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Home >  기획·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왜 다시, 문해력인가?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오늘날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무엇인가? 학력 저하일까? 사교육 과열일까? 아니면 교권 붕괴일까?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더 근본적인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다. 필자의 칼럼 「청소년들의 뒤처지는 문해력,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는 몇 년 전 발표되었지만,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읽혀야 할 교육적 경고가 되었다. 오늘날 교사들이 모여 교육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화제가 단연코 학생들의 “문해력” 결핍의 심각성에 입을 모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문해력이라는 말조차 학생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어떤 교사는 이렇게 다시 설명한다.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힘 말이야.” 그러자 한 학생이 묻는다. “쌤, 그거 요약본 있나요?”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며, 자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힘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력과 공감력, 민주 시민성의 기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문장을 읽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긴 글을 견디지 못하며, 질문보다 검색에 익숙한 세대로 변해가고 있다. 교실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시험 문제를 읽고도 무엇을 묻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자신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학생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어 과목의 문제가 아니다.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도 결국 문해력의 결핍과 연결된다. 더 심각한 것은 디지털 환경이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깊이 읽기와 사유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알고리즘은 생각을 확장시키기보다 취향만 반복 강화하고, AI는 스스로 사고하기 전에 먼저 답을 제공한다. 이제 아이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니?”라는 질문보다 “정답이 뭐예요?”를 먼저 묻는다. 이것은 단순한 학습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사고 체계의 위기다. 필자는 당시 칼럼에서 읽기·말하기·쓰기 교육의 회복을 강조했다. 시 동아리, 스피치 활동, 글쓰기 교육, 일기 쓰기 같은 실천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통찰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다. 아니, AI 시대일수록 더욱 절박하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정보를 대신 제공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최후의 경쟁력은 ‘생각하는 힘’이며, 문해력은 바로 그 생각의 근육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다시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읽는 시간을 빼앗았는가? 왜 학교는 시험 문제 풀이에만 몰두하며 사유의 교육을 잃어버렸는가? 왜 독서는 취미가 되었고, 글쓰기는 수행평가 기술로 전락했는가? 문해력 회복은 거창한 정책 이전에 교육 철학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첫째,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과에서 읽기와 토론, 서술형 글쓰기를 강화해야 한다. 국어 시간에만 문해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 둘째, 학교는 ‘조용히 읽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독서는 과제가 아니라 삶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셋째, 교사들에게도 읽고 쓰는 전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학생의 문해력은 결국 교사의 언어 수준을 넘기 어렵다. 넷째, 가정과 지역사회 역시 책 읽는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스마트폰만 보는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 중심 교육의 방향 수정이다. 지금처럼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만 강조해서는 문해력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이해의 깊이를 평가해야 한다. 교육은 결국 인간을 만드는 일이다. 문해력이 무너진 사회는 결국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혐오와 선동에 흔들리며, 민주주의마저 약해진다. 그래서 문해력 교육은 단순한 학업 향상이 아니라 사회를 지키는 공공의 과제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입시제도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책을 돌려주고, 언어를 돌려주고, 생각하는 시간을 돌려주는 일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김홍제의 목요칼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세상일까. 아름다운 사람이 많이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인공지능, 숫자, 비교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세상은 그대로이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타인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에 가깝다. 진짜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어떻게 보일까’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한 사회의 품격은 그 사회가 어떤 아름다움을 존경하느냐에 달려 있다. 돈과 성공만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은 거칠어진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하루하루의 선택이 겹쳐서 한 사람의 표정을 만든다. 배려와 품위가 있는 사회에서는 서로를 인간답게 대하려 애쓴다.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을 위한 공간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아름다움이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친절은 또 다른 친절을 낳는다. 그 친절은 햇살처럼 세상을 아름답고 따스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학교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관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국 교육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감’을 가르치는 것이다. 공감은 단순히 착해지는 교육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능력이다. 공감은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학교는 점수를 경쟁하는 공간이기 전에 인간을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과서보다 어른들의 태도를 더 많이 배운다. 교사와 부모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배려를 말할 수도 없다. 교육은 말이 아니라 분위기와 태도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이 서로를 소모품처럼 대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이가 실수해도 모욕당하지 않는 학교,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쓸모없다고 취급받지 않는 사회. 아픈 사람이 가난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공동체. 그런 곳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지 않은 사회’이다.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불행에 익숙해지고 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가난 때문만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할 때다.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를 경쟁자로만 보거나 숫자와 성과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한 인간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사회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울고 있는 사람 곁에 잠시라도 함께 서주는 누군가가 있는 세상. 인간다운 따뜻함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사회. 그런 세상이야말로 기술보다 오래가고 돈보다 강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믿는다. 교육은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람다운 사람, 공감하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창밖은 다양한 꽃들이 서로 어우러져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은자(殷字)의 재발견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자는 2,000여 년간 동양 문명의 핵심이자 일상의 도구였으나, 우리는 매일 쓰는 글자의 진짜 주인과 얼굴을 잊은 채 살아왔다. 오늘날 흔히 ‘한자(漢字)’라 불리는 이 문자는 사실 한나라 시대에 붙여진 이름일 뿐, 그 기원은 3,500년 전 상(은)나라의 갑골문과 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고고학적 진실은 이 문자의 창제 주체가 바로 우리의 직접적인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명백히 가리킨다. 하지만 이 위대한 유산의 해석은 오랜 시간 왜곡되었다. 그 오해의 중심에는 서기 100년경 동한(東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집대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있다. 허신은 문자학의 권위자였으나,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갑골문과 금문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소전(小篆) 위주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는 동이족의 풍습과 철학이 담긴 문자를 화하족(한족)의 시각에서 한정 지어 해석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수많은 ‘은자(隱字)’가 본래의 뜻과는 다른 모습으로 굳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자의 근본 원소 곳곳에는 동이족만의 고유한 생활 양식과 풍습이 짙게 배어 있다. 대표적으로 ‘오랑캐’로 격하된 ‘이(夷)’자는 갑골문에서 ‘큰 활(大+弓)’을 능숙하게 다루는 문명인의 기개를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고 춤을 추며 신과 소통하던 제천 행사의 모습, 죽은 이의 영혼을 기리며 옥(玉)을 소중히 여겼던 장례 문화, 그리고 흰 옷을 즐겨 입으며 예의를 갖추어 무릎을 굽히던 생활 방식 등은 갑골문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허신은 이러한 동이족의 문화적 맥락을 알지 못한 채, 이미 변형된 글자 모양만을 보고 억지로 뜻을 짜 맞추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여러 개의 작은 ‘근본 원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교한 퍼즐이다. 본서는 허신의 권위에 가려진 채 잃어버린 동이족의 지혜를 되찾기 위해 다음의 5가지 엄격한 원칙으로 한자의 비밀을 검증한다. ㅁ원형성: 반드시 갑골문과 금문의 초기 자형에 부합해야 한다. ㅁ역사성: 반드시 동이족의 역사적 사실이나 선진(先秦) 시대의 문헌 기록에 부합해야 한다. ㅁ일관성: 모든 한자 부호의 해석은 일관되어 다른 글자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ㅁ합리성: 자형에서 파생된 뜻이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한다. ㅁ계승성: 자형과 뜻의 변화 과정이 시대별로 일관되게 이어져야 한다. 본서의 목적은 명확하다. 2,000년 전 허신의 실수와 화하족 중심의 역사관이 만들어낸 광범위한 오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왜곡된 해석을 바로잡고 동북아시아 문명의 시원인 동이족의 발자취를 추적함으로써, 비로소 한자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인 진짜 ‘은자(殷字)’의 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 해석을 넘어,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원류를 되찾는 엄숙한 여정이다. ■ 한자의 막힌 혈관, ‘홀태’와 ‘모래톱’으로 뚫다 한자(漢字)는 동양 정신의 뿌리이자 고대인의 삶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해설서, 특히 허신의 『설문해자』가 정해놓은 틀에 갇혀 그 역동적인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제 우리말의 고유한 감각인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열쇠를 통해, 한자의 잃어버린 원형을 복원해보고자 한다. ■ 勿(물/몰), 깃발이 아닌 ‘훑어내는’ 동작의 형상 허신은 말 물(勿)자를 깃발이 세워진 모습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칼(刀) 사이로 낱알(丶)이 흩어지는 형상, 즉 빗처럼 생긴 도구로 곡식을 ‘훑어내는’ 동작이 선명하게 읽힌다. 본래 ‘털어내다’라는 뜻의 털 몰(勿)이었던 셈이다. 이 흔적은 만물 물(物)자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소의 등 긁개로 털을 훑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 글자는, 본래 ‘털어내다’라는 동작이 한자의 핵심 자형 원리였음을 증명한다. ■ 賜(사)와 易(이), 모래톱이 내어준 자연의 선물 줄 사(賜)와 쉬울 이(易)의 관계는 우리 민족의 지형적 감각인 ‘모래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賜’는 조개(貝)를 훑어내는(勿) 모습이다. 물가 모래톱에서 조개를 훑어 건져 올리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말 ‘모래톱’이다. 지형이 톱니처럼 생기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왜 ‘톱’이라 부르는가. 이는 ‘훑는 도구’인 홀태(톱)의 이미지가 지형에 투영된 결과다. 자연이 거저 내어주는 조개를 줍는 일이니 ‘줄 사(賜)’가 되었고, 물줄기가 지형을 쉽게 바꾸는 모습에서 ‘바꿀 역/쉬울 이(易)’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갑골문의 원형 정신을 가장 온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利(리), 벼를 베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터는’ 유용함 우리는 흔히 이로울 리(利)를 ‘벼(禾)를 칼(刀)로 베는 모습’이라 배운다. 그러나 원형은 벼와 ‘털 몰(勿)’의 결합에 가깝다. 볏단에서 알곡을 훑어내는 ‘홀태질’의 효율성을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수확의 극대화에서 ‘이롭다’는 뜻이, 홀태 날의 예리함에서 ‘날카롭다’는 뜻이 나왔다. 더 나아가 알곡이 체에 걸러지듯 배출된다는 비유에서 대소변을 뜻하는 의미까지 확장되었다. ‘베는’ 행위보다 ‘터는’ 행위가 농경의 핵심적 이익임을 고대인들은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말로 복원하는 한자의 생명력 중국조차 자의적 해석에 갇혀 잃어버린 한자의 본뜻이, 역설적이게도 우리말의 ‘훑다’와 ‘모래톱’이라는 감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자를 중국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고유의 언어 감각으로 한자를 재해석할 때, 비로소 한자의 막힌 혈관이 뚫리고 고대인의 삶과 지혜가 우리 곁으로 온전히 돌아올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최윤용의 100세 칼럼] 매달 반복되는 원발성 월경통, 프로스타글란딘과 중추신경 감작의 연결고리 풀기
[교육연합신문=최윤용 기고] 1. 자궁이 보내는 경고음, 원발성 월경통의 원인과 유병률 - 원발성 월경통(Primary dysmenorrhea)은 골반 내 뚜렷한 기질적 이상 없이 월경 주기에 맞춰 발생하는 하복부의 경련성 통증을 의미합니다. 전 세계 70개국 자료를 종합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원발성 월경통은 여성 인구에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일상생활과 학업·업무 수행 능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대표적 여성 건강 문제로 지목됩니다. 병태생리학적으로 이 통증의 핵심은 자궁 내막에서 과도하게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염증 매개 물질이 자궁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고 혈류량을 감소시켜 허혈성 통증을 유발하는 데 있습니다. 월경통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되며, 점차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 상태를 초래하여 신경학적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진통제만으로 월경통 관리가 어려운 이유와 숨은 위험성 - 현재 원발성 월경통의 1차 치료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s)와 경구 피임약이 주로 처방됩니다. 이들 약물은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차단하여 급성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많은 환자가 진통제에 충분히 반응하지 않거나, 장기 복용 시 위장관 장애, 신장 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어 복용을 중단하곤 합니다. 식물 유래 한약 치료(plant-derived therapies)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기존 약물의 한계와 부작용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현재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대상 질환에 월경통이 포함되면서, 표준화된 한약 치료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월경통이 동반하는 심리적 부담입니다. 매달 반복되는 심한 통증은 신경면역학적 불균형을 유발하여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진통을 넘어 신체 전반의 신경학적 안정과 염증 제어를 돕는 다각적인 접근이 절실합니다. 3. 뇌 신경망 연구를 통한 월경통의 뇌과학적 재해석 - 최근 뇌과학 연구는 월경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의 신경영상 기법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간 원발성 월경통을 앓은 여성들은 통증을 지각하고 조절하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대뇌피질-변연계 등) 구조와 활성도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자궁에서 시작된 말초의 염증 신호가 뇌의 통증 조절 회로를 교란시켜,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월경통 치료가 자궁 수축 억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중추신경계의 과흥분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합니다. 4. 원발성 월경통에 대한 효과적 대안: 한약과 침 치료의 현대 과학적 근거 - 이러한 맥락에서 한의학 치료는 월경통 관리에 있어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효과와 기전이 최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되고 있습니다. 먼저 침 치료는 뇌의 통증 조절 네트워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fMRI를 이용한 연구에서 침술은 월경통 환자의 비정상적인 뇌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여 중추성 진통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양한 침 관련 치료를 비교 분석한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침 치료는 통증 강도를 유의미하게 낮추고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안전하고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19년간 진행된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에서는 원발성 월경통 환자에게 꾸준히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신경면역 조절 기전을 통해 향후 우울증으로 이행될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침 치료가 단순 진통을 넘어 중추신경계 보호 효과를 지님을 의미합니다. 한약 역시 다양한 약리 성분이 여러 병리적 표적에 동시에 작용하여 자궁 내 염증 환경과 혈류 개선에 기여합니다. 월경통에 다용되는 대표적 처방인 온경탕은 최신의 인공지능 기반 약리분석 연구를 통해 염증 발현의 핵심 경로인 PI3K/AKT/NF-κB 신호 전달을 억제하여 하복부의 혈류에 장애를 야기하는 원인 염증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근래의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에서는 월경질환 치료에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계지복령환이 위약군에 비해 월경통 강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특정 처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발표된 국내 다기관 전향적 관찰연구에서도 환자 맞춤형 한약 치료가 진통제 복용량을 줄이고 통증 지속 시간을 단축하는 데 유의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5. 약물 의존을 줄이는 일상 속 월경통 자가 관리법 - 임상적인 한의 치료와 함께, 일상생활에서의 적극적인 관리 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만성 월경통을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요법 :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천연 진통제입니다. 2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종합한 네트워크 메타분석에 따르면, 규칙적인 요가, 스트레칭, 중등도의 유산소 운동은 골반 내 혈류 순환을 개선하고 통증 유발 물질을 배출시켜 월경통 강도를 뚜렷하게 감소시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기저 체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체온 유지와 하복부 보온 : 한의학에서 말하는 '한응혈어(寒凝血瘀, 차가운 기운이 혈액을 뭉치게 함)'는 실제 생리학적 혈관 수축과 일치합니다. 하복부를 따뜻하게 유지하여 골반 근육의 긴장을 풀고 미세혈류 순환을 돕는 것이 좋습니다. 생리통을 '여성이라면 당연히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진통제에만 의존한 채 위장 장애와 우울감을 감내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궁의 국소적 염증을 다스리고 중추신경계의 예민함을 잠재우는 과학적인 한의 치료와 올바른 운동 습관을 통해, 매달 찾아오는 통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de Arruda GT, Barbosa-Silva J, Driusso P, Pathmanathan C, Armijo-Olivo S, Avila MA. Worldwide prevalence of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cross 70 countries. Pain. 2026 Jan 1;167(1):41-55. doi: 10.1097/j.pain.0000000000003768 2.Iacovides S, Avidon I, Baker FC. What we know about primary dysmenorrhea today: a critical review. Hum Reprod Update. 2015 Nov-Dec;21(6):762-78. doi: 10.1093/humupd/dmv039. 3.Cho SI, Jung HJ, Park M, Kim DI. Effectiveness and safety of herbal medicine on treatment of dysmenorrhea: An analysis of a multicenter, prospective observational study. Integr Med Res. 2026 Mar;15(1):101209. doi: 10.1016/j.imr.2025.101209 4.Wu L, Xu Lou I, Hu Z, Wang G, Deshpande SV, Cáceres-Matos R. Efficacy of Plant-Derived Therapies for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hytother Res. 2026 Apr 15. doi: 10.1002/ptr.70324 5.Tsai IC, Hsu CW, Chang CH, Lei WT, Tseng PT, Chang KV.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Different Exercises for Reducing Pain Intensity in Primary Dysmenorrhea: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Sports Med Open. 2024 May 30;10(1):63. doi: 10.1186/s40798-024-00718-4. 6.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2023:8307249. 7.Chen B, Guo Q, Zhang Q, Di Z, Zhang Q. Revealing the Central Mechanism of Acupuncture for Primary Dysmenorrhea Based on Neuroimaging: A Narrative Review. Pain Res Manag. 2023 Feb 18;2023:8307249. doi: 10.1155/2023/8307249. 8.Liao CC, Lin CL, Tsai FJ, Chien CH, Li JM. Acupuncture's long-term impact on depression prevention in primary dysmenorrhea: A 19-year follow-up of a Taiwan cohort with neuroimmune insights. J Affect Disord. 2024 Jan 1;344:48-60. doi: 10.1016/j.jad.2023.10.013. 9.Li XL, Jin Y, Gao R, Zhou QX, Huang F, Liu L. Wenjing decoction: Mechanism in the treatment of dysmenorrhea with blood stasis syndrome through network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verification. J Ethnopharmacol. 2025 Jan 30;337(Pt 1):118818. doi: 10.1016/j.jep.2024.118818. 10.Luo Y, Mao P, Chen P, Li C, Fu X, Zhuang M. Effect of Guizhi Fuling Wan in primary dysmenorrhea: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 Ethnopharmacol. 2023 May 10;307:116247. doi: 10.1016/j.jep.2023.116247. ▣ 최윤용 ◇큰나무한의원 대표원장 ◇ (주)으뜸생약 대표이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제철 음식과 탄소 중립 그리고 환경교육의 재인식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작년 겨울, “할아버지, 이 딸기 맛이 좀 이상해~.” 제철이 지난 시기에 어린 손녀가 먹던 딸기를 내려놓으며 하던 말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철 지난 과일의 맛은 6살 아이의 기억과 입에도 낯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딸기 한 알을 우리 식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됐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우리는 날로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인내의 한계를 넘을 만큼 폭염과 싸우고 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나 과학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가뭄, 폭우, 태풍, 식량 위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런 시대,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지식을 뛰어넘는 ‘지속 가능한 삶의 선택’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도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식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은 그 자체가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농산물이나 비제철 작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평균 11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인공조명, 난방, 수분조절 등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곧 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컨대, 2020년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겨울에 먹는 딸기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약 3.4kg의 CO₂로 밝혀졌다. 반면에, 제철인 봄에 재배된 딸기는 0.8kg의 CO₂로 훨씬 적다. 같은 딸기이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제철 급식’을 운영함으로써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철저한 탄소 중립 교육에 나서야 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초등학교는 2022년부터 ‘제철 급식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영양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함께 참여해서 한 주일씩 제철 재료로만 구성된 메뉴를 만들고, 식사 후에는 환경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한 학생은 “처음엔 낯선 반찬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자연이 지금 주는 맛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적었다. 또 다른 학생은 “내가 먹는 음식이 지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니, 앞으로 장을 볼 때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교육은 단순히 환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끄는 울림 있는 실용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제철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탄소 중립의 실천이다. 계절에 맞는 재료를 소비함으로써 난방, 냉방, 장거리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농업의 활성화이다. 식재료는 대개 지역 농산물이다. 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식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실천이기도 하다. 셋째, 식문화의 회복이다. 제철 음식은 자연이 주는 최적의 영양 상태를 가진다. 건강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넷째, 소비자로서의 책임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 선택의 윤리성과 환경적 영향을 배움으로써, 더 넓은 차원의 ‘지속 가능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제로 푸드 마일(Zero Food Mile)’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한 학생이 쓴 글이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울렸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이 지구에 무게가 될 수도, 지구를 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제철이라는 건 단지 맛있는 시기가 아니라, 자연이 숨 쉬는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제철 음식 먹기’는 단지 건강을 위한 선택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작은 실천이자 위대한 교육이라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은 거창한 기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환경교육이며, 지속 가능한 삶의 기초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구본희 반려詩選] 핑계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핑계 당신은 핑계의 대가라며 아내는 불평한다. 아직 어리니, 유치원 가면, 학교 가면...... 빈자리로 남은 약속들. 자전거 타기, 공놀이, 캠핑, 놀이공원. 돌아보니 바쁘단 핑계로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미안한 젊은 날, 나는 나만을 사랑했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손주가 생기면 그때는 꼭 지키리라, 또 다짐한다. 그보다 아내가 먼저. 오늘도 아내의 한마디가 조용히 가슴을 후빈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실시간 기획·연재 기사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South Korea's Proud Independence Activist An Chang Ho
-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Korea has gone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era, which led to the emergence of various independence activists. Let me introduce a significant leader of our popular movement: educator and independence activist An Chang Ho. An Chang Ho was born in 1878. After he witnessed the Sino-Japanese War, he got the idea that the country needed to grow stronger. In 1902, he moved to San Francisco and actively worked for Korea's independence. He created the Young Korean Academy (흥사단). The Young Korean Academy helped An Chang Ho educate young Korean students. His ideal was to cultivate patriotic citizens with sound character. He highlighted the importance of character development. The Young Korean Academy supported the independence movement by giving financial aid and cultivating talented individuals. Thanks to his help and endeavors, the movement spread and helped make Korea an independent country. When you have time, try to go to Hyehwa Station and visit the Young Korean Academy (흥사단), and imagine what our ancestors might have done to make the dream of independence come true.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South Korea's Proud Independence Activist An Chang Ho
-
-
[전재학의 교육칼럼]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교육으로 잇는 문화강국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필자에게 매일 저녁 KBS '6시 내고향'과 매주 토요일 늦은 오후 시간에 방송되는 '동네 한 바퀴'는 은근히 기다려지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는 빠른 이동과 소비가 일상이 된 시대에, 한 지역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또 천천히 걷는 방식으로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 속에서 만나는 지역의 장인과 명장들은 화려한 성공담의 주인공만은 아니다. 그들은 한자리를 지키며, 사라져 가는 우리의 토종 기술과 생활 문화를 묵묵히 이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있으며, 또 전하려고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말이다. 이 질문은 곧 우리 교육의 방향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의 삶과 연계된 배움, 지역과 함께하는 교육을 강조해 왔다. 지역 연계 교육과정, 학교–마을 협력, 학교 밖 학습 자원의 활용은 이제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책의 방향성과 달리, 실제 학교 현장에서 지역은 여전히 ‘부가적 체험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바로 지역의 장인과 무형문화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를 통해 전통 기술과 예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축적한 지식과 태도를 몸으로 간직하고 있는 살아 있는 교육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한지 장인의 작업에는 자연 재료의 과학적 이해와 생태적 감수성이 담겨 있고, 옹기 장인의 삶에는 지역 산업과 생활사의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러한 자원은 역사·국어·과학·미술·기술·진로 교육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며, 교과 간 경계를 넘는 융합 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지식을 암기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학문의 경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탐구자로 성장할 수 있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교육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전통문화와 무형유산 교육을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며,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학생의 정체성 형성과 창의적 사고를 강화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 교육이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역량을 기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실행이다. 지역(마을) 연계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사의 개인적 열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지역 문화 자원과 학교를 연결하는 제도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수업 자료 개발, 교원 연수, 행정적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역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야만 지역 자원이 일회성 체험이나 행사로 소모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교육 내용으로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조국의 광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는 평생 자신의 소원이 우리가 세계 속의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 이는 현대에 와서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생산량이나 수출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창의적 문화시민을 길러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KBS의 두 방송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각 지역의 장인과 명장의 삶은, 그 출발점이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교육이 지역의 기억과 문화와 손을 맞잡을 때, 교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교육부 정책이 진정으로 현장과 연계하여 이루어질 때, 문화강국의 길은 교육으로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명실공히 교육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지역의 인적 자원과 문화 요소를 풍부한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강화하여 다시 살려내는 것은 이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 할 위대한 교육적 과업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지역의 기억과 문화를 교육으로 잇는 문화강국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어린이를 사랑하고 존중했던 우리의 방정환 선생님을 기억하며
- [교육연합신문=이윤서 학생기자] 우리나라에서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자고 말했던 사람은 ‘소파’라는 호를 썼다. 소파는 풀이하면 '작은 물결'이라는 뜻인데, 아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자 하여 호를 소파로 정한 것이다. 누굴까? 바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이다. 방정환은 일제강점기 시대 아동문화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이다. 어린 아이들이 젊은이, 늙은이와는 다르게 무시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겼던 그는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초기 어린이날은 원래 5월 1일이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을 보고 5월 5일을 일본의 아동보호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일제는 자국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일치시키기 위해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바꿔 버렸다. 현재 어린이날이 5월 5일인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방정환은 나라의 기틀이 될 아이들이 배우고 존중받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여러 책을 쓰고 번역했다. ‘산드룡의 유리구두’는 신데렐라를 방정환이 번역한 책이다. 한글로 책을 써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고 민족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어린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일으켰던 ‘작은 물결’은 크게 번져 아이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꿈을 심어 주게 되었다. 5월 5일, 내가 어린이든 아니든 공휴일이라고 좋아만 하지 말고 이 날을 위해서, 현재의 우리들을 위해서 방정환 선생님과 다른 운동가분들이 무엇을 해주셨는지 생각하고 감사하자.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어린이를 사랑하고 존중했던 우리의 방정환 선생님을 기억하며
-
-
[김홍제의 목요칼럼] 당신의 수업을 어떻게 기억할까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초등학교는 가장 순수하게 친구를 만나는 시기이다. 네이버 ‘동창 찾기’ 밴드로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며 한동안 활발하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한동안 시들해졌다. 그러더니 이제 나이가 들어 늦바람이 불었는지 모임에 꼭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오랜만에 본 동창들은 부쩍 늙어 보였다. 자신도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유난히 장난을 좋아했던 친구 하나가 불쑥 말을 건넸다. “야, 우리 솔직히 수업 내용 기억나냐?” “근데 말이야. 나를 무시하던 그 선생 표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70년대 학교는 폭력의 장소였다. 대나무 뿌리, 당구 큐대, 봉걸레, PVC 등 도구 종류도 많았다. 엉덩이나 손바닥이 주요 대기 장소였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시절의 다양한(?) 추억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했다. 교직에 있는 나로서는 함께 웃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배우지만 졸업을 하면 대부분을 잊는다. 하지만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상처’는 잊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지만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태도와 감정의 축적이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학생은 무엇을 배웠는지는 잊어도 자신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는 오래 기억한다는 점이다. 존중받았던 순간은 자존감을 키우지만 무시당한 경험은 마음 깊은 곳에 화상으로 남는다. 학생은 무엇을 배웠는지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대우받았는지를 기억한다. 교사가 하는 그림에 대한 칭찬이 화가를 만들고 글쓰기에 대한 칭찬이 작가를 만들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과 무시하는 말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오늘날 학교 현장은 여전히 성취와 경쟁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학생을 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태도다. 오늘날처럼 경쟁과 비교가 심화된 교육 환경에서는 학생이 쉽게 위축되고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 쉽다. 한 학생의 인생 방향이 단 한 번의 인정과 격려로 바뀌는 일도 드물지 않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좋은 수업은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학생에게 남는 것은 설명의 완벽함이 아니라 태도의 진실함이다. 아무리 명강의를 해도 그 속에서 한 학생이 모욕을 느꼈다면 그 수업은 실패한 것이다. 수업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 잊힐 수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느꼈던 감정은 한 사람의 삶에 오래 남는다. 교육의 진정한 성과는 시험 점수가 아니다. 학생의 마음속에 남겨진 기억이다. 교사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모르냐’는 말 한마디가 어떤 학생에게는 질문할 용기를 영영 빼앗는다. 반대로 ‘좋은 질문이네’라는 짧은 인정은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성적표는 몇 년 후 사라지지만 교실에서 받은 감정은 수십 년을 버틴다. 그 감정은 또 다른 사회로 번져간다. 동창회에서 들었던 말들이 질문으로 가슴에 남는다. 선생님의 오늘 수업은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당신의 수업을 어떻게 기억할까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도깨비, 도철, 독기, 그리고 동이족의 기억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천 년을 넘어 이어진 전사의 기운 우리가 아는 도깨비는 어떤 모습일까? 뿔이 달린 장난꾸러기, 씨름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사람과 흥정을 벌이는 친근한 존재로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도깨비의 뿌리는 훨씬 더 묵직하다. 단순한 민속 괴물이 아니라, 고대의 전쟁신과 맞닿아 있는 상징이자, 동이족의 기억을 품은 형상이다. □ 잊힌 이름, 도깨비의 기원 도깨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갑골문과 청동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고대 중국의 제기와 무기 위에는 무시무시한 얼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로 도철(饕餮)이다.([그림 27] 도철 문양 참조) 크고 날카로운 눈, 튀어나온 송곳니, 뿔 달린 이 형상은 보는 이에게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 도철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전쟁과 제사의 기운을 상징했고,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전사의 얼굴이었다. 중국 고대 기록에 따르면, 치우(蚩尤)라는 전쟁의 신은 황제 헌원과 맞서 싸운 전사였다. 그의 투구에는 소머리와 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장식되어 있었고, 이 형상이 훗날 도철 문양으로 정착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친근하게 부르는 도깨비는, 그 뿌리를 따라가면 전장의 피비린내와 무기, 청동기의 도철에 닿아 있는 셈이다. 두려움의 상징이 시간이 지나 민속 속 귀물로 변신한 것이다. □ 전장의 깃발, ‘독기’ 치우와 동이족은 전쟁터에서 늘 독기(纛旗)라는 깃발을 세웠다. 독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니었다. 깃대 끝에 괴이한 형상을 조각하고, 그 아래에 깃발을 늘어뜨렸다. 사람의 얼굴, 짐승의 머리, 괴물의 형상이 독기의 꼭대기를 장식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바람과 전운을 점치고 적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장치였다. 깃발은 멀리서도 잘 보였고, 그 위의 괴물 얼굴은 전사의 군기를 고취시키며 적군에게 공포를 심었다. 이 전통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으로 이어졌다. 몽골군 역시 독기와 유사한 군기를 사용했고, 원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전통이 한반도에도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정조 시기의 궁중 행렬을 담은 「화성능행도」를 보면, 화려한 깃발 행렬 속에 독기가 등장한다. 다만 이 시기의 독기는 전투 장비라기보다 왕권과 의례를 상징하는 장식물로 변해 있었다. 전장의 공포에서 왕실의 권위로, 상징의 의미가 변모한 것이다. □ ‘도깨비’라는 이름의 비밀 그렇다면 ‘도깨비’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있다. 바로 ‘도철(饕餮)’과 ‘귀(鬼)’가 합쳐졌다는 것이다. 도철의 ‘도-’와 귀신의 ‘귀’가 합쳐져 ‘도귀비→도깨비’로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즉, 고대 전쟁신의 상징이 민간 신앙 속 귀물 이미지와 섞여 탄생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언어학적으로도 음운 변화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가능한 설명이다. 이 이름의 변천은 도깨비 이미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투와 무용의 상징에서, 민속 속 장난꾸러기로 변신한 과정 말이다.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하고, 쇠붙이를 잘 다루며, 때로는 흥정을 벌이는 성격을 띠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사의 기운이 민속 속에서 장난기와 융합한 것이다. □ 치우, 전사에서 민속까지 다시 치우로 돌아가 보자. 중국의 역사서에 치우는 종종 ‘반역자’나 ‘야만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북방과 한반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오히려 동이족의 대표적 영웅이었다. 소머리, 뿔, 날카로운 이빨을 장식한 그의 모습은 전쟁의 신, 혹은 강력한 부족의 수장을 상징했다. 이 형상이 도철 문양으로, 독기 장식으로, 그리고 민속 속 도깨비의 이미지로 변해 내려온 것이다. 결국 도깨비는 단순한 민속 괴물이 아니라, 동이족 전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산이다. 패자의 기록이자 동시에 살아남은 자의 기억인 셈이다. □ 전사의 기억, 민족의 추억 오늘 우리가 도깨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장난꾸러기나 민속 신앙의 대상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잊힌 전사의 기억이 숨어 있다. 갑골문과 청동기에 새겨진 도철, 전쟁터의 독기, 그리고 치우의 형상이 그것이다. 이 기억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민화 속 도깨비로, 민담 속 장난꾸러기로, 아이들의 놀이 친구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은 친근함으로, 공포의 전사는 민속의 장난꾸러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뿌리를 알면 도깨비는 단순히 웃음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동이족의 기억을 잇는 상징이고, 민족의 추억을 담은 문화적 자산이다. □ 맺으며 도깨비, 도철, 독기. 세 단어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모두 동이족의 흔적을 품고 있다. 도깨비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민속학이 아니다. 그것은 패자의 기록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도깨비를 만날 때, 씨름판에서 씨름을 벌이는 장난꾸러기를 떠올리든, 민화 속에서 금빛 방망이를 휘두르는 귀물을 떠올리든, 그 뒤에 겹겹이 쌓인 전사의 기억을 함께 떠올려 볼 일이다. 도깨비는 그저 웃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천 년을 넘어 이어진 전사의 기운이기 때문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도깨비, 도철, 독기, 그리고 동이족의 기억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Revisiting the past at the Seoul Museum of History
- [교육연합신문=이채원 학생기자] Seoul is often regarded for its towering skyline, cutting-edge technology, and fast-paced lifestyle. Yet beneath the surface of this modern city lies a history that stretches back centuries. To truly understand the city, one must look beyond its present and explore the stories that shaped it. At the heart of that journey is the Seoul Museum of History. Located in central Seoul, near the historic palace grounds, the museum serves as a gateway to the city’s past, offering visitors a look at how Seoul evolved from a royal capital into the global city it is today. With free admission and thoughtfully curated exhibits, it has become an essential site for anyone seeking a deeper connection to Korea’s heritage. The museum traces Seoul’s origins back to its time as Hanyang, the capital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this period, the city was carefully designed according to principles of geography, defense, and Confucian ideology. Through detailed maps, records, and reconstructions, visitors can see how the foundations of modern Seoul were first laid. One of the most striking features of the museum is its large-scale dioramas, which recreate the layout of early Seoul. These models allow visitors to visualize the city as it once was. They provide a vivid contrast to the dense urban landscape seen today. Beyond its grand cityscapes, the museum also brings attention to the daily lives of ordinary people. Exhibits display traditional clothing, household items, and tools, offering insight into how citizens lived, worked, and adapted over time. These personal details transform history into relatable human experiences. As visitors move through the galleries, the narrative shifts toward the 20th century, highlighting Seoul’s rapid transformation. Photographs and multimedia displays capture moments of change, from periods of hardship to waves of modernization. This section underscores just how dramatically the city has evolved within a relatively short time. Today, the Seoul Museum of History is more than a collection of artifacts. It is a space where the city’s identity is preserved and reexamined, offering both locals and visitors a chance to reflect on how the past continues to shape the present. In a city constantly moving forward, places like this offer a moment to look back. And in doing so, they reveal that Seoul’s true character lies not only in its future ambitions, but in the depth of its history.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Revisiting the past at the Seoul Museum of History
-
-
[오피니언리더스] 부산 남구 용호동 김춘실 센터장
- [교육연합신문=박은숙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서 지역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며 복지와 공동체 활성화를 이끌고 있는 김춘실 센터장을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춘실 센터장은 평소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 참여하며 깊은 신뢰를 쌓아 온 인물이다. 남구 의용소방대원으로서 지역 안전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용호1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으로서 주민 참여 확대와 지역 현안 해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어르신 복지 분야에서는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다. 단순한 지원을 넘어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삶을 세심히 살피며 정서적 교감과 지속적인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로부터 큰 신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봉사정신은 일회성이 아닌 일상 속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실천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 “봉사는 마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김춘실 센터장은 “어르신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며, “작은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기본적인 도리”라며, “누군가를 돕는 일이 결국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복지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존중받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하겠다”고 강조했다. ■ 현장에서 이어지는 실천 센터에서는 ▲어르신 여가 및 건강 프로그램 ▲정서 지원 및 돌봄 활동 ▲주민 참여형 복지 프로그램등 다양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직접 현장을 챙기며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사람을 돌보는 복지’로 이어지고 있다. ■ 사람 중심 복지의 실천가 김춘실 센터장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를 넘어,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실천형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어르신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흔들림 없는 봉사정신과 책임감은 용호동을 더욱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역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작은 웃음이 피어나고, 그 따뜻한 마음은 다시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며 지역을 밝히고 있다. 김춘실 센터장의 진심 어린 봉사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으로 부산 용호동의 내일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부산 남구 용호동 김춘실 센터장
-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600년 역사의 ‘살아 있는 박물관’ 남대문시장을 가다!
- [교육연합신문=원선재 학생기자]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남대문시장의 역사는 무려 ‘1414년(태종 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정에서 상인들에게 점포를 빌려주며 시작된 이곳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한양 3대 시장' 중 하나인 칠패장으로 불리며 크게 번성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 속에서도 남대문시장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특히, 전쟁 직후에는 구호물자와 수입품들이 몰래 거래되곤 했는데, 단속이 뜨면 상인들이 도깨비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해서 ‘도깨비 시장’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시장 구경의 꽃은 단연 먹거리다. 남대문시장에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의 맛집들이 가득하다. 칼국수 골목은 칼국수를 시키면 비빔냉면이 서비스로 나오는 마법 같은 곳이다.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치조림 골목은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에 푹 졸여진 갈치조림이 남대문시장의 상징이다.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밥도둑’으로 유명하다. 채소 호떡은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줄을 본다면 바로 이곳이다. 잡채가 듬뿍 들어간 채소 호떡은 출출한 오후 최고의 간식이다. 남대문시장은 전국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 시장이기도 하다. 특히, 아동복 시장은 전국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최근에는 개성 있는 패션 아이템이나 문구류, 안경 등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는 10대들의 방문도 늘고 있다. 현대적인 쇼핑몰도 좋지만, 가끔은 600년의 세월이 층층이 쌓인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골목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와 상인들의 활기찬 에너지는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진짜 세상 공부가 될 것이다.
-
- 기획·연재
-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기자단
-
[국가유산지킴이기자단] 600년 역사의 ‘살아 있는 박물관’ 남대문시장을 가다!
-
-
[전재학의 교육칼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위기의 교육을 극복하기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한때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세계 대회인 2022 롤드컵 조별 1라운드에서 유럽의 강팀 Rogue에게 패배한 후, 한국팀 DRX의 주장 ‘데프트(Deft)’ 김혁규 선수와의 인터뷰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한 기자가 그 내용을 바탕으로 유튜브 영상 제목에 “로그전 패배 괜찮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달았다. 이를 시작점으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포르투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16강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환호하며 흔든 태극기에 쓰여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지상파 뉴스에 널리 송출되면서 약어인 ‘중꺾마’는 전 국민이 공유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격상되었다. 서두에서 특별히 중꺾마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를 우리 교육에 반영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오늘의 교육 현장은 다층적, 복합적 위기에 놓여 있다. 학습격차는 커지고, 교권 논쟁은 끊이지 않으며, 학생들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교육 정책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현장의 체감 변화는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핵심은 바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할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한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교육을 움직이는 근본적 지혜이자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상황을 보자. 첫째, 학습 격차 문제다. 팬데믹 이후 교실에서는 같은 교과서를 배우면서도 전혀 다른 수준의 학생들이 섞여 있다. 어떤 학생은 이미 문제를 다 풀었고, 어떤 학생은 문제를 읽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많은 학생이 “나는 원래 공부를 못한다”고 스스로 가능성을 접는다. 그러나 소위 수포자인 한 중학생이 매일 20분씩 문제를 풀며 1년을 버텨 상위권으로 올라선 사례는 결코 특별하지 않다. 교육이 할 일은 바로 학생들에게 작은 성취를 반복시키고, 실패를 학습으로 수용하게 할 때 비로소 꺾이지 않는 마음을 배울 것이다. 둘째, 교권과 교실 갈등 문제다. 교사는 교육을 설계하는 전문가이지만 동시에 감정노동의 직업이기도 하다. 학부모 악성 민원, 학생과의 갈등, 과도한 행정 업무 속에서 많은 교사들이 소진 상태다. 그러나 교육의 변화는 교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문제 행동이 잦은 학생에게 벌점 대신 매일 아침 3분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몇 달 후 학생의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 규칙보다 관계가 먼저였고, 그 관계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교사의 꺾이지 않는 교육적 신념이었다. 셋째, 디지털 시대의 집중력 붕괴다. 스마트폰과 숏츠 영상 때문에 학생들은 깊이 있는 학습을 어려워한다. 교실에서조차 5분 집중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보편적이다. 그러나 집중력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훈련되는 습관이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10분 몰입 학습’을 실험했다. 수업 중 짧은 시간이라도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반복했고, 학생들은 점차 10분을 20분으로 늘렸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다시 시도하는 자세였다. 이렇듯 꺾이지 않는 마음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다시 한번 해보자”는 반복적 선택이었다. 넷째, 진로 불안의 시대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미래 직업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흔히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때 교육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특정 직업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다. 직업은 바뀔 수 있지만 배움의 태도는 평생을 결정한다. 실패해도 다시 배우고, 넘어져도 다시 시도하는 회복탄력성 즉, 꺾이지 않는 마음은 결국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 외에 마음을 키우는 일이다. 시험 점수는 한 학기면 잊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경험은 평생 남는다. 학생이 “나는 끝까지 해봤다”는 기억을 갖는 것, 그것이 교육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 할 것이다. 결국 교육혁신은 거대한 제도 개편으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한 번 더 설명하려는 교사의 다정한 마음, 다시 풀어보려는 학생의 끈기 있는 마음, 그리고 그 과정을 기다려주는 학교의 인내심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의 해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교육은 그 마음이 자라도록 포기하지 않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위기의 교육을 극복하기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려 한 사람들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매일같이 바람을 느낀다. 여름날 더위를 식혀 주는 산들바람, 가을 들판을 흔드는 갈바람, 태풍처럼 무섭게 몰아치는 강풍. 하지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고대인들은 ‘바람’을 글자로 표현하는 데 큰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오늘 우리가 쓰는 ‘풍(風)’ 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놀라운 사실과 만난다. 갑골문 속 초기의 ‘풍’ 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벌레(虫)’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새’, 특히 봉황 같은 거대한 조류의 형상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바람을 새로 그렸다는 발상, 여기에 고대인의 자연 인식과 신화적 상상력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왜 바람을 ‘새’로 그렸을까? 갑골문 초기의 ‘풍’ 자를 보면, 머리와 날개를 단 새의 모습이 분명하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깃털이 흩날리고, 깃발이 펄럭이고,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은 눈앞에 보인다. 고대인에게는 이런 현상을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날개 치는 새였다.(그림 26 ‘風’ 참조) 특히 봉황은 단순한 새가 아니었다. 머리 위에 삼각형·역삼각형 같은 권위의 표식을 얹고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표지가 아니라 제사와 권력, 신성의 영역과 연결된 기호였다. 바람은 농업과 직결되는 힘이었고, 봉황의 형상은 그 힘을 길들이고 제어하려는 사회적·종교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 바람의 신, ‘비렴(飛廉)’ 음운학적 흔적도 남아 있다. 최춘태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갑골문 시기 바람의 발음은 [팔람] 계열로 추정되며, 이것이 오늘날의 ‘풍(風)’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문헌에는 바람의 신 ‘비렴(飛廉)’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나라 장군의 이름이기도 한 ‘비렴’은 날개 달린 전설적 존재로, 곧 바람을 의인화한 신이었다. 즉,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사회와 전쟁, 제사의 질서를 좌우하는 거대한 존재였고, 그 형상은 새, 특히 봉황으로 그려졌다. □ 그런데 왜 ‘벌레(虫)’가 끼어들었을까? 문제는 후대다. 상 후기 이후부터 ‘풍’ 자 오른쪽에 이상한 부호가 붙는다. 전국 시대에 들어서면 ‘虫’ 혹은 ‘凡(범)’과 비슷한 글자가 따라붙어 지금 우리가 아는 ‘風’의 형태가 된다.([그림 26] ‘風’ 참조) 민간에서는 이를 억지로 설명하려 했다. “바람이 불면 벌레가 생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문자학적 분석은 이것이 가차(假借)와 형태 전이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음을 빌려 쓰는 과정에서 발음 표식이 덧붙고, 후대 필사 과정에서 벌레 모양으로 단순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벌레는 본래 바람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다만 문자 사용과 전승의 과정에서 우연히 끼어들었을 뿐이다. □ 봉황과 대붕, 그리고 오로라의 기억 봉황을 왜 바람의 상징으로 택했는가에 대해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바로 오로라와 같은 북방의 자연현상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빛의 장막이 하늘을 물들이는 모습을 고대인은 거대한 새, 날개짓하는 대붕(大鵬)의 형상으로 기억했을 수 있다. 이 상상은 후대로 이어져 다양하게 변주된다. 유가에서는 봉황을 인의예신의 덕목을 상징하는 도덕적 존재로 만들었고, 장자 같은 도가 사상에서는 대붕을 자유와 초월의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홍산문화 등 북방 문화권의 상상력이 중원으로 흘러들어와 용과 봉황이라는 거대 상징체계를 형성한 것이다. □ 왜 복잡한 봉황 그림을 고집했을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고대 문자라면 간단한 기호를 쓰는 것이 효율적일 텐데, 왜 굳이 새의 머리와 날개를 그려 넣는 복잡한 도형을 고집했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봉황은 단순한 자연 표지가 아니라 의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제사와 정치의 질서를 나타내는 글자이니 함부로 간소화할 수 없었다. 둘째, 시각적 기억 때문이다. 오로라 같은 거대한 현상을 집단이 기억하는 방식은 상징과 그림이었다. 그 기억은 문자 속에서도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 셋째, 문자적 보수성이다. 초기의 형식이 한 번 정착되면, 실용성보다 전통과 관습이 우선하는 경향이 있었다. □ 용봉 문화의 한 뿌리 ‘풍(風)’ 자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의 기원을 본다.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을 새로 형상화했고, 그 새는 봉황으로 신성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람은 자연을 넘어 권위와 제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후대에 벌레 부호가 끼어들고 형태가 바뀌었지만, 봉황과 대붕 신화는 여전히 살아남아 동아시아의 상징 세계를 지배했다. 용과 봉, 이 두 상상의 동물이 결합해 ‘용봉 문화’를 형성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고대의 집단적 상상과 기후·신화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의 질문 우리가 매일 보는 ‘풍(風)’ 자는 단순한 언어 기호가 아니다.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려는 고대인의 고뇌, 거대한 자연현상을 기억하려는 집단적 상상력, 그리고 의례와 권위를 중시한 사회 질서가 겹겹이 녹아 있다. 다시 말해, ‘풍’ 자 하나를 통해 우리는 자연–신화–권력–문자의 복합적 교차를 읽어낼 수 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바람을 붙잡으려 한 사람들의 상상은 오늘날까지도 글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려 한 사람들
-
-
[구본희 반려詩選] 교육 단상
-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교육 단상 카페 구석, 처음 만난 아이가 매미를 봤다 한다. 짧은 속삭임, 엄마는 미소 짓는다. 수학, 외국어, 논술, 예체능ㅡ 노는 것조차 학원인 세상. 관심과 무관심 사이, 성공과 실패가 저울 위에 놓인다. 행복은 아이 마음 속 씨앗에 숨어 있다. 스스로 길을 찾아 품에 안고 물 한 모금 주면, 열매는 서서히 익어간다. 교육은 그 길목에 선 겸손한 농부. 아이 안에서 조용히, 답이 싹튼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교육 단상
-
-
[오피니언리더스] 백종헌 부산 금정구 국민의힘 국회의원
- 붓끝에 담긴 온기, 마을을 다시 숨 쉬게 하다 [교육연합신문=황오규 기자] 마을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사람의 손길을 따라 달라진다. 부산 금정구 노포마을 경로당의 한쪽 벽도 그랬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을 견디며 색을 잃어가던 벽.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앞에 사람들이 모이자, 그 공간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붓이 벽에 닿는 순간, 변화는 시작됐다. 하얀 바탕 위에 색이 더해지고, 그 위에 따뜻한 그림과 글이 얹히면서 그저 낡은 외벽이던 공간은 이야기를 품은 장소로 바뀌어 갔다. 4월 19일, 이날의 봉사는 단순한 ‘도색 작업’이 아니었다. 말없이 이어지는 붓질 사이로 사람들의 마음이 오갔고, 누군가는 웃으며 색을 입히고, 누군가는 조용히 뒤에서 돕고, 또 누군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모든 순간이 모여, 하나의 ‘온기’가 되었다. 현장에는 백종헌 국회의원의 모습도 있었다. 정치인의 직함보다 먼저 보인 것은 주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붓을 드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채워가는 일, 그 단순한 행동 속에서 지역을 향한 진심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정치는 때로 멀게 느껴진다. 큰 담론과 복잡한 이해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일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현장에서의 작은 행동은 정치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반응은 더욱 따뜻했다. 밝아진 벽을 바라보며 “이렇게 환해질 줄 몰랐다”며 웃음을 짓는 모습 속에는 단순한 변화 이상의 기쁨이 담겨 있었다. 공간이 바뀌자, 그 안의 시간도 함께 달라지고 있었다. 마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이처럼 작은 손길을 통해 서로를 기억하고 이어진다. 하루의 봉사가 끝난 뒤에도 벽에 남은 색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웃음과 대화, 그리고 마음까지 함께 남아 오래도록 이 마을을 밝히게 될 것이다. 결국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온기 하나면 충분하다. 그 온기가 모여, 마을을 다시 숨 쉬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만든다. ▣ 백종헌 ◇ 명륜초·동해중·브니엘고등학교 졸업 ◇ 부산산업대(現경성대) 화학 학사·부산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 제21대 부산 금정구 국회의원·제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 前(주)백산금속 대표이사 ◇ 前부산광역시의회 의장(제7대 후반기) ◇ 前자유한국당 부산시당 금정구 당협위원장 ◇ 제4, 5, 6, 7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 제6대 부산광역시의회 전·후반기 부의장 ◇ 제7대 부산광역시의회 전반기 새누리당 원내대표 ◇ 前새마을문고 부산시지부 부회장 ◇ 前부산장애인총연합회 금정구지부 후원회장 ◇ 前한국자유총연맹 금정구지부 부지부장 ◇ 前금정소방서 의용소방대장
-
- 기획·연재
- 오피니언리더스
-
[오피니언리더스] 백종헌 부산 금정구 국민의힘 국회의원
-
-
[학교탐방] 부산체육중·고등학교…“메달보다 사람이다”
- [교육연합신문=정윤영 기자] “이제 전문체육은 메달을 따기 위한 교육을 넘어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교육이어야 한다.” 2026년, 학교체육이 근본적인 전환의 갈림길에 선 가운데 부산체육중·고등학교 윤강 교장이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성과 중심의 엘리트 체육을 넘어서 학생중심·교육중심 체육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특히, 윤 교장은 “운동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학교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기존 체육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강조했다. ■ 엘리트 체육,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할 때 윤강 교장은 현재 학교체육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로, 성과 중심 구조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동안 기록과 성적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학생의 삶과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메달은 결과일 뿐,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학교 운영 방침을 넘어, 대한민국 체육교육 전반에 던지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 운동도, 공부도 둘 다 포기하지 않겠다 학생선수의 학습권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윤 교장은 “운동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정규수업 참여를 원칙으로 하되, 맞춤형 학습 지원을 통해 학생들이 학업에서도 역량을 갖추도록 하겠다. 운동이든 학습이든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통해,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키워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즉, 이는 ‘운동하는 학생’에서 ‘공부하는 선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 메달 이후 학생의 삶까지... 진로교육의 중요성 강조 윤강 교장은 특히 학생들의 진로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선수로서의 시간은 길지 않다. 스포츠 지도자, 스포츠 산업, 행정 등 다양한 진로를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된다. 이는 체육계열 고등학교가 단순히 우수 선수를 양성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학생선수 이후의 삶을 고려한 진로교육을 충실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장은 ‘체육계열 고등학교 학생선수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학술 연구도 진행한 바 있다. "복잡하게 급변하는 최근 사회적 변화에 따라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개인이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인 경력개발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진로교육은 개인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 하고 향후 필요한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아가 미래 인적자원 개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체육분야에서도 교육변화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었지만, 그동안 체육계열 고등학교 학생선수는 비교적 진로선택과 진로계획이 뚜렷하다고 여겨짐에 따라 실제 진로교육의 실천이 미흡했다.”라고 말한다. 윤 교장은 체육계열 고등학교 학생선수 진로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사실상 체육계열 진로교육이 체육계열학과 진학에 초점이 맞춰짐에 따라 학생의 관심과 적성을 반영한 실질적 진로지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학생선수 대상으로는 운동중단 또는 중도포기, 은퇴 이후의 진로선택을 위한 정보 제공에 그치는 한계를 보여, 막상 학생선수들을 위한 진로·진학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속되어 왔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학생선수들의 경우에는 맞춤형 진로교육은 고사하고 훈련과 대회참가 등으로 인해 학교에서 제공하는 진로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학생선수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진로준비 행동 수준이 낮고 시간관리 및 활용의 미숙함이 나타난다. 더욱이 어린 시절에 운동을 시작한 학생선수들은 운동선수가 아닌 다른 진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인지적, 사회적 곤란을 경험한다."라고 말했다. 윤 교장은 학생선수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해결 방안을 제안했다. "학생선수들의 성공적인 진로전환을 위해서는 맞춤형 진로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체육 분야의 진로교육은 몇 회차로 진행되는 단발성 차원이 아니라 교육과정과 연계되는 체계적인 진로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학생선수로 등록된 선수뿐만 아니라 선수 생활을 중단한 학생들까지 포함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학생선수들을 대상으로 진로경로 설정에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업 세계로의 순조로운 이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진로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개인적,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라고 밝혔다. ■ 부산체육중고등학교 진로교육 운영 방침 수립 부산체육고등학교는 ▲첫째, 체육계열 고등학교 학생선수를 위한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생선수, 감독교사, 지도자, 학부모 대상으로 진로교육 역량 강화 연수를 강화할 것이다. ▲둘째, 학생선수 진로교육 계획 수립 및 운영 시 성별, 경력별, 학년별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고, 외부기관에서 주관하는 학생선수 진로·진학 관련 행사 참여, 온라인 우수 콘텐츠 활용 등을 통해 다양한 학생선수 맞춤형 진로교육을 제공할 것이다. ▲셋째, 학교 홈페이지 등을 활용한 온·오프라인 진로정보 제공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다. 또한 세부적으로 ‘선배와의 만남, 학부모 참여 진로박람회, 체육 전문가 강사 초청 특강’ 등을 기획해 실질적인 진로 교육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 체육도 과학이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 경기력 향상 또, 윤강 교장은 체육고등학교로서 경기력 향상에 주력하고자 한다. 경험이나 감각에 의존하는 경기력이 아닌,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스포츠 과학 기반 훈련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접근을 통한 실효성 있는 경기력 향상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지역 스포츠과학센터 및 유관기관, 지역대학과의 연계·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협력한다는 것이다. ■ 훈련의 기초는 안전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학생선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학생선수 맞춤형 안심공간 구축사업을 통해 안전관리 체계 강화를 주요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훈련은 의미가 없다. 학생의 생명과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어떤 성과보다 우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부산체육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의 부상 예방, 심리 지원, 종목별 훈련장 및 기숙사 위험요소 사전 차단, 소방도로 확장 등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에 학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학교 체육, 지역과 함께 가야 한다 한편, 학교 시설 개방과 관련해서 공공성과 현실의 균형을 강조했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간이다. 안전과 관리를 전제해 지역과 공유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최근 영도구청과 수영장 주민 개방을 위한 협약을 통해 주·야간 수영장 개방으로 공공 생활체육 시설로서 지역사회 주민들의 생활체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역 유소년들로 구성된 월계수 스포츠클럽에 수영, 근대5종, 사격, 체조 종목에 종목별 훈련장을 개방함으로써 지역 유소년들의 심신발달 및 꿈나무 선수 발굴을 통해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이 연계 육성할 수 있도록 체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 체육시설 개방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 제시로 평가된다. ■ 부산에서 시작된 변화,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윤강 교장은 부산체육중·고등학교를 대한민국 체육교육의 모델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학생 중심, 안전 중심, 미래 지향의 교육을 통해서 부산에서 시작한 변화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하겠다. 체육교육은 기록과 메달을 넘어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다. 그 변화의 시작을 부산체육중·고에서 만들어가겠다.“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안전하고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실질적인 경기력을 향상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생 맞춤형 진로 교육을 다채롭게 제공해 학생선수의 전인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체육중·고등학교로서, 지역과 함께 상생 발전하는 발전적 체육교육의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명확하고 희망찬 포부를 밝혔다. 윤 교장의 체육중고등학교 운영 관련 노련한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교육적 철학에 기반한 새로운 시도가 꼭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
- 기획·연재
- 기관탐방
-
[학교탐방] 부산체육중·고등학교…“메달보다 사람이다”
-
-
[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사의 성장이 주는 교육적 함의(含意)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현재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장’이라는 화두는 익숙하지만, 때로는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연수 점수를 채우고 새로운 에듀테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성장의 전부인 양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적 의미에서 교사의 성장은 외적인 스펙의 확장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내면을 재구성하는 ‘존재론적 변화’여야 한다.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The Courage to Teach)』에서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내면 상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설파했다. 즉, 교사가 성장을 멈추는 순간, 교실이라는 생태계는 정체되고 만다. 이 글에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교사상, 즉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의 교육적 함의를 세 가지 차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무지의 스승’이 건네는 겸손의 연대이다. 교육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무지한 스승(The Ignorant Schoolmaster)』을 통해 혁명적인 교육관을 제시한다. 스승이 모든 것을 알고 제자에게 전수하는 전통적인 ‘설명 모델’에서 벗어나, 스승 역시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겸손, 탐구의 여정에 나서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거울 신경망(Mirror Neurons)과 성장의 전파성이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에게 강력한 모방의 기제를 제공한다.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가 발견한 ‘거울 신경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와 감정까지도 모방한다고 한다. 교사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펼치고,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의 뇌는 ‘성장의 진수’를 학습할 것이다. 셋째, 관계 속에서의 재탄생하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다. 사회 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 and Thou)』에서 “인간은 관계를 통해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이라는 '너'를 만나 교사라는 '나'가 새롭게 정립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경기도의 한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던 한 교사는 교실 속 갈등 상황에서 아이들의 거친 언행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교사상에 머물렀다면 그는 징계와 훈육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반항 이면에 숨겨진 결핍과 불안을 마주하며 자신의 ‘내면 아이’를 대면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심리학 서적을 읽고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는 전문가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변화된 교사의 태도에 마음을 열었고, 교실은 치유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처럼 아이들의 도전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교사가 보여주어야 할 회복탄력성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성장은 '완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행군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 그 자체’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비워진 그 자리는 아이들이 전해주는 생동감과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시 채워진다. 이것은 비움으로써 다시 채워진다는 진리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상호 간의 성장을 견인하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교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교육의 미래이다. 교사의 성장은 아이들이 바라보는 가장 훌륭하고 멋있는 모습이다. 이는 교사에 따라서는 학생 지도에 훌륭한 인격을 갖춘 어른으로서 감동을 주면서 삶의 의미와 참가치를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으로 인해 중고등학생들이 연 10년을 넘게 가장 선호하는 직업 1위를 굳건하게 지킨 근본 배경이고 핵심이라 믿는다.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로 인해 흔들리지만 이를 극복하며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사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를 보낸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교사의 성장이 주는 교육적 함의(含意)
-
-
[김홍제의 목요칼럼] 벚꽃처럼 피고 목련처럼 견디는 삶
-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올해 벚꽃과 목련과 개나리가 함께 피는 진풍경을 구경했다.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환한 기쁨이 수액처럼 스며든다. 벚꽃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가장 빠르게 흩어진다. 순간의 아름다움. 영원하지 않기에 더 눈부시고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답다. 젊은 시절 소나기 같았던 첫사랑을 닮았다. 목련은 하늘로 고개를 들고 단정하게 피어오른다. 말없이 품고 있던 마음을 꺼내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서든 쉽게 피어나 언덕을 물들이는 개나리는 밝고 따뜻하다. 봄꽃은 각자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추운 겨울에 수고 많았다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지라고, 지금 여기를 사랑하라고. 봄은 마음이 다시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식물은 그 자리에 머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사람들은 빠른 결과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얻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쁘게 하루를 산다. 식물은 느림 속에서도 자신만의 분명한 방향을 잃지 않는다. 햇빛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땅속으로는 뿌리를 깊게 내린다.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자신을 조율한다. 조급함도 과시도 없다. 묵묵히 자신의 리듬을 지켜갈 뿐이다. ‘조용한 지속성’은 현대인이 배워야 할 미덕이다. 벚꽃은 한순간 세상을 환하게 밝히지만 화려함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벚꽃은 그 찰나를 위해 긴 시간을 준비해 왔다. 겨울의 차가운 시간을 견디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단히 준비했고 때가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자신을 피워낸다. 그리고 미련 없이 흩어진다. 그 모습은 결과보다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목련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크고 단정한 꽃잎을 하늘로 열어 올리는 목련은 화려함보다는 고요한 품위를 지닌다.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형태를 오래 유지하며 묵직한 존재감으로 봄을 채운다. 목련은 서두르는 법이 없지만 결코 늦어지는 경우도 않다. 자신의 때를 알고 자신의 방식으로 피어난다. 벚꽃의 찰나와 목련의 깊이는 우열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속도와 결과를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한다. 자연은 그런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피어나는 것이 곧 완전함이라는 것을 침묵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식물은 환경에 순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추위가 오면 성장을 늦추지만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따뜻한 계절이 오면 망설임 없이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다.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다시 나아가는 힘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꽃은 ‘기다림’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씨앗이 꽃을 피우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성장의 시간이며 결국 가장 찬란한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준비의 과정이다. 벚꽃처럼 순간을 온전히 피워내고 목련처럼 흔들림 없이 자신을 지켜내는 삶. 그 조용한 지속성 속에서 우리는 이 봄날 비로소 더 깊고 단단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진로융합교육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김홍제의 목요칼럼] 벚꽃처럼 피고 목련처럼 견디는 삶
-
-
[최윤용의 100세 칼럼] 잠 못 드는 밤의 이유: 장(腸)과 뇌(腦)를 잇는 불면의 과학
- [교육연합신문=최윤용 칼럼] "오늘 밤은 잠들 수 있을까?" 만성 불면증과 수면제의 딜레마 불면증은 단순히 잠이 부족한 상태를 넘어, 수면의 양이나 질에 대한 주관적 불만족이 지속되어 일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잠들기 어렵거나, 잠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일찍 깨는 증상이 주 3회 이상, 최소 3개월간 지속될 때 만성 불면증으로 진단합니다. 주요 원인으로는 스트레스, 신체 질환, 약물 부작용 및 부적절한 수면 위생 등이 꼽힙니다. 현재 임상에서 많이 활용되는 수면제는 단기적인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나, 장기 복용 시 약물 의존성, 내성, 그리고 인지 기능 저하와 같은 부작용 위험이 있어 장기적 관리를 위해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침은 뇌의 기능적 연결성을 조절하고 신경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 형태를 변화시켜 만성 불면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최근의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는 침전기자극술(electroacupuncture) 치료가 우울증을 동반한 불면증 환자가 겪는 수면의 질 저하 및 심리 상태 문제를 개선하는 효능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침치료의 작용 기전에 관한 연구에서도 침은 한약처럼 장내 미생물 군집의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뇌의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등 인체의 여러 영역에 작용함으로써 불면의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
- 기획·연재
- 연재
-
[최윤용의 100세 칼럼] 잠 못 드는 밤의 이유: 장(腸)과 뇌(腦)를 잇는 불면의 과학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아내(妻)는 정말 약탈당한 여자의 흔적일까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김씨, 이씨, 박씨 같은 성(姓)만큼이나, 우리의 일상 언어에 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아내’와 ‘처(妻)’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妻’ 자의 기원을 두고 오랫동안 널리 퍼진 이야기가 있다. 고대 사회에 흔했던 약탈혼(창혼, 娶婚)의 흔적이라는 해석이다.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자(女)’ 옆에 ‘손(又)’ 모양이 붙어 있으니,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낚아채 끌고 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그림 25] ‘姓’ 참조) 언뜻 그럴듯하다. 고대에는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었고, 다른 부족 여성을 빼앗아 오는 일이 흔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강준식 선생은 이 통설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동이(東夷) 전통의 눈으로 보면, ‘妻’는 약탈의 흔적이 아니라 오히려 예(禮)에 따른 혼례와 성인 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 무릎 꿇은 사람들, 글자의 출발 먼저 문화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상(商)·주(周)·한(漢) 시대까지 사람들은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좌식 생활을 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이 무릎을 접은 형상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나라 이후 북방에서 의자 문화가 들어오면서 좌식이 점차 줄었지만, 일본의 세이자(正座) 같은 풍습은 여전히 고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즉, 고대 문자의 자형 속 ‘사람’은 오늘날의 의자에 앉은 모습이 아니라 무릎 꿇은 자태다. 이 점을 놓치면 문자의 의미를 오독하기 쉽다. □ 머리채를 낚은 손? 아니면 머리를 올려주는 손? 이제 문제의 ‘妻’ 자를 보자. 갑골문과 금문에서 ‘妻’는 ‘여자(女)’와 ‘손(又)’이 결합된 모양이다. 통설은 이 손이 여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낚아채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 손이 여인의 머리를 ‘끌어내리는’ 손이 아니라 ‘올려주는’ 손이라는 전혀 다른 해석이 있다. 고대의 혼례와 성인 의식에는 계례(髻禮)가 있었다. 성년이 된 여성이 머리를 올려 쪽을 틀고, 비녀를 꽂아 성숙한 여인으로서 사회에 나아감을 알리는 의식이다. 남자도 관례(冠禮)를 통해 상투를 틀고 동곳이나 비녀로 고정했다. 금문을 자세히 보면 손이 여자의 머리 쪽으로 들어가 정리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소전(小篆)에 이르면 헝클어진 머리가 가지런히 다듬어지고, 해서체에서는 머리 위의 짧은 가로획이 나타나는데, 강 선생은 이를 비녀를 뜻하는 기호로 해석한다.([그림 25] ‘妻’ 참조) 즉, ‘妻’는 여인을 머리채 잡아 끌고 가는 모습이 아니라, 혼례 예식을 치르며 동반자로 맞이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 ‘부(婦)’와 ‘노(奴)’와의 구별 혼동은 여기서 비롯된다. ‘妻’와 비슷한 모양의 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婦)’ 자는 ‘빗자루(帚)’와 ‘여자(女)’의 결합이다. 살림을 맡는 여인을 뜻하는 글자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妻’에도 빗자루가 들어 있다고 착각해 ‘빗자루 든 여자’로 설명하기도 했다.([그림 25] ‘婦’ 참조) 또 ‘노(奴)’ 자는 일부 갑골 자형에서 여자의 손이 뒤로 묶여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포로와 노예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妻’ 역시 노예처럼 약탈된 여인을 가리킨다고 오해했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妻’에는 ‘노’와 같은 강제성 기호가 애초에 없었다고 지적한다.([그림 25] ‘奴’ 참조) □ 약탈혼 통설의 문제점 중국의 고문자학자들 가운데는 상고시대 약탈혼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그런 풍습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갑골문·금문·소전·해서에 이르는 자형의 연속성을 보면, ‘妻’를 약탈과 동일시하는 해석은 지나친 일반화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에 따른 혼례 준비’라는 맥락에서 일관성이 드러난다. □ 동이의 예(禮), 동반자의 탄생 동이 문화권에서는 혼인이 단순한 남녀 결합이 아니라 성인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였다. 계례에서 여인은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꽂았다. 그 순간 그는 아이가 아닌 어른, 사회적 동반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妻’는 남자가 여자를 소유하는 표지가 아니라, 함께 가정을 이루는 동반자를 맞이하는 의식의 문자였다. □ 부호(婦好)의 묘, 존중받은 여인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증거도 있다. 1976년 은허에서 발굴된 부호(婦好)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정왕의 아내였으며, 동시에 뛰어난 장수이자 제사 주관자였다. 무덤에서는 수백 점의 청동기와 옥기, ‘婦好’라는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나왔다. 갑골문 점사에는 무정왕이 부호의 병세를 염려하거나 군사를 맡기는 장면이 남아 있다. 이 사례는 당시 여성도 정치와 군사, 종교의 주체로 존중받았음을 보여준다. 오랑캐적 약탈과 억압의 상징이라던 해석과는 사뭇 다르다. □ 처와 첩의 차이, 핵심은 예(禮) 고대 문헌에 ‘빙위처(聘爲妻)’와 ‘분위첩(奔爲妾)’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通說은 ‘빙(聘)’을 안부 묻는다, ‘분(奔)’을 달아난다로 풀지만, 강 선생은 다르게 본다. ‘빙’은 예를 갖추어 맞이함, 곧 정례 결혼이고, ‘분’은 예 없이 결합한 비정례 관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처(妻)’와 ‘첩(妾)’의 구분 기준은 경제력이나 신분 차이가 아니라 예의 유무였다. 첩(妾) 자의 갑골 자형에는 무릎 꿇은 여자와 머리에 형틀 같은 표지가 함께 나타나는데, 이는 죄수나 포로 여성과 연관되었음을 시사한다.([그림 25] 참조) 즉 첩은 예가 생략된 강제적 결합의 산물이었다. □ 맺으며 결국 ‘妻’는 약탈의 흔적이 아니라 계례와 혼례를 통한 동반자의 탄생을 상징하는 문자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 ‘부(婦)’는 살림의 역할, ‘노(奴)’는 강제와 포로, ‘첩(妾)’은 예 없는 결합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구별된다. 동이적 전통은 예를 중시했고, 부호의 사례처럼 남녀가 동반자로 존중받는 문화도 분명히 존재했다. 따라서 ‘동이는 약탈혼의 민족’이라는 도식은 지나친 단순화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내’라는 말 속에도 사실은 고대인의 예절과 존중, 동반자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문자의 기원을 바로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오해도 하나씩 벗겨낼 수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아내(妻)는 정말 약탈당한 여자의 흔적일까
-
-
[전재학의 교육칼럼] 교권 추락 속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 그 교육적 함의는?
- [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최근 여러 통계에서 중·고등학생이 희망하는 미래 직업 1위가 10년째 ‘교사’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아이러니하다. 교권 침해, 학부모 민원, 과도한 업무 부담 등으로 교사는 ‘위험한 직업’ 또는 3D 업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말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왜 교사를 꿈꾸는가? 이 현상은 단순한 직업 선호가 아니라, 어쩌면 전화위복으로 우리 교육이 품고 있는 희망의 신호로 읽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바라보는 ‘교사’는 현실의 피로한 교사가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켜 준 한 명의 교사, 마음을 지탱해 준 어른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그러한 긍정적판단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한 학생은 의대에 복수 합격했지만 교사의 꿈을 키우기 위해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꿈이 더 강했기 때문에 결단했다고 한다. 최근 부산의 한 고등학생은 학업 부진과 가정불화로 학교를 떠날 뻔했지만 담임 교사의 끈질긴 관심과 대화 속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관계적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다. 교사의 사회적 명성은 낮아졌지만, 청소년이 느끼는 교사의 존재감은 결코 추락하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교사는 안정적이다’라는 오래된 통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10년 넘게 1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학생들이 직업을 안정적인 ‘생계 수단’보다 ‘의미 있는 삶’으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 삼으면 최근 교직에서 이탈하는 많은 젊은 교사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청소년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관계, 보람, 가치와 같은 비가시적 요소를 중시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직업’,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과 같은 존재감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바로 이런 정서에 가장 잘 부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이 우리나라 교육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 학생들이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오히려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 진로 교육은 이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는 직업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거나 ‘안정성·수입’ 중심의 안내에 머무른다. 그러나 미래세대는 이미 ‘일의 의미’를 중심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진로 교육은 학생이 자신의 가치관, 강점, 성향을 탐구하고 직업의 본질적 의미와 연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현장 경험 중심, 즉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는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실제 학교 업무를 교사와 함께 체험하는 ‘미니 티칭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참여한 학생 대부분이 “교사가 이렇게 복잡한 직업인지 몰랐다”고 했지만 동시에 “힘들지만 보람 있다”고 답했다. 이 경험은 ‘환상 속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현실의 가치 있는 직업’으로 교사를 이해했다. 이제 학교에서의 진로 교육은 (특정) 직업을 미화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되 지혜롭게 삶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교육은 ‘좋은 어른’, ‘인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어야 한다. 진로 선택의 상당 부분은 정보보다 ‘관계’에서 나온다. 학생의 진로가 흔들릴 때,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해 주는 보다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인 어른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교사는 바로 그 어른이 될 수 있다. 결국 교사는 학생과 깊은 신뢰 즉, 래포(rapport)를 형성한 인격의 소유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권이 흔들리는 시대에도 학생들은 여전히 교사에게서 ‘좋은 어른’, ‘의미 있는 삶’,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힘’을 보고 있다. 청소년의 교사 선호는 오늘의 교육 현실을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꿈꾸는 가치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가? 교사는 본질적인 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는 성숙한 어른인가? 이 질문에 믿음과 성실로써 증명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메시지라 믿는다.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노스트라다무스] 공동저자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
- 기획·연재
- 연재
-
[전재학의 교육칼럼] 교권 추락 속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 그 교육적 함의는?
-
-
[구본희 반려詩選] 김치전에 막걸리
- [교육연합신문=구본희詩選] 김치전에 막걸리 부침가루에 갑오징어와 김치를 잘게 썰어 놓고 휘휘 저어 올리브기름에 바삭 지진 전. 노란 양은 잔에 막걸리 따라 집사람과 저녁 대신 하루를 마신다. 비온 뒤 소래바다, 저녁놀에 얼굴 붉히고 창문 사이 스며든 바람에도 말복 끝 더위는 버티고 선다. 그래도 오늘은 숨결이 한결 부드럽다. 막걸리는 시원히 일렁이고 웃음은 잔 끝에서 번진다. 평범한 일상은 이젠 내 삶의 지갑, 행복은 소리 없이 내 옆에 눌러앉는다. ▣ 구본희 ◇ 前인천국제고등학교 교장
-
- 기획·연재
- 연재
-
[구본희 반려詩選] 김치전에 막걸리
-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성(姓)과 씨(氏), 우리 이름 뒤에 숨은 오래된 이야기
-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모두 성을 가지고 있다. 김씨, 이씨, 박씨...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앞에 붙는 그것.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묘하다. 왜 굳이 성과 이름을 나누어야 했을까? 더구나 옛 문헌을 보면 성(姓)과 씨(氏)는 본래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한다. 지금은 하나로 뭉뚱그려졌지만, 그 기원은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신비로운 세계와 맞닿아 있다. 성과 씨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족보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 사회의 생식 숭배, 조상 숭배, 정치 권력의 재편, 그리고 문자와 기록의 편집 과정이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 성은 왜 ‘여자(女)’에서 시작했을까 ‘성(姓)’이라는 글자를 보자. 전통적 해석은 단순하다. ‘여자가 낳는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단순한 ‘출산’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 원형에는 여성의 형상, 풀과 씨앗, 불꽃 같은 생명의 상징이 섞여 있었다. 성은 곧 생명의 원천, 생식력을 이어가는 힘을 가리켰다는 것이다.([그림 24] ‘姓’ 참조) 하지만 세상이 변한다. 부계 중심 사회가 등장하면서, 문자의 모양조차 달라졌다. 원래 여자 그림이 들어있던 글자가 어느 순간 인(人) 자로 바뀌거나, 여성적 요소가 사라지고 추상적 부계 표지가 들어섰다. 문자학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글자의 뼈대를 다시 짠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의 모습은 그 변형의 결과물이다. □ 씨(氏), 씨앗일까, 말뚝일까 ‘씨(氏)’의 기원은 더욱 난해하다. 학계에는 다섯 가지 설이 있다. 오이를 닮았다느니, 동굴의 형상이라느니, 흐르는 물을 뜻한다느니, 절벽을 본뜬 글자라느니… 심지어 남성 성기를 상징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그중 ‘씨앗설’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본다. 곡식을 뿌리는 사람의 동작,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씨앗의 힘이 글자의 뿌리였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고대 묘지(소화 묘지)에서는 남녀 무덤마다 다른 말뚝과 목주가 세워져 있었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성기 상징과 생식 숭배의 흔적으로 본다. 씨(氏)라는 제도 역시 이런 신앙과 깊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그림 24] ‘氏’ 참조)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씨는 씨앗이자 말뚝, 곧 생식과 토지, 신분을 함께 뜻했을 수 있다. 문자와 유물, 민속 상징이 한데 얽혀 만들어진 다층적 개념이었다. □ 조상 숭배는 곧 생식 숭배였다 오늘날 우리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예의로 이해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조상 숭배는 곧 생식력 숭배였다. 선조가 자손을 낳아 이어주었듯, 제사와 제의는 ‘생명이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의식이었다. 타클라마칸 미라 옆에 세워진 남녀 상징 말뚝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성과 씨라는 제도가 단순히 ‘가문 구분’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를 제도화한 장치였음을 시사한다. □ 정치와 권력이 성씨를 바꿔 놓다 그러나 생명의 상징은 곧 권력의 도구가 된다. 주나라 이후 정치 권력은 모계 중심 전통을 약화시키고, ‘덕(德)’과 ‘천명(天命)’ 같은 추상적 개념을 내세워 지배의 정당성을 재편했다. 사마천 같은 역사 편찬자들은 성과 씨의 구분을 흐리게 적었고, 후대 독자들은 그 차이를 잊어버렸다. 진(秦)의 중앙집권은 성씨 제도를 또 한 번 바꿔 놓았다. 호적과 행정 체계가 정비되면서 씨(氏), 곧 봉토와 신분을 구분하던 표식은 의미를 잃고, 성과 통합되어 버렸다. 이제 성씨는 혈통과 행정이 결합한 제도가 되었다. □ 한국에서 성씨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한국의 성씨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씨가 사회 전반에 정착한 시기는 4~6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귀족층만 성씨를 가졌고, 일반 백성은 이름만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왕권이 호적 제도를 정비하면서 성씨가 확대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동이계 후손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씨의 뿌리는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다만 기록이 부족해 단정하기는 어렵다. □ 이름은 곧 역사다 성과 씨는 단순한 가계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생식과 조상 숭배의 상징이었고, 사회 구조와 권력 재편의 흔적이었으며, 문자와 행정 제도의 변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결과물이다. 우리가 성씨를 부를 때마다, 사실은 수천 년 전의 신앙과 생활, 권력의 흔적을 동시에 불러내고 있는 셈이다. □ 남은 과제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 선생은 문자 연구와 고고학 발굴, 민속 연구를 종합해 성씨의 원형을 더 치밀하게 밝히는 과제를 제안한다. 타클라마칸 묘지의 말뚝, 갑골문 속의 여성 형상, 고려·조선의 성씨 확산 과정은 그 단서가 될 수 있다. 성씨 제도를 둘러싼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과거 탐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누구인지를 새삼 자문하는 일이다. 우리가 오늘도 부르는 성씨. 그것은 단지 행정상의 호칭이나 족보의 표지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전, 생명을 숭배하고 조상을 기렸던 인간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증거다. 우리의 이름 앞에 붙은 글자 하나에, 그렇게 깊고 먼 역사가 겹겹이 스며 있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
- 기획·연재
- 기획
-
[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성(姓)과 씨(氏), 우리 이름 뒤에 숨은 오래된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