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합신문=김성희 기고]
어릴 때부터 알았던 사자성어, 언행일치, 그 때는 그 뜻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청출어람, 입신양명 등 사자성어의 뜻이 다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언행일치는 왜 좋은 뜻이지? 언행일치, 말과 그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말에 사람들은 줄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린 나의 시선으로는 언행일치는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냥 말한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학원 간다고 엄마한테 말하고 학원 가고, 논다고 말하고 놀면 되는 거지, 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정도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말과 행동이 같은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압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높이 있을수록 그 정도는 더욱 커집니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잣대로 약자를 대하는 태도, 이익과 손해 앞에서의 모습, 예기치 못한 분노의 상황에서의 언행, 남이 없는 곳에서의 정직함,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 등을 나열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근본을 드러내는 가장 직관적인 잣대는 크고 작은 약속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성인들도 신뢰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공자는《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人而無信 未知其可也(인이무신 미지기가야)”, 즉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다면 그가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하(子夏)는 “大德不踰閒 小德出入可也(대덕불유한 소덕출입가야)”, 즉 “큰 덕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다면 작은 행동에는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며 인성의 큰 테두리가 바로 신의(信義)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고전이 말하는 신의의 시작점은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성실함은 타고난 의지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 순간의 절제와 작은 실천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중용(中庸)》에 등장하는 “愼其獨也(신기독야)”는 남이 보지 않고 홀로 있는 곳에서도 스스로 삼가고 경계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은 하늘과 소통하는 더욱 두려운 시간임을 고백하는 옛 성현의 깊은 성찰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말로 배우는 한자에서 본 約束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살펴보면, 約의 모습과 소리에서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오고 또 내려와 하늘을 안고 있음으로 하늘의 뜻과 같아지기 위해 마음을 맺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束의 모습과 소리에서도 묶여진 동이 안에 새로운 미래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約束은 하늘과 같은 사람들의 더 큰 생각과 결실을 위한 언행인 것입니다. 지켜도 되고 경우에 따라 쉽게 어겨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내면의 단단함은 자기 자신을 다루는 아주 사소한 생각과 태도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가장 큰 이유는 순간의 편안함에 속기 때문이다. 편안함을 포기할 때 비로소 인격의 단단함이 시작된다.”
모든 것은 자기에게서 먼저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학(大學)》에서는 내면의 정성스러움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이치를 “誠於中 形於外(성어중 형어외)”, 즉 “안에 진실함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약속 앞에서도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남과 약속할 때 쉽게 승낙하지 않으며, 한 번 입 밖으로 낸 말은 어떠한 손해나 번거로움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냅니다.
축구선수 손흥민과 그의 스승이자 부친인 손웅정 감독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와 맺은 약속’을 증명하는 삶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손웅정 감독은 손흥민 선수가 만 16세에 도달할 때까지 약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당장의 경기 출전이나 화려한 기술 습득을 경계하고, 오직 기본기 단련이라는 둘만의 약속을 묵묵히 이행했습니다.
손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 운동장 세 바퀴를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리프팅하면서 도는 훈련과 공이 단 한 번이라도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숫자를 1부터 세어야 하는 가혹한 자기 규율을 지키며 매일 정해진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성장기 이후에도 매일 양발 슈팅 500개씩, 하루 1,000개의 슛을 연습하며 양발의 감각을 익히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손웅정 감독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방울이 한 사람의 진짜 본질을 만든다"고 단언합니다. 매일의 루틴을 정직하게 지켜낸 위대한 성실함과 엄격한 정성이 있었기에, 훗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서 ‘페널티킥 없이 양발만으로 23골’을 터뜨리며 아시아인 최초 득점왕에 오르는 역사적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용》은 “至誠無息(지성무식)”, 즉 “지극한 정성은 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즉 “정성스러우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더욱 밝아지며, 밝아지면 감동을 주고, 감동을 주면 변화한다.”고 설명합니다. 참된 정성, 즉 지성(至誠)은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言而有信 行必有果(언이유신 행필유과)”, 즉 “말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어야 하고, 행동은 반드시 결실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처럼, 자신을 속이지 않는 성실함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변함없는 책임감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참된 됨됨이와 인성의 기본은 언행이 일치하는 일상의 모습에 있습니다.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말의 무게를 알기에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타인을 현혹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에게는 신독으로 엄격하되 타인의 허물에는 배려와 이해를 더 하는 사람, 이익과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신용을 증명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반복해서 하는 행동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는 말합니다. 루틴이 있는 사람은 못 이긴다고 합니다. 프로 야구 선수들의 모든 자세가 다릅니다. 그들은 남의 루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루틴을 위해 실험과 기록을 반복해서 만든다고 합니다. 내 말과 내 생각이 내 몸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자신을 자신이게 만드는 德이 아닐까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은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철환천하(轍環天下)하며 도덕 정치를 주창한 공자께서 덕과 고독의 관계를 명쾌하게 표현하여, 혼탁한 세상에서 도덕을 실천하는 자, 옳은 길을 가는 자는 외롭고 고립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며 반드시 친한 친구가 생기고, 좋은 이해자, 정다운 동반자와 협력자가 생기는 법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뢰를 지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강제력은 제도도, 규정도, 이익도아닙니다. 내 안의 생각하는 능력, 바로 스스로 반성하는 힘입니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이고, 무엇이 명예로운 일인지 알 길이 없으니, 세상은 조타수 없는 배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양심, 염치, 수치심’ 등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보물들이 담긴 상자가 바로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간적으로 살다 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 김성희
◇ SLA 어학원 원장
◇ 무등 환경단체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