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정예원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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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송파나루길 256, 이 곳에 우리 역사의 아픈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겐 놀이동산 등으로 익숙한 지역이며, 즐겁고 신나는 추억들이 많은 이 지역에 굴욕스러웠던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고 있다. 

 

이 곳에 위치한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는 1639년(인조17) 청나라와의 전쟁(병자호란)에서 패배하고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은 후 청의 강요에 따라 세운 공덕비이다. 

 

원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이며, 이 비문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원래 석촌호 주변에 세워졌으나, 청일전쟁 이후 고종 32년에 치욕적인 역사를 잊고자 이 비문을 강물 속에 쓰러뜨렸으나 일제 강점기때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굴욕의 역사를 각인시키고자 다시 비문을 세우게 했다고 한다. 

 

독립이후, 치욕의 역사를 잊고자 이 지역 주민들이 땅속에 삼전도비를 묻었으나 1963년 홍수로 인해 다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삼전도비를 지금의 장소에 다시 세워두었다고 한다. 

 

삼전도비를 찾아가보면 비석은 하나인데 비석 받침대가 두 개이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태종의 전승기념을 위해 비를 건립하던 중 더 큰 규모의 비석이 조성되기를 원하는 청나라 측의 변덕으로 원래 만들어진 비석 받침대는 폐기되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궤구고두례(청나라 시대에 황제를 대면할 때 취하는 인사법으로 세 번 무릎을 꿇어앉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도 치욕스러운데, 비석 받침대가 두 개인 이유를 알게 되니 더욱 서글퍼졌다. 

 

삼전도비는 그 옛날처럼 강변에 우뚝 선 랜드마크가 아니며, 555미터 높이의 롯데월드타워 아래에 있는 5.7미터 높이의 초라한 유물이다. 삼전도비에 새겨져있는 치욕의 글자들도 400년의 풍파에 시달려 거의 알아보기 어려웠다. 

 

K-pop이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고, GDP 13위(2022년 기준)에 빛나는 우리나라, 이대로 치욕의 순간은 끝난 것일까? 대한민국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미, 중, 러, 일 등의 국가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다. 

 

심심치 않게 '삼전도의 굴욕'이 신문 일면에 오르내리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 번 지나간 과거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 역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 혹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를 것이다. 굴욕의 역사가 주는 의미를 곱씹어 생각하면서, 우리의 내일을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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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기자단] 굴욕의 역사 위에서 내일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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