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9(화)
 
[교육연합신문=시론] 
지난 5월 6일 오후 4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사거리 인근 15층 건물 옥상에서 중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여자 친구 B씨에게 A씨가 수차례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A씨는 수능 만점자 출신으로 서울 소재의 명문대 의대생으로 확인됐다. A씨는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행을 시인했고, 자신이 의대생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계획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진 더욱 충격을 고 있다. 경동맥을 지나는 목 부위를 수 십 차례 찔렀고, 범행 두 시간 전 집 근처의 경기 화성의 한 대형 마트에서 흉기를 산 뒤 피해자를 범행 장소로 불러내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밤 시간도 아닌 사람들이 활동하는 오후 4시쯤에 사건이 발생한 것도 이례적인 것이다. 가해자가 수능 만점자라는 이력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아는 그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사회가 인정하는 학생이 그런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라는 사실이다. 
 
공부만 강조하고 인성·윤리 교육은 등한시한 학교 교육의 문제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이별 통보를 패배로 받아들이는 엘리트의 일그러진 추락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현재 우리의 교육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해야 한다. 경쟁교육에 목매어 치달려온 우리 교육의 폐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끼었다. 이제부터 전 근대적 교육 방법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략에서는 승리하고 전쟁에서는 지는 우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일들이 생긴 근본적인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이런 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바로 일제 식민지 교육에서부터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이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은 우리 국민에서 총,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우리 민족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 식민교육은 인문학이 완벽히 배제된 보통학교교육, 즉 우민화 교육이었다.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키고 역사를 바꾼 원동력인 인문학적 대화와 치열한 사색, 위대한 깨달음은 찾아볼 수 없다. 나와 너와 우리가 하나 되어 공동체를 위대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교육 또한 찾기 힘들게 되었다. 죽은 지식의 강제적 주입, 맹목적 암기, 기계적 문제 풀이, 친구와의 무의미한 무한 경쟁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혼이 병들고 마음이 파괴되었다. 요즘 인성교육의 문제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행하고 나약하고 소극적인 20대가 되어 사회에 나온다. 광복 이후 지난 70여 년 가까이 우리 교육을 지배한 이 사악한 교육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을 길러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학생들은 살인적인 취업 경쟁에 내몰려 스펙에 목을 매고 회사에 취업하고 얼마되지 않아 회사에서 쫓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교육은 이렇게 정리된다. 일제의 식민교육, 공장 노동자와 직업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계된 미국 공립학교 교육, 친일파의 우민화 교육, 군사정권의 독재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교육 이론을 따지지 않아도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하는 동요 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의 인생이 꼬일대로 꼬여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당신의 생각 구조, 즉 두뇌 회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경쟁교육에서 협동교육으로 구조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지식 정보화 시대, chat GPT 시대다. 이제 T.S 엘리엇이 말한 지혜보다 상위의 것인 ‘생동하는 생명, 기쁨, 즐거움, 감동에 찬 삶’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정보의 바다에 떠다니는 수많은 지식을 어떻게 조합, 가공, 응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 하는 방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지식의 소비자에서 지식의 창조자로 탈바꿈해야 한다. 각 교과과정 속에 인성교육을 넣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임시방편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공장 같은 학교 교육으로 만들 수 없는 원형-순환적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학교는 이제 순종교배의 순수함을 보전하려는 엘리트주의가 아니라, 잡종 교배의 다양함과 풋풋함이 넘쳐나는 새로운 실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 21세기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문턱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교육이 필요하다. 진정한 공부는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상에 대하여 남다른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로 시비를 걸면서 의문을 던지고 구체적 질문으로 만들어 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독서교육이 필요하다. 그냥 독서가 아니라 체계적인 고전 읽기를 해야 한다. 인문 고전 특히 문학 작품 속에는 인간의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 방법이 비유와 상징으로 제시되어 있다. 고전을 읽으면 사회생활을 해 나갈 때 부딪히는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자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준다.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넘쳐나게 한다. 자존감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기를 수 있다. 자신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생각 주간’은 좋은 성찰의 시간이다.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할 경우, 그 여자 친구를 해칠 생각을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에 대해 반성했어야 했다. 내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가 하면서 자기 성찰을 먼저 했어야 한다. 그런 일을 고전 읽기가 해 준다는 것이다. 카프카는 독서를 ‘고정관념으로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다’라고 정의했다. 즉 독서는 도끼다. 새로움이란 기존의 한계를 깨부수고 거기에 다시 뭔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언어로 만든다. 그러므로 사물은 언어다.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개념은 사고를 만든다. 언어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생각할 수 있다는 증거다. 어떻게 하면 언어를 많이 알 수 있을까? 바로 독서다. 매일 꾸준히 고전 읽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 얇은 층이 겹겹이 쌓이고 그것이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한다. 왜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세상을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게 해 준다. 대개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무슨 문제에 부딪히면 마치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마냥 어쩌지 못하고 떠들어댄다. 매사를 침소봉대한다. 
 
교육의 길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길이다. 이제 교육은 안전한 위험이다. 기존의 장기형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즐비하다.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바둑형 교육이 되어야 한다. 장기형 교육은 이미 나 있는 길을 그저 걸어가면 되었다. 부모가 선배가 가르쳐 주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4차 산업시대, 모든 시스템이 바뀌고 있다. 교육도 변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교육이 바로 바둑형 교육이다.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여 장애물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제 그저 나 있는 길은 사라졌다. 그때그때 변화에 맞게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안전한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나 선배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모른다. 교육을 받으면 안전하지만, 이제 그 길이 없어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험하다. 장기형 교육을 통한 지식의 소비자는 이제 안전한 위험을 걷는 자이고, 바둑형 교육으로 새로운 지식의 창조자가 된 이는 안전한 위험을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제로섬게임인 경쟁교육에서 서로 협동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협력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법리로 해결하면 되고, 정치가들은 시급히 데이트 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교육의 문제, 즉 경쟁과 욕망의 충족에 교육의 목표가 있는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교육은 안전한 위험이고, 최후의 보루다. 이제 교육의 목표는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앞에서 제시한 생동하는 기쁨, 생명, 즐거움, 감동에 찬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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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교육은 안전한 위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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