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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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는 사기(史記)에 나온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은 후 간신 조고는  시황제의 유서를 날조한다. 어리석은 호해를 황제로 만들고 나서 정적을 제거했다. 결국 환관 조고는 모든 권력을 잡고 승상이 되지만 황제까지 욕심낸다. 하지만 충직한 신하들이 반대할까봐 두려웠다. 조고는 신하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호해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말입니다.” 황제가 말했다.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는구려.” 조고가 대신에게 묻자 어떤 사람은 말이라고 하며 조고의 뜻에 영합했다. 어떤 사람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는데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이런 저런 혐의로 모두 처형했다. 

 

누가 보아도 사슴인 것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는 암흑과 불의의 시대이다. 명백하게 잘못인 줄을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도 적지 않다. 조직의 불법을 보고 용기를 내서 내부고발을 하지 못하는 조직은 뿌리부터 썩어가는 조직이다. 학교를 비롯한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에는 불의한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이 자리를 보존하고 현명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작은 잘못된 관행들이 결국은 숨쉬기조차 힘든 교육환경을 만든다. 

 

임용시험 면접시험과 취업 입사시험이 한참일 때이다.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수험생 입장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회사에서 원하는 대답과 정답에 가까운 대답만 하려는 젊은이에게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모두가 조력자다운 교사가 되겠다고 하지 엄격하고 원칙적인 교사가 되겠다고 하지 않는다. 학교 현장 현실은 엄격하고 책임감 강한 교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수험생을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조직에서 원하는 것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을 만점으로 삼는 면접은 올바른 면접이 아니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이성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는 세상이다. 명백하게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숙맥이다. 숙맥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콩과 보리뿐이겠는가. 이성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고 있다.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사슴이 아니라 말이 틀림없다는 근거를 들어 아부를 한다. 숙(寂)과 맥(麥)을 분별해야 할 언론과 권력기관은 오히려 가짜와 비정상을 부추긴다. 콩과 보리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이 세상의 대부분이 된다면 세상에 희망은 없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정의로운 시민들이 만들어 간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도록 교육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조고처럼 자기편인가를 시험하는 평가를 하고 시민들이 말도 못하는 숙맥들이 된다면 민주주의 수레바퀴는 멈추게 된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는 비참한 시대이다. 결국 조고를 따르던 숙맥의 사람들만 남았던 진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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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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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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