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휘문고등학교] ‘수평적 리더십’...‘열정과 자율’ 이끌어내다
진학지도에 있어 독보적이라는 평가,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 대상 돼

'전통이 된' 솔선수범, 수평적 리더십→'열정과 자율'이라는 새 '전통' 만들어
조선 후기 문인화의 백미(白眉)로 불리는 '세한도(歲寒圖)'는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르고 거친 필묵으로 쓸어내리듯이 그려나간 이 작품은 특히 화면 중앙에 위치한 네그루의 나무와 그 주위의 여백이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인상을 준다.
모진 세월과 시련에도 흔들림 없는 꼿꼿하기 그지없는 선비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만 하다.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휘문고등학교(교장 김선창)의 교문을 들어서면서 문득 '세한도'가 떠올랐다.
1904년 설립되어 2년 후 고종황제에 의해 '휘문의숙'으로 개명한 이 학교는 103년 동안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를 비롯해 각계의 위인들을 배출하는 등 우리 근현대 역사와 문화의 발전을 주도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인 1921년 당시 학교장 임경재 등 교사와 동문이 힘을 모아 한글학회의 모태가 된 조선어연구회를 설립한 일화는 학교의 학풍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인화는 서양의 작품과는 다른 고유한 특징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문인화는 '내재적 질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서양 미술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라 할수 있을 것이다.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으나 은연중에 오감(五感)을 통해 느껴지는 '내재적 질서'는 매우 깊은 '내면화 과정'이 없으면 표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내면화'는 자기 자신과 이웃, 더 넓게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체제와 구성원에 대한 깊은 성찰을 포함한다. 즉,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과정이 '내면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내재적 질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어떻게 살 것인가?-를 규율하는 근본 규범이다.
우리 문인화는 바로 이 점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정보화 사회는 엄청난 속도와 방대한 자료, 계량화된 분석과 정밀하다 못해 치밀한 논리적 구조, 생산성과 효율의 극대화를 무기로 점점 더 우리를 숨막히는 경쟁속으로 내 몰고 있다.
이 가운데 한가로이 동양화나 수묵화를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가치없는 일이라 외면받기 쉽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은 그 역기능으로 인간성의 상실과 부조리라는 난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결국 디지털도 정보화 사회도 '인간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문인화속에서 숨쉬고 있는 '내면화'와 '내재적 질서'는 디지털 정보화 사회속에서도 여전히 무시할 수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휘문고의 모습은 여러모로 우리 문인화를 닮았다.
더 정확히 말한자면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치와 정신을 닮았다.
국제화를 넘어서 '글로벌'이 교육의 핵심 화두가 된 이 때, 눈에 띄는 최첨단의 프로그램이나 시설을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 안에서 당당히 그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데에는 이 학교가 가진 전통과 역사만큼이나 깊이 있는 '내공'이 있다.

현장 의견수렴과 협의가 전통···'하의상달' 자연스러워
현재 김선창 교장은 이 학교의 스물여섯 번째 교장이다.
일반적으로 사학(私學)은 그 학교 출신이 교장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학교 출신 교장은 지금까지 세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다른 학교 출신이 교장을 맡아왔다.
현재 김선창 교장도 마찬가지이다.
재단 출신이 교장에 취임한 경우는 더욱 드물다.
학교운영 전반에 걸쳐 재단이나 동문이 간섭하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은 거의 전적으로 교장을 중심으로 한 교원들의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학교 행정도 다를 바 없다.
재단과 교장, 교사로 이어지는 관계는 '수평적'이다. 따라서 '상의하달'뿐만 아니라 '하의상달'도 자연스럽다. '언로(言路)'는 '血路'라는 말이 있다.
이 학교에는 언제나 '언로(言路)'가 열려 있다.
열려있는 언로를 통해 일선 교사들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교장은 교사들과의 대화와 협의를 우선으로 한다.
대화와 협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교사들 사이, 교사와 교장, 학교와 재단 사이에 오해나 불신, 갈등도 발생할 여지가 없다.
학교 전체의 힘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곳으로 결집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강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선배교사들의 경험과 지식은 대를 이어 신임교사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이는 곧 교사들의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수평적 구조와 분위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학교 설립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 학교만의 '전통'이다.
바로 이것이 학교가 수업의 높은 '질'을 유지하는 숨은 원동력 중 하나이다.

학원 마치고 스스로 학교로···'자율 학습' 정착
학교의 자랑인 '수평적 리더십'은 '솔선수범'의 정신을 통해 완성된다.
이 학교의 교장과 교감은 흡사 '으뜸머슴'의 모습과도 같다.
가장 앞서 궂은일을 도맡는 이가 바로 교장과 교감이다.
출근을 가장 먼저 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이는 바로 교장이다.
하다못해 떨어진 휴지를 가장 많이 줍는 이도 교장이다.
자리가 올라갈수록 궂은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이며 자랑(?)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열정을 가지지 않는 교사가 있을 수 없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열정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학교의 학풍이 학생들에게까지 전해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솔선수범을 통한 수평적 리더십은 열려 있는 수평적 구조를 만들어냈고 교사들의 자발적 열정으로 이어졌다.
이는 수업의 '질'로 나타났으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실제 학교의 자율학습은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는다.
밤 12시까지 학교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겉으로만 보면 오로지 입시에 매몰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각종 언론매채를 통해 수 없이 본 입시지옥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같은 분위기가 결코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학교의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적인 학습이다.
자율을 빗댄 강제가 아니다.
심지어 정규수업을 마치고 학원수업을 끝낸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솔선수범과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전통이 '열정과 자율'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이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으로 학생별 최적의 진학지도
휘문고는 서울 강남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 매번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만큼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도가 높다.
교사의 능력과 전통 그리고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역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높은 대학 진학률에 있다.
학교는 이미 15년 전부터 자체 대학 배치표를 개발해 활용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사설 학원이나 입시전문 컨설팅 기관이 만든 배치표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특히 학교가 개발한 배치표는 지난 15년간의 경험과 정보, 노하우가 축적돼 그 신뢰도와 정확도면에서 다른 어떤 사설기관의 배치표보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진학에 관한 한 그 만큼 다른 학교보다 두세 걸음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3학년 담임교사와 진학담당교사 등 입시경험이 풍부한 교사 5명을 선발해 '진학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더 빼 놓을 수없는 것이 이 같은 진학정보와 경험이 대를 이어 선배교사로부터 후배교사에게 온전히 전해지고 있는 전통이다.
선배교사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후배교사들에게 온전히 전해짐으로써 학교의 진학정보는 양과 질에 있어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학교는 '진학팀'을 중심으로 자체 배치표를 비롯해 축적된 진학정보와 경험, 최신정보 등을 바탕으로 '진학팀'을 중심으로 개별 학생에 맞는 최적의 맞춤형 진학지도를 실시하면서 다른 학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만큼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자체 입시설명회, 타 학교 학부모까지 참여할 정도
학교의 진학지도는 학생에 대한 지도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체 입시설명회를 열고 있다.
대부분의 입시설명회가 교육청이나 대학 또는 전문 사설기관이 주최해 열리는 것과는 달리 학교의 입시설명회는 학교가 자체 준비한 행사이다.
그 만큼 진학지도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한다.
다른 학교 학부모들이 학교의 입시설명회에 참여할 정도로 반응 또한 매우 좋다.
올해에도 학교는 진학지도부의 주관으로 입학사정관제의 이해 등을 주제로 학부모 대상 설명회를 열었다.
진로의 날...1, 2학년 대상, 동문 선배를 통한 각 분야 직업별 진로정보 제공
이 학교의 특색 사업 중 하나인 '진로의 날'은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 안내'행사이다.
이 학교가 배출한 걸출한 동문 선배를 일일교사로 위촉해 매년 열리는 이 행사는 학생들에게 자기의 소질과 적성을 살피고 미래 본인의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진로소개에 그치지 않고 행사에 앞서 학생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인문, 자연, 공학, 의학 등 각 분야에 진출한 동문선배로부터 세부진로에 대한 특강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학교는 행사가 열리는 날 1, 2학년 32학급에 1명씩 모두 32명의 동문을 일일교사로 위촉해 학생들이 본인의 진로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관심 있는 직업분야를 스스로 선택해 선배와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선창 교장
김선창 교장은 지난 2008년 9월 1일 제26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김 교장은 교육과정운영을 비롯한 학교운영 전반에 걸쳐 '원칙'을 강조했다.
김 교장은 "학교운영의 원칙은 바로 '원칙'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장은 "원칙을 중시하게 되면 당장은 시간도 오래 걸릴 수 있고 그렇게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는 원칙대로 가는 것이 시간과 효과 면에서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휘문고만의 특징으로 '수평적 리더십'과 함께 교사들 사이의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 교사들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열정 등을 예로 들었다.
또 김 교장은 "선배교사로부터 후배교사에게로 그 동안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이 학교만의 전통"이라고 하며 교사의 수업의 '질'과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