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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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한 대사나 웃긴 장면은 없었다.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은 1979년 하나회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다. 아들이 꼭 한 번 보라고 해서 아내와 같이 보았다. 영화는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9시간의 상황을 그려냈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내밀한 부분을 알 수 없었기에 보는 내내 긴박함을 느꼈다. 영화는 끝부분에서 성공한 신군부 사진을 올렸다. 정권 찬탈이후 국가주요직책을 맡았던 이름들이 보였다. 분노와 수치스러움. 그 감정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분노와 수치스러운 감정은 지속되었다. 

 

신군부 세력은 승승장구했고 맞섰던 이들은 비참했다. 그들은 정권을 잡은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원 관변단체 회장을 했다. 극중 오국상 국방부장관은 가족과 함께 피신, 우유부단, 유혈충돌을 피하려는 무장해제 지시로 공분을 자아냈다.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말년에 이사장, 회장, 총재의 직함을 달고 살다가 93살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은 서빙고분실에서 45일 간 고초를 겪었다. 아들은 할아버지 무덤 옆에서 자살을 했다. 

 

2030 세대 관객이 절반을 넘었다. 전두환은 추징금을 내지 않았고 광주 학살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추종자들에도 반성한 인물은 없다. 장태완(극중 이태신)의 저항은 외롭고 비장했다. 2030 세대는 공정을 부르짖은 세대이다.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는 영화평 후기를 보았다.  1979년을 지나 1980년 봄은 광주의 비극이 있었다. 근현대사의 12.12 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광주의 많은 죽음, 역사적 퇴행은 그 시작이었다. 

 

불의는 어디 시대에나 있다. 콩고물을 위해 국민을 배신한 측근과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군장성과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현실론을 언급하며 현실과 타협하라고 한다. 자기 이익을 생각하며 현실을 합리화하려는 자들은 고려 몽고항쟁, 일제 식민지하, 혼란한 광복 시기, 독재의 시대에도 있었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챙기려는 이들. 그들이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막은 자들이다. 전두광보다도 추종자와 국방장관이 너무 미웠다. 한 사람의 힘으로 불의의 시대가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조직 확대, 지역구에 나라 예산 퍼주기, 무고한 흑색선전이 아직도 정치에 있다. 콩고물을 바라고 침묵으로 동조하거나 곡학아세하는 지식인, 지역 이기주의자의 태도에 분노가 일어난다. 그들은 현실을 들먹이며 불의와 일시적 타협을 하라고 한다. 영화처럼 결국은 이기주의로 시기와 대의를 망치게 된다. 불의와 하는 타협은 명백한 불의이다. 전두광(배우 황정민 역)은 말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법은 입을 닫고 있다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 형을 확정 판결했다. 내란 목적 살인자들은 불과 8개월 후인 1997년 12월 21일 국민화합과 경제난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정의보다는 돈, 인성보다는 성공, 과정보다는 결과, 성공하면 모든 것을 용인하는 세상을 가르친 존재는 누구일까. 만약 그 존재가 교육이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부끄러운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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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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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떠오른 분노와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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