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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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이란 능동적인 선택에서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도 허전함이 가득하다. 왜 허전한가. 자신의 뚜렷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을 오랜 기간 동안 다녔지만 공갈빵처럼 내면이 허전하다. B.S.라즈니쉬의 『잠에서 깨어나라』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이 결정해 주는 것을 받아 그대로 살아온 나를 발견했다. 수동적으로 사는 곳에 나는 없었다. 의심 없이 여러 매체에서 제공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길은 편하고 쉽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따라하다 보면 뿌듯함이란 없다. 그러한 일들은 결과가 잘못되어도 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책임도 회피하고 주인의식도 없다. 주인의식이 없으니 당연히 삶의 의미도 발견하기 어렵다. 삶의 의미를 잘 모르니 허전한 것이다. 
 
골치 아픈 선택보다는 방임하면서 관망하는 것이 살기 편하다. 스스로 고민하여 선택하거나 결정하기보다는 알고리즘에서 보여주는 것을 선택한다. 쉽게 얻는 뉴스 정보를 믿고 플랫폼 업체가 맨 위에 제공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선택하기 보다는 스스로 선택 당한다. 던져 주는 것을 받아먹고 쉽게 판단한다. 타인이 제공하는 많은 것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주체성이나 올바른 판단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없다. 
 
우리는 주입식으로 지식을 제공하는 단방향 교육을 효율적으로 해 왔다. 정답이 있는 오지선다형 교육과 받아서 그대로 옮기는 복사기 교육으로 경쟁을 조장해 왔다. 질문하고 소통하고 정답이 없는 문제에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협력하는 교육은 외면해 왔다. 비판적 토론이나 합리적 토의는 제외했다. 아직도 암기, 지식, 받아 적기, 선다형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1초 안에 하는 일에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질문이 없는 교육은 한국교육의 단면이다. 선진국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질문이나 선택을 한다는 것은 능동성을 전제로 한다. 선택에는 위험과 책임이 따른다. 대중은 쉬운 방법을 택한다. 선택을 하지 않거나 언론 매체나 타인이 주는 달콤한 먹이를 덥석 물어 머리에 넣는다. 작은 일에도 선택을 미룬다. 
 
진정한 나로 설 수 있는 것은 능동적 선택에서 시작한다. 남이 결정하고 남이 선택해 주면 진정한 나는 찾을 수 없다. 결정이나 선택은 존재의 외로움과 실수에 대한 공포와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준다.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스스로 결정을 할 수도 없고 책임도 가질 수 없게 하는 현재의 교육은 무책임한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참여를 통한 능동적 선택을 하지 않고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시민이 많아지면 한국의 미래사회는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시작이다. 
 
틀에서 찍어주는 대로 나오는 붕어빵에서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나를 찾을 수 없다. 주체적인 나를 찾을 수 없다면 보람이나 진정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육성하려면 작은 것부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를 교육현장에서 길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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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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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수동적으로 살면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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