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전재학 칼럼]
대한민국은 남녀가 분리된 단성(單性) 학교를 선호하는 이유가 매우 단순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매우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왜냐면 남녀공학일 경우 이성교제를 우려하고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내신 성적이 불리하다는 단순한 인식을 하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단성 학교는 관리가 쉽고 상대적으로 면학분위기도 좋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학교 배정 후에 전학을 불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교육열이 놀라울 정도다.
초등학교에서 14년 차 근무하는 송은주 교사는 최근 그의 저서 『다시 일어서는 교실』에서 다음과 같은 직접 인터뷰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좋은 대학 진학률도 높은, 꽤 이름난 학교였습니다. 그런데도 30명이 넘는 남학생들을 한곳에 몰아넣으니 매일, 매시간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 같았어요. 그냥, 애들이 미친 사람 같았어요. 약간은 동물적인 본능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쉬는 시간이면 늘 싸우는 애들이 있었어요. 저도 주기적으로 정말 미친 척하고 책상을 엎는 것 같은 난리를 피우지 않으면 먹잇감이 되어버리는 그런 환경이었어요.”(30대 남성 박재준)
이처럼 남성, 여성으로만 구성한 단성 학교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고 학생의 스트레스와 교사의 억제력이 충돌하면 갈등이 더 심화됨을 말하면서 구체적인 단점을 아래와 같이 첨언하고 있다.
“한 성만 모여 있는 학교에서 학창시절을 거의 다 보냈어요.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리는 사회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니 그 이후도 사회생활에 영향이 있어요. 성격에 따라서는 여자한테 말도 못 걸거나 그 여파가 큰 사람도 있고요.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이처럼 단성 학교의 후유증이 사회적으로 꽤 큰 편이다. 예컨대 남녀 간의 성 역할과 자연스러운 소통과 표현을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그들이 만드는 사회는 여전히 소통과 공존이 어렵다. 학교에서 그랬듯이 사회에서도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법칙에 익숙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단성 학교를 운영하는 것일까? 그것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과거 신문물을 도입하던 시기인 구한말에 여권 신장과 여성 교육에 집중하는 학교 환경이 필요했다. 이는 지금도 남녀 구분의 뿌리 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와 폐쇄성이 강한 우리 교육은 이렇게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오히려 자랑하는 경우가 아직도 흔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보다 문명화됨에 따라 남녀 구분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성정체성을 존중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며 상호 존중하는 민주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남녀구분과 교복 착용을 철저하게 실행하던 시절에는 어른들의 인식은 학생들을 통제하여 헤게모니를 작동시키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학생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성향이 아직도 21세기의 디지털 대문명 사회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적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고인 물은 썩는다’는 자연의 이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언뜻 보아도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라는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의 진단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최근 특정한 성을 비하하는 말이 난무하고 혐오를 조장하는데 유야무야로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경직된 학창시절이 편협한 어른을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학생들의 희생을 넘어 교사는 깨어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단성 체제를 선호하는 교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지도 방식이나 학교 방침과도 연계된다. 중요한 것은 남녀 학생의 차이를 이해하고 특성을 존중하며 개별화된 맞춤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갈수록 단일성 집단의 정체성은 곳곳에서 깨지고 있다. 직업상으로도 남성으로 대표되던 군대, 경찰 조직이 단적인 예다.
이제는 양성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운데 합리적인 공존의 원리를 배우며 상호 간에 인간존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학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함이 순리이며 학교의 존재 이유나 목표,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에도 꼭 필요한 시대적인 요구이자 흐름이다. 이제 일방적인 성별 분리에 의한 ‘고인 물 학교 정책’과 뿌리 깊은 ‘교육 가치’ 또한 변화만이 상수(常數)임에 틀림없음을 잊지 말자.
▣ 인곡(仁谷) 전재학
◇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 前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 前제물포고, 인천세원고 교감
◇ [수능교과서 영어영역] 공동저자
◇ 학습지 [노스트라다무스] 집필진
◇ [월간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및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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