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피플Home >  칼럼·피플
-
[社說] 변종 학교폭력 ‘야차룰’, 솜방망이 처벌로는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최근 맨몸으로 잔혹하게 싸우는 신종 학교폭력인 이른바 ‘야차룰’이 확산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가해 학생 조치의 대다수는 여전히 경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신종 학폭 심의 중 신체 폭력이 대다수를 차지했음에도 전체 조치의 78%는 학생부 기재가 유보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학교폭력의 형태가 날로 흉포화·은밀화되는 상황에서, 안일한 처벌 관행은 학교를 또 다른 사각지대로 내몰 뿐이므로 당국은 더욱 엄정하고 강력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엄벌이 요구되는 이유는 변종 학폭이 단순한 학생들 사이의 다툼을 넘어 심각한 범죄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야차룰’ 같은 신종 폭력은 또래 간의 호기심이나 일탈로 치부하기엔 피해 학생에게 남기는 신체적·정신적 상흔이 너무나 깊다. 가해 학생들이 처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이를 놀이 문화처럼 소비하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학교폭력은 더욱 지능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진화해 결국 학교와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해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중형이나 학생부 기록 등 가혹한 낙인을 찍는 것이 능사무탈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청소년 시기의 과오에 대해 교화와 선도의 기회를 우선 부여해야 하며, 사법적 잣대나 과도한 징계가 오히려 학생의 사회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반발심을 키워 교육적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교화와 선도는 명확한 책임 추궁과 진정한 반성이 전제될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피해 학생이 겪은 고통에 합당한 제재와 반성 없는 관용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는커녕 걸려도 그만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경고로 오인되어 가해 행위를 묵인·방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한 채 가해자의 낙인 효과만을 우려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시각이다. 결론적으로, 흉포화되는 신종 학교폭력 앞에서는 온정주의적 처방을 과감히 거둬내야 한다. 교육 당국과 학교 현장은 ‘야차룰’과 같은 변종 폭력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여 실효성 있는 처벌을 내리고, 가해 학생에게는 철저한 책임 의식을 심어주는 동시에 피해 학생 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둔 단호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기고] 부산 크루즈관광의 허와 실, 크루즈관광객 100만 시대 부산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크루즈선이 부산항에 입항하면 항구는 활기를 띤다. 거대한 선박과 수천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다는 기대를 높인다. 부산항만공사는 2030년까지 크루즈선 520항차, 관광객 1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전망에 따르면 2026년에는 상반기에만 219항차, 약 32만 명이 부산항을 찾았고, 연간 이용객은 약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부산을 찾는 크루즈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과 부산 시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과연 같은 일인가. 크루즈관광의 성공을 입항 횟수와 방문객 수만으로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놓칠 수 있다. 이제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양적 성장의 성과를 넘어 질적 성장의 실효성을 검증해야 할 시점이다. 숫자는 성장하지만, 지역경제의 체감 효과는 별개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은 일반적인 숙박형 관광과 구조가 다르다. 관광객들은 선박 안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고, 기항지에서는 제한된 시간 동안 관광과 쇼핑을 즐긴다. 선박이 몇 시간 정박하는 동안 수천 명이 부산을 방문하더라도 이들이 실제로 부산 지역 상점과 식당에서 얼마를 소비하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지역경제의 수익도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관광객이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주요 명소 몇 곳을 둘러본 뒤 다시 선박으로 돌아간다면, 방문객 수는 통계에 잡히지만 동네 식당과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얻는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관광상품의 구성과 소비 경로에 따라 수익이 일부 대형 사업자에게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부산 크루즈관광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관광객 증가라는 기회를 지역경제의 실질적 성장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얼마나 잘 마련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부산은 방문객 수뿐 아니라 관광객 1인당 지역 내 소비액, 체류시간, 지역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지역 고용 효과, 재방문 의향 등을 함께 측정해야 한다. 그래야 크루즈관광이 부산에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산의 매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부산에는 크루즈관광의 경쟁력이 될 만한 자산이 풍부하다. 해운대와 광안리의 해안 경관,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의 생활문화, 감천문화마을의 독특한 풍경,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원도심, 부산 특유의 해양문화와 음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관광객이 그 가치를 충분히 경험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이 유명 관광지 몇 곳에서 사진만 남기고 떠나는 것과 부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지역 음식을 맛보며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관광이다. 부산은 관광지를 단순히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갈치시장에서 부산의 해산물 문화를 이해하고, 원도심에서 도시의 역사와 산업 발전을 배우며, 지역 상점에서 부산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관광 안내와 해설의 품질이 중요하다. 언어를 단순히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부산의 역사와 문화, 음식의 의미를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광객이 도시를 깊이 이해할수록 관광 경험의 만족도와 소비의 폭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결국 관광의 경쟁력은 관광지의 개수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기억을 가져가는가에 달려 있다.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출발점이다. 부산시가 크루즈관광 활성화 전략에서 체류 확대와 재방문 설계를 강조하고, 24시간 크루즈터미널 운영을 기반으로 오버나잇 크루즈 유치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항만공사 역시 기항 중심에서 모항 중심으로 전환하고 1박 2일 체류형 상품을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크루즈관광의 경제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이다. 낮에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밤까지 머무는 관광객에게는 저녁 식사, 야간 관광, 공연과 문화체험, 숙박 전후의 추가 소비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물론 체류시간이 늘어난다고 소비가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편리한 교통, 안전한 이동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부산은 광안리 야경과 해변 문화, 원도심 역사 탐방, 지역 미식, 공연과 전시를 결합한 시간대별 관광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크루즈 입항 시간에 맞춰 시장과 음식점, 문화시설이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광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다국어 안내와 교통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더 많은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경험이 지역 소비와 재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크루즈 모항 육성은 관광을 넘어 산업의 문제다. 크루즈관광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을 잠시 들르는 기항지에서 출발과 도착이 이뤄지는 모항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항은 관광객의 승선과 하선뿐 아니라 항공·철도 연계, 숙박, 식음료, 선박 정비, 연료와 식자재 공급, 물류와 전문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크루즈가 늘어나면 관광산업의 파급효과가 선박 운항과 관련 서비스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다만 모항 육성에는 국제선 연결성, 선사의 운항계획, 안정적인 수요, 터미널 수용능력, 출입국 절차의 효율성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시설 확충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은 크루즈 선사 유치와 함께 지역기업이 선용품 공급, 관광서비스, 운송, 콘텐츠 제작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관광객이 부산에 와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 자체가 부산에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모항 전략의 경제적 의미다.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 크루즈관광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방문객 중심에서 지역경제 가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입항 횟수와 관광객 수에 더해 지역 내 소비액, 소상공인 매출 기여도, 체류시간, 재방문율을 함께 공개하고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단체 관광 중심에서 선택형 체험관광으로 확대해야 한다. 부산의 음식, 역사, 해양문화, 전통시장, 예술과 지역 생활을 연결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이 자신의 관심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낮 중심 기항에서 야간·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 야간 콘텐츠와 대중교통, 다국어 안내, 안전관리 체계를 함께 구축해 체류 확대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관광 유치에서 산업 생태계 육성으로 발전해야 한다. 지역기업과 선사 간 거래를 확대하고, 부산의 식품·수산물·서비스·문화콘텐츠가 크루즈 산업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관광객의 만족을 재방문과 추천으로 연결해야 한다. 크루즈 여행에서 부산을 경험한 관광객이 다음에는 부산에 며칠간 머무는 개별여행객으로 돌아오도록 후속 관광상품과 맞춤형 홍보를 설계해야 한다. 크루즈는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첫 번째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 관광업계, 지역 상인, 교통사업자, 문화기관이 함께 성과를 관리해야 한다. 관광객 증가의 혜택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관광의 진정한 성공은 배가 떠난 뒤에 결정된다. 크루즈관광은 부산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적인 접근성, 해양도시라는 정체성, 풍부한 문화자산을 활용한다면 부산은 동북아 크루즈관광의 주요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크루즈선이 많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관광도시의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관광객이 부산을 얼마나 깊이 경험했는지, 지역 상권이 얼마나 혜택을 얻었는지, 부산의 기업과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크루즈관광의 성패는 배가 몇 척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배가 떠난 뒤 부산에 무엇이 남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관광객의 발길이 지역 상권의 매출로 이어지고, 일회성 방문이 재방문으로 연결되며, 관광 수요가 부산의 일자리와 연관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 때 크루즈관광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2030년 관광객 100만 명이라는 목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부산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부산을 찾은 세계인이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도시, 지역기업이 관광산업의 성장에 참여하는 도시, 시민이 관광의 혜택을 체감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의 크루즈관광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함께 만들었는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부산은 단순한 크루즈 기항지를 넘어 세계인이 기억하고 다시 찾는 해양관광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
[社說] 과도한 N수 열풍, 학벌주의 해법 없이는 교육 공멸을 막을 수 없다
[교육연합신문=사설] 대학 서열화와 학벌 중심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N수생 급증과 사교육비 폭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올해 수능 접수자 중 N수생의 비율이 3분의 1을 넘어 2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수능 여파와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매년 수만 명의 청년들이 더 나은 대학을 향해 재도전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가계 경제를 파탄 내는 사교육비와 N수 현상은 결국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가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된다. N수 생활에는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전체 N수 사교육비 규모만 해도 1주년 기준 3조 원을 웃돈다. 이로 인해 부모의 경제력이 곧 학생의 재도전 기회를 결정하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작 수많은 비용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임에도 이들이 학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학벌이 개인의 사회적 생존과 직결되는 한국 특유의 구조적 병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N수생 증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자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자연스러운 경쟁 과정이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N수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나 역량 발전을 위한 투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무한 경쟁을 통해 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이 교육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또한 수능 난이도 조절이나 입시 제도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작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공정한 경쟁으로 포장된 승자독식 구조의 폐해를 외면하는 무책임한 진단이다. 현실의 N수 경쟁은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는커녕,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 유리한 부모 찬스의 장으로 변질되어 있다. 게다가 10명 중 7명이 실패의 고통을 겪고, 고3 재학생들까지 가중된 부담으로 인해 원치 않는 N수로 내몰리는 상황은 교육이 사회적 통합이 아닌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정부와 사회는 입시 제도의 지엽적 수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학벌 중심의 사회적 보상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평생의 간판이 되는 학벌주의 타파와 일자리 간의 임금·근로 조건 격차 해소가 동반되지 않는 한, N수생 행렬을 막아 세울 방법은 없다. 교육은 청년들을 무한 경쟁의 나락으로 내몰고 가계의 등을 휘게 하는 소모전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입시 지옥의 악순환을 끊어낼 거대한 구조적 대전환을 시작할 때다.
-
[기고] 건물은 세워진다, 도시는 기획된다
[교육연합신문=이상헌 기고]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화려한 야경일까, 유명한 축제일까, 아니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일까.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도시의 경쟁력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건물만 보러 도시를 찾지 않는다. 그 도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기대 이상일 때, 도시는 관광지를 넘어 목적지가 된다. 부산은 이미 적지 않은 것을 갖추고 있다. 국제적인 축제와 다양한 공연, 해변과 항구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풍경, 역동적인 음식문화가 있다. 부산콘서트홀이 문을 열었고,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도 예정돼 있다. 이제 부산 관광의 과제는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가진 자산으로 어떤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따라 완성된다. 파리의 문화적 매력은 에펠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런던의 관광 경쟁력도 빅벤이나 버킹엄궁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도시에는 예술과 공연, 전시와 스포츠, 미식과 일상이 끊임없이 새로운 방문 동기를 만들어 내는 구조가 있다. 관광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여행하는 시기에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기 위해 움직인다. 여기서 부산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부산에도 축제는 많고 공연도 열린다. 문제는 행사의 유무가 아니라 개별 행사가 도시 전체의 매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가에 있다. 각각의 축제와 공연이 저마다의 성과를 내는 것과, 그 모든 경험이 ‘부산에 가야 하는 이유’로 축적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부산을 여행하려는 외국인이 특정 공연을 발견하고, 그 일정에 맞춰 항공편과 숙박을 예약하며, 낮에는 도시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공연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다.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핵심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공연이 열려도 해외에서 정보를 접하기 어렵고, 예약과 관람이 불편하며, 여행 일정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차이가 부산 관광의 다음 단계를 결정할 수 있다. ■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2027년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부산의 문화와 관광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고, 부산의 예술적 위상을 높이며, 북항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건축물이 완성되는 순간 세계적인 오페라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공연장은 외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올리는가, 어떤 예술가를 키우는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가, 시민과 관광객이 얼마나 자주 그곳을 찾는가가 중요하다. 개관 기념 공연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다음 해, 그다음 시즌에도 사람들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다. 한 번의 화려한 개관보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예술적 신뢰가 도시의 브랜드를 만든다. 또한, 오페라하우스가 독립된 섬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콘서트홀과 기존 공연장, 영화제와 지역 축제, 전시공간과 관광업계가 서로의 관객을 연결해야 한다.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부산의 다른 문화공간을 찾고,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다음 공연을 예약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진정한 성공은 그 건물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공간이 부산 전체의 문화적 활력을 얼마나 확장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 축제의 도시에서 ‘문화적 목적지’로 부산은 축제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도시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와 공연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결해야 하는 도시다. 필요한 것은 행사 목록의 확대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프로그램처럼 기획하는 발상이다. 봄에는 어떤 예술을 경험할 수 있고, 여름에는 바다와 음악이 어떻게 만나며, 가을에는 영화와 공연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고, 겨울에는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계절별 축제를 배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와 여행 시기에 따라 도시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흩어진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해외 관객이 부산의 오페라 공연을 예약하면 인근 전시와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발견할 수 있고,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이 지역 공연과 미식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행사가 관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부산 체류를 함께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결은 홍보의 문제인 동시에 산업의 문제다. 공연 기획자와 관광업계, 숙박업계, 지역 상권이 일정과 상품을 함께 설계한다면 문화행사의 효과는 공연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관광 소비를 이끌고, 관광은 다시 예술의 관객과 재원을 넓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 세계인의 시선보다 먼저, 관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할수록 해외 유명 공연과 국제적인 이벤트에 관심이 쏠리기 쉽다. 그러나 외부의 명성을 빌려오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문화적 자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예술단체를 초청하는 일과 함께 부산의 예술가들이 성장하고, 지역의 공연단체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부산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다른 나라의 무대에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예술이 부산에 도착하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의 예술이 세계로 나가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공연장을 찾고 축제를 즐기며 지역 예술을 지지할 때 문화 인프라는 비로소 살아 있는 자산이 된다. 관광객만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공간은 특정 시기의 방문객에 의존하기 쉽지만,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 결국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수준은 그 도시가 평소 축적해 온 문화의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한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시민이 평소에도 좋은 공연과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관광객 수를 넘어, 도시의 선택받는 힘으로 관광객 수는 분명 중요한 지표다. 부산이 세계적인 관광도시들과 경쟁하려면 방문객 규모를 확대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숫자의 성장만으로 도시의 국제적 위상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부산을 방문한 사람이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여행 중 무엇을 가장 인상 깊게 경험했는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공연과 축제가 실제로 숙박 예약과 지역 소비, 재방문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화행사의 관객 수와 관광객의 만족도, 지역경제에 미친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다음 기획도 정교해질 수 있다. 이제 부산 관광정책에는 관광과 문화예술을 따로 바라보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면서 관광 동기이고, 축제는 시민의 문화행사이면서 도시의 국제적인 홍보 자산이다. 이 둘을 연결하는 능력이 앞으로 부산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부산은 더 이상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은 그 가능성을 시험할 중요한 기회다. 건물의 완공을 도시의 성취로 끝낼 것인지, 새로운 문화관광 시대의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지는 앞으로의 운영과 기획에 달려 있다. ■ 도시는 건축으로 모습을 갖추지만, 기획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세계적인 관광도시는 명소가 많고 축제가 화려한 도시만이 아니다. 세계인이 부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축제의 일정에 맞춰 방문하며, 그 경험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도시다. 부산에는 이미 무대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무대들을 하나의 도시적 경험으로 연결하는 안목과 실행력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불이 켜지는 날, 부산의 관광도 함께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부산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꿈꾸는 데 머물지 않고, 세계인이 찾아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도시로 나아갈 것이다.
-
[교육칼럼] 늘봄학교 전면화의 명암
[교육연합신문=박진우 칼럼] 초등 방과 후와 돌봄을 통합한 '늘봄학교'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초등 1~2학년까지 정착되며 학부모의 양육 부담 완화와 국가 책임 돌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기존 돌봄교실의 높은 대기 수요를 흡수하고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안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는 정책적 취지는 교육 가족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안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교가 겪는 공간의 과밀화와 관리 체계의 과부하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과제다. 실제로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늘봄학교 추진 현황」에 따르면, 초등 1~2학년으로 대상이 확대된 이후 참여율은 8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돌봄 대기 수요를 사실상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서 나타난 공간 여건의 격차는 여전히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 과밀 지역의 경우 일반 정규 교실을 늘봄과 함께 쓰는 '겸용 교실' 비율이 늘면서 교사의 수업 연구 및 학생 상담 공간이 잠식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면 농어촌 및 원도심 학교는 전문 강사 수급의 어려움과 방과 후 안전 관리 인력 부족이라는 상반된 난관에 직면해 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모든 돌봄 수요를 흡수하려는 물리적 집중이 낳은 구조적 한계다. 학교는 통계표 위의 숫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배움의 터전이자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는 공간이다. 모든 돌봄과 보육의 책무를 학교라는 단일 기관의 울타리 안에만 가두려 한다면, 교원은 본연의 교수·학습 연구와 학생 지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고 돌봄 서비스의 질적 도약 또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질 높은 교육'과 '안정적인 공공 돌봄'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패러다임의 확장이 요구된다. 우선, 학교 중심의 돌봄을 넘어선 '지자체 책임형 협력 거버넌스' 확대가 절실하다. 학교 밖 유휴 공공시설, 청소년수련관, 주민자치센터, 도서관 등을 거점형 늘봄센터로 적극 발굴·연계해야 한다. 공간이 부족한 학교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해 질 높은 예체능 및 놀이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통학 및 공간 운영을 전담하는 '온 마을 돌봄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학교 내 '교육'과 '돌봄'의 운영 체계를 행정적·공간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교원 조직과 늘봄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늘봄지원실 전담 인력의 업무 경계를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늘봄전담사 및 관리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예산 집행 등의 행정 부담이 일반 교사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양적 수용'을 넘어 아이들의 정서적 쉼을 보장하는 '돌봄 질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프로그램이나 과도한 특별활동을 강요하기보다, 자유 놀이와 쉼, 또래 간의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아동 친화적 쉼터를 조성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종일 이어지는 빽빽한 통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편안한 품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는 학교에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보듬는 성숙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 박진우 ◇ 교육학 박사 ◇ 부산 칠암초등학교 교감
-
[社說] 대학에 설명회 일정 일방 통보, 교육부의 예산 권력 갑질은 멈춰야 한다
[교육연합신문=사설] 교육부가 주요 교육 사업 설명회 일정을 대학들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불거진 갑질 논란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고질적인 관행이다. 교육부는 예산과 지원 사업을 볼모로 대학을 찍어 누르는 고압적인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대등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소통에 나서야 한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의 명운이 걸린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대학 측의 학사 일정이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 통보했다. 대학 입장에서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은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 속에서 생존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줄기다. 교육부는 자신들이 가진 예산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기로 대학들을 길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는 대학 구성원들의 자존감을 짓밟을 뿐만 아니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교육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심각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교육부 입장에서는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의 시급성과 효율적인 행정 처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일정을 조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할지 모른다. 제한된 시간 내에 수많은 대학의 의견을 일일이 수렴해 일정을 잡는 것은 행정적으로 현실 불가능하며, 신속한 정책 집행이 오히려 대학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은 주객이 전도된 관료제적 독선에 불과하다. 진정한 소통은 효율성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급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고등교육의 핵심 주체인 대학을 단순한 하급 기관이나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행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돈줄을 쥐고 흔드는 교육부의 찍어 누르기식 행정이 지속되는 한, 정부가 공언해 온 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규제 완화는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제 교육부는 제왕적 감독 기관의 틀에서 벗어나 대학과 수평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산과 사업을 앞세워 대학을 통제하려는 관행을 타파하고, 사소한 설명회 일정부터 대학의 학사 일정을 존중하는 상호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교육부의 진정한 권위는 일방적 통보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조율하는 성숙한 행정에서 나옴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실시간 칼럼·피플 기사
-
-
길 위에서 길을 묻다
- 최소한의 교육환경 개선…학습능력 향상 위한 선결조건학교 현장에 맞는 현실적인 교육정책 적용 위해 노력할 것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있다. 과연 사람들은 무엇에 더 관심을 가질까? '○○학교가 50억원을 들여 최신식 강당을 신축했다.' '○○학교의 화장실이 전부 교체됐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으나 많은 경우 앞의 강당 신축사실에 더 눈길을 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강당과 화장실의 차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생활 속 작은 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둔감하기조차 하다. 결국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덩치 큰 이벤트'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의 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덩치 큰 이벤트'가 아닌 '생활 속 작은 변화'에 있다. 변화를 이끄는 힘은 '규모'가 아닌 '내용'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혁신을 이야기하고 공교육의 내실화를 역설한다.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대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이 가운데 좀 다른 방법으로 변화를 이야기하는 이가 있다. 현실의 높고 큰 목소리에 가려 심지어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작은' 변화를 위해 나아가는 그 사람에게 우리교육의 또 다른 길을 물어본다. 비록 작고, 눈에 띄지 않지만 '알찬 변화를 이끄는 힘'과 그 '필요성'에 대해… 류병태 인천광역시 교육위원은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 교장, 인천북부교육청 학무국장, 인천서부교육청 초대교육장 등을 역임했다. 교육위원 선출 이후 학교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디딘 이래 줄곧 교직에만 있었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교실의 냉난방기 설치나 흑칠판 교체 주장 등은 그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한 여름 땀 냄새 진동하는 교실에서, 분필가루 날리며, 턱없이 크거나 작은 책걸상에 앉아 하는 수업의 효율성이 좋을 리 없다. 교사의 전문성, 수준별 수업 다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기본적인 교육환경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환경개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교육환경 개선은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선결조건 이다. 교육환경개선 사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추진한 내용은 어떤 것들인가? → 첫 번째로, 교실 냉난방시설 개선을 들 수 있다. 인천지역의 교실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그 이유는 인천의 경우 도서벽지가 많고 송도 개발 등으로 새로운 학교 신축이 많아 교실환경개선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인천의 교육환경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열악한 상황이다. 교사로 재직할 때도 그랬고 교육위원에 선츨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직에 있으면서 여름과 겨울에 교사와 학생들이 무더위와 추위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이런 여건에서는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문제에 온 힘을 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그 동안의 노력이 성과가 있어 작년 말까지 각급학교의 냉난방시설이 모두 개선됐다. 개인적으로도 보람되고 의미 있는 결과지만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게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 두 번째는 학교 흑칠판 교체사업이다. 현재 인천지역의 교실 중 30% 이상이 10년 이상 된 노후 칠판을 사용하고 있다. 교사의 건강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이 바로 분필가루라는 점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심각성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본적인 건강조차 지켜주지 못하면서 전문성과 능력을 기르라고 다그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교실 냉난방 시설 개선이 학생을 위한 최소한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흑칠판 교체는 교사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냉난방 시설 개선처럼 모든 학교의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아쉽지만 현재까지 전체 교실 중 약 50%의 칠판이 교체됐다. 이 사업은 반드시 확대 추진되어 모든 교실의 칠판이 개선되어야 한다. 학교 화장실 환경 개선이나 책걸상 및 사물함 교체 등의 안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에서는 너무 지엽적인 사안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교실 냉난방 시설 개선이나 흑칠판 교체 사안과 같은 맥락에서 이들 사업들은 우리 학생들을 위한 정말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니 배려라고도 할 수 없다. 우리 학생들이 누려야할 지극히 당연한 최소한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그 최소한의 복지가 아직까지도 실현되지 못해 여전히 10~20년 전 만들어져 체형에도 맞지 않는 책걸상에 몸을 끼워 맞추고, 전체의 90%는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는 사물함을 마치 운명처럼(?) 체념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따름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어린 학생들을 위해 우리 기성세대가 반드시 해 주어야 할 최소한의 복지이다. 화장실 개선 안건의 경우에는 시교육청으로부터 올해 말까지는 양변기로 전부 교체하는 등 화장실 환경개선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책걸상 및 사물함 교체 사업도 지속적으로 요구해 나갈 것이다. 평교사와, 교감, 교장, 교육장 등을 거치면서 우리 교육현장에 대한 느낌이 남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류 위원께서 보시기에 가장 바람직한 교육정책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학생과 교사의 피부에 와 닿는 교육정책이다. 교사나 학생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의 눈높이에서 교육현장을 바라보고 고민하고 그들과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온 몸으로 호흡하고 있는 평교사들의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으로,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마음으로 학교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좋은 말씀이다. 그렇다면 현장과 공감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 매일 아침이면 나는 각급 학교를 다니면서 교통지도를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시쳇말로 얼굴을 알리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마음이었다면 더 여러 사람에게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도 많다. 매일 학교를 찾아다니며 교통지도를 하는 이유는 각 학교 녹색어머니회와 함께 교통지도를 하면서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생생하게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고 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부담스러운지를 가감 없이 들을 수 있고 그 현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내게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좋은 것은 등교길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일선 교단을 떠났지만 등교길 학생들을 보면 평교사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과 설레임이 든다. 등교길에서 마주치는 어린 학생들의 미소를 보는 것이 정말 좋다. 학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아직도 공교육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씀과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로 인한 걱정의 말씀들이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일생을 교직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공교육의 신뢰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위원의 신분으로서 학교 현장을 바라볼 때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 제도적 측면에서 본다면 독립형 의결기구가 아니고, 시교육청 등에 지적을 해도 구속력이 없어 교육위원으로서의 활동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교육위원으로서 교육현장을 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현재 교사들이 수업 준비 외에, 비본질적인 업무로 너무 시간 낭비가 많다는 점이다. 교사를 위한 사기진작방안도 미흡하다. 비본질적인 업무로 인한 시간낭비를 말씀하셨는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 현재 교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잡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각종 행사도 정말 많다. 수업준비에 집중할 시간에 각종 행정업무와 공문서 처리 등의 잡무와 행사준비 등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확보하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의 수업외 업무 부담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특히 소규모 학교의 경우에는 교사 수가 적어 업무 부담이 더 크다. 교사의 수업외 업무부담을 해소 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행정시스템이나 전산망 등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우선 보조교사나 인턴교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교직을 이수하고도 아직 정식 임용을 받지 않은 예비교사들을 적극 활용해 이들에게는 교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현직 교사들의 수업외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청년실업문제의 해소를 위해서도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교사의 사기진작 방안이 너무 미흡하다. 자기계발과 전문적인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후배교사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교직은 전문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교사 자격증으로 대변되는 형식적인 전문직이 아니라 뛰어난 수업능력과 담당 교과목에 대한 전문성을 두루 갖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전문직이 되기 위해 비록 열악한 대우조건과 근무환경이라 해도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에 끊임없이 매진하는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점점 더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멀어지고 형식화되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교사의 본분은 누가 뭐라 해도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인성교육이 핵심이다.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교사는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고귀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부심과 긍지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키우는 감동의 교육이 아쉽다. 모든 학생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 칼럼·피플
- 에듀人포커스
-
길 위에서 길을 묻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