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교육연합신문=육우균 칼럼] 

우리는 종종 도덕적인 가치와 선량한 행동이 어떻게 인생의 핵심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탐구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자기 극복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학작품과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 

 

「대상전」에 뢰천대장괘를 보면 ‘하늘 위에 우레가 치는 모습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삶의 태도에 있어, 예가 아니면 밟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뢰천대장(雷川大壯)’의 ‘대장(大壯)’은 ‘크게 성대하다’는 의미다. 크게 성대하려면 자기를 이기는 자여야 한다. 자기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를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는 삶의 질서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예는 가장 보편적인 항상된 가치관이다. 공자도 『주역』의 뢰천대장괘를 인용하여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마라”고 했다. 

 

예를 실천하며 자기를 이기는 자가 크게 성대해진다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이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교과서에도 인용되었던 작품이다.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인 상인,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인 군인,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인 정치인, 그리고 시인은 인간의 높은 정신을 찬양하고 노래한 사람이다.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어떻게 큰 바위 얼굴이 되었나? 큰 바위 얼굴을 묘사하면 장엄하고 인자하며 늘 웃고 있는 모습이다. 어니스트는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가 하루 살아있음으로 해서 세상이 그만큼 더 좋아지고 사랑스럽게 되도록 하는 인물이다. 즉 큰 바위 얼굴은 ‘사랑’이다. 사랑은 물질과 정신을 조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이 사랑 때문에 이 세상이 만들어졌고, 이 우주가 아름다운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큰 바위 얼굴』은 1850년에 출판된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단편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도덕적 위대함이라는 주제와 외모보다 내면의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주제를 탐구한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이기는 자가 성대해진다'라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기본 개념과 일치한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큰 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위인의 얼굴을 닮은 거대한 암석 아래 계곡에 살고 있다. 어렸을 때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유명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 도덕적, 영적 위대함을 구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자라며 고결한 삶을 영위하며 그의 친절, 지혜, 성실함으로 유명해진다. 언젠가는 정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 다른 사람의 위대함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큰 바위 얼굴로 표현되는 이상에 대한 어니스트의 헌신은 그의 성격을 형성하고 그의 행동을 인도하여 그를 지역 사회에서 사랑받는 인물로 만든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덕적 탁월함을 추구하며 내면의 위대함을 계발함으로써 스스로 위대해질 수 있다. 결국 큰 바위 얼굴과 비슷해진다. 

 

이야기에서 어니스트는 도덕적 위대함을 보여주는 인물로 제시된다. 도전과 의심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큰 바위 얼굴로 대표되는 이상에 부응하기 위한 그의 헌신에 변함이 없다. 그는 유덕한 생활을 하며 친절과 지혜와 성실을 보여주며 삶을 살아간다. 

 

어니스트의 자기 극복 여정은 개인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자신의 한계, 의심, 유혹을 극복함으로써 어니스트는 품성이 관대해진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고양시키는 내적 자질을 배양한다. 예를 들어, 어니스트는 물질적 부와 권력으로 알려진 인물인 개더골드가 계곡에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부러움이나 자기 의심으로 힘든 내적 경험을 한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도덕적 발전의 길에 집중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어니스트의 내적 변화가 계곡 사람들에게 분명해진다. 그들은 어니스트의 진정한 선하심과 어니스트가 그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식한다.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연민과 정직의 가치를 포용하는 어니스트의 능력은 궁극적으로 그를 그들의 눈에 훌륭한 인물로 만든다. 

 

자기 극복을 통한 도덕적 위대함을 향한 어니스트의 여정에서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나-되기’를 보게 된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어니스트의 인생은 ‘큰 바위 얼굴 – 되기’였다. 이제부터는 뢰천대장괘의 효사와 관련지어 ‘나-되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어린 아이들은 뛴다. 어떤 의미도 목표도 없이 그냥 뛴다. 그만큼 양의 기운이 충만하다. 필자도 어린 시절은 그냥 뛰어다닌 추억밖에 없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과 호흡하고 자연과 일체가 된 삶이었다. 한마디로 자연인이었다. 한 마리 어린 양이었다. 

 

그러다 초등 3학년 쯤 되었을까. 차츰 지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길 무렵이었다. 『그림 없는 그림책』 이라는 책을 친구가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림형제의 동화였던 것 같다. 그림 없는 그림책?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림이 없는데 그림책이라고? 호기심이 생겨 친구에게 그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매일 산과 들만 바라보던 필자에게 그 책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촉발된 지식 쌓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교문 앞에서 책 장수가 『수수께끼 책』을 팔고 있었다. 나도 그 책을 갖고 싶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거절당했다. 필자는 울면서 학교에 갔다. 고갯마루를 오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꼬깃꼬깃한 오백환 짜리 지폐를 내 손에 쥐어 주시면서 “그 책 꼭 사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라고 어머니의 뒷모습은 보지도 않고 학교로 뛰어갔다. 달렸다. 목적이 있어서 뛴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뛰면서 생각했다. ‘그 책이 다 팔렸으면 어떡하지’, ‘그 책 장수가 벌써 가버렸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더 빨리 뛰었다. 다행히 학교 앞 교문에는 아직도 책 장수가 있었고, 책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책을 샀다. 그리고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밤새워 그 책을 읽었다. 재미있었다. 음악, 미술, 지리, 사회, 경제, 역사 등 지식의 총체였다. 그 책을 세 네 번 읽었다. 집 안에 내가 읽을 수 있었던 책은 교과서 빼고 그것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나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 책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에게 보여주며 “뭐든 물어봐”하며 은근히 자랑했다. 시골 아이들은 나한테 ‘척척박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어린 시절 그것이 각인되어 그 후로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키도 작고 힘도 세지 못해서 사춘기 때는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각종 사회, 역사, 철학 서적까지 독파했다. 물론 학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93의 효사 ‘그러나 군자라면 그러한 장성한 기운을 쓰지 않고 자기를 이기는 데로 그 강한 기운을 돌린다’처럼 그렇게 사춘기와 대학시절을 보냈다. 

 

사회의 초년병이 되었을 때 95의 효사처럼 ‘숫양을 잃어버렸다. 나에게 숫양은 책이다. 그동안 사 모은 책들을 학교에 기증해 버렸다. 지금도 동인천고, 강화고에 가면 내 필체가 묻어있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기증하면서도 매우 아쉬웠다. 특히 볼음도라는 섬의 분교로 발령받아 갔을 때는 그 아쉬움이 더욱 컸다. 분교의 아이들은 3명.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책이 무척 필요한 때였으리라. 내가 강화고 도서관에 기증한 책들, 배에 싣고 오기가 귀찮아서 기증해버린 그 책들이 이곳 분교의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책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95 효사처럼 ‘오히려 후련하다. 후회할 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섬 아이들에게 내가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죄스러움이 후회로 남는다. 상6의 효사처럼 ‘운명을 거스르지 말고’ 살아야겠다. ‘글과 나’의 관계는 거의 운명처럼 얽혀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운명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두드리지 마라. 운명처럼 그렇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내 운명의 실타래는 각성을 통해 그렇게 짜여지고 있었다. 

 

자기 극복을 통한 도덕적 위대함을 향한 『큰 바위 얼굴』의 어니스트처럼,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나-되기’를 훈련하며 성숙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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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우균

◇ 교육연합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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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균의 周易산책] 자기 극복을 통한 도덕적 위대함(뢰천대장)-'큰 바위 얼굴' 되기와 나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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