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교육연합신문=임오숙 기고]

TV프로그램 ‘다큐 3일’에서 86세의 할머니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라는 PD의 말에 주저 없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무슨 공부를 하고 싶으냐는 말에 진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때’를 놓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태평양 전쟁, 6. 25 사변, 제주 4. 3 폭동 등으로 공부할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농산물도 제 값을 받으려면 때를 맞춰 키워야 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새벽 일찍부터 산지를 찾아 트럭을 몰고 다니며, 사온 상품을 가장 긴급하게 찾는 소비자를 만나는 때를 맞춘다. 이처럼 때를 맞추는 것은 잘 사는 방법의 하나이며, 세상살이도 때를 따라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뜨면 어제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지만 어제의 하루가 아니다. 그 하루도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고, 낮에는 무엇을 하며, 저녁을 어떻게 맞느냐에 따라 다르게 되는 것이다. 來日의 ‘來(올 래)’는 봄에 때 맞춰 씨앗을 뿌리고, 정성으로 가꾸면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얻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來日이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때에 맞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맞이하는 새로운 날이라는 깊은 속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때에 맞춰서 말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해가 뜨고 지면서 아침, 낮, 저녁이 모여 하루가 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여 사계절이 만들어지며,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쌓여 인생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때’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에 따라 한 사람의 희노애락이 영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나를 보면서 어른들은 얼마나 조급했을까? 선생님 또한 그렇게 놀기만 하면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진 않으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옳은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보면 아이들이 요구하고 학부모가 바라는 대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때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려주고, 하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 또는 선생님들이 할 일일 것이다. 매일 치킨을 먹고 싶다는 자녀에게 늘 사주는 부모가 현명한 부모일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녀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맛있는 반찬에만 손이 가는 어린 자녀에게 계속 먹게 하는 부모의 행동은 과연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한 것일까?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교육을 긍정적으로 여기며 유대인 관련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대인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자녀가 한 가지 반찬만 계속 먹으면 그 반찬은 밥상 아래로 내려놓고 다른 반찬을 다 먹으면 내놓는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에만 매달리는 아이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아이가 바라는 것이니까 그대로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이 어른다운 행동일까? 그리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쉬운 일만 하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든 사달라고 하는 자녀들에게 아이의 요구니까 무조건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우리말의 바탕이 한자와 한자어이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부모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과연 이것이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들이 ‘국어 낱말 풀이’ 학원을 찾는 것을 보면 초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제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사람은 때를 따라 움직일 때 행복한 삶에 이를 수 있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고, 쉴 때 쉬며,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일할 때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았을 때 후회가 많은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 ‘공부’이다. 사람을 보고 ‘철이 들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때’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節不知(철부지)’라고 한다.

 

우리 황하문명권에서는 ‘때’를 가장 강조했던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때를 놓치면 농사도 지을 수도 없고, 한 사람의 인생도 행복하게 마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때를 한자로는 ‘時(때 시)’라고 한다. 時는 日(날 일)과 寺(관청 시)’로 파자할 수 있다. 그래서 관청(寺)에서는 백성들에게 日(때)를 알려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새해는 책력, 즉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처럼 때를 아는 것으로 시작해서 때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이치를 깨닫는 최고의 ‘工夫’이다.

 

대졸자의 文解力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OECD 22개 국가 중 꼴찌를 하였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은 한자 교육을 중시하여 창의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글은 한글의 바탕인 한자와 한자어 교육이 함께 이루어 질 때 위대해질 수 있다.

 

지금처럼 훈과 음만을 외우는 암기식 한자 공부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파자를 통해 뜻글자 본래의 의미를 알아가며 암기식이 아니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깨우쳐서 지금이라도 한자 공부를 바르게 시작해야 하는 ‘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지금이라는 ‘때’를 놓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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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때’를 알아야 - 임오숙 화순도곡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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