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한자 붉을 적(赤)을 보며 흔히들 땅의 빛깔이나 흙(土)을 떠올린다. 한자의 자형이 변하면서 아랫부분이 ‘흙 토(土)’의 모양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자 해석의 경전이라 불리는 허신의 『설문해자』조차 뜻은 ‘불’이라면서도 글자는 ‘흙’으로 적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갑골문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그 속에는 흙이 아닌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이 살고 있다.
■ ‘사람을 태우는 형상’이라는 오해를 넘어서
적(赤)의 원형은 사람(大)과 불(火)이 합쳐진 모습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사람을 불에 태우는 제사 의식"이라거나 "죄인을 벌하는 모습"이라고 공포스럽게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大’는 사람이라기보다 ‘크다’는 의미의 형용사적 상징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즉, 적(赤)은 이름 모를 들꽃의 붉음이 아니라, 세상을 삼킬 듯 일어나는 ‘커다란 불길’ 그 자체를 형상화한 글자다.
■ 갓 태어난 아기가 ‘적자(赤子)’인 이유
이 글자가 단순한 색깔을 넘어 뜨거운 에너지를 상징한다는 증거는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적자(赤子)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흔히 핏덩이라 붉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래 의미는 아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 생기 있는 불의 기운을 일컫는다. 차가운 주검과 대비되는, 생명이라는 뜨거운 에너지가 곧 ‘적(赤)’인 셈이다.
■ 불길이 겹치고 번지며 탄생한 글자들
‘큰 불’이라는 원리를 이해하면 파생된 글자들의 맥락도 선명해진다.
빛날 혁(赫): 붉은색(불길)이 두 개 모여 있다. 불길과 불길이 만나 세상을 더욱 환하게 비추는 찬란한 에너지를 뜻한다.
쏠 석(螫): 벌레에 쏘여 피부가 불꽃에 데인 듯 붉고 뜨겁게 부어오르는 고통을 묘사한다.
이처럼 赤은 정적인 색채가 아니라 동적인 에너지의 분출을 담고 있다.
■ 오해의 흙을 털어내고 본질의 불을 보다
글자의 모양이 변하면서 본래의 뜨거움은 ‘흙’이라는 차가운 껍데기에 갇혀버렸다. 땅의 색이 붉어서 赤이 된 것이 아니라, 불의 열망이 글자가 된 것이다.
우리가 한자의 자형 변화 속에 숨겨진 원형을 찾아내는 이유는 단순히 옛 지식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다. 무미건조하게 외우던 글자 속에서 고대인들이 느꼈던 생명의 박동과 불길의 역동성을 다시 발견하기 위함이다. 흙 속에 파묻혔던 ‘큰 불’의 정신을 복원할 때, 우리의 언어생활도 비로소 뜨거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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