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손경희 기고] 

2023년 8월 15일 영화 ‘오펜하이머’가 광복절 연휴에 우리나라에서 개봉, 55만 명이라는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나치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미국이 추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작전명 ‘트리니티’ 핵실험의 성공과 함께 섬광이 비춘 40초 후, 12km까지 솟구친 버섯구름을 보면서, 그는 다가올 비극을 예견하고 두려움이 엄습하자 "나는 이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고 독백한다. 

 

과학과 군대가 함께 만든 원폭 하나가 1945년 8월 6일, 그렇게 히로시마에 떨어졌고, 당일에만 사망자 7만 명, 이후 5년 동안 피폭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20만 명, 한국인은 10%로 추정되고 있다. 섬광과 버섯구름, 검은 비는 모든 생명을 앗아가고, 선량한 시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jpg
오펜하이머 영화 포스터

삼청동 현대미술관에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전시회를 보고, 아직도 원폭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기구, 기념비,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사회적 약자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표현했는데, 히로시마 원폭돔 프로젝션을 빌려 반핵을 이야기했다. 물에 비친 원폭돔 프로젝션은 너무도 강렬했다. 

1.jpg
크지슈토브 보디츠코의 히로시마 프로젝트

1965년, 이부세 마스지가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자전적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간 소설 ‘검은비’가 있다. 오래전 읽은 책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원폭이 투하되던 날, 찐득한 검은비를 맞은 조카 야스코. 징용을 피하려고 야스코를 데리고 있던 시게마쓰 삼촌.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에 있었다는 이유로 조카의 결혼이 번번이 무산되자 원폭피해자가 아니라는 증명을 위해 당시의 일기를 필사한다. 그 속엔 웅크린 채 죽어간 사람들, 검은비에 살이 녹아 흘러내린 좀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5년 후, 친구들이 죽어가고, 결국 피폭증이 나타난 야스코를 구급차에 실려 보내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검은비’를 영화로 만들었다. 오전 8시 14분 폭발음과 함께 무너지는 시계의 모습으로 야스코의 삶을 보여준 장면과 정의의 전쟁보다 부정의 평화가 좋다고 말한 시게마쓰의 항변이 담겨 있다. 

1.jpg
영화 검은비-연못의 주인은 잉어라는 삼촌과 야스코

히로시마 역에서 히로덴 2호선을 타고 15분 정도 지나 겐바쿠돔마에역에 도착하니 바로 원폭돔 앞이다. 체코의 건축가 얀 렛트르가 설계한 3층 철골 돔을 지붕으로 얹은 상업전시관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지붕과 마루, 내벽이 무너지고 골조만 남은 파괴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원폭돔을 찾은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인류의 잔혹한 역사 현장에 눈물짓기도 한다. 당시 고단한 삶을 살아냈을 평범한 시민들을 기억했다.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평화가 모두에게 그토록 어렵다는 것도!     

1.jpg
골조만 남은 원폭돔

길 건너 오리주루 타워, 13층에 오픈 테라스가 있다. 오리주루는 일본어로 종이학! 일본에서는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낫는다고 믿음이 있다. 히로시마의 비극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러 곳에서 종이학을 접어 보내는데, 연간 약 1천만 마리! 무게로 하면 약 10톤에 달한다. 

 

여권을 보여주면, 입장료 50% 할인이다. 13층에 올라가니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원폭돔과 주변을 흐르는 초록빛 수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수로에서 배를 타고 오던 발랄한 20살의 야스코를 생각하니 짠한 감정이 느껴졌다. 전망대는 예쁘게 꾸며졌고, 그물망이 있어 안전하며 히로시마 풍광은 뛰어나다. 

1.jpg
오리주르타워 13층 전망대 공원
1.jpg
오리주르타워에서 바라본 원폭돔과 수로

스타디움을 따라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히로시마 미술관이다. 히로시마 중앙 공원의 녹지를 미술관 정원으로 끌어왔다. 1978년, 도쿄스카이 설계로 유명한 니혼세케이가 설계했으며, 사각형 안에 둥근 원의 구조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원이 본관이고 앞쪽은 출입구 뒤쪽은 특별관, 양쪽은 회랑으로 연결되었다. 

 

인구 120만 규모의 도시인데, 일본 서양 걸작 100선 중 9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등 인상파를 중심으로 프랑스 현대미술과 일본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 le jardin de daubigny가 인상적이었다. 특별관에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발상이 재미있었다. 정원에 서 있던 안톤 브루델의 ‘과일을 든 나부’를 흉내 내고, 에밀리오 그레코의 ‘Laura’ 브론즈 조각에 시선을 빼앗겼다. 곳곳에 멋진 작품들이 많았다.     

1.jpg
안톤 브루델의 ‘과일을 든 나부’ 조각상

근처 히로시마성은 나고야성, 오카야마성과 함께 일본 3대 평성 중의 하나. 1589년 모리 데루모토에 의해 축조되었다. 원폭 투하 때 국보로 지정된 화려한 천수각이 무너지고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58년 재건되어 현재 성 내부는 히로시마의 역사를 알리는 향토관과 전망대로 쓰고 있다. 5층 전망대에서 히로시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일본 전통 복장으로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을 구경하다 해자에서 배를 타고 성을 한 바퀴 돌았다. 뱃사공의 설명과 노래보다 여유롭게 성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1.jpg
해자에 둘러싸인 히로시마성

히로시마 대표 요리는 오코노미야끼.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밋쨩 핫초보리 본점을 방문, 늦은 시간인데도 줄이 길다. 토핑 몇 가지를 골라놓고,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길게 이어진 철판 위에 남자 종업원들이 나란히 서서 부지런히 오꼬노미야끼를 굽고 있고, 맞은편 테이블에는 그 과정을 즐겁게 지켜보는 손님들도 있었다. 

1.jpg
오꼬노미야끼를 굽는 모습

드디어 등장한 일본식 두툼한 빈대떡, 오꼬노미야끼. 볶은 면 위에 숙주나물과 양배주, 치즈와 달걀을 얹고 그 위에 마요네즈와 소스가 얹혀있는데 조금 짜다. 체험 코스로도 인기가 아주 많은 히로시마 명물을 먹어본 것으로 만족했다. 

1.jpg
히로시마 명물 오꼬노미야끼

히로덴을 타고 우지나산초메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천연온천. 역에서 1km 거리에 위치하여 걷기에는 조금 멀었다. 찜질방과 노천탕이 잘 되어 있었고, 매끈매끈 수질이 아주 좋았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산소탕을 비롯 다양한 종류의 탕이 많았다. 유황 온천수에 피로를 풀고, 평화공원과 가까운 숙소 도미인 히로시마 호텔로 돌아왔다.    

1.jpg
우지노호유 천연온천

다음 날 새벽, 고요한 평화공원을 둘러보려고 일찍 나섰다. 입구에 평화의 시계탑이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오전 8시 14분마다 시계탑 종이 울린다. 평화기념 자료관을 비롯하여 원폭 희생자 위령비, 평화 도시 기념비 등이 세워져 희생된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 

 

원폭 소녀상은 두 팔을 들어 학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고, 종이학을 걸어 놓은 유리 상자가 눈에 띄었다.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을 이룬다 해서, 964마리를 접다 말고 죽은 사사키를 위해 동급생들이 건립했다. 일본 각지에서 종이학을 접어 보내기 시작, 여전히 공원에는 학이 배달되고 있다.     

1.jpg
종이학을 들고 있는 평화의 공원 소녀상

미국은 일본군 전략기지였던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으며, 우리나라의 광복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 피폭, 섬광화상, 질병과 부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 도시의 90%가 무너졌고,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 

 

서둘러 혼카와교 다리 부근 한국인 피폭자 위령비를 찾아갔다. 이국땅에서 헤매는 혼령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드렸다. 매년 8월 5일 위령제가 거행되지만 좀 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아직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 피폭자들에 대한 관심과 양심 있는 지원을 요청하고 싶다. 이런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침 기운을 받아 새롭게 깨어나는 강물 위로 두루미들이 찾아와 쉬고 있다. 강이 주는 평화이다. 공원에는 휴일 아침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보이고, 위령비에 종이학을 놓는 사람도 있다. 일상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1.jpg
평화공원 한국인 위령비

원자폭탄 투하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히지야마 언덕에 히로시마 현대미술관이 있다. 전망 좋은 야외에 설치된 녹색 청동문은 ‘아치’라고 불리는 헨리 무어의 작품이다. 원폭 투하 후 발생하는 버섯구름에서 모양을 따온 듯하다. 

 

반대편 계단을 올라가니 푸른 공원에 은빛 미술관이 원형의 형태로 서 있다. 1989년, 유명 건축가 구로가와 기쇼가 설계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외관은 돌로 기반을 만들고, 가운데는 타일, 위쪽은 알루미늄 사용으로 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혼합했다. 핵무기 폐지와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 등 ‘히로시마의 정신’이 표현된 둥근 하늘과 열린 공간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예술이 표현하는 힘은 대단하다. 곳곳에 재질도 다양하고 표현도 멋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컸다. 특히, 청동으로 군상의 뒷모습을 늘어놓은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체험하는 학생들의 작품들이 벽면에 빙 둘러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두루 관람하고, 깔금하게 디자인 된 아사히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커피잔에 새겨진 파란색의 여인 모습이 어쩐지 익숙했다. 청량한 색감 때문이지 스타벅스 로고보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1.jpg
평화의 상징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슈케이엔은 1620년, 영주 아사노 나가아키라 별장 정원으로 조성된 곳이다. 중국 항저우 서호를 본떠 ‘슈케이엔’이라고 불린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회유식 정원이다. 근처 히로시마 현립미술관은 도서관 부지를 확장 신축하면서 세로로 길쭉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 출신 작가를 조명하며 히로시마 미술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곳이다. 슈케이엔이 잘 보이도록 로비 한쪽 전체를 유리창으로 만들에 정원의 대형 풍경화를 볼 수 있다.

1.jpg
중국 항주 서호를 본 따서 만든 슈케이엔

히로시마 여행은 내게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어제의 아픔을 이겨 낸 오늘의 성장이 내일의 자신을 만들어간다는 신념과 함께 분단된 우리의 현실이 마음 아팠다. 

 

원폭 투하로 조국은 독립을 얻었지만, 독립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선열들의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원폭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고, 함께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종이학에 담긴 평화의 염원을 만난 히로시마 여행,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손경희.jpg

▣ 손경희

◇ 인천 아라고등학교 교장

◇ 인천 작전여고, 인천 청라고 교감

◇ 인천광역시교육청 정책기획조정관

◇ 인천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

전체댓글 0

  • 3851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맛있는 여행] 일본 소도시 기행 - 종이학에 담긴 평화 '히로시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