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교육연합신문=손경희 기고] 
수년 전 겨울, 대림미술관 ‘Paper Present, 너를 위한 선물’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의 작품 ‘멈춰진 시간을 깨우는 바람’이 꽤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색, 향기, 빛의 요소에 그림자, 움직임 등을 더해 공감각적인 감성을 담아낸 작품 앞에 멈춰 한참을 살펴보았다. 가벼운 종이로 만든 꽃송이는 간결했고, 눈송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의 재료는 일본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된 기후현의 전통 종이 ‘혼미노시’이다. 전 과정을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얇고 은은한 전통 종이. 그리고 항공사 잡지에서 만난 동화 같은 마을, 기후현 시라카와고! 순백 속에 빛나던 겨울 왕국을 보고, 결국 나고야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포맷변환]1.jpg
아틀리에 오이 ‘멈춰진 시간을 깨우는 바람’

메이테츠 버스센터에서 쇼류도 고속패스를 이용, 북쪽으로 달리다 기후현을 지날 때부터 눈이 쌓인 산지가 보인다. 히다지방의 시라카와고는 3시간 걸려 도착할 만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96%가 숲으로 덮여 있고, 해발고도는 500m 정도이며 세계적으로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평균 강설량은 10미터 정도이지만, 2006년 최대 적설량은 29.7cm로 3M에서 3cm 부족한 높이를 기록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내려다보니 지붕 위 소복이 쌓인 눈들, 하얀 마을 하얀 세상이다. 마을을 흐르는 쇼가와의 푸른 강물이 w자모양으로 돌아 흐른다. 그래서 이름이 시라카와고, 우리말로 하얀 강의 고향이다. 

[포맷변환]1.jpg
시라카와고의 설경

정류장에서 가나자와행 버스를 예약해 놓고 마을 중앙로를 따라 걸어가는데 길이 미끄럽다. 폭설에 대비해 지붕에 눈이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하는 갓쇼즈쿠리 지붕을 올려 지었다. 갓쇼(合掌)는 우리말로 합장,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으는 모습으로, 억새를 이어 만든 지붕의 모양을 말한다. 우리나라 맞배지붕과 유사한 형태로 지붕의 경사가 가파르고, 책을 엎어 놓은 듯 독특하다. 못이나 금속 재료 없이 주변의 짚과 나무, 억새를 말려 촘촘하게 엮었다. 처마 아래 길게 매달린 두툼하고 묵직한 갈색 고드름, 위험하기도 하여 주의 표지판이 붙어있고, 곳곳에 눈을 치우는 도구들이 달려 있다. 아래층은 일하거나 농기구 등을 보관하고, 주요 생활공간은 이층이다. 한여름에도 1층 전통 화로에서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운 후 윗부분까지 곰팡이와 습기를 없애주는 시스템이다. 

 

가장 크고 낡은 ‘와다케저택’은 현재 주거로 사용되지만, 일부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간다가’는 곡물 건조장과 비단 만드는데 사용된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화재와 역병에 대비하여 불복신을 모시고 평안한 생활을 기도하기 위해 건립한 오기마치아키하 신사와 그 옆에 이어진 107M 데아이바시를 건너는 동안 만나게 되는 쇼가와 강의 겨울 풍경도 아주 좋다. 근처 ‘민가엔’은 폐가들을 모아 민속박물관으로 재건, 옛 생활방식을 재현하고 있다. 

[포맷변환]1.jpg
쇼가와강과 데아이바시
[포맷변환]1.jpg
사라카와고 민가엔

갓쇼즈쿠리 지붕의 유지 비용이 비싸고, 많은 인부가 필요하다 보니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현대식 지붕으로 개조한 집도 있다. 현재는 마을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에 따라 보존되고 있다. 지붕을 손보려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와야 하는 협동의 구조가 얽혀있는  마을이다. 주변 개발에 흔들리지 않고 약 1,600명의 주민들이 협의하고 토론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합장하는 모양의 전통 가옥을 보존하자는 친환경 재개발 정책이 성공했다. 지역 재개발의 모범 사례를 보인 곳이다. 전통이 상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민들의 지혜가 모인 결과이다. 

 

마을에서 판매하는 짭짤한 당고와 크로켓으로 허기를 채우고, 눈 덮인 시라카와고 마그네틱 기념품 2점을 샀다. 마을 곳곳을 둘러보고 길이 미끄러워 셔틀버스를 타고 천수각 전망대에 올라갔다. 비용은 200엔, 버스는 강줄기를 따라 우측으로 빙 돌아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시로야마 천수각 전망대에 도착했다. 대만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동남아 국가는 눈을 볼 수 없는 기후 환경이다 보니, 겨울 자체가 상품이 된다. 우리도 강원도 스키장들 외 너와집 등 전통을 만나볼 수 있는 자원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포맷변환]1.jpg
전망대에서 본 시라카와고 전경

마을 뒷산 사토야마 아래 쇼가와 강과 나란히 이어진 도로를 따라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흑백  사진처럼 보이는 그 속에 셔틀 기다리는 사람들,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으로 보였다. 나를 이곳으로 끌어당긴 바로 그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하,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다. 

 

합장하는 두 손의 모양의 지붕을 바라보는 이 곳 이름이 왜 하얀 천수각 전망대인지 겨울에 올라와 봐야 알 수 있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마을의 집들이 모두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어 바람을 덜 맞고 지붕에 빛이 잘 들어오는 마을, 시라카와고. 기후와 지형이 만들어 놓은 전통을 지켜낸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이 바로 멈춰진 시간을 깨우는 바람이었다.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고민하며 이루어 가는 이 곳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이다. 결국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그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정답을 찾아가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손경희.jpg

▣ 손경희

◇ 인천 아라고등학교 교장

◇ 前인천 작전여고, 인천 청라고 교감

◇ 前인천광역시교육청 정책기획조정관

◇ 前인천서부교육지원청 장학사

전체댓글 0

  • 9741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맛있는 여행] 일본 소도시 기행-동화 속 겨울왕국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