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역사는 왜 늘 패배자를 탓하는가
역사를 읽다 보면 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술과 여색에 빠져 나라를 망쳤다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의 백제 의자왕,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은나라 주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방탕했기 때문에 나라가 무너졌을까?
사실 당시 모든 군주는 사냥과 연회, 술자리를 즐겼다. 그것은 권위를 과시하고 신하들과 결속을 다지는 통치 행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망한 나라의 군주만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라는 낙인이 찍혔다. 후대 사관이 새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정치적 이야기였던 셈이다. 
 
□ 폭군 대 성인 - 오래된 이분법
사마천은 진시황을 ‘정신병자 같은 군주’로 묘사했다. 김부식은 신라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의 왕들을 깎아내렸다. 진수 역시 한나라의 권위를 세우려 진나라 군주를 매도했다. 새로운 권력이 옛 권력을 비난하는 방식, 이것이 역사의 오래된 패턴이다. 
 
□ 진시황과 공자, 정통성의 싸움
이 패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분서갱유다. 진시황이 책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묻었다는 사건이다. 흔히 ‘광기의 폭군’ 이미지로 소개되지만, 그 본질은 지식인 탄압만이 아니었다.
공자와 유생들은 화하족 중심의 정통 서사를 세우려 했다. 반면 진시황은 동이족과 연결된 뿌리를 지니면서도, 자신을 화하 문명의 적자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공자가 순임금의 입을 빌려 “한나라는 야만”이라고 폄훼한 기록은 진시황에게 치명적인 도전이었다. 분서갱유는 곧 정권의 정체성과 역사적 위치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 1917년, 땅속에서 나온 반격
이 갈등을 비춰주는 증거가 1917년 중국 감숙성에서 드러났다. 진나라 선조의 제기에서 “혁사만하(虩事蠻夏)”에서 온 말이다. 즉 공자보다 앞서 100년 전에 공언한 진목공의 “혁사만하(虩事蠻夏)”를 뒤집은 말이다. 진목공이 ‘하족의 나라를 야만스러운 놈들’이라고 지목한데 대한 반발로 공자는 거꾸로 100 년 후에 나타나 진나라가 속한 이(夷) 족을 오랑캐라고 한 것이다. 그것도 이(夷) 족 출신의 순(舜) 임금이 말한 것처럼 꾸며서 완전범죄를 기도했다. 
'혁사만하(虩事蠻夏)'는 “오랑캐 하나라를(蠻夏) 두려워 떨게 하고 괴롭히라”는(虩事) 말이다. 공자가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새겨진 글자였다. 여기엔 진나라가 이미 화하 중심의 정통 서사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음이 기록돼 있다. 제기에는 12대 조상의 이름도 적혀 있는데, 동이족 시조인 소호와 연결되는 흔적이 보인다. 진나라의 기원이 화하족만의 계보가 아니라는 증거다. 
 
□ 글자 속의 갈등
흥미로운 건 ‘혁사 만하(虩事蠻夏)’라는 네 글자다. ‘만(蠻)’은 원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뜻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뱀이 덧붙으며 ‘야만’으로 굳어졌다. 반면 ‘하(夏)’는 원래 ‘여름 더위에 지쳐 앉은 사람’을 뜻했는데, 유가 지식인들이 이를 문명의 상징으로 끌어올렸다.
결국 동이와 화하의 긴장은 문자 자체에 각인됐다. 혁사 만하라는 표현은 진나라가 화하 중심 서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려 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 유물의 목소리
은허의 갑골문 발견 이전까지 중국 학자들은 하·은 시대를 전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발굴된 갑골문과 청동기 명문은 사마천의 기록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진시황을 왜곡한 서술과 달리, 유물은 진나라가 동이와 화하의 경계에서 성장한 집단이었음을 증언한다.
혁사 만하 명문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학계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불편한 증거가 우리가 역사 서술의 이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진시황은 폭군으로, 공자는 성인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히 ‘폭군 대 성인’의 구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권 정통성과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었다.
‘혁사 만화’라는 명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사관의 기록인가, 아니면 땅속 유물이 남긴 증언인가?
역사는 늘 권력에 의해 쓰인다. 하지만 글자와 유물은 권력이 지우려 한 또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제 우리는 교과서 속 정통 서사 너머, 실제로 남겨진 기록을 다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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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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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권력은 어떻게 역사를 조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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