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1-02(월)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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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크레파스 72색짜리를 선물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머리맡에 놓고서 잠을 설쳤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가난했지만 문구류에 대한 관심과 욕심, 특히 필기구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아주 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문구류에 대한 물욕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도구를 발명한 역사이면서 기억을 보존하려는 노력의 역사이다. 필기구의 역사는 망각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오랜 분투라고 생각한다. 점토판 문자, 파피루스 위 갈대 펜 글을 지나서 동물의 깃털을 다듬어 만든 깃털 펜이 유럽에서 지식과 권위를 기록하는 도구로 쓰였다. 필기구의 속도만큼 인간의 머리도 점차 빨라졌지만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을까. 

 

16세기 유럽에서는 흑연을 나무에 끼워 쓰는 방식의 연필이 등장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니콜라자크 콩테는 흑연과 점토를 섞어 굽는 연필 제조법을 개발했다. 19세기에는 만년필이 발전했고, 20세기에는 볼펜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점성이 높은 잉크와 작은 구슬 모양의 펜촉을 결합한 볼펜은 잉크가 번지는 문제를 줄이고 보다 편리한 필기를 가능하게 했다. 

 

196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 필기구 변화는 역사 연표를 보는 듯한 기분이 있다. 어린 시절 연필을 깎고 공책에 글씨를 쓰던 기억에서 출발해 볼펜으로 시험 답안을 채웠다. 교직에서는 시험지 출제를 철필로 하기도 했다. 이후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이 손에 익숙해졌다. 인류가 오랜 동안 발전시킨 기록 도구들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압축적으로 바뀐 셈이다. 

 

도구가 바뀌면서 쓰는 행위의 의미도 달라졌다. 연필은 틀린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볼펜은 한번 남긴 흔적에 책임을 져야 한다. 컴퓨터는 수정과 편집을 자유롭게 했고, 스마트폰은 기록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풀어 놓았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의문이 생긴다. 기록하는 능력이 커질수록 인간의 기억과 사유도 깊어졌을까. 기록의 양과 생각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이제 인공지능은 질문에 답하고, 글을 쓰고, 인간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한다. 미래의 필기구는 더 이상 손에 쥐는 물건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며, 머릿속 구상을 그림과 문서로 바꾸는 지능형 도구가 등장할 것이다. 

 

인간은 더 편리하게 쓰기 위해 수많은 필기구를 발명했지만 정작 자신을 이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문장을 써 왔을까. 상대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적다 보면 말의 속도와 표정, 잠시 멈추는 침묵까지 마음에 들어왔다. 적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일이었고,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함부로 잊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날에는 무엇을 이루고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기록했다. 삶의 후반에 접어든 지금은 무엇을 더 많이 쓸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삶의 아픔을 통과하지 않은 문장이 고통받는 사람을 얼마나 깊이 위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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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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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연필과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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