취하고 있다. 특정 시술법이 모든 증상을 치료하는 만능 치료법인양 광고하는 병원들도 흔히 보인다. 환자가 보다 똑똑해져야 할 필요도 있지만, 그 어떤 철학보다도 ‘정직’을 내세워야 할 의료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씁쓸함이 더욱 커져만 간다. 이러한 가운데 미디어를 활용한 자극적인 광고보다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묵묵히 바른 진단과 진료를 펼침으로써 견고한 신뢰를 쌓아온 곳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병원은 도봉구청과 함께 협약식을 맺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때에 적정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에게 무료진료와 수술을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 내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바로 ‘바로선병원’을 두고 한 말이다. 그곳으로 한걸음 달려간 기자는 ‘최원규’ 원장을 만나 그의 의료 발자취와 비전, 바른진료 철학을 들어보았다. _취재 이선진, 이준영 기자 / 글 이선진 기자
기본이·생각이·마음이 ‘바로선’ 병원
오랜 시간 공들인(?) 설득 끝에 바로선병원을 탐방 취재할 수 있게 된 기자는 최원규 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으로 달려갔다. 다소 한적하고도 조용한 지역에 자리를 굳히고 있던 바로선병원은 그의 명성답게 ‘고객을 위해 바로선 병원’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절·척추분야에서 비수술적 선행치료에 기반한 진료문화를 선도해 나아가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기자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친절한 설명과 함께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크게 4개의 전문센터로 나뉘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무릎, 척추, 어깨, 골절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바른 진단과 치료를 기반으로 수술 부위 최소화 치료법을 개발하고 분야를 선도하는 <바로선 무릎센터>, <척추센터>, 환자의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비수술적 치료’로 만족을 높인 <바로선 어깨센터>, 환자 한분 한분의 안정되고 신속한 치료를 위해 24시간 열려있는 <바로선 골절센터>. 이 4대 전문화된 진료를 통해 바른 치료의 본보기가 되고자 바로선병원의 전 의료진과 임직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병원을 둘러본 기자는 2층 원장실을 방문해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최원규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척추 분야에서 국내 명성 높은 의료인 중 한 명이다. 이번에 최 원장이 바로선병원 척추센터 병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기자는 바로선병원 첫 진료 소감부터 들어보았다. “병원끼리 상업적인 경쟁구조가 되어버린 강남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한 도봉구에 위치한 바로선병원은 의료진의 입장에서 보아도 환자에게 안정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바로선병원만의 가족같은 병원분위기와 바른진단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의료진이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부를 한껏 내비친 ‘최원규’ 원장.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모습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는 그를 보며 의사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전문 실력과 환자에 대한 배려심이 남다른 의사
맵시나는 옷처럼 하얀 의사가운이 참 잘 어울려보이던 최 원장. 그가 의료인의 길을 택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였다고 한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말 성적이 오르면서 일명 SKY대학 어디든 갈 실력을 자신하며 공대 진학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2때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재학 도중 휴학이나 재수를 생각할 정도로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상태가 된 것이다. 어릴 적 그는 참 병약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렵게 고3생활을 마치고 진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그는 큰 누님의 도움을 받아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의사인 큰 누님께서 저에게 의예과를 권유하셨습니다.” 그의 대학시절은 어땠을까? “시국이 어수선할 때였죠, 데모를 많이 할 때였으니까요. 교내 역시 그런 분위기라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공부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인터뷰 내내 뚝심 있고 정감 가는 부산 사나이의 진면목을 보여준 그는 풍기는 이미지 같이 바르고 곧은 성품의 인물이었다.
의예과의 여러 과목 중 그는 어떻게 전공과목을 정하게 됐을까? “남들이 잘 안하는 어려운 과를 택하고 싶었어요. 결단력 없어 보이고 연약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았습니다. 4학년 때 덩치 크고 마초 같은 느낌이 강했던 친구가 ‘신경외과’였는데 연수 도중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저 과가 내가 해야 할 과다’ 마음을 정하게 됐죠.” 강하고 싶고 독해 보인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는 그는 단지 외모 상 비춰지는 모습이 ‘강해보임’이 아니라 본래 내면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일욕심도 많다. 무슨 일이든 남들 보다 더 해야 한다는 주의이자 그의 성격상 이왕 한다면 반드시 잘해야 한다. ‘신경외과’에 몸담게 된 그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뇌, 척추질환 환자들을 치료해오며 오랜 시간 환자들과 호흡해왔다. 그에게 있어 의료는 ‘업’이 아니라 어우러진 ‘삶’ 자체가 된 것. “의사도 사람인지라 수술 결과가 100% 좋다고 보장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인지 힘든 수술을 하고 나면 환자도 힘들어할 것을 알기 때문에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매 순간 수술대 위에서 최선을 다해 수술을 하고 수술 후에도 경과가 계속해 좋을 수 있도록 케어해주고 있습니다.”
최 원장의 말투는 투박했지만 그 마음 씀씀이엔 환자에 대한 배려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부산과 서울, 부천 등 여러 지역병원에서 터를 잡고 봉직해온 그는 만나는 환자마다 이들을 가족같이 대했고 그 진심이 통한 덕에, 환자 역시 치료자인 그와 치료법에 대한 깊은 신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들이 수술을 결정하기 전, 혹여나 수술 후 올 수 있는 후유증이나 부작용에 대해 냉정히 말해준다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수술을 받겠노라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처음엔 다소 놀라기도 했다. 놀랄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인 것을. 다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견고해진 ‘신뢰’와 그의 이름 석 자만 대면 알 만한 ‘명성’ 때문이리라. 이런 그가 환자를 진료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는 환자와 의료진간의 원활한 소통과 환자에게 맞는 맞춤 치료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경추와 척추 부위는 매우 민감한 부위이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간의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수술 자체가 인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최후의 치료 수단이기 때문에 의료진은 무턱대고 수술을 권할 게 아니라,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바탕으로 환자의 케이스에 맞는 정확한 원인을 찾고, 맞춤 치료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또한 치료 이후에도 재발하지 않도록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예방법을 제안해 줌으로써,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케어해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완치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의 체력은 환자의 생명이다!
오랜 인터뷰 후 기자는 그의 매력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철인 3종 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위사람들과 함께 철인 3종 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주로 한강에 나가서 윈드서핑을 즐기거나 러닝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하기도 하고, 평일에는 틈틈이 팔굽혀펴기라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라는 특성상 장시간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가 건강한 체력과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올바른 진료를 펼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힘든 경기에 임할 때 체력이 고갈되면 도중에 포기하고 싶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꼭 나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환자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 환자들을 보면 오히려 제가 배우는 점들이 더 많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위험하더라도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하였지요. 처음 마라톤을 뛸 때도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수술하고 힘든 환자들과 병상에서 고생하는 환자들을 떠올리니 이를 악물고 더 뛰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환자 이야기로 귀결되는 그를 보니 천생 의사인 것 같다.
“이전 병원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서울~속초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했어요. 한겨울에 장갑을 두 개씩 끼고 장거리를 달렸는데 낙오되는 친구 없이 다들 잘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한 번 다녀온 것이 얼마나 직원들에게 사기충전이 됐던지, 자전거 라이딩을 다녀온 후 저의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더라고요. 다음에는 속초에서 부산까지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거 보면 힘들었지만 좋았나봅니다(웃음).” 백 번의 말이 무슨 소용이랴. 그의 돈키호테 같은 ‘추진력’과 ‘몸소 행함’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그가 바로선병원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 전, W병원 서울 병원장과 부산 병원장을 역임하던 시절, 한 곳만 보더라도 십년 이상의 인연을 같이했으니 무수히 많은 환자 치료사례를 보유했을 터. “정말 많은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떤 환자든지 어떤 수술이든지 새 기계나 장비가 필요하다 말하면 수술환경이 그대로 갖춰지는 환경 속에서 마음껏 실력발휘를 할 수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눈이 빨갛게 토끼 눈이 될 때까지 수술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한 때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자기 몸을 미처 돌보지 못해 진료를 잠시 쉬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단련된 체력으로 일상의 바쁜 스케줄과 힘든 수술도 거뜬히 감당해낸다 한다.
어떠한 척추 환자라도 유기되지 않는 척추전문 병원으로 꼭 만들고 싶다는 최원규 원장. 그는 자신이 부임함으로써 바로선병원이 척추병원으로서 제2의 화려한 도약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바로선병원의 발전에 힘을 보태어 의료선진화를 이끌 수 있는 멘토가 되기를, 그 디딤돌이 ‘자신’이 되어 몸소 기꺼이 헌신하겠노라 말하는 그. 화려하진 않지만 힘 있는 낮은 목소리로 고백하는 그의 진심이 깊은 울림이 되어 뭉클하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모든 척추 환자들이 그를 만나 바른 의료혜택을 받게 될 그날까지 그의 가치 있는 삶과 행보를 주간인물이 함께 응원한다.

◈Profile
[경력]
ㆍ現 바로선병원 척추센터 원장
ㆍ우리들병원 서울 병원장 역임
ㆍ우리들병원 부산 병원장 역임
ㆍ대한경추연구회 정회원
[학력]
ㆍ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ㆍ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석, 박사 학위 취득
ㆍ미국 Arizona Phoenix Barrow Neurological Institute 연수
ㆍ프랑스 Bordeaux University Hospital 척추센터 연수
ㆍ미국최소침습척추수술 전문의(FABMISS) 취득
ㆍ영국왕립외과학회(RCPS) 학사원(FRCS)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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