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교육연합신문=김홍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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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한 폭격이 계속 되고 있다. 하마스의 무모한 도발과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피의 복수에 대한 찬반이 분분하다. 전쟁에는 적만이 있다. 적은 제거해야 하는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상대도 똑같이 부모와 자식이 있고 먹고 자는 느끼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감정은 거세된다. 이 전쟁도 다른 전쟁과 같이 증오심이 후손에게 대대로 전달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남북 간 왕래나 통일은 더 빨라졌을 것이다. 한국전쟁도 아들과 손자들까지 증오를 남겼다. 70년이 넘도록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고향조차 방문하지 못한다는 상황은 그 어떤 영화보다 비극적이다. 한국전쟁은 극단적인 이념주의와 분단의 후유증을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 깊게 새겨 놓고 있다. 
 
사적으로 계속 괴롭힘을 당한 한 명이 먼저 한 대 때렸고 맞은 상대방이 그 상대를 묵사발로 만든다면 모두 형사처벌을 받는다. 쌍방폭행이라는 것이다. 잘잘못에 대한 경중은 있지만 모두 폭행이라는 것을 행사하였기에 처벌대상이 된다. 한쪽의 피해만 강조하여 다른 쪽에게 더 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은 불편하다. 상대가 강대국일 때 폭력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잔인한 폭격을 단지 영상으로 게임하듯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우리의 이성은 마비된 듯하다. 
 
교사 초임시절은 젊은 나이이기에 학생과 업무를 맡았다. 학생과 선생님들 책상 위와 밑에는 다양한 도구가 있었다. 당구 큐대, 봉걸레 자루 막대기, 대나무 뿌리로 만든 것, 개나리 줄기 막대기, PVC 파이프 막대기까지 다양한 폭력도구가 있었다. 교무수첩에는 61명의 담임반 학생 이름이 있었다. 대개 60명인데 1명이 전학을 왔다. 충남 천안의 1980년대 후반 상황이다. 많은 학생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학생지도라는 명분으로 일어난 일이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폭력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결과가 좋아서 교사의 강압적 폭력을 찬성하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폭력으로 인간성을 침해당한 경험을 잊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서 학생을 때리는 막대기가 사라졌다. 그 후에 교사의 손에는 다른 대체권한을 주지 않았다. 자율 평가나 교육과정 자율이나 수업방해 학생에 대한 수업배제권한을 주지 않았다. 단지 막대기를 빼앗았을 뿐이었다. 교사들은 한계에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방치와 무관심이 막대기를 대신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학교는 공적기관이다. 개인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교사를 무시하는 학생,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친구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학생, 규율을 수시로 어기는 학생에 대한 제재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교사,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관리자, 수업을 등한시하고 책임감이 없는 교사에게도 구체적인 제재가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의해 국경이 봉쇄된 가자지구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하마스의 전쟁범죄에 대하여 이스라엘 더 거대한 전쟁범죄로 대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생명의 가치는 서로 다른 것인가.
교사와 학생의 인권이 서로 다른 것인가. 평교사와 관리자의 인권은 서로 다른 것인가. 학부모와 교사의 인권은 서로 다른 것인가.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올바른 것인가. 이성을 지닌 문화라면 복수가 아닌 존중과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대응만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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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제

◇ 충청남도교육청학생교육문화원 예술진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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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제의 목요칼럼] 전쟁이 주는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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