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3(목)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 ‘한자’라는 이름의 기원, 그리고 잊힌 흔적들
우리는 흔히 문자를 ‘한자(漢字)’라고 부른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쓰던 글자를 결코 ‘한자’라 부르지 않았다. ‘한(漢)’이라는 이름은 훗날 한나라가 들어선 뒤에야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시황이 소전으로 문자를 통일했을 때조차 그런 명칭은 없었다.
‘한자’라는 말이 굳어진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원나라 시기 몽골 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가나와 구분하려 ‘漢字’를 적극 사용하면서 널리 퍼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도 1920년대 이후, 식민지 교육 과정에서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 사람들은 문자를 뭐라고 불렀을까? 조선과 고려, 삼국, 더 멀리 은·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서계(書契)’, ‘문자(文字)’, 혹은 ‘진서(秦書)’라 불렀다. ‘한자’라는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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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文)’ - 무늬에서 학문으로
‘문(文)’은 흔히 ‘무늬’나 ‘문신’을 뜻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갑골문을 보면 원형은 조금 다르다. 가축 암컷의 발정 상태를 표현한 흔적과 닮았다. 발정 → 색 변화 → 무늬. 이 과정을 상징하면서 ‘문(文)’은 ‘표식’, ‘무늬’를 뜻했고, 나중에는 ‘글’과 ‘학문’으로 확장됐다.
글자가 처음부터 지적 상징이었던 게 아니라, 몸과 생활의 흔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그림 9] 참조) 
 
□ ‘자(字)’ - 집에서 아이를 낳다
‘자’는 갑골문에는 없고, 금문에 와서야 등장한다. 모양은 ‘집(宀)’과 ‘아이(子)’의 결합이다. 원래 뜻은 ‘집에서 아이를 낳다’였다. 여기서 파생해 ‘아이를 낳는다 → 문장을 낳는다 → 글자를 낳는다’로 발전했다.
즉 ‘글자’라는 개념 자체가 주나라와 진나라 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정착된 셈이다.([그림 9] 참조) 
 
□ ‘서(書)’ - 점괘를 적던 손길
‘서’는 오늘날 ‘쓰다’, ‘책’을 뜻한다. 하지만 은나라 시절에는 아직 붓도, 벼루도 없었다. 갑골문 속 ‘서’는 손, 나뭇가지, 먹물, 입의 조합이다. 점을 치고 나온 괘를 나뭇가지나 먹물로 기록하는 행위를 표현했다.
즉 본래 의미는 ‘점괘를 기록하다’였다. 훗날 붓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글을 쓰다’라는 뜻을 덧입게 된 것이다. 글쓰기가 처음에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점술과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림 9] 참조) 
 
□ ‘계(契)’ - 약속의 흔적
‘계’는 지금도 ‘계약’의 뜻으로 쓰인다. 갑골문을 보면 칼과 나무·뼈를 새긴 표시가 그려져 있다. 동이족은 약속을 맺을 때 나무나 뼈 조각을 쪼개 나누었는데, 두 조각이 맞아야 약속이 확인됐다. 여기서 ‘약속하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소전에 이르러 ‘팔 벌린 사람(大)’이 추가되면서, ‘성인 앞에서 맺는 약속’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주역의 “옛날에는 매듭으로 다스리다가 서계로 발전했다”는 구절도 이 맥락과 이어진다.([그림 9] 참조)

□ 문자 속에 남은 동이의 기억
이 네 글자의 기원을 모아보면 공통점이 뚜렷하다. 모두 생활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발정기의 징표, 아이를 낳는 장면, 점괘를 기록하던 손길, 나무를 쪼개 나누던 약속. 그리고 이 문화적 배경은 은나라를 비롯한 동이계 전통과 깊게 연결돼 있다.
즉, 갑골문은 단순히 중국 한족의 창작물이 아니라, 동이계 문화권 속에서 태어나 공유된 문자 체계였다.

□ 이름 하나가 바꾸는 역사 인식
오늘날 우리는 ‘한자’를 당연히 중국 문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명칭은 20세기 이후에야 굳어진 것이다. 만약 지금도 ‘서계’라고 불렀다면, 글자를 한족만의 유산으로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자란 생활의 언어에서 태어나 권력에 의해 통일되고, 후대의 이름 붙이기 속에서 재구성된다. ‘문·자·서·계’라는 글자들은 생활의 흔적이자 동이와 화하가 함께 남긴 기억이다.

□ 마무리
문자 기원을 더듬어 보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과 정치, 민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한자=중국 문자’라는 등식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역사는 언제나 이름 붙이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갑골문과 금문 속 글자들은 묵묵히 다른 목소리를 전한다. 문자란 권력의 기록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롯된 흔적이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동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한층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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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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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字·東夷·韓民族 이야기] 글자는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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