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교육연합신문=문석주 기자]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후마니타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인간다움'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래서일까. 인문학박물관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여느 박물관 보다 익숙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내에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박물관 건물 내로 들어서면 왼쪽에는 인문학 도서실이, 오른쪽에는 기획전시실과 인촌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근대성의 증거이자 시대를 이어온 위대한 의지의 결과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전시된 모습은 지식의 역사를 쫓아 방문한 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 보여 관람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먼저 1층을 돌아보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곳은 인촌실이다. 이 곳은 '인촌을 통해 본 우리, 우리를 통해 본 인촌'이라는 주제 하에 인촌 김성수 선생에 대한 전기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지도자로서 당시 인도의 간디와도 서신을 주고받은 일화로 유명하다.


바로 옆 기획전시실에는 '우리 학문의 길-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學)'이라는 주제로 이달 9일부터 8월31일까지 기획전이 한창이다.


이번 기획전은 300종 이상의 관련 서적을 통해 개항기 이후 우리 학문의 발자취를 학문의 목표, 이상의 좌표, 지도이념, 국학, 근대화, 민주화, 그리고 학계라는 7개 주제로 나눠 되돌아보는 전시로써 본지는 다음호에 이를 심도있게 소개할 예정이다.


책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1층 전시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여느 헌책방이나 서점에서 느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풍성한 만족감을 맛볼 테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다음호로 미룬 채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총 2천3백여 점의 유물이 2층과 3층의 상설전시관에 6개의 대주제로 분류되어 꼼꼼히 소개되고 있다. 인문학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귀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대화와 생활방식의 변화
2층에 올라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첫 번째로 제시된 주제 하에 빼곡한 유물들이 관람객들에게 생활이 발전했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중제목中)


인문학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 코너마다 의문형의 중·소주제를 제시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근대는 어떻게 우리 삶에 들어왔는가'(소주제中)와 같은 코너에서는 어느새 해답을 찾기 위해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같은 자료들을 더욱 꼼꼼히 살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의 거리와 가옥들을 재현해낸 모형과 남대문을 중심으로 용산과 남산이 근대화 되는 모습 등 시대적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 엽서들도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파트는 전시도입부로서 환경과 생활방식의 변화에 의해 초래된 공간과 시간의식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적 현상들을 다루는 한편 이와 대비해 최남선의 '조선의 산수', 이광수의 '반도강산'과 같은 전통적 생활현장의 경관미학도 전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 일생의 문제라 할 수 있는 노동이 변해온 역사와 노동 문화와 교육의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근대화와 공론체계의 변화
첫 번째 파트에서 공간의 변화와 그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성하는 여건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봤다면 이곳에선 정신적인 부분, 삶의 의미와 여유를 찾고 이를 즐기기 위한 활동들이 근대화와 함께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식민지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출판됐던 대중잡지 '신흥', '개벽', '춘추' 등과 함께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1883)부터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표방한 '한겨례'(1988)에 이르기까지 격변했던 당시의 교양과 취미, 종교, 미디어 문화의 체계를 살핌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생활이 즐겁고 아름다우며 뜻이 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중제목中) 


인문학의 요체는 특히 이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음 섹터에서 다루는 근대적 생활이념과 정치의식의 인륜성 문제를 논하는 윤리학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생활의 이념
누군가 생활의 의미를 물을 때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중제목中)
한 층을 갈무리하는 질문을 던지며 2층 맨 모퉁이에 자리한 이 파트는 전시물과 관람객들의 문답이 절정에 달하는 곳이다.


쇼케이스에 전시된 '사회정의론'과 '실천이성비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정신' '사회계약론' 등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제시하고도 남음이 있을 명저들에 눈길이 머물 즈음엔 "인륜성이란 내가 참여하는 공동체에 대해 짊어진 여러 도덕적 의무"라고 밝힌 찰스테일러가 떠오른다.


이에 이 파트는 관람객들에게 근대적 생활체계의 인륜성에 대해 묻는다.(소주제中)
'오늘날의 삶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방식인가?'(소주제中)  
해당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3층으로 향하는 동안 만큼이라도 잠시 인간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돼보는 것은 어떨까?

 


근대적 이성과 감성체계로서의 교육과 예술, 그리고 대중문화의 기능
2층이 '근대라는 변화와 시대인들의 이상'이라면 3층은 '변화 속에서 새로 발생한 관계와 시대인들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홍도의 그림 '서당'과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교과서들, 해방 이후의 교과서 등이 차례로 나열돼 있어 급변했던 시대의 교육 실태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면 각종 잡지와 만화책, 영화와 음반, 그림 등도 시대별로 전시돼 관객들로 하여금 '근대 교육과 문화가 추구한 개인 생활의 이상은 무엇인가?'(중제목中) 생각해 보게끔 유도한다.  


역사는 역사의식을 만든다
'근현대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중제목中)라는 질문이 관람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구한말 의병장 최익현의 친필편지부터 미국 선교사 게일이 쓴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백남운의 '쏘련인상' 등의 전시물을 통해 박물관 측은 고난의 역사이자 수난의 시대였던 지난 과거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파트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박제가의 '북학의', '세계현세대지도' 등을 통해 민족이 처한 지정학적 조건과 국제관계문제가 인문학적 성찰과 검토의 대상임을 토로하고 북한에 대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이끈다.


최소한의 공리
다섯 번째 파트까지 관람을 끝내고 옆쪽으로 쭉 뻗은 별실로 향하면 박물관이 제시한 마지막 주제가 전시돼 있다.


앞선 파트가 무거운 주제를 통해 질문을 주고 받는 시간이었다면 이곳은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별실 입구에 들어서면 '개인과 사회의 행복한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중제목中) 라는 질문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


이곳에 펼쳐진 책들은 이 질문에 대한 각 작가들의 나름의 고민과 해답을 제시하는데 이들 중 유독 굴원(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인)의 시가 발목을 잡는다.


'何故深思高擧 自今放爲(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추방 했는가-어부가中)'라는 어부가 굴원을 책망하는 대목이 개인 간의 유대가 단절돼 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계속해서 별관을 거니노라면 비극과 희극, 카타르시스를 다루며 희극을 '보통 이하의 악인의 모방'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로 젊은 날을 실의에 빠져 살다가 이 후 20여 년 동안 전국토를 누비는 방랑 끝에 저술한 이중환의 '택리지', 인간을 추동하는 허영을 폭로하는 색커리의 '허영의 시장' 등이 인간으로 살면서 겪게 되는 고통과 기쁨, 슬픔을 표출하며 정치와 욕망, 죽음과 본성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은 이런 책들을 살펴보는 것과 함께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 삶을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인문학적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곳, 인문학박물관은 우리가 만들어낸 삶에 대한 통합적인 인문사회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와 인류가 이루어 온 가치와 의미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내 한복판인 종로에 위치한 이 박물관에서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듯한 계동 일대의 정취와 벚꽃과 목련이 만개한 중앙고 교정의 풍경도 즐길겸 올 봄, 당신의 메마른 감성을 인문학의 향연으로 적셔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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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만나다] 우리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리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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