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교육연합신문=조만철 기자]

정영자(74세) 씨는 전북 고창에서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6.25사변이 나던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전쟁이 나면서 학교를 못 나간 것이 끝내 배움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섯 명의 동생들 공부하는 어깨 너머로 익힌 한글로 평생을 살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삶의 의욕을 잃고 살던 중 며느리 소개로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프로그램’에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문해반 졸업을 하면서는 중학교에 입학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나이에 중학교에 가면 뭐할까. 하지만 곁에 있는 문해반에서 한글공부 10년 했다는 사람도 나와 별다를 게 없었다. 해마다 같은 글자 같은 내용만을 반복할 뿐 새로운 것이 없었다.

 

중학교는 영자 씨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세계였다. 73세 중학교 1학년.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의 차를 타고 목포제일정보중학교에 도착하면 아직 교문도 열지 않은 상태이다. 학교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운동하다가 문이 열리면 1등으로 등교하여 공부할 준비를 한다.

 

국어 영어 사회 컴퓨터 한문 등의 과목을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알아듣는 것은 알아듣고 모르는 것은 모르고. 공부 욕심부리지 않으니 학교생활이 즐겁다. 이 나이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오후에는 문인화 동아리에 들어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수묵화에 푹 빠지기도 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1년은 컴퓨터가 무서워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도 한 번 도전해보자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금 겁도 났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ㄱ 을 누르면 ㄱ 이 나오고, ㄴ을 누르면 ㄴ이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누르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져서 쓰고 싶은 글을 쓸 수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손녀에게 컴퓨터 좀 가르쳐주라고 했더니 
“할머니 자판 연습이나 더 하세요.” 한다.

 

“그래, 오냐오냐. 내 강아지.”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오면 숙제도 하고 책도 보고 바쁘다. 시간 참 잘 간다. 학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긴 시간을 어찌 TV만 보고 앉아있었을까. 밤에도 잠이 안 올 때는 벌떡 일어나 한자를 한 자씩 써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이 온다. 매일 밤 꿀잠이다.


새해, 75세에는 꿈 많은 여고생이 된다. 영자 씨는 공부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목욕탕 월권 끊어서 매일 목욕만 다니면 뭐해? 그리고 노인당에서 십 원짜리 화투치면 뭐한당가? ”

 

한 자씩 배우는 기쁨 속에 74세 중학교 3학년 영자 씨는 오늘도 즐겁다. 영자 씨에게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한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2019학년도 신입생을 선착순으로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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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74세, 나는 중학교 3학년, 운이 좋아 두 세상을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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